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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국상황에서 민중신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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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국상황에서 민중신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강원돈

상황의 변화와 민중신학적 관점의 확대

국제통화기금의 관리 아래 있는 우리 사회에는 한편으로는 거대자본의 집중과 시장지배력
확대, 카지노 자본주의의 발전이 나타나고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중산층의 몰락, 노동소
득자들의 소득감소와 노동기회 상실, 과중한 조세부담 등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2년 사이
에 자본과 노동의 권력관계는 결정적으로 변화되었고,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은 매우 빠
르게 진행되었다. 그 동안 말로만 듣던 "20대 80의 사회"가 우리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씻기 어렵다.
 외견상으로 볼 때, 오늘의 정치상황은 지난날보다 민주화되었고 시민운동이 활성화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 같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여
러 사회계층들의 이해관계들을 합리적으로 조절할 만큼 정치과정이 성숙되어 있는 것도 아
니고, 시민들과 사회세력들의 활발한 정치참여가 이루어져 기존의 정치질서를 새롭게 짤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아래로부터 정치과정이 조직되는 참여민주주의의 실현은 아직도
요원한 과제로 남아 있다.
 우리 나라의 경제, 사회, 정치 부문에서 나타나는 이와 같은 현상은 자본이 국경을 자유롭
게 넘나들며 움직이는 것을 본질로 하는 경제의 지구화에서 비롯되고 있다. 경제의 지구화
는 자본을 세계적인 차원에서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였지만, 노동력의 자
유로운 국제적 이동을 촉진하지 않는다. 자본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기 때문에 국
가를 통해 정치적으로 통제하기 어렵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부분의
나라들에서조차 자본과 노동의 이해관계를 정치적으로 조절하는 것을 곤란하게 만들거나 거
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경제의 지구화가 오늘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면 세계 곳곳에서 민중의 삶의 처지는 악화
되고 자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사회적 대안을 실현할 기회는 줄어들 것이다. 거꾸
로 새로운 사회적 대안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범세계적으로 운동하는 자본의 지배를 극복해
야 해야 한다. 이 자본의 지배는 오늘과 같이 진행되는 경제의 지구화를 수정할 때 가능하
고, 이 진로수정은 경제의 지구화로 인해 희생당하는 민중의 힘이 국민국가적 차원과 국제
적 차원에서 조직되고 연대를 통해 강화될 때 비로소 모색되기 시작할 것이다.
 민중신학은 경제의 지구화로 인해 급격한 사회경제적,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는 오늘날 새
로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민중을 하느님의 계약 파트너로 인식하고 민중이 중심이 되어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여야 한다고 믿는 민중신학은 이제 그 자신의 전통을 충실히 재해석하
고 그 관점을 훨씬 더 확대시켜 지구화된 경제의 조건들 아래서 민중의 삶을 함께 경험하고
민중적인 삶의 대안을 함께 모색하여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 민중신학을 할 것인가?

민중신학의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간단하지만은 않은 문제이다. 민중신학에서 방법에
대한 논의가 혼선을 빚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민중신학이 아직 충분하게 분화 발전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민중신학은 하나의 일매암(Monolith)이 아니다. 민중신학이
라는 단일한 이름 아래서 이미 매우 다양한 입장들이 제시되었고, 이 입장들은 연구자들이
각각 중시하는 분야에 따라 서로 다른 강조점들을 가졌다. 민중신학자들이 민중주체성에 대
한 신념을 함께 나눈다 하더라도 이 주제를 성서학이나 조직신학이나 교회사나 사회윤리나
선교학이나 교육학 분야에서 관찰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만일 이 점에 대한 인식이 공
유된다면, 민중신학은 민중주체성을 매우 다양한 방법들로 다루는 신학자들의 폭넓은 대화
의 장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고, 새롭게 개발되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통찰들
을 수용하여 새로운 언어들을 활발하게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관심사인 사회윤리에 국한해서 이야기한다면, 민중신학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전망
을 잃지 않으면서 민중의 주체적인 삶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현실관계들의 제도적 조건들을
형성하는 데 관심을 모으게 될 것이다.
 하느님 나라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관해서는 민중신학자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로 논의된
바 있다. 안병무는 하느님과 민 사이에 어떤 틈새도 없는 현실을 하느님 나라로 이해하고.
하느님의 주권 아래서 민중이 자율적으로 살림살이를 꾸려가는 공동체로 이해하고자 하였
다. 그는 바로 이 현실이 원시 이스라엘에서 실현된 바 있으며, 하느님의 주권에 대한 역사
적 회상이 이 세상의 권세들과 제도들에 대한 비판의 거점이 된다고 보았다. 이것이 이스라
엘 민중사와 예수 운동, 그리고 오늘의 민중운동을 꿰는 축이다. 이렇게 보면, 하느님의 나
라는 그것의 역사적 실현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하느님과 민의 틈새가 벌어져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하나의 가능성이다.
 오늘의 현실에서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이 가능성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을 때, 신학자는 하
느님의 계약 파트너로서 하느님의 주권이 실현되는 새 현실을 창조하는 민중의 운동을 사회
윤리의 주제로 설정할 수 있다. 이제 사회윤리는 하느님의 주권이 실현되는 방향을 지향하
면서 민중이 형성하고자 하는 새로운 현실관계들을 함께 모색하고 현실로서 주어져 있는 조
건들을 변경하여 새 현실관계들을 창조하는 방안을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중적 삶의 대안과 그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이 작업은 적어도 민중주체성의 요구들을
명확하게 하는 데서 출발하여야 한다. 민중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 민중주체성의 요구들은
어느 정도는 절대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왜냐하면 민중주체성은 민중이 하느님의 계약 파
트너라는 역사적 계시에 근거하고 하느님의 주권이 실현되는 현실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
다. 적어도 참여, 나눔, 상호봉사, 하느님이 "맡기신 것"에 대한 책임 있는 관리, 폭력의 배
제 등은 민중주체성의 원칙들이라고 볼 수 있다. 지면관계로 자세한 설명을 할 수 없지만,
나는 성서의 민중전승에 대한 재해석에 근거하여 이 원칙들을 정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원칙들을 천명한다고 해서 현실로서 주어져 있는 조건들이 당장 변경될 것이라고 생각
하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매우 순진한 발상이다. 현실조건들의 변경은 민중주체성을 실
현하려는 실천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힘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이와 관련해서는 현실조건
들이 당장 혁명적으로 철거될 것이라고 믿고 행동주의로 나아가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
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민중주체성의 원칙들을 고려하면서 역사적으로 주어진
현실조건들을 변경할 수 있는 실현가능한 방략을 궁리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매우 하찮게 보이는 현상의 변경에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이 현상의 변경조차도 그
것이 민중주체성이 실현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 의의를 과소평가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공장과 기업 수준에서 공동결정 제도를 도입하거나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사회
협약을 이끌어내는 일은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일거에 철거하는 일일 수는 없다. 그러
나 이 두 제도들은 시장경제의 역사적 조건들 아래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권리들을 좀더 많
이 실현하도록 도울 수 있다. 노동자들이 자본의 지배에 대항하고자 강력하게 단결할 때 그
가능성은 더 커지고, 노동세계의 인간화와 민주화를 위한 지속적인 개혁의 폭도 확대될 수
있다. 이제까지의 조직원리나 운영방식을 놓고 보면, 공동결정 제도는 물론 노동자 자주관리
제도나 자유로운 개인들의 결사에 근거한 마르크스 식의 공산주의적 경영에는 훨씬 못미친
다. 그러나 공동결정 제도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절대적 지배를 목표로 하였던 맨체스터 자
본주의의 경영방식이나 테일러의 "과학적 경영"보다는 진일보한 것이다.
 민중주체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현실조건들을 변경하는 일은 이처럼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의 모색과 그 실천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그러나 현실순응주의일 수는 없다. 민중주체
성을 현실조건들에 대한 타협을 거부하면서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실천의 방략을 모색하는
것은 오직 전망을 가진 현실주의의 입장을 가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민중의 대안적 삶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일은 따라서 현실조건들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을
건너뛸 수 없다. 이 비판적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조건들 가운데 필연적인 것과 필연성
을 참칭하는 것을 서로 날카롭게 구별하는 일이다. 이 둘이 구별되지 않으면, 현실조건들의
실제적인 변경가능성을 인식할 수 없다. 전통적인 용어로 말하면, 현실적으로 구체적인 것과
사이비 구체성을 구별하는 이데올로기 비판이 실천적인 현상변경에 불가결하다고 하겠다.
현실조건들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훌륭하게 수행하도록 돕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한 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방법은 사회생활의 여러 관계들을 단편적으로 서술하는 것이어서는
안 되고 이 관계들의 상호연관을 가급적 종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80년대에
"물의 신학"을 전개할 때, 나는 "정치경제학 비판"이 이와 같은 성격의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정치경제학 비판"이 현대의 복잡한 현실을 모두 설명하지
는 못하지만, 시장경제의 역사적 조건들을 분석하는 데 여전히 더 발전시킬 여지가 있는 하
나의 방법이라고 본다.

끝없는 방법의 실험

하나의 방법은 그 적용대상이 되는 현실이 변화됨에 따라 끝없이 수정되든지 다른 방법에
의해 대체된다. 오늘날과 같이 현실 자체가 지극히 복잡하거나 현실을 인지하고 표현하는
데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는 시대에는 하나의 방법에 대한 고집은 지혜롭지 않다. 방법은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지만, 하나의 진리에 이르는 길이 꼭 하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나는 민중신학이 끝없는 방법의 실험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사회윤리에 국한시켜서 이야기하면, 민중의 현실을 인식할 때 생산이론이 갖는 의의
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경제의 지구화가 진행되는 오늘의 현실에서 생산이론은 민중현실의
극히 일부분만을 드러낼 것이다. 금융이론과 문화이론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민중현실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방법의 실험은 민중주체성의 실천방식과 관련해서도 필요하다. 민중운동은 이제까지 시장
경제, 국가, 시민사회의 삼각구도 안에서 논의되었지만, 자본운동의 범세계성을 전제하면 이
삼각구도만으로는 실천주체의 형성과 실천과제들이 제대로 파악될 수 없다. 민중의 국제적
연대를 도외시하고서는 자본의 지배를 극복할 수 없게 되었고, 자본의 지배를 이겨내지 않
고서는 민중이 참여하는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룩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민중주체성의 실현을 생각할 때에도 굉장히 다양한 실천현장들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시장원리를 부정하는 대안공동체나 민중적 네트워크의 형성이
문제해결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만 집중하는데, 그것은 너무 편협한 생각이다. 민
중주체성은 기업, 지역경제, 국민경제, 세계경제 차원에서도 실현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방
법들이 매우 다양하게 개발되어야 한다. 역사가 가르치는 바에 따르면, 시장경제는 정치에
의해 규율되어야 한다. 자본의 운동에 대한 국민국가적 통제가 무력화되고 있다면, 국민국가
의 주권을 일부 할양하여 구성되는 국제기구가 자본운동을 효과적으로, 책임 있게 통제하도
록 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민중의 대안적인 삶을 실현하기 위해 국민국가와 국제기구의 성
격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이다. 이렇게 보면 현실의 여러 차원들에서 민중주체성 실현과
관련해서 개발되어야 할 의제들은 참으로 많다.
 민중신학은 이제까지 민중주체성을 놓고 진지하게 고민해 왔지만, 이제부터 민중신학은
아직 걸어본 적이 없는 길을 계속 걸어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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