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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 Won-Don's Social Ethics Article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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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4, 2-3에 대한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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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린교회 사순절 강연

폭력과 자연파괴

강원돈 목사

본문: 호세아 4, 2-3

"이 땅에는 사랑하는 자도, 신실한 자도 없고
이 하느님을 알아 주는 자 또한 없어
맹세하고도 지키지 않고
살인과 강도질은 꼬리를 물고
가는 데마다 간음과 강간이요,
유혈참극이 그치지 않는다.
때문에 땅은 메마르고 주민은 모두 찌들어 간다.
들짐승과 공중의 새도 함께 야위고
바다의 고기는 씨가 말라간다."

오늘의 강연에서는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의 현실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폭력관계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폭력적 지배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 둘이 서로 분리된 별개
의 현실이 아니라 같은 동전의 두 측면임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고난의 현실
이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깨어진 것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통찰하는 것이 중요
하다.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의 현실을 깊이 인식하면 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향하여야 할
방향도 드러난다.  

1. 본문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깨지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파괴되고, 이와 동시
에 인간과 자연의 관계도 망가진다는 것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1.1 본문에 따르면,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단절된 까닭은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하느님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매우 파국적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깨어져서 살인, 강도질, 간음, 강간이 온 땅에 가득차게 되었다. 이 통찰은 성
서의 야훼전승과 예언자 전승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은 인간의 범죄와 낙원
추방 그리고 형제살해를 기록한 창세기 3장 이하의 기록이다. 홍수설화도 그 기본도식은 똑
같다. 하느님을 버린 사람들 사이에 폭력과 피흘림이 난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홍수설화는
인간이 범죄함으로써 세상이 뿌리까지 썩게 되었다고 말한다.
 
1.2 성서에 익숙한 사람들은 위에서 언급한 성서의 통찰에 매우 익숙해 있다. 그런데 호세아
서의 본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에" 자연이
병들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본문 4장 3절 첫머리에 나오는 "때문에"
라는 말은 주목을 요하는 표현이다. 이 낱말은 물론 원인과 결과를 가리키는 부사어다. 땅이
메마르고 주민이 모두 찌들어 가고, 들짐승과 공중의 새도 함께 야위고, 바다의 고기가 씨를
말리는 까닭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폭력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 통찰도 성서에서 낯선 것은 아니다. 낙원에서 추방된 첫 사람들은 낙원
과는 전혀 다른 조건들 아래서 일하고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창세기 3장은 인간의 범죄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아 아담이 일구어야 할 땅에서 "엉겅퀴와 가시덤불"이 가득찼다고 전한
다.

2. 인간의 죄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파괴시키고 이 파괴된 인간관계가 인간과 자연 관계
의 파멸을 동반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지위와 책임에 대한 성서의 독특
한 인식에 맞닿아 있다. 이 인식을 잘 정리한 것이 사제문서에 나오는 인간의 하느님 형상
론이다.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이라는 사상은 그 동안 여러 가지로 해석되어 왔지만, 이 사상
에 내포된 의미를 이해하려면 창세기 1장 1절-2장 4절 상반절의 전체 문맥에서 1장 26-27
절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

2.1 해석과 관련해서 나는 세상의 창조와 인간의 창조를 서로 다른 전승으로 보는 C.
Westermann의 관점을 버리고 창세기 1,1 - 2,4a를 독자적인 한 문학작품으로 보는 O. -H.
Steck의 관점을 선택한다. 이 관점은 포로기에 창세기의 해당본문을 작성한 사제문서 기자
들이 그 이전부터 전해내려 온 다양한 전승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전승들을 단순히 편
집하지 않고 이를 나름대로 소화하여 독특한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2.2 창세기 본문에서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첼렘/데무트)이라는 표현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하느님의 대리자 역할을 맡았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이 하느님의 대리자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피조물공동체에서 공생의 질서를 수립하는 청지기직의 역
할을 부여받았다는 뜻이다. 이것은 창세기 해당 문맥 전체로부터 드러난다는 것이다. 창세기
해당 문맥의 해석으로부터 드러나는 것은 크게 보아 다섯 가지다.

 첫째, 세상의 창조 과정에서 하느님은 먼저 각각의 생활공간(하늘, 땅, 바다)을 만들고 각
각의 생활공간에 들어가 살 생물들을 종류별(날짐승, 물짐승과 물고기, 뭍짐승 등)로 지었다
는 것이다. 생활공간과 생물종이 각각 1대1로 대응하여 생활공간으로 인한 갈등을 제거하였
다는 것이다. 다양한 생물들이 공생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필요조건이 마련되었다는 뜻
이다.

 둘째, 문제가 되는 것은 땅이다. 왜냐하면 땅에는 뭍짐승과 인간이 함께 거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활공간이 겹침으로써 뭍짐승과 인간 사이에 갈등이 잠재되었다.

 셋째, 바로 이 잠재적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하느님은 인간을 그의 대리자로 세웠다
는 것이다. 하늘과 바다와 땅에 사는 생물들을 다스리라(radah)는 명령은 결코 이 생물들에
대한 폭력적 지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공생의 질서를 수립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이
공생의 질서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수립되어야 한
다. 이 점은 특히 하느님의 형상론이 언급된 에집트 문헌들과 창세기 본문을 비교해 보면
잘 드러난다.

 넷째, 창세기 1장 29-30절의 채식주의적 식물규정(食物規定)은 생활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인간과 다른 피조물 사이의 살육이 엄격히 금지되었음을 말해준다.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폭력이 배제된 것이다. 인간에게는 피조물공동체의 공생관계를 존중하면서 노동을 통해 책
임 있게 살림을 꾸려나가도록 명령된다. 창세기 1장 28절의 "땅을 정복하라"(cabash
ha'arets)는 말씀은 결코 이 세상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허용한 것이 아니라 피조물공동체
의 공생관계를 고려하면서 문화를 형성하라고 분부한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다섯째, 안식은 피조물공동체가 지향하는 목표다. 피조물공동체에 정의와 평화가 수립되지
않고서는 안식이 이루어질 수 없다. 안식은 따라서 피조물공동체의 공생관계를 이룩하라는
하느님의 엄숙한 요청이다. 인간은 피조물공동체가 안식을 향해 나아가는 데 커다란 책임을
부여받았다. 왜냐하면 인간은 피조물공동체에서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정의와 평화를 수립하
여야 하기 때문이다.

2.3 이렇게 보면,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각각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뗄 수 없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하느님의 형상인 인간이 하느님
의 뜻을 받드는 청지기 역할을 저버리면 인간과 인간의 공존관계가 깨어지고 인간과 자연의
공생관계도 깨어진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폭력적 지배와 착취
는 언제나 함께 간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호세아서의 본문에 잘 묘사되었다.

3. 나는 성서의 이 말씀을 오늘의 현실에 여과 없이 적용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의 현실이 가혹하기 때문에 이 고난이 도대체 어디서 오
는가를 근본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다시 한번 성서의 통찰에 기대게 되는 것이다.

3.1 오늘 우리가 피부로 겪고 있는 고난은 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위기에 처한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관치금융을 청산하고 건전한 금융질서를 수립하여야
한다고 해서 국민은 엄청난 비용을 감당하면서 이를 뒷받침하였다. 그러나 고통을 분담하여
야 한다는 말은 크지만, 금융질서를 정상화하는 과정을 규율하는 데 국민의 참여가 봉쇄되
고, 금융정상화로 인해 거둘 수 있는 성과의 배분에 대한 토론도 없다. 경제회생을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해서 노동자들이 실업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지만, 정작 경
제위기에 큰 책임이 있는 거대기업들의 소유구조나 지배구조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 그들의
시장지배력은 도리어 더 커지고 있다.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
서 구조조정 = 고용조정이라는 등식이 통용되어 이제는 경제적 가치가 사회적 가치를 구축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아우성이 하늘에 사무친다. 구조조정이 고용조정을 가져올 수밖에 없
다면 노동자들과의 성실한 사전협의와 대책마련이 필수적일텐데 노동자들을 완전히 따돌리
는 일이 그치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의 지배세력은 경제의 지구화 시대에 시장근본주의에 바탕을 둔 경제질서를 새
로 짜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고 가르친다. 자본수익을 최대화하거나 극대화하는 것이 선이고,
이에 방해되는 것은 무조건 악이라는 교조가 힘을 얻고 있다. 절대화된 자본의 수익성에 의
해 인간과 자연이 철저하게 희생되는 시대가 왔다.
 시장근본주의는 오늘날 전세계에 파급되고 있다.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의 조화를 추
구하였던 선진국들에서도 시장근본주의는 점점 더 큰 힘을 얻고 있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
기면 만사가 올바르게 해결된다는 선전 앞에서 자원이 남굴되고 열대우림이 급속히 망가지
고 경제계와 생태계의 균형이 급속히 파괴되고 있다. 시장이 국경을 넘어서서 작동하고 있
는데, 시장에 대처하는 국가의 힘이 국경 안에 제한되기 때문에 이제는 시장의 실패를 만회
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이 끝나지 않았는가 하는 자탄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3.2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의 밑바닥에 시장근본주의가 도사리고 있음을 인식한다면,
교회는 그것에 대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시장근본주의가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본수익을 모든 것 위에 올려놓으려고 한다는 것을 폭로하는 것
이 중요하다. 그러나 교회는 여기서 더 나아가 시장근본주의를 넘어선 경제가 실제로 가능
하다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성서는 고난으로 가득찬 현실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공하지는 않지
만, 그 과정에서 데 반드시 고려하여야 할 초점들을 제시한다. 시장근본주의는 하느님과 인
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고 모든 관계
들을 자본의 지배 아래 종속시킨다. 성서는 현대 시장경제에서 나타나는 자본의 지배를 전
혀 알지 못하는 시대에 쓰여졌다. 그러나 성서는 위의 세 가지 관계들의 불가분리성을 말했
고, 이 관계들을 제대로 형성하는 것이 인간의 책임임을 밝혔다.

4. 인간이 이 책임을 인식한다면 자본의 지배에 대항해서 할 일은 참으로 많다. 시장과 시민
사회와 국가가 서로 협력하여 할 일을 개발하고 추진한다면, 우리의 미래가 반드시 어두운
것은 아니다. 여기서 가계와 기업 차원에서, 지역경제, 국민경제, 세계경제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을 열거할 수는 없다.
 한 가지만 강조해 둔다. 교회는 경제의 지구화로 인해 초래되는 문제들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데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교회는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문제의 초점을
가늠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하지만, 문제들을 지적하고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는 데 사회과학
의 도움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경제생활을 규율하는 규범들과 정책수단들을 모색하
기 위해 교회는 성서의 가르침과 사회과학적 현실분석을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작업
을 촉진하여야 할 것이고, 자신의 의견을 공론에 회부하여 사회적 의제들에 대한 토론을 활
성화하는 데 앞장을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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