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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6 (17:10) from 203.252.23.252' of 203.252.23.252'	Article Number :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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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힌리히 비헤른의 복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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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힌리히 비헤른의 복지 사상

강원돈

I. 머리말

독일 개신교의 사회복지 사상을 정립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내방선교(Innere Mission)가 이룩한 업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내방선교는 마르틴 루터의 복지 사상과 경건주의자들의 복지 사상을 수용하여 독특하게 발전시켰으며, 그 중심인물은 요한 힌리히 비헤른(Johann Hinrich Wichern)이었다. 비헤른의 복지 사상은 내방선교의 설립과 활동을 규정했으며, 독일의 사회적 개신교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비헤른의 촉구로 1849년에 결성된 내방선교는 협회라는 법적인 형태를 취하며 제도교회 바깥에서 19세기의 사회 문제에 대응하는 사랑의 실천을 조직하였다. 독일에서 사회국가가 확립되기 시작한 19세기 말에는 사회복지 정책을 수립하는 데 영향을 미쳤고, 사회국가 원칙을 구현한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민간복지에 대한 국가복지의 보완 원칙에 따라 독일의 사회 복지 제도의 필요 불가결한 일부분이 되었다. 오늘의 독일 교회에서 내방선교의 정신과 실천을 계승한 독일개신교봉사국(Diakonisches Werk der Evangelischen Kirche in Deutschland)은 사회국가 독일의 복지제도를 떠받치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내방선교의 사회복지 사상과 실천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비헤른의 복지 사상을 분석하고 이를 평가하고자 한다. 비헤른의 복지 사상을 제대로 음미한다면,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한국 교회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가다듬는 데 참고할 만한 좋은 자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비헤른의 복지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마르틴 루터의 교회 디아코니아 유산과 경건주의자들의 봉사 정신이 비헤른에게 어떻게 수용되었는가를 살필 필요가 있다. 이에 관한 검토는 본 논문의 II장과 III장에서 수행될 것이다. 본 논문의 제IV장에서는 비헤른의 복지사상의 얼개와 복지 실천의 구상을 몇 가지 측면에서 집중적으로 조명할 것이다.
이제 비헤른의 사회복지 사상에 영향을 준 마르틴 루터의 유산을 점검하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하자.

II. 마르틴 루터의 유산

마르틴 루터에게서 이웃을 위한 봉사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비롯된다. 그리스도인은 자유인으로서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지만, 바로 그러한 자유인으로서 모든 사람의 종이 된다. 이와 같은 역설은 하나님의 인의(認義) 행동으로 인해 가능해진다. 하나님은 불의한 자를 의롭다 인정함으로써 그 분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하였으며, 그 하나님의 신성은 가난한 사람들, 멸시받는 사람들, 곤경에 처한 사람들, 탄식하는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배려에서 드러난다. 마르틴 루터는 이러한 생각을 십자가 신학으로 가다듬었다. 십자가 신학에 따르면, “하나님은 오직 고난과 십자가에서만 발견된다.” 그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그 분과 바른 관계를 맺는 백성을 고난받는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도록 이끈다. 여기서 인의와 십자가 신학과 제자직의 연결고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루터는 세례와 성만찬의 해석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을 계약공동체와 연대공동체로 인식하였다. 세례는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계약으로서 포괄적인 계약공동체로 이끌어간다. 그 가운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계약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하고, 교회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계약공동체의 일원에 대하여 특별한 책무를 진다.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동참하는 의식이다. 성만찬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눔으로써 서로 함께 나누는 삶의 공동체를 구성하게 하고 이를 표시하게 한다. 성만찬을 나누는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런 유보 없이 연대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이런 점에서 세례공동체와 성찬공동체로서의 교회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형제들과 자매들을 위한 봉사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상업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시작했던 시기에 활동했던 루터는 그 당시 널리 퍼져 있었던 유랑 걸식에 단호하게 반대하고, 그것을 조장하는 탁발 수도 관행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러나 그는 상업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에서 거덜 난 사람들의 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었다. 그는 그 당시 년 30%에 달하는 고리대금업과 매점매석 등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가난의 굴레를 뒤집어써야 하는 상황을 예의 주시하였고, 이를 비판하는 많은 팜플릿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교회의 관할 구역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금고를 설치할 것을 권했으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라이스닉 금고규정(Die Leisniger Kastenordnung)이다. 루터는 이 공동 금고 규정에 서문을 덧붙여 출판하였는데, 여기서 그는 교회 회중을 형제적 공동체로 인식하고 이 공동체의 봉사적 차원을 강조했다. 다른 곳에서도 루터는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의 심판에 관해 스스로 알린 바와 같이(마태 25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고 섬기는 기독교적 사랑보다 더 큰 예배는 없다”고 말하면서 교회의 봉사적이고 공동체적인 행위능력을 강조했다.
라이스닉 금고규정은 교구, 교회, 특별예배, 형제단, 자선, 유산 등 일체의 수입을 모아놓는 공동금고의 설치를 명하고 있다. 이 금고는 예방적이고 시의적절한 구호의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운영된다. 교직제도와 학교의 운영을 뒷받침하는 것 이외에 이 금고는 걸식을 뿌리 뽑기 위하여 쓰여야 한다. 교구에서는 걸식 금지가 선포되어야 하고, 노동 능력이 있는 거지는 노동을 하도록 하여야 하고, 노동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 과부들과 고아들, 폐질환자들과 노인들, 생산수단이 없는 수공업자들에게는 형제적 구호를 제공하여 걸식의 뿌리를 제거하여야 한다. 이방인들은 일단 이러한 구호조치에서 배제된다. 금고의 운영을 위해 교인총회에서 10명의 이사들을 선출하는데, 이들은 다른 곳에서는 집사(Diakon)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 가운데 2명은 귀족들로, 2명은 시의회 의원들로, 3명은 도시 주민들로, 3명은 농촌의 농민들로 구성된다. 금고 운영 이사회는 금고 운영에 관해 교인총회에 책임을 진다. 공동금고의 운영은 “세상의 손들”에 맡겨져 있지만, 금고 제도는 결코 시의 한 기관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것은 금고가 교회 안에 설치되어 있었다는 데서 드러난다. 루터 시대에는 법적으로 독립된 개교회가 없었지만, 교회가 설치된 교구는 지방단체의 관할구역과 대체로 일치하였기 때문에 공동금고의 설치는 기독교적 사랑의 에토스를 생활공동체의 영역에서 구현하고, 노동을 꺼려하는 풍토를 공동체에서 불식시키는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루터는 봉사직을 강조하였지만, 구원의 수단을 전달하는 직책 곧 성직과 동일한 위치에 놓지 않았다. 봉사직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세상의 권력과 성직의 권한이 서로 협동하는 형식을 취한다. 루터의 금고규정에서 금고 이사나 빈민구호자는 정치단체에 속하는 사람들이며, 이들이 신약성서에서 말하는 집사와 동일시되고 있다. 따라서 이 집사직의 임무는 목회적 성격을 띠고 있으나 그 작업의 내용은 세속적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루터의 금고규정은 그의 두 왕국론의 틀에서 해석될 필요가 있다. 두 왕국론에 따르면, 교회는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고, 국가는 법과 칼로써 세상의 질서와 평화를 구현하여야 한다. 교회의 일과 국가의 일을 서로 구별하는 이러한 관점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구휼과 같은 봉사적이고 공동체적인 책임은 시민공동체와 주권자의 관할영역에 속한다고 생각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점차 굳어지게 되었으며, 교회는 세속의 영역에서 한 걸음 더 물러나게 되었다.
따라서 도움을 베푸는 시민공동체의 이상을 제시한 루터의 입장은 근대 복지국가 사상의 초석을 놓았다고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교회가 순수한 말씀의 선포와 교회 내의 구휼 활동에 머무는 동안에 교회 바깥의 사회생활은 절대주의 국가의 관료들에 의해 복지경찰 제도의 틀에서 규율되기 시작하였다.

III. 경건주의자들의 복지 사상

경건주의는 절대주의 국가의 등장, 국가 이성과 목적합리성의 지배,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과 상승, 자연법과 이성주의 원칙에 입각한 입법, 인본주의적 윤리의 확산이라는 시대의 조류에 대항하여 원기독교의 이상에 따라 교회와 기독교를 개혁하려는 하나의 운동이었다. 이런 점에서 경건주의를 가리켜 “원기독교를 오늘에 재발견하고 그것을 육적이고 사회적인 표현형식에 이르기까지 재현”하려는 운동이라는 지적은 정곡을 찌른 것이다. 경건주의는 하나님 사랑에서 비롯된 이웃 사랑의 계명에 따르는 사랑의 운동으로 성격화될 수 있는데, 여기서는 필립 야콥 슈페너,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 친첸도르프 백작과 헤른후트 형제단의 예를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1. 필립 야콥 슈페너

필립 야콥 슈페너(Phillip Jakob Spener 1635-1705)는 나태하고 타락한 교회를 갱신하기 위해 교회 안에 참된 교회(ecclesiola in ecclesia)를 세우고자 노력하였고, 그 교회는 중생을 통해 새로워진 개개인으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중생은 전적으로 새로운 종류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 새로 태어난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기에 자신의 고집을 꺾고 영적인 재화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이웃을 사랑한다.
바로 이와 같이 전적으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이 경건한 사람들의 동료집단(collegia pietatis)이요, 그것이 곧 교회 안의 참된 교회이다. 슈페너는 1670년에 결성된 경건주의자들의 프랑크푸르트 그룹의 경험을 살려서 거듭난 사람들의 공동체를 그리스도인들의 자유로운 결사체로 형성하고자 했으며 만인사제직에 근거하여 성직과 평신도의 구별을 상대화하고자 했다. 이 공동체는 빈부의 격차를 극복하고 청지기 정신으로 재화를 유무상통한다.
슈페너는 천년왕국 사상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 안에서 구현될 것을 희망하였으며, 이 희망을 품고서 보다 나은 교회를 형성하고, 이와 같은 교회의 갱신을 통하여 보다 나은 세계를 형성하고자 하였다. 하나님을 참되게 믿는 개개인들은 사랑과 희망으로 가득차서 세상 안에서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 행동 가운데서 가장 으뜸가는 것은 하나님이 명하신 이웃 사랑이다. 개인의 영적인 사제직은 이웃을 위한 봉사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취한다. 이웃을 위한 봉사에는 영적인 봉사와 육적인 봉사가 있다. 영적인 봉사는 이웃을 구원의 길로 이끄는 일이고, 육적인 봉사는 이웃의 육적이고 사회적인 곤경을 제거하기 위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슈페너는 영적인 봉사가 육적인 봉사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육적인 봉사를 경시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슈페너는 가난을 극복하는 일과 관련하여 근대 국가가 맡아야 할 책임을 중시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국가가 가난을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빈민구호의 체계를 마련할 것을 촉구할 책무가 있다. 국가의 공무를 맡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일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슈페너의 입장이 결실을 맺은 것이 베를린 빈민 개혁인데, 이 개혁안의 핵심은 절대주의 국가 시대에 널리 행해졌던 걸식 단속과 처벌 등 빈민에 대한 경찰중심의 억압적인 조치를 지양하는 것이었다. 독일에서 최초로 구상되어 1695년 베를린 선제후에 의해 칙령으로 반포된 이 방안은 근대 독일의 빈민법의 골간을 형성하였다.

2.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August Hermann Franke 1663-1727)는 회심의 경험을 강조하는 할레 경건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슈페너의 주선으로 할레대학교 교수와 할레 교외의 한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봉직하던 프랑케는 1695년 소자본을 갖고서 빈민학교와 고아원을 설립하였으며, 이 시설들을 성공적으로 경영하여 학습과 실습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종합학교로 성장시켰다. 이 종합학교는 할레 시 인구의 5퍼센트가 종사할 정도로 대규모로 발전하였으며, 귀족들과 프로이센 선제후의 후원을 받았다.
그의 교육은 근본적으로 프로이센 왕국의 신분 질서에 맞추어 지배 계급의 교육과 일반 시민의 교육을 구별하였으며, 특히 일반 시민의 교육은 경건성의 함양과 유용한 기술의 습득을 통합하여 경건한 직업인을 육성하는 것을 그 목표로 삼았다. 프랑케에 따르면, 사회적 분업을 이루고 있는 직업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존립하는 국가 유기체의 일부이기에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직업 노동을 수행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공동체 전체를 섬길 수 있도록 각 사람에게 적합한 직업을 정해주셨다. 따라서 경건한 사람은 나태에 빠져서는 안 되며, 자신의 능력과 소질에 따라 공동체 전체의 복지를 위하여 일을 하여야 한다. 경건과 성실한 직업 노동을 결합시키려는 교육 이념에 따라 프랑케는 종합학교 학생들에게 오전 5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종교 활동 시간을 제외하고서는 오직 1시간의 자유 시간만을 허용하여 나태를 경계하였다고 전해진다.
프랑케는 사람들을 변화시켜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목표 아래 강력한 선교지향성을 보였는데, 그는 교회의 설립보다는 교육 기관의 설립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때문에 프랑케는 기관(Anstalt) 중심의 봉사 및 선교 운동의 선구자로 꼽힌다.

3. 친첸도르프 백작과 헤른후트 형제단

친첸도르프와 포텐도르프의 제국백작 니콜라우스 루드비히(Nikolaus Kudwig von Zinzendorf und Pappendorf 1700-1760, 이하 친첸도르프 백작으로 약칭)는 루터의 십자가 신학을 통해 경건주의의 신학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 신학을 통해 그는 성령주의적 경건주의의 유혹도 견뎌내고, 계몽주의적 이성주의의 도전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공동체 형성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러한 관심은 헤른후트 형제단과의 만남을 통해 심화되었다.
헤른후트 형제단은 후스파의 후예들로서 보헤미아와 메랜 지역에서 가톨릭 반종교 개혁의 탄압을 받고서 피난민의 처지가 되었을 때 친첸도르프의 허락으로 그의 영지인 베르텔스도르프에 집단촌을 이루며 살았다. 그 영도자 크리스티안 다비드(Christian David 1691-1751)는 국교회에 반대하는 분파주의적 경향을 강하게 띠었으나, 친첸도르프는 헤른후트 형제단을 베르텔스도르프 루터교에 가입하게 하고 국교회 예배에 의무적으로 참석하게 하였다. 또한 그는 헤른후트 형제단이 나름의 정체성을 간직할 수 있도록 독자적인 교회 규약에 따라 장로직을 유지하고 그들 고유의 찬송가를 부르고 축일을 지키게 했다.
친첸도르프는 믿음이 공동체라는 경험적 형태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공동체 수립을 통해 경험되고 가시화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는 신약성서가 증언하는 형제적 공동체를 기독교 세계에 회복해야 할 임무를 지닌다고 생각하였다. 바로 이러한 생각이 잘 집약된 것이 헤른후트 형제단의 교회 규약(1727)이다. 이 교회 규약은 회중이 성서를 들음으로써 형제 사랑을 하도록 일깨우고, 소규모 집단을 이루어 서로 영적으로 돌보고, 화해와 사귐을 성찬의 선물로서 경험할 것을 촉구한다. 헤른후트 형제단은 하나님의 통치내지는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공동체로서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강력한 자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형제자매라는 이름, 엄격한 양성 구별(兩性區別), 평신도 활동의 강조, 상호간의 목회와 교화, 애찬(愛餐), 세족(洗足), 평화의 입맞춤, 자발적인 빈민구호와 병자간병, 손님환대 등을 통해 표현된다.
헤른후트 형제단은 내적으로 아주 잘 조직된 공동체였다. 형제단은 목회의 관점에서 성별, 연령, 결혼 여부에 따라 회원들을 대(隊)로 나누고, 이를 다시 중간 규모의 단(團)과 소규모의 반(班)으로 나누었다. 이러한 조직의 원칙은 신뢰관계 속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공간으로서 작은 공동체의 형식을 규정하는 것이었으며, 그 목표는 상호간에 전인적인 도움과 돌봄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헤른후트 형제단은 공동체 안에 감독직, 목회직, 집사직 등 세 가지 직책을 두었는데, 이 직책들은 교인들이 곤경이나 환란이나 부족상태에 빠졌을 때 이들을 주도면밀하게 돕고, 이들의 기쁨과 지복을 위해 돕는 일꾼으로서 섬기기 위해 제정된 봉사직이다.
이처럼 헤른후트 형제단은 형제적 사랑의 공동체로서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매우 잘 조직된 섬김의 공동체를 이루었으며, 이것이 후대의 내방선교 운동에 좋은 참고자료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IV. 요한 힌리히 비헤른의 복지 사상과 실천

요한 힌리히 비헤른(1808-1881)은 독일의 디아코니아 역사에서 가장 걸출한 사상가이자 실천가였으며, 내방선교(Innere Mission)의 설립자이다. 에리히 바이로위터는 비헤른을 가리켜 “자비의 천재”라고 했는데, 과연 그는 당대의 내외 상황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 기독교의 사랑의 행위를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전개하는 데 천재적인 역량을 발휘하였다.

1. 19세기의 사회 문제

비헤른이 활동하기 시작하였던 시대는 이른바 “19세기의 사회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하던 시대였다. 19세기 사회 문제의 핵심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대두였다. 공장제도가 확산되면서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적 기업가들의 지배 아래서 억압과 수탈을 당했으며, 노동시간과 휴일 등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법률은 아직 제정되어 있지 않았다. 이들은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렸고, 아동과 부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농촌을 떠나 공업도시에서 슬럼을 형성하였고 값싼 노동력의 공급원이 되었다. 그들은 좁은 방에서 10명 이상이 한데 모여 지푸라기를 덮은 채 잠을 자야 했고, 대부분의 어린아이들은 돌보는 사람 없이 거리에 내버려지기 일쑤였다. 특권을 향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들의 증오는 끝 갈 데 없이 커졌고, 노동자 계급의 영적, 도덕적 상태는 매우 나빴다.
19세기의 사회 문제를 폭발적으로 드러낸 결정적인 사건은 1848년의 혁명이다. 이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등장 이래 부르주아 사회 내부에서 부글부글 끓어왔던 모순의 정체를 분명하게 인식시켰으며, 혁명이 발발하기 이전에 불안을 소화하기 위해 제시되었던 낭만주의적 과거 회귀나 사회적 곤경을 미래의 진보적 유토피아를 위한 산고로 해석한 부르주아적 환상을 일거에 의문시하게 만들었다.

2. 비헤른의 초기 활동

비헤른이 당대의 국가와 사회를 뒤흔들고 뒤집어엎을 것 같은 1848년 혁명을 겪으면서 독일 교회에 내방선교를 촉구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사랑의 실천을 조직하기 전까지 그는 오랜 준비 기간을 보냈다. 그는 이미 1833년 함부르크에서 버림받은 청소년들을 위한 보호시설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라우에스 하우스(Rauhes Haus)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이 청소년 보호시설에서 비헤른은 자신의 독특한 사회교육 모델을 구축했다. 그는 한편으로 루터의 자유론에 입각하여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게 된 개개인은 행위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의무를 자각하고 하나님의 뜻과 공동체 규율에 스스로 복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또 다른 한편으로 그는 경건주의 신앙에 기반을 둔 개인교육의 원칙에 서서 교육에서 주객도식을 극복하기 위해 애썼다. 그는 버림받은 청소년을 위한 사회교육의 개척자로서 12-14명의 청소년들을 가족 단위로 묶고 경건의 훈련과 노동 기술의 습득을 통일시키는 교육 모델을 선보였다. 그는 이와 같은 청소년 보호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청소년에 대한 형벌 집행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그의 관심은 버림받은 청소년들에게만 한정되지 않았다. 그는 일터를 찾아 여기저기 떠도는 수공업자들, 만성질환자들, 버림받은 노인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 기독교적 돌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식하였고, 이들을 섬기는 동료들을 훈련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엄격한 가입조건을 충족한 사람들을 라우에스 하우스에 받아들여 봉사를 위한 훈련을 받게 하였고, 이들을 “형제들”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봉사를 하기 위하여 모인 형제들은 독일 개신교 역사에서 최초로 디아콘(Diakon)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 비헤른은 1843년부터 그 자신과 “형제들”의 활동을 “내방선교”라는 낱말로 표현하기 시작하였으며, 1844년부터는 “날아가는 삐라”(Fliegende Blaetter)라는 간행물을 발간하여 사회적 곤경을 알리는 글들을 싣고 교회의 상황과 개신교인들의 사랑의 행위를 널리 알렸다. 비헤른은 이 간행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파하였고, 돕는 교회의 모델을 제시한 실천사상가로서 명망을 얻기 시작하였다.

3. 내방선교 구상의 신학적 근거

비헤른이 구상한 내방선교는 그의 독특한 역사신학에 근거한다. 그는 창조로부터 그리스도의 구원을 거쳐 마지막 종말에 이르는 전 역사를 구원사와 세계사의 갈등과 대립으로 본다. 그 갈등과 대립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의 투쟁이며, 역사는 이 투쟁을 통하여 전진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투쟁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이 부름을 받는 순간이 구원사에서 일어나는 결단의 시간이요, 은혜의 시간, 곧 카이로스이다.
이러한 역사신학적 관점에서 비헤른은 당대의 세계에서 하나님이 창설한 가정과 국가와 교회의 질서가 19세기 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공산주의자들에게 근본적으로 도전받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1848년에 쓴 “프롤레타리아트와 교회”라는 팜플릿에서 공산주의는 빈부대립에 대한 “분노의 열망을 일종의 체계로 만들고 이를 진리의 겉모습을 취하게 해서 정당화한다”고 진단하고, 반그리스도적이고 무신론적인 공산주의와 교회 사이에는 해소할 수 없는 대립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상업과 공장에서 일하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공산주의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은 교회의 당연한 과제이다.
구원사와 세계사의 투쟁에서 잊어서는 안 될 것은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인들의 세계를 다스리는 주일뿐만 아니라 세상의 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두 영역에서 벌어지는 그리스도의 활동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개념으로 총괄된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도록 부름을 받았다면, 그것은 그들이 교회를 위하여 일해야 할 뿐만 아니라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도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바로 이것이 비헤른이 내방선교를 말할 때 염두에 두었던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을 구현할 수 있는 교회는 당대의 국교회나 영주교회가 아니라, 독일 국민 전체를 말씀의 선포와 사랑의 섬김으로 구원의 길로 이끌어가는 국민의 교회라고 비헤른은 생각하였고, 오직 내방선교만이 이러한 국민의 교회를 형성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당대의 독일 루터교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반영한다. 독일 루터교회는 영주 교회 혹은 국교회로서 관헌국가의 기관이었다. 왕관과 제단의 동맹은 엄연한 현실이었고, 영주나 왕은 교회의 수장(summa episcopa)이었다. 독일 개신교회는 유아세례를 통하여 신민을 교적부에 그리스도인으로 등재하였고 영주를 위하여 신민을 교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 교회는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참된 신자들을 얻지 못했으며, 사랑과 헌신은 오직 입술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비헤른은 이와 같은 기관 형태의 제도교회가 보이는 불모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루터가 역설한 만인사제직의 의무와 권리를 깨닫고 있는 신실한 개개인의 자발적인 봉사에 희망을 걸었다. 만인사제직은, 성직자와 평신도의 위계질서를 전제하면서 평신도를 비주체적인 대상의 지위에 머물게 하는 제도교회의 틀에서 벗어나, 안수받은 사람들과 성직자들 없이 성령으로부터 받은 은사에 따라 일하는 자발적인 봉사자들의 결사체에서 구체적인 사회적 형태를 취한다.

4. 내방선교의 과제와 원칙

1848년 혁명이 발발하자 영주 교회로 뿔뿔이 흩어져 할거하던 독일 루터교회는 모리츠 아우구스트 폰 베트만-홀벡의 소집에 따라 동년 9월 21-23일에 비텐베르크 궁정교회에서 교회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의 주의제는 모든 루터교 주교회들을 망라하는 독일민족교회의 결성이었지만, 각 교회의 신조를 훼손하지 않고서 교회동맹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9월 23일 오후에 비헤른은 내방선교에 대한 자신의 오랜 생각을 역사적인 즉석설교의 형식으로 발표함으로써 청중을 사로잡았고, 내방선교를 앞으로 새롭게 결성될 교회동맹의 과제로 삼을 것을 제안하였다. 이 즉석설교의 백미는 다음의 문장에 담겨 있다.

“나의 친구들이여! 개신교회 전체가 인식하여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내방선교의 일이 곧 나의 일이다’는 것이 그것이다. 내방선교는 그 활동을 총괄해서 요약하는 모토를 갖고 있다. 그것은 나에게 믿음과 사랑은 하나라는 것이다. 구출하는 사랑은 내방선교의 위대한 도구여야 한다. 내방선교는 그것을 가지고 믿음의 사실을 증명한다. 이 사랑은 그리스도가 그의 백성 가운데서 한 형태를 취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하나님의 밝은 불꽃으로서 교회 안에서 활활 타올라야 한다. 그리스도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송두리째 계시하신 것처럼 그는 하나님의 행위들로 자신을 설교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들 가운데 지고지순하고 가장 교회적인 행위는 구출하는 사랑이다. 내방선교라는 말을 이러한 의미에서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교회에서 새로운 미래의 날이 동터올 것이다.”

믿음과 사랑이 같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통찰의 호소력에 이끌린 교회대회 참석자들은 내방선교가 표방하는 구출하는 사랑의 긴급성에 뜻을 같이 하였으며, 비헤른의 제안을 받아들여 내방선교 중앙위원회를 결성할 것을 결의하였고, 내방선교 중앙위원회는 비헤른에게 이와 관련된 백서를 저술할 것을 위임하였다. 1849년에 작성된 백서는 “독일 개신교회의 내방선교 - 내방선교 중앙위원회의 위임을 받아 독일 민족에게 보내는 백서”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다.
이 백서는 내방선교의 활동 영역을 국가, 교회, 가정으로 설정하였고, 각각의 영역에서 내방선교가 전개하여야 할 과제들을 명시하고 있다. 루터의 세 가지 질서에 관한 가르침을 충실히 수용한 이와 같은 영역 설정은 국가와 교회와 가정이 유기적 전체를 이루는 세계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그 질서의 핵심은 신분제도를 통해 관철되는 가부장주의이다. 여기서 비헤른이 설정한 영역별 과제들을 상세하게 살필 겨를은 없으므로 이러한 과제들을 설정하면서 비헤른이 세운 원칙들을 고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선, 비헤른은 국가가 대중의 곤경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정책, 경제정책, 사회정책을 수립할 것을 기대하였다. 그는 교회에 속한 사람으로서 국가에 대해 사회정책적 지침을 제시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국가가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필요한 정책들을 수립, 집행하여 자본화와 공업화로 인해 손해를 보는 사람들의 처지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국가가 적어도 이러한 정책의 수립과 집행에서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고 보았다. 국가가 자유방임주의와 규제일변도에서 우왕좌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 교회는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되고 있는 사회 속에서 봉사 활동을 조직하고 실천하여야 한다. 비헤른은 도덕적 타락과 공산주의의 유혹에 직면한 대중을 구출하기 위하여 다양한 방식의 성서 교육을 강조하였으며, 수공업자들과 프롤레타리아트를 겨냥한 도시선교를 조직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도시선교 활동은 팜플릿의 배포, 민중을 위한 도서관의 설립, 실천과 밀접하게 결합된 연구소의 설립, 학교 설립 등을 망라하였다. 도시선교는 대도시 문제의 복잡성과 광범위한 연관성 때문에 개별 교회와 교구를 넘어서서 보다 넓은 지역 차원에서 연맹을 결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러한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연맹은 도시선교사를 배치하고, 자신의 능력과 재산을 바쳐 헌신하는 중상위 계층의 자발적인 봉사를 동원하여야 한다.
끝으로, 19세기의 “사회 문제”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고, 황폐화와 파멸의 구렁텅이 앞에 세워진 것은 다름이 아니라 가정이었다. 가정은 모든 사회관계들을 뒷받침하는 신적인 질서이다. 따라서 가정의 해체는 소유의 양극화와 노동세계의 비참을 가져오며, 이로 인해 공산주의가 창궐하는 온상이 만들어졌다. 따라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은 가정의 재건이다. 가정을 재건해야 소유의 문제와 노동의 문제도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 가장의 권위 아래서 사랑의 공동체 관계가 실현되는 가부장적 가정을 하나님의 질서로 본 비헤른은 국가와 교회가 가정의 외적인 존립을 보장하고 도덕적 기초를 확립하기 위해 이바지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비헤른은 모든 사람이 국가의 행복한 시민으로서, 교회의 축복받는 지체로서 기독교적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기를 기대하였다. 그는 마르틴 루터의 라이스닉 금고 규정의 정신을 받아들여 가정과 시민이 나락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빈민구호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그는 개인중심의 임기응변 조치가 내방선교의 항구적인 활동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도우려는 개개인의 의지이다. 이러한 자조의 노력이 없다면, 국가가 개입하더라도, 대중의 빈곤화와 몰락을 방지할 수 없을 것이다. 비헤른은 개인을 대상으로 한 사회부조에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러한 개별적인 원조는 개개인을 원자화하고 고립시키기 때문이다. 그는 도움을 필요로 하고 스스로 도울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결사체를 만들어 공동체적 복지를 추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앞으로 해야 하고 추구해야 할 하나의 조치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가정, 소유, 노동과 관련되는) 사회적 목표를 위해 결사체를 결성하도록 움직이는 일이다. 내방선교가 이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진지하게 헌신한다면, 기독교적으로 구출하는 사랑의 활동이 거쳐 온 이제까지의 시대와 미래의 시대를 가르는 경계석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비헤른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주택건설공동체, 소비자공제회, 노동조합, 신분이익단체 등으로 결속하여 공동체적 자조의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자기책임의 원칙과 연대의 원칙이 사회복지 제도의 틀에서 구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5. 내방선교의 조직원리: 협회 디아코니아와 교회 디아코니아

독일 역사에서 19세기는 협회의 시대였다. 협회는 신분제 질서에서 개개인이 해방되었음을 전제하며, 이처럼 해방된 개인의 자발적인 동의에 기초하여 결성된 인적 단체이다. 독일인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협회의 형식으로 공동체의 틀에서 자치의 경험을 쌓아나갔다고 말할 수 있다.
비헤른은 초기에 협회를 “주의 참된 회중”이 결집한 조직형태로 간주했다. 그는 제도교회의 정관, 교구, 성직제도 등에 의해 설정된 경계선으로부터 만인사제직을 해방시키기 위해 협회를 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성령이 협회 안에 불어와 사람들을 움직이고 자유롭지만 안정적인 조직을 형성하게 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신약성서가 말하는 것처럼 은사와 직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자유롭고 유동적인 공동체 결성이 가능한 곳도 바로 협회라고 생각했다. 내방선교는 따라서 협회의 형태로 실행되는 사랑의 봉사, 곧 “자유로운 협회에서 신심 있는 회중이 실행하는 질서 있는 활동”이다. 이런 점에서 위르겐 알베르트의 다음 지적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 “비헤른은 협회 개념을 통하여 사랑의 종교가 갖는 소박한 프로그램을 사회정책적이고 기독교정책적인 구상들로 옮길 수 있었으며, 지식사회학적으로 적절한 사회적 개신교의 형태를 창조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협회 중심의 디아코니아는 그 나름의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다. 1848년 혁명으로 조성된 위기의식이 사라지고 기존 질서가 그대로 유지될 것 같이 여겨지면서 많은 사람들은 처음에 품었던 열심을 잃게 되었다. 그것은 자발성에 입각한 봉사 활동이 지속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헤른은 교회의 디아코니아를 강조할 필요를 절실하게 느꼈다. 그는 중세 후기에 세속 정부가 교회로부터 빼앗아간 원초적인 과제, 곧 곤경에 처해 고통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목회적 관심을 교회의 중심에 다시 끌어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무수한 가정에서 노인들이 아무 돌봄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현실에 주목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세속 정부의 빈민구호가 지역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을 뿐만 아니라 관료주의적 폐단으로 인해 마비되었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비헤른은 경직된 법률에 매어 있고 등록 위주의 도식주의에 빠져 있는 “국가 자선기관을 통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사랑을 믿는 법을 잘못 배우게 되었다”고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비헤른은 이러한 사람들에 대한 돌봄은 교구의 목회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만일 내방선교의 자발적인 봉사자들과 개교회의 평신도들이 전문적인 디아코니아 지도자의 도움을 받아 사랑의 봉사를 한다면, 제도 교회는 정규적인 교회 디아코니아를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규적인 교회 디아코니아가 신뢰할 만한 교회공동체의 포기할 수 없는 본질적 구성요소로서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의 비자발성과 자의(恣意)로 인해 교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회 디아코니아를 관장하고 감독하는 디아코니아 직책이 제도 교회 안에 설치되어야 한다.
비헤른은 자신에게 가까웠던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에게 신약성서에 명시된 “감독, 장로, 집사” 제도를 설명하고 1856년 “디아코니아와 디아코니아 직책에 관한 평가서”를 제출하였다. 프로이센 왕은 1856년 몬비주에서 교회최고위협의회를 열어 복지활동의 이론과 실천을 관장하는 직책을 제도 교회 안에 설치하자는 비헤른의 제안을 논의하게 하였다. 그는 교회의 관할 지역마다 교회최고지도부에 디아코니아 주교직을 설치하여 교회의 디아코니아 책임을 대변하게 하고, 개교회 안에도 디아코니아 직책을 설치할 것을 제안하였다.
비헤른의 제안은 최고위협의회 참석자들에게 이론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도 하였지만, 교회 행정에 관여하는 인사들로부터 맹렬한 저항에 직면하여 폐기되고 말았다. 국가교회였던 당대의 루터교가 가졌던 경직된 직제 이해는 디아코니아 직책을 성직과 같은 반열에 둘 수 없었거니와, 내방선교가 활성화되어 교인들이 교회 본래의 관심사에서 벗어나 내방선교 활동에 더 많이 종사할 것을 우려한 목회자들의 반발이 컸던 것이다.

6. 내방선교와 국가복지

앞에서도 밝혔듯이, 비헤른이 국가의 사회정책에 건 기대는 매우 컸다. 그는 자본주의적 발전에 따라 사회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것을 예리하게 인식했다. 그는 노동자들의 결사권을 옹호하고 노동자의 공동체적 자조의 원칙에 따라 노동자의 주택 문제 해결을 사회적, 교회적 의제로 부각시킨 빅톨 아이메 후버(Victor Aime Huber 1800-1869)와 더불어 사회 문제에 대한 “국가의 복지”를 호소하였다. 그러나 내방선교가 사회정책을 제안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후버의 권고는 내방선교 인사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것은 비헤른의 사회정책에 대한 관심도 내방선교에서 존중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비헤른은 말년에 국가의 사회복지 정책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기 위하여 노력한 아돌프 바그너(Adolph Wagner 1835-1917) 등 강단 사회주의자들과 같은 노선을 취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강단사회주의자들과 결합해서 1870년에 5월 협의회를 열기도 하였는데, 거기서 비헤른은 기독교적 성향을 가진 고용주들이 당대의 노동 문제에 더 진실하게 접근하여 사회적 평화를 구현할 책임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헤른은 1871년 내방선교 10월 협의회에서 생애의 마지막 강연을 했다. “현대의 사회적 과제들에 임하는 교회의 협력”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 이 강연에서 그는 “국민경제학적 관점”에서 교회의 활동을 보완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대 프랑스 전쟁을 승리로 끝내고 독일 제국이 출범한 직후에 그는 이 승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의 “전단계”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 단계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일요일 준수와 더불어 노동시간 및 노동조건의 규율을 촉구한 강연의 취지로 미루어 보아, 공업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겪는 가난과 곤경을 해결하기 위하여 교회가 “국민경제학적 관점”에서 사회정책을 제시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으리라고 추론된다. 비헤른이 자신의 내방선교적 입장을 “국민경제학적 관점”에서 보완할 것으로 기대했던 아돌프 바그너는 앞서 언급한 내방선교 10월 협의회에서 기독교적 책임을 다하여 사회정책의 개요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바그너는 19세기 사회 문제의 핵이었던 맨체스터 자본주의와 이에 대항하는 사회주의의 양 극단을 넘어서서 부르주아가 중심이 되는 제3의 사회개혁을 추구하였다.
비헤른은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1898)가 1880년대 초에 강력하게 추진한 사회입법을 보지 못한 채 죽었다. 그러나 비스마르크 정부에 참여하여 사회입법에 크게 기여한 내방선교 출신의 사회정책가 테오도르 로만(Theodor Lohmann)은 1884년 “현대의 경제적 사회적 투쟁들에 직면한 교회와 내방선교의 과제들”이라는 백서를 준비하여 중앙위원회의 이름으로 발표하게 하였고, 19세기 후반기의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광범위한 정책 제안을 내어 놓음으로써 독일 제국에서 사회 입법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특히 그는 노동과 자본이 서로 대립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나서서 노동계약의 자유를 제한하는 입법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부녀자들과 청소년들의 고용 제한,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의 보호, 일요일 노동의 금지, 정상 노동 시간의 준수, 일시적 혹은 장기적 실업에 처한 노동자들의 보호 등을 규율하는 입법을 강조하였다. 로만은 비헤른의 가부장주의적 관점을 완전히 청산하지는 못했지만, 내방선교가 사회적 디아코니아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사회정책의 제안과 입법에 대한 관심은 내방선교가, 구출하는 사랑의 실천에서, 형성하는 사랑의 실천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형성하는 사랑의 실천은 사회와 국가의 제도적 형성에 대한 관심을 갖고서 그 과정에 책임 있게 참여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의 노력을 총괄한다.

V. 맺음말: 비헤른의 복지 사상에 대한 기독교윤리적 평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독일 내방선교의 걸출한 지도자였던 요한 힌리히 비헤른은 마르틴 루터와 경건주의자들의 복지 사상을 수용하여 개신교 복지 사상을 독특하게 전개하였으며, 19세기 사회 문제에 책임 있게 대응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실천 모델을 제시하였다. 이제 비헤른의 업적을 몇 가지 측면에서 평가하고자 한다.

1. 비헤른은 마르틴 루터의 신학 사상에 많은 빚을 졌다. 그의 사회교육은 루터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근거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 열린 자유로운 행위 주체를 형성하는 것을 그 목표로 삼았다. 그는 루터의 만인사제직 사상을 사랑의 실천과 연결하였으며, 만인사제직의 정신을 가장 충실하게 실현할 수 있는 조직의 형태를 협회에서 찾았다. 그는 루터의 라이스닉 금고 규정의 정신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와 사회의 영역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해 디아코니아 활동을 펼쳐나가고자 했다. 비헤른이 1849년에 제출한 내방선교 백서에는 루터의 신학과 복지 사상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2. 비헤른은 독일 경건주의의 아들이기도 했다. 물론 그는 경건주의자들이 빠지기 쉬운 정적주의적 경향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루터의 만인사제직 사상은 슈페너를 통해 비헤른에게 생생한 형태로 전달되었고, 경건과 직업 노동의 결합을 중시한 프랑케의 기관 중심의 선교 모델과 형제단의 코이노니아와 디아코니아를 통일한 조직 형태는 비헤른의 사회교육과 도시선교 구상에 그 흔적을 남겼다.
3. 비헤른은 국가, 교회, 가정의 영역에서 내방선교가 수행해야 할 과제들을 정교하게 가다듬어 제시하였다. 루터의 세 질서론을 따랐던 비헤른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세계는 국가와 교회와 가정이 유기적 전체를 이루고, 각 영역에서 사람들이 신뢰와 의존의 관계를 맺는 가부장제 질서가 구현되는 세계였다. 이런 점에서 그는 보수주의자였고, 전통주의자였다. 그는 하나님이 가정을 모든 사회관계들의 기초로 설립하였다고 믿었고, 국가와 교회는 이 가정의 존립과 도덕생활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19세기에 들어와 가정의 해체가 촉진되었기에 사회적 양극화와 노동세계의 비참이 나타났다고 진단하였다. 19세기 사회 문제의 해결은 따라서 가정의 회복에서 시작된다. 바로 여기서 비헤른의 시대 진단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가 드러난다. 자본주의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당대 현실에서 가정의 해체는 전도된 사회관계들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였다. 자본과 노동 사이에 나타나는 소유의 양극화가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로 나타나 노동세계의 비참을 낳고, 이로 인해 프롤레타리아트 가정의 해체와 도덕적 영락이 나타났다. 비헤른은 국가와 교회와 가정이 유기적 전체를 이루는 세계관을 고집하였기 때문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는 데 실패했고, 사태의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설정하였다.
그는 19세기의 사회 문제에 대응해서 “구출하는 사랑”의 실천을 조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 사랑의 실천은 국가 가부장주의와 기업 가부장주의의 한계 안에 머물러 있었다. 19세기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산업신민이 아니라 산업시민으로서 기업과 사회생활과 국가 운영에서 주체적 지위를 요구하고 있었다. 가부장적 국가와 기업인의 시혜가 그들의 요구가 아니라, 주체적 단결과 연대, 강력한 대항권력의 형성을 통해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정의, 더 많은 복지를 얻는 것이 그들의 요구였다. 하나님이 정한 질서에 따라 세계가 유기적으로 통일되어 있다고 믿었던 비헤른은 이러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러한 신학적 세계 이해가 갖는 한계는 당대의 공산주의에 대한 비헤른의 인식에도 나타난다. 구원사와 세계사의 대립을 역사신학적으로 전제한 비헤른은 하나님의 질서에 대한 공산주의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저항을 무신론적이고 반그리스도적인 것으로 규정했다. 그가 믿는 하나님은 국가와 교회와 가정을 통하여 세상을 다스리기 때문에 그의 통치 수단을 부정하는 것은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사전판단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당대의 공산주의가 어떤 맥락에서 등장하고 어떤 사회 형성의 구상을 제시하였는가를 냉정하게 보지 못했다.
4. 그러나 비헤른의 역사 인식과 세계 이해가 갖는 문제점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비헤른이 19세기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제시한 복지 사상과 실천 모델들이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그는 19세기의 사회 문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구출하는 사랑”의 실천을 조직하였고, 이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교회를 갱신하고 국가를 새롭게 형성하고자 하였다. 내방선교는 국가교회의 경직성으로 인해 협회 디아코니아의 형태를 취하기는 하였으나, 비헤른은 지극히 작은 사람들을 위한 헌신과 사랑이 교회 생활의 본질을 이룬다고 보았기에 교회를 중심으로 한 디아코니아를 결코 도외시하지 않았다. 협회 디아코니아를 제도 교회 안에 통합하고자 했던 그의 시도는 제도교회의 벽에 부딪쳐 좌절되었고 오랫동안 망각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오위겐 게르스텐마이어(Eugen Gerstenmaier)에 의해 받아들여져 독일개신교 디아코니아 운동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게 하였다.
5. 비헤른은 국가의 사회복지 활동이 갖는 의미를 꿰뚫어 본 인물이었다. 이 점은 1849년의 내방선교 백서에도 분명히 나타나지만,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사회국가가 형성되던 무렵에 이른바 후기 비헤른이 취한 사회정책적 입장에서 또렷하게 각인된다. 그는 내방선교가 “구출하는 사랑”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되고, “형성하는 사랑”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였다. 그것은 사회적 곤경의 뿌리를 이루는 사회제도의 변화를 모색하는 “사회적 디아코니아”의 싹이 비헤른에게서 돋아나고 있었음을 의미하며, 사회정책의 구상과 그 집행을 놓고 내방선교와 국가의 협력을 뒷받침하는 제도적인 얼개를 마련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뜻한다.
6. 끝으로, 비헤른이 작은 사람들의 주도권을 인정하고, 그들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를 돕는 결사체를 결성하도록 촉진한 것도 그의 큰 업적에 속한다. 그는 결사체의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자본주의적 구조를 취하는 개인주의의 함정과 개인의 주체성 없는 집단주의의 함정을 피할 수 있었다. 결사체의 모델은 비헤른 시대에만 큰 효과를 발휘했던 것만은 아니다. 국가와 시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제3섹터를 형성하고자 하는 오늘의 새로운 복지 운동에서도 비헤른의 구상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