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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25 (13:54) from 211.41.254.212' of 211.41.254.212' Article Number :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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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 시대의 민중신학을 위한 몇 가지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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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 시대의 민중신학을 위한 몇 가지 제언




강원돈


 나는 이 글에서 지구화의 도전에 직면해서 민중신학이 수행할 필요가 있는 몇 가지 과제들을 제시하고, 그 과제들에 대한 의견을 밝히려고 한다.

1. 민중신학의 재고 정리

 1990년대 초반 이래로 민중신학은 몇 가지 논의를 거치며 꾸준히 발전되어 왔다. 이 논의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크게 보아서 네 가지이다. 하나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민중신학의 성과에 대한 평가이다. 평가는 논자들의 처지와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졌고, 안병무나 서남동의 신학을 훈고학적으로 복원하려는 시도로부터 1세대 민중신학의 민중론과 2세대 민중신학의 계급론에 대한 유형 분석과 평가에 이르기까지 그 논의의 폭이 넓었다.
 또 하나는 비교적 젊은 신학도들에 의해 시도된 미시담론 중심의 민중신학을 구축하려는 노력이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한국 학계에 소개되기 시작한 프랑스 철학과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에 접한 신학도들은 민중신학 논의의 틀을 바꾸고 싶어했다. 비록 문화이론적 편향을 보이기는 했지만, 젊은 세대의 민중신학자들은 생활세계의 일상성을 분석하면서 해방의 동력을 포착하는 작업을 다양하게 진행했다. 이와 관련된 작업의 목록은 매우 길다.
 또 다른 하나는 민중운동이 쇠퇴하고 시민운동이 부상하는 듯한 상황에서 민중신학자들 가운데 일부가 기독교인들의 운동을 시민사회 차원에서 재조직하는 일을 신학적 관점에서 뒷받침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민중신학을 신학의 분과 차원에서 나름대로 심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이다. 조직신학과 기독교윤리학 분야에서 이러한 노력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민중신학을 한국신학으로 정립하기 위해 민중사상의 맥을 짚고자 하는 시도도 주목되고, 민중과 영성의 관계를 정치신학적 관점에서 규명하려는 작업도 눈에 띈다. 노동과 환경 문제를 중심으로 시장경제를 규율하는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최근에는 민중신학의 형이상학적 근거를 설정하고자 하는 새로운 노력도 나타났다.
 이렇게 보면, 민중신학이 1990년대 초반 이래로 긴 동면 상태에 들어갔다는 지적은 민중신학 진영 안에서 벌어진 논의의 치열성과 다양성을 간과한 평가라고 하겠다. 이제는 1990년대 초반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중신학 논의의 전개과정을 정리하고 냉정하게 평가할 때가 되었다. 민중신학의 재고 정리는 민중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2. 지구화의 인식을 둘러싼 진지한 고민

 지구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오늘의 상황은 민중 해방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신학자들에게 큰 도전이 되고 있다. 민중의 삶의 처지는 크게 악화되었고, 민중의 힘을 분산시키고 고립시키는 억압과 배제의 논리는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민중신학에 큰 도전이 되고 있으며 민중신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2.1 문제는 지구화 과정에 대한 인식이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다. 지구화를 제국의 형성 과정으로 파악하는 시각도 있고(네그리/하트),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로 규정하는 시도도 있다(매뉴엘 카스텔스). 지구화의 진행이 사회적 이해관계들을 조정하는 국가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국가를 자본의 지배기구로 전락시킨다는 견해가 유력하게 제시되는가 하면, 지구화 과정에서도 국가의 권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지구화의 진행이 문명간 충돌을 불러일으킨다는 분석도 있고(새뮤얼 헌팅턴), 지구화의 기술적 기반인 정보화가 문화간 이종결합과 대면을 촉진하여 문화의 개방성을 확대하기도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정체성 위기는 근본주의를 강화할 수도 있다고 지적되기도 한다. 지구화의 인식 유형들은 물론 여기서 끝나지 않는 긴 목록을 갖고 있다.
 지구화 과정의 인식과 분석은 인문사회과학의 큰 과제이며, 민중신학도 이 과제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민중 해방의 진로와 방법은 지구화에 대한 인식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이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지구화 과정을 제국의 형성 과정으로 인식한다면, 제국의 도래는 자본의 실질적 포섭과 외적 팽창이 완성에 도달하였음을 의미하고, 제국은 그 바깥에 어떤 장소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제국은 더 이상 제국주의 세력이 아니다. 제국은 제국주의 세력 바깥의 영역을 확보하고자 하는 식민지 민중의 해방 운동을 통해서 타도되지 않는다. 제국은 오직 제국의 내파(內破)를 통해서만 붕괴될 것이다. 제국은 그 내파를 피하기 위하여 제국의 신민들을 고립시키고 분산시키되 공고한 통합의 외관을 취할 것이고, 제국의 내파를 시도하는 민중은 통합의 외관에서 틈을 찾아내고 고립과 분산으로부터 단결과 연대로 나아가려는 대항운동을 조직하려고 할 것이다. 이 대항운동은 민중 연대에 터잡은 자율적인 꼬뮌의 결성으로 매듭지어진다. 제국의 내파는 국가주의의 틀에 갇히지 않는 자율적인 해방구의 네트워크를 가져올 것이다.  
 만일 지구화 과정을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로 규정한다면, 지구적 차원의 생산과 유통과 금융 네트워크 안에서 국가의 중요성은 더 커질 수 있다. 국가는 네트워크 사회에서 자본의 지배기구로서 구실을 하는 측면도 있지만, 생산성이 급격히 상승하는 조건들 아래서 시장이 포섭할 수 없는 퇴출 노동력을 공공 서비스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공공투자를 확대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소득재분배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중세 사회의 재도래를 피하려면 국민경제 차원에서 생산과 소비의 거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국가의 조절 기능은 강화될 것이다.
 위에서 본 지구화에 대한 인식의 두 패러다임은 민중운동의 전망과 관련하여 서로 다른 선택을 하도록 만든다. 하나는 민중운동을 제국과 국가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꼬뮌의 길로 이끌고, 또 다른 하나는 국가의 틀에서 여전히 계급타협의 가능성을 견지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 두 패러다임 가운데 어느 것이 지구화 과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이와 같은 질문은 지구화 과정의 다른 측면들에 대해서도 던질 수 있다.
 지구화가 매우 다양한 측면들을 가지고 있고, 지구화 과정이 경제, 정치, 문화 등 삶의  여러 측면들을 새로운 연관관계로 결합시키고 있기 때문에 지구화 과정에 대한 인식 패러다임은 경제, 정치, 문화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변화들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고, 이 변화들의 상호관계를 입체적으로 해독할 수 있을뿐더러 민중의 관점에서 지구화 과정을 통제할 수 있는 대안을 기획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패러다임을 찾는 일이 민중 해방에 기여하고자 하는 당대 학문의 과제이다.

 2.2 지구화 과정이 매우 다양하게 인식되고 있기는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구화가 기술의 눈부신 발달에 힘입어 자본주의를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컴퓨터와 인터넷 기술의 발전, 신소재 기술의 확산, 유전자 조작, 지구적 차원에서 실현된 생산, 유통, 소비의 네트워크 등은 자본주의의 강력한 힘을 웅변한다. 지적 소유권에 근거한 지식기반 경제의 발전은 이미 자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요구하고 있는 듯하며, 미래 경제에서 "유형자본"에 대한 "무형자본"의 우위를 약속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눈부시게 발전하는 자본주의는 그 이면에 약탈과 억압의 광기를 감추고 있다. 엄청난 몸집으로 부풀어 오른 화폐자본은 1990년대 말의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보듯이 국민경제들을 초토화할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으며, 국가의 전통적인 경제주권을 무력화하고 있다. 지구적 경쟁의 격화는 노동절약적 합리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린 생산의 지구적 네트워크 등을 통하여 노동을 압박하고, 북반구와 남반구의 어느 사회에서나 새로운 사회적 가난을 확산시키고 있다. 지적 소유권에 근거한 신경제는 정보 처리와 획득의 사회적 불평등을 확산시키고, 유전자 자원에 대한 약탈을 제도화한다. 자본주의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를 끊어버리고, 사람들을 경쟁관계로 몰아넣고, 서로 고립된 사람들을 개체성에 유폐시킨다. 사람들은 서로 고립 분산되어 있으면서도 멀티미디어의 이미지 조작으로 말미암아 통합된 사회 속에 살아가고 있는 듯한 착각 속에 빠져 산다. 사람들을 통합시키는 것은 이미지이고, 이미지는 현실을 속인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발전의 양지와 음지는 모두 자본의 축적과 팽창의 논리에서 비롯된다. 오늘의 세계에서 지구와 그 위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자본의 실질적 포섭과 팽창의 대상으로 완전히 포획된 것처럼 보인다. 자본의 축적과 팽창의 논리는 암세포의 증식논리와 닮아서 자본의 숙주인 인간과 자연을 죽이고 무덤 속에 파묻어 버리고 있는 것 같다.

 2.3 민중신학은 자본의 실질적 포섭과 팽창에서 비롯되는 무서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만일 민중신학이 인간과 자연의 생명공동체를 창조하고 유지하고 완성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기독교인들의 실천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자 한다면, 자본의 팽창과 축적의 논리에서 비롯되는 현실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일을 회피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현실 인식과 대안 모색 과정에서 민중신학이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재검토하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은 자본의 축적과 팽창의 논리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하나의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잉여가치의 원천이 인간의 노동에서 기술로, 그리고 지식기반 경제에서는 "지식"으로 옮겨져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이 더 이상 현실에 대한 설명 능력을 갖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자본주의적 경쟁에서 기술 독점과 지식 독점이 초과 이윤 능력을 가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기에 일리가 있으나, 시장경제의 심층에 있는 잉여가치 추출 메커니즘의 끈질김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본의 실질적 포섭과 팽창의 논리가 경제, 정치, 문화 등의 차원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인식한다면, 위의 2.1에서 언급한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인식 패러다임을 정교하게 가다듬을 수 있을 것이다. 시장경제가 존속하는 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은 여전히 비판적 현실 인식과 실천적 대안 모색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3. 민중 주체성 테제의 재평가

 민중신학은 "민중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민중이 경제, 정치, 문화 등 삶의 여러 차원들에서 주체의 구실을 하는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가다듬어 왔다. 그러한 공동체에서 민중은 경제, 정치, 문화 등 삶의 여러 영역들에 참여하여 결정을 내리고, 삶의 여러 관계들에서 정의와 평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민중 주체성과 관련하여 민중신학은 이제까지 세 가지 패러다임들을 제시했다. 첫째 패러다임은 민중의 사회전기 패러다임이다. 이 패러다임은 민족지적 접근(ethnographical approach)을 방법론적으로 전제했다. 민중이 지배와 수탈과 배제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민중의 주체성을 상상하기조차 어렵던 시절에 지식인의 선입견과 편견을 깨고 민중의 주체성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이 패러다임의 성과이다.
 둘째 패러다임은 계급론적 접근에 근거를 두었다. 민중은 일종의 계급동맹체로서 한국 사회에서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이끌어가는 운동의 주체로 인식되었다. 이 패러다임은 민중 해방을 위해 헌신하는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계급의 문제를 중시하게 하였고, 사회과학적 현실분석과 신학적 성찰을 서로 매개하는 방법론적 실험을 하게 했다.
 셋째 패러다임은 시민운동의 영향 아래서 운동의 탈중심성과 분산성을 인정하되 다양한 운동들의 그물망을 구축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그물망에서 환경운동, 여성운동, 문화운동, 정치운동, 교회개혁운동 등은 각각의 고유한 과제들을 수행하면서도 서로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들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각각의 패러다임은 적지 않은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우선, 민족지적 접근은 민중 현실을 인류학자의 관찰 대상인 것처럼 설정한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민중 현실의 인식에는 적절하지 않다. 민중 현실이 한 사회를 이루는 관계들의 총체로서 나타난다면, 민족지적 접근은 이 현실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을 대신하지 못한다. 그 다음, 계급론적 접근은 민중 현실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의 요구를 충족시키려는 시도이긴 하지만, 여성운동, 문화운동, 정치운동, 교회개혁운동 등의 상대적 자율성을 인정하는 데 인색했고, 이 운동들을 전체운동의 부문운동으로 규정하는 데 그쳤다. 끝으로, 탈중심성과 분산성을 기조로 하는 네트워크 운동은 다양한 운동들의 수평적 연대를 강조하고 있지만, 시장원리로 짜여진 현실의 모순 구조를 인식하는 데 모호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
 지구화 과정에서 민중의 주체성을 실현하려는 실천의 패러다임은 위에서 살펴본 패러다임들에 대한 검토를 통해 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른 내용과 형식을 취해야 할 것 같다. 지구화 시대에 민중해방운동은 다양한 운동들의 네트워크 형태를 취할 것이다. 그러나 그 네트워크는 지구화 과정을 꿰뚫고 있는 노동과 자본의 모순, 그리고 이 모순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표현형태들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할 것이며, 이 모순을 해결하는 가운데 경제, 정치, 문화 등을 새롭게 형성할 수 있는 정교한 전망을 제시하여야 한다. 성차별, 인종차별, 세대차별을 계급 차별과 별도로 다루는 입장은 결실을 맺을 수 없지만, 이러한 문화적 문제들을 계급 문제로 환원하는 태도는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운동 노선을 정립할 수 없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민중 문제가 경제, 정치, 문화 차원에서 매우 다양한 외관을 취하겠지만 민중이 자본의 실질적 포섭과 팽창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한 민중의 주체성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이러한 대상의 처지를 극복하고 자본에 대한 주인의 지위를 확보할 때 민중은 역사와 사회와 생명의 주체로 굳게 설 것이다.

4. 민주노동당의 의회 진출의 의미

 오늘의 민중해방운동에서 획기적 전기는 민중의 정치세력화가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지난 4·15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지역구 위원과 비례대표 의원을 합쳐서 10인의 의원을 의회에 진출시킨 것은 한국 민중해방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 정치는 이제야 비로소 정책 노선을 둘러싸고 이념적 차별화의 길을 걷게 되었고, 민주노동당은 민중해방을 뒷받침하는 정책을 구현하기 위한 법제화 투쟁의 길로 나서게 되었다.
 민주노동당은 매우 주목할 만한 조직노선을 취하고 있다. 의회에서 민중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기구(의원)를 민중 통제 아래 두려고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의원들이 당직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는 조직원리는 의원이 민중의 이해관계로부터 독립하여 당에서 자기들만의 권력을 형성하지 않도록 방지하고 있다. 아래로부터 위로 의사결정을 촉진하는 매체로서 당직을 설정하려는 민주노동당의 입장은 민중의 이해관계를 실현하고자 하는 당의 활동이 생활세계에서 나타나는 민중의 의견들을 정치화하여 당 강령과 당의 실천 전략을 명시하고 의회 안팎에서 정치 역량을 조직하는 데 크게 공헌할 수 있다. 의회 내 권력관계를 고려한 타협과 투쟁은 민주노동당의 의회 전술이기 때문에 귀추를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민주노동당이 이러한 의회 전술의 민중 통제를 실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한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실험이 될 것이다.
 만일 당이 민중의 이해관계를 정치화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가장 정교하고 가장 책임 있는 조직 형태임을 인정한다면, 한국의 민중해방운동은 이제 비로소 정치 투쟁의 교두보를 실질적으로 창설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까지 자본과 국가의 권력을 감시하는 일은 시민단체들의 과제였다. 국가와 자본에 대한 시민 통제는 시민운동이 표방하는 시민의 일반적 이해관계의 실현이라는 모호한 목표 때문에 민중의 계급적 이해관계로부터 거리를 취하기 일쑤였다. 예를 들면, 참여연대가 추진했던 정치개혁 운동은 시민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치인의 자질이나 정당의 부패 기득권 구조 척결에 집중되었을 뿐 민중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판의 조성과는 거리가 있었고, 기업 감시활동은 실정법과 주주자본주의 원칙에 충실할 뿐 노동의 경영 감독을 보장하는 이해당사자 참여의 경제민주주의적 요구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참으로 많은 사회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의제들의 처리 과정을 검토하면서 신중하게 할 말이기는 하지만, 국가와 자본에 대한 시민 통제를 민중 통제로 전환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과제였고, 이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을 통하여 조금씩 열리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경제에서 민중해방운동의 핵은 노동자 운동이고, 노동자 운동의 정수는 노동자 당의 결성과 의회 진출, 그리고 민중해방 역량의 광범위한 조직이다. 노동자 운동은 농민, 도시서민, 여성, 실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미취업자, 노인, 어린이, 시장논리에 포섭된 피교육자 등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포섭하면서 이들의 이해관계를 실현하는 일이 시민사회 전체의 이익을 구현하는 길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예컨대, 민주노총이 임금단체 협약에 나서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의 철폐를 위해 투쟁하고, 기업 이윤의 일부를 사회기금으로 출연하게 하여 사회적 약자들을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노동자 운동의 시민사회적 정당성을 강화하는데 이바지 할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 운동이 시민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면, 노동자 운동은 산별노조를 결성하고 산별 노사교섭을 실현하는 데 시민사회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노사정위원회에서 민중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데 시민사회의 옹호를 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민주노동당이 이와 같은 노동자 운동의 요구와 이에 대응하는 시민사회의 지원을 법제화하는 데 성공한다면, 우리나라의 민중해방운동은 새로운 궤도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민중신학이 민주노동당의 의회 진출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을 천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5. 여론 작업

 민중신학이 앞으로 중시해야 할 과제는 여론 작업이다. 민중신학의 여론 작업은 두 가지 영역을 갖는다. 하나는 교회 안에서 민중신학의 주장을 강화하는 것이다. 민중신학자들은 말씀과 성례전을 통하여 민중신학이 하려는 일을 분명히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물적 자원과 인적 자원의 보고이고, 평신도는 교회의 중추이다. 그들은 교회와 세계를 잇는 가교이고, 말씀과 성례전의 세계 내 현존을 보증하는 살아 있는 힘이다. 민중신학은 이 힘을 강화하기 위해 민중신학의 전망을 선전하고, 그 힘이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평신도를 선동해야 한다. 민중신학의 영적 능력은 평신도를 움직이는 교역자의 촉매적 능력을 통해 실증될 것이다.
 또 하나는 민중신학이 세상에서의 교회의 증언과 봉사를 명료한 언어로 밝히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계와 우주 만물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고, 이 고백에 근거하여 세상을 보존하고 갱신하고 완성하는 하나님의 일을 증언하고 그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여 세상을 섬기는 일을 하기 위해 오늘 여기에 있다. 교회는 세상이 하나님 나라와 그 의에 투명하도록 하는 일에 전념하여야 한다. 그것은 세상의 단순한 부정이나 단순한 긍정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보존하고 완성하려는 하나님의 힘겨운 노역의 찬양일 것이다.
 세상에서의 교회의 증언과 봉사에 관련하여 나는 민중신학의 위상과 그에 걸맞는 작업 방식을 조금 명료하게 규정하고 싶다. 민중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과 우주의 주로 고백하는 지식인들, 특히 신학자들의 운동이다. 그 운동의 최고 형태는 민중신학자들이 중심이 되어서 꾸리는 포럼이다. 이 포럼은 생활세계와 그 하부구조들, 곧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관계 등에서 그때그때 나타나는 의제들과 문제들에 대하여 민중신학의 명료한 입장을 천명하기 위해 움직인다. 이 입장 천명은 급히 작성되는 성명서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지만, 분화된 의견을 신중하게 수렴하여 책임 있게 작성되는 백서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이 백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문제들이 분석되고,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기존의 방책들이 평가되고, 새로운 해결 원칙들이 모색되고, 이 새로운 원칙들의 신학적 근거들이 제시되고, 문제 해결의 구체적인 방안들이 정책 제안의 형태로 천명될 수 있어야 한다. 문제 분석과 해결 원칙의 제시, 원칙의 신학적 근거의 해명, 실현 가능한 해결책의 구체적 제안은 각기 다른 차원의 작업을 전제하기 때문에 신학의 여러 분과들의 분업과 협력이 필요하고, 신학과 사회과학, 인문과학, 자연과학, 심지어 기술공학 사이의 입체적인 학제간 대화가 필요할 것이다.
 나는 민중신학자들과 평신도 지식인들 사이의 협력이 활성화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 민중신학은 민중주의와 신학주의의 딜레마를 경계하여야 한다. 우선, 민중주의는 민중만이 민중을 알 수 있다는 신화의 형태를 취하며, 그것은 민중을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로서 인식하고자 하는, 역사와 분석의 통일체이고자 하는 바로 그 사회과학을 무력화시킨다. 신화는 특권의 잠재의식이거나 특권의 온상이고, 그 온상에서는 열린 대화가 불가능하다. 그 다음, 신학주의는 신학자들의 두뇌 속에 세계를 가두고 신학의 언어로 세상을 모두 설명하려는 만용으로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신학이 세상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신학을 만들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예컨대, 노동은 신학이 창조되기 이전에 세상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의 인간학적 사실로서 주어져 있었다. 신학은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자연은 이미 거기 있지만 신학은 그 자연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해석하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행위를 나름대로 규율하고자 할 뿐이다. 신학주의는 오직 신학이 사실에 대한 한 해석이고 그 해석이 역사적 맥락을 갖는다는 점을 인식함으로써만 만물의 신학적 이름을 부여하려는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민중신학은 민중해방운동에서 신학자들이 하는 일을 평신도 지식인들이 수행하는 일과 결합하고자 하며, 포럼의 형태로 신학자들과 평신도 지식인들의 학제간, 다학문간 대화와 협력의 틀을 구축하고자 한다.

6. 결론

 나는 오늘 민중신학이 수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과제들을 몇 가지 제안하고, 그에 대한 견해들을 밝혔다. 이 과제들의 설정은 잠정적이고 실험적이다. 나는 민중신학자들이 중심이 되어서 꾸리는 민중신학 포럼에서 과제들의 설정이 토론되고 그 해결 방안이 모색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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