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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2/13 (17:36) from 164.124.80.157' of 164.124.80.157' Article Number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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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경제질서의 형성을 위한 기독교인들의 책임(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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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경제질서의 형성을 위한 기독교인들의 책임

강원돈


오늘 우리 국민은 IMF의 경제관리로 상징되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제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의 틀을 새롭게 짜야 할 과제도 안고 있다. 이 두 과제들은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
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되, 미래의 한국경제에 대한 분명한 청사진을 갖고 제대로 극복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제대로 풀면 오래 동안 우리 민족에게 큰 부담이 되었던 분단경
제를 극복하고 통일경제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도 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경제위기의 극복과 새로운 경제질서의 형성에 남다른 책임을 느낀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의 청지기로서 하느님이 지으신 이 세상을 잘 관리하도록 위임받았
기 때문이다. 청지기직의 신앙은 제대로 된 경제를 구상하고 실천하는 일과 별개일 수 없다.  
 이 강연에서 나는 먼저 청지기직의 신앙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 다음 기독교인들이 이
신앙에 근거하여 우리 경제의 새로운 틀을 마련하는 데 어떤 점에 유의하여야 할 것인가를
말해 보려고 한다.

청지기직의 신앙  

기독교 신앙과 경제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언뜻 보면 별 관계가 없는 것 같다. 경제는 세
상의 일이고, 신앙은 구원과 관련된 일인데, 이 둘을 연결해서 생각하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
기도 한다. 그러나 신앙은 역사 속에서 펼쳐진 하느님의 위대한 행위들에 대한 경험에 터잡
고 있는 만큼 세상의 일과 구원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느님의 위대한 역사적 행위를 기록한 성서의 중요한 가르침 가운데 하나는 인간이 하느
님의 형상으로서 세계 경영과 형성의 책임을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창세기 1장 26절 이하가
그렇게 가르친다. 물론 창세기의 이 말씀은 오래 동안 마치 하느님이 인간에게 생물들과 땅
에 대한 무제약적 지배권을 부여한 것처럼 오해되기도 하였다. 프란시스 베이컨 이래로 이
성서 단락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권을 정당화한다고 인식되어 왔고, 린 화이트(Lynn
White)나 칼 아메리(Carl Amery) 같은 학자들은 생태계 파괴의 사상사적 뿌리가 이 유다적
-그리스도교적 전통에 있다고 보아서 이를 맹렬히 비판해 왔다. 그러나 창세기 주석에 금자
탑을 세운 클라우스 붸스트만(Claus Westermann)이나 오딜 한네스 슈텍(Odil-Hannes
Steck) 이래로 이러한 비판은 근거를 잃었다.
 특히 슈텍은 창세기 1장부터 2장 4절 상반절까지의 전체 문맥에서 1장 26절 이하를 읽자
고 제안하고, 이 말씀에 피조물공동체를 책임 있게 관리하고 보전해야 할 인간의 청지기직
사명이 함축되어 있다고 강조하였다. 이 말씀에서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하느님이 하늘, 바
다, 땅 같은 생활공간을 먼저 마련하신 다음에 이 생활공간에 각각 살 생물들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땅에서만큼은 예외다. 땅에서는 뭍짐승과 인간이 함께 살게끔 되었다. 둘 사
이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슈텍은 온 생물을 다스리라는 1장 26절의 말씀이 이 잠재적 갈등
을 조절하는 데 초점아 맞추어진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것은 피조물공동체 안에서 공생의
질서를 수립하라는 뜻이다. 그 다음, 1장 29-30절에 보면 하느님은 뭍짐승과 인간에게 채식
을 명령하셨다. 뭍짐승에게는 풀을, 사람에게는 알곡과 과일을 먹거리로 삼으라고 분부하신
것이다. 이 채식규정은 생존을 위한 살륙을 애초부터 배제한다. 이 두 가지 분부로부터 이끌
어낼 수 있는 결론이 있다.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 곧 하느님의 대리인으로서 피조물공동체
에 내재하는 갈등을 규율하면서 공생의 질서를 형성하도록 위임받았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제문서의 창조 기사를 읽으면, 이 기사의 클라이막스는 하느님이 공생의
공동체로 지으신 이 세상을 보고 "참 좋다"고 말씀하신 후 안식에 들어가신 장면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안식공동체는 이 세상이 도달하여야 할 목표이다. 안식공동체는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료피조물들 사이의 충만한 관계가 실현된 상태이다. 그리고 안식공동
체를 형성하는 데 하느님의 청지기로서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 곧 인간이다. 인간의
책임이 그 만큼 무겁고 중요하다는 말이다.
 물론 이 충만한 안식공동체가 역사적으로 실현된 적은 없다. 역사의 현실은 그 정반대였
다. 사제문서의 저자들은 착잡한 역사의 현실에서 그 정반대의 현실을 꿈꾸었고, 이 유토피
아적 꿈의 근거를 태초에 하느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위임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안식을
지향하면서 세계에 내재한 갈등들을 규율하면서 제대로 된 공생의 관계를 형성하라는 하느
님의 말씀은 관계들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은 역사의 현실에서 인간이 회피할 수 없는
엄중한 도전이다.
 역사의 현실적 조건들 속에서 올바른 관계들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투명하게 지향
하여야 할 목표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 말을 거꾸로 뒤집으면, 그 목표를 놓치지 않
으면서도 역사의 현실적 조건들 아래서 올바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안식공동체는 "궁극적인 것"이다. "궁극적인 것"은 "궁극 이전의 것"인 세상
과 동일시될 수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궁극적인 것을 지향한다고 하면서 궁극 이전의
것을 포기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궁극적인 것에 빗대어 궁극 이전의 것을 단순히 부정해
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궁극 이전의 것이 궁극적인 것에 대해 투명해지도록 해야 하고
투명하지 않은 것을 끊임없이 혁파하는 것이다. 혁파한다고 해서 물론 궁극적인 것이 궁극
이전의 것 속에 실현된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이처럼 궁극적인 것과 궁극 이전의 것 사이
의 긴장을 유지하면서 궁극 이전의 것을 끊임없이 혁파하여 궁극 이전의 것이 궁극적인 것
에 대해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인간이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 바로 청지기직을 수행하는
인간의 과제이다. 이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상상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이 상상력과 용기를 먹고 자라는 것이 곧 영원한 개혁주의이다.

경제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

경제는 이코노미(economy)의 옮긴 말이다. 이코노미는 희랍어 오이코노미아(oikonomia)에서
왔다. 오이코노미아는 오이코스라는 말과 노모스라는 말의 합성어이다. 오이코스는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뜻이고, 노모스는 규율을 세운다는 뜻이다. 오이코노미아는 집에서 함께 살아
가는 사람들의 삶을 규율한다는 넓은 의미를 가졌다. 이 뜻을 잘 살리는 우리말이 곧 "살
림"이다. 살림살이를 제대로 꾸려서 함께 사는 사람들의 삶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살림이다.
오이코노미아라는 희랍어는 하느님의 경륜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되었다. 하느님의 경륜, 곧
하느님의 오이코노미아는 온갖 생명이 깃들어 있는 피조물공동체를 다스리고 규율하는 하느
님의 활동이다. 하느님의 경륜은 이 세상을 꾸려나가는 하느님의 살림살이다. 인간의 경제,
곧 사람들이 꾸려나가는 살림살이가 이 세상을 다스리고 규율하는 하느님의 살림살이와 긴
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성서의 일관된 가르침이다.
 경제는 인간의 세계경영의 한 방식이다. 이 세계경영 방식은 피조물공동체 전체의 공생을
도모하여야 한다는 하느님의 뜻에서 벗어날 수 없다. 피조물공동체에서 만물은 유기적으로
얽혀 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다. 이 틀이 깨어져서는 안 된다. 열린 체계로서의 생태계에 대
한 인식이 크게 발전한 오늘날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하다. 경제계는 생태계와 물질-
에너지 대사를 나누는 열린 체계이다. 생태계로부터 물질과 에너지가 경제계로 흘러 들어가
면, 생산과 소비를 통해 이 물질과 에너지가 변형되어 사용되다가 폐기물과 폐기에너지의
형태로 다시 생태계로 돌아간다. 물질과 에너지의 소비로 인해 엔트로피 수준이 높아지면
경제활동을 위한 기반이 무너진다. 생태계가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폐기물과 폐기가스가
축적되면 심각한 생태계의 교란이 일어난다. 환경오염과 온실가스 효과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처럼 경제계와 생태계의 균형이 파괴되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는 불가능하다. 각
각의 피조물이 생태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인정하지 않고 생물 종의 다양성을 보존하
지 않고 생존의 자연적 기반을 무너뜨릴 만큼 생태계에 대한 경제계의 부담이 크다면, 그것
은 경제계와 생태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하도록 알리는 엄중한 경고의 신호이다. 냉
정하게 생각해 보면, 경제는 근본적인 생태학적 제약 아래서 인간의 생활을 영위하는 방식
이다.
 이러한 생각은 도미니움 떼레에 대한 사제문서 기자들의 통찰에 이미 담겨 있다. 창세기
1장 28절에 보면, 하느님은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을 채우라고 축복하셨다. 이렇
게 되면 인구는 당연히 늘게 된다. 이 늘어나는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땅을 경작하
여야 한다.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은 땅에 대한 인간의 절대적 지배권을 인정하는 것처럼 오
해되기 쉬우나 본래의 뜻은 그렇지 않다. 이 말씀은 하느님이 뜻하시는 공생의 질서를 존중
하면서 땅을 경작하면서 늘어나는 인구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살아가라는 뜻이다. 성서 시대
에 도미니움 떼레는 농업을 의미했지만, 좀 더 넓게 생각하면 살림을 위한 노동활동이요, 경
제활동을 모두 포괄한다. 도미니움 떼레는 인간이 노동을 해서 책임 있게 살림살이를 펼치
라는 하느님의 분부가 담겨 있다. 노동이 하느님의 축복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축복은 생명의 보존과 유지에 대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축복 아래 있는 경제활동으로서의 노동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관계 너머에
있고, 인간의 공동체 형성능력과 인격적 통일의 요구 아래 있다. 이것은 인간이 하느님의 형
상으로 지음받았다고 주장하는 사제문서의 해당문맥을, 왕의 신형상론을 주장하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왕권이데올로기 신화들을 서로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이 신화들에서 왕
은 하느님의 형상으로서 하느님과 백성 사이에 중재자로 서 있지만, 창세기에는 인간이 곧
하느님의 형상으로 되어 있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관계는 애초부터 끼어 들 여지가 없
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으로서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는 관계로 부름을
받고 있다. 대화는 모든 공동체 관계의 출발점이며, 공동체 관계 안에서 인격을 실현하는 근
거이다. 하느님이 인간을 대화의 상대자로 지으시고, 바로 이 대화의 상대자를 남자와 여자
로 창조하셔서 대화하는 인격공동체를 만드셨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렇게 보면, 성서는 공동체를 향해 열려 있는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살림살이를 꾸려 나가라
고 강조하는 셈이다. 이 살림살이 공동체에서 각 사람은 노동을 통해서 공동체에 이바지하
고, 공동체는 노동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배려한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한 마디만
더 덧붙인다면, 공동체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노동을 조직하여야 하고 노동능력이 있는 사
람들이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들, 여러 가지 이유로 일시적으로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
해 공헌할 수 있도록 살림살이의 틀을 짜야 한다. 성서가 강조하는 이 공동체적인 살림살이
의 정신은 경제논리에 의해 일그러지거나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

시장경제의 여러 문제들

경제활동은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관계들 속에서 이루어진다. 쉽게 말하면, 경제활동은 역사
의 발전단계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사회적으로 조직된다. 주어진 자원들을 처리하는
기술능력, 만들어진 물건들의 교환방식,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를 규율하는 정치형태 등이 이
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이야기를 근대적 의미의 시장경제로 좁히면, 우리는 시장경제의 두 가지 특징을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계와 영리가 분리되어 노동시장과 자본시장이 형성되었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이러한 역사적 조건 아래서 노동이 상품으로서의 재화와 용역을 만들어
내는 생산과정과 그것들의 유통과정에 통합되었다는 것이 또 다른 하나이다. 이와 같은 시
장경제의 역사적 조건들을 전제하면서 나는 앞으로 경제생활을 제대로 꾸려 나가는 데 몇
가지 점들을 밝혀 보려고 한다.
 첫째, 시장경제에서 교환의 정의를 수립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교환의 정의가 없는
곳에서는 공정한 경쟁이 있을 수 없다. 생산물시장에서는 이 과제를 수행하기가 비교적 쉽
다. 수요측과 공급측의 독과점을 규율해서 시장경제의 조절 메카니즘인 가격체제를 시장권
력들이 왜곡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 조절 메카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
면, 기업은 기업대로, 국민경제는 국민경제대로 자원할당의 효율성을 제대로 달성할 수 없
다.
 둘째, 생산물시장의 규율에 비해 요소시장들, 곧 노동시장과 자본시장의 규율은 대단히 까
다롭고, 이제까지 이 문제는 어느 형태의 시장경제에서도 만족스럽게 해결되지 않았다. 요소
시장들과 관련해서 짚어야 할 문제점들을 몇 가지 추리면, 다음과 같다.

 1) 가계와 영리의 역사적 분리로 인해 탄생한 노동시장에는 매우 심각한 윤리문제가 깔려
있다. 노동시장은 가계와 영리의 역할분담을 전제한다. 시장경제의 역사적 조건들 아래서 가
계는 영리를 위해 노동력을 재생하고 공급하는 역할만을 갖게 되었다. 가계는 노동력을 제
공하는 대가로 임금을 수령하여 노동력의 재생 비용을 충당한다. 쉽게 말하면, 노동력은 가
계와 영리를 결합시키는 노동시장에서 팔리고 사는 상품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 상품을 사
는 것은 자본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한 기업가이다.
 노동시장에서 노동력을 파는 사람과 노동력을 사는 사람은 물론 자유로운 인격이다. 노동
시장에서 둘은 자유로운 인격적 주체로서 노동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노동계약
을 체결한 다음에 일어난다. 노동계약을 체결하면, 팔려진 노동력은 노동계약이 정한 시간만
큼은 노동력을 사들인 사람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된다. 이 노동력으로부터 지출되는 노동은
더 이상 노동력 제공자의 것이 아니고 노동력 구매자의 것이다. 노동력 지출과정은 한 마디
로 타인의 지배 아래 있다. 여기서 노동자의 인격과 노동과정은 서로 분리된다. 노동과 인격
의 분리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관계의 한 표현이다. 이것은 노동을 하는 사람이 노동과
정에서도 하나의 인격으로 현존하여야 하고, 이 인격은 지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원칙과
언제나 충돌을 일으킨다.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지배관계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은 시장경제
가 해결하여야 할 중대한 과제이다. 노동세계의 민주화와 인간화가 그 목표다.

 2) 노동시장에서 노동력을 구입하여 생산과정에 투입하는 기업가는 물론 영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이윤의 극대화다. 기업가의 합리적 결단과 합리적 행동을 규
율하는 규준은 수익성이다. 수익성의 요구를 충족시켰는가의 여부는 시장경제에서 영리의
성패를 가늠하는 규준이다. 수익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기업활동은 기업에서 자원할당의 효
율성을 달성하였다고 말할 수 없고, 따라서 기업활동의 합리성 요구를 충족시켰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 수익성을 절대화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은 심각하다. 수익성을 달성하기 위해서
는 비용 대 효과의 비율을 높이면 된다. 시장경제의 제도적 틀 때문에 가능한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관계는 노동력 지출, 곧 노동업적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노동과정의 공정분할과
합리화를 통해 관철된다. 테일러의 "과학적 경영"에 입각한 포드주의적 대량생산 체제에서
노동에 대한 자본의 감독과 통제는 정점에 도달하였다. 거기서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
리가 완성되고, 정신노동의 기획과 관리 아래서 육체노동은 단순반복적인 부분공정에 투입
된다. 생산의 자본화 과정에서 부분공정을 수행하는 노동은 엄밀하게 말하면 기계에 부속된
다. 노동자들 상호간의 의사소통은 엄격하게 통제되고, 노동력 지출과정과 작업태도는 감시
의 대상이 된다. 노동세계의 민주화와 인간화는 가차없이 억압된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는 기업활동의 효율성이나 수익성이 장기적으로 달성될 수 없다는 데
있다. 노동세계의 불만이 커지고 갖가지 저항이 조직되고 노동만족도와 노동생산성이 저하
되기 때문이다. 노동과 자본의 마찰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도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노동
과 자본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는 것은 노동세계의 인간화와 민주화라는 윤리적인 요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리활동을 위해서도 장기적으로 이익이 된다.

 3) 노동시장이 가계와 영리를 결합시키는 제도적인 틀이지만, 이 틀이 결코 안정된 틀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또 다른 심각성이 있다. 시장경제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권을 반
드시 전제하여야 하는가는 따로 깊이 있는 토론을 필요로 하는 주제이지만, 이제까지의 시
장경제는 물건에 대한 절대적 지배권을 의미하는 소유권 제도 위에서 작동해 온 것이 사실
이다. 이 제도에서는 생산수단의 소유자가 생산수단에 관한 절대적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
게끔 되어 있다. 기업의 경제정책, 곧 생산설비의 축소, 확대, 이전 혹은 폐쇄, 기업의 매각
과 합병 등은 자본측의 고유한 권한이라는 주장도 여기에 근거한다. 이로 인해 고용의 안정
이 크게 손상되어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것이 많은 경우 자본측의 입장이다.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본의 투입을 규모적으로 하도록 강제되는 개방경제 체제
에서는 투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일자리는 줄어드게끔 되어 있다. 이것이 이른바 노동절
약적 합리화다. 이 합리화로 인해 실업은 필연적으로 늘어난다. 가계와 영리의 역사적 분리
가 시장경제의 역사적 조건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추세는 매우 심각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영리단체에 고용되어야 생계를 꾸릴 수 있는 노동자들이 일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사회
를 위해 일할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업에 따르는 사회비
용의 천문학적 증가도 골치거리이다.

 4) 요소시장들을 통한 국민소득의 분배에도 심각한 문제가 도사려 있다. 여기서는 두 가
지만 강조해 둔다. 국민소득의 분배과정에서 부의 증대에 공헌한 자연의 몫은 애초부터 제
외된다는 것이 그 하나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교환가치다. 교환가
치가 곧 가격은 아니지만, 부르주아 경제학이 태동할 때부터 공정교환의 기준이 되는 교환
가치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의 양에 따른다고 보았다. 교환가치가 곧바로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시장경제에서 상품의 가격은 상품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의 기본논리는 자연의 시장가치가 자연을 경제활동에 동원하는 데
지출한 노동의 양, 곧 "산 노동"과 "죽은 노동"의 양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것이다. 자연이
인간사회에 가져다주는 부 자체는 따라서 따로 평가될 길이 없다. 국민소득의 계정에는 자
연이 가져다 준 부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자연을 경제적으로 동원하는 데 지출한 노
동비용과 자본비용만이 계상된다. 국민소득의 분배에서 자연의 몫이 없는 것은 시장경제의
바로 이 논리 때문이다.
 자연을 경제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나타나는 환경파괴, 환경오염, 생태계 균형의 교란 등 마
이너스 효과까지 생각해 보면, 시장경제의 기본논리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이 마이너스
효과를 제거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지출되어야 하지만, 이 엄청난 비용은 경제활동을 위해
자연을 동원한 사람들이 부담하지 않고, 오히려 국민 모두가 부담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외부비용이라고 부른다. 생태계의 경제적 활용에서 비롯되는 비용이 외부화되었다는 뜻이다.
이 비용을 내부화해야 자연의 시장가치가 어느 정도 적정선을 유지할 텐데, 교환가치가 중
심이 된 시장의 논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또 다른 하나는 국민소득의 분배가 이루어지는 노동시장과 자본시장에서 공정한 교환이
이루어지도록 규율하는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노동시장에서 노동력 구입의 대가로 지불되
는 임금을 우선 보자. 임금은 노동력의 값이다. 이 교환이 공정하게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생산이론을 가지고 이 난제를 해결하고자 한 많은 시도들이 있
었지만, 하나도 성공한 것은 없다. 생산과정에서 노동력 지출, 곧 노동은 아직 제품으로 응
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업적과 자본업적을 계량화하
려는 여러 이론들이 있었지만, 이제까지 확인된 것은 생산에서 노동과 자본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사실뿐이다. 계량화 작업 자체는 노동과 자본의 이질적 성격 때문에 제대로 해결되
지 않았다.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은 자본이 가치증식 능력을 갖고 있다는 리카아도의 가치론을 포기
하지 않기 때문이다. 리카아도의 가치이론이 갖는 맹점을 더 들출 필요도 없이, 자본의 가치
증식 능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자본의 이자를 지불하도록 강요하는 자본의
권력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업가가 자본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조달한 자본의 실체를 보존한다고 약속하고 이 보존된 자본의 실체에 대해 시장이자를 물겠
다고 약속해야 한다. 생산과정에서 자본의 실체를 보존하는 비용은 자본의 감가상각비용이
다. 기업가는 자본의 감가상각비용을 지불하고 거기에 덧붙여 자본의 시장이자, 곧 자본소득
을 지불하여야 한다. 이것이 자본의 논리다. 이 논리를 관철시키는 것이 바로 자본의 권력이
다.
 국민소득이 임금과 자본소득으로 분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분배의 공정성을 도모하
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국민소득은 노동시장과 자본시장에서
자본의 권력과 노동의 권력이 서로 대결하는 양상에 의해 결정되고 있지, 이 권력관계 이외
에 국민소득의 공정분배를 규율하는 장치는 없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는 언제나 파국
적이다. 자본의 권력이 노동의 권력을 압도하는 곳에서는 국민소득 가운데 투자의 몫이 소
비의 몫보다 커지게 되고, 두 권력의 관계가 정반대일 경우에는 소비의 몫이 투자의 몫보다
더 커진다. 앞의 경우에는 투자과잉으로 인해 공황이 일어날 염려가 있고, 뒤의 경우에는 수
요인플레나 침체 속의 인플레 현상이 나타날 염려가 있다. 어느 경우든 적절하지 않다.
 국민소득의 적정분배는 영리단체에서 노동업적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직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가계 및 국민 복지의 핵심문제이다. 그리고 그것은 국민경제의 견실한 발전과 얽혀
있는 핵심사안이다.

 5) 경제의 세계화가 달성된 오늘날 실물경제로부터 분리된 금융자본의 폐해를 지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 가지만 미리 강조해 둔다. 경제의 세계화라고는
해도 그것은 자본운동의 범세계성을 말하는 것이지, 노동은 여전히 국민경제의 틀에 매여
있다. 자본은 국경을 넘어서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많은 수익을 올
리려고 한다. 이를 위한 국제적인 생산공정분업이나 생산기지 이전 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본의 높은 수익성과 저임금 노동의 광범위한 분포가 갖는 심각한 문제는 이미 너
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거대자본이 지배하는 세계무역구조가 이를 방조하고 있다는 것도
결코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세계의 환시장, 채권시장, 주식시장에서 시
세차익을 노리며 광속으로 손을 바꾸며 엄청난 속도로 몸집을 부풀리고 있는 화폐자본이다.
시세차익을 낼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세계 금융시장들을 공격하는 거대화폐자
본의 기법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엄청난 불로소득이 발생하고 있지만, 이 불로
소득에는 세금조차 매겨지지 않는다.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국민경제로부터
이 화폐자본이 일시에 빠져나갈 경우에 발생하는 피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 화폐자본
을 통제하지 않고서는 국민경제 수준에서 경제정의를 이룩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경제의 세계화와 관련해서 또 한 가지 주목하여야 할 것은 세계시장에서 시장권력을 강화
하기 위해서 엄청난 규모의 기업 인수와 합병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 인수와 합병
은 시장경제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났지만, 요즈음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은 규모에 대한 강
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규모적이다. 이렇게 되면 경제운영의 핵심이라고 할
독과점 규제가 국민경제 차원에서도, 세계경제 차원에서도 불가능해 진다.

경제위기의 극복과 새 경제제도 형성의 틀

IMF의 경제관리 아래 있는 한국경제는 오랜 기간에 걸쳐 누적된 병폐들을 타파하고 국민경
제와 기업경영의 틀을 개혁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한국경제의 위기구조에 대해서는 그 동
안 많은 진단과 분석이 있었기에 여기서 긴 말을 하지는 않겠다. 그 동안 거시경제적인 자
원배분을 왜곡해 왔던 관치금융의 타파와 미시경제적인 차원에서의 재벌개혁의 필요성은 널
리 인식되어 왔다.
 이와 관련해서 정부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동시적 발전"을 개혁의 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이 목표는 개발독재를 동반하였던 국가주도 자본화 과정에서 후퇴하였던 시장원리를
강화하여 개방경제체제에서 국민경제와 기업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 금융
제도 개혁은 지난 해 부실금융기관의 퇴출, 금융기관간의 인수 합병, 50조에 달하는 공적 자
금의 투입을 통해 진행되었고, 국가의 금융감독과 금융기관의 책임 있는 여신관리를 위한
조치들이 취해졌다.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과 관련해서는 이른바 "오너 경영"의 독재를 해체하기 위해 재벌기
획실 해체, 사외이사제 도입, 소액주주권한 강화 등 몇 가지 조치들이 취해지기도 하였다.
기형화된 기업의 소유구조와 내부거래 관행도 수술대에 올랐다. 지난 해 12월에 이루어진 5
대재벌의 구조개혁은 비록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기업구조조정의 핵심문제를 해결하지 못
했지만, 지난 60년대 이래로 구조화된 선단식 경영에 종지부를 찍는 성과를 이룩하고, 세계
화된 경제의 조건에 적응하기 위하여 기업간 빅딜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길을 열
었다.
 이러한 개혁조치들을 보고서 많은 사람들은 시장경제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환영하면서도, IMF의 경제관리 아래서 강제된 경제개혁이 신자유주의 노선에 따
라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기도 한다. 정부가 개혁의 지표로 내세운 "시장경제와 민주
주의의 동시적 발전"이 시장경제의 민주주의적 규율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인
식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시장경제가 시장의 원리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시장경제
는, 위에서 여러 가지로 지적한 것처럼, 많은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다. 경제위기가 아직 완
전히 진정되지 않고,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을 위한 막대한 비용을 국민의 부담으로 충당
하여야 하고, 천문학적인 외채를 갚아나가기 위해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수요축소와 재정
지출의 감소를 감내하여야 할 상황에서 시장경제의 고유한 문제점들은 더 악화된 형태로 나
타날 가능성이 크다. 위기에 처한 한국경제를 제대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의 효율성
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철거하는 데 과감해야 하면서도, 시장경제를 맹신하거나 이상화하
지 않고 시장경제의 제도적 취약점들을 예리하게 인식하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매우 중
요하다. 여기서는 이와 관련된 몇 가지 논점들을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으로 그치겠다.
 IMF 경제관리를 극복하고 우리 경제의 새로운 틀을 짜기 위해서는,

 1) 노동과 자본을 대등한 사회권력으로 인정하면서 노동과 자본의 "대립 속의 협조"를 제
도화하여야 한다. 현재 구성되어 활동하는 노사정위원회는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지적
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경제사에서 획기적인 실험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노동에 대한 자
본의 실질적인 지배관계가 노사정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의해 단번에 불식되기는 어렵지
만, 우리는 국가가 노동의 권력과 자본의 권력을 대등한 사회권력으로 인정하고 국가의 중
립적인 중재를 통해 사회협약을 체결하고자 하였다는 사실의 의미를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
다.
 노사정위원회의 과제는 거시경제적인 수준에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에 관한 사회협약을
이끌어내고, 이 사회협약을 뒷받침하는 입법을 제안하는 것이다. 현재 노사정위원회는 대통
령 자문기구로 설치되어 있으나, 헌법상의 근거는 마련되어 있지 않고, 절차법상의 근거 역
시 매우 취약하다. 사회협약을 깨는 사회권력에 대한 제재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이 점은 앞으로 다각적으로 연구되어 보완되어야 할 점이다.
 노사정위원회의 사회협약은 경제위기의 상황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거시경제적인 산업구
조정책, 기업정책, 재정 및 금융정책, 성장의 속도조절정책 등을 수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모든 일은 국민소득의 분배에 대한 사회협약이 체결될 때 힘있게 추진될 수 있
다. 노사정위원회가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게끔 된다면, 이 거시경제적인 기구에는 반드시 생
태계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사회세력도 참여하는 것이 옳다. 국민소득의 분배과정에
자연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경제계와 생태계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당
연한 요구이다.

 2) 자본의 권력과 노동의 권력이 실질적으로 균형상태에 있는 제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
하여야 한다. 노동의 결사권은 어떤 상황 아래서도 결코 유보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의 권력
은 제도적으로 보장된 결사의 자유에 의해서만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본의 권
력에 대항하는 노동의 권력이 형성되지 않고서는 자본의 지배관계로부터 노동은 해방될 수
없다.
 자본의 권력과 노동의 권력이 제도적 균형상태에 있을 수 있기 위해서는 노사협약의 교섭
권이 산업별 노동조합에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위사업장에서의 노사협약 체결은
엄청난 거래비용과 마찰비용을 지불하게끔 되어 있다. 거기서는 노동 측 교섭대표자들이 자
본의 지배관계로부터 자유롭지도 않다. 산별수준에서 체결된 노동협약은 해당 산업분야의
단위사업장에서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요구로 인정되어야 하고, 이 협약의 실천은 법률적
구속력에 버금가는 권위에 의해 보장되어야 한다.
 기업수준에서 자본의 권력과 노동의 권력은 경영감독위원회에 노동측과 자본측이 동수로
참여하는 조건 아래서만 제도적인 균형상태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은 노동의 직접적인 경영
간섭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관계를 극복하고 이해관계의 대립
속에서도 양자의 협조와 타협을 제대로 이끌어내는 데 참여적인 경영감독 제도만큼 실효성
있는 것은 없다. 정부는 사외이사제도의 확대만을 강조하지만, 독일처럼 주식법과 회사조직
법을 통해 경영감사에 노동이 참여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기업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실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되면 경영을 통해 자본소득자의 이익뿐만 아니라 임금소득자
들의 이익도 최대화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것이 기업활동의 제로섬 게임을 플러스 섬
게임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길이다.

 3) 노동자들이 인격적 주체로서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일꾼들이 일터를 형
성하고 노동과정을 조직하는 데 참여하고 조언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포드주의적 단
순반복 작업이 지배적인 공장이라 해도 업무교환과 업무확대를 통해 작업장의 분위기를 바
꾸어 나갈 수 있다. 새로운 경영 모델에서는 자율적인 작업 팀을 구성하고 이 작업 팀이 노
동시간과 휴식시간, 노동속도, 업무효율성 달성방안, 휴가계획 등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작업장에서 노동세계의 민주화와 인간화를 이룩하기 위한 이 실험들은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관계 너머에서 새로운 노사협력 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
다.

 4) 시장경제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서는 실업보험 등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을 생각하지 않
을 수 없다. 앞으로 실업문제는 IMF의 경제관리를 극복한 이후에도 우리 경제의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오늘의 경제에서는 제조업 분야에서의 빠른 생산성 증가로 노동력 퇴출이 강
제되지만, 이 노동력을 흡수할 수 있는 서비스 부문의 발전이 더디기 때문에 대향실업이 불
가피하다. 세계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 때문에 노동력을 절약하는 합리화 투자가 많아지는
것도 고용사정을 악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실업자 구제를 위한 사회
적 안전망 구축이 매우 시급하다. 여기에는 실업자들의 생계보전 뿐만 아니라 취업을 위한
적극적인 실업대책이 포함된다.
 오늘의 경제조건 아래서는 구조조정의 압력 아래서도 실업을 회피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
력을 기울여야 한다. 노동시간을 단계적으로 축소시켜 기왕에 있는 일자리를 더 많은 사람
들에게 분배하고, 관리 분야나 서비스 분야에 기왕에 있는 업무들도 쪼개서 더 많은 사람들
의 노동시장 진입을 촉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들도 노동시간 축소
에 따르는 임금조정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요소시장들에 대한 규제를 풀어서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가급적 모든 사람들이 사회적 노동에 참여하도록 여러 가지 방안들을 짜야
한다. 사회복지 활동을 위한 다양한 공공근로 사업의 확충, 환경보호를 위한 투자와 노동력
의 규모적 투입도 그러한 방안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5) 앞으로는 에너지절약적이고 자원절약적인 생산정책과 환경친화적인 생산품정책, 생태
계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에너지정책, 교통정책, 소비정책 등에 대한 토론을 활성화하
여야 할 것이다. 앞으로 환경협약에 의거한 배출가스량 규제가 적용되기 시작하면 에너지와
물질 소비가 많은 우리 나라 산업구조는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하여야 한다. 환경산업에 대
한 투자를 늘려나가면서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에너지와 물질 절약적인 생산공정과 생산품
제조에 나서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이 정책들은 생태계의 경제적 활용으로 발생하는 외부비
용을 경제활동에 내부화하는 조세 및 부과금 정책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에너지와 물
질의 사용보다 노동력의 사용이 월등하게 저렴한 경제운영의 틀을 마련하기 위하여 조세 및
금융정책이 새로 수립되어야 한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실업을 극복하는 방안으로도 중요하
다.

 6) 세계금융구조와 무역구조에 대한 민주적인 통제에 대해서는 많은 대안들이 제출되어
있다. 금권정치와 카지노 자본주의의 병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계경제안전보장이사회를
구성하여 약소국들과 강대국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이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제안이 이미 논
의되고 있다. 이 세계경제안전보장이사회 아래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 격인 가칭 지구은행
을 두어 세계적인 규모에서 자본의 흐름을 규율한다면 세계경제의 위험관리가 훨씬 용이하
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IMF와 세계은행을 민주적으로 재조직하고, IMF 특별인출권을
세계통화로 격상시키고, 사회적 안전이나 환경보호에 대한 정부의 약속을 담보로 IMF 특별
인출권을 발행하고, 실물경제로부터 유리되어 터무니없이 비대해진 화폐자본을 축소하기 위
한 금융시장들의 통제, 화폐자본의 거래로 인한 시세차익에 대해 세금을 징수하여 사회기금
이나 환경기금을 조성할 수 있어야 한다. 자본소득세를 거두지 않는 납세천국을 제거하고,
금융기구들의 투명성 감독도 필요하다.
 기업의 인수 합병을 통해 지구적인 규모의 거대기업들이 탄생하고 있는 오늘의 경제 상황
에서 세계적인 규모에서 공정거래를 보장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세계무역기구를 개혁하
여 국제적인 공정거래 규범과 이를 관철하는 법제를 제정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
해졌다.
 이 모든 일들은 개별적인 영토국가에 의해서는 달성될 수 없다. 영토국가들의 경제주권
가운데 일부를 세계기구들에 할양하여 세계화된 경제에 대처할 수 있을 때에만 이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 이 세계기구들은 물론 대등한 자격으로 세계적인 의제들을 다루는 영토국
가 정부들의 협약에 근거해서 운영되어야 한다.

강연을 마치며

시장경제를 제대로 운영하여 경제가 살림에 이바지하도록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회피할
수 없는 과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가까운 장래에 시장경제를 외부로부터 대체하거나 시장경
제를 내부로부터 부정하는 진보적인 경제제도가 탄생하지 않을 전망이라면, 시장경제의 개
혁을 위해 많은 생각을 하고 실효성 있는 개혁 프로그램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시장경제에서 정의를 추구한다는 것은 시장경제에 동원되는 여러 이해당사자들의 관계를 올
바르게 형성한다는 뜻이다. 시장경제에서는 생태계와 경제계,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제대로
수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성서는 인간과 이웃피조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인간자신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여야 하는가를 암시하고 있다. 그것이 유토피아적 꿈이라고 해서 시장
경제의 현실을 규율하는 데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원한 개혁주의 노선 아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유토피아적 꿈을 안고 시장경제의 역사적 조건들 아래서 실현가능한 대안을
찾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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