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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경제민주주의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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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경제민주주의를 향하여

강원돈

머리말

새 천년을 내다보는 요즈음 경제생활의 새로운 파라다임을 논의하고 이를 실현하는 길을 모
색해 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것은 지난 20여 년 동안 미국과 영국에서 실천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가 오늘날 "경제의 지구화"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이제까
지 경험하지 못한 규모로 위기를 불러왔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90년
대 초이래 "세계화"라는 구호와 더불어 추진된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1997년 말 우리 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관리 아래 들어가면서 급류를 타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영토국가를 중심으로 하여 발전되어 왔던 국민경제의 운영과 기업활동은 경제의
지구화 조건 아래서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었고, 자본과 노동, 경제와 환경, 성장과 복지의
관계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지게 되었다. 초국적 자본의 운동 앞에서 영토국가는 무능력을 드
러내고 있고, 세계경제는 무정부상태 아래 놓이게 되었다. 선진경제들에서는 사회국가의 종
언과 새로운 중세의 도래가 우려되고, 후발국 시장경제들은 초국적 자본의 공격과 약탈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이 글에서 나는 우선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거기서 비롯되는 문제들을 밝히고, 신자유주의
적 시장원리가 매우 위험한 이데올로기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 다음, 나는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서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경제민주주의를 논하려고 한다.

II.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거기서 비롯되는 문제들

1. 신자유주의는 통일된 개념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1940년대 초반이래 소비에트식의 중앙
관리경제나 파시스트 국가의 지도경제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나라
마다 그 표현이 달랐다. 봘터 오위켄을 중심으로 한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학파는 사경제의
자율성과 이니시어티브를 존중하면서도 경쟁의 결과로 나타나는 경제권력의 형성을 적절히
통제하는 국가의 시장규율을 중시하는 입장에 섰다. 규율자유주의(Ordo-Liberalismus)로 알
려진 독일의 이 신자유주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범 아래서 경
제운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경제와 사회윤리의 결합을 배제하지 않았다. 독일에서
실천된 사회적 시장경제는 이 규율자유주의의 논리를 떠나서는 이해될 수 없다.
 이에 반해 오스트리아 출신의 프리드리히 A. 폰 하이에크를 중심으로 한 영국의 신자유
주의자들은 국가와 노동조합의 간섭으로부터 사경제의 자율성과 이니시어티브를 방어하려고
하였고, 경제를 시장의 자연적인 합리성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복지수준의
향상이나 완전고용의 실현, 빈곤퇴치, 국가의 경제계획 등이 시장의 자연적 합리성을 파괴한
다고 믿었다. 이와 같은 논거들을 가지고 하이에크는 위에서 말한 사회주의적 관리경제와
파시스트적 지도경제 뿐만 아니라 1920년대 말의 대공황이래 경기순환의 애로를 타개하기
위해 국가가 조세정책과 재정정책을 통해 축적과정에 개입하여 적정한 유효수요를 유지할
것을 주장한 케인즈를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2.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논리는 규율자유주의보다는 시장의 자율적 조
절능력을 통해 경제적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믿는 하이에크의 논리에 가깝다. 이 논
리는 1970년대 초 이래로 서구 사회를 강타한 침체 속의 인플레이션, 곧 스태그플레이션
(Stagflation)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제시되면서부터 다시 힘을 얻게 되었다. 1970년대
말에 신자유주의자들은 투자의 위축과 수요인플레이션의 증가, 급증하는 실업과 국가재정의
파탄, 시장에 대한 국가의 지나친 개입 등 복합적인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케인즈주의
에 입각한 국가개입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수요중시 경제학은 더 이
상 스태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못박고, 국민소득 가운데 보다 많은 부분을 투
자로 돌리고 국가의 시장규제를 철폐하자는 처방을 내놓았다. 임금소득의 축소, 사회복지의
감축, 국가부문의 축소를 의미하는 이 처방은 지난 날 완전고용 조건 아래서 비대해진 노동
권력을 약화시키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이 처방은 국민소득
가운데 더 많은 부분이 투자로 돌려지면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 이루어지고, 유휴노동력
의 고용흡수를 통해 유효수요가 창출되면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이 이어진다는 데서 출발하
였다.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근거한 이 처방은 공급중시 경제학으로 잘 알려졌지만, 선진 경
제에서 공급중시 경제학은 기대와는 달리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 이유는 크게 보면 세
가지다.
 첫째, 국제화된 시장조건 아래서 제조업의 가격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고정비용을
높여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투자가 더 많이 이루어지면 이루어질수록
노동력은 제조업 부문에서 더 많이 퇴출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노동합리화 정책 이외에
독점자본들은 보다 싼 노동력을 구해 생산기지를 아예 해외로 옮기거나 생산공정의 국제적
분업에 근거한 아웃소싱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일에 나섰다. 결국 실업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국가의 사회복지 지출이 축소되는 상황 아래서 실업자들을 위시한 저소득층의 삶의
처지는 급속히 악화되었다. 1980년대 초 이래로 서구 여러 나라들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새
로운 가난"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둘째로, 국민소득 가운데 더 많은 부분을 저축으로 돌리는 정책은 시장이자율을 높이게
되었다. 이 추세를 악화시킨 것은 1980년대에 들어와 거대한 규모로 늘어나기 시작한 미국
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였다. 미국은 자본수지를 유지하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실시하였고,
이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시장이자율은 덩달아 급등하였다. 이렇게 되자 투자자본은 큰 규모
로 실물경제로부터 빠져나가 화폐자본으로 몸을 바꾸었고, 화폐자본가들은 다양하게 개발된
금융상품들을 통해 투기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카지노 자본주의"를 연출하게 되었다.
시장이자율이 높아지면서 자본소득자들의 부는 빠르게 증가하였고, 자본소득자들과 임금소
득자들의 양극적 분화가 심화되었다.
 셋째로, 설사 실물경제 부문에 투자가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그 투자는 많은 경우 적대적
인수 합병을 위한 것이었다. 적대적 인수 합병은 새로 탄생하는 기업의 주가를 가파르게 상
승시켜 주식소유자들과 경영자들의 수익을 천문학적으로 증가시키고, 합병 기업의 시장지배
력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적대적 인수 합병은 노동력을 규모적으로 퇴출시켜 고용상황을 크
게 악화시켰다.

3.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선진 경제들에서 경제정책으로서 실패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전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것은 80년대 말
에서 90년대 초에 일어난 세계체제의 변화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이 시기에 동구의 현실
사회주의 체제는 붕괴되고 세계경제는 자본주의 경제의 "지구화"를 통해 급속히 재편되었
다. 자본의 이익을 앞세운 신자유주의의 논리는 국제금융체제와 국제무역구조를 통해 스스
로를 강화시킬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80년대 초 이후 이미 크게 몸
집이 늘어난 금융자본은 기존의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서 자유롭게 운동하게 되었고,
우르과이 라운드를 통해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대체하게 된 "세계무역
기구"(WTO)가 세계무역질서를 새롭게 조율하게 되었다.
 자본시장의 자유화는 자본수익의 극대화라는 논리를 전세계적인 규범으로 만들었다. 환
시장, 주식시장, 채권시장이 자유화되고 컴퓨터 정보망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금융자본은 단
기적인 차익을 좇아 빛과 같은 속도로 손을 바꾸며 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첨단금융기법
이 등장하면서 투기자본의 활동범위는 점점 더 넓어지게 되었다. 심지어 세계적인 금융기
관들은 투기자본에 엄청난 신용공여를 해 주고 단기수익을 서로 나누는 관행에 익숙해지기
까지 했다. 투기자본이 세계금융시장에서 약한 고리를 침으로써 지역 금융시장을 교란하여
투기적 수익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이와 같은 세계금융기관들의 방조 내지 협력 없이는 설
명되지 않는다.
 시장규제의 철폐를 통한 자본수익의 극대화라는 논리는 생산의 세계화에도 그대로 관철
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생산기지의 해외이전과 생산공정의 국제적 분업은 선진경제들에서
자본의 해외이탈로 성격화되지만, 대상국가들에서는 "직접투자"의 증가로 나타난다. 직접투
자의 증가는 자본유출국과 자본수혜국 사이에 투자협정을 맺도록 촉진한다. 개별적인 직접
투자의 경우에는 투자자본이 내국투자가들에게 국가가 부여하는 노동권 보호와 환경보전
등의 일반적인 의무들을 철폐할 것을 요구하고 투자자본에 대한 내국민 대우를 요구하고,
이를 더욱더 발전시킨 투자협정의 경우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협상국가에 대한 최
혜국 대우를 요구하여 투자자본에 대한 초과이윤의 여지를 확대시킨다. 지난 1995-1998년
에 OECD 차원에서 비밀리에 진행된 "다자간 투자 협정"(MAI)에 관한 협상은 직접투자에
대해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규제 철폐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
 직접투자는 투자지역의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유
효수요를 높게 유지하는 거대한 지역시장들로 수출하기 위한 것이다. 경제의 "지구화"가
실현되기 이전에 가난하였던 나라들은, 설사 해외독점자본들의 직접투자로 인해 명목적인
생산활동이 늘어난다고 해도, 이와 같은 무역조건 아래서는 별로 큰 기대를 할 수 없게 된
다. 왜냐하면 이 지역들의 저임금구조는 유효수요가 있는 시장의 형성을 불가능하게 만들
어서 그 곳에서 생산된 제품은 거대한 유효수요를 가진 지역들로 수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
이다. 그리고 수출지향적으로 재편된 지역경제들은 제한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치열한
가격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수출수익성은 나날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경제의 지구화라는 이름으로 신자유주의를 급속히 확산시키는 기구
는 IMF이다. IMF의 이 전략은 점점 더 자주 발생하는 외채위기로 인해 매우 효과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기술과 첨단지식을 독점하고 있는 선진공업국가들에 여러 모로 유리하게
짜여진 국제무역구조에서 무역수지를 제대로 맞추는 것은 개발도상국가들에게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미국처럼 국제기축통화를 발행할 수 있어서 자본수지의 불균형을 무제한한 채권
발행이나 자국 시장 위주의 금리정책으로 극복할 수 있지 않는 한, 만성적인 무역적자에
시달리는 나라들은 필연적으로 외채위기에 몰릴 수밖에 없다. 자본의 운동이 자유화된 오
늘날에는 해외차입에 의한 과잉투자와 기업수익성 하락을 회피하지 못할 경우에도 외채위
기에 몰리게 된다. IMF는 외채위기에 빠진 나라들의 경제구조를 조정한다는 명목으로 신
자유주의를 강요하고, 이 나라들의 경제를 수출지향구조로 재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외
채위기에 시달리는 국가들에 대해 IMF가 내어 놓는 처방의 요점은 국민경제의 수요부문을
억압하고 공급부문을 강화하는 한편, 경제구조를 세계무역구조에 적응시키는 것이다. 경제정
책, 구조정책, 금융정책의 중점은 재정지출을 억제하고, 자본축적을 용이하게 하여 외채와
이자를 우선적으로 변제하는 데 놓이게 된다.

4. 이렇게 보면, 지구화된 경제와 더불어 급속하게 확산된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되는 문제들
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경제의 지구화는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들었지만,
이 자본의 범세계적 운동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자본운동에 관
한 한, 무정부상태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자본은 영토국가의 경제주권을 무력화시키
고 이른바 "카지노 자본주의"의 시세차익 극대화 규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초국적 기업
들은 직접투자에 따른 초과이윤 획득을 위해 세계적인 차원에서 탈규제화를 추구하고, 이를
자본투자협정의 핵심원리로 관철시켜 영토국가의 규율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둘째, 신자유주의의 논리는 전세계적으로 소득분배를 크게 왜곡시키고 있고, 그 결과는
매우 파국적이다. 한편으로는 유동성 불안으로 일컬어지는 금융시장의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효수요의 후퇴와 과잉투자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금융시장에
서는 돈이 넘쳐나서 이자율이 하향조정되고 있지만, 실물시장에서는 디플레이션 압력이 커
지고 있다. 경제는 이제 완전히 제 정신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셋째, 신자유주의는 노동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자본수익의 극대화에 저항하는 노
동자들의 단결과 저항은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인해 급격히 약화되고, 초국적 자본을 위시한
자본은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이제까지의 제도들을 해체하고 있다.
 넷째, 자본수익의 극대화를 앞세운 신자유주의는 생태계 보전을 위한 인류의 관심과는 정
반대로 치닫고 있다. 직접투자자들이 환경보호 의무를 거스르며 달성하는 초과이윤은 모든
투자자들로 하여금 환경보호를 위한 국가 규제의 완화나 환경파괴에 대한 국가의 방조를 요
구한다.

II.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데올로기 비판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연적" 합리성
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다. 경제를 시장의 원리에 맡기면 시장의 자율적인 규제기능을 통해
경제적 효율성이 최대화된다는 신념이 그것이다. 이러한 신념은 신자유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적 정치경제학자들의 고전적인 저작들에도 나타난다. 이 신념의 허구를 드러내는
것이 곧 신자유주의 비판의 핵심이다.
 
1. 물론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는 달리 시장경제에서 완전균형이 자동적으로 달성
되는 것도 아니고, 시장경제가 완전균형을 달성할 수 있는 제도도 아니라고 본다. 완전균형
이란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이루어 소비자들이 최대의 용익을 향유하고 생산자들이 최대의
이익을 실현하는 상태를 말한다.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완전균형 상태가 시장을 통해 달성되
지 않는다고 해서 시장경제를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바로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핵심
논리이다. 여기서 국가의 경제개입이나 계획경제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비판이 비롯된다.
 우선 계획경제에 대한 하이에크의 비판은 크게 두 가지 논거에 근거한다. 하나는 욕구가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수단을 계획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계획이 의미를 가지려면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
어야 하는데, 인류가 도달한 현재의 지식수준을 가지고 미래의 경제상황을 예측하기는 불가
능하다는 것이다. 이 두 논거로부터 하이에크는 계획의 주체가 중앙기구가 되어서는 안
되고, 생산과 소비에 참여하는 사적인 주체들이 각각 합리적인 판단과 행위의 주체가 되어
야 한다고 역설한다. 사적인 시장주체들의 합리적인 판단과 행위는 경쟁조건 아래서 시장의
가격장치를 통해 조절될 때 비로소 경제적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 하이에크에게는 경쟁을 제한하거나 가격장치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 국가의
강제나 시장개입은 악이다. 만일 국가의 시장개입이 용인될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경쟁질
서를 유지하고 경쟁을 유리하게 할 때뿐이다. 이 논거는 국가의 사회복지제도에 대한 하
이에크의 비판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그는 경쟁과 사회복지제도가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지만, 그러한 양립은 오직 사회복지제도가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경쟁을 무효로 만들려
는 의도가 없을 경우에만 성립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이에크가 시장분배에 의한 소득불
균형과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시장분배에 따른 사회적 불균형을 시정하려는 국
가의 노력이 경쟁을 왜곡하지 않는 최소한의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뜻이다.
바로 이 논거를 가지고 하이에크는 경기순환 과정에서 유효수요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축적과정에 국가가 개입하여 강력한 조세정책과 재정정책을 추구하여야 한다는 케인즈
이론을 거부했다.
 중앙관리경제와 국가의 시장간섭, 그리고 사회복지제도에 대한 하이에크의 혐오는 국가지
상주의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진다. 그에게 국가는 인간의 공동생활을 위한 여러 조직들 가
운데 하나이고, 그 나름의 목적체계와 수단을 결합시키는 독특한 조직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이 국가의 합법적인 활동의 범위는 시민들의 동의에 근거해야 하며, 따라서 영원불변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하이에크의 국가이론은 20세기 전반기를 수놓았던 소비에트 전체주의
와 파시스트 전체주의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를 주장하
였던 자유주의적 국가이론과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이에크의 국가이론에는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위, 혹은 시장의 요구에 따른 국가 기능의 변경이 암시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경쟁과 가격장치를 통한 시장의 자율적인 조절이 비록 불완전한 결과를 낳
을지라도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인간의 자유를 신장하고 경제의 효율성을 달성하
기 위해서는 시장주체들은 시장원리에 순응하여야 한다. 시장원리에 순응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고 "합리적"인 일이다.

2.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는 소비에트식 중앙관리경제의 불가능성과 국가사회주의적 지도경
제의 야만성을 지적한 점에서는 옳지만, 시장경제 역시 특수한 역사의 한 시기에 성립한 특
정한 경제제도이고, 이 경제제도를 규율하는 시장원리에 많은 맹점이 감추어져 있다는 점을
도외시한 점에서는 옳지 않다. 하이에크에게는 인간이 시장원리에 순응하여야지, 시장원리가
인간의 삶에 이바지하도록 조절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약하다. 시장원리는 역사적 시장경제
의 한 조절원리에 불과하고, 역사적 시장경제는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서 제 기능을 발
휘할 수 없었다. 그것은 시장경제가 시장원리 이외에 다른 조절원리들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에크에게는 시장원리를 절대화하는 경향이 뚜
렷하다. 설사 시장원리가 경제적 효율성을 달성하는 하나의 원리이고, 역사적 시장경제가 경
제적 효율성을 최대화하는 데 다른 어떤 경제제도들보다도 우수한 업적을 내었다고 할지라
도, 경제적 효율성의 달성을 위하여 인간의 사회적 삶과 생태학적 삶에 어떤 손실을 가져왔
는가에 대해서 하이에크는 묻지 않는다.
 경제적 효율성을 최고의 규범으로 생각하고 이를 달성하는 유일한 수단을 시장원리로 간
주하는 것은 시장경제를 절대화하는 일종의 강박증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시장경제
는 본래 자급자족 경제의 해체에 따라 가계와 영리가 분리되면서 나타난 교환경제의 한 역
사적 형태에 불과하다. 이 교환경제가 필요로 하는 것은 공정한 교환이고, 이 공정한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규범은 엄밀하게 말하면 등가교환의 원칙이다. 이에 반해 경제적 합리성은
희귀한 자원들을 결합시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고려되는 원칙이다. 만일 경제활
동이 희귀성의 조건 아래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경제적 합리성의 추구는 전혀 무의
미할 것이다. 경제적 합리성은 희귀성의 조건 때문에 모든 경제활동에 요구되는 것이며, 따
라서 시장경제도 계획경제도 이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시장경제에서 경제활
동은 단순히 경제활동을 규율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고, 도리어 그 자체가 목적으로 둔갑된
다. 시장경제에서 경제적 합리성은 가계가 최소지출을 통해 최대용익을, 영리가 최소비용을
들여 최대이익을 올릴 때 달성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시장경제의 치열한 경쟁조건 아래서
남보다 더 적은 이윤을 획득하는 것은 곧바로 시장퇴출을 의미하기 때문에, 경제적 합리성
은 자원할당의 효율성을 달성하여 수익을 최대화하는 것을 의미할 수밖에 없고, 그 자체가
경제의 목적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이렇게 되어 경제적 합리성은 생활세계의 규율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규범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경제적 합리성이 경제활동의 목적이 되면, 시장원리는 모든 시장주체들이 따라야 할 법칙
으로 고정된다. 고전적인 국민경제학자들은 이 대목에서 "시장법칙"이라는 말을 썼다. 시장
법칙이라는 개념은 시장경제가 역사적으로 성립된 하나의 경제제도라는 사실을 망각시키고,
이 경제제도가 마치 역사를 초월한 영원한 법칙의 지배를 받고 있는 듯이 생각하도록 만든
다. 이 착각 아래서 시장현상은 시장에 내재된 자연적 본성의 표현인 것처럼 생각된다. 시장
법칙에 대한 신념은 이렇게 해서 탄생하고 이를 믿는 사람들은 시장법칙의 노예가 되어 이
를 찬미한다. 프란츠 J. 힝켈람메르트는 이를 "기업가의 형이상학"이라는 말로 요약하였다.

"기업가의 형이상학은 (아리스토텔레스-토마스 전통과는 - 필자 보충) 다른 본성, 곧 상품, 화폐, 자본의 본성
을 갖는다. 그것은 그것들의 본성을 참된 신적인 본성으로 신학적으로 자명하게 해석한다. 그것은 이 본성을
인간의 소산으로 보지 않고, 그것들의 법칙을 인간의 법칙으로 간주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그것은 그것들의 본
성과 법칙을 신성화하면서 완벽한 정당성을 느낀다. 이 본성과 법칙이 저 형이상학이 경배하는 대상이다."

 신자유주의가 위험한 것은 시장의 "자연적" 합리성에 맡기면 모든 것이 제대로 해결된다
는 시장만능주의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이 시장만능주의에서는 시장법칙이 곧 신이다. 이 신
에 대한 적대적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그것은 "교만"(Hybris)이요 신성모독이다. 이와 같
은 죄를 범하는 자들에게 시장은 보복한다. "고문과 노예생활과 죽음"이 그 죄에 대한 대가
다. 따라서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겸손이다. 그리고 오직 시장과정들
에 대해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에게만 자유가 허락된다. 힝켈람메르트는 이 점을 다음
과 같이 요약한다.

 "이 겸손과 쌍을 이루는 것이 부르주아적 사유가 이해하고 있는 바의 자유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시장들의
지배를 긍정하는 자유, 따라서 일차적으로 가격들의 자유로 이해되는 자유이다. 사람들은 겸손의 그늘 아래서
가격들과 기업들과 시장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하고 그것들의 지표에 복종하는 만큼만 자유롭게 행동한다
."

시장만능주의는 시장의 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시장이 반드시 보응한다고 가르친다. 그것
이 곧 "시장의 기적"이다. 시장의 기적은 상품의 풍부한 공급과 소비로 표현된다. 그것이 시
장이 베푸는 축복이다.
 이렇게 보면, 시장만능주의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는 일종의 경제적 메시아주의라고 할만
도 하다. 이 메시아주의는 풍부한 상품의 공급과 소비를 약속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을 동원
하여 시장법칙에 복종하게 한다. 시장을 동요시키는 세력에 대한 억압과 시장의 법칙에 순
응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상이 경제적 메시아주의의 무기이다. 경제적 메시아주의는 이를 통
해 자본의 지배를 강화시키고 마침내 자본에 대한 인간의 노예화를 실현시킨다.

3. 신자유주의에 내포된 시장만능주의와 경제적 메시아주의는 오직 시장의 실패에 대해 눈
을 감는 신도들만을 열광시킬 수 있다. 경제적 합리성의 절대성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확신
이 일종의 강박증이라는 점을 더 논의하지 않더라도, 신자유주의는 경쟁과 시장분배, 그리고
가격장치에 대한 일종의 미신에 사로잡혀 있다.

3.1 경제활동에서 경쟁이 갖는 중요성은 물론 부정될 수 없다. 희귀성의 조건 아래서 자원할
당의 효율성을 최대화하여 모든 사람들의 욕망을 최적 수준에서 충족시키는 것이 경제의 과
제라고 한다면, 이 과제는 경쟁조건 아래서 가장 잘 실현된다. 그러나 시장경쟁은 필연적으
로 독점형성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경쟁과 독점은 시장운동의 조건이고 그 결과이다.
 독점이 형성되면 시장은 특정한 시장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이러한 상황 아래서 국민
경제 차원에서 자원할당의 효율성이 달성될 리 만무하다. 독점 아래서도 경쟁은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대체시장이나 틈새 시장을 둘러싼 경쟁에 불과하다. 거대 초국
적 기업들이 적대적인 인수 합병을 통해 메가 기업으로 탄생하는 일이 빈번한 오늘의 상황
에서 독점의 폐해를 시장의 자율기능에 맡겨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시장경제는
독점 현상을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아직 개발하지 못했다.
 
3.2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기적을 강조하지만, 시장을 통한 분배는 기껏해야 "파레토 최적원
리"에 따라 이루어질 뿐이어서 풍요 속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시장을 통한 소
득배분의 문제는 소득배분이 일어나는 요소시장들의 독특한 성격에서 비롯된다. 시장경제에
서 소득분배는 노동시장과 자본시장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시장들에서 노동력과 자본은 일
정한 가격으로 사고 팔리는데, 이 시장교환을 매개하는 노동력과 자본의 시장가격은 생산물
시장과는 다른 원리에 따라 형성된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라기보다는
자본과 노동의 권력관계이다.
 이 권력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매우 다양하지만, 자본과 노동의 권력관계가 단적
으로 드러나는 곳은 노동력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노동계약에서이다. 노동계약에 서명하는
판매자와 구입자는 자유로운 인격으로 서로 마주 선다고는 하지만, 설사 계약의 인격적 강
제가 없다손 치더라도 계약 쌍방의 인격적 자유가 쌍방의 대등성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
니다. 가계와 영리의 역사적 분리 이후에 노동력을 팔지 않고서는 생계를 꾸릴 수 없는 사
람들이 노동력 구입자에게 우위를 점하기는 매우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하다. 노동력 판매자
들이 서로 단결하여 노동력 구입자들에 대해 맞서거나 완전고용 조건 아래서 노동력 구입난
이 나타나지 않고서는 자본에 대한 노동의 열등한 지위를 만회할 길은 없다. 임금수준과 노
동시간, 그리고 노동조건을 둘러싼 노동과 자본의 투쟁은 소득분배가 경제논리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자본과 노동의 권력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동소득이 자본과 노동의 권력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면, 이것은 거꾸로 자본소득을 결정
짓는 이자 역시 이 권력관계의 결과라는 뜻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세금을 털
어내기 이전에 국민소득에서 임금소득을 공제한 나머지 부분이 곧 자본소득이고, 자본소득
의 규모를 결정짓는 임금소득은 자본과 노동의 권력관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시장을 통한 분배가 소득창출에 대한 노동의 업적과 자본의 업적을 공
정하게 가려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기만이다. 더욱이 시장경제가 제대로 기능
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간섭 없이 시장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자유주
의의 논리는 노동의 권력을 약화시키려는 자본의 공격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이다.
 
3.3 시장경제의 자율적인 조절기제라고 절대시되는 가격장치는 사실 허술하기 짝이 없다. 가
격장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주류 경제학은 가격의 본질을 해명한 적이 없고, 단지 가격현
상을 이러저러하게 서술해 왔을 뿐이다. 가격의 본질에 대한 논의는 마르크스에게서 유일하
게 나타나지만, 노동가치론에 대한 그의 비판적 수정은 주류 경제학에서는 금기시되어 왔
다. 시장경제가 교환경제인 한에서 교환의 척도가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 교환의
척도에 대한 적절한 해명이 주류 경제학에 결여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미스테리 중의 미스
테리이다.
 가격형성에 대한 서술에서 이제까지 중시되어 온 것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론이다. 이
균형이론은 가격이 희귀성의 한 표현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데 경제에서 의미 있게 여
겨지는 희귀성은 오직 현재의 수요와 공급에서 나타나는 희귀도를 반영할 뿐이지, 어떤 재
화가 장래의 어느 시점에 희귀한 재화가 될 수 있다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예컨대 화
석연료의 남굴로 인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해 화석연료가 희귀재가
되어 가격이 폭등할 것을 예측하면서도, 시장경제는 그것에 전혀 대비하지 못한다. 이러한
사례는 생태계의 자정능력이 고갈되거나 생태계 균형이 파괴되어 안정된 생태계가 극도로
희귀한 재화가 될 것임을 충분히 예측하면서도 시장경제가 이 미래의 희귀성에 반응하지 못
하는 데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희귀성 이론의 불완전성 이외에도, 주류 경제학이 내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국민소득의
계정에서 묵인되고 있는 리카아도의 노동가치론 역시 시장경제의 가치계정에서 자연의 본래
적 가치를 전혀 고려하지 못하게 만든다. 리카아도의 가치이론에서 자연재는 무한하고, 불변
이고, 경제적으로 아무리 활용한다고 해고 고갈되지 않는다. "자연상수" 관념으로 일려져 있
는 이 자연재 개념은 자연으로부터 얻은 재화의 가치를 계산할 때 자연의 본래적 가치를 0
으로 놓고 자연자원의 경제적 활용에 투입된 노동비용과 자본비용만을 고려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시장경제에서 방대한 규모로 진행되는 가치축적에 자연이 기여한 것은 아무 것도 없
는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생태계의 경제적 활용에서 비롯되는 부정적 효과에 대해 생산자
든 소비자든 어느 시장주체도 책임을 질 수 없게 만드는 논리이다. 시장경제의 핵심인 교환
가치 개념에 자연이 들어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철저히 망각된 것이 문제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시장원리에 모든 것을 맡기면 경제적 효율성이 최대화된다는 신자유주
의 논리는 경제적 효율성을 위해 생태계의 파괴를 용인해도 좋다는 것밖에는 안 된다. 그러
나 생태계가 파괴되면 오늘과 미래의 인류는 생존의 자연적 기반을 송두리째 잃고 만다.

4. 이제까지의 논의를 요약하면, 신자유주의는 무엇보다도 경제적 합리성을 절대화하는 강
박증 때문에 경제가 인간의 삶에 이바지하고 생활세계의 규범 아래 종속되어야 한다는 점
을 인식하지 못한다. 자본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의 논리 앞에 인간의 삶은
설자리가 없다. 그 다음, 시장경제의 조직원리에 허다한 맹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원
리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의 신조는 사회정의와 생태학적 정의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을 뒷받침하는 근거도 사실상 파괴시켜
버린다. 여기에 더하여 개별 경제주체들의 수익극대화가 국민경제적 효율성을 보장하지 못
하고, 전체경제를 위한 사회적 간접자본을 확충하지 못하고, 교육 등과 같이 투자효과가 서
서히 나타나는 분야를 투자대상에서 도외시한다는 점은 익히 알려져 있으므로, 여기서 더
강조할 것도 없다.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이처럼 허점으로 가득 차 있는 데도 시장만능주의가 부추겨지고 시
장원리가 만물 위에 우뚝 서 있는 것이 우리 시대의 도전이다. 온 세상이 신자유주의의 지
배 아래 들어가고 있다.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의 세계화를 저지할 수 있는 힘이 현재로서는
뚜렷하게 보이지 않지만, 신자유주의에 맞서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대안을 실천하는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과제이다.

IV.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으로 규율되는 시장경제

시장경제가 그 자체의 불완전성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시장경제를 일거에
폐지하자고 말할 수는 없다. 시장은 끊임없이 실패하고 있지만, 시장경제보다 더 효율적인
경제제도는 아직까지 고안되지 않았다. 희귀성의 조건 아래서 욕구충족을 달성해야 하는
경제는 효율성 문제를 비켜갈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시장경제는 필요악이다. 중요한 것은
시장의 실패에 대한 인식을 통해 신자유주의가 부추기는 시장만능주의를 비판적으로 극복
하고, 시장경제를 제대로 규율함으로써 그것의 순기능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
이 강구되어야 하나?

1. 나는 문제를 푸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초국적 금융자본과 투자자본에 대한 국가의 상대
적 자율성을 강화시키는 데 있다고 본다. 역사적으로 시장의 실패를 극복하는 기능을 수행
한 것은 국가였다. 신자유주의자들도 시장이 실패하는 곳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터부시
하지는 않는다. 경쟁과 가격장치를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이 두 기제를 왜곡하는
시장의 내생적 현상을 바로 잡는 국가의 입법활동은 바람직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그들
은 국가가 이 두 장치를 질서 있게 유지하는 일 이외에 경제에 더 이상 개입하는 것에 단
호히 반대한다. 앞에서 간단히 살핀 바와 같이, 시장에 대한 국가의 최소한의 규율은 국가
의 역할을 시장의 요구에 맞추려는 신자유주의의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시장경제에서 국가의 역할은 시장의 무질서를 제거하기 위해 경쟁을 보호하는 데
국한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국가는 보편적 이해관계의 실현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공정한
가격 신호에 따라 개별적 경제주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경제적 합리성을 추구함으로써
보편적 이해관계를 저절로 실현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만, 역사는 결코 그
런 적이 없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국가는 사익의 추구가 공익의 추구를 방해하거나 사회정
의를 억누를 때 경제에 개입하여야 하고, 그것이 계몽된 국가의 임무이다. 이 국가의 임무
는 경제를 단순히 경제논리에 맡겨서는 안 되고, 반드시 정치의 규율을 받게 해야 한다는
신념과 맞닿아 있다.
 오늘날 공익 개념에는 매우 광범위한 내용이 담기게 되었다. 공익은 우선 만인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만인의 복지를 어떤 관점에서 향상시키는가에 대해 논의
가 분분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것이 파레토 최적치에 따를 수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생태학적 정의를 실현하는 일도 공익을 실현하는 일과 관련해서 점차 중시되는 국가의 임
무이다.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국가의 공익 실현의 임무는 범세계적인 자본운동으로 인해 좌절
당할 위기에 직면해 있다. 영토를 넘나드는 자본운동이 개별적인 경제주체들과 국민경제,
그리고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도 국가는 공익의 이름으로 자본을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이러한 상황은 결코 한 나라 정부의 힘만 가지고서는 극복되지 않
는다. 범세계적인 자본운동에 재갈을 물려서 자본의 공격으로부터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여러 정부들이 힘을 합쳐서 공동전선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 세계의 모든 정부들이 국가의 경제 주권 가운데 일부를 할
양하여 범세계적인 자본운동을 규율할 수 있는 국제기구를 만들고 그 국제기구의 규범에
따라 공동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이 국제기구는 UN처럼 1국가 1표의 원칙에 따라 입법
기구를 구성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IMF에서처럼 금권지배가 나타날 우려가 있고, 국
제규범이라는 이름 아래서 경제적 약소국들의 예속이 심화될 것이다.
 이 국제기구가 착수해야 할 첫째 과제는 세계화폐의 창출과 이를 관리하는 지구적 차원
의 중앙은행을 설립하고, IMF를 개혁하여 민주주의적 통제 아래 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달러독재를 종식시키고 IMF로 하여금 세계무역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자금흐름의 왜곡
을 처리하는 본연의 임무에 종사하게 할 수 있다. IMF의 특별인출권을 발행하는 조건도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가령 브라질의 아마존 산림지역을 보존한다는 정부의 약속에
근거해서 SDR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한다면, 브라질은 외채를 갚기 위해 아마존 지역을 무
리하게 개발해서 지구의 허파를 파괴하는 일을 중단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존 열대 우
림의 파괴에서 비롯되는 생태학적 재앙을 피하는 데 드는 비용이나 이를 복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감안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대책은 없을 것이다.
 국제기구를 통해 착수해야 할 둘째 과제는 국제유동성의 규모와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다. 실물경제로부터 이탈하여 천문학적 규모로 팽창한 국제유동성의 상당부분을 퍼내어 사
회기금과 환경기금으로 돌려서 소비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토빈세를 도입하고 세율을 상황
에 따라 결정하는 것을 고려해 봄 직하다. 세계적인 통화정책의 목표는 실물경제 규모에
금융자본의 규모를 적응시키는 것이다. 국제유동성의 규모를 축소시키기 위해서는 칠레에
서 시도된바 있는 장기적인 자본예탁금 제도를 모든 금융시장에 확대시키는 것이다. 자본
예탁 비율을 30 퍼센트 이상 유지하면 세계적인 금융자본의 규모는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조치가 이루어지고 난 후에야 국제유동성의 속도를 조절하는 장치들이 효
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이 조절정책의 수단으로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일시적인 시장진입 통
제제도이다.
 국제기구가 추구해야 할 셋째 과제는 국제무역과 직접투자를 규율하는 규범을 제정하는
것이다. 국제무역이 부등가교환에 근거하여 자본의 배를 불리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고, 무역에 참여하는 국가들의 호혜 원칙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각
나라의 국민경제가 수출지향적으로 짜여져서는 안 되고, 내수를 중심으로 한 생산과 소비
의 균형이 중시되어야 할 것이다. 여러 국민경제들의 유기적 연관관계가 커지고 오늘의 상
황에서 각 국민경제의 개방적인 균형성장을 모색하고, 이를 교역 규범에 반영하는 것이 앞
으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국제무역 규범에는 인권과 노동권 그리고 환경권을 무시하
는 재화의 생산과 유통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조항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고, 이를 감시하
는 민간기구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조항도 설치되어야 한다. 직접투자의 형태로 활동하는
초국적 자본은 투자지역의 국가가 국민경제와 기업을 규율하는 정책들과 규범들 아래 종속
되어야 하고, 초과이윤의 달성을 위한 특권적 지위를 요구할 수 없어야 한다.
 각 국가가 국가들의 협력을 통해 초국적 금융자본과 투자자본에 대해 상대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헤게모니적 성격이 민중지향적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시장경제
에서 국가는 자본주의국가의 한계를 넘어서기 어렵다. 오늘과 같은 지구화된 경제의 조건
아래서 국가가 자본주의국가의 성격을 스스로 버리고 민중적 헤게모니 국가로 변화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극히 낭만적인 생각일 것이다. 국가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길은 민중이 아
래로부터 권력을 강화시키고 이 권력을 가지고 시장경제를 민주주의적으로 규율하는 민중
의 정치를 조직하는 일이다. 이것이 경제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 길이다.
 
2. 오늘의 지구화된 경제상황에서는 오직 국가들의 협력을 통해 초국적 자본에 대한 국가
의 상대적 자율성이 강화되는 조건 아래서만 경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 경제민주주
의는 경제영역에서 나타나는 자본의 지배를 이겨내고 시장경제의 역사적 조건에서 비롯되
는 자본과 노동의 적대적인 대립관계를 참여적인 대립관계로 전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
다. 경제민주주의의 목표는 시장경제의 폐지가 아니고, 노동과 자본의 "대립 속의 타협"을
통해 인간적이고 사회적이고 생태학적 지향을 갖는 시장경제의 형성을 목표로 삼는다. 경
제민주주의는 무엇보다도 자본의 권력에 대항하는 노동의 권력이 형성되고, 적어도 노동의
권력이 국가로 하여금 자본의 요구에 경사되지 않고 도리어 자본과 노동의 이해관계를 조
율할 수 있도록 강제할 수 있을 때 성립된다고 볼 수 있다.
 경제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틀에서 노동의 단결권을 확보하여
자본의 권력에 마주서는 일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노동의 단결권과 그 권력의 행사를 가
로막는 제도들은 철거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지배 아래서 노동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수단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민주주의적 법치국가에서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촉진하는 고
용조정법, 파업을 억압하고 분쇄하는 쟁의제한법, 기업 혹은 작업장 수준에서 노사협약을
체결하도록 유도하는 정책, 그리고 높은 수준의 실업률 유지 정책 등이 강력한 효력을 발
휘한다. 민주주의적 법치국가에서 노동의 권력을 강화시키는 길은 이 장애물들을 철거하기
위해 단호히 투쟁하는 데 있다.
 노동의 권력이 민주주의적 법치국가의 틀에서 강화될 때 비로소 경제민주주의가 전통적
으로 추구하여 왔던 과제들을 달성할 수 있는 기회도 넓어진다. 거기에는 국민경제의 거시
계획과 그 달성 수단의 확보, 기업의 민주적 지배구조의 확립 그리고 일터의 민주화와 인
간화가 포함된다. 이 과제들의 윤곽을 간략하게 제시하자면,

 - 국민경제의 거시계획은 노동과 자본의 동등성이 인정되고 국가의 중립적인 조정이 전
제되는 노사정위원회에 의해 수립되어야 하고, 이 때 중요한 것은 경제정책과 사회정책, 성
장과 복지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경제민주주의는 전통적으로 주요산업의 사회화를 강
조해 왔는데, 오늘의 상황에서 이 요구는 비록 여전히 중요한 의제이긴 하지만 경제민주주
의의 절대적인 요구라고 말할 수는 없다.
 - 기업의 민주적 지배구조의 확립은 노동의 기능과 자본의 기능을 구별하면서도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을 감독하는 기구에 노동과 자본이 동등성의 원칙에 따라 참여하도록
하는 데 주안점이 놓인다.
 - 일터의 민주화와 인간화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전통적인 지배관계를 노동과 자본의
기능적 분화와 민주적 통합의 원리로 전환시키고, 일터의 형성과 인간화에 일하는 사람들
의 주도권을 폭넓게 제도화할 때 실현될 것이다.

3. 오늘과 내일의 경제민주주의는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세계경제, 국민경제, 기업, 일터의
차원에서 규율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시장경제를 생태학적으로 규율하는 데까지 나아
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시장원리는 생태계 보전에 역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생태계 보전을 위해서는 시장원리를 통제하는 정치적 의지가 중요하다. 이 정치적
의지는 생태계 보전에 이해관계를 갖는 사회세력과 시민들의 참여를 통하여 형성될 것이
다. 생태계 보전을 위해서 앞으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을 몇 가지만 추려본다면, 다음
과 같다:

 - 저수준 엔트로피의 희귀성을 반영할 수 있는 범세계적인 환경시장을 설립하고 운영하
는 것
 - 국민경제의 운영목표에 생태계 보전을 명시하고 국민경제적 소득분배 차원에서 환경
보전을 위한 기금을 확보하는 것
 - 생태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법인의 설립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자연국가적 법제를
제정하는 것
 - 기업의 의사결정과정에 기업의 환경을 이루는 주민들과 생태계의 이해관계를 반영하
고 또한 그 방향으로 기업의 의사결정과 집행이 이루어지는가를 감독할 수 있도록 기업의
지배구조를 환경친화적으로 개혁하는 것
 - 기업의 생산공정정책과 생산물정책을 환경친화적으로 수립하도록 강제하기 위해 물질
과 에너지 결산(Materie-Energie-Bilanz)에 근거한 환경영향평가제도를 강화하고, 이 평가
에 따라 기업에 대한 조세 및 과세를 차등화하는 것.

IV. 결론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신자유주의에 맞서서 경제생활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신자유
주의의 이데올로기를 폭로하고 신자유주의의 문제점들을 계몽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
지만, 신자유주의를 극복하여 사회적이고 생태학적 지향을 갖는 경제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일은 이론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 민중의 권력이 아래로부터 조직되어 국가에 영향을 미쳐
국가의 헤게모니적 성격이 변화되어야 한다. 세계경제, 국민경제, 지역경제, 기업, 일터에서
경제민주주의적 대안을 실현하는 길은 그 성격이 변화된 국가들의 국제적 협력을 통해 새
로운 규범들과 제도들을 만들 때 비로소 열릴 것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희생당하는 사람들과 생태계 보전에 이해관계를 갖는 사람들이 영토국가의 차원뿐만 아니
라 국제적으로도 연대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 각주처리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각주가 필요하신 분들은 File을 다운로드 받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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