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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2 (10:24) from 211.41.211.71' of 211.41.211.71' Article Number :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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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와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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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와 종교


머리말

 지구화는 정보화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을 흥분과 환호로 이끌어온 낱말이다. 빛의 속도로 정보를 소통시키는 기술의 진보에 힘입어 오늘의 세계는 다양한 네트워크들의 결합체로 움직이는 데 별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정보 기술의 혁명적 진전은 각기 다른 문화들이 서로 접촉하고 융합하는 과정을 촉진하여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풍부하게 문화 다원주의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구화는 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좌절과 우려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지구화는 세계 곳곳에서 사회의 양극화를 가져왔고, 문화간 접촉과 이종결합은 사람들에게 정체성 위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지구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불안의 정조에 휩싸이고 있다.
 지구화는 종교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이 글에서 나는 특히 기독교에 관심을 두고서 지구화가 종교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지구화 과정에 대해 종교가 취해야 할 몇 가지 입장을 생각해 보려고 한다.

지구화가 종교에 미치는 영향들

 지구화는 종교에 여러 가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문화간 접촉과 이종결합이 촉진되는 지구화 과정에서 종교는 한편으로는 문화 다원주의의 도전을 받게 되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간 접촉과 소통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우선, 종교에 대한 다원주의의 도전에 대해 생각해 보자. 종교와 문화의 관계를 생각할 때, 사람들은 대체로 종교가 장구한 세월에 걸쳐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 왔다. 종교를 문화의 알짬이라고 하고, 문화를 종교의 외피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를 염두에 둔 것이리라. 기독교 문명, 이슬람 문명, 불교 문명, 힌두교 문명 등은 하나도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여져 온 용어들이다. 그러나 문화 변동의 폭과 속도가 매우 빨라진 오늘날에는 사정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예를 들면, 기독교 문명으로 알려진 유럽에는 이슬람, 선(禪)불교 등 다양한 종교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고, 기독교 문명의 언어는 다른 세속 문화들과 이데올로기들의 언어들에 자리를 내어 주거나 그 언어들과 경합하고 있다. 한 마디로 유럽의 기독교 문명은 종교 다원주의와 문화 다원주의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고, 지구화 과정에서 이러한 도전은 더욱 거세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의 기독교 문명이 자기다움을 유지하면서 다른 종교들과 문화들의 낯설음을 소화할 수 있을까? 아니, 이질적인 요소들의 다양한 조합과 결합으로 이루어진 현대 유럽의 변화무쌍한 문화 지형에서 기독교가 사회문화적 통합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지구화 과정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해온 시장주의나 화폐주의가 약자에 대한 배려와 사회적 연대를 강조해온 기독교의 가치관을 생활세계에서 내어몰고 있음을 생각해 볼 때, 기독교가 사회통합의 능력을 유지하면서 자기다움을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 다음, 지구화 과정이 종교간 접촉과 소통의 기회를 증가시키는 경향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종교간 갈등과 충돌을 부추기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지구화는 이제까지 흩어져 있던 지역들과 사람들을 지구적 차원에서 서로 결합시키고 위계 구조를 형성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 안에는 수많은 갈등과 충돌의 여지를 갖고 있다. 지구화 과정은 이론적으로는 탈중심적인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금융주도적으로 추진된 경제의 지구화 과정을 기본 축으로 삼고 있고, 이 금융주도적 지구화의 중심에 미국의 경제 패권과 군사정치적 패권이 있다는 것은 부인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구 곳곳에는 미국의 이익을 실현하는 방법을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이 일어난다. 중동의 원유를 둘러싼 갈등이 대표적이다. 이 갈등은 그 본질이 정치군사적이고, 경제적인 것이지만, (근본주의적) 기독교와 (근본주의적) 이슬람의 종교적 충돌이라는 외양을 띠기도 한다. 이러한 갈등 상황에서 종교들 간의 관계가 상호 이해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고, 도리어 대립과 반목 관계를 고착시킨다면 그 결과는 매우 참혹할 것이다. 미국에 대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이 이슬람 종교의 언어에 의해 정당화되고, 미국이 선포한 반테러 전쟁의 명분이 선악이분의 기독교적-근본주의적 화법으로 표현되는 것을 보면서, 종교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끝으로, 지구화가 세계 곳곳에 가져온 사회적 양극화와 문화적 정체성 위기는 많은 경우 근본주의적 성향의 종교들을 발흥시킨다. 근본주의는 사회문화적 환경의 급격한 변동에 불안을 느끼게 된 사람들이 불안을 극복하고 안정감을 찾고자 하는 데서 강력한 발전의 동력을 찾는다. 불안에 처한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는 반석(fundamentals)을 찾아 나서게 되고, 근본주의는 전통적인 교리들을 재해석하여 이러한 반석들을 제공한다. 이 반석들은 진리의 기반이 되는 것이기에 무조건적 긍정과 수용의 대상이 될 뿐, 이에 대한 반문이나 의심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근본주의는 미국의 경우에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 생활세계의 위기와 불안에 처한 사람들에게 신앙의 확신을 제공하고 전통 질서의 복원을 위한 열망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 말 이래로 근본주의가 제2의 전성기에 이르렀는데, 이 때 근본주의는 미국이 도덕적 타락과 페미니즘의 대두, 좌파 사상의 확산으로 인해 위기에 처하였으며 이와 같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신성한 질서를 중심으로 미국 사회를 종교적, 도덕적으로 재건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람들이 개별적 행위 주체로 독립하여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단하고 책임을 지는 현대 문화에서는 종교가 약화되고 근본주의가 발을 붙이지 못할 것으로 생각되곤 하였지만, 바로 이 현대 문화가 근본주의의 온상이 된다고 하는 것은 흥미진진하다. 현대인은 현대 문화에서 고립감과 단절감을 느끼며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는 일에 중압감을 느끼며 자신의 현재 실존과 미래에 대해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인은 자기에게 맡겨진 자유를 포기하고 도리어 권위에 맹종함으로써 안정감을 느낀다. 이것이 현대 사회에서 근본주의가 폭넓은 지지 세력을 얻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까닭이다.
 지구화가 빠르게, 거칠게 진행되는 오늘의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은 “20대 80의 사회”에서 겪는 좌절과 분노, 현재의 삶의 불안정성과 미래의 삶의 불확실성, 너무나도 빠르게 변하고 바뀌는 생활세계의 하부구조들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통합되지 못하는 삶의 어색함과 낯설음으로 인해 힘들게 살아간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확신과 위로, 공동체적 귀속감과 편안함을 제공하는 종교는 많은 고객을 확보할 것이며, 그러한 종교는 근본주의적 확신으로 무장을 하고 오순절 운동의 공동체성을 구현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사실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부흥하는 기독교 종교들은 이러한 유형의 기독교이다.

지구화 시대의 참 종교성

 우리는 어떤 종교를 갖고 있든지 간에 우리의 종교성이 참되게 발현되기를 바란다. 아마 참 종교성은 각각의 종교가 자신의 본무에 충실하면서 살아 있는 만물의 연관을 좀 더 풍부하게 할 때 구현되는 것이 아니가 한다. 그것은 종교가 관계의 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구화 과정이 종교에 영향을 미치는 바로 그 대목에서 종교가 지구화 과정을 향해 몇 마디 해 둘 것이 있다고 본다.

 우선, 지구화가 종교간 갈등과 반목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종교간 갈등과 반목이 원인이 되어서 종족간, 부족간, 인종간, 지역간, 국가간 갈등과 전쟁이 일어난다는 식으로 설명하는데, 오히려 정반대로 말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이다. 종족간, 부족간, 인종간, 지역간, 국가간 분쟁의 소지가 있고 그 분쟁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할 때 종교가 도구로 동원되어 불구대천의 의식을 강화시킨다고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종교 지도자들이 세속 지도자들과 더불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종교를 어떤 경우에도 증오와 전쟁의 도구로 동원하지 못하도록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간 충돌의 불가피성과 숙명성을 강조하고, 특히 이슬람과 기독교는 유일신 사상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둘의 화해와 공존은 장기적으로 불가능한 것처럼 주장하는데, 오늘의 종교는 이렇게 종교를 끌어들여 전쟁 담론을 만들어 내는 일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평화능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둘째, 이를 위해 종교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해석학적 원칙이 있다. 종교는 종교 다원주의와 문화 다원주의의 도전에 답하면서 자기 바깥의 남이 자신과 전적으로 다른 것일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 전적으로 다름을 대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타자 안에서 자기를 인식하고자 하는 해석학적 자기이해의 자기중심성을 벗어던지고 나 자신과 전적으로 다른 것의 그 다름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를 문제로 삼는 해석학적 발상의 일대전환을 요구한다. 나는 종교가 이러한 해석학의 경지에 서야만 자신의 자기다움을 살리고 타종교의 진리를 향해 자신을 개방하는 겸손함을 보일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셋째, 종교는 지구화의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언어를 제시하여야 한다. 오늘의 지구화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고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실업의 구렁텅이에 빠지거나 비정규직 노동에 종사하면서 새로운 가난의 굴레에 묶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는 미래의 불확실성과 현재의 불안정한 삶에 좌절하고 불안에 휩싸인 사람들에게 단순히 종교적 확신과 위로의 말을 던지고 종교 게토 안에서 공동체적 교류를 향유하라고 권유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런 일에 안주하면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비판을 계속 들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종교는 오늘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불확실성과 불안의 정체를 드러내고, 금융주도적 지구화가 자본의 지대적 수익을 무한정 추구함으로써 가져온 반인간적이고, 반사회적이고, 반생태학적인 현실을 남김없이 드러내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일에 나서야 할 것이다.
 종교가 관계의 한 이름이라면, 종교는 현실관계들이 경제의 지구화 과정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고 단절되었음을 지적하고 인류가 도달한 물질적, 정신적, 감성적, 미학적 능력을 감안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관계에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거룩한 것과의 관계를 또릿또릿하게 밝히는 언어를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맺음말

 끝으로 나는 우리 시대의 종교가 몸과 몸의 만남이 갖는 의미를 부각시키고 이에 근거한 종교문화를 창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구화는 기본적으로 정보와 이미지의 전달에 바탕을 둔 네트워크 사회의 형성과 팽창을 가져왔는데, 네트워크 사회에서 물질과 몸은 기호화될 뿐, 물질과 몸의 생생한 경험은 사라지고 만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거울 방 같은 “스펙터클 사회”에서 이미지에 속아서 현실로부터 소외되고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종교가 관계의 한 이름으로 추구하는 영성은 물질과 몸의 기호에 근거한 것일 수는 없다.
 우리 시대의 종교는 생생한 물질과 몸의 경험에 근거한 연대와 나눔의 영을 추구하고, 몇 가지 예를 든다면, 두레나 골목 품앗이, 계, 지역화폐, 도농간 유기농 직거래 등 구체적인 연대와 나눔의 실천을 통해 영성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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