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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논리와 생명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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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논리와 생명의 논리

강원돈 (한신대 신학과 교수/기독교윤리)

I. 머리말

 오늘 나에게 주어진 주제는 자본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기독교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극복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평신도 아카데미는 자본의 논리에 충실한 기독교와 생명의 논리를 모색하는 기독교를 선명하게 대립시키는 논리적인 틀을 갖고서 이 주제를 가다듬은 것 같다. 이 논리적 틀은 자본의 논리가 죽음의 논리 혹은 죽임의 논리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러한 생각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오늘의 지구적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논리가 갖는 파괴적이고, 파국적인 성격을 잘 암시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오늘의 주제는 여러 측면에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기독교가 자본의 논리를 옹호하였다면, 기독교의 본래적인 가르침이 친자본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 그런 것인가? 만일 기독교의 본질이 자본주의 옹호와 거리가 먼 것이라면, 어떻게 그러한 기독교가 자본의 논리를 옹호하게 된 것인지 그 내력을 살펴야 할 것이다. 또한 오늘의 기독교가 자본의 논리를 어떻게 옹호하는가를 살피면서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여야 한다.
 오늘의 짧은 강연과 토론 시간에 이 모든 이야기를 자세하게 할 수는 없다. 강연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나는 우선 경제에 대한 성서의 본래적인 가르침을 큰 틀에서 제시하고, 둘째로 이러한 성서의 가르침이 어떻게 해서 기득권 옹호의 논리에 가려지고, 마침내 콘스탄틴적 기독교에 이르러 지배체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에 자리를 내어 주었는가를 개괄적으로 살필 것이다. 셋째,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친화성에 관한 막스 베버의 테제를 검토하면서 개신교의 직업 윤리가 친자본적 성격을 갖고 있는가를 따져 볼 것이다. 끝으로, 오늘의 한국 교회에서 기독교가 자본의 논리를 옹호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드러내어 그 극복의 실마리를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II. 성서가 가르치는 생명의 경제와 하느님의 정의

 성서에서 하느님은 생명을 창조하고 이를 보호하고 완성하는 분으로 나타난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허락한 생활 방식으로서의 경제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일에 이바지하여야 할 도구이다. 나는 이러한 가르침이 창세기 1장 28절의 생명의 대헌장(magna carta vitae)과 출애굽기 16장의 만나 이야기에 잘 드러난다고 본다.

1. 생명의 대헌장에 나타난 경제

 창세기 1장 28절은 하느님이 처음 창조된 사람들을 축복하시며 삶을 꾸려나가는 방식을 전달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을 가득 채워라. 땅을 발 아래 두어라. 하늘의 새들과 땅에 사는 짐승들과 바다의 물고기들을 다스려라.”
 이 말씀은 오래 동안 마치 하느님이 인간에게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하여 생명체들과 땅에 대한 무제약적 지배권을 허락한 것처럼 오해되어 왔다. 이러한 오해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상가는 프란시스 베이컨이다. 그는 인간이 죄의 결과로 하느님의 형상성을 상실하여 자연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하였기에 자연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면 하느님의 형상성을 회복하여 죄를 짓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자연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자연에 대한 지식(scientia)은 자연에 대한 지배력(potentia)이다. 베이컨에게서 자연에 대한 탐구는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의 하느님 형상성을 회복하는 구원의 드라마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와 같은 베이컨의 사상은 자연의 지배를 문명 발전의 토대로 보는 근대적 세계관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창세기 1장 28절의 말씀은 베이컨의 세계관을 뒷받침하기는커녕 도리어 그 세계관을 전복시킨다. 창세기 1장 28절의 말씀은 창세기 1장 1절 - 2장 4절a의 전체적인 문맥에서 해석되어야 하며, 특히 1장 26-27절에 나오는 하느님의 형상과 생명체의 지배 사이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풀이되어야 한다.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하느님의 청지기로 부름을 받아 피조물공동체에서 상생과 공생의 질서를 유지하는 임무를 부여받았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하늘의 새들과 땅의 짐승들과 바다의 물고기를 다스리라는 생명체 지배의 위임에 담긴 뜻이다. 1장 28절에 나오는 “땅을 발 아래 두라.”는 말씀은 바로 이와 같은 피조물공동체의 상생과 공생의 질서를 유지하는 가운데 땅을 경작하면서 늘어나는 인구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살아가라는 뜻이다. ‘땅을 발 아래 두는 일’을 라틴어식으로 표기하여 ‘도미니움 떼레’(dominium terrae)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경우 도미니움 떼레는 땅과 그 위에 있는 만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노동활동을 뜻하며, 좀 더 넓은 의미에서는 경제활동을 가리킨다.
 경제는 희귀성의 조건 아래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의식적이고 사회적인 생활과정이지만, 인간의 욕망충족을 위한 경제활동은 피조물들 사이에 정의와 평화를 수립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뜻에 의해 분명한 제약을 받고 있다. 나는 이를 경제활동의 생태학적 제약으로 개념화할 수 있다고 본다.

2. 하느님의 정의와 만나의 경제

 기독교가 추구하는 생명의 경제는 하느님의 정의에 근거한다. 성서에서 하느님의 정의는 어떤 개념이나 어떤 객관적인 척도로 주어져 있지 않다. 하느님의 정의는 오직 하느님의 구원하고 해방하는 행위로부터 인식되고, 그 인식은 하느님의 행위에 부합하는 인간의 응답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무리들 편에 서서 그들을 구원하고 해방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야훼임을 알린 출애굽 사건 이래로 성서를 관통하는 기본 모티프이다. 하느님의 정의로운 행위를 통해 하느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그들 사이에서도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서에서 정의는 관계론적 개념이다.
 하느님의 정의의 요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처절한 삶과 그 종살이로부터 해방시킨 하느님의 위대한 구원 행위를 기억하는 데서 출발한다. 계약법전에서 강조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의 책임은 바로 이와 같은 역사적 회상에 터를 잡고 있다. “너희는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사람을 구박하거나 학대하지 말아라. 너희도 에집트 땅에서 몸붙여 살지 않았느냐?”(출애 22:20) 이와 같은 약자 배려의 정신은 과부와 고아에 대한 보호(출애 22:21f.), 떠돌이꾼에 대한 보호(레위 25:35) 등으로 이어지며, 타작이나 수확을 할 때 이삭을 남겨 두거나 열매를 남겨 두어 “가난한 자와 몸 붙여 사는 외국인이 따 먹도록 남겨 놓으라.”는 분부로 나타난다. 출애굽 전승의 핵을 이루는 약자 배려의 정신은 사회기금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십일조 제도로 발전되었으며,(신명 14:28-29) 예언자들에게도 계승된다. 예언자들에게 하느님의 정의에 대한 지식과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하는 것은 둘이 아니라 같은 동전의 양면이었다.(예레 9:23f.; 예레 22:15; 이사 58:10 등) 이러한 예언자 정신은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는 예수의 선언으로 이어진다.(루가 6: 20-21)
 이와 같이 하느님의 정의를 가난한 사람들의 배려와 보호에 직결시키는 성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생존에 필요한 소득에 대한 권리가 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여러 모티프들을 제공한다. 만나 이야기(출애 16:1-36), 주기도문(마태 6:11; 누가 11:3 병행), 포도원 주인의 비유(마태 20: 1-16), 최후심판의 비유(마태 25:31-46)가 그것이다.
 
 1) 만나 이야기를 해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나가 이집트에서 탈출한 출애굽 공동체가 이집트의 축적 경제에 대항하여 추구하여야 했던 대안적인 삶의 상징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집트의 파라오의 체제는 강력한 군사력과 행정력을 뒷받침하는 방대한 공납체제를 구축하였으며, 하위계층의 사람들을 강제노동에 동원하였다. 람세스 2세가 하피루를 동원하여 짓게 했던 거대한 창고건물들은 공납과 강제노동에 기반을 둔 착취와 축적이 얼마나 엄청난 규모로 이루어졌는가를 암시한다. 출애굽 공동체는 이집트에서 착취와 축적,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억압으로부터 탈출한 공동체이고, 이들을 파라오의 종살이로부터 건져낸 야훼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중심으로 착취와 억압, 그리고 축적의 논리를 넘어선 대안의 정치경제를 추구한 공동체였다. 나는 이들이 추구한 경제의 원형이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는 이야기가 바로 만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느님은 출애굽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남녀의 구별이나, 나이의 구별이나, 권위의 높고 낮음의 구별 없이, 기본 욕구를 충족하는 데 필요한 만나를 제공하였다. 만나는 ‘일용할 양식’이었다. ‘일용할 양식’은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배분되어야 했고, 그 누구도 ‘일용할 양식’보다 더 많은 것을 챙겨서 축적해서는 안 되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정의의 요구이다.

 2) 만나 모티프는 주기도문 제2항목 첫째 기원(“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에 다시 등장한다. ‘일용할 양식’에 대한 루터의 해석은 매우 중요하다. 그에 따르면 ‘일용할 양식’은 “삶을 위한 양식과 필수품에 속하는 모든 것, 먹는 것, 마시는 것, 옷, 신발, 집, 정원, 경작지, 가축, 현금, 순수하고 선한 배우자, 순박한 아이들, 착한 고용인, 순수하고 신뢰할 수 있는 통치자, 선한 정부, 좋은 날씨, 평화, 건강, 교육, 명예, 좋은 친구, 신용 있는 이웃 등”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인간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는 모든 것이다. 이 ‘일용할 양식’은 나 혼자 차지해서는 안 되고, ‘우리’ 모두에게 허락되어야 한다. ‘우리’가 모두 “똑같은 기본적 필요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그 필요를 집단적으로 충족시킬 때 우리는 형제자매가 된다.”는 것도 자명할 것이다. 이것은 ‘일용할 양식’의 문제가 사회정의와 직결된 문제임을 뜻한다.
 
 3)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업적에 따른 정확한 분배’를 뒤집어엎는 ‘하느님의 기이한 의’를 묘사한다. 하느님의 정의는 노동의 업적과 무관하게 삶의 필요에 따라 재화를 나누어 주는 행위를 통해 드러난다. 업적과 보상을 서로 분리하고, 보상과 삶의 필요를 직결시키는 것이 하느님의 정의이다. 그것이 기이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업적과 보상을 서로 결합시키는 일이 마치 하늘이 정한 법인 양 생각하는 통념이 그만큼 강력하게 자리를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통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노동할 기회가 전혀 없거나 노동 업적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필요에 따른 분배에 참여할 기회를 얻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분개할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궁핍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4) 최후심판의 비유는, 하느님의 정의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기본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연대하여야 한다는 것을, 전율적으로 증언한다. 최후의 심판자가 의로운 사람들에게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는 것이다.(마태 25: 35-36) 의로운 사람들이 의아한 마음으로 최후의 심판자에게 그들이 언제 그렇게 하였느냐고 묻자 그는 “네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고 대답한다. 의로운 사람들이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은 “양식, 주거, 의복, 건강, 자유(존엄성)”과 같이 “인간의 경제적·정치적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자원을 제공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이웃의 기본 욕구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에 따라 우리와 하느님의 관계가 결정되고 우리의 미래의 삶이 결정된다.
 
3. 중간결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하느님이 인간에게 허락한 경제는 생태학적 제약을 존중하면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활동을 뜻했다. 피조물 공동체에서 상생과 공생의 질서를 깨뜨리는 인간의 경제 활동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이와 같은 창조신학적인 경제 이해는 하느님의 해방사를 통하여 보완되고 있는데, 만나의 경제는 하느님의 정의에 근거한 경제의 원형을 보여준다. 하느님의 정의는 ‘일용할 양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전제 없이 그것을 부여할 것을 요구한다. 루터가 해석한 ‘일용할 양식’의 내용은 오늘 우리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원을 가리킨다. 수고한 사람이나 수고하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이와 같은 자원을 제공하여 그들이 모두 인간의 존엄성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갈 기회를 주는 것은 하느님의 구원하고 해방하는 정의에 부합하는 일이다.

II. 기득권 종교의 논리

 성서가 가르치는 하느님의 정의와 이에 근거를 둔 생명의 경제는 성서 시대에조차 성전 종교에 의해 큰 도전을 받았고, 기독교가 박해받는 종교에서 로마의 국교로 전환되자 기독교는 기득권 체제를 옹호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1. 정치종교의 탄생과 이에 대한 저항

1) 종교와 국가의 헤게모니 동맹

 야훼 신앙을 중심으로 국가 없이 대가족 중심의 공동체를 꾸리고 살았던 짧은 시기를 제외하면, 군주 국가가 형성된 이래로 신을 성전에 유폐하고 종교를 정치화하고 고위 성직자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것은 종교와 국가의 관계를 규율하기 위해 통치자가 선택하는 기본적인 헤게모니 전략이었다.
 이러한 헤게모니 전략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군주 국가를 최초로 완성한 솔로몬의 정치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드러난다. 솔로몬 왕국은 주변 군주 국가들과 안정된 외교관계를 확립하고, 조세 제도, 관료제도, 상비군 제도를 구축하고, 국가 주도의 교육 체제를 운영함으로써 유례없는 풍요와 번영을 구가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솔로몬 제국의 경제적 풍요는 정치적 억압과 쌍을 이루었고, 종교는 권위주의적인 왕권의 승인자 역할에 국한되었다.(왕상 8: 12-13).
 
2) 예수 시대의 성전 체제

 예수 시대에 유대교 성전은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던 유대 속지에서 헤게모니 장치의 중추 기구였다. 유대교 성전 체제의 핵심 기구는 산헤드린이었다. 산헤드린은 71인의 “대사제들과 원로들과 율법학자들”로 구성된 정치, 종교, 형법 문제를 다루는 최고재판소이자 정부의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 기구였으며, 그 권력은 유대 지역 전역에서 관철되었다. 산헤드린 의원들 가운데에는 방대한 토지를 장악한 귀족들과 유대인 대중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율법학자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산헤드린을 지배하는 핵심 세력은 고위 사제들이었고, 대사제가 산헤드린의 의장을 맡았다. 산헤드린의 정치권력의 정당성은 고위 사제들에 의해 종교적으로 확립되어 있었다. 유대인들에게 성전은 우주의 중심이었기에, 이 우주의 중심에서 신과 만나는 대사제의 권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던 것이다.
 지방 성소에서 사제들이 행사하는 권위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대사제가 행사하는 권위에 비견할 만했다. 지방 성소에서 사제들은 신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모범을 보였고, 사람들의 삶을 거룩함과 더러움의 표지에 따라 심판하는 권력을 행사하였다. 그 심판은 심판받는 자의 공동체 수용과 배제를 결정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가졌다. 그것은 율법의 결의론적 해석을 통하여 민중의 일상생활을 규율하였던 율법학자들의 권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였다.
 로마의 공납체제에 편입되어 있었던 식민지 팔레스틴에서 예루살렘 성전 체제는 그 나름대로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속주의 지배체제에 어느 정도 자율성을 부여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던 로마로서는 속주의 지배체제를 안정시키는 데 기여하는 유대교 성전신학과 정결신학을 건드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정치와 종교는 기원후 1세기의 팔레스틴 식민지에서 안정적인 헤게모니 동맹을 결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3) 예언자들과 예수의 저항 운동

 그러나 유대교-기독교 전통에서 정치와 종교의 관계가 항상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다. 본래 야훼 종교는 절대권력 아래서 압제와 수탈의 대상이 되었던 히브리인들의 이집트 탈출 경험에서 태동하였고, 가나안 지파 공동체의 정치사회적 구성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이집트 탈출 경험에 대한 신학적 해석의 전통을 계승한 사람들은 정치권력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정치권력과 한 통속을 이루는 종교 기구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었다.
 야훼의 통치와 군주의 통치, 정의로운 세상과 불의한 세상, 폭력으로 점철되는 지배질서와 바른 관계들 안에서 생명체가 누리는 충만한 평화(이사야 32:17; 시편 85:11)를 서로 날카롭게 대립시키는 예언자들의 비판의식과 역사적 상상력은 유대교-기독교 전통에서 또 하나의 축을 이룬다.
 예수는 바로 이 예언자 전통을 이어간 인물이었다. 그는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고 사람들에게 회개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였다.(마가 1:15)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당대의 지배체제에 대한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로마 제국의 지배와 하느님의 통치를 선명하게 대비시킨 예수는 회개의 촉구를 통하여 로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하느님의 통치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지배 체제에 도전하였다.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는 예수의 비난은 팔레스틴 사회에서 공납체제의 중심 고리를 이루는 성전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이었고,(마가 11:15-19) 정결법과 안식일법 해석 관행에 대한 예수의 비판은 성전 기구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무력화시킬 정도로 위력적이었다.(마가 2:27-28; 7:14-16) 그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겠다고 약속함으로써 강제노동과 과중한 세금과 지대를 바탕으로 꾸려진 기존체제로부터 작은 사람들을 해방시키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였다.(마태 11:28-30) 그것은 누가 보아도 분명한 사회혁명 강령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세상의 통치자들이 폭력을 행사하여 사람들을 지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항해서 폭력을 포기할 것을 촉구하고, 친교와 봉사의 공동체를 형성할 것을 제안하였다.(마가 10:41-44) 지배의 지양은 예수의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모티프를 이룬다.

2. 콘스탄틴적 기독교

 유대교 예언자 전통과 예수 운동에서 권력비판적인 종교의 윤곽이 뚜렷하게 나타나기는 하였지만, 이러한 전통은 콘스탄틴적 기독교에서 결정적으로 단절된다.
 오랜 박해 끝에 기독교인들의 종교는 AD 4세기 초에 로마의 한 종교로 공인되었고, 더 나아가 4세기 말에는 로마의 국교로 선언되었다. 기독교는 하나의 제국, 하나의 황제, 하나의 종교로 이루어지는 권력 삼위일체의 필요 불가결한 구성 부분이 되었으며, 로마 제국에서 정치적 종교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본래 로마에서 정치적 종교의 정점에 서 있었던 신은 주피터였다. 로마 제국 곳곳에 세워진 판테온은 주피터를 정점으로 한 신들의 위계질서를 잘 보여 준다. 로마가 속주로 점령하여 지배하는 지역의 신들은 로마의 주신(主神) 주피터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는데, 그 위계관계는 로마와 속주의 지배관계를 반영한다. 판테온의 주피터에게 바친 제물은 지역 주민들에게 분배되고, 그 제물을 나누어 먹는 행위를 통하여 로마 속주의 주민들은 로마 제국의 일원임을 의식한다. 주피터의 화신으로서 로마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를 존숭하고 그에게 복종하게 하는 것은 로마 종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었다.
 로마 제국이 네 명의 분권 황제들의 시대로 이행하여 내전 상태에 접어들자 주피터는 더 이상 로마 제국의 통일을 상징할 수 없었다. 분권 황제 시대를 종식시킨 인물은 콘스탄틴이었다. 그는 수차례에 걸친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내전을 끝냈다. 그는 이제 제국의 통일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를 필요로 하였다. 주피터가 더 이상 하나의 제국, 하나의 황제를 신민의 마음에 새기는 종교적 언어가 아니었기에 콘스탄틴은 그 대안을 찾아야 했다. 가혹한 박해를 겪으면서도 로마 제국 전역에 퍼져서 제국 주민들에게서 높은 신뢰를 받았던 기독교는 유일신교로서 판테온 종교를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기독교의 공인과 국교화는 바로 이러한 통치자의 헤게모니 전략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기독교가 하나의 제국과 하나의 황제를 뒷받침하는 하나의 종교여야 한다면, 기독교의 교리적 통일과 교회적 일치는 기독교가 제국 종교의 위상과 성격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콘스탄틴이 삼위일체 논쟁과 도나티스트 논쟁에 직접 개입하여 교리의 제정과 교회 치리에 주도권을 행사한 데서 잘 드러난다. 종교 내부의 일에 개입하여 종교의 정치화를 가속화시키는 데 대한 대가로서 콘스탄틴과 그 후계자들이 교회에 제공한 특전은 실로 엄청났다. 일요일의 주일(主日) 제정, 성직자들의 공공의무 면제, 교회를 위한 재산 증여 제도의 확립, 교회의 안전 보장, 황제의 하사금 등은 그러한 특권들 가운데 일부였다.
 이렇게 해서 성립된 콘스탄틴적 기독교는 서양 기독교의 역사에서 교회와 국가의 헤게모니 동맹을 대표했다. 그것은 더 이상 약자들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을 구현하는 종교가 아니라 지배자의 종교였다. 기독교는 방대한 토지의 소유자였고, 엄청난 지대의 수취자였다. 수도원에 부여된 엄청난 토지에 기반을 두고서 가장 혁신적으로 조직된 수도원 노동공동체는 빠른 속도로 큰 규모의 부를 축적하였다. 그것은 이미 만나와 ‘일용할 양식’에 구현된 생명과 정의의 논리와는 어느덧 무관한 종교의 모습이다. 거대한 부와 종교 특권을 거머쥔 콘스탄틴적 기독교는 프랑스 혁명 이후에 벌어진 국가의 세속화로 인해 결정적인 타격을 받고도 러시아 차르 체제가 붕괴되고 독일 황제제국이 궤멸할 때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속하였다.

III.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친화성?

1. 세계 내 금욕과 축적 경제

 콘스탄틴적 기독교는 종교와 정치의 동맹에 근거한 기득권 종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아직 자본의 논리를 옹호하는 종교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자본주의는 근대의 산물이었다. 자본주의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경제, 따라서 경제 잉여의 축적을 위한 경제로 규정될 수 있다. 이러한 경제 논리는 중세 시대에만 해도 이질적인 것이었다. 잉여의 축적을 목적으로 해서 운영되는 경제는 인류 역사상 자본주의가 자리를 잡은 근대에 이르러 처음 탄생하였다.
 마르크스는 근대 자본주의가 성립되는 과정을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라는 무시무시한 과정으로 묘사한 바 있고, 경제 잉여의 축적이 결국 잉여가치의 수취를 가능하게 하는 자본의 노동 포섭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하였지만, 막스 베버는 종교사회학 연구의 걸작이라고 일컬어지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개신교도들이 보이는 금욕적인 에토스가 경제 잉여의 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의 논리, 곧 자본주의의 정신과 맥이 통한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하였다. 베버는 자본주의가 태동하고 발전한 곳이 유독 캘빈주의가 자리를 잡은 지역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캘빈주의와 자본주의의 상호관계를 그 나름의 독특한 이념형적 분석과 인과관계 분석에 입각하여 밝혀내고자 하였다.
 베버는 캘빈의 예정론이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킨 불안에 관심을 기울였다. 구원을 받을 자와 영원히 버림을 받을 자가 하느님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고, 그 누구도 자신이 과연 구원을 받기로 예정되었는가를 전혀 모른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고 극심한 불안에 싸이게 될 것이다. 이러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람들은 구원의 징표를 찾기 마련이다. 초기 자본주의가 움트는 시기에 사람들은 물질적 성공이 하느님의 배려와 동행에서 비롯되었다는 통념을 갖고 있었기에, 물질적 성공은 하느님의 임재와 축복의 표지로 간주되었고, 여기서 사람들은 하느님이 동행하며 보호하시는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 것이라는 확신의 근거를 찾고자 하였다. 현세에서 물질적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근면하고 성실하게 노동을 하고 그 성과를 절약하는 절제 있는 삶을 수행함으로써 부를 축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베버는 이를 가리켜 세계 내 금욕이라고 지칭하고, 수도원적 금욕과 구별되는 세계 내 금욕이야말로 프로테스탄트의 에토스라고 간주하였다. 바로 이 프로테스탄트의 윤리는 축적을 위한 경제, 곧 자본주의의 정신과 상통한다는 것이다.

2. 개신교 직업윤리와 임노동

 개신교와 자본주의의 친화성에 관한 베버의 연구는 많은 것을 시사하지만, 자본주의의 태동과 발전이 프로테스탄트 에토스의 성립에서 비롯되었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아마 그것은 베버의 명제를 침소봉대하는 셈이 될 것이다. 프로테스탄트의 에토스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맥락은 직업윤리겠지만, 종교개혁자들의 시대에 프로테스탄트 직업윤리는 자본주의의 정신을 촉진하거나 강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러한 판단은 물론 자본주의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와 관련된 것이겠지만, 만일 자본주의가 노동시장의 전일화를 전제로 하는 경제체제라고 한다면, 본격적인 의미의 자본주의는 아무리 빨리 잡아도 19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성립되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필수불가결한 구성요소인 노동시장은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하도록 국가가 강제하고, 노동이 토지나 화폐처럼 상품으로 팔릴 수 있다는 ‘허구’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근대 세계에서 탄생하였다. 임노동(賃勞動)을 본위로 하여 사회 전체가 조직되면서 노동사회가 탄생하게 되는데, 노동사회는 임노동과 삶을 위한 활동을 이원론적으로 분리하는 것을 그 기본논리로 삼고 있다. 따라서 어떤 노동은 시장에서 그 업적을 인정받아 임금을 그 대가로 받지만, 어떤 노동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집에서 수행하는 돌봄 노동이나 살림 노동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임노동과 삶을 위한 활동을 분리시키는 노동시장의 논리는 종교개혁자들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마르틴 루터는 욥기 5장 7절을 히브리어에서 독일어로 옮기면서 “사람은 일을 하기 위하여 태어났고 새들은 높이 떠서 날아간다.”고 번역하여 인간은 천부적으로 노동의 위임을 받았다고 주장하였지만, 그가 생각한 노동은 근대 사회가 발명한 임노동이 아니었다. 루터에 따르면, 인간이 해야 할 일은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일이다. 이를 위해 인간은 다양한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느님의 부름을 받지만, 그 직무가 높건 낮건, 그 직무 수행이 돈벌이노동이든, 대가를 지불받지 못하는 가사노동이든, 공동체를 위한 명예직 활동이든,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긴다는 점에서 모두 똑같이 존귀하다. 루터는 사람의 일을 “생산성이나 수확이나 소득이나 노동업적에 따라 평가”하지 않았고, 도리어 하느님과 이웃과 공동체를 위한 ‘노동의 봉사적 성격’을 강조했다. 이것은 캘빈의 직업소명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루터와 캘빈이 강조한 직업이 돈벌이노동으로 굳어진 것은 근대 사회가 들어선 뒤의 일이다.
 시장경제가 자리를 잡은 뒤에 개신교가 직업윤리의 틀에서 가르친 근면, 성실, 절제 등의 덕목은 자본주의의 논리를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였다. 부르주아 시대의 신학자들은 직업윤리를 세계와 하느님 나라를 잇는 고리로 설정하였다. 그들은 하느님 나라가 직업윤리에 충실한 시민사회의 발전과 진보를 통하여 세상에서 구현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점에서 개신교 신학자들이 강조한 직업윤리는 어디까지나 구원의 드라마에 충실한 신학적 담론이었다. 그러나 시장사회에서 인간의 직업 활동은 어디까지나 자본에 포섭된 노동의 한 형태에 불과했다. 자본의 지배 아래서 자본의 명령을 수행하는 노동은 제도적으로 자본에 의한 착취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노동을 하느님의 소명에 따르는 직업 활동으로 받아들여서 성실하고 근면하게 수행하라고 말하는 것은 부르주아 신학자들의 구원사적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자본가의 이익에 기여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직업적 성실성이 인류의 구원 계획의 틀에서 해석되지 않더라도 세속 사회에서 의미 있는 덕목이 되려면, 직업 활동이 지배와 착취에서 자유로운 처지에서 개인의 발전과 공동체의 유익에 이바지하는 삶의 활동으로 조직되어야 할 것이다. 부르주아 사회에서 이와 같은 노동을 조직하는 것은 부르주아 사회의 틀을 깨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혁명적 구상은 부르주아 신학자들에게서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한 구상은 20세기가 시작되는 시점을 전후로 해서 종교사회주의자들에게서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보면 개신교 직업윤리가 노동의 세계를 자본주의적으로 조직하게 한 원리로서 제시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이미 자본주의적으로 조직된 노동사회에서 자본주의적 노동통제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IV. 한국 자본주의와 개신교 성공주의

 한국에서 개신교는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 독특한 방식으로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자본주의는 세계자본주의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발전된 것이지만, 여기서는 세계자본주의에 관한 논의는 괄호 안에 넣고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을 설명할 때 필요한 만큼만 측광 장치로 활용할 것이다.

1.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과 오늘의 모습

 한국 자본주의는 식민화 과정과 식민지 경제, 한국전쟁과 원조경제 시대를 거쳐 1960년 초 이후에 본격적인 자본화와 공업화를 통하여 크게 발전하였다. 1960년대 초 이후의 한국자본주의는 크게 두 단계를 거쳐 왔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박정희식 개발독재 모델에 따른 자본주의 발전 단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 모델에 따른 자본주의 발전 단계이다.

1) 개발독재 모델

 박정희가 주도한 자본주의적 발전은 개발독재 모델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한국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한동안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자본주의적 무역 체제에 편입되어 경제발전을 꾀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이를 위해 1960년대 초에 국가권력을 장악한 군부는 국가와 자본의 동맹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주도형 개발독재 모델을 구축했다.
 국가는 총자본가로서 자본의 축적을 주도하고, 국민저축의 분배 원칙을 정했으며, 산업정책과 기업정책을 통해 국민경제와 기업 수준에서 자원의 할당을 정교하게 설계하였다. 군부가 지배하는 국가는 경제 발전을 위한 자원을 동원하기 위해 민간저축을 끌어내고, 해외저축을 도입하기 위해 애썼고, 농민과 노동자로부터 잉여가치를 가혹하게 수탈하는 정책을 통해 자본 축적에 앞장을 섰다. 그것은 자본의 시원적 축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폭력적인 과정이었다. 농촌의 분해와 도시 슬럼의 팽창, 농민과 노동자의 저항에 대한 가혹한 탄압이 그 과정에 동반되었다. 선 성장, 후 분배의 슬로건 아래서 국민의 내핍과 희생을 강요하면서 국민저축률을 최고 36% 수준으로 유지하는 가운데 국가는 수출 입국과 수출기업 육성이라는 정책 목표 아래서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라 자본을 할당하였고, 가파른 수출 증가, 높은 경제 성장, 굴지의 대기업 육성 등에 성공하였다. 국가는 경제개발5개년 계획의 틀에서 산업정책, 지역개발정책, 금융정책, 조세 및 보조금 정책, 기업정책, 경쟁정책, 노동시장정책, 물가통제정책 등을 패키지로 꾸리고, 정책 시행 과정에서 비롯되는 부작용을 관리하는 과정정책들도 정교하게 마련하였다. 사회정책, 복지정책, 환경정책 등을 애써 무시하고, 경제성장에 방해되는 장애물들을 폭력적으로 가차 없이 철거하는 단호한 국가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경영하는 기업가로서 거시경제와 미시경제를 속속들이 지배하는 사령탑의 역할을 수행했다.
 박정희식 경제발전 모델은 1970년대 말에 네 가지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쳤다. 하나는 높은 경제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노동 수탈을 장기간 지속하면서 나타난 국민경제 차원의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이고, 또 하나는 중화학 분야에 중복 투자된 과잉자본의 문제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한국경제의 지나친 대외의존이고, 마지막 하나는 중화학 공업 육성을 위해 끌어들인 방대한 외채의 상환 부담이었다. 이 네 가지 모순들은 박정희의 개발독재 모델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갔다. 1980년대 초에 등장한 신군부는 국가의 강제력을 동원하여 과잉자본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으나, 박정희식 개발독재 모델을 근본적으로 수정할 생각이 없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 한동안 지속된 3저 호황은 국가 엘리트들에게 한국경제의 기본 구조를 변경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2) 신자유주의적 모델

 박정희식 개발독재 모델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동원된 새로운 모델은 신자유주의 모델이었다. 박정희 식 개발모델이 신자유주의 모델로 변화되기 시작한 기점을 언제로 보는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의견이 있다. 1980년대 초의 신군부가 공급자 중심 경제로 알려진 레이거노믹스를 받아들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문민정부에 들어와서 금융시장의 자유화가 본격적으로 모색되면서 신자유주의가 추구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실천된 때는 IMF의 경제관리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IMF가 한국정부에 요구한 4대 개혁조치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기업의 구조조정, 공기업 민영화, 금융시장의 완벽한 자유화였다. 오늘의 시점에서 평가해 보면,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금융시장의 자유화는 더 이상 취할 조치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이루어졌고, 공기업 민영화는 지지부진한 듯이 보이지만, 국민적 저항이 큰 망산업(網産業)을 제외하고 상당히 진전되었으며, 기업의 구조조정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교과서적 원리를 과연 구현하였는가 하는 논의를 일단 제쳐놓으면 생산자본의 지배라는 금융자본의 요구를 실현하는 데 별 손색이 없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과정에 깊이 편입되어 있는 오늘의 한국경제에는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들과 위기들이 나타나고 있다. ‘고용 없는 경제성장’의 고착화, 비정규직 노동의 급속한 증가, 국민소득에서 노동임금이 차지하는 비율(노동소득분배율)의 극적인 감소, 부동산 투기 세력이나 토건국가의 지대 추구자들에게 집중되는 엄청난 규모의 부 등은 우리나라 자본주의가 얼마나 심각한 위기들에 직면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이러한 심각한 위기들을 아랑곳하지 않고서 이명박 정권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애초에 추구하겠다고 공언한 747 공약은 7%의 경제 성장, 일인당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도약을 그 내용으로 했다. 7% 경제성장은 오로지 위로부터의 계급투쟁을 거치지 않고서는 달성될 수 없는 목표이다. 이러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국민저축률을 높이고 사회비용과 환경비용 등을 극도로 축소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경제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이명박 정부는 “기업친화적인”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는데, 규제 최소화, 세율 최저화, 서비스 산업 글로벌화, 법 지배 원칙 확립 등 “4대 기업환경 조성 원칙”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가가 자본의 이익을 달성하는 도구로 전락하였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는 이명박 정권이 ‘4대강 살리기’라는 엉뚱한 수사학으로 위장한 채 추진하는 4대강개발 사업과 대운하 사업이라고 할 것이다.

2. 한국 개신교의 성공주의

1) 한국 교회의 양적 성장

 한국교회는 한국경제가 경제성장의 논리에 몰입하는 동안에 엄청난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해방 직후 35만여 명을 헤아리던 개신교도들의 수효는 1960년대 초에 약 1백만 명으로 늘어났고, 1960년대 중반 이후에 급속한 성장을 거듭하여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신도 수효는 1천만 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개신교도들의 수효는 1990년대 중반에 정점에 이르렀다가 그 뒤로 성장이 지체되거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다.
 1960년대 이후의 급속한 교회성장을 두고서 종교사회학자들은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밀어 넣는 요인들과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는 요인들이 서로 작용하였다는 식으로 설명하곤 한다. 급속한 사회변동으로 인해 고향을 상실하고 익명의 도시에서 불안과 소외를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교회는 고향을 대신하는 공동체적 유대를 제공하였기에 교회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는 식의 설명이다.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교회성장의 모든 측면을 설명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은 1960년대 이후로 경제개발을 통해 민족중흥을 이루겠다는 국가가 경제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설정하고,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를 앞세워 사람들에게 성공 이데올로기를 각인하는 과정에 한국 교회가 적응해서 얻은 성과라고 볼 수 있다. 1960년대 중반에 시작한 성장 연대에 가장 잘 적응한 교회는 오순절 교회였다. 방언과 신유를 내세워 성령의 임재를 사람들에게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오순절 교회는 성령의 인도 아래 있는 신자들이 세상에서 성공한다는 것을 힘주어 강조하였고, 경제성장의 흐름에 뛰어들어 세속적 성공을 거두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성공의 비결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다. 성공은 하느님이 교회의 일에 충실한 종들에게 퍼붓는 축복으로 인하여 가능하다는 설교는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세속적 성공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교회로 몰려들었고 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오순절 교회에서 불붙기 시작한 축복의 신학은 오순절 교회를 넘어서서 한국 개신교의 거의 모든 교회들을 파고들었다.
 축복의 설교는 교회성장의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고, 개신교도들이 한국 자본주의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내면적으로 동의하고 거기에 편승할 수 있는 명분을 주었다. 따라서 축복의 설교를 통하여 교회의 양적 성장과 경제성장은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2) 한국판 국가와 종교의 헤게모니 동맹

 교회의 양적 성장은 두 가지 효과를 발휘했다. 한편으로 교회의 양적 성장에 이바지한 목회자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들로 인정을 받았다. 천막교회를 대형교회로 급성장시킨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은 교회 안에서 무소불위의 권위를 행사하게 되었고, 오늘의 한국 교계에서 살아있는 권력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또 다른 한편으로 양적 성장에 성공한 교회는 제도적 안정을 급속히 이루어 보수적인 종교세력을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교회는 성장과정에서 개발독재에 오불관언의 태도를 취했거나 심지어 국가조찬기도회 형태로 독재 권력을 정당화하는 대가로 국가의 암묵적 지원을 받았다. 양적 성장에 성공한 지도자들은, 많은 경우, 종교 카르텔을 형성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보수세력의 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점에서 교회의 급속한 양적 성장은, 많은 경우,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교회 안에 헤게모니 세력을 형성하게 하고, 이 교회 내 헤게모니 세력이 현실 세계의 보수적인 헤게모니 세력과 동맹을 맺도록 하는 고리였다고 볼 수도 있다.

3) 성공주의 신화의 그늘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내리는 축복이 물질적 축복의 형태를 취한다는 교회의 가르침에서 결여되고 있는 것은 물질적 성공의 과정과 그 성격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평가이다. 개발독재 아래서 파이가 커지면서 사람들은 조금 더 큰 파이 조각을 먹을 수는 있었다. 사람들은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생활의 형편이 조금씩 향상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노동자와 농민을 위시하여 광범위한 대중이 정치적 자유를 유보당하고 국가주도적인 자본축적과 자원할당을 용인하는 것에 대한 대가였다. 개발독재 시대에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개발 정보를 매수함으로써 얻는 지대 수익일 공산이 컸다.
 이러한 상황에서 물질적 성공이 하느님의 축복의 결과라고 가르치는 것은 개발독재와 자본 중심의 경제성장을 용인하고, 관료적 부패와 결탁된 부의 축적을 정당화하는 결과를 빚는다.
 박정희식 개발독재 모델이 흔들리고 IMF의 가혹한 경제관리 아래서 경제성장의 신화가 빛을 잃으면서 한국 개신교의 축복 신학은 일견 난처한 처지에 빠지게 되었다. 물질적 몰락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축복은 더 이상 호소력을 가질 수 없었다. 그리하여 축복의 신학은, 부분적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국면적으로, 위로와 격려의 신학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하느님은 견딜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시련을 주신다는 설교는 축복의 설교만큼은 아니어도 신자유주의적 경제의 세계화 과정에서 물질적 성공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나마 힘을 보태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설교는 한국 사회에서 무수한 중간층 시민들이 새로운 가난의 나락에 떨어지게 한 현실관계들을 은폐한다. 비정규직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과 88만원 세대로 지칭되는 젊은이들은 지구화된 경제 아래서 형성된 현실관계들을 응시하고 그 현실관계들을 변경하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인데, 그런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시련과 그 이후에 도래할 하느님의 축복을 설교해서 어쩌자는 것인가?

V. 맺음말

 오늘의 한국 교회는 자본에 면죄부를 주고 있는가? 모든 한국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한국 교회들은 자본에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한국의 개신교 교회가 콘스탄틴적 기독교의 모습을 취해서도 아니고 자본주의 정신을 강화시키는 프로테스탄트 에토스를 내면화하였기 때문도 아니다. 한국 교회가 경향적으로 자본에 면죄부를 주는 까닭은 한국 교회 자체가 자본주의적으로 운영되기 쉬운 조직의 생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가 개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교회 유지와 교회 성장의 인적 기반과 물적 기반을 확보하여야 하기에 이러한 생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리는 지극히 작은 자들 가운데서 하느님의 현존을 보는 교회 본연의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한국 교회가 자본에 면죄부를 주는 교회의 모습을 털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개교회 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의 신화를 비판적으로 극복하여야 한다. 교회성장은 성장을 위해 생명, 사랑, 정의, 연대, 희생 등 기독교의 고귀한 가치들을 부차화하거나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 지극히 작은 자들 가운데서 하느님이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현장에서 눈을 돌리고 ‘일용할 양식’을 위한 작은 자들의 투쟁에 등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개발독재 시대에 민주화와 인권을 옹호하고 민중의 생존권을 위해 헌신하였던 교회는 아브라함의 소수파 교회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교회는 결코 교회성장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았다.
 오늘의 상황에서 교회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과정에 맞서서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외치고 “다른 세상”을 선취하는 실천을 조직하여야 할 것이다. 인간이 자본의 주인이 되는 세상, 인간의 얼굴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기본소득을 보장받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이주해서 살아가는 세상, 생태계의 안정성과 건강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자족의 경제를 꾸리는 세상 - 그런 세상을 형성하는 일에 교회가 관심을 기울이고, 작지만 실현가능한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한다면, 그 교회는 성서가 가르치는 생명의 경제와 하느님의 정의의 요구에 가장 충실한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교회는 자본의 논리와 생명의 논리를 선명하게 대립시키면서 생명의 논리를 위하여 자본의 논리를 기꺼이 폐기하는 용기를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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