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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1 (01:06) from 203.247.208.101' of 203.247.208.101' Article Number :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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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주의적 축적체제에서 노동사회의 위기에 대한 기독교윤리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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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주의적 축적체제에서 노동사회의 위기에 대한 기독교윤리적 연구

강원돈

I. 머리말

 노동사회는 한 마디로 임금노동을 본위로 하는 사회이다. 노동사회에서 노동은 직업상의 지위를 통해 수행되는 영리노동으로 좁게 규정된다. 노동사회는 인간의 노동이 임금노동으로 축소되는 역사적 과정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임금노동이 성립한 시장경제의 역사적 조건들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는 개념이다. 본 연구에서 노동사회는 시장경제의 역사적 조건들 아래서 영리노동을 본위로 하여 조직되고 운영되는 사회로 규정된다. 노동사회는 자본의 노동 포섭과 자본에 대한 노동의 의존을 매개로 해서 자본의 축적조건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도록 짜여진 노동의 역사적 조직형태이다.
 흔히들 노동사회는 역사적으로 세 단계를 거쳐서 발전하였다고 한다. 자유주의적 노동사회, 케인즈주의적 노동사회, 신자유주의적 노동사회가 그것이다. 각 단계의 노동사회에서 노동과 자본의 관계는 서로 다른 성격을 띠었으며, 마이클 부라보이는 이를 노동에 대한 자본의 전제적 지배, 자본과 노동의 헤게모니 체제, 노동에 대한 자본의 헤게모니적 전제로 성격화한 바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둘째 단계의 노동사회, 곧 케인즈주의적 노동사회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케인즈주의적 노동사회는 포드주의적 축적체제를 기반으로 하여 발전하였다. 그것은 한편으로 자유주의적 단계의 노동사회의 문제들을 나름대로 해결하면서 복지국가적 노동사회의 특성을 보여주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의 내적 모순들로 인해 신자유주의적 노동사회로 이행하도록 강제되는 운명에 처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둘째 단계의 노동사회를 분석하면,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개입주의적 대안이 갖는 의의와 한계를 인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과정에서 노동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의 역사적 뿌리를 명료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포드주의적 축적체제는 주로 미국과 유럽에서 발전하여 우리나라의 자본주의와 여러 면에서 두드러진 차이를 보였던 것도 사실이지만,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의 형성과 해체 과정에서 노동사회가 안고 있었던 문제들을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경제의 지구화 조건 아래서 우리의 노동사회가 겪는 문제들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해법을 모색하는 데 미약한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서 필자는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에서 노동사회가 발전하고 동요하는 과정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거기서 인식되는 노동사회의 문제들을 기독교윤리적 관점에서 성찰하고자 한다. 서술의 편의를 위해서 필자는 우선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의 특성과 이 체제의 주요 축을 이루었던 단체교섭 제도와 경영자 지배구조의 문제를 파악하고(II장), 그 다음 포드주의적 축적체제가 어떤 요인들에 의해 해체되었는가를 분석한다(III장). 끝으로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에서 노동사회가 안고 있었던 문제들을 기독교윤리적 관점에서 평가한다(V장).

II.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의 특성과 노동 문제

 포드주의적 축적체제는 1930년대에 미국에서 실험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유럽의 주요 선진국들에서 실천되었다. 포드주의적 축적체제가 보여준 두드러진 특징은 고도 성장과 장기간의 안정성이었다. 케인즈주의를 받아들여 시장경제를 운영한 나라들은 1960년대 중반까지 거의 예외 없이 높은 성장률을 보였으며, 노사관계는 대립적이기보다는 협력적이었고, 노사타협주의에 근거한 고도성장은 장기적으로 유지되었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매우 흥미진진한 현상이었기에 이를 설명하기 위해 매우 다양한 논의들이 전개된 바 있다.
 조절이론가들 가운데 미셸 아글리에타는 케인즈주의를 수용한 시장경제가 이와 같은 안정된 축적체제를 구축할 수 있게 한 요인들이 노사간 타협을 제도화한 “단체교섭”, “경영자 지배구조”, “은행 중심의 관리된 금융 시스템”에 있다고 보고, 이 조절양식들이 서로 결합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국민적 임금본위체제”라는 포드주의적 축적체제를 완성하였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러한 포드주의적 축적체제가 전형적으로 자리를 잡은 나라는 미국이었으며, 서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마셜 플랜이 시행되면서 곧 미국의 뒤를 따랐다는 것이다.
 아래서 필자는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의 개요를 그린 뒤에 이 축적체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단체교섭 제도와 경영자 지배구조의 문제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 둘을 제대로 분석하면,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에서 나타난 노동 문제들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1.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의 개요

 다소 도식적이기는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포드주의적 축적체제는 브레튼우즈 체제 아래서 구축된 은행 중심의 관리된 금융체제의 틀에서 경영자 자본주의와 단체교섭 제도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본시 브레튼우즈 체제는 세계 경제에서 달러 헤게모니를 보장하는 가운데 세계경제로부터 국민경제를 어느 정도 격리시키는 것을 골자로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브레튼우즈 협정의 핵심기구들, 곧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관세와 무역에 대한 일반협정(GATT)이 작동하면서 미국의 달러는 세계의 기축통화로 자리 잡았고, 각 나라의 통화는 미국 달러에 연계된 고정환율에 따라 거래되었다. 그것은 미국의 달러 가치가 안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이를 위해 미국이 추진한 정책은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우선, 미국은 대외 결제 차원에서 금태환본위제를 운영했다. 무역으로 인해 미국에서 유출되는 달러는 화폐 발행으로 메울 수 없기 때문에(그렇게 하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달러 가치가 떨아진다), 미국은 국채를 발행하여 유출된 달러를 환수하고 그 지급을 보증하기 위해 달러와 금을 연동시킨 것이다. 그 다음, 미국은 대내적으로 독과점 은행들 간의 경쟁을 억제하여 이자율을 낮추는 정책을 강화했다. 그것은 이미 1933년에 제정된 글래스-스티걸 법에 근거한 금융 규제를 강화하는 것을 의미했다. 글래스-스티걸 법은 상업은행의 예금에 대한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지급 보증을 통해 신용제도의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융합을 억제하고, 은행의 대부, 증권, 보험 업무의 겸업을 금지하여 은행 권력의 비대화를 강력하게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 법안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관리된 금융 체제”는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더욱 강화된 형태로 작동할 수 있었다.
 은행 중심의 관리된 금융 체제는 무엇보다도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관계에서 산업자본의 우위를 제도화하는 데 공헌했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분리되고, 과독점 은행간 경쟁으로 인해 저금리가 지속되자 산업자본은 금융자본에 대해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에 의지해서 수익을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미국의 대기업 경영자들은 금융자본에 대해 상대적 자율성을 누리면서 경영 전략을 세울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상대적 자율성을 나타내는 제도가 소유와 경영의 분리이다. 경영자들은 주식을 발행하여 얻은 종자자본과 은행으로부터 차입한 운영자본의 대리인으로서 경영전권을 행사하여 기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들은 저금리로 인한 자본 비용 감소와 주식 배당 억제를 통해 방대한 기업저축을 축적하여 이를 재투자하고, 노동자들에게는 높은 수준의 임금과 기업 복지를 제공할 수 있었다.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에 힘입어 생산성 향상과 임금 상승을 동시에 달성할 능력을 갖춘 경영자 지배구조는 협조적인 노사관계에 의해 더욱 안정될 수 있었으며, 이와 같은 노동과 자본의 계급타협은 단체교섭 제도와 케인즈주의적인 복지국가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이러한 여러 조절양식들이 서로 맞물려 작용하면서 포드주의적 축적체제는 국민적 임금본위 체제로서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에 의한 대량생산과 단체교섭 제도 및 국가의 사회복지 정책에 의해 뒷받침된 대량소비를 서로 결합시킬 수 있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장기간에 걸쳐 시장경제의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2. 단체교섭 제도

 아래서는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에서 한 축을 이루었던 단체교섭 제도가 어떤 성격과 기능을 가졌는가를 상세하게 살피고, 그 한계를 파악하고자 한다.

1) 단체교섭 제도의 성격과 기능

 미국에서 단체교섭 제도는 1930년대에 확립되었다. 그것은 노동자 운동의 힘과 뉴딜 정책이 서로 결합되면서 만들어진 산물이었다. 1930년대에 들어와 미국에서 산별 단체교섭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거대 장치산업이 발전하면서 노동자들은 공장에 대규모로 집중되었고, 공장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서로 단결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사업장 노동조합을 거점으로 산별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위해 투쟁하였으며, 1935년에 산업별 조합조직위원회(Commitee for Industrial Organization: CIO)를 결성했다.
 1937년의 와그너 법은 노동자들의 막강한 힘을 인정하고 이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법안이었다. 그것은 단체교섭 제도를 뉴딜 정책의 구성 요소로 제도화하려는 연방 정부의 의사에 부합하는 법이기도 했다. 미국의 노동자 계급은 와그너 법이 허용한 클로즈드 숍 제도에 힘입어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더욱 더 강화된 조직력을 갖출 수 있었다.
 문제는 전시 호황이 끝나면서 즉각 불거졌다. 전후 침체기에 임금삭감 문제가 대두하자 노동조합은 이에 맞서서 강력한 파업을 전개했고, 자본의 축적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 위기에 직면한 자본과 국가는 안정된 축적 기반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권력이 정치화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으며, 노동자들의 탈정치화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무기로 선택된 것은 파시스트 정권이 애용했던 반공주의였다. 이렇게 노동자 계급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던 1947년 와그너 법은 태프트-하틀리 법으로 대체되었다.
 태프트-하틀리 법은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약화시키고, 단체행동권을 제한하고, 노동운동의 비정치화를 실현할 목표로 제정되었기에 여러 독소 조항들을 갖고 있었다. 노동조합 운동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이바지한 클로즈드 숍은 불법화되었고, ‘국민의 건강과 안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파업에 대하여 80일간의 노동쟁의 조정 기간을 갖도록 법원의 명령을 요구할 수 있는 비상조치권이 대통령에게 부여되었고, 공무원의 파업이 금지되었고, 연방선거 후보에 대한 노조의 정치 헌금이 금지되었고, 노조 간부에게는 공산당원이 아니라는 선서를 할 것을 요구하였으며, 비공식 파업과 보이콧은 전면 불법화되었다. 요컨대 태프트-하트리 법은 노동조합 운동을 경제주의에 묶고 체제 안으로 포섭하기 위해 고안된 법안이었다.
 산별 노동조합 운동이 경제주의의 틀에 묶임으로써 자본의 노동 포섭이 제도적으로 강고해지자, 단체교섭은 노동과 자본의 갈등을 임금인상에 집중시키는 역할을 했다. 임금을 생산성 향상에 연동시키는 것은 단체교섭의 주요 원칙이 되었다. 기업은 기본급 이외에도 사회보험 기여금을 분담하고 각종 수당을 신설하는 등 간접임금을 증가시키는 데 기꺼이 합의했다. 국가는 사회정책과 복지정책을 확충하여 노동력의 재생을 지원하였다. 케인즈가 제시한 유효수요 이론을 받아들인 기업과 국가는 노동자들의 임금증가가 대량소비로 이어지고 그것이 대량생산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데 의문을 품을 필요가 없었다. 임금상승은 노동자들을 대량생산 체제 안에 통합시키는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전례 없는 욕망 충족에 도취할 수 있게 했다.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에서 단체교섭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서로 결합하고 조절하는 장치였고, 국가는 이 장치의 원활한 가동을 뒷받침하는 기구가 되었다.
 
2) 단체교섭 제도와 이중노동시장

 포드주의 축적체제가 장기간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단체교섭의 틀에서 자본과 노동이 계급적 타협을 하면서도 자본의 수익성이 보장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그러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거대한 장치산업에서 투자의 한계생산성은 매우 적었으며 자본의 수익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의 기술적 한계이다. 실제로 이러한 현상은 1960년대에 미국뿐만 아니라 포드주의적 축적체제를 받아들인 대부분의 선진경제들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기술적 한계에 더하여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의 논리에서 비롯되는 임금상승 압력은 자본의 수익성을 더욱 더 악화시키는 방식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중의 압력, 곧 기술적 한계와 임금 상승에도 불구하고 포드주의적 축적체제가 장기적으로 존속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잉여가치의 원천이 다른 곳에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을 위시한 선진 경제들이 세계 무역의 80%를 차지하던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그 잉여가치는 남반구 국가들과 북반구 국가들 사이의 신식민지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초과이윤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흔히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에 잠재된 내적 모순의 폭발을 유예시키면서 이 체제를 장기간 존속할 수 있게 한 또 하나의 요인은 노동시장의 분단 정책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이 정책을 위해 단체교섭 제도는 노동시장을 이중화하는 데 활용되었다. 단체교섭 제도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의해 대표되는 부류였으며, 그들은 대체로 독점대기업에 종사하였다.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은 엄격하게 말하면 단체교섭 제도 바깥으로 밀려나 있다고 해야 옳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후 호황이 시작되면서 부족해진 노동력은 농업부문에서 이탈한 농민들, 맞벌이 전선에 뛰어든 여성들, 이민자들에 의해 충당되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고임금과 내부 승진이 보장된 독점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1차 노동시장으로 흘러들어 갔고, 다른 일부는 고용불안정과 저임금이 지배적인 중소기업 중심의 2차 노동시장에 참여했다. 다시 1차 노동시장은 업무의 독립성과 전문성, 임금수준 및 승진기회 여부에 의해 독립 1차 노동시장과 종속 1차 노동시장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것은 미국의 노동시장이 셋으로 나뉘어져 있었다는 뜻이다. 새롭게 노동시장에 흘러들어 온 노동자들이 어느 시장에 참여하는가를 결정하는 지표는 성과 인종이었다. 이렇게 해서 서로 분절된 세 노동시장은 노동력의 3분지 1을 각각 나누어 가졌다. 이 가운데 단체교섭 제도와 국가복지정책에 의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체제에 통합된 것은 3분지 2였고, 나머지 3분지 1은 배제되었다.
 이렇게 보면, 포드주의 축적체제에서 단체교섭 제도는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통해 자본이 초과이윤을 달성하는 것을 묵인함으로써 유지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력의 차별적 재구성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수익성이 계속 악화되는 경우, 자본은 단체교섭 제도에 편입되는 노동자들의 규모를 제한하려고 할 것이다. 그것은 단체교섭 제도 바깥에서 더 많은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집중적인 자본수출을 통해서 일자리를 제거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집중적인 자본 투자를 통하여 자동화를 달성하는 길이다. 단체교섭 제도 바깥에 자본의 축적 기반이 엄연히 마련되어 있다는 것은 포드주의적 축적체제를 가능하게 하였던 계급타협이 사실상 매우 취약한 발판 위에 서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체교섭 제도는 자본의 노동 포섭을 안정시키는 데 이바지했고, 노동자들을 체제 내에 묶어 저항의 잠재력을 제거하는 데 거의 성공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단체교섭 제도의 틀 안에 있었던 노동자들은 당분간 풍요한 사회에서 대량소비의 향유자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2. 경영자 지배구조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에서 경영자 지배구조는 크게 보아 앵글로-색슨식 모델과 독일식 모델로 대별될 수 있으나, 이 글의 초점이 주로 미국에 맞추어져 있으므로, 여기서는 앵글로-색슨식 모델의 특징과 그 한계만을 다루기로 한다.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에서 경영자 지배구조는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으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산업자본에 대한 경영자 전권을 관철하여 수익성을 추구하는 경영 방식을 가리킨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전제로 하는 이같은 경영방식은 은행 중심의 관리된 금융 체제 때문에 확고한 기반을 가질 수 있었다. 저금리가 제도적으로 강제되는 조건 아래서 저축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개인이나 은행은 기업에 투자하거나 대부함으로써 수익을 추구하고자 했고, 경영자들은 공정 표준화에 따르는 생산성 향상과 대량생산 능력을 결합한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에 힘입어 자본소득자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자본소득자인 주주와 자본수탁자인 경영자 사이의 계약을 제도화한 것이다. 이 계약의 핵심은 주주들의 재산을 위탁받은 경영자가 생산자산의 운영에 대한 전권을 행사하고, 그 대가로 수탁자본에 대한 배당을 높은 수준에서 보장하는 것이다. 경영 전권은 크게 보아서 기업의 경제정책과 인사정책으로 표현된다.
 기업의 경제정책은 한마디로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는 방식을 말한다. 생산수단의 축소 혹은 증대, 배치전환, 이전, 폐기, 매각 등에 관한 기업 정책의 수립은 경영자의 고유한 권한으로 인정된다. 소유 대상에 대한 소유자의 절대적 지배권을 보장하는 부르주아적 소유권 제도의 틀에서 경영자는 생산수단에 대한 지배권을 위임받는 막강한 지위를 갖는다.
 경영자의 전권은 또한 배타적인 인사정책과 노무관리를 통해 표현된다. 우선, 경영자는 노동력에 대한 절대적 지배권을 행사하여 노동력의 고용과 퇴출, 배치에 관한 인사정책을 독점한다. 그 다음, 경영자는 포드주의적 방식으로 조직된 노동과정에 노동력을 투입하고 엄격한 노동통제권과 작업지시권을 행사하는 등 노무관리의 전권을 행사한다.
 경영자의 배타적인 노무관리권은 테일러의 과학적 경영의 핵심이며,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에서 극단적인 형태로 실현되었다.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은, 해리 브레버만이 분석한 바와 같이, 노동과정을 노동자의 숙련성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실행과 계획 혹은 손노동과 두뇌노동을 분리시키고, 공정절차와 노동실행 방식을 통제하기 위해 경영진이 지식을 독점하는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생산방식이 미국 노동운동에서 숙련 노동자들의 힘을 분쇄시키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미숙련 노동자들을 단기간의 훈련을 실시한 뒤에 생산공정에 투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이 필요로 하는 노동력은 언제든지 대체가능한 사물로 취급되기에 이르렀다. 손노동과 두뇌노동은 완전히 분리되고, 손노동은 두뇌노동의 통제와 감시 아래서 생산 명령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다. 경영자와 감독자는 노동 공정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계획을 세우고 각 부분의 전체적인 통일성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 데 반해, 노동자들은 부여된 생산 공정에 대한 파편화된 지식을 갖는 것으로 족해야 했다. 지식의 독점은 지배의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인간의 노동을 “기계적 노동”으로 전락시킨 노동공정의 분할에 대해 심각한 불만을 갖게 되었고, 이 불만은 “높은 결근률, 일자리를 떠나 빈둥거리기, 규정된 노동속도에 대한 저항, 무관심, 태만성, 집단적인 태업, 경영진에 대한 공공연한 적개심”으로 표출되었다. 공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도입된 공정 분할은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저항으로 인해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생산성 저하가 경향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와 같은 노동의 불만에 자본이 대응하는 방식은 임금상승이었다. 포드 자동차 회사는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이 막 도입되었던 때부터(1910년대 중반) 노동 임금을 일당 2달러에서 5달러로 파격적으로 올려서 노동생산성 저하에 대응한 바 있다. 이러한 대응이 결코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지만,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은 생산성 향상과 노동임금 상승을 서로 맞바꿈으로써 노동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을 달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특성을 갖게 되었다.
 바로 이 때문에 포드주의적 축적체제가 안정된 발전을 보일 때에는 임금, 노동조건, 노동자 복지 등과 관련된 기업의 사회정책은 관대한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포드주의적 축적체제가 위기에 직면하면서 경영자 지배구조는 관대한 사회정책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냉혹한 경제정책과 인사정책을 취했다. 아래서 조금 더 살피겠지만, 금융주도적 지구화로 인해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권력관계가 역전되면서 주주자본주의 모델이 확립되자, 앵글로-색슨식 경영자 권력은 주주의 이익을 위해 냉혹한 구조조정과 고용조정을 관철하는 전가의 보도로 활용되었다.

III.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의 위기와 해체

 포드주의적 축적체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시장경제의 전성기를 구가하였지만 1960년대 중반에 위기의 징후를 보이면서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해체되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매우 다양하지만, 필자는 자본축적 위기와 이에 대응하는 자본의 노동 포섭 방식의 변화,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등에서 그 주된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자본축적 위기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의 위기는 이 체제의 생산방식 내부에 도사려 있는 기술적 한계와 극단적인 인간 소외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은 테일러의 과학적 경영 구상에 입각해서 컨베이어 벨트로 연결된 일괄생산공정이었다. 따라서 이 생산방식은 필연적으로 거대한 장치산업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으며, 장치산업의 특성상 자본의 한계생산성이 낮아지는 기술적 한계가 있었다. 또한 기계적인 단순반복 노동에서 비롯되는 노동자들의 불만과 일상적인 저항에 대해 경영자들은 임금상승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기에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은 자본의 노동 포섭 비용을 높이게끔 되어 있었다. 노동에 대한 불만과 인간의 소외는 노동의 인간화와 노동하는 인간의 주체성 실현이라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필요로 했지만,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은 그러한 방향으로 혁신되기 어려운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의 기술적 한계는 1960년대 중반에 곤두박질치기 시작한 자본의 수익성으로 표현되었다. 기업간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본의 투입량이 늘어나야 했지만, 이를 기업 저축으로 충당할 길이 없었다. 1968년의 혁명은 1960년대 중반의 경기침체로 인해 억눌렸던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를 폭발시켰다. 기업은 노동비용으로 기업저축의 대부분을 까먹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몰렸다. 기업의 투자는 극도로 위축되고, 상승된 노동임금은 수요 인플레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기업이 투자를 하는 경우에 그것은 은행으로부터 차입하는 것을 의미했고, 은행 차입의 증가는 통화 팽창을 유발하여 인플레이션을 더욱 자극하였다. 경기 침체 속의 인플레이션이라는 이 보기 드문 현상은 미국을 비롯하여 서유럽 선진 경제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국가가 나서서 임금 상승 억제를 위한 새로운 사회협약을 체결하자고 호소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여기에 오일 쇼크가 겹치자 기업은 자본의 노동 포섭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경하는 전략을 선택하기 시작하였다.

2. 자본의 노동 포섭 방식의 변화

 자본의 노동 포섭 방식을 변경시키려는 경영자의 선택은, 에른스트 만델이 지적한 바 있듯이, 집중적인 자본수출을 통해서 일자리를 제거하거나 집중적인 자본 투자를 통하여 자동화를 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조금 더 세밀하게 살펴보면, 이러한 경영자의 선택은 세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자본의 투입량을 획기적으로 늘려서 노동 합리화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 공장에서 실험한 바 있는 “린 생산방식”을 도입하는 것이고, 마지막 하나는 강력한 노동조합이 조직되지 않은 곳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이다. 이 셋은 별개의 선택지가 아니라 서로 결합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첫째, 극소전자기술의 발전은 경영자들로 하여금 노동 합리화 전략을 쉽게 선택하도록 자극했다. 컴퓨터의 발달은 전통적인 화이트칼라의 업무를 대폭 줄일 수 있게 하였고, 이것은 사무 자동화로 구현되었다. 기계적인 단순반복 노동은 점차 기계에 의해 대체되다가 마침내 생산공정이 자동화되면서 생산과정에서 아예 배제되기에 이르렀다. 극소전자기술의 뒷받침을 받은 공정 설계는 자본의 투입에 따른 노동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게 하였으며, 이것은 자본의 투입량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노동력의 수요를 줄이는 효과를 발휘했다. 케인즈가 가정한 투자 증가 = 고용률 상승이라는 공식은 마침내 깨지고 말았다.
 둘째, 도요타주의 혹은 “린 생산방식”은 이중의 전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나는 노동공정을 팀 단위로 수행하게 하고, 또 다른 하나는 외부 하청을 통해 기업의 다운사이징을 실현하는 것이다.
 작업 팀은 경영자의 생산 명령과 생산 목표량을 할당받고 그 틀 안에서 팀원 사이의 결정을 통해 자율적으로 생산공정을 나누어 맡게끔 되었다. 팀 작업은 노동자의 기계적인 단순반복 노동을 다기능 복합 노동으로 전환시켰고, 팀 안에서 엄격한 품질 관리를 실시하게 만들었으며, 다음 단계의 작업 팀이 그 품질을 다시 검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작업 팀 제도의 운영은 노동강도와 품질관리 수준을 높일 수 있게 하였다. 도요타주의는 이 점에서 확실히 자본의 투입량을 대폭 늘리지 않으면서도 상대적 잉여가치의 양을 늘릴 수 있는 기술체제였다.
 작업 팀 제도의 도입 이외에도 도요타주의는 군살빼기 경영 전략을 추진하였다. 본사 혹은 조립공장에 꼭 필요한 공정만 남겨 두고 나머지는 외부에 하청을 주는 것이 이 전략의 핵심이었다. 외주(out-sourcing)는 기업의 군살을 빼서 비용을 줄이는 효과만 갖는 것이 아니었다. 본사 혹은 조립공장은 하청 업체들 간의 경쟁을 이용하여 조달 물품의 가격을 깎을 수 있었고, 이것은 하청 업체 노동자의 임금을 간접적으로 수탈하는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셋째, 경영자는 노동조합이 조직되지 않은 지역으로 본사나 조립공장의 전부 혹은 일부를 옮겨서 제도적인 노사관계로 인한 비용 상승 압력을 줄이는 방식을 취했다. 미국이나 영국의 기업들은 아예 해외의 유리한 생산입지를 찾아서 조립공장을 따로 세우거나 부품공장을 분산해서 설립한 뒤에 이를 조립 공장으로 옮겨서 완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을 취했다. 전자는 생산입지 전략이고, 후자는 국제적 공정분할 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두 전략은 분리되기도 하고 결합되기도 했다. 1960년대 중반 이후에 미국의 독점자본은 이런 방식으로 해외 직접 투자를 늘리기 시작하면서 다국적 기업으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1970년대 중반에 자본의 국제적 이동이 좀 더 자유로워지면서 그 규모는 급속히 늘어났다. 이에 덩달아 세계 무역 규모도 급격히 팽창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부품이 지구적 차원에서 조달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추진된 노동 합리화와 자본수출은 전통적으로 경제 붐이 일어났던 지역에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효과를 일으켰고, 직접투자가 이루어지는 신흥 경제 지역에는 경제 붐을 일으켰다. 선진 경제들에서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산업 예비군은 증가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임금의 하방 압력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신흥 공업 지역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자본은 초과이윤을 달성하였다. 자본으로서는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선진 경제들에서 나타난 대규모 실업과 신흥 공업 지역으로의 이전은 자본에 더 많은 잉여가치를 가져다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은 이러한 사태발전에 대응할 길을 찾기 어려웠다. 단체교섭 제도가 무력해졌기 때문이다.

3.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포드주의적 축적체제를 해체시킨 가장 결정적인 요인들 가운데 하나는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였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미국의 국가통화인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은 브레튼우즈 체제는 미국으로 하여금 전세계에 달러를 공급하고 달러의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할 책무를 지게 만들었다. 엄격히 말하자면, 이 둘은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모순이었다. 이 모순이 극에 달했던 1971년 미국은 마침내 달러금태환제의 폐지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로써 부레튼우즈 체제는 붕괴되었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는 두 가지 결과를 빚어냈다. 하나는 경영자 자본주의의 금융제도적 기반의 붕괴이고, 또 다른 하나는 케인즈주의 국가의 위기이다.
 우선, 경영자 자본주의의 금융제도적 기반은 “관리된 금융 체제”였는데, 이 체제는 브레튼우즈 체제와 더불어 급속도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화폐자본은 인플레로 인하여 실제로 마이너스 상태에 있었던 금리에 저항하면서 금융 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풀게 만들었다. 미국 연방 정부는 1974년 국제간 자본 이동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였다. 단기성 자본의 이동을 억눌러 환율을 안정시킬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같은 해에 연기금의 주식 투자가 허용되면서 거대한 기관투자가가 주식 시장에 등장하게 되었다. 1975년에는 뉴욕 증시의 수수료 자유화 조치가 취해졌다. 케인즈주의가 지배하던 시기에 억압되었던 주식 시장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1979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고금리 정책을 선택하여 엄격한 통화주의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통화 공급에 대한 케인즈주의적 재량권은 더 이상 설자리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이로써 금융 자본이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제반 여건들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금융자본에 대한 산업자본의 전통적인 우위는 옛 이야기가 되었다. 둘의 관계는 역전되었고, 경영자 자본주의의 금융제도적 기반은 붕괴되었다.
 그 다음, 케인즈주의 국가는 화폐자본의 권력에 의해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강제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것은 국제간 자본 이동에 대한 규제의 철폐로 단기성 금융자본의 운동이 활성화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필연적 결과였다. 기왕에 유러달러 시장에서 활동하던 화폐자본은 미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화폐자본과 손을 맞잡고 변동 환율로 인해 더욱 더 매력적으로 부상한 환시장에서 투기자본의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석유 가격이 폭등한 1973년 이후 급팽창한 오일 달러는 유러달러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투기성 화폐자본을 팽창시켰다. 화폐자본이 선진국들의 재정적자로 인해 급팽창한 채권 시장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국가도 화폐자본의 권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화폐자본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국가에 강제할 수 있을 만한 충분한 힘을 갖추고 있었다.
 1976년 12월 투기꾼들이 일으킨 파운드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하여 영국 정부가 IMF의 구제금융을 요청하자 영국에서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불가피한 것으로 되었다. 1975-1976년에 뉴욕시 정부가 사회복지성 지출의 과다한 지출로 인해 재정위기에 봉착하자 은행들은 뉴욕시 정부의 채권 인수를 아예 거부했다. 뉴욕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재정지출 방식을 대대적으로 수술하여 사회보장성 지출을 줄이는 것이었고, 이로써 케인즈주의 국가는 사실상 역사적 종언을 고하기 시작했다.
 케인즈주의 국가의 종언은 포드주의적 축적체제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대량실업과 국가부채의 폭발적 증가를 경험한 나라들에서는 거의 불가피했다. 국가는 노동 권력을 약화시키고 긴축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영국병”이니 “미국병”이니 하는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노동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공격이 부채에 몰린 국가를 매개로 해서 이루어질 때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공격은 미국 대통령 레이건이 1981년 미국 항공 관제사 파업을 종식시키고, 1985년 영국 수상 대처가 10개월 동안 지속된 탄광노조의 파업을 분쇄하는 것으로 가시화되었다. 국가는 더 이상 노동 권력을 강화시킬 의사가 추호도 없었다.

IV.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에서 노동 문제들에 대한 기독교윤리적 판단과 평가

 앞에서 우리는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의 성립과 발전, 그리고 해체에 이르는 과정을 전반적으로 분석하면서 거기서 나타나는 노동 문제들을 살펴보았다. 노동 소외와 자본 축적 위기에서 비롯되는 노동 문제들은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들은 자본의 노동 포섭과 자본에 대한 노동의 의존이라는 노동사회의 기본적인 틀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에서 그 성격과 양상은 독특한 점이 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아래서는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에서 나타난 노동 문제들에 대해 기독교윤리적 판단과 평가를 내리고자 한다. 이를 위해 노동 문제에 대한 기독교윤리적 판단과 평가의 원칙들을 먼저 간략하게 정리하기로 한다.

1. 노동 문제에 대한 기독교윤리적 판단과 평가의 원칙

 기독교 윤리의 관점에서 노동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위임으로 파악된다. 하느님은 땅 위에서 자신을 대리하는 파트너인 인간에게 세계를 안식공동체로 규율하고 형성하려는 그 분의 의지를 존중하면서 삶을 위하여 의식적으로, 창조적으로, 책임적으로 노동할 것을 명령하였다. 노동은 하느님에 의해 제정되고 긍정되고 축복된 인간의 생활 영위 방식이다. 하느님은 인간을 위하여 이러한 삶의 제도를 타락 이전에 제정하였고, 타락 이후에 노동의 양가성이 두드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를 인간성의 기본적 표현으로 인정하였다. 이러한 노동을 수행하는 존재로서 인간은 그리스도의 영적인 현존 권능 안에서 그 분의 통치 아래서 이루어지는 형성과정과 갱신과정에 있으며, 이 과정은 그가 속량되어 안식공동체의 일원이 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노동의 본질적인 징표는 “이미”와 “아직 아니”의 긴장 속에서 드러난다.
 기독교윤리는 인간적이고, 사회적이고, 생태학적 지향을 갖는 노동의 형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와 관련된 원칙들을 설정하여 노동 문제를 평가하는 관점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이 원칙들은 하느님에 의한 노동의 제정에서 그 실마리가 드러나기는 하지만 정작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서 노동을 형성하고 갱신하는 과정에서 항상 겨냥해야 할 지향목표들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지향목표들을 겨냥하면서 노동 문제들을 윤리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한다고 해서 역사의 조건들 아래서 노동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들을 실현가능성 있게 제시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원칙의 제시와 실현가능한 대안의 모색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작업방식을 갖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본 연구에서 노동 문제를 기독교윤리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하기 위해 고려하는 원칙들은 다음과 같다.
 - 인간주체성의 원칙: 노동은 인간이 주체로 존재한다는 것과 분리될 수 없으며, 인간의 주체적 지위가 노동을 위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 사회성의 원칙: 인간의 주체성을 표현하는 노동은 함께 하는 노동이며, 여기에는 세대간 협력, 사회적 분업과 통합이 포함된다. 개개인은 함께 하는 노동에 참여할 권리와 공동체의 유지에 이바지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 노동은 노동과정에 함께 영향을 미치고 공동으로 결정하고 함께 형성하는 원칙에 따라 조직되어야 한다. 사회성의 원칙은 연대성의 원칙과 공동책임의 원칙으로 나타난다.
 - 정의의 원칙: 하느님에 의해 긍정되고 축복된 바 땅 위에서 인간의 삶을 꾸려나가는 방식으로서의 노동은 인간의 생존을 확보하는 전제조건이다. 노동의 업적은, 공동체 생활과 협동적인 노동조건들의 발전을 위한 기여를 공제한 다음에는, 그 업적을 수행한 노동자에게 귀속되어야 한다.
 - 생활 활동과 돈벌이 노동의 상호보완의 원칙: 노동은 본래 삶을 꾸리기 위한 인간의 활동, 곧 생활 활동이다. 발전된 경제에서 이 활동은 교환관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돈벌이 노동으로 나타났다. 돈벌이 노동은 교환관계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생활 활동의 모든 영역들을 덮을 수 없으며, 따라서 생활 활동의 의미와 가치는 사회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생활 활동과 돈벌이 노동은 서로 보완되어 다양한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삶의 각기 다른 상황들에 대처해야 한다.
 - 통전성의 원칙: 노동은 몸과 영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전인적 인간의 활동이다.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리, 손노동과 두뇌 노동의 분리는 허용될 수 없다.
 - 자기제한의 원칙: 노동은 욕망의 충족을 목표로 하며,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부합하는, 생활상의 곤란을 회피하는 수준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2. 노동의 소외

 앞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은 노동의 소외를 전례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노동과정을 노동자의 숙련성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실행과 계획 혹은 손노동과 두뇌노동을 분리시키고, 공정절차와 노동실행 방식을 통제하기 위해 경영진이 지식을 독점하는 방식을 발전시켰다. 그것은 노동을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파편화된 공정으로 축소하였고, 인간을 기계의 부속물로 전락시켰다. 그것은 노동하는 인간을 자본의 명령에 굴복시켜 그가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하고 소통하는 전인적 주체라는 사실을 부정하였다. 노동하는 인간의 주체성은 파괴되었고, 바로 이것이 상대적 잉여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자본의 노동 포섭 방식의 핵심이었다. 필자는 노동하는 인간의 주체성과 통전성을 중시하는 기독교적 원칙들에 입각하여 이를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의 핵심 문제로 지적하고자 한다.
 본시 노동의 소외는 영리와 가계의 역사적 분립과 더불어 자본에 대한 노동의 의존과 자본의 노동 포섭에서 비롯된 근본적인 노동 문제였고, 이 문제의 핵심은 노동력을 상품으로 거래하는 시장경제의 운영 방식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장경제에서 노동력은 자본이나 원료와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매입되어 생산요소의 하나로서 생산과정에 투입된다. 노동력 “투입”은 그 투입을 결정하는 경영자에게 노동력이 물건으로 취급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전제한다. 물건에 대한 소유권이 그 물건에 대한 지배권을 함축하듯이, 노동력의 매입자는 그 노동력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한다. 그렇지 않다면, 살아 있는 인간을 생산요소나 기계의 부속품 정도로 취급하는 일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노동력의 상품화는 물화된 노동력에 대한 소유권 행사라는 환상을 조장한다.
 그러나 인간은 노동력으로 축소될 수 없고, 노동력은 결코 물건으로 취급될 수 없다. 노동력은 인간의 몸에 깃들어 있고, 인간의 몸은 영혼과 정신과 감정과 육체의 통일체이다. 노동력이 인간의 몸에 깃들어 있어서 그것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은 노동력이 단순히 상품이나 물건으로 취급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이 사람으로서 노동을 한다는 사실은 노동력에 대한 노동력 매입자의 지배권에 대항해서 노동자가 자신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노동을 한다는 엄연한 사실로부터 비롯되는 권리, “노동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노동 안에서 그리고 노동에 접할 때 노동자가 누려야 할 권리”를 노동권이라고 말한다면, 노동권의 핵심은 노동자가 노동과 관련된 모든 영역들에서 인간과 행위 주체로서 살 수 있는 권리라고 말해야 한다. 그것은 노동세계에서 노동자들이 지배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을 지양하고 주체적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노동하는 인간의 주체성과 전인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권이 소유권에 선행한다는 점이 정치적으로 승인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그렇게 보는 것이 노동과 자본의 발생사적 순서에 부합한다. 자본은 노동의 파생물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자본에 대한 노동의 선차성은 소유권에 대한 노동권의 우위를 함축한다.
 시장경제에서 노동과 자본의 상호의존 관계를 현실로 인정하면서도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를 관철시키려는 구상은 일찍부터 경제 민주주의로 나타났고, 이 구상은 기업 차원에서 경제정책과 인사정책 등 본래적인 의미의 공동결정을 제도화하려는 시도들로 나타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번번이 실패했다. 부르주아적 헌정질서에서는 소유권을 신성불가침한 것, 선차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 경영만이 아니라 국민경제의 운영에서도 노동과 자본이 공동책임의 파트너로 마주 서야 한다는 것은 노동의 사회성 원칙에서 볼 때 당연한 요구라 할 것이다.
 기독교윤리의 원칙들, 특히 노동하는 인간의 주체성과 전인성, 그리고 사회성의 원칙에서 볼 때, 노동하는 인간이 행위의 주체로서 대접받고 전인적 주체로서 일할 수 있는 노동조건들을 만들어내고 기업과 공동체를 위하여 책임 있는 주체로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노동사회가 존속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과제라 할 것이다.

3. 소외된 소비

 노동의 소외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대량소비와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대량소비는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의 유지에 반드시 필요했다. 노동자들은 자동차, 냉장고, 넓은 집, 기름진 음식, 다양한 쇼핑을 즐기게 되었다. 노동자들은 소외된 노동에서 비롯되는 불만을 소비 욕구의 충족으로 대체하고자 했다. 그들은 더 많은 지출을 통해 더 많은 상품을 지배하고자 했으며, 그것이 노동자들의 일상세계를 지배하는 규범이 되었다. 소외된 노동을 갈음하려는 소비 충동은 그 본질상 강박이었고, 그 강박은 소외된 노동의 심리적 표현이었다. 노동자들의 통장에서 더 많은 돈을 끌어내려는 자본가들은 광고를 통해 노동자들의 소비 욕구에 형식을 부여하고 그 형식에 맞는 상품을 만들어 팖으로써 엄청난 이윤을 얻었다. 대량소비의 정치경제학은 대량소비의 심리학과 손을 마주 잡았다.
 이런 점에서 “노동을 할 때 조작되기 일쑤인 사람은 여가 시간에도 더 쉽게 조작당한다”는 아르투르 리히의 인식은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에서 나타나는 소비의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960년대 초에 제시된 이 통찰은 오늘의 상황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이러한 인식은 “소비인간”의 문제를 날카롭게 분석한 장 보드리야르에게서도 나타난다. 그는 “소비는 향유의 기능이 아니라 생산의 기능이며, 따라서 물질의 생산과 마찬가지로 개인적 기능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또 전면적으로 집단적 기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소비에 대한 올바른 견해”라고 전제하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시대에 출현한 “소비인간”은 향유의 강제를 받아들여야 반사회적 존재로 낙인찍히지 않을 수 있게 된다고 꼬집었다.
 인간의 노동이 인간성의 실현에 부합하는 욕망 충족에 한정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기독교윤리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결합에 근거한 축적체제는 그 자체의 생태학적 한계와 지속불가능성을 일단 차치하더라도 용인되기 어렵다. 인간은 돈벌이 노동을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고 소비를 통해 자기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문제는 노동의 소외를 극복하는 문제와 맞물려 있다. 노동하는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면, 그는 소비에서도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소외된 소비에서 비롯되는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4. 정의의 문제

 포드주의적 축적체제는 노동 임금과 노동 생산성을 연계시키는 임금정책을 세웠는데, 이러한 임금정책에 도사려 있는 분배 문제는 별로 지적되지 않았다. 임금은 분배 문제의 핵심이며, 시장경제에서 분배 문제는 가치 생산 과정에서 노동과 자본이 각각 수행한 업적을 평가하여 공정하게 보상하는 것을 그 핵심으로 한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포드주의적 축적 체제가 역사적으로 전제한 케인즈 이론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시원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케인즈 이론은 사회경제적으로 분화된 소득 개념을 알고 있지 못하고, 이런 점에서 리카아도의 가치론을 암암리에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드주의적 축적체제가 분배 문제에 걸려서 1960년대 중반에 축적 위기에 처하고 마침내 해체의 길에 들어섰음을 인식한다면,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포드주의적 축적체제 이후를 구상할 때 주요 과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노동 문제에 대한 윤리적 판단과 평가의 원칙으로서 정의의 원칙을 강조하였는데, 기독교적 관점에서  정의는 본시 관계의 문제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정의는 바른 관계이다. 이 점을 중시하는 기독교적 정의 개념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돌려야 한다는 의미의 분배적 정의를 넘어서는 개념이다. 그러나 기독교적 정의 개념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배 개념을 초월한다고 해서 분배적 정의를 무시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 윤리는 분배적 정의의 실현이 바른 관계를 수립하는 일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노동의 업적은, 공동체 생활과 협동적인 노동조건들의 발전을 위한 기여를 공제한 다음에, 그 업적을 수행한 노동자에게 귀속되어야 한다고 기독교윤리가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시장경제에서 분배의 정의를 수립하는 일은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제대로 수립하는 문제로 귀착한다. 둘의 관계가 적대적이거나 대립적인 경우에는 자본의 과잉축적이나 임금의 과도한 팽창을 피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시장경제는 공황이나 스태그플레이션 같은 막다른 골목에 빠지기 쉽다. 시장경제에서 자본의 이해관계와 노동의 이해관계를 서로 조화시킬 수 있는 조건을 확립하여 생산과 소비의 거시균형을 이루는 것은 기업뿐만 아니라 국민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일 것이며, 이에 대한 연구는 우리 시대의 중요한 미래 과제가 될 것이다.

5. 노동자 연대의 문제

 앞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에서 단체교섭 제도는 경제주의의 틀에서 노동과 자본의 계급타협을 구현하는 틀이었지만, 노동자들은 단체교섭 제도 안에 있는 사람들과 그 바깥에 있는 사람들로 나뉘어 있었다. 이와 같은 노동시장의 분단은 노동자들이 소득이나 삶의 처지 측면에서 서로 다른 위상에 놓이게 하고 노동자들의 연대와 단결을 깨뜨리게 만들었다. 실제로 자본은 노동시장의 분단을 통해 노동자들을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전략을 구사하였고, 금융주도적 지구화를 추구하는 국면에서 고용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노동자들을 서로 단절시키고 고립시키는 것은 노동을 공격하는 자본의 가장 강력한 전략이었다.
 시장경제의 틀에서 자본의 권력에 맞서서 노동의 권익을 구현할 수 있는 기반이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에 있다는 것은 노동운동의 중요한 교훈이지만, 노동의 사회성 원칙을 강조하는 기독교윤리의 관점에서 볼 때, 노동하는 사람들의 연대와 단결은 노동시장의 분단을 저지시켜 세대간, 인종간, 젠더간 차별을 극복하고 노동 업적의 공동체적 향유를 구현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포드주의적 축적체제가 해체되면서 임금본위 체제가 급속한 위기에 처한 점을 감안할 때, 노동의 사회성 원칙은 돈벌이 노동과 생활 활동의 상호보완의 원칙과 결합할 때 노동사회의 미래를 여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시장경제에서는 인간의 노동 활동들 가운데 시장의 보상을 받는 것이 따로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이 따로 있는데, 이러한 보상 원칙이 과연 정당한가를 근본적으로 묻는 것은 이 맥락에서 매우 중요하다. 만일 돈벌이 노동과 생활 활동이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유지하는데 필수불가결하다면, 돈벌이 노동과 생활 활동에 대한 보상은 시장만을 통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정치적 결정을 통해서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이러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노동의 사회성 원칙에 입각하여 노동세계를 새롭게 형성하는 새로운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V. 맺음말

 이 글에서 필자는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에서 나타난 노동 문제들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노동하는 인간의 주체성과 전인성, 노동의 사회성, 정의, 돈벌이 노동과 생활 활동의 상호보완성, 욕망충족의 자기제한성 등 기독교윤리의 원칙들에 입각하여 이 노동 문제들에 대해 판단하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기독교윤리적 판단과 평가는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에서 노동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한다든가, 포드주의적 축적체제 이후를 내다 보면서 노동사회의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는 일과 직접 맞물려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역사 발전의 특정 단계에서 노동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고려할 만한 실마리를 찾는 데에는 약간의 도움이 될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포드주의적 축적체제가 자본축적 위기에 걸려 좌초되고 금융주도적 지구화 조건 아래서 신자유주의적 노동사회가 급속하게 편성되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조금 더 인간적이고 사회적이고 환경친화적인 노동세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재갈 풀린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서 논의를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의 지구화가 국민경제의 틀을 넘어서서 세계시장을 형성하려는 자본의 집요한 논리에서 비롯된 불가피한 현상이라면, 경제의 지구화 조건에 걸맞는 인간적이고 사회적이고 환경친화적인 노동세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피할 수 없으리라.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에서 나타난 노동 문제들에 대한 기독교윤리적 판단과 평가의 내용은 포드주의적 축적체제 이후를 구상하는 데에는 미흡할는지 모르지만, 신자유주의적 노동사회 이후를 내다보면서 한번쯤 짚고 넘어갈 만한 점들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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