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04/03 (11:45) from 211.104.79.80' of 211.104.79.80' | Article Number : 247 |
강원돈
(kwdth@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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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재신학의 주제와 방법 - 신학적 해석학의 형성과정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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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재신학의 주제와 방법 - 신학적 해석학의 형성과정을 중심으로 강원돈 Ⅰ. 머리말 한국의 민중신학은 신학 하는 방법과 신학 하는 주체의 성격 그리고 신학적 생산의 산물들이 갖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기능이라는 측면에서 한국교회를 지배해 왔던 기존의 신학들과 판이하게 다르다. 기존의 신학들의 몇 가지 특징을 유형화해 본다면, 첫째 기존신학은 신학과 교권의 결합을 신학적 생산의 물적 기반으로 삼고 있고, 둘째 초기선교시대 이래 신학과 교권의 결합은 신학적 제국주의가 관철되는 통로의 역할을 해 왔으며, 셋째 신학적 생산의 산물들은 교회대중을 제도교회의 물질적 이해관계에 통합시키고,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제도교회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최종적 층위에서 규정하는 한국사회에 교회대중을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통합하는 역할을 해 왔다. 한국의 교권신학이 정교분리원칙을 정교분리의 이데올로기로 확장하여 기존체제를 옹호하는 논리로 삼았다든지, 반공이데올로기를 1920년대 이래 신조의 차원으로 관철시켜 식민지사회와 8.15 이후의 친미반공분단국가의 형성과정 및 공고화 과정에서 지배이데올로기의 강화에 이바지했다든지, 선교초기부터 한국민족 혹은 한국민중의 전통문화를 정복의 대상으로 삼아 단절의 논리로 대응함으로써 한국민족, 한국민중의 문화적 아이덴티티의 강화를 억압하는 문화전략을 관철했다든지, 이원론적이고 내세지향적인 신학적 세계관을 발전시켜 노동과 물질의 세계에 대한 기독교의 책임을 희석화 했다든지 하는 것은 한국의 교권신학이 어떤 성격의 신학인가를 잘 보여준다. 이와 같은 한국의 교권신학에는 적어도 우리의 문제, 우리의 관점, 우리의 방법으로 신학을 전개한다는 자각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민족과 우리 민족의 삶을 생산하고 재생산해 온 민중의 요구에 따라, 그들의 관점에서, 그들의 삶 속에 성육신하며, 신학을 전개하려는 노력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주적인 한국신학의 형성이 오랫동안 좌절되었다든지, 신학과 교회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기능의 전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든지 하는 것도 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의 민중신학은 1960년대 이후 한국교회 일각에서 나타난 민족적 자각과 1971년의 전태일 분신사건 이후 첨예화 된 민중문제에 대한 관심(민중의 발견), 그리고 1970년대의 반독재민주화 투쟁과 그 저변에 흐르고 있었던 한국민중운동에 성육신한 기독교인들의 실천을 기본축으로 하고 있다. 물론 한국민중신학이 이론화되는 과정에서 1970년대에 활발하게 전개된 민중론과 민중문학, 민중문화이론 등등이 많은 영향을 끼쳤으나, 이와 같은 논의들이 민중신학에 의해 재생산될 수 있었던 것도 민족적 자각과 민중의 발견 그리고 그것에 터잡은 실천경험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민중신학의 특징은 몇 가지로 열거할 수 있다. 민족적 자각과 관련해서는, 우리 민족이 처한 문제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가운데 우리 나름의 관점에서 신학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자주적인 한국신학의 요구가 나타났고, 이러한 요구는 민중신학을 “서구신학에 대한 반명제”(反命題/Antithese)로서 성격화한다. 물론 “서구신학”이라는 개념에는 우리 민족의 요구와 무관하게 서구신학을 재생산한 신학의 여러 가지 형태들도 포함된다. 그 다음, 민중의 발견과 관련해서는 “신학적 해석학의 혁명적 전환”이 이루어졌음을 지적할 수 있다. 이제까지의 신학이 신학적 생산과정을 규정하는 코드들로 인해 “위에서 아래로” 세계와 역사와 성서를 보았고, 관념론이나 형이상학과 세계관적 동맹관계를 맺어 왔던 데 반해, 민중신학은 민중의 삶 속에 성육신하는 가운데, 민중의 관점에서 “아래에서 위로” 세계와 역사와 성서를 보기 시작했고, 탈관념론, 탈형이상학의 노선을 표방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암서 말한 민족적 자각을 더욱더 철저화한 것이기도 하다. 한국교회의 민족적 자각은 1960년대의 토착화신학을 자극하였지만, 민중신학이 토착화신학의 문제의식과 대화구도를 비판하면서 민중발견을 계기로 삼아 문중문화신학으로 철저화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민족의 실체는 민중이다”(안병무)는 명제는 민족적 자각과 민중의 발견을 종합하는 명제라고 볼 수 있다. 그 다음, 실천이라는 측면과 관련해서 민중신학은 정치신학의 형대로 제시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민중신학에서 실천은 신학적 성찰보다 우위에 있다. 안병무가 강조하는 “사건”도, 서남동이 강조한 “실천”도 이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사건과 실천은 역사적으로 주어진 그때그때마다의 구체적인 “현장”을 전제한다. 그리고 이 현장은 구체적인 현실의 모순들로 인해 억압당하는 자와 억압하는 자, 빼앗기는 자와 빼앗는 자, 이데올로기에 의해 탈주체화된 자와 바로 그 이데올로기로 대중을 동원하는 자, 요컨대 본래의 주인의 자리를 잃은 자와 그것을 찬탈한 자가 서로 대립하고 있는 현장이다. 이 현장에서의 실천은 실천 주체로 하여금 이와 같은 대립 구조에서 어느 한 편에 설 수밖에 없게 만든다. 민중신학은 이 대립구조에서 “당하는 자들”의 편에 서고자 하며, 이것이 바로 민중신학의 당파성을 규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당파성은 민중신학에 의해 생산되는 신학적 산물들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성격과 기능을 판가름하는 매우 중요한 계기이다. 민중신학은 “당하는 자들”로 성격화되는 민중의 갈망과 고통, 자신들의 해방을 위해 몸부림치는 민중의 실천을 신학적으로 성찰하는 정치신학이다. 여기서 민중과 그들의 실천은 민중신학의 자료라는 소극적 측면을 갖는 데 그치지 않고, 민중신학을 형성하는 구성적 계기라는 점이 주목된다. 끝으로 민중신학을 탄생하는 데 참여한 사람들의 주체적 조건도 민중신학의 특징을 규정한다. 서남동 교수는 스스로를 “방외신학자”(方外神學者), “거리의 신학자”로 규정한 바 있는데, 이처럼 기존의 특권이나 사회적 지위로부터 밀려나고 더 나아가 정치적 이유로 투옥되었던 경험은 민중신학의 내용과 형식을 독특하게 규정했다. 민중신학은 완결된 체계를 지닌 신학이 아니며, 지금도 형성․발전되어 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신학이다. 따라서 민중신학의 내적 논리를 밝히고, 오늘 우리의 상황에서 그 내적 논리에 따라 민중신학을 발전시키는 것은 제2세대 민중신학자들의 과제이다. 필자는 이 과제를 민중신학의 창조적 계승 또는 비판적 계승이라는 말로 총괄하고 싶다. 여기서는 이 과제를 죽재 서남동 민중신학에 한정시켜 수행해 보려고 한다. 이에 따라 필자는 서남동 민중신학의 형성과정과 내적 논리를 규명하고, 서남동 신학의 해석학적 구조를 밝힌 다음, 오늘 우리가 새롭게 착수해야 할 신학적 과제를 천명하고자 한다. Ⅱ. 서남동 민중신학의 형성과정 1. 서남동의 민중신학 구상이 맹아적 형태로 제시된 논문은 1975년에 발표된 「예수․교회사․한국교회」이다. 서남동은 1974년 연세대 신과대학 퇴수회에서 「예수와 민중」이라는 강연을 했고, 이 강연이 서남동 “민중신학의 외적인 출발”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으나, 「예수․교회사․한국교회」는 후에 민중신학으로 발전한 신학적 모티프들과 문제의식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논문은 “개개인의 해방”으로부터 “공동체의 해방”으로, “정신적․심령적 구원”으로부터 “역사적․정치적 구원”으로 서남동의 신학적 관심이 이행하였음을 분명히 밝히고, “사회혁명”을 전제할 수밖에 없는 현실사회의 대립구조가 신학적 성찰의 지평에 떠오르고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서남동은 이와 같은 신학적 성철이 적어도 네 가지 요인에 의해 주어졌음을 밝힌다. 첫째는 예수에 대한 종교사적 해석으로부터 “사회정치적인 각도”에서의 해석으로의 전진, 둘째는 하느님 나라의 표상과 천년왕국 표상의 구별로부터 독특하게 방향지어진 “종말론”의 정치화, 셋째는 맑스주의의 도전에 의해 “민중의 종교”로 “복귀”하기 시작한 기독교의 “새로운 활력”과 혁명․정치․해방신학의 충격, 넷째는 “민중의 편에 서서, 그 해방을 위해 싸우는” 한국교회의 실천과 이 과정에서 새롭게 듣기 시작한 민중의 소리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중의 소리를 듣기 시작한 일인데, 서남동은 이 민중의 소리를 “김지하의 시”의 형태로 접촉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나 개인의 신학적 발상과정에 있어서는 지하의 시가 그 의식을 듣게 하는 ‘소리의 매체’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거기서부터 찾아가면 함석헌 선생이 1970년 이래 『씨알의 소리』에 거듭거듭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는 것을 그 동안 나는 듣고도 듣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1983년의 회고에 따르면, “민중의 부르짖음에 대한 어떤 신학자들의 메아리”가 민중신학으로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이와 같은 이야기들은 모두 민중신학의 원점을 밝히는 주목할 만한 발언들이다. 서남동 민중신학의 형성을 이끌어간 모티프는 역시 독특한 역사인식과 현식인식이다. 그에 따르면, 오늘의 시대는 교회사적으로 성령의 제3시대, 탁기독교 시대이며, 세속사적으로는 민중의 시대라고 한다. 성령의 제3시대에 들어와 교회는 더 이상 교회의 울타리에 머물지 않고, 민중운동에 성육신하는 현장교회, “민중의 교회”로서 존재하며, 바로 이 교회의 존재형태가 “사건”이다. 성령의 운동을 뒤따르는 기독교인들의 실천과 민중의 자발적인 운동은 “사건”으로 표출되는데, 이 사건이 하느님의 선교가 구체적으로 전개되는 형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은 종교적인 관념의 세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의 현실이며, 철두철미하게 모순과 대립으로 가득 차 있는 현식이다. 서남동은 “모든 대립의 화해는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하지만, 부자와 가난한 자, 누르는 자와 눌리는 자 사이의 화해는 있을 수 없… 다. 그것은 네모난 원과 같이 있을 수 없는 논리다”는 말로 자신의 현실인식을 정식화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역사인식과 현실인식은 서남동 민중신학의 형성과정에서 맑스주의의 제한된 수용을 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서남동이 민중신학을 발전시켰던 1970년대 중반과 후반 그리고 1980년대 초반의 상황에서는 맑스주의에 대한 신학적 취급이 극히 조심스러웠고, 한국사회에서는 맑스주의 연구가 공개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서남동 역시 사회경제사적 연구 혹은 사회사적 해석 또는 정치․혁명․해방의 신학을 매개로 해서 맑스주의를 우회적으로 수용했던 점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서남동 민중신학에서는 방법론적 차원에서나 신학이념의 지향이라는 차원에서 맑스주의의 흔적이 엿보인다. 사회경제사적 해석방법과 탈신학(脫神學), 반신학(反神學)의 구상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앞에서 말한 「예수․교회사․한국교회」라는 논문은 맑스주의의 도전에 대한 신학적 응답이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서남동은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직․간접적인 맑스주의의 도전에 의해, “첫째로 기독교는 잃어버렸던 복음의 사회적 차원, 사회적 구원을 되찾았다. 둘째로 기독교는 신의 초월을 형이상학적 영역으로부터 미래의 초월로 환원한다. 셋째로 기독교는 지금까지의 ‘억압자의 이데올로기’로부터 민중의 종교, 해방의 복음으로 복귀한다. 넷째로 기독교는 정통적 교리가 절대적으로 주어진 규범이라는 생각에서 탈출하여 역사적 현실에서 실험과 행동으로 진리를 검증하는 태도로 바뀐다. 다섯째로 교회는 정통적인 교회사의 족보를 자랑하는 것을 의심하고 이 시점에서 소종파들과 이단들의 동기와 족보를 찾기 시작한다. 여섯째로 교회와 사회와의 사이에 세운 두꺼운 담을 헐기 시작한다. 복음을 삶의 모든 영역에 접합시키기 시작한다. 교회신학이 아닌 정치와 세계의 신학이다.” 물론 이와 같은 맑스주의의 제한된 수용이 후기의 탈신학과 반신학의 구상으로 발전되는 과정을 분석하는 데에는 훨씬 더 많은 요소들이 고려되어야 하지만, 이미 이 방법과 이념 초안에는 민중신학의 대강과 윤곽이 엿보이고 있다. 이 초안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실험과 행동으로 진리를 검증”한다는 테제인데, 서남동은 “편협된 교조주의”를 버리고 “실천의 굳은 의지”로써 신학하는 일을 강조하기도 했고, “이제 우리의 기독교 신앙도, 그 신학도, 그리고 ‘성서’해석도 전통적인 연역적 방법과 관념적 사변을 반성하고 성서 본래의 역사적 계시의 길을 따라서 귀납적인 방법, 사회과학적인 실천으로 과감하게 바꾸어야 할 것” 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실험과 행동, 이와 같은 실천이 서남동 민중신학의 구성적 계기가 되고, 신학적 성찰의 축점과 출발점으로 일찍 자리잡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서남동 민중신학의 최초 구상은 서남동 자신이 “국외인”으로 밀려나는 존재조건을 매개로 해서 민중신학의 체계적 구상으로 발전하는데, 이 체계적 구상은 「두 이야기의 합류」라는 논문에서 제시되고 있다. 2. 서남동 민중신학의 체계적 구상의 핵심개념은 “합류”이다. 서남동에 따르면, “민중신학의 과제는 성서의 민중동기와 한국의 민중전통을 결부시키려는 것이고, 그런 결부가 비로소 ‘한국신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런 결부는 실천면에서는 이미 1970년에 합류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인식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한 명제는 「두 이야기의 합류」라는 논문에서 이미 제시되었다. “한국의 민중신학의 과제는 기독교의 민중전통과 한국의 민중전통이 현재 한국교회의 ‘신의 선교’ 활동에서 합류되고 있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현재 눈앞에 전개되는 사실과 사건을 ‘하느님의 역사 개입’, 성령의 역사, 출애굽의 사건으로 알고 거기에 동참하고 그것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 명제 속에는 민중신학의 기본성격을 규정하는 여러 가지 개념들이 제시되고 있다. 합류, 증언, 사건, 동참, 해석 등이 그것이다. 사건과 증언이라는 개념은 이미 안병무의 민중신학 구상을 통해 그 성격과 의미가 분명히 밝혀졌거니와, 이 모티프가 서남동 민중신학의 체계적 구상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것은 퍽 주목된다. 그런데 서남동 민중신학의 체계적 구상에서 핵심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는 “합류”개념은 퍽 시적이고 문학적인 서술용법이기 때문에, 이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2.1 서남동이 말하는 합류는 서로 이질적인 전통과 역사의 창조적 계승이라는 개념과 일차적으로 관련되고 있다. 그런데 전통의 계승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역사적 지식”의 문제가 아니고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으로써 전통을 잇고 발전시킨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실천은 우리의 구체적인 역사현실에서 봉건주의의 잔재, 자본주의적 착취와 억압, (신)식민주의적 예속으로 인해 철저히 억압당하고 착취당하고 탈주체화된 민중의 해방실천이요, 이에 동참하는 기독교인들의 실천이다. 서남동이 말하는 전통의 계승에서 돋보이는 것은 전통의 해석학적 매개를 규정하는 것이 오늘 여기의 구체적 현실에서 전개되는 실천이라고 보았다는 점이다. 신학함(Doing Theology)도 이 실천과 유리될 때 설 땅을 잃는다. “신학 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인간구원, 인간해방의 사업을…과거의 역사적 사건들에 관한 ‘성서’ 본문의 새로운 해석으로 현실화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오늘의 역사적, 사회적 인간해방의 투쟁사건에 연대하고 거기서 하느님의 인간해방의 역사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실천에 근거한 해석과 현실화로서의 합류는 서로 성격을 달리하는 전통들과 역사들을 전제한다. 서남동은 1970년대 한국교회의 “하느님의 선교” 활동을 말하면서 이에 합류하는 세 가지 전통을 말했다. 성서의 민중전통, 교회사의 민중전통, 한국사의 민중전통이 그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합류하는 전통은 서남동이 열거한 것들로 고정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서남동이 말하는 합류는 열린 구조이다. 1980년대의 변화된 조건 속에서 한국민중의 운동 속에 성육신하는 기독교인들의 실천을 감안할 때, 이 실천을 매개로 해서 합류하는 민중해방전통은 “민중적 민족주의”라는 갈래에 국한되지 않고 훨씬 더 폭넓게 설정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맑스주의적 혹은 사회주의적 해방운동 전통도 합류의 구도에서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2.2 서남동이 말하는 합류는 오늘의 구체적 현실에서 전개되는 실천을 매개로 해서 전통을 현재화하는 것이다. 전통의 현재화는 전통을 오늘에 되살린다는 소극적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실천주체의 아이덴티티를 강화하고 실천의 내적 근거를 확보한다는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 이것이 “성령론적․공시적 해석”의 전제이다. “성령론적․공시적 해석”은 자기해방의 역량을 갖춘 민중의 등장을 역사적 근거로 하고, 성령의 제3시대, 탈기독교시대의 도래를 신학적 근거로 삼는다. 서남동이 “타력구원”으로부터 “자력구원”으로 구원론의 초점을 옮기고, 교조주의적 해석으로부터 실천적 해석으로 신학적 해석학의 기본축을 옮긴 것도 이와 같은 역사인식 때문이다. 실천을 매개로 한 전통의 창조적 계승에서 우선적인 것은 실천이지 전통이 아니다. 전통은 실천의 보조수단 혹은 “참고서”, “전거”에 불과하다. 성서도, 교회사도 마찬가지다. 만약 전통과 실천의 관계를 거꾸로 뒤집으면, 실천은 전통의 권위에 의해 질식당하고, 전통은 이데올로기화한다. 실천이 전통의 해석에 구성적 계기가 된다는 것은 이미 전통의 영향사(Wirkungsgeschichte)를 비판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해석학적 관점이 실천에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런 점에서 실천은 전통해방적이다. 그렇지만 「두 이야기의 합류」라는 논문을 작성할 때만 해도, 서남동은 전통의 계승과 오늘의 실천을 직결시키고 있을 뿐, 실천이 전개되는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신학적 성찰과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고학적인 현실분석을 신학적 성찰과 매개시키는 작업은 1983년에 발표한 「빈곤의 사회학과 빈민의 신학」, 「세계의 생명과 그리스도」라는 논문에서 최초로 시도되고 있으나, 이와 같은 시도가 충분한 결실을 맺기 이전에 그의 신학작업은 종결되었다. 3. 서남동 민중신학의 체계적 구상에서 민중이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독특하다. 서남동은, 민중신학의 주제는 “예수”라기보다 “민중”이라는 명제를 통해 이 점을 매우 예리하게 밝힌 바 있다. 이 명제는 예수사건을 민중신학의 전거로 해석하는 방식과 관련된 문맥에서 제시되고 있기 때문에, 이 명제는 “예수와 민중”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일차적으로 관련시킬 필요가 있으나, 서남동은 “기독론적․통시적 해석”과 대비되는 “성령론적․공시적 해석”을 적극적으로 말하면서, “민중신학에서는 민중이 자기를 결정하는 외부적 조건을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제약)해 나가며 자기에 대한 사회적 결정 내지 운명을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가 되어가는 것을 증언하려는 것”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서남동의 이와 같은 주장은 그가 민중신학의 주제를 민중으로 설정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분명히 뒷받침한다. “민중은 신학의 일부가 아니라, 신학의 전부이며, 따라서 민중을 망각하는 한, 그것은 신학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주목되는 발언이다. 앞에서 말한 실천과 전통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민중과 신학적 성찰의 관계에서도 민중은 신학적 성찰의 구성적 계기임이 분명하다. 이것은 예수와 계시에 대한 이해에서도 철저하게 관철되었던 관점이다. “민중신학의 경우에는 예수가 민중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도구의 구실을 하는 것인지, 예수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의 구실을 민중 개념이 하는 것은 아니다”든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이, 그를 믿고 따랐던 사람들(프토코이)을 제외하고서 믿을 수 있다거나 설교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선택받은 가난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복음)의 우연한 조역이 아니라 그 구조적인 요인이다. ‘복음’이라는 내용 혹은 이념이 우연한 자료(가난한 사람들)에 담겨졌다가, 다음 세대의 교회와 신학에서 그 본질적 내용과 우연한 자료로 분해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는 주장이 그러한 관점을 보여준다. 이처럼 민중이 계시 또는 신학함의 구성적 계기라고 한다면, 계시 또는 신학함은 민중 속으로의 성육신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오늘의 민중신학은 오늘의 민중, 오늘의 민중현실, 오늘의 민중운동에 당파적으로 편드는 선택과 실천 속에서만 가능해진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의(‘성서’의) 복음을 수락하려면, 그리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그것은) 우리 시대의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에서만 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 없이 복음을 우리의 것으로 수락하는 길은 없다.” 서남동 민중신학의 체계적 구상에서 민중은 “하느님과 땅과의 계약의 상대이며, 창조와 역사에 있어서 하느님의 공의회복의 담지자 내지 작인”으로 성격화되는데, 이와 같은 신학적 민중 이해는 생산의 주체로서 세계변혁과 역사추진의 실질적 주인이면서도 실제의 현실에서는 주인의 자리로부터 완전히 밀려나 고난을 받고 있는 민중이 하느님의 공의회복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간다는 새로운 구원론의 바탕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민중은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이 주체이며, 이와 같은 자력구원의 힘은 민중이 자기해방의 역량을 갖추기 시작한 민중시대의 가장 본질적인 징표이다. 4. 서남동은 민중현실의 밖과 안을 파악하고 인식하는 방법으로서 사회경제사적 방법과 문학사회학 혹은 예술사회학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서남동에 따르면, “사람을 밖에서 보면 육체고 안에서 보면 혼이듯이, 민중도 밖에서 보면 민중이고, 안에서 보면 그의 혼에 해당하는 한”이라고 한다. 밖에서 본 민중, 즉 “대자적 민중”과 관련해서 서남동은 사회경제사적 혹은 정치경제사적 방법을 적용함으로써 비로소 “지배세력에 대한 민중의 제약조건들”이 분명하게 밝혀진다고 말한다. 그 다음, 이와 같은 제약조건들이 밝혀진 연후에 문학사회학적 방법이 적용됨으로써 “민중의 사회적 전기, 민중의 집단적 영혼, 민중의 의식과 그들의 갈망”, 곧 안에서 본 민중이 드러난다고 한다. 서남동은 이와 같은 방법을 체계적으로 정식화한 글을 남긴 바 없으나, 적어도 이 방법들이 유물사관을 전제하고 있음을 매우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제 정치신학이 그 해석의 틀을 사회경제사 내지 문학사회학이라 했을 때에는 인간의 인격적 실존이 그 틀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조건이 그 틀이라고 하겠다… 기초가 상부구조를 조건짓느냐 그 역이냐, 존재가 의식을 조건짓느냐 그 역이냐, 환경적은 조건이냐 그 역이냐의 문제에 대해서 인습적인 편견일수록 후항들을 대답으로 택하는 관념론에 빠지는 것이 상례다. 사회과학적인 새 발견들은 보다 전항들에 편든다고 보겠다. 실제는 전항과 후항의 교호 작용이겠지만, 인습적 편견을 타파하려면 사회적 조건이 인간성을 조건짓는다고 하여 변증법적인 역점을 두는 것이 정치신학의 자세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 경우에 조건지어지는 인간성이라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제집단이다. 곧 종족, 신분, 계급, 계층, 성별, 연령적 세대, 역사적 시대, 지배-피지배의 관계, 소속문제 곧 정체의식의 문제 등이 사회를 구성하고 역사를 추진시켜 가는 요인들이다.” 이 인용문은 서남동이 자신의 방법을 예비적으로 정식화하면서 용어의 선택에 얼마나 신중을 기했는가도 잘 보여준다. 인용문의 강조부분인 “관념론” 다음에는 보통 “유물론”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상례인데, 이를 “사회과학적인 새 발견들”로 윤색하고 있는 대목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다. 이 예비적 정식화는 좀더 정교하게 다듬어져야 할 대목이 많지만, 서남동이 경제환원론에 빠지지 않으면서도(“교호작용”), 유물사관의 기본공리를 신학적 성찰에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서남동은 나중에 “계시의 하부구조”라는 개념을 과감하게 쓰기도 했고, 교회사의 전통을 기초와 상부구조의 변증법에 따라 해석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예수․교회사․한국교회”에서 제시된 서남동 민중신학의 초기 구상이 계속 관철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들이다. 서남동 민중신학의 해석학적 틀에서 사회경제사적 방법이 민중현실에 대한 인식의 일차적인 방법이고, 문학사회학적 방법이 민중인식의 이차적인 방법이라는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흔히들 서남동 민중신학에서 한(恨)이 심리학적 범주로 설정되어 있는 듯이 오해하고 있는데, 이것은 서남동이 문학사회학적 방법으로(이것이 문학심리학과 다르다) 한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것을 망각한 소치이다. 한은 억압과 착취 그리고 소외가 지배하는 사회적 제관계들로부터 생성되지만, 그 생성과정이 명료하게 의식되지 않는 가운데 마음의 밑바닥에 앙금처럼 축적되는 주관적 감정이다. 이러한 한의 실체에서 한의 생성과정을 사회경제사적으로 재구성하고 한의 생성조건이 되었던 사회적 제관계를 실질적으로 전복하지 않고 축적된 한의 심리적 해소만을 시도하는 것은 진정한 한풀이일 수 없다. 서남동이 한풀이의 “실질화”, “정치화”를 말할 적에, 그가 전제한 것은 바로 이러한 혁명이다. 그러나 이미 이 혁명은 보복의 악순환을 끊어버리는 한(恨)과 단(斷)의 변증법에 의해 수행되는 민중혁명이다. 바로 이 한과 단의 변증법이야말로 나락과 하늘의 일치를 가능하게 하는 민중적 변증법의 극치이다(후술). 민중현실에 대한 문학사회학적 접근은 민중현실에 대한 내재적인 접근방법이다. 이와 같은 내재적인 접근이 가능한 것은 민중의 주체적 자기의식을 담고 있는 민중의 언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민중의 언어가 순수한 민중언어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민중의 언어도 지배이데올로기에 의해 감염되고, 지배계급에 의해 특정한 형태로 왜곡되어 도리어 민중의 주체적 자의식에 족쇄를 채우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민중의 주체적 자의식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지배이데올로기에 감염되고 왜곡된 민중언어를 재구성하는 섬세한 방법이 필요하다. 서남동은 바로 이 작업을 위해 언어에 대한 이데올로기비판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아무튼 민중현실의 내재적 접근방법을 통해 발견한 민중언어=몸의 언어=이야기는 서남동 민중신학의 계속적 발전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5. 서남동 민중신학의 체계적 구상을 결정짓는 기본구도는 김지하에 의해 담시형태로 표현된 민중적 변증법이었다고 생각된다. 서남동 민중신학의 체계적 구상 시대를 특징짓는 “민중의 메시아적 성격”, “한의 성례전적 성격”이라는 표현도 이 민중적 변증법과 깊은 관계가 있다. 서남동이 민중을 생산관계라는 측면에서 일단 고찰하면서도 생산관계에 의한 민중의 전일적 규정을 삼갔던 것도 깊이 따지고 보면 민중적 변증법과 그 맥이 닿아 있는 듯하다. 서남동은 김지하의 「장일담」구상메모에서 김지하의 민중신학을 읽고 있는데, 이 민중신학의 기본골자는 “나락의 (극)한과의 완전한 일치”로부터 “하늘”이 탄생하는 나락과 하늘의 일치, “신과 혁명의 통일”, 곧 민중적 삶의 변증법이다. “나락의 (극)한과의 일치는 강도, 살인, 강간, 절도, 사기 등 인륜상실자들, 이 사회에서 저주받고 이 땅에서 추방당한 버림받은 자들의 소굴에 들어가서 그들과 마음으로 일치하는 경험이다. 그(=김지하)는 이러한 인륜상실 현상은 억압에서 생겨진 한이 내면적으로 뒤집혀서 표출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마음속에서 다른 어떤 인간집단에서도 볼 수 없는 참 마음, 곧 신을 만나게 된다. 그렇기에 이 밑바닥을 다시 뒤집으면 바로 하늘이 되고 거기에서 민중의 메시아가 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인내천을 생각한다.” 이 인용문은 민중적 변증법이 무엇인가를 은유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밑바닥이 하늘로, 아래가 위로 뒤집어지는 과정은 나락의 극한에서도 소멸도지 않는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을 매개로 해서 이루어진다. 이 끈질긴 생명력이야말로 민중의 자기초월을 가능하게 하는 힘일 것이다. 그러나 그 초월은 역사의 저 건너편과 역사의 한복판을 대립물로 하고 이 대립물들의 투쟁과 통일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나락과 하늘로 총괄되는 현실적인 것들의 대립과 통일을 전제한다. 이런 점에서 그 초월은 철저히 역사적인 것, 구체적인 것, 육체적인 것이다. 위의 인용문은 이와 관련하여 의미 있게 음미해야 할 한의 이중적 현상형태를 암시하고 있다. 한의 이중적 현상형태는 한의 파괴적인 현상형태(인륜상실)와 한의 혁명적 에너지로의 현상형태를 말하는 것인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이와 같은 이중적 형상형태가 모두 나락의 극한, 삶의 맨 밑바닥으로부터 솟구쳐 올라온다는 점이다. 이 나락의 극한에 처한 삶으로부터 솟구쳐 올라오는 힘이 진정한 혁명의 힘, 한과 단의 변증법과 “신과 혁명의 통일”을 가능하게 하는 민중의 힘이요, 민중의 메시아적 성격을 증거 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서남동 민중신학의 체계적 구상에서 중요한 것은 신이 나락의 극한에 처한 민중의 삶 속에서 탄생하고, 바로 이 밑바닥이 하늘이라는 통찰이었던 것 같다. 이러한 통찰은 민중과의 자기동정(自己同定/self-identification)을 통해 하늘(구원)에 이른다는 독특한 민중신학적 실천의 정형화로 이어진다. Ⅲ. 서남동 민중신학의 발전 : 탈식학과 반신학 1. 1980년대 들어와서 서남동이 발전시킨 민중신학 작업은 민담의 재발견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서남동에 따르면, “민담은 민중의 자아를 담고 있는 그릇, 나아가서 그 집단적 영혼일 뿐 아니라, 참다운 전달과 전승모체가 되는 것이다.” 민담은 민중의 삶과 사건의 경험으로부터 탄생하는 것이지만, 일당 탄생된 민담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고 계급사회 속에서 일정하게 왜곡되고 변질되는 사회사적 과정을 겪는다. 따라서 현존하는 민담은 계급사호의 지배이데올로기에 의해 채색된 표면구조와 본래의 민담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의 이면구조로 이루어지는데, 이와 같은 표면구조와 이면구조의 갈등은 지배이데올로기와 민중의식의 갈등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존하는 민담으로부터 본래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서는 민담의 사회사를 재구성함으로써 본래의 민담 속에 담긴 민중의 집단적 영혼, 민중의 자아정체를 되찾는 일이 필요하다. 민담의 재발견은 민중의 이야기, 곧 민담을 통해 민중의 삶의 역사를 제대로 읽는 데에도 이바지하지만, 성서의 계시를 새롭게 읽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성서의 민중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들에게 일어난 사건을 전했다. 그들에게 일어난 사건은 이야기라는 전달매체를 통해 전승된 것이다. 따라서 전승된 이야기 배후에는 사건이 있다. 서남동은 사건과 이야기의 관계를 하느님의 계시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하느님의 자기계시의 제1차적인 매체는 구속사건, 역사적 사건이고, 그러한 사건에 관한 본래적인 전달매체는 ‘이야기’다.” 물론 이와 같은 이야기도 일정한 사회사적 굴절․변질과정은 유다교와 기독교의 헤게모니 블록이 생산해 낸 지배적인 신학을 매개로 해서 이루어졌다. 케리그마, 교리, 신학은 하느님의 역사적 계시, 사건을 담고 있던 이야기를 화석화시키고, 본래의 사건을 증발시키고 이를 지배이데올로기로 탈바꿈시킨다. 따라서 본래의 사건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사건의 전달매체인 이야기의 사회사적 굴절․변질과정을 재구성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신학은 “방법론적으로” “유보”되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방법론적 유보가 “탈신학”이다. 2. 탈신학의 방법론적 절차는 “원계시의 재생”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서남동은 예수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탈신학화가 겨냥하는 실천적 의도를 밝힌다. 예수의 이야기는 신학화 과정을 통해 심하게 훼손되었고, 본래의 사건은 실종되었다. 예수의 죽임당함은 예수의 죽음으로, 예수의 십자가처형은 예수의 십자가로 중립화되었다. 예수 이야기의 탈신학화는 바로 이 훼손과 왜곡의 과정을 거꾸로 되돌려 “예수의 십자가형과 예수의 죽임을 되찾아 거기에 뿌리를 박고 그 기반 위에서 신앙적인 증거”를 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은 증거는 “현실을 개변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서남동은 예수의 이야기를 탈신학화함으로써 우리가 획득하는 원사건의 진상이 “사회적 모순”의 문제요, “해결 가능성 안에 있는 문제”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바로 탈신학화의 고정은 “반신학”(反神學)의 길이기도 하다. 탈신학화의 절차는 원래의 사건과 그 전달매체를 왜곡시켰던 지배적인 신학의 코드를 철거하는 작업이요, 궁극적으로 지배체제와 지배이데올로기의 강제로부터 벗어나는 작업인데, 바로 그것은 전통적인 신학이 걸어왔던 이데올로기적 통합에 반(反)하는 신학의 길, 곧 반신학(反神學)의 길이기 때문이다. 서남동 민중신학은 이처럼 탈신학과 반신학의 구상에 이르러 사건의 진상과 현실의 운동을 올바르게 반영하지 못하고 이를 왜곡하고 은폐하는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라는 모티프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3. 탈신학화와 반신학은 방법론적으로는 유물사관을 전제하는 사회사적 분석을 기본축으로 하고(서남동은 1983년에 이르러 비로소 사회사적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한다), 이념적으로는 반관념론, 반형이상학을 기본축으로 해서 움직인다. 이것은 전통적 신학을 아래로부터 뒤집어 엎는 작업이기도 하다. 전통적 신학은 위에서 아래로 진행되는 연역의 방법, 초월의 이념을 추구했지만, 탈신학화와 반신학은 아래로부터 위로 진행되는 귀납의 방법, 성육신의 이념을 추구한다. 전통적인 신학이 사변을 먹고 살았다면, 탈신학화와 반신학은 실천을 매개로 하여 전개된다. 전통적인 신학이 머리의 신학이라면 탈신학화와 반신학은 몸의 신학이다. 이와 같은 신학방법과 신학이념에 도달한 서남동은 이제 “계시의 하부구조”라는 개념을 통해 민중신학의 좌표를 확인하고자 한다. 계시의 하부구조라 했을 때, 하부구조는 “물질적”이고 “역사적”인 것의 총괄적 개념이다. 하부구조는 일차적으로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와 구별되는 경제적 토대를 가리키지만, 서남동은 단순히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하부구조는 머리에 대한 몸, 정신에 대한 물질, 이념에 대한 현실, 이론에 대한 실천, 이성과 지성에 대한 감정과 본능을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포괄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계시의 하부구조는 계시의 “역사적․발생학적 핵”을 지칭하며, 역사 안에 있는 현실, 역사 안에서 전개되는 민중의 삶, 민중의 사회사이다. 따라서 계시의 하부구조를 밝힌다는 것은 계시가 사건의 형태로 일어난 민중의 사회사를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일이다. 물론 민중의 사회사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이 신학적 성찰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계시의 하부구조를 밝히지 않고 전개되는 신학적 성찰은 뜬 구름 위에 펼쳐지는 사변이요, 몸이 없는 머리, 곧 유령이며, 역사의 현실로부터 이탈하여 역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덮어 씌워지는 이데올로기이다. “우리가 ‘역사적 계시’라고 말하면서, 그 하부구조에서 유리된 상부 구조만의 전통적 신학(에 만족한다면-필자 보충), … 나는 (그것을) 유령이요 아편이라고 말한다.” 서남동이 제시한 계시의 하부구조는 “아래에서 위로” 전개되는 민중신학적 해석학이 도달한 중요한 성과들 가운데 하나이다. 서남동 자신은 민담에 대한 탈신학적 고찰, 반신학을 통해 계시의 하부구조에 도달하였다고 주장하고, 바로 그것이 “세계의 새로운 신학에 공헌한다고 인정되는 방법”, “한국에서 민중신학을 특이하게 발전시킨 방법”이라고 천명했지만, 실제로 서남동 자신은 “민중신학의 방법에서도 경제(사관이)나 유물사관의 방법으로 사회문제를 분석하는 것을 참고로 하긴 한다”고 유보적으로 유물사관의 신학적 수용을 밝힌 바 있다. 필자는 계시의 하부구조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이 암호를 풀어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신학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리라고 본다. 아무튼 서남동이 말하는 계시의 하부구조는 사회과학적 분석의 대상이다. 이 계시의 하부구조는 “복원”되어야 한다. 서남동에 따르면, 바로 “이것이 근대에 대두되는 사회사적 해석, 물질주의적(materialistisch) 신학의 과제이다.” 그런데 계시의 하부구조와 관련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앞서 해명한 서남동이 민중신학의 체계적 구상에서처럼 계시의 하부구조를 강조하면서 민중이 계시의 구성적 요인이라는 것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민중은 단순한 "계시의 매체“가 아니라, ”계시의 구성적인 요인“이다. 민중신학이 강조하는 민중주체성은 바로 이 명제에서 극치에 도달했다고 본다. 4. 서남동 민중신학은 실천적 의도에서 구상된 탈신학호와 반신학화의 방법적 절차를 거치면서 현실에서의 실천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현실분석을 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탈신학화를 통해 복원된 예수의 십자가처형과 부활을 오늘의 현실에서 현실화하고,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신앙을 구체화하고, 우리의 역사와 현장에서 새 역사, 새 사회를 이루겠다는 민중의 갈망과 결단으로 현장화하는 것, 곧 십자가와 부활을 “재연”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실화, 이와 같은 구체화, 이와 같은 현장화와 재연은 오늘의 사난한 사람들, 곧 민중과 “연대”하여 “사회적, 정치적 실천”을 전개할 것을 요구한다. 서남동은 이러한 연대와 실천 “전략”이 신학적인 “해석”으로 제시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설령 민중과 연대하여 전개하고자 하는 정치적 실천의 정당성을 신학적으로 제시한다고 해도, 그와 같은 신학적 정당화가 그때그때마다의 특정한 조건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전략․전술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남동은 “메시아 정치의 실현”이라는 포괄적인 명제를 제시한다. “메시아 정치의 실현”은 신학적으로 해석된 정치의 과제인데, 서남동은 이 정치적 실천의 과제를 위해 “이데올로기와 프락시스를 다짐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데올로기”와 “프락시르”는, 아직은 엄밀하게 규정되지 않은 전략적 실천 개념을 암시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 아직은 엄밀하게 규정되지 않은 전략적 실천개념이 서남동이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한 현실분석을 매개로 해서 제시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서남동이 시도한 현실분석은 소위 사회과학적 방법으로 알려져 있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1983년 현재 진보적인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수용된 종속이론과 주변부사회의 계급분석까지 원용한 것을 보면, 서남동이 일찍 신학작업을 종결짓지 않고 계속 민중신학 작업을 했을 경우 어떤 새로운 방법론을 발전시켰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Ⅳ. 분석의 요약과 몇 가지 남는 과제 1. 이제까지의 논의를 통해, 필자는 전통의 창조적 계승이라는 해석학의 과제를 중심으로 서남동 민중신학이 어떠한 발전경향을 보이고 있는가를 분석하였다. 서남동 민중신학의 해석학은 애초부터 실천을 매개로 한 실천적 해석학이었다. 바로 이러한 실천은 전통일반의 영향사적 그물로부터 벗어나 전통 일반을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이데올로기비판의 관점을 부여하였다. 따라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여러 유형의 전통들을 이데올로기비판적인 재구성작업(사회사적 분석)에 의해 체계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서남동은 지배이데올로기에 통합되었거나 지배이데올로기에 의해 왜곡된 전통들을 무장해제 시키거나 이제까지 잊혀져 왔던 민중전통을 복구하였다. 이렇게 해서 복구된 민중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은 실천하는 주체의 아이덴티티를 강화시키고 현실변혁의 잠재력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전통과 실천은 오늘의 현장에서 서로 직결되는 구조를 보였다. 2. 서남동의 실천적 해석학은 점차 오늘의 현장에 대한 보다 과학적인 분석을 요구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과학적인 현실분석이 서남동 민중신학의 해석학적 구조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지는 가는 전혀 밝혀져 있지 않다. 이위치를 설정하고 과학적인 현실분석을 매개하는 해석학적 모델을 제시하는 것은 서남동이 남기 과제이다. 3. 서남동의 실천적 해석을 이끌어가고 있는 주조음(Cantus Firmus)은 민중의 구체적인 삶이 떠받치고 있는 민중적 변증법에 대한 확신, 그리고 바로 이 민중을 당파적으로 편드는 선택이다. 당파적 선택은 서남동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방법의 실험과 탈전통적인 이념의 모색을 수행할 수 있게 했던 추진력이다. 4. 서남동 민중신학은 주체적인 한국신학을 형성하는 과제와 민중의 해방실천에 이바지하는 한국의 해방신학을 전개하는 과제를 통일시키고자 했던 중요한 시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서남동의 민중신학의 내적논리를 분석할 때 매우 주목되는 것은 서남동이 신학이론의 구성이라는 차원에서 맑스주의를 신중하게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맑스주의적 방법과 이념이 서남동의 민중신학의 모든 측면을 규정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서남동은 민중신학읜 초기구상으로부터 체계적 구상을 거쳐 민중신학의 발전에 이르기까지 맑스주의를 싫든 좋든 의식하면서 맑스주의와 경쟁하거나 이를 제한적으로, 우회적으로 수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서남동의 민중이해는 맑스주의적 분석과는 거리고 멀고, 도리어 민중적 변증법에 따른 이해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맑스주의적 민중이해 또는 사회경제사적 민중이해를 일단 거친 것으로 생각된다. 서남동은 변혁주체로서의 민중에 대한 전략적, 전술적 검토를 하고 있지는 않으나, 민중을 기층생산대중으로 파악하고 이를 하느님의 계약 상대자로 해석하고 있다. 또한 서남동은 발전된 민중신학 단계에서 민담에 대한 성찰을 통해 독특한 형태의 “물(物)의 신학”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신학적 구상이 그 이념과 방법에서 맑스주의와 어느 만큼의 상관성이 있는가도 궁금한 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중신학의 모티프들을 맑스주의와의 비판적 대화를 통해 좀더 발전시키는 것도 의미있으리라고 생각된다. 5.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서남동이 말년에 시도한 현장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이 신학적 해석학의 구조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또 다양한 사회과학적 방법들 가운데 민중신학의 내적 논리와 한국사회의 실천적 변혁이라는 요구에 적절한 방법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남겨진 과제라고 생각된다. 6. 기독교인들이 자기해방의 역량을 갖추고 자기의 삶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민중과 연대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전략과 전술의 수립이 필요한데, 이와 관련해서 서남동 교수가 충분히 발전시키지는 못했으나 분명히 시사한 바 있는 작업을 수행하는 것도 앞으로 계속 중시되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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