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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0 (10:19) from 220.66.47.13' of 220.66.47.13' Article Number :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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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사회복지 체계에서 교회복지와 국가복지의 연계 원칙과 그 법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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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사회복지 체계에서 교회복지와 국가복지의 연계 원칙과 그 법제화


강원돈(한신대 신학과 교수/사회윤리)

I. 머리말

 독일의 사회복지 체계는 국가와 지방정부, 그리고 민간 복지기관연맹의 협력에 바탕을 두고 운영된다는 점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보인다. 그런 만큼 민간복지와 국가복지의 연계와 협력은 독일의 사회복지 체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독일에서 디아코니아 기관들은 민간복지와 국가복지를 서로 연계하는 모범적인 실례로 여겨지고 있다.
 디아코니아 기관들이 독일의 사회복지 체계에서 갖는 중요성은 몇 가지 통계를 들여다보면 잘 알 수 있다. 디아코니아 기관들이 에큐메니칼 정신 아래서 펼치는 해외 활동을 일단 차치하고 국내 활동만을 살피자면, 디아코니아 기관들의 수효는 2002년 현재 27,301개이고, 디아코니아 상설 기관들이 관장하는 침상은 2002년 현재 677,117개, 디아코니아 주간(晝間) 기관들이 수용하는 인원은 2002년 현재 349,772명에 달한다. 디아코니아 기관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수효는 2002년 현재 452,244명이고, 디아코니아 직업교육 시설에서 교육을 받는 사람들의 수효는 2002년 현재 28,034명이다. 이러한 방대한 규모의 디아코니아 기관들을 아우르는 최고기구는 독일개신교협의회 사회봉사국(Diakonisches Werk der Evangelischen Kirche in Deutschland)이며, 이 기구는 민간 복지기관연맹의 일원으로서 디아코니아 기관들의 복지활동과 국가의 복지활동 사이의 연계와 협력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렇다면, 독일의 사회복지 체계에서 교회복지와 국가복지는 어떤 원칙에 입각하여 서로 협력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원칙은 어떤 법제로 구현되고 있는 것일까? 바로 이 두 가지 물음에 답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교회복지와 국가복지의 관계는 민간복지와 국가복지의 관계를 바탕에 두고 있지만,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전제하기 때문에 매우 까다로운 문제를 안고 있다. 독일의 사회복지 체계에서 민간복지와 국가복지의 관계를 규율해 온 원칙은 바이마르 공화국 이래로 보충성의 원칙이었고, 이 원칙은 바이마르 공화국과 서독의 사회입법에 반영되었다. 그러나 디아코니아 기관들은 민간복지를 제도적으로,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국가의 활동을 인정하면서도 교회복지 기관의 자율성과 복지수혜자의 선택권을 제도적으로 보장받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고, 그 나름의 성과를 거두어 왔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서 나는 이 글에서 우선 민간복지와 국가복지의 관계를 규율해 온 보충성의 원칙과 그 법제화를 간략하게 서술하고 이에 대한 독일 개신교의 입장을 분석할 것이다. 그 다음,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서 디아코니아 기관들의 자율성이 어떻게 제도적으로 구현되어 갔는가를 규명할 것이다. 끝으로, 디아코니아 기관들이 복지 서비스와 복지기관의 다원성을 제도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검토할 것이다.

I. 민간복지와 국가복지의 관계를 규율해 온 보충성의 원칙에 대한 독일 개신교의 입장

 독일에서 디아코니아 기관들은 민간 복지기관으로서 독일 사회복지 체계에 깊이 편입되어 있지만, 교회 기관으로서는 독일개신교협의회 사회봉사국 산하에 있다. 독일개신교협의회는 「정관」 제15조 제1항에서 “디아코니아 선교 단체들은 교회의 본질과 삶을 표현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디아코니아 기관들이 교회의 본질적 구성부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적 정체성 때문에 독일 개신교는 민간복지와 국가복지의 관계를 규율하는 보충성의 원칙에 대해 독특한 입장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먼저 독일에서 민간복지와 국가복지를 규율하는 보충성의 원칙이 어떻게 확립되어 갔는가를 살피기로 하자.

1. 독일에서 민간복지와 국가복지를 규율하는 보충성의 원칙의 확립

 독일에서 민간복지와 국가복지의 연계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1919년 8월 11일 바이마르 제국헌법이 제정되면서 독일의 복지제도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다. 과거의 빈자구호는 가난을 자업자득으로 보고 경찰의 처분에 따라 이루어졌다면, 새로운 복지제도는 사회복지 정신에 따른 것이었다. 사회복지 수혜자의 수효는 크게 늘어났고, 민간 복지기관들의 활동영역도 크게 늘어났다. 민간 복지기관들은 활발하게 연맹을 조직하기 시작하였는데, 대표적인 기구들은 1917년에 결성된 독일유대인중앙복지센터, 1919년에 결성된 노동자복지중앙위원회, 1920년에 박애주의적인 병원 대표들로 결성된 복지연맹(1932년 이후 독일동등권복지연맹), 1921년에 결성된 독일적십자 등이다. 이 기구들은 1849년에 결성된 이래 민간 복지기관의 선두주자 역할을 하였던 내방선교(1920년 정관 변경을 통하여 내방선교 중앙연맹 결성) 및 1897년에 결성된 카리타스 연맹과 더불어 독일을 대표하는 민간복지연맹들이었다.
 이처럼 민간 복지기관들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게 되자 국가는 공공 복지기관과 민간 복지기관의 관계를 법률적으로 규정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 구체적인 사례가 바이마르 공화국에 새로 설치된 노동부가 1922년 7월 9일에 제정한「제국청소년복지법」과 1924년 2월 23일에 반포한 「제국복지의무규정」이다. 이 두 법률은 보충성의 원칙에 근거해서 민간복지와 국가복지의 관계를 규율하고자 하였다.
 우선, 보충성의 원칙을 명시적으로 표현한 「제국복지의무규정」 제2조는 주와 현 단위의 복지기관이 복지 운영의 최종적 책임을 져야 하지만, 동 규정 5조 4항은 “공공복지와 민간복지가 합목적적으로 서로 보완하고 양자의 독립성을 살리는 형식으로 협동할 것”을 규정하였다. 이 협동 계명이 민간 복지기관의 기득권 보장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동 규정 제5조 제3항은 이러한 취지를 살려서 “민간 복지연맹의 적절한 시설들이 충분히 있는 한, (공공) 복지연맹들은 자체 시설들을 새로 마련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음으로써 민간 복지기관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민간복지와 공공복지가 서로 협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 다음, 「제국청소년복지법」 제6조도 청소년복지청의 목적을 규정하면서 국가 복지기관과 민간 복지기관의 관계를 규율하는 보충성의 원칙을 밝히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청소년복지청은 “청소년복지를 증진하려는 자발적 활동의 독립성과 정관상의 성격을 보장하는 가운데 그 활동을 뒷받침하고 고무하고 함께 일하도록 이끎으로써 그 활동과 협력하여 공사를 막론한 청소년구호와 청소년 운동을 위한 모든 기관들과 시설들을 계획적으로 서로 결합시키려는 목표에 도달하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바이마르 공화국의 사회입법은 복지에 대한 공공기관의 최종적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민간 복지기관의 기득권을 인정하고, 공공 복지기관과 민간 복지기관의 협동을 요구하는 것을 그 핵심으로 하는 것이었다. 보충성의 원칙은 바로 이러한 생각을 요약한 것이라 볼 수 있다.
 1960년과 1961년에 서독에서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부터 존속했던 사회복지법을 대체하는 사회입법이 이루어졌다. 사회입법은 두 가지 법안들로 이루어졌는데, 하나는 「연방사회구호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청소년복지법」이었다. 「연방사회구호법」은 바이마르공화국 때부터 통용되었던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국가복지와 민간복지의 관계를 규율하고자 하였다. 이 점은 「제국청소년복지법」을 대체한 「청소년복지법」도 마찬가지였다. 이 두 법률들은 민간 복지기관들과 국가 복지기관들의 관계를 ‘병렬관계’로 규정하고, 민간 복지기관들에 대한 재정 지원을 근거로 이 기관들의 활동을 법적으로 낱낱이 규정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국가가 복지기관에 대해 재정 통제권을 행사하고 사업 계획을 수립하는 전권을 장악하고, 주요 업무에서 최종적 결정권을 갖는 방식으로 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더 한층 강조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1970년대에 국가복지가 획기적으로 확대되면서 병원, 요양원, 유치원 등에 관한 복지입법이 예고되고 사회법전이 정비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더 강해졌다.  

2. 보충성의 원칙에 대한 독일 개신교의 입장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보충성의 원칙이 민간복지와 국가복지의 관계를 규율하는 원칙으로 자리를 잡자 개신교 복지기관을 대표하였던 내방선교는 이에 대해 경계하는 입장을 취했다. 내방선교 지도자들은 세계관적 중립성을 띠는 국가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통하여 공공복지를 조직하게 되면 중앙집중적으로 관리되는 복지 체계에 의해 결국 기독교적 사랑의 실천이 고사될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들은 바이마르 공화국을 이끌었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갖고서 국가복지를 조직한다고까지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적어도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는 단순한 우려에 그칠 수 있었다. 국가복지를 조직하고 발전시키는 데 인적, 물적, 재정적 한계를 갖고 있었던 바이마르 공화국은 민간 복지기관들에 크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보충성의 원칙은 사실상 민간복지와 국가복지의 병렬을 전제로 해서 양자의 협동을 규율하는 원칙으로 기능하는 데 그쳤던 것이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사회복지가 체계적으로 조직되면서 개신교 복지기관은 그 활동을 비약적으로 확대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독일 개신교 복지기관들은 보충성의 원칙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정리하지 않은 채 민간복지와 국가복지의 협동을 전제로 한 사회복지체제에 깊숙이 편입되었다.
 1960년대에 서독에서 사회입법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재확인된 보충성의 원칙은 독일 개신교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이 점에서 독일 개신교는 1931년 5월 15일에 공표된 교황 비오 11세의 사회회칙 「사십 주년」(Quadragesimo Anno) 제97호 조항에 명시된 보충성의 원칙을 받아들인 독일 가톨릭교회와는 다른 입장을 취했다. 가톨릭교회는 보다 작은 단위가 스스로 자신의 과제를 달성할 수 있는 한, 보다 큰 단위는 일체 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보충성의 원칙을 해석하였다. 국가나 상급단체는 보조나 보충의 의무가 있을 뿐이며, 보다 작은 단위의 독립성과 자기 발전을 저지하거나 배제할 경우에는 이를 지원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자연법적 사고에 근거한 것이다. 비오 11세의 사회회칙은 자연법에 근거하여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교회를 방어하면서도 국가의 지원을 용인하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에 독일 개신교는 전통적으로 자연법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 왔기 때문에 독일 가톨릭교회의 보충성 원칙에 대한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독일 개신교의 신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보충성의 원칙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해석이 가톨릭 복지기관의 이해관계를 권력정치적으로 관철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비판하기까지 하였다.
 파울 필립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와 국가를 서로 구별할 뿐만 아니라 서로 혼합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는 루터의 두 왕국론에 입각해서 디아코니아의 위치를 교회와 사회국가 사이에 설정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디아코니아는 사회국가의 활동과 구별되는 전적으로 교회 안의 일이라는 것이다. 디아코니아가 ‘영적인 정부’에 속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세상적인’ 구호 활동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디아코니아와 사회국가의 직접적인 결합과 협동은 불가능하다. 디아코니아와 사회국가의 협력은 상대방과 자신을 구별하면서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이런 점에서 그것은 협력적 ‘공존’이라고 정리하는 것이 적절하다. 필립비는 오직 이런 관점에서만 사회국가의 복지체계에서 교회 디아코니아의 특수한 지위가 확보될 수 있고, 교회와 사회국가의 실용적인 협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신학적 입장이 강력하였기 때문에 독일 개신교는 사회국가가 민간복지와 국가복지의 관계를 규율하기 위해 내세운 보충성의 원칙에 대해 가톨릭교회와 같은 수용적 태도를 취할 수 없었다. 복지에 대한 국가의 최종적 책임을 강조하고 복지 정책에 대한 국가 주권을 강조하는 사회입법은 교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침해할 여지가 많은 것으로 여겨졌고, 실제로 개신교 복지기관의 일선에서는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국가는 민간 복지기관의 고유한 활동을 규제하는 갖가지 규정들을 마련하고, 인력 배치와 업무 관장에 대해 공동결정권을 요구하고, 업무를 위한 금전 지출을 검사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독일 개신교 복지기관들도 이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독일개신교회협의회 사회봉사국의 전신이었던 독일개신교협의회 내방선교와 구호국에서 실무자로 일했던 게르하르트 호윈의 증언은 이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교회와 그에 속하는 교회적 복지연맹이 자발적으로 설정된 과제를 수행할 때에도 그렇지만, 공적인 과제의 틀에서 공공 사회서비스 기관과 협력을 할 때에도 활동 목표를 독립적으로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교회의 자율성에서 비롯되는 요구일 뿐만 아니라, 모든 독립 기관들에게 적용되고 공공 복지기관들을 구속하는 사회법의 해당 규정들에서 비롯되는 요구이다. 교회의 사회봉사의 독자성은, 이처럼 법적으로 이중적 보호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규제일변도와 관료화라는 말로 지칭될 수 있는 경향들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규제일변도와 관료화에 대항하여 디아코니아 활동의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개신교 복지기관 관계자들의 노력은 헌법소원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고, 국가와 지방자체단체는 그들 나름대로 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감독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둘 사이의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증폭되었다. 이러한 와중에서 내려진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보충성 원칙에 대한 판결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3. 보충성의 원칙에 대한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

 1967년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내린 이른바 ‘청소년복지법 판결’은 보충성의 원칙에 대한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담고 있기에 매우 중요하다.  
 이 판결의 대상은 바이마르 시대의 법에 근거하여 민간 복지기관과 국가 복지기관의 관계를 규율해 온 「청소년복지법」과 「연방사회구호법」의 규정들이었다. 이 규정들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한 당사자들은 디아코니아 기관들이 아니라, 오히려 헤쎈 주정부, 니더작센 주정부, 함부르크, 브레멘, 도르트문트, 프랑크푸르트, 헤르네 시정부 등이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민간 복지기관과 공공 복지기관의 협력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 법률들이 합헌이라고 결정하였다.
 이 판결의 내용을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청소년청의 임무는 지역 상황에 따라 청소년 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기관들이 필요 충분한가를 파악하고, 민간 복지기관들이 기왕에 설립되어 있는 경우에는 이 기관들의 활동을 지원하여 제 기능을 다 하도록 하는 것이다. 민간 복지기관들이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청소년청이 공공 복지기관을 창설할 수 있다. 지역에 민간 복지기관이 없는 경우에도 공공 복지기관을 설립하여야 한다. 공공 복지기관이 기왕에 설립되어 운영되는 데도 민간 복지기관이 지역 복지 활동을 한다고 나서서 공공 복지기관의 폐쇄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청소년복지법 판결’은 이처럼 다양한 경우에 민간 복지기관과 국가 복지기관이 서로 협력하는 방식을 일일이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보충성의 원칙과 관련된 복지기관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법률적 지침을 제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 판결은 청소년복지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는 최종적 책임이 「청소년복지법」 제5조 제1항에 따라 청소년청에 있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보충성의 원칙을 해석하면서 민간 복지기관이 국가 복지기관에 대해 우위를 갖고 있다는 일반적 통념을 깨뜨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동시에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국가의 복지구현 책임의 원칙 아래서 국가복지와 민간복지의 협력과 조화를 장려하려는 취지를 담고자 하였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이 점을 분명히 하면서 민간 복지기관과 국가 복지기관의 협력을 촉진하고 공적 수단과 사적 수단의 조율된 투입을 장려하고자 하였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독일 개신교로부터 어느 정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독일개신교협의회에서 교회법 해석을 대표했던 악셀 폰 캄프하우젠은 이 판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연방헌법재판소 판결의 핵심 사상은 실제적이고 조직 원리에 충실한 것이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총체적 책임과 교회의 독자적인 디아코니아 사이의 긴장은 자유국가 안에서 협력을 통하여 해소되어야 했다. 법률들은 오직 틀을 제정하는 법적 장치로서 이러한 협력 과정을 촉진하고 규율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협력이 달성될 때 비로소 사회국가의 자유로운 질서가 구현될 수 있다. 「연방사회구호법」과 「청소년복지법」을 통하여 이러한 협력이 구현된다면, 그것은 헌법이 규정하는 보편적인 협력 계명을 입법자가 적절하게 구체화한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보충성의 원칙을 구현한 법질서에 대한 최종적 재가를 담은 것이기 때문에 디아코니아 기관들도 민간복지와 국가복지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질서에 순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디아코니아 기관들이 교회의 본질적 구성부분으로서 그 기관들의 활동을 자율적으로 규율하여야 한다는 요구는 수많은 헌법 소원을 통하여 표현되었으며,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들을 통하여 점차적으로 실현되어 갔다.

II.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서 본 디아코니아 기관의 자율성

 독일에서 사회국가가 확립되어 복지제공자로서의 국가의 위상이 강화되면서 디아코니아 기관의 자율성은 많은 점에서 침해되었다. 보충성의 원칙은 디아코니아 기관의 자율성을 보장하기에는 부족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디아코니아 기관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은 뜨거운 관심사로 떠올랐으며, 이 문제를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나타났다. 디아코니아 기관에서 독일연방헌법재판소에 제기한 수많은 헌법 소원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대한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들은 디아코니아 기관들이 교회와 마찬가지로 종교의 자유를 향유하는 주체인가를 규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교회 산하의 디아코니아 단체들의 자율성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데까지 나아갔다.
 아래서는 중요한 판결들을 살피고 그 의의를 검토하기로 한다.

1. '넝마수집에 관한 판결'(1968년)

 디아코니아 기관들의 자율성과 관련하여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내린 중요한 첫째 판결은 디아코니아 기관들이 자선의 목적으로 헌 옷을 수집하는 일에 관한 이른바 '넝마수집에 관한 판결'(1968년)이다.
 '넝마수집에 관한 판결'이 내려지기 2년 전인 1966년에 이미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1934년 나치가 교회와 디아코니아를 억압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제정한 뒤에 그 당시까지 존속한 「제국모금법」이 합헌인가를 다룬 바 있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연방의회를 구성하는 기독교민주연합(CDU)/기독교사회연합(CSU), 사민당(SPD), 자민당(FDP)의 헌법소원을 받아들여 1934년의 「제국모금법」이 무효라고 선언하였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제국모금법」이 봉사를 목적으로 한 모금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나서 관할청에 예외 인정의 재량권을 부여하는 것은 기본권과 기본권 제한의 관계를 전도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이 판결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보편적인 행위의 자유를 옹호한 것이지, 기독교적 봉사를 목적으로 한 모금을 진정한 종교적 행위로 인정하여 이를 특별히 보호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66년의 「제국모금법」 위헌 판결을 배경으로 해서 1968년에 내려진 넝마수집에 관한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매우 주목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판결은 “특히 기독교적 봉사를 목적으로 한 헌물의 수집은 교회의 정당한 과제로 인정된다.”고 판시하여 1966년의 「제국모금법」 위헌 판결을 국가교회법의 틀에서 보완하고 있다.
 이 판결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쟁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법률적 능력이 없는 협회 형태의 결사체가 종교 자유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디아코니아 기관들이 등록협회의 법적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매우 중요한 쟁점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이 결사체가 교회의 지원 아래서 수행하는 헌 옷 수집이 종교 행사로 규정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된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종교자유의 기본권은 “교회들과 종교 및 세계관 공동체들뿐만 아니라 그 구성원의 종교적 혹은 세계관적 삶을 전면적으로 돌보지 않고 부분적으로 돌보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결사체에 대해서도 인정된다.”고 판시하고, 이러한 결사체가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가를 측정하는 기준은 “종교공동체와 제도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정도나 결사체에 의해 추구되는 목적의 종류일 수 있다.”고 보았다. 이 판결로 인하여 디아코니아의 모든 기관들은 법적 형태와 무관하게 기본법 제4조의 보호 아래 놓이게 되었다.
 둘째,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디아코니아 활동이 종교 자유의 보호 아래 놓이는가, 과연 그렇다면 얼마큼 그런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교회의 자기이해에 근거하여 답변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개별적인 경우를 놓고서 종교와 세계관의 행사로서 간주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판단할 때 종교 및 세계관 공동체의 자기이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 법치질서가 예배의 자유의 경우에서처럼 종교적, 세계관적 자기이해를 전제하고 있는 다원적 사회에서, 만일 국가가 특정한 신앙고백이나 세계관에서 비롯된 종교 행사를 해석할 때 교회들과 종교 및 세계관 공동체들의 자기이해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국가는 기본법이 그들의 고유한 영역에서 그들에게 보장한 독자성과 독립성을 손상하고 말 것이다.”

 따라서 디아코니아가 세계관적으로 중립적인 국가에서 차지하는 지위는 바이마르 제국헌법 제136조 제1항과 결합된 기본법 제140조가 설정하는 틀 안에서 교회의 자기이해에 맡겨진 문제가 된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넝마수집”에 관한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디아코니아 기관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데 결정적인 일보를 내디뎠다고 볼 수 있다.

2. ‘교회 직책과 정치 임직의 불합치성에 관한 판결’(1976)

 1976년의 ‘교회 직책과 정치 임직의 불합치성에 관한 판결’은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바이마르 제국헌법 제137조 제3항과 결합된 독일기본법 제140조에 근거하여 교회의 자율성에 대해 원칙적인 입장을 표명한 판결로 유명하다.
 이 판결의 쟁점은 목사의 정치적 임직과 교회 직책이 서로 합치할 수 없다고 규정한 주교회들의 규칙이 브레멘에서 헌법에 합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판결문은 기본법 제140조와 결합된 바이마르 제국헌법 제137조 제3항의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률의 한계”라는 단서조항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률’에는 모든 사람에게 갖는 것과 똑같은 의의를 교회에게도 갖는 법률만이 해당된다. 법률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과 똑같이 교회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따라서 교회의 교회로서의 특수성을 놓고 생각해 볼 때 더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교회의 자기이해를, 특히 교회의 영적이고 종교적인 위임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적용되고 있다면, 한 마디로 통상적인 수신자와 달리 교회에 적용된다면, 그 법률은 한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이 판결의 요지는 교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법률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률”이라는 주장을 내세워 교회에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률도 교회의 자기이해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교회의 특수성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3. '고호의 빌헬름 안톤 병원 재단 판결'(1977) 등

 1977년의 '고호의 빌헬름 안톤 병원 재단 판결'과 1980년의 '가톨릭 교회공동체 상트 마리엔 등의 헌법 소원에 대한 판결'을 통하여 독일에서 교회의 자율성은 제도교회에만 한정되지 않고 법률적인 조직형태와 무관하게 제도교회에 부속된 모든 기관들에도 확대되었다. 이 판결에 의해 카리타스 기관들에서 운영하는 병원들은 인사권 행사, 공동결정권 규율, 회계운영 등에서 특수한 지위를 얻게 되었고, 종교적 세계관이 기관 운영의 본질을 규정한다는 의미에서 “경향기업”의 지위를 인정받게 되었다.
 1981년의 '재활센터 폴마르슈타인 정형외과 병원의 헌법 소원에 대한 판결'을 통하여 독일헙법재판소는 노동조합이 디아코니아 기관들에서 직장평의회와 무관한 노동조합 위임자를 통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선전하고 노동조합 회원들을 돌볼 권리가 있는가 하는 헌법 소원에 대하여 노동조합은 그럴 권리가 없다고 판시하였다.

4. '상트-엘리자벳 판결'(1985)

 1985년의 이른바 '상트-엘리자벳 판결'로써 병원의 영역에서, 특히 노동법과 관련된 영역에서 인정되는 교회의 자율성에 대한 판결은 일단 끝난다.
 에쎈의 성 엘리자벳을 따르는 자비로운 자매들의 간호소(Krankenpflegeanstalt der barmherzigen Schwestern von derheiligen Elisabeth zu Essen)와 한 가톨릭 수도공동체가 제기한 헌법소원의 대상은 직무에 임하고 있는 직원들이 '충성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해서 해당기관들이 이 직원들에게 내린 해고조치의 유효성을 다투는 일이었다. 하나는 '사회적 이유들'을 내걸면서 인신중절을 공공연하게 옹호한 보조의사의 경우였고, 또 하나는 교회에서 파견한 고용주와 노동법을 놓고서 논쟁을 하다가 기관을 떠나게 된 회계사의 경우였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람들은 전(前) 심급이었던 독일노동법원의 판결이 교회의 자기이해를 고려하지 않은 채 교회 직원이 교회의 특수한 선포 직무에 참여하는 정도에 따라 그의 충성에 등급을 두어야 한다는 이론을 전개하고, 국가의 기준에 따라 교회 직원에게 어떤 충성이 요구되는가를 검증하였다고 비판했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그 때까지 확립된 판례에 따라서 바이마르제국헌법 제137조 제3항과 결합된 독일 기본법 제140조가 보장한 교회의 자율성을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이를 뒷받침한 논거들은 세 가지이다.
 첫째, 교회의 자율권은 노동법의 영역에서도 교회와 디아코니아에 “그 기관에 어떤 직무를 두어야 할 것인가, 그 기관이 어떤 법적 형태를 취할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할 권한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교회들(과 디아코니아 기관들)은 노동관계의 근거를 설정하고 이를 규율하는 사적인 자율권을 활용할 수 있다. 노동관계에는 국가의 노동법도 적용된다. 이 경우 교회의 자율권이 본질적인 것으로 존속한다. 이로 인해 교회들(과 디아코니아 기관들)은 만인에게 적용되는 법률의 한계 안에서 교회의 직무를 교회의 자기이해에 따라 규율하고 특수한 충성 의무를 구속력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 판결은 교회의 자유와 한계 설정의 목적을 서로 저울질할 때 교회의 자기이해를 특별히 중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앞에서 언급한 자율권과 여기서 도출된 권리인 자기이해를 규정하는 주체는 “제도교회”이다. “그것은 개별적인 교회 기관들의 이해도 아니고(...) 교인들로 이루어진 동아리의 견해도 아니고, 심지어 교회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특정한 경향도 아니다.”
 셋째, 따라서 국가의 재판소들은 교회 직원들의 충성 의무에 대해서는 제도교회가 기왕에 세운 기준들을 근거로 삼고 판단을 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와 그 선포의 신인성’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교회의 특수한 과제들’은 무엇인가, 그 과제들에 ‘가깝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앙론과 도덕론의 본질적 원칙들’은 무엇인가, 이 원칙들에 - 경우에 따라서는 심각하게 - 배치되는 것은 무엇인가를 구속력 있게 규정하는 것”은 교회에 맡겨진 일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직무를 맡고 있는 동료들 가운데 충성 의무의 ‘등급’이 있어야 하는가, 그 ‘등급’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도 원칙적으로 교회의 자율성에 맡겨진 사안이다.”

5. 평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교회와 그 산하 디아코니아 기관들의 자율성에 대한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서 교회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원칙을 준수하고 있다. 종교 행사의 자유와 법률이 허용하는 한계를 저울질할 때,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법률의 제한이 교회의 자기이해를 침해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독일에서 확립되어 있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 원칙은 교회를 국가조직에 편입시켜 국가의 감독 아래 두는 것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고유한 관심사’에 대한 국가의 간섭도 배제하도록 하고 있다. 교회의 고유한 관심사로 간주되는 영역은 설교, 교육, 예배, 교회법과 교회조직, 교회 직책의 부여, 성직자 양성과 직무교육, 교인들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규정, 교회의 직무 및 노동법, 독자적인 재산관리, 교회세 징수권, 디아코니아 활동의 전개와 독자적인 형성 등이다.
 교회와 그 산하 기관들의 자율성과 관련해서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확립한 판례는 독일에서 교회가 갖는 의미와 교회에 거는 신뢰를 반영하고 있다.

III. 복지수혜자의 복지기관 선택권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독일 개신교는 사회국가가 디아코니아 기관들이 기왕에 차지하고 있던 활동영역과 자율성을 보장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였고,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통하여 이를 단계적으로 실현하였다. 디아코니아 기관의 자율성 요구는 사회국가를 향하여 복지 서비스의 다원성을 인정하고 시민들이 복지기관을 선택하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라는 요구와 맞물려 있다. 독일 개신교는 “다원적인 복지 제공의 틀에서 개신교 신앙의 특성이 살아 있는 도움과 서비스를 준비하여 시민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이를 제공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그것이 디아코니아의 ‘특성’(Proprium)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1. 복지수혜자의 복지기관 선택권에 대한 독일 개신교의 입장

 복지수혜자의 복지기관 선택권은 사회복지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사회 구호를 어느 기관에서 받을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독일처럼 오래 전부터 국가 복지기관과 민간 복지기관이 병존하고 서로 협동하도록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복지수혜자가 공공 복지기관을 선택하는가, 민간 복지기관을 선택하는가, 특히 신앙고백에 입각하여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60년대 초에 바이마르 시대의 사회법을 개정하는 작업이 진행되었을 때, 독일 개신교가 관심을 기울인 주제는 보충성의 원칙이라기보다는 복지수혜자의 복지기관 선택권이었다. 이 권리를 신학적으로 뒷받침하는 데 크게 기여한 사람은 파울 콜머(Paul Collmer)였는데, 그는 1950년대 초부터 복지수혜자가 복지의 대상으로 다루어져서는 안 되고 엄연한 '전인적 주체'로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그는 사회국가에서 복지수혜자를 기계적으로 관료주의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보고, 교회가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교회는 질병과 가난에 처한 사람이 건강하고 유복한 사람과 다를 바 없이 하느님의 자녀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바른 관계를 맺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콜머의 주장은 개신교 인의론에 근거하여 복지수혜자의 주체적 지위를 강력하게 옹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콜머는 독일개신교협의회 사회봉사국 부총재의 지위를 갖고 있었던 1960년대 초에 독일연방헌법재판소로부터 사회입법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도록 요청받았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독일개신교협의회의 공식적인 견해로 간주할 만하다. 그는 복지수혜자의 인간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복지기관이 사회국가에서 없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고, 이러한 주장의 논거를 신학적으로 제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독일 기본법 제1조의 '인간의 존엄성' 규정과 연결시켜 제시하였다. 그는 특히 신앙고백에 입각하여 차별화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아코니아 기관들은 사회국가에서 제한적 우대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하였다.

2. 복지수혜자의 복지기관 선택권의 법제화

 이와 같은 콜머의 주장은 1960년대 초의 사회입법 과정에 반영되었다. 「연방사회구호법」 제3조 제1항, 제2항, 제3항은 다음과 같이 구호수혜자가 복지기관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제1항: “사회구호의 종류, 형식, 정도는 개별적 경우의 특수성, 특히 구호수혜자의 인격과 그의 요구의 종류, 지역상황에 따른다. 한 기관을 통하여 구호수혜자에게 구호가 시행되는 경우, 이 구호의 시행이 동법 제1조의 원칙들과 부합한다는 것을 (...) 보장하여야 한다.”
 제2항: “구호를 어떻게 제공받을 것인가와 관련된 구호수혜자의 소원은, 그것이 적절한 것인 한, 수용되어야 한다. 구호소, 구호원 혹은 유사한 기관에서 구호를 받겠다는 구호수혜자의 소원은, 그것과 다른 구호가 가능하지 않거나 충분하지 않을 경우, 구호소, 구호원 혹은 유사한 기관과 (...) 협정이 있을 경우 등, 개별적 경우의 특수성이 이를 필요로 하는 한에서만, 수용되어야 한다. 사회구호의 시혜자는 이러한 소원을 들어 줄 경우에 상당한 추기비용이 발생할 경우에는 그 소원을 들어줄 필요가 없다.”
 제3항: “구호수혜자가 소원할 경우에는 그가 속한 교단의 성직자들이 돌볼 수 있는 기관에 수용되어야 한다.”

 또한 「연방아동및청소년복지법」 제5조는 “소원을 표명할 권리와 선택의 권리”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1항: “수혜권자는 각기 다른 기관들의 서비스를 선택하고 구호를 어떻게 제공받을 것인가와 관련하여 소원을 말할 권리를 갖는다. 이 권리는 반드시 고지되어야 한다.”
 제2항: “선택과 소원은, 상당한 추가 비용과 결부되지 않는 한, 수용되어야 한다.(...)”

 이 규정들을 보면, 「연방아동및청소년복지법」 제5조가 서로 다른 복지기관들의 복지 서비스를 선택할 권리를 좀 더 분명하게 규정하고, 복지수혜자가 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언명할 의무를 규정하여 선택권을 더욱 강력하게 보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60년 초의 사회법들은 독일 기본법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기본법 제1조 제1항은 “인간의 존엄성”을 규정하고 있고, 기본법 제2조 제1항은 인간의 행위가 보편적인 의미에서 자유롭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4조 제1항과 제2항은 종교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종교의 자유에서 비롯되는 디아코니아 기관들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것은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판례를 통해 확립되었다는 것은 앞에서 본 바와 같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인간의 존엄성을 강력하게 옹호하는 전통에서 인간을 국가 행위의 주체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복지 영역에서 복지수혜자가 복지 서비스와 복지기관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국민의 주체적 지위에 부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IV. 맺음말

 독일에서 디아코니아 기관들은 민간복지와 국가복지의 관계를 규율해 온 보충성의 원칙을 법제화한 「청소년복지법」과 「연방사회구호법」의 틀에서 사회국가의 강력한 지원을 받으며 활동할 수 있는 제도적인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법들이 인사권과 회계, 직장조직 등과 관련해서 디아코니아 기관들의 자율성을 침해하자 디아코니아 기관들은 헌법소원을 통하여 디아코니아 기관 운영의 자율성을 확보해 나갔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판결들을 통하여 디아코니아 기관들이 교회의 일부분으로서 교회와 똑같이 종교의 자유와 종교 행사의 자유를 누린다는 점을 인정하였으며, 특수한 종교적 혹은 세계관적 자기이해에 근거하여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할 수 있는 지위를 갖는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그것은 디아코니아 기관들이 인사권 행사, 회계, 직장평의회 구성, 노동조합 정책 등에서 자기이해를 구현할 권리를 갖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권리를 독일연방헌법재판소로부터 인정받음으로써 디아코니아 기관들은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국가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재정 지원을 받으면서도 국가에 대해 매우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보장받으면서 그들 고유의 봉사 활동을 조직하고 전개하게 되었다.
 특히 복지수혜자가 복지 서비스와 복지기관을 선택하고 복지 서비스 제공 방식에 대해 소원을 말할 수 있게 하는 법제는 사회국가 독일에서 복지의 다원성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디아코니아 기관이 제공하는 복지 서비스의 특질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장치가 되고 있다.
 이 글을 마치면서 나는 독일의 사회복지 체계에서 교회복지와 국가복지의 관계를 규율하는 원칙들과 그 법제화가 우리나라 사회복지 체계를 정비하는 데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국가복지를 제도적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교회의 물적인 자원과 인적인 자원을 활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복지기관이 설립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교회는 복지 센터로서 활동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수효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 기관들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공공복지 활동의 일부를 위임받고 이에 따르는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으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엄격한 감독 아래서 활동하고 있다. 교회를 기반으로 하는 복지 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목사나 전도사들이 국가가 법으로 정한 별도의 교육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를 기반으로 하는 복지 센터의 자율성과 특성을 살리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에서도 국가복지와 교회복지의 관계를 규율하는 원칙과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관련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 교회복지와 국가복지의 관계를 규율하는 보충성의 원칙을 확립하고, 교회 복지기관의 자율성과 특성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그러한 일이 이루어진다면, 더 많은 교회들이 우리나라 사회복지 체계를 발전시키고 사회복지의 내실을 다지는 데 기여할 것이다. 독일의 디아코니아 기관들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보충성의 원칙, 자율성의 원칙, 다원성의 원칙과 그 법제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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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henschaftsbericht 2006 des Diakonischen Werkes der Evangelischen Kirche in Deutschlanf e.V., Diakonische Konferenz vom 17. bis 19. Oktober 2006 Berlin, Diakonie Texte 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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