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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園安炳茂先生의 윤리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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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園安炳茂先生의 윤리사상

강원돈(한신대 교수/사회윤리)

머리말

심원 안병무 선생은 독창적인 신약학자로, 한국의 고유한 신학으로 인정되어 온 민중신학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분야에서는 심원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심원의 윤리사상을 연구한 글은 아직까지 없었다. 심원의 윤리사상을 논하겠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의아하게 생각하기까지 한다.
그 까닭은 무엇보다도 심원이 윤리나 윤리적 사고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학자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윤리가 기존질서를 옹호하는 보수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점을 종종 지적하곤 하였다. 하나님 나라 운동의 관점에서 기존질서와 기득권으로부터 탈피할 것을 늘 촉구하였던 심원으로서는 종말론이 뒷전에 물러갈 때 전면에 부각되곤 하는 윤리가 현상유지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안병무, “탈-향의 인간사”, 『성서의 맥 1: 구원에 이르는 길』, 심원 안병무 선생 기념사업위원회 편,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7, 63: “도대체 윤리, 도덕이 무엇인가? 그것은 이미 정착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질서가 아닌가? 그러면 누가 이 질서를 만들었는가? 그것은 언제나 강자 즉 지배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와 유사한 진술로는 안병무, “하나님의 나라”, 『신학평론: 기독교의 개혁을 위한 신학』, 심원 안병무 선생 기념사업위원회 편,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9, 352; 안병무, “예수 그리스도 - 세상의 생명”, 『성서의 맥 2: 우리와 함께 하는 예수』, 심원 안병무 선생 기념사업위원회 편,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7, 289를 보라.

또 어떤 사람들은 민중신학자 안병무가 기존질서나 제도에 대해 너무나도 부정적인 견해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신학의 틀을 갖고서는 그 어떤 “형성의 윤리”도 전개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곤 했다. 한국의 민중신학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치신학을 비교하여 독일에서 교수자격취득논문을 쓴 크리스티네 린네만-페린은 민중신학이 윤리적 담론을 형성하기에는 너무 유토피아적이고 묵시적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권력을 책임있게 다루는 지평에서 사회구조의 변혁을 위한 추진력이 민중신학에서 어떻게 나오는가를 알기는 극히 어렵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불완전하게 여겨지는 모든 해결책을 악의 가면으로 해석하는 한, 우리는 그러한 민중신학으로부터 근본적인 추진력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는 거의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민중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정치적 권력집중과 민중의 적을 총괄하는 개념인 국가에 남아있는 길은 자기해체밖에 없다. 국가 없는 사회의 민중 주권이 그것이다. (...) 원시창조의 카오스와 암흑을 다시 불러내는 종말 때의 ‘공룡’에게 어떤 여분의 합법화가 있을 수 있겠는가?” 크리스티네 린네만-페린, “교회의 정치적 책임-한국 민중신학과 남아프리카 정치신학의 비교”, 안병무 박사 고희 기념 논문집 출판위원회 편, 『예수·민중·민족-안병무 박사 고희 기념 논문집』, 심원 안병무 선생 기념사업위원회 편,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2, 812.

이러한 두 가지 지적만 가지고도, 심원의 윤리사상을 연구 주제로 설정하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일인가 하는 의문을 던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심원은 일생을 두고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을 붙잡고 진지하게 고민하며 그 나름대로 독특한 윤리사상을 펼쳤다. 그는 신학하는 방법과 관련된 질문이 나올 적마다 질문이 대답을 결정한다고 말하곤 했는데, 구체적인 결단을 촉구하는 바로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사람이 윤리의 문제를 비켜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윤리에 대한 심원의 관심은 예수를 본받아 살겠다고 결심한 청년 시절부터 오늘 여기를 향해 육박해 오는 하나님 나라의 현실 앞에서 탈-향(脫-向)의 실존을 결단하고자 했던 장년 시대를 거쳐 민중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헌신하면서 새로운 세계의 큰 그림을 그렸던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줄기차게 이어져 갔다. 그렇다면 그가 구상한 윤리는 어떤 윤리인가? 또 그의 윤리적 구상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는가?
이 질문들에 제대로 대답하려면 심원의 신학이 발전해 간 경로를 따라가면서 그의 윤리사상을 분석하여야 할 것이다. 공관서의 예수를 모범으로 삼아 그대로 살고자 했던 청년 시절의 순수한 윤리까지 여기서 다룰 겨를은 없지만, 심원의 신학은 민중신학을 전개하기 이전과 이후에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이를 나누어서 살피는 것이 좋다고들 한다. 그러나 민중신학 이전과 이후를, 마치 금을 긋듯이,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억지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심원이 붙잡고 있었던 윤리적 모티프들은 민중신학 이전이나 이후에 놀라울 정도로 일관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967년 숭실대학교에서 행한 “한국 사회와 기독교 대학의 방향”이라는 강연에서 심원은 기독교가 한국 사회의 형성에 제대로 공헌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공(公) 사상, 민 주도의 민주주의를 분명하게 천명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안병무, “한국 사회와 기독교 대학의 방향”, 『평론: 한국 민족 운동과 통일』, 심원 안병무 선생 기념사업위원회 편,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1, 219ff.
, 이것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사회윤리를 이끌어 가는 기본 사상이었다. 이런 점에서 심원의 윤리사상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그의 윤리적 구상의 주조음을 포착하고 이것이 어떻게 변주되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본 연구의 제I부에서 심원의 민중신학의 대강을 소략하게나마 정리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 분의 민중신학 구상에는 그의 해박한 지식과 개인사적, 민족사적, 민중사적 경험, 그 분의 해석학적 성실성과 상상력은 무르녹아 있고, 그 분의 윤리사상 또한 민중신학의 틀에서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본 연구의 제II부에서 심원의 윤리사상을 성서윤리, 탈-향의 윤리, 사랑의 윤리, 양심과 책임의 윤리, 정치윤리, 공(公)의 윤리 등으로 나누어 정리하고자 한다.

II. 심원의 민중신학

나는 역사 현실 속에서 억압당하고 수탈당하고 주변화되어 온 민중이 역사 형성과 현실 변혁의 주체임을 인정하고, 민중이 역사의 주체로서 새로운 세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한 것이 민중신학의 가장 탁월한 업적이라고 보고 있다. 심원은 이 점을 가장 명확한 언어로 가다듬은 신학자였다.
심원의 민중신학은 1970년대 초 독재에 항거하며 인권과 민주주의와 민중 생존권를 위해 기독교인들이 벌인 투쟁의 현장에서 탄생하였다. 그는 교회 바깥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이 민중과 더불어 일으키는 사건을 경험하였고, 이를 성찰하는 새로운 신학적 언어를 모색하였다. 그러한 모색은 그가 습득한 외래 신학의 언어를 갖고서는 이 삶을 설명할 수 없다는 철저한 자각에서 비롯되었다. 나중에 심원은 이러한 신학적 언어의 탐구를 “서구신학에 대한 반명제” 안병무, “한국적 그리스도인상의 모색”,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서울: 한길사, 1986, 15.
로 요약하였지만, 토착화 신학과는 달리 이 새로운 언어가 정치적 실천의 맥락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심원은 자신의 새로운 신학적 관점과 방법을 “사건의 신학”으로 성격화하였는데, 바로 이 신학이 “신학하는 방법의 혁명적 전환” 안병무, 같은 글, 13.
을 불러일으키고, 예수 사건을 프리즘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드러냄으로써 오늘 여기서 벌어지는 민중운동의 신학적 근거를 가장 명료한 언어로 제시할 수 있게 만들었다.
여기서는 심원의 민중신학을 상론할 수 없기에 심원의 민중신학에 대해서는 졸고 「민중현실의 발견과 우리의 것에 대한 추구」, 『物의 신학』, 서울, 도서출판 한울, 1992, 11-33; 졸고 「신학적 해석학의 새로운 모색-민중문화운동의 민중신학적 수용」, 『物의 신학』, 75-83을 참조하라.
본 연구에 필요한 몇 가지 대목을 대강 간추려 말하는 데 그치고자 한다.

1. 사건과 증언

심원이 일생을 두고서 추구한 것은 “역사적 예수”였고, 오늘 여기서 “현존의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이었다. 그는 역사적 예수를 알기 위하여 독일 유학을 갔으나 거기서 그가 얻은 결론은 역사적 예수를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이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독일 신학계를 지배하던 양식사는 복음서가 초창기 교회의 삶의 자리에서 형성된 그리스도 케리그마를 확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복음서를 통해 역사의 예수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은 차단되고 만다. 엄밀한 해석학적 절차를 거쳐 그리스도 케리그마의 의미를 오늘 재현한다고 해도, 그것은 역사의 예수와 무관할 수 있다. 안병무, 『갈릴래아의 예수』,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0, 10ff. 이 때문에 에른스트 케제만은 그리스도 케리그마가 가현설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심원은 서구 신학의 도구들을 갖고서는 역사의 예수와 그리스도 케리그마의 단절이 가져오는 딜레마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치밀한 본문 분석과 주석을 통하여 마르코복음의 수난사가 그리스도 케리그마 도식을 갖고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 케리그마의 일부를 이루는 “수난 고지”에는 십자가 처형 이후의 부활이 전제되어 있으나 수난사 자체에는 이 점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고 오직 신부재(神不在)의 처절한 상황만이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안병무, “예수 사건의 전승모체”,『1980년대 한국 민중신학의 전개』, 한국신학연구소 편,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0, 246ff.에 요약되어 있다.
마르코복음의 수난사에 집중하고 있었던 심원은 1970년대 초에 정치 투쟁에 가담하고 고난당하는 민중과 만나면서 마침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마르코복음은 피안에서의 개입을 기대하게도 하지 않으며 부활의 승리에로 뛰어 넘게도 하지 않고 지금 ‘패배’ 속에서의 절규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왜? (...) 그는 십자가의 사건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라는 것이다. (...) 그럼 그 사건에서 2천년의 시간적 거리를 가진 오늘의 우리는 어디서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던진 뒤에 심원은 곧바로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 우리가 오늘의 그리스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바로 2천년전의 그리스도의 절규를 오늘에서 들을 수 있을 때다. (...) 그것은 최후 심판의 비유에서 보는 대로 수난당하는 이웃의 비명소리를 타고 우리 현장에까지 진동한다. (...) 바로 이러한 절규에 호응해서 그 고난에 참여하는 자는 오히려 그 현장에 엄존하는 그리스도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안병무, “오늘의 그리스도”, 『성서의 맥 2: 우리와 함께 하는 예수』, 232f. 이 글은 1976년에 쓰였다.

고난당하는 이웃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 해도 그것은 분명 하나의 사건이다. 왜냐하면 그 소리는 웬만하면 들리지 않거나 들린다 하더라도 곧바로 기억에서 축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듣고 거기 호응할 때 오늘 여기서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만난다. 그리스도의 부활도 마찬가지이다. 심원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밝혔다.

“그러면 오늘의 부활사건의 현장은 어디인가? 그것은 바로 물리적 힘을 최상으로 알고, 죽음으로 위협하면서 부당하게 억누르는 현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3.1운동과 4.19혁명을 우리 민족의 저항사에서 중요한 사건의 하나로 알고 있다. 그것은 불법자와 불의한 자들의 손에 죽은 듯했던 민중들이 죽음과 대결하면서 그 위협 아래서도 ‘우리는 살아 있다’는 것을 증거한 사건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사건은 불법자의 손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의 구현이라고 볼 수 있다. (...) 여기에서 우리는 부활한 그리스도가 저들 속에 현존한다는 것을 안다.” 안병무, “부활의 그리스도와 그 현장”, 『성서의 맥 3: 생명을 살리는 신앙』, 심원 기념 사업위원회 편,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7, 36. 이 글은 1976년에 쓰였다.

심원은 오늘 여기서 벌어지는 민중의 고난과 저항의 사건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증언하는 것이 신학의 과제라고 규정했다. 희랍어에서 증언과 순교가 동일어라는 점에서 이미 증언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거니와, 이웃의 정치적 고난에 대해 철저한 침묵을 명령했던 유신 시대의 암흑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사건의 증언을 신학의 본래적 과제로 설정한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고 볼 수 있다. 심원은 오늘의 그리스도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현존하는가를 명확하게 증언함으로써 그 분 앞에서 엄숙하게 결단하고 행위하도록 촉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난당하는 이웃의 비명소리를 통해 우리가 만나는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고난당하는 이웃과 “일치”하게 하고, 그 이웃을 향해 자신을 “개방”하도록 촉구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그 촉구에 호응할 때 임할 것이다. 심원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누가 10, 25-37)와 최후 심판의 비유(마태 25, 31-46)에 근거해서 이 점을 부각시키곤 했다. 이에 대해서는 안병무, “자유와 예수”, 『신학평론: 기독교의 개혁을 위한 신학』, 49f.
이렇게 보면, 증언은 고도의 실천지향성을 지니고 있다.

2. 예수와 민중

사건과 증언의 개념은 심원으로 하여금 서구 신학의 기본 골격인 주객도식을 일거에 허물어뜨리고 새롭게 신학할 수 있는 방법을 열어주었다. 사건은 역사 안에서, 삶 한복판에서 일어난다. 성서의 신은 바로 그 사건을 일으키는 신이요, 사건을 통해 인식되는 하나님은 객관화된 대상이 될 수 없다. 안병무, 『민중신학이야기』,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7, 136.
신 인식에서 주객도식은 이렇게 해서 폐기된다. 사건은 그 사건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되게 한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마당판’이다. 거기서는 연희자와 관객을 구분하는 틈이 없다. 연희자들 가운데서도 주인공이 따로 구별되지 않는다. 엄밀한 의미에서 아무도 대상화되지 않은 채 호흡이 모아지고 ‘한 판’이 짜인다. 예수 사건에서도 예수와 민중은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예수가 주인공 노릇을 하고 민중이 그 배경을 이루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예수의 행태를 알고자 할 때, 그를 한 “개인”으로서 추적해서는 안 되고,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일어나는 사건 전반”을 보아야 한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심원은 곧바로 “그를 싸고 돈 민중과 그를 주-객으로 보고 그 어느 쪽에서 민중을 찾자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민중을 찾자”고 덧붙인다. 안병무, “마가복음에서 본 역사의 주체”, 『민중과 한국신학』(이하 『민중과 한국신학』,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학위원회 편,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2, 180.
바로 여기서 심원의 심오한 통찰이 나타난다. 그는 예수와 민중의 주객도식을 넘어섬으로써 예수를 더 이상 페르소나(persona), 곧 개인이나 개별적 실존으로 파악하지 않고 예수의 집단성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심원은 예수가 자신을 지칭할 때 쓴 “인자” 개념과 예수와 민중의 관계를 분석함으로써 예수의 집단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애썼다. 이에 대해서는 위의 글, 177ff.를 보라.

심원이 예수와 민중의 불가분리적 관계에 주목하고 사건의 개념을 통하여 민중을 생동적인 주체로 설정하면서 성서 해석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 앞에서 이미 말한 바 있지만, 케리그마의 신학이 극복되고, 주객도식에 근거한 신학 모델을 거부할 수 있게 되었다. “태초에 케리그마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물론 예수 사건이다” 안병무, “예수 사건의 전승모체”, 232.
는 심원의 말은 새로운 성서 읽기가 준비되고 있음을 선언한다.
둘째, 예수 사건의 기억을 전달한 사람들, 곧 예수 사건의 민중적 전승이 케리그마가 아니라 이야기라는 점에 주목함으로써 심원은 복음서 안에 케리그마 전승과 다른 전승 궤도가 있음을 밝힐 수 있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케리그마가 확립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사건의 이야기 전승이 수집되어 편찬된 것은 그 이야기를 전승한 집단이 그리스도 케리그마에 도전하면서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심원의 통찰은 날카롭고 시사적이다. 위의 글, 241f. 심원은 예수 사건의 전승 양식이 “유언비어”의 성격을 띠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민중의 유언비어는 과거사를 말하면서도 남의 이야기가 아닌 실존적 증언의 성격을 띤다”고 말한다. 심원은 특히 예수의 수난사와 관련해서 “저들의 예수 수난사 전승 속에는 바로 저들 자신의 실존적인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전제했다. “그들은 예수의 수난사건을 이야기함으로써 바로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 수난사건에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의 동일성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예수의 사건을 읊음으로써 자신을 울며, 예수의 사건을 일으킨 불의의 세력을 폭로함으로써 자기 자신들을 억압하는 세력에 항거하는 것이다.”(안병무, “예수와 민중”,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90)
이 이야기 전승을 통하여 심원은 그리스도 케리그마에 의해 탈정치화되고 탈역사화되었던 예수 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다고 믿었다.
셋째, 예수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하여 심원은 이 사건이 벌어진 현장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뿐만 아니라 그 사건의 사회사적 맥락을 재구성하고자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사건의 맥락과 그 진상을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관점에서 파악하고자 했다. 그는 예수 사건이 벌어진 팔레스틴 사회의 정치·경제·이데올로기 지형을 사회학적으로 면밀하게 분석하여 그 사건의 공시성을 확보하고 안병무, “예루살렘 성전체제와 예수의 대결”, 『1980년대 한국 민중신학의 전개』, 374-379.
, 예수 사건을 가로지르는 하나님 나라 사상이 고대 이스라엘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직접 통치 사상의 맥을 잇고 있음을 밝힘으로써 예수 사건의 통시성을 부각시켰다. 안병무, “하나님 나라”, 『갈릴래아의 예수』, 104ff.

3. 민중과 하나님 나라

예수 사건의 공시성과 통시성에 대한 인식은 하나님 나라의 내용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심원은 예수가 갈릴래아로 가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박했음을 선포하고, 그에 호응하여 오클로스가 예수에게 몰려와 그와 더불어 벌인 사건들에 주목한다. 그는 예수 사건의 창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내용에 대해 알 수 없다고 한 서구 신학의 불가지론을 넘어서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한 때 심원은 하나님 나라의 불가지론의 벽을 넘기 위하여 루가복음에 보도된 예수의 메시아 취임사(루가 4, 16-19)에 주목하기도 하였다. 루가는 마르코처럼 하나님 나라 도래의 임박성을 전하지 않고, 그 대신 예수의 메시아 취임사를 전한다.
그는 은혜의 해가 곧 희년을 가리킨다고 보았고, 희년은 “일체의 비리와 악순환의 요소를 완전히 청산”하여 노예해방, 포로석방, 빚의 탕감, 편중된 토지의 재분배, 자연의 회복 등 모든 것을 원상으로 회복시키고자 하는 구체적 프로그램을 가졌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물론 이러한 프로그램을 유토피아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단서를 달기는 하였지만, 심원은 희년 사상을 원용하여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 내용을 탐색하려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안병무, “신의 주권만이”, 『성서와 설교: 구걸하는 초월자』, 심원 기념 사업위원회 편,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8, 123.

그러나 예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실상에 접근할 수 잇는 신작로를 얻었다고 생각한 심원은 예수가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말할 뿐 그 나라 자체에 대해 “일언반구”도 말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정의할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주장한 뒤에 그는 곧바로 “당시에 이미 하나님 나라 운동하고 있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던 바로 그것을 예수가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고 덧붙이기까지 한다. 안병무, 『민중신학이야기』, 238.
심원의 역사적 예수 연구를 집대성한 『갈릴래아의 예수』에서 그는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유다인 특히 갈릴래아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이 어떻게 반영될까? 귿르은 지금 주전 63년 이래로 거의 백년 가까운 기간 로마 제국의 통치 밑에 신음하고 있다. 로마는 그 권력을 현지인에게 분배하여 하수인으로 삼아 2중 3중의 착취를 자행한다. 그중에 갈릴래아인 특히 그 안의 민중은 완전 체념하거나 아니면 혁명적인 역사 변혁을 통해 그 나라를 강구했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풍토에서 민중의 힘을 과시한 젤롯당운동은 필연적인 것인데 저들은 하나님 나라 건설과 로마-예루살렘 세력타도를 동일시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사는 예수의 청중들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포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만일에 예수가 저들이 역사적 경험에서 가지게 된 그 나라의 표상과 다른 어떤 현실을 말하는 것이라면 구구한 설명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가 그 나라에 대한 특별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민중의 염원을 자명하게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전제한 것이며, 그들의 염원과 그 나라의 도래가 일치한다는 것을 전제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안병무, 『갈릴래아의 예수』, 111.

그렇다면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인가? 심원은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지배, 하나님의 직접 통치를 의미한다고 보고, 그 나라는 유토피아처럼 관념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적 핵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의 직접 통치의 역사적 핵은 원시 이스라엘이다. 원시 이스라엘은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확립된 “오직 야훼만”의 신앙을 중심으로 해서 권력과 물질의 독점을 인정하지 않는 자유롭고 평등한 민의 공동체였다. 왕권이 확립되면서 이러한 민의 공동체는 붕괴되고 야훼는 왕권 체제를 옹호하는 어용 신으로 전락하여 법궤와 성전에 감금되고 말았지만, 왕권에 저항하는 예언자들과 민중은 원시 이스라엘의 기억을 전승하고 “오직 야훼만의” 신앙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전승이 가장 활발하게 살아 움직인 곳이 갈릴래아였고, 갈릴래아 민중은 로마 제국과 성전체제의 압제와 수탈 속에서, 율법에 의해 이른바 “죄인”으로 낙인찍히는 차별과 배제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 나라 도래의 염원을 품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실현은 지배와 수탈이 없고, 차별과 배제가 없는 공동체의 회복, 곧 원시 이스라엘로 상징되는 새로운 공동체의 건설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이 점을 중시하면서 심원은 예수와 민중이 더불어 펼친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한 마디로 “미래지향적(오는 그 나라)이면서 동시에 뿌리(이스라엘의 고대 사회)에로의 회귀운동” 안병무, “한국 그리스도교의 자기혁명”, 『신학평론: 기독교의 개혁을 위한 신학』, 424.
으로 성격화하였다.
심원의 하나님 나라 이해와 관련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이 또 한 가지 있다. 심원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서 사탄과의 투쟁이라는 모티프를 중시했다. 그는 루가복음에 전해지고 있는 “나는 사탄이 번개불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루가 10, 18)는 말씀과 “내가 하느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들을 쫓아낸다고 하면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임한 것이다”(루가 11,20)는 말씀에 주의를 기울였다. 안병무, 『갈릴래아의 예수』, 121ff.
사탄이 “이 세대”를 지배한다는 것이 예수의 생각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든지 사탄을 축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회복하는 것과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사탄으로 상징되는 현실은 무엇일까? 심원은 사탄을 단순히 종교적 고정관념으로 이해하는 것에 반대하고, “주권화된 이데올로기”나 “구조악”으로 파악할 것을 제안한다. 그것은 “제도의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그 제도를 절대화하는 바탕” 안병무, “오늘의 구원의 정체”,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324.
이다. 이러한 근원적 힘과 대결하기 위해서는 사회개혁 정도로는 안 되고 철저한 혁명을 추구하여야 한다고 심원은 생각했다.

III. 심원의 윤리사상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심원은 자기가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을 성서에 던지고 그 대답에 따라 엄숙하게 행동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그의 사상은 윤리에 대한 관심에 이끌려 왔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자기가 서 있는 자리가 고독한 실존의 자리가 아니라 제도화된 사회 현실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의 윤리사상은 사회윤리적 지향이 강하다. 심원은 독일 신학계에서 전개되는 윤리학의 동향에 매우 예민했으며, 요한네스 메츠, 위르겐 몰트만, 투르츠 렌토르프, 한스 에두아르트 퇴트, 귄터 브라켈만, 도로테 죌레 등의 정치신학, 혁명신학, 사회윤리 등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이와 관련된 글들은 “특별대담(안병무-서남동) 해방과 참여의 신학”, “정치신학의 동향 - 정치신학(1)”, “혁명의 신학 - 정치신학(2)”, “정치적 예배 - 정치신학(3)” 등인데, 이 글들은 『신학평론: 기독교의 개혁을 위한 신학』에 재수록되어 있다.

윤리에 대한 심원의 관심은 여러 측면에서 나타난다. 성서와 설교에 관한 일련의 소논문들에는 성서윤리의 관점과 방법이 드러나고 있거니와, 심원은 탈-향의 실존, 윤리적 판단의 기준, 행위와 양심의 관계, 인권과 민주주의의 옹호, 공(公) 사상을 중심으로 한 세계의 형성 등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갖고서 그 나름대로 윤리사상을 펼쳐 나갔다.

1. 성서윤리

심원은 질문이 언제나 대답을 결정한다는 해석학적 원칙에 충실하게 신학하는 학자였다. 그는 이 원칙에 따라 텍스트와 컨텍스트, 성서와 현장, 사건과 증언을 서로 매개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는 바로 그러한 매개의 방법을 가지고 성서의 메시지와 지금 여기서의 행위를 서로 연결시켰다. “언제나 삶의 현장, 역사의 현장, 사건의 현장에서 질문을 얻어서 그 질문을 성서에 던진다”는 심원의 말은 이를 잘 말해 준다. 그렇게 하면, “성서에서 답이 들려올 때에도 언제나 현장에 의해 성서가 재조명되어 성서의 진리가 새롭게 드러나는 방식으로 그 답이 이끌어내어진다”는 것이다.(안병무, 『민중신학이야기』, 28f.)

이러한 노력은 심원이 아직 민중신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지 않았던 시기에도 나타난다. 이 시기에 그는 성서의 실존적 해석에 입각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답을 얻으려고 하였다. 그것은 나의 실존과 성서가 서로 “대결”해서 성서의 말씀이 지금 여기서 나에게 직접 건네지는 말(Anrede) 안병무, “성서와 설교”, 『신학평론: 기독교의 개혁을 위한 신학』, 293.
이 되게 하는 작업이다. 나는 성서가 나에게 직접 건네는 말씀 앞에서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결단하여야 한다. 그 말씀과 나 사이에는 완충지대가 있을 수 없다. 그 말씀에 삶의 주도권을 주든가, 아니면 그 말씀을 완전히 부정하든가 하여야 한다. 심원은 이와 같은 성서의 주도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문서비평, 양식사, 편집사 등 역사적-비평적 방법에 따르는 엄격한 성서 주석을 요구한다. 그렇게 해서 명확하게 이해된 본문의 내용을 “오늘의 상황의 틀”에 집어넣으면, 오늘의 현실의 문제가 새롭게 인식되기 마련이고, 이 새로운 문제에 대한 답을 본문에서 찾을 때, 성서 본문은 비로소 “지금의 말로서 오늘에 사는 사람에게 하는 말씀으로 번역” 안병무, 앞의 글, 297.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그 말씀 앞에서 결단하고 행동한다. 이것이 심원이 생각하는 성서윤리의 틀이다.
이렇게 보면, 심원은 “본문에서 문제를 찾고 대답을 찾”는 데 그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본문에서 문제를 찾는 일이 전이해에 의해 유도되고 있기 때문에 성서 해석을 이끌어가는 질문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현존재 구조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안병무, 앞의 글, 290.
그것은 인간의 실존과 그 상황에서 제기되는 물음이 결국 성서의 대답을 이끌어내는 기폭제가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면 심원이 성서의 실존적 해석에 마냥 머물러 있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심원은 구조악의 현실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그것에 맞서 투쟁하면서 앞서 말한 사건과 증언의 신학으로 옮겨갔다.
심원이 남긴 무수한 설교들은 성서의 본문이 오늘 나에게, 우리에게 건네지는 말씀이 되도록 하려는 진지한 노력의 결실이다. 이 짧은 글에서 풍부한 예를 들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지만, 심원의 윤리사상에 대한 아래의 서술에서 그 일단이 드러나기를 기대한다.

2. 탈-향의 윤리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성서 본문이 지금 나에게 건네지는 말씀이 될 때, 심원은 그 말씀의 요구에 “예” 하고 복종하든지 그 요구를 철저하게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나의 실존에 대한 성서의 주도성을 인정하는 사람은 성서의 요구에 따라 기존질서나 기득권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새 것을 향해 스스로를 개방하는 삶의 자세를 취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탈-향의 삶의 자세이다.
심원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정착지와 기득권을 버리고 유랑의 길을 떠난 아브라함에게서 탈-향의 삶의 모범을 보고 있거니와 안병무, “탈-향의 인간사”, 60f.
,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 앞에 서 있는 인간에게 탈-향은 엄숙한 결단의 문제로 된다. 심원은 하나님 나라의 임박성을 선포한 예수가 촉구한 “회개”도 바로 이러한 탈-향의 삶을 말한다고 해석한다. 안병무, “하나님 나라”, 351.

그러나 심원은 하나님 나라 도래의 현실 앞에서 탈-향의 결단을 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만찬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밭과 소와 여자의 핑계를 대고 불참하였다는 비유(루가 14, 15-24)를 해석하면서 심원은 그들이 기득권에 대한 집착 때문에 새 나라의 초대에 쉽게 응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기득권에 대한 집착은 정착의 욕구와 안전의 욕구에서 비롯된다. 바로 이러한 욕구가 사람을 기존질서의 노예가 되게 만든다. 그런 만큼 기존질서는 절대적인 것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로 인해 그는 새 것을 향해 자신을 개방하지 못한다. 안병무, 앞의 글, 353.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마태 6, 25-34)을 두고서 심원은 “먹을 것과 마실 것, 그리고 입을 것만 있으면 삶이 보장된다고 생각하므로, 그런 것의 노예가 될 때” 그러한 사람은 삶을 잃게 된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삶은 “하나님 앞에 선 책임적 존재, 그에게 응답해야 할 존재” 안병무, “사람으로서의 삶”, 『성서와 설교: 구걸하는 초월자』, 218.
의 삶이다.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사람은 생활의 안전에 대한 집착에서 탈출하여 하나님의 주권과 정의가 지배하는 세상을 지향한다. 이것이 바로 탈-향의 삶이다. 이러한 삶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하지 말라는 말은 현실 도피나 체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 말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해 염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현실을 변혁하고자 하는 “도전의 결단”을 함축한다. 안병무, 앞의 글, 219.
그렇다면 탈-향의 삶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정의의 원칙에 따라 현실을 형성하는 삶일 수밖에 없다. 나는 바로 이 대목에서 심원이 형성의 윤리를 위한 원칙을 제시했다고 평가한다.
심원이 말하는 탈-향의 삶은 흔들리지 않는 주체성을 지닌 삶이다. 주체적인 삶은 내 주체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는 삶일 것인데, 이러한 주체성을 허락하는 것이 무엇인가가 문제이다. 심원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라는 모티프를 변주하여 하나님을 “오고 있는 미래”로 해석하고, 바로 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과거와 현재에 맞설 수 있는 주체성을 확립한다고 말한다. “오고 있는 미래”는 곧 “역사의 끝”일 터인데, 심원은 이를 “외점”(外點)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옛 현인이 나에게 지구 밖에 디딜 자리를 다오, 그러면 지구를 밀겠다고 말한 것처럼, 심원은 이 “외점”에 발을 디디고 서서 “언제나 계속적으로 기존의 것을 부정함으로써 미래를 향”하는 삶을 살고자 했다. 안병무, “주체성과 신앙”, 『한국 민족 운동과 통일』, 234. 심원은 이 글을 1969년에 썼다.

예수는 바로 이러한 삶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예수는 그 외점에 발을 디디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된 듯한 말과 행동을 감행”했고, “현 체제에서 엄연히 ‘죄인’으로 낙인찍힌 무리들을 스스럼없이 역사의 주인처럼 떠받들었다.” 안병무, 앞의 글, 233.
바로 이러한 예수의 삶이 주체적인 삶이다.
탈-향은 이처럼 나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외점”에 발을 딛고서 기존질서를 끝끝내 문제로 삼고 그것을 총체적으로 극복하는 관점을 뜻한다. 이러한 관점을 가질 때에야 비로소 전통의 영향사에 구속되지 않고 전통 일반을 총체적으로 마주 대하며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이데올로기 비판을 시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투명하지 않은 세상의 구조를 비판하고 변혁하는 해방의 실천을 감행할 수 있다.

3. 사랑 : 선한 행위의 판단 기준

심원은 인간의 행위를 판단하는 기준을 정하는 일을 매우 조심스러워했지만, 이 문제를 한사코 도외시할 수도 없었다. 그는 실정성(實定性)을 띤 법이나 규범에 따라 인간의 행위를 판단하는 일이 위험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의 행위에 대한 판단 기준은 그러한 외적인 측면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심원은 율법에 대한 예수의 입장을 해석하여 이 점을 명료하게 밝히고자 했다.
마르코복음 3장 1-6절에는 예수가 안식일에 한 손 오그라진 사람을 고친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는가를 지켜보고 있었다. 만일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경우에는 안식일에도 치료 행위의 예외가 인정되었지만, 한 손 오그라진 사람의 경우에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의 안식일법 위반을 고발하자 예수는 그들에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고 반문하였다. 이 질문은 안식일에 병을 치료하는 것이 옳으냐를 묻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질문은 법적인 질문이다. 예수의 반문은 법적 질문 대신에 “윤리적 질문”을 함으로써 안식일을 법조항에서 해제시켰을 뿐만 아니라 안식일 자체까지도 “상대화”하였다. 왜냐하면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은 안식일에만 국한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예수는 우리에게 명확한 행위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구체적인 경우에 구체적인 행위를 규율하는 계율이 아니라 “근본적인 규범”이다. 심원은 이 근본적인 규범을 “사랑”으로 본다. 안병무, “혁신과 보수”, 『신학평론: 기독교의 개혁을 위한 신학』, 342ff.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에 관한 말씀(마르 12, 28-34)을 해석하면서 심원은 사랑이 행위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깊이 있게 다룬다. 그는 본문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한다는 것이 같은 동전의 양면처럼 결부되어 있음에 주목한다. 심원은 사랑의 이중계명이 예수에게서 “윤리생활의 기간(基幹)”이라고 말한 뒤에 곧바로 예수는 이 계명으로 “하느님 사랑을 하나의 유명론에 머물지 않게 하고 역사적 대상과 직결시켰다. 이웃을 빼고 하느님을 생각하거나 사랑할 수 없으며, 이웃을 외면한 하느님께로의 직통로는 없게 만들었다”고 덧붙인다. 안병무, “새 출발의 기점”,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129.

심원은 사랑을 말할 때 구체성을 잃을 가능성을 경계한다. 휴머니즘이 말하는 인간애는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인간이라는 추상개념에 페인트칠당해서 그 구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안병무, 앞의 글, 130.
는 것이다. 심원은 성서가 말하는 이웃 사랑을 성격화하기 위하여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루가 10, 25-37)를 즐겨 해석하곤 하였는데, 이 비유에서 이웃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나의 도움을 “지상명령”처럼 요구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을 가리켜 심원은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라고 하고, 그 인간이 나와 관계를 맺는 바로 그 자리에서 “나의 당위를 찾아야 비로소 내 행위도 구체적”으로 된다고 역설한다. 안병무, 앞의 글, 130f.

사랑은 구체성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무한한 헌신성을 요구하기까지 한다. 심원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계명을 “이웃에 너를 개방하라, 내맡겨라”는 뜻으로 새긴다.

“‘사랑하라!’ 그것은 ‘이웃에 너를 개방하라, 내맡겨라’이다. 왜 그런가? 그럴 때만 너는 너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함으로써 내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랑함으로써만 실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랑에는 정지가 없다. 이만하면 됐다가 없다. 이웃에게 나를 개방함으로써 나는 순간순간 그의 요구 앞에 결단함으로써 나를 폐쇄함으로써 자기를 잃을 수도 있고, 나를 살릴 수도 있다.” 안병무, “인간을 말한다”, 『성서의 맥 1: 구원에 이르는 길』, 375.

사실 이러한 구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은 오직 탈-향의 삶의 자세에서만 가능하다. 자기유폐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개방할 때에만 내 앞에 있는 바로 저 사람을 받아들이고, 그의 요구에 호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탈-향의 삶은 사랑의 윤리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 그러한 삶을 결단하는 사람은 유대인의 율법처럼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웃의 요청에 직접 응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 안병무, “의식종교와 사랑 - 안식일 해석의 의미(막 3:1-6//마 12:9-14//눅 6:6-11)”, 『신학평론: 기독교의 개혁을 위한 신학』, 226. 이 글은 1966년에 쓰였다.
이 있음을 예의 주시하면서 사랑이 동인이 되어 자신을 움직이게 한다.

4. 양심과 책임의 윤리

양심은 심원의 윤리사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개념이다. 양심에 해당하는 희랍어 쉰에이데시스(syneidesis)나 라틴어 콘시엔치아(conscientia)가 시사하듯이, 양심은 함께 보고 함께 안다는 어의를 갖고 있다. 양심은 내가 홀로 은밀히 행하는 것을 지켜보는 내 속의 나일 수도 있고, 나를 은밀히 지켜보는 신으로 상징될 수도 있다. 참조: 안병무, “양심과 권력”,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157.
『中庸』에 나오는 군자신독(君子愼獨), 곧 군자는 홀로 있을 때 스스로 삼간다는 말도 양심의 뜻을 잘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심원은 개인의 양심이 기존질서에 안주하는 장치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는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 비판과 프로이트의 심리분석에 기대어 “기성사회의 가치관에 의해 강요된 양심의 가책” 안병무, 앞의 글, 154.
이 갖는 원초적인 문제점을 언급할 뿐만 아니라, “기존 법질서나 윤리관이 양심판단의 기준” 안병무, 앞의 글, 158.
이 되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하기도 한다. 이에 대응해서 심원이 제안하는 것은 사회정의를 기준으로 삼는 사회양심이다. 사회양심은 “내가 직접 그런 결과의 원인이 된 것은 아니더라도 가난한 자, 눌린 자들을 볼 때 가해자적인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저들의 권리를 찾아주기까지 견딜 수 없는 마음” 같은 곳.
이 일어나게 한다. 사회양심은 적어도 기존제도가 허용하고 합법화하는 데 안주하여 편한 마음을 갖지 못하도록 나를 뒤흔들고, 나로 하여금 기존제도로 인하여 희생당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행동할 것을 촉구한다.
그러나 심원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물음에 제대로 답하기 위해서는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산다는 점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대해 심원이 한 말을 직접 들어 보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 그것이 도학자적인 질문이 아닌 한 언제나 구체적 역사현실에서의 결단을 위한 것인데 그것은 대체로 자명하다. (...) 그것은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다. 역사라고 쓴 말은 내가 믿는 ‘하느님’의 대명사다. 그 이름으로 나를 비추어보고 판단하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 그러므로 역사적 현실에서 나에게 명령하는 바를 회피할 도피구는 없다는 신앙을 총체적으로 나타낸다. 민중은 물론 바로 ‘역사’의 실체다. 그러므로 민심은 나를 비추는 가장 구체적 거울일 것이다. ‘민중과 더불어’는 그런 뜻에서 ‘역사 앞에’와 동의어일 수 있으나 ‘앞에서’와 ‘더불어’는 차이가 있다. 그것은 주객의 어느 한 입장에 서서는 안 되고 역사적 연대성과 책임성에서 ‘나’라는 달팽이집 같은 것에 칩거해 버릴 수 없고, 오직 행동만이 있는 숙명성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안병무,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282f.

인용문은 심원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당대의 현실을 살아갔는가를 명료하게 전해준다. 그것은 “민중과 더불어” 불의와 압제, 차별과 배제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하는 삶이며, “역사 앞에” 그 결산서를 놓고 평가받는 삶이다. 탈-향의 삶은 이제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라는 명료한 자의식을 지니게 되었다. 심원은 바로 그러한 삶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 삶은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살아가는 책임적인 삶이다. 바로 이 책임이 행위를 이끄는 동인이 되는 것을 성찰하는 윤리는 책임윤리라 불러야 넘치는 것도 부족한 것도 없을 것이다. 심원은 이런 식으로 책임윤리의 신학적 근거를 놓았다.

5. 정치윤리

심원의 윤리사상에서 가장 풍부한 성과를 자랑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정치윤리이다. 그가 가장 왕성하게 신학 활동을 하던 시기에 우리 민중은 1970년대의 반독재·인권 투쟁을 거쳐 1980년대에 민족자주화, 민주주의, 민족통일의 3대 과제를 총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책임적인 삶을 살기로 다짐한 심원이 정치윤리에서 가장 생산적인 업적을 쌓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심원의 정치윤리는 무엇보다도 하루살이는 거르고 낙타는 삼키는 식으로 횡포를 부리는 법률 만능주의에 대항해서 인권을 옹호하는 데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신독재의 본질은 권력 유지와 민중 지배를 위해 문맥과 상식을 도외시하고 법률을 임의로 제정하여 적용하는 것이었기에 통치자의 자의에 의해 실체화된 법률 지상주의와 그 법에 의해 뒷받침되는 체제 절대주의를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은 인권 옹호와 민중 해방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일이었다.
심원은 예수가 바리새파에 의해 차별과 배제의 법으로 전락한 안식일법과 정결법을 무효화하여 이 인위적인 법에 의해 이른바 “죄인”으로 낙인찍힌 민중을 해방하고자 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예수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 사람은 안식일의 주인이다”고 갈파한 것을 두고서 이를 “최초의 인권선언이며 민주주의 제일장”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하는 법은 법이 아니고, 그러한 질서는 이미 질서가 아니다. 심원은 “그런 질서와 법은 인권을 준 신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한다. 안병무, “민주주의 제일장”, 『성서에세이 1: 불티』,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8, 236f. 심원은 인권이 하나님에게서 직접 유래한 것이어서 절대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창세기 1장 26-27절을 전거로 들었다. 또한 “몸을 죽일지라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것을 무서워 말고 영혼과 몸을 모두 죽이는 것을 무서워하라”는 예수의 말씀(마태 10, 28; 루가 12, 4-5)에서 “영혼”으로 번역된 희랍어 프쉬케가 인권을 지칭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는 안병무, “기독교와 인권과 저항”,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168f.를 보라.

유신독재 시대에 국가 지상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심원은 국가와 권력의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다루었는데, 그가 무엇보다도 강조한 것은 권력의 집중이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안병무, “그리스도교와 국가”,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180f.
그는 왕을 세우겠다는 백성의 요구에 대한 사무엘의 경고(삼상 8, 11-18)를 예로 들면서 왕을 옹립함으로써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전의 노예상태로 되돌아갔음을 지적한다. 왕국은 출애굽 사건을 통해 확립된 “오직 야훼만”의 신앙을 중심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민의 공동체를 이루었던 원시 이스라엘을 무너뜨린 자리에 세워졌다. 설사 외침의 방어와 질서 유지를 위해 국가가 필요악으로 용인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민이 주인이 되어 민권을 실현하는 정치 체제에는 결코 미치지 못할 것이다.
국가 지상주의를 내세우는 독재자들은 국가와 정권을 구별하지 못하고, 권력을 사유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카이사의 것은 카이사에게 돌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돌리라는 말을 앞세워 그들이 차지한 권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독립된 실체로 둔갑시킨다. 심원은 이러한 견해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유대인의 관념에서는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에게 속하는 물질의 일부를 카이사에게 바치는 것을 거부한 데서 젤롯당의 반로마투쟁이 벌어진 것을 감안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된 카이사의 것을 따로 설정할 까닭이 없다. 더욱이 “카이사의 것은 카이사에게 돌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돌리라”는 예수의 어법에서 강조점이 후자에 있다는 점도 감안되어야 한다. 안병무, 『갈릴래아의 예수』, 214.
따라서 정치 권력을 사유화하기 위하여 예수의 말씀을 끌어들이는 것은 오류이다.
심원은 만물의 창조자인 하나님이 만물에 대한 주권을 갖고 있으며, 이것은 권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권력에 대한 주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속한다. 하나님이 보존의 질서를 위하여 국가를 필요악으로 용인하였다고 한다면, 국가의 틀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자는 그 권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된 것임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권력을 행사하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한 가지 일에만 종사하는 권력”이다. 심원은 로마서 13장에 대한 해석에 근거해서 그러한 권력에 가해지는 제한을 분명히 해 두고자 했다. 그 권력은 권선징악을 위해 허락된 것이기에 선을 행하는 자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지 않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 두려움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권력의 행사는 인간의 양심에 배치되어서는 안 된다. 심원은 이러한 권력의 제한에서 출발하여 권력 비판의 기준을 제시한다. “① 하느님을 섬기는 봉사정신이 없고, ② 선과 의를 행하는 자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③ 민의 양심을 짓밟는 권력이라면 하느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안병무, “그리스도교와 국가권력”, 194.

바로 여기에 권력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책무가 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권력의 남용에 대해 예민해야 하고 이를 감시하고 “불의한 권력”에 도전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민을 위한 권력”이 형성되도록 하기 위한 일이요, 그 일을 위해서라면 기독교인들은 수난을 당할 각오마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안병무, 앞의 글, 195.
따라서 심원은 정교분리주의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정교분리주의는 권력 형성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알리바이이거나 권력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도전을 차단하기 위한 헤게모니 전략에 불과하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와 관련해서 기독교인들이 취해야 할 입장은 국가가 교회의 일이나 양심의 문제에 간섭하지 말라는 의미의 정교분리 안병무, “구원이란 무엇인가”,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291.
이지 정교분리주의일 수 없다. 더욱이 인간의 삶이 정치적 차원을 떠날 수 없고, 인간의 구원이 구조악의 타파를 위한 정치적 실천을 거치지 않을 수 없음을 인식한다면, 교회가 정치로부터 퇴각하라는 요구는 어불성설이다.
심원의 정치윤리는 여기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나라 도래의 선포가 갖는 정치신학적 의의를 가장 날카롭게 포착한 신학자이다. 그는 예수가 갈릴래아에 가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언하고 회개를 촉구한 까닭이 무엇인가를 집요하게 물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임박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세상을 다스리는 권력과 세력이 이제 종말을 고하고 하나님의 직접 통치가 실현될 때가 왔다는 선언이다. 따라서 그 선포에 호응하는 사람들은 옛 것의 지배로부터 탈출하여 새 것의 지배로 옮겨가야 한다. 회개는 말하자면 지배의 전환을 받아들이는 일이며, 기존질서에 안주하거나 얽매이지 않고 새 나라의 도래를 향해 나아가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의 하나님 나라 도래의 선포는 “갈릴리의 민중에게 최대의 돌파구를 열어주는 일이며 동시에 로마-헤롯-예루살렘 세력권에는 선전포고와도 같은 것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 안병무, “마가복음에서 본 역사의 주체”, 176f.
이라는 심원의 지적은 정곡을 찌른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을까? 심원은 마르코복음 10장 42-43절을 중시하였는데, 그것은 지배 없는 공동체에 대한 예수의 염원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너희가 아는대로 이방 사람들의 집권자로 알려진 사람들은 백성들을 강제로 지배하고 또 고관들은 세도를 부리고 있다. 그러나 너희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크게 되려고 하면 남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마르 10, 42-43)

상대방의 의지를 꺾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권력이라고 한다면, 그 권력이 행사되는 한 지배는 피할 수 없다. 예수는 인간이 더불어 사는 과정에서 나타난 지배의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고 불변의 질서처럼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본문에서 “이방 사람들의 집권자로 알려진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희랍어 본문에서 그대로 직역하면 “민족들을 지배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인데, 이 표현은 통치자들이 본래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권력을 찬탈한 세력임을 시사한다. “주인으로 민에 군림할 수 없는 것들이 자기에게 속하지 않은 권위를 자기 것인 양 민에게 행사한다” 안병무, 『갈릴래아의 예수』, 212.
는 것이다. 예수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로써 당대의 정치체제를 비판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처럼 인간이 권력을 가지고 인간을 억압하고 짓밟는 체제와는 전혀 상반되는 현실” 안병무, 앞의 책, 112.
임을 드러내고자 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심원의 급진적 민주주의 이념이 드러난다. 그는 하나님과 민 사이에 국가나 권력 기구 같은 것이 설치되지 않는 세상,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민이 그들의 삶과 관련된 일들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민권을 실현하는 세상을 가리켜 민중이 주인되는 민주주의 사회라고 지칭한다.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202ff., 246.
인간이 더불어 사는 한, 정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지만, 그것은 지배를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 심원은 이러한 자신의 신념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였다.

“먼저 민중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는 모든 지배자가 물러나고 체제가 변혁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새 것이 온다. 그 다음은 민중이 알아서 하는 것이다.” 안병무, “한국적 그리스도인상의 모색”, 29.

바로 이 대목에서 머리말에서 언급한 크리스티네 린네만-페린의 지적에 대해 한 마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기존질서와 제도에 대한 지나치게 부정적인 태도가 “형성의 윤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그녀의 지적은 위에서 분석한 심원의 정치윤리에 비추어 볼 때 별 근거가 없다. 유신체제와 광주학살, 그리고 계속되는 군부독재에 대한 심원의 비타협적인 단호한 부정이 권력과 제도 일반을 무조건 부정한다는 인상을 불러일으켰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 할지라도 심원은 필요악으로서의 국가를 어떻게 규율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였고, “민을 위한 권력”을 형성하기 위한 방책을 놓고서 고민했다. 그는 오직 민주주의 질서가 회복되고 나서야 비로소 민중이 주축이 되어 정치를 새롭게 형성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고, 이를 위해 독재를 타도하는 정치적 실천에 충실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형성의 윤리”를 부정하는 태도가 아니고, 잠정적인 보존의 질서인 국가의 틀에서 민중의 주권이 실현되는 세상을 형성하기 위한 방략이었다.

6. 공(公)의 윤리

머리말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심원은 이미 1967년에 하나님의 주권과 공(公) 개념을 중심으로 해서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는 데 기독교가 기여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그는 그러한 노선을 가리켜 자본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닌 제3의 길, 사회주의라고 해도 일차적인 사회주의가 아니고 이차적인 사회주의, 곧 “기독교 사회주의” 안병무, “한국 사회와 기독교 대학의 방향”, 219.
의 길이라고 불렀다. 그 당시 심원은 토지 공 개념을 확립한 뒤에 다른 기득권에도 변화를 가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하나님 나라 운동의 역사적 핵을 분석하고 그 나라의 실상을 명료하게 밝히면서 공 개념을 보다 구체화할 수 있었다. 예수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였을 때, 예수와 그의 민중은 그 나라의 현실이 어떤 것인가를 자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것은 원시 이스라엘에서처럼 직접 민주주의와 생산수단의 비소유적 점유권이 실현되는 참여와 협동의 세상이다. 원시 이스라엘을 관철하는 “오직 야훼만”의 신앙은 만물에 대한 야훼의 주권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안병무, 『민중신학이야기』, 203ff.
땅은 야훼의 것이니 그 땅은 그 누구도 사유화할 수 없다. 그 땅을 맡아서 경작하는 사람은 그 땅의 “식객”에 불과하다.(레위 23, 25) 따라서 땅을 자기 것인 양 여겨서 그 땅의 대한 절대적 지배권을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권력도 야훼의 것이다. 따라서 권력의 독점이나 사유화는 인정될 수 없다. 원시 이스라엘에서 왕을 세우지 않고 판관을 제비로 뽑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권력의 독점과 동반해서 나타나기 마련인 물질과 부의 독점이나 편중도 용인될 수 없다. 원시 이스라엘에서는 각 가문이 땅을 분배받아 점유하는 단위가 되어 자급자족의 원칙에 따라 살림을 꾸려나갔기에 원칙적으로 부의 독점이나 편중이 발생할 수 없었다.
심원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에게” 돌릴 때, 따라서 공(公)을 공(公)으로 인정할 때 땅과 권력과 물질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민주적으로 통제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으리라고 전망한다. 그가 말하는 공(公)은 “아무도 사유화할 수 없는 것, 모두를 위한 것이면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소속될 수 없는 것” 안병무, 『갈릴래아의 예수』, 206.
이다. 그레서 그것을 일러 “하나님의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에게” 돌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것”을 찬탈하여 자기 것으로 삼는 죄가 오늘 어떤 형태의 구조악으로 나타나고 있는가를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안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심원은 공(公) 개념을 구현하는 프로그램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는 그러한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일과 관련하여 계급의 문제와 물질의 문제에 대한 “기본적 인식의 혁명”을 촉구하였고 안병무, “한국 그리스도인상의 모색”, 29.
, 기독교가 제 소임을 다 하지 못하는 동안에 맑스주의가 기독교가 할 일을 대신 하였다고 말함으로써 구조악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방향을 시사하기도 하였다. 안병무, “새 세계의 건설자”, 『성서의 맥 3: 생명을 살리는 신앙』, 292f.: 기독교와 맑스주의는 “‘인간의 해방’이라는 동일전선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 궁극적인 목적은 참 자유의 현실이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세계의 역사적 비전을 실현하는 방법과 그 프로그램을 지식인이 앞장서서 마련하여 민중에게 주는 일을 위험한 일로 생각했고, 그런 작업이 지식인의 혁명적 독재를 통해 민중 권력을 찬탈하는 데로 나갈 수 있다고 여겨 이를 한사코 경계했다 이러한 견해는 예수조차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안병무의 단언에서 잘 엿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안병무, “마가복음에서 본 역사의 주체”, 『민중과 한국신학』,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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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러한 역사적 비전을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이 민중에게 있음을 확신했고, 그 비전을 구현하는 방안을 고안해내는 민중의 능력을 신뢰했다.

III. 평가와 전망

이제 본 연구 논문을 마치면서 심원의 민중신학과 윤리사상을 평가하고 그 전망을 밝히기로 한다.

1. 심원의 민중신학과 윤리사상은 오늘의 현실에서도 생명력을 갖고 있을까? 요즈음 사람들은 더 이상 “민중”을 말하지 않는다. 민중 대신에 “시민”을 말하고, 민주화를 말하지 않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말한다. 확실히 시대가 달라졌다.
그러나 심원이 발견한 “민중”은 이미 오래 전에 소멸되었기에 더 이상 그 “민중”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민중”은 지금도 우리 앞에 있는데 우리의 눈이 멀어서 그 “민중”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혹시 “민중”이라는 말이 불러일으키는 거슬림이 내게서 “민중”과 관련된 경험을 축출하여 망각의 늪 속에 가라앉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민중”을 나의 의식으로부터 배제하여 망각시키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탁월한 분석으로는 김진호, “고통과 폭력의 신학적 현상학 - 민중신학의 당대성 모색”, 『안병무 신학사상의 맥 II』, 心園安炳茂先生 기념사업위원회 편,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6, 240: “이웃의 고통을 타자화하는 감각의 마비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민사회의 병리성을 망각하게 하고, 호혜성에 자긍심을 품게 한다.”

기득권에 안주하고 비본래적인 것이 삶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생각하여 그것에 노예로 붙잡혀 있는 삶에 대한 심원의 고발과 질책은 오늘 우리의 가슴을 여전히 서늘하게 만들지 않는가?

2. 경제의 지구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정보 혁명으로 인해 문화간 접촉과 혼융이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오늘의 상황에서 심원이 발견한 “민중”은 겉모습은 달라도 거의 같은 실상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국가 지상주의로 인해 억눌리는 사람들은 더 이상 없지만, 국가를 통해서 관철되는 자본 권력과 문화 권력에 의해 주체성을 박탈당하고 삶의 기회를 빼앗기고 주변으로 밀려나고 차별과 배제의 대상으로 전락한 사람들이 우리 앞에 있다. 그들은 권력에 의해 훈육되고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그들은 서로 단결하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하도록 개인화의 마법에 홀렸다. 그들은 서로 분산되어 있고 단절되어 있으면서도 이미지와 환상의 소통을 통해서 서로 결합되어 있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나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심원의 신학과 윤리사상을 새롭게 음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신앙의 외점(外點)을 통해 주체성을 확립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했다. 그는 흔들리지 않는 주체성을 갖고서 자기유폐와 정주지를 탈출하여 유목민처럼 세상을 횡단하며 역사의 끝을 향해 스스로를 개방하는 탈-향의 삶을 말했다.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 앞에서 지금 내게 익숙한 삶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것을 박차고 나와서 참된 자유와 참된 연대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방향을 전환하는 일은 오늘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과제가 되었다.

3. 심원은 예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진상을 밝힐 수 있다고 보았고, 이 분야에서 독창적인 업적을 쌓았다. 하나님 나라의 불가지론을 극복하고 그 나라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임을 밝힌 것은 여전히 의미심장하다. 지배 없는 공동체에 대한 비전과 공(公)을 공(公)으로 돌리는 세상에 대한 전망은 지구적 차원의 네트워크 세상이 등장하는 요즈음 매우 절실한 주제가 되었다. 권력과 물질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이를 민중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다면, 지구적 차원에서 구현된 자본과 문화 권력 아래서 민중의 주체적인 삶은 철저하게 부정될 것이다. 국가의 경계를 가로질러 살아가는 유목민들의 지구적 시민권을 인정하고 사람의 얼굴을 가진 만인의 기본소득권을 보장하고 자본의 성과에 대한 민중의 지배권을 구현하는 세상 이와 관해서는 마이클 하트/안토니오 네그리, 『제국』, 윤수종 역, 서울: 이학사, 2002, 502f.를 참조하라.
은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에 관한 심원의 구상 속에 이미 잉태되고 있었다. 나는 이 점을 평가한다.

4. 심원은 구조악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생각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일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한 신학자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우리나라에서 사회윤리적 사유의 선구자라고 지칭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현실 앞에서 세상의 문제로부터 도피하거나 체념하는 일을 경계하고 악조건 속에서도 세상이 하나님 나라를 향해 투명해지도록 최선을 다해 실천했던 신학자였다. 물론 그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을 서로 매개하면서 제도를 규율하는 사회윤리적 사유를 체계 있게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의 학문적 관심을 넘어서는 과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회윤리의 성서적-신학적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사회윤리의 발전을 위한 초석을 놓았다고 할 수 있다.

5. 심원의 윤리사상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참으로 크다. 그가 시도한 성서윤리의 관점과 방법은 앞으로도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그가 윤리적 판단 기준으로 제시한 사랑의 구체성과 철저성은 기독교 윤리의 거점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되묻게 할 것이다.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한 그의 삶은 신앙과 그 실천의 통일이 얼마나 엄숙한 결단과 책임의식을 필요로 하는가를 잘 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