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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 사회윤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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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 사회윤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 정의 개념을 중심으로

강원돈 (한신대 교수/사회윤리)

I. 머리말

 오는 2013년 가을 부산에서 열리는 제10회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의 주제는 “생명의 하느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이다. 이 에큐메니칼 슬로건에는 앞으로 에큐메니칼 신학과 운동을 이끌어갈 생명, 평화, 정의라는 세 가지 핵심 개념들이 제시되어 있다. 정의, 평화, 생명은 물론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사에서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이 개념들은 각기 다른 문맥에서 각기 다른 강조점을 띠고 사용되어 왔다. 정의는 노동과 생활의 문제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강조한 실천적 기독교 운동의 이정표였고, 제5회 WCC 나이로비 총회에서 기독교인들의 해방적 실천을 이끌어가는 준거였다. 평화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태동하던 20세기 초반부터 갈등과 반목, 전쟁과 무질서의 한복판에서 세계를 향한 교회의 책임을 아우르는 핵심 이념이었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제 문제를 다루는 에큐메니칼 원칙이었다. 생명은 제6회 WCC 뱅쿠버 총회의 주제로 채택된 이래로 정의, 평화, 피조물의 보전을 통전적으로 실현하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 JPIC 공의회 과정을 주도하는 핵심 개념이었다.
 이와 같은 에큐메니칼 시민권을 갖고 있는 개념들이 WCC 총회의 주제로 다시 등장한 것은 최소한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정의, 평화, 생명 같은 에큐메니칼 가치가 오늘의 세계에서 여전히 실현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실현을 향한 에큐메니칼 요구가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제까지 정의, 평화, 생명을 다루는 에큐메니칼 사회윤리의 틀이 갖는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이 세 가지 가치들의 상호연관성을 제대로 다루어 기독교인들의 실천을 촉진하는 에큐메니칼 사회윤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것은 이 세 가지 개념들을 통전적 관점에서 다루고자 했던 JPIC 패러다임이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쳤음을 시사하는데, 앞으로 논의하면서 밝혀지겠지만, 나는 그 한계가 정의 개념에 대한 인식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본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글에서 나는 정의 개념을 중심으로 해서 에큐메니칼 사회윤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나는 이제까지 에큐메니칼 운동과 신학이 제시한 세 가지 패러다임들을 간략하게 검토하여 그 장점과 단점을 밝히고, 오늘의 세계가 기독교에 던지는 도전들에 응답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에큐메니칼 사회윤리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한다.

II. 책임사회 패러다임

 책임사회 패러다임은 1937년 옥스퍼드에서 “교회, 공동체, 국가”라는 주제 아래 열린 에큐메니칼 협의회에서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1948년 암스테르담 WCC 창립총회에서 에큐메니칼 사회윤리의 기본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았다.
 1937년 옥스퍼드 협의회는 1925년 스톡홀름에서 시작된 “실천적 기독교” 운동의 절정이었다. 스톡홀름 “생활과 노동” 협의회를 지배했던 사회적 복음(social gospel)의 낙관주의는 세계 현실의 엄혹성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는 현실주의에 자리를 내어 주었다. 옥스퍼드협의회는 1. 파시스트 국가들의 탄생, 2.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증가하고 있는 불의, 3. 실업 문제의 절박성, 4. 공산주의의 도전 등에 대응하고자 했다.
 1937년 옥스퍼드에 모인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기독교인들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일상생활에서, 곧 “생활과 노동”에서 구현하여야 하기 때문에 경제질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에큐메니칼 운동의 선구자들 사이에서 이미 공유되어 있었던 것이지만, 이를 공식적으로 처음 표출한 곳은 1937년 옥스퍼드였다. 정치 체제와 경제 체제에서 사랑의 계명은 정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현실주의적인 대답은, 비록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사랑의 실현을 희망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불가능하고,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추구할 수 있는 최대치는 정의라는 것이다. 정의는 사랑을 대신할 수 없고, 사랑을 능가하지 못한다. 정의는, 오직 사랑의 요구를 거부하지 않고 그것에 충실하고자 노력할 때, 사랑의 근사치로 성격화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세상에서 바로 이와 같은 정의를 구현할 책임을 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전망이 있는 현실주의로 요약될 수 있는데, 올드햄(J. W. Oldham)은 이를 개념적으로 명확하게 정리하여 “중간공리” 이론을 제시하였다.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회집한 WCC 창립총회는 실천적 기독교 운동의 성과를 책임사회 구상에 담아내고자 했다. 책임사회 구상은 총회 분과보고서 III에서 다음과 같은 강령으로 제시되고 있다.

“책임사회는 자유가 정의와 공공질서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인간의 자유가 되고, 정치적 권위나 경제적 권력을 소유한 자들이 하느님과 … 사람들 앞에서 그 권력 행사에 대해 책임을 지는 그러한 사회이다.”

책임사회의 구체적 내용은 자유를 존중하는 법치질서, 사회적 목표 아래 경제행위를 종속시키는 경제 정의,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동등한 자기실현의 보장, 사회구성원들이 사회를 형성하는 데 참여하는 일로 표현된다.
 이와 같은 책임사회 구상의 실천적 의미는 당대 현실의 문제들을 감안할 때 명확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날로 첨예해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대립에 직면한 에큐메니칼 운동은 책임사회 구상을 갖고서 사회 형성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책임사회 구상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넘어서는 제3의 길로 인식되었다. 교회들은 지난 날 사회질서가 해체되고 국제적 무질서가 조장된 데 대해 공동책임을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자기반성이 제3의 길을 추구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실천적 함의를 넘어서서 책임사회 구상은 훨씬 더 심원한 신학적 구도를 가졌다.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이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의 만물을 포괄한다고 믿었고, 이와 같은 신념은 그리스도 중심의 보편주의로 나타났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인식하고, 이 인식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어떻게? 이것은 에큐메니칼 사회윤리가 대답해야 할 핵심적인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총회는 하느님의 구원계획과 시대적 제약을 갖는 이 세계의 상황을 서로 매개시키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했다.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을 서로 매개시키려는 이 사회윤리적 구상은 상대적인 것이 절대적인 것에 대해 투명할 것을 요구하되 상대적인 것을 단순히 부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책임 있게 변혁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올드햄은 이 매개의 논리를 “중간 공리”로 제시하였다. 책임사회 구상은 WCC 암스테르담 총회가  공식적으로 채택한 중간공리였다. 그것은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면서 세계를 변혁하고 새롭게 형성하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이정표의 역할을 하도록 고안된 것이다.
 책임사회 구상은 구체적인 사회형태 안에서 사람들이 행위 주체로서 맺는 관계를 존중하여야 한다는 확신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것은 양심의 자유, 진리 추구의 자유,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존중, 사람들 사이의 직접적 관계가 집단적 관계들에 대해 우위를 갖는다는 생각, 무책임한 권력의 제한과 권력분배, 행위 주체인 개인의 독립성,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책임 분담 등과 같은 책임사회 구상의 중점사항들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위에서 밝힌 책임사회 구상의 기본 틀과 중점 사항들은 그리스도 중심의 보편주의에 바탕을 둔 규범의 체계를 암암리에 전제하고 있다. 그 규범은 현실의 문제들을 판단하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향을 결정할 때 준거의 틀로 사용된다. 그러나 그 준거는 누가 정하였는가? 누군가에 의해 정하여졌음이 분명한 그 준거가 에큐메니칼 운동을 이끌어가는 구속력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책임사회 구상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비판적으로 넘어서고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는 제3의 길로 제시되었지만, 제3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지역적, 국민국가적, 지구적 차원에서 경험되는 억압과 착취와 주변화는 이와 같은 한가한 규범의 체계에 따라 현실을 파악하고 실천을 구상하는 일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 이것이 책임사회 구상에 대한 제3세계의 도전이었다.

III. JPSS 패러다임

1. JPSS 구상의 태동

 에큐메니칼 운동의 첫 패러다임이었던 책임사회 구상은 1966년 제네바에서 열린 교회와 사회 협의회에서 혁명의 신학과 제3세계 교회 대표들로부터 나오기 시작한 비판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물론 1966년 제네바 협의회는 기본적으로 과학 기술의 진보와 이에 바탕을 둔 사회의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에 지배되었고, 이러한 분위기는 1968년 웁쌀라에서 열린 제4차 WCC 총회와 그 이후에 전개된 일련의 “인간 개발” 연구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이 연구들에서는 인류의 고난에 주의가 환기되기 시작되었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분위기는 1974년 베를린에서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획기적으로 변화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에큐메니칼 운동사에서 처음으로 인류의 생존능력이 절박한 의제로 떠올랐으며, “정의롭고 참여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JPSS)를 추구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JPSS에 관한 논의에 참여한 사람들은 남북갈등과 생태학적 위기를 다루는 새로운 틀을 만들려고 시도했다. 이 논의에서 책임사회 구상과 중간공리 방법의 타당성이 논란의 초점이 되었고, 이제까지 당연시되었던 그리스도 중심의 보편주의도 의문시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더불어 해방신학을 이끌어가는 해방과 정의에 대한 관심과 행동-성찰-방법이 JPSS 논의에 도입되었다. 교회와 세계에 그리스도의 지배는 오직 하느님이 “가난한 사람들”을 접촉점을 삼고 활동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에만 의미를 가진다는 해방신학이 크게 어필하기 시작했다.
 JPSS 논의는 1975년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5차 WCC 총회의 프로그램 지침들에 의해 촉진되었다. 그러나 JPSS 논의의 초점은 1979년 JPSS를 추구하기 위한 자문위원회 제2차 보고서에 이르러서야 명확하게 표명되었다.
 자문위원회 보고서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역사와 하느님을 어떻게 매개하느냐 하는 물음이었다. 보고서는 정의와 참여와 지속가능성이 서로 연관되어야 하고, “중간공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매개 형식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표명하였다. 정의와 참여는 서로 분리되어서는 안 되고,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인식은 정의가 “메시아적 범주”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였다. 이 메시아적 범주는 하느님의 정의와 신실성 뿐만 아니라 인간공동체의 올바른 질서를 세우고자 하는 하느님의 의지를 포함한다. 보고서의 핵심 구절들을 몇 개 인용하기로 한다.

“정의는 자기중심적인 무관심이나 소외된 예속에 빠지지 않고 자기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은사이다. 정의는 사람들에게 맡겨진 역사적 과제이며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종말론적 성취이다.”

 따라서 정의는 모든 사람들에게 능동적으로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 이것이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참여이다.

“메시아적 관점에서 볼 때, 참여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더 이상 없고 각자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진정한 코이노니아의 본질적 표현형태이다.”

 이와 같은 정의와 참여는 생태학적 문제에 대해서도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정의와 참여의 물음은 오늘날 온 땅과 각 개체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지는 문제들로 인해 특별히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보고서는 이와 같은 통찰이 하느님의 메시아적 활동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하느님은 피조물을 끊임없이 축복하고, 파괴로부터 보호하고, 삶의 충만함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보고서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피조물과 가난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계약파트너로 해석되고 정의를 위한 투쟁과 피조물에 대한 책임을 서로 결합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무엇보다도 가난한 민중의 참여와 주체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서는 권력의 현실을 인식하고 이에 맞서 대항권력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난한 사람들과 권력을 분배하고 그들과 연대를 맺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과학-기술적 차원에서 권력이 지구화되고 있는 시대에는 참여적인 구조들의 모든 영역에서, 곧 지역적, 국가적, 역내적, 국제적 영역에서 발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제2차 자문위원회 보고서는 세계가 부와 가난, 권력을 가진 자들과 권력이 없는 자들로 양극적으로 분열되어 있다고 보는 해방신학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보고서는 생태학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다소 혼란된 인식을 보여 주고 있다. 강령적으로는 정의와 참여의 문제가 생태계 보전의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보고서는 생태학적 위기가 과학과 기술의 활용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과학과 기술은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일종의 도구주의적 관점을 대변한 보고서에 의하면, 생태계 위기는 자연 자원의 착취를 위해 기술을 투입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활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권력이다. 세계 권력 구조와 기술이 서로 결합됨으로써,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높은 수준의 기술이 없는 국가들과 풍부한 자원은 없지만 높은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는 강대국들 사이의 괴리가 더 커지고 있다.
 보고서는 그러나 자연에 대한 인식이 근원적으로 자연에 대한 기술적 통제의 이해관계에 의해 유도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았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제시할 수 없었다. 또한 생태계 위기가 자본의 축적논리와 팽창논리에 의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았다. 가난과 생태계 위기가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되어 있고, 이 위기 복합체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위기의 근원에 도사려 있는 경제논리를 수정하여야 한다는 점을 밝히지 못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생태계 위기에 대한 보고서의 인식은 매우 피상적이고, 이것은 그 당시 에큐메니칼 운동의 큰 맹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JPSS에 관한 자문위원회의 보고서는 정의와 참여와 지속가능성을 하나의 좌표에 통합하려고 시도했지만 이 시도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사회․정치적 문제와 생태학적 문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서로 다른 특질을 갖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생태학적 문제를 사회․정치적 문제로 해소시키는 경향을 갖고 있었다. 생태계 위기의 문제가 그 자체의 독특성에서 충분하게 인식되지 못한 것이다. 생태계 위기의 문제는 보고서에서 제대로 건드려지지 않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것은 세계상황에 대한 그 당시 에큐메니칼 운동의 인식이 커다란 딜렘마에 빠져 있음을 보여 준다. 콘라드 라이저는 그 당시 에큐메니칼 운동은 이 딜렘마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각을 갖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해결되지 않는 딜렘마로 인해 JPSS에 관한 논의의 틀 안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 연구 프로그램들이 병렬적으로 전개되었다. 하나는 정치윤리에 관한 연구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술과 경제의 발전이 미치는 사회적, 윤리적 영향에 관한 연구이다.

2. JPSS를 위한 정치경제학 논의

 1978년 취리히에서 열린 “정치경제학, 윤리, 신학” 협의회에서 다루어진 주제는 생태학적 위기의 절박성, 고용위기, 경제의 초국화 경향과 그것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개발에 대한 축소주의적 관점 등이었다. 협의회에 모인 사람들은 자본주의 체제든, 사회주의 체제든, 경제적 합리성만을 체계적으로 수미일관하게 적용하는 정치경제학의 낡은 패러다임에 회의를 품고, 현실 자본주의와 현실 사회주의에서 제시된 경제 개발의 구상들을 철저하게 극복하고자 했다. 협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적 합리성의 무자비한 적용에 맞서는 새로운 구상은 인간의 복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정의롭고 참여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형성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어야 한다. 인간을 중심에 놓는 것이야말로 규범적 경제이론의 근거이고, 가치관에 입각하여 구체적인 삶의 관계들을 분석할 수 있게 하는 관점이다.
 협의회에 모인 사람들은 불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이 질문을 던지자마자 그들은 정의를 엄밀하게 규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물리적인 지속가능성과 불의의 최소화”를 정의로 규정하는 관점은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협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이와 같은 정의를 촉진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참여이다. 참여는 물론 생산된 가치와 상품을 분배하고 소비하는 일과 관련되지만, 민중은 무엇을, 어떻게, 얼마만큼 생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부터 참여하여야 한다. 오늘의 생산과정은 고도로 발전된 현대 기술을 매개하기 때문에 매우 복잡하고 거대한 조직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을 이유로 해서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 거대 자본과 기술의 권력에 맞서는 대항권력이 형성되어 사회정치적 제도들에서 권력균형이 수립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오늘 인류가 경제생활의 모든 차원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경제민주주의이다. 그리고 경제민주주의의 열쇠는 공동결정이다.
 협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지속가능성은 경제와 무관한 부차적인 요인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장기적인 경제생활의 본질을 이루는 요인이기에 경제학적 사유에 통합되어야 한다. 지속가능성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경제주의의 축소주의적 관점을 극복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관점은 인식의 지평을 순전히 경제적으로 객관적인 것에 한정시키고 인류를 점점 더 소외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정의와 참여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와 같은 인식을 가지고 협의회는 정치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립할 것을 요구했다. 협의회에 모인 사람들은 정치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세 가지 전제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첫째, 그것은 삶의 역사적이고 공간적인 차원을 경제 분석에 포함시켜야 한다. 둘째, 이제까지 경제과학들을 지배해 온 축소주의적 관점을 버리고, 통합적이고 통전적이고 협동과학적인 연구 방법을 모색하여야 한다. 셋째, 경제과학은 다시금 정치경제학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경제학 연구에서는 권력관계들과 권력구조들과 권력기구들과 관련하여 정치체제와 경제체제와 사회체제의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며, 어떤 가치 규범들에 입각하여 분석이 이루어지는가를 명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따라서 가치중립성이라는 신화는 떨쳐버려야 한다.
 이러한 전제 아래서 협의회는 어떤 경제체제가 정의롭고 참여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에 이바지하는가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규준들을 논의하고 이를 규명하였다. 후에 캐서린 뮬홀랜드는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정치경제학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를 되돌아보면서 이 규준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1. 인간의 기본 욕구의 충족: 체제가 인간의 근본적인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킬 것을 실제로 약속하고 있는가?
2. 정의와 참여: 이 욕구들이 평등하게 충족되고 있는가? 한 사회의 자원들에 접근하는 데 평등이 합당하게 보장되고 있는가?
3. 지속가능성: 경제체제가 수 세대에 걸쳐 생태학적으로 지속가능한가?
4. 自助: 경제체제가 민중으로 하여금 자존심을 느끼고 자유와 능력을 계발하도록 하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결정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만드는가?
5. 보편성: 경제체제와 경제정책들이 국가와 역내의 정치적 울타리를 넘어서서 지구의 인간 가족을 위해 위에서 말한 요소들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가?
6. 평화: 경제체제가 정의에 근거한 평화의 전망을 촉진하고 있는가?”

 1978년 취리히 협의회 이후 WCC의 정치경제학 논의는 1979년 CCPD가 설립한 경제 문제에 관한 자문위원회(Advisoy Group on Economic Matters, 이하 AGEM)의 틀에서 계속되었다. AGEM의 목적은 JPSS의 세 가지 중점 개념들과 위에서 말한 규준들을 구체적인 문제 영역들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AGEM은 세계경제질서(1980년 제네바에서 열린 제2차 회의), 초국적기업(1980년 로마에서 열린 제3차 회의), 국제금융체제(1981년 워싱턴에서 열린 제4차 회의), 실업 문제(1985년 제네바에서 열린 제5차 회의) 등을 다루었다.
 1988년 WCC 중앙위원회는 AGEM과 더불어 경제문제에 대한 에큐메니칼 선언을 작성하도록 CCPD에 위임하였다. 이 계획은 다소 수정되어 결국 경제 문제에 대한 연구 문서가 발간되는데 그쳤지만, 1992년 “기독교 신앙과 오늘의 세계경제”라는 제목으로 발행된 이 문서는 그 동안 CCPD의 틀에서 이루어진 정치경제학 논의를 정리하면서 에큐메니칼 운동이 현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세계경제에 어떻게 대응하고자 하는가를 시사하였다.

3. 1979년 보스톤 세계협의회

 1979년 보스톤에서는 “신앙, 과학, 미래”라는 주제를 내건 에큐메니칼 세계협의회가 개최되었다. 이 세계협의회는 JPSS에 이르는 길을 모색하면서 그 길을 기술 비판에서 찾으려는 노력이었다. 이런 점에서 협의회는 정치경제학 논의와는 전혀 다른 관심사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1979년 보스톤 세계협의회는 1966년 제네바 세계협의회의 낙관주의와는 달리 기술 발전이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는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보스톤 세계협의회의 보고서를 분석해 보면, 우선 하느님의 초월성으로부터 하느님과 세계의 분리를 도출하는 특정한 창조신학적 관점이 비판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은 피조물에 내재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성서가 “하느님의 형상”과 “도미니움 떼레”(dominium terrae)라는 말로 의미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보고서에 따르면, “하느님의 형상” 개념으로부터 땅에 대한 인간의 일방적 지배를 이끌어낼 수는 없다.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을 대신하여 피조물을 돌볼 책임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보고서는 자연을 하느님의 피조물로 재인식하고, 인간이 지구 체제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해야 할 책임을 갖고 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인간을 제작인(homo faber)으로 보는 견해는 인간이 땅에 사는 모든 생명들을 보존하고 돌보는 자라는 관점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제작인의 활동성을 나타내는 “만드는 능력”은 제한되어야 하고, 상대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주장을 내걸고서 보고서는 자연에 대한 기술적 통제를 목표로 삼는 근대 이래의 거대 담론에 제동을 걸고자 했다.

IV. JPIC 패러다임

1. JPIC의 기본구상

 JPSS 논의가 메시아적 정의 개념을 중심으로 했다면, JPIC의 기본구상은 생명이 관계의 현실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것은 두 구상이 서로 다른 출발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JPIC 구상이 JPSS 구상과 비연속선상에 있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두 구상은 적어도 그 문제의식에서는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JPIC 공의회 과정은 1983년 제6차 WCC 총회에 의해 촉구되었다. 총회는 “회원 교회들을 정의, 평화, 피조물의 보전을 위한 상호 책임(계약)을 향한 공의회 과정으로 초청”하였으며, 이를 WCC의 포괄적인 중점사업으로 명시하였다. 그 당시 WCC는 인류의 생존이 불의하고 모순적인 질서들과 환경파괴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고 인식하였다. 생태계 파괴, 대량살상 무기의 확산, 군사주의, 계급차별과 가난, 인종차별, 성차별 등에 의해 세계는 죽음의 세력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고 본 것이다. WCC는 이러한 절박한 세계상황에 직면하여 죽음의 악마적인 세력에 맞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생명으로” 고백하였다.
 1987년 제네바에서 모인 WCC 중앙위원회는 “정의, 평화, 피조물의 보전의 세 영역에서 각각 나타나는 문제들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천명하고, “이 상호관계의 본질을 인식하고, 평화, 정의, 피조물의 보전에 관한 교회들의 범세계적인 공동 입장을 천명하되, 이를 교회의 신앙고백 및 교회의 행동과 연계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JPIC 논의과정은 생명이 내적 연관을 갖는 관계의 현실이라는 신학적 관점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이 신학적 관점은 생명의 신학으로 발전되는데, 생명의 신학을 위한 시도는 “생동적이고 연관성 있는 신학”의 개발을 WCC 강령들 가운데 하나로 정한 뱅쿠버 총회의 결의에 근거한 것이다. 당시 강령위원회 위원장이었던 호세 미구에즈 보니노는 1986년의 한 비망록에서 “연관성”과 “생동성”이라는 개념에 관한 자신의 신학적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나는 서로 결합되어 있고 내적인 관계를 맺고 있고 어떤 특정한 점에서 서로 화합하는 사물들을 볼 때 연관성이라는 말을 쓴다. 서로 다르지만 서로 의존하고 있는 사물들만이 연관을 맺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연관성은 체계적 서술의 논리적 연관성이나 한결같이 움직이는 기계 등의 기계적 연관성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WCC에서 하나의 목표로 희망하고 다룰 수 있는 연관성은 생동적이고 성장하는 유기체의 연관성이다. … 그러나 연관성에 대한 이 유기적 이해에서 꼭 필요한 것은 생동성이다. … 살아있는 유기체들은 서로 연관을 맺지 않으면 죽고 만다.”

이 비망록에서 생명은 살아 움직이고 성장하는 사물들이 서로 의존하며 내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상태로 이해되고 있다.
 JPIC 구상은 관계의 현실을 이루고 있는 전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관심은 특히 정의에 대한 이해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정의의 개념은 JPIC 구상에서 관계의 한 범주이다. 정의란 한 마디로 관계에 합치하는 행동이다. 이것은 JPIC 세계대회를 위한 첫째 초안과 둘째 초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정의는 동료 피조물들 사이의 신실하고 공감을 나누며 동등한 관계에 근거한다. 이 관계에서는 ‘자기자신’이 아니라 ‘남’이 우리의 주요 관심사이다. 이러한 관계는, 노예로 전락하고 주변화되고 고난받는 백성을 억압으로부터 해방함으로써 그 백성과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하느님의 정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느님 나라의 표징 가운데서 인류와 땅, 그리고 땅의 사물들 사이의 관계는 정의를 통해 올바르게 세워진다.“

 이러한 관계 개념은 평화 개념에 관한 논의에서도 강조되었다. 생명이 통전적인 관계의 현실을 이루고 있다는 인식은 특히 “피조물의 보전”이라는 개념을 둘러싼 논의에서 명료하게 표현되었다. “피조물의 보전”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 “Integrity of the Creation"은 매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였기 때문에, 이 개념을 창조신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공의회 과정에서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 개념에 대한 집중적인 해명과 논의는 노르웨이의 그랜볼렌에서 열린 ”Integrity of the Creation“ 협의회에서 이루어졌다. 협의회에서는 ”Integrity of the Creation“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 우리가 창조주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 모든 피조물들은 보다 큰 존재의 공동체와 사귐 속에서 서로 연관되어 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으며, 이 속에서 인간은 전체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는 것,
- 인간은 피조물의 관리자로서 역할을 하며, 관리의 책임을 지는 모든 것과 연대를 맺는다는 것,
- 피조물이 완성될 때까지 피조물에게 부어지는 하느님의 사랑은 피조물들 사이의 연대에서 표현된다는 것.

 이러한 신학적 진술들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은 역시 관계의 범주이다. 그랜볼렌 회의에서는 정의와 평화와 피조물의 보전 사이의 내적 연관을 인식하려는 시도도 있었는데, 이 인식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시각에서 주어졌다.

“모든 피조물을 위해 신학은 창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진정한 평화가 정의의 수립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고, 평화는 정의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정의와 평화가 모든 피조물에 대한 깊은 존중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는 것을 배우기 시작해야 한다.”

2. 1990년 서울: JPIC 세계대회

 JPIC를 위한 공의회 과정은 1990년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대회에서 일단 그 정점에 달했다. 세계대회는 JPIC의 세 핵심개념들의 상호연관을 명료하게 정식화시키고자 하였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작업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이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세계상황에 대한 일치된 공동인식을 갖지 못했다.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의 역사와 패러다임의 전환을 연구한 마르틴 로브라는 서울 세계대회를 놓고 “난파”라는 표현을 쓰기까지 했다. 어떤 사람들은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이 서울 대회에서 충분한 합의능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JPIC를 위한 토론이 여전히 해방신학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러한 비판에는 물론 경청할 만한 점이 있지만, 극단적으로 상이한 상황들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세계상황을 공통된 시각에서 분석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정의와 평화와 피조물의 보전 사이의 내적 연관을 찾는 일도 곤란한 일이었으며, 이 내적 연관의 신학적 근거를 명료하게 제시하는 일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이와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세계대회는 하나의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계약은 네 가지 구체적 책무들을 포함하였고, 각 책무에는 여러 확언들이 배열되었다. 이 책무들은 아래와 같다.

- 정의로운 세계질서와 외채 부담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행동해야 할 구체적 책무,
- 모든 국가들과 사람들의 안전과 폭력없는 문화를 위해 행동해야 할 구체적 책무,
- 모든 생명을 주의 깊게 보호하며 교통을 나누고 지구의 대기권을 보존하기 위해 행동해야 할 행동해야 할 구체적 책무,
- 모든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국가적 차원과 국제적 차원에서 인종주의와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행동해야 할 구체적 책무.

 교회가 세계상황을 인식하면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제안하는 이 구체적 책무들은 서로 다른 관심사항들을 느슨하게 연결시키고 있는 데 불과하다. JPIC 공의회 과정을 결산하는 1990년 서울의 JPIC 세계대회는 JPIC 구상의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그 한계는 JPIC 패러다임의 관계론적 사고가 JPSS 패러다임의 메시아적 당파성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관철된 데서 준비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V. 에큐메니칼 사회윤리의 새로운 패러다임

 앞에서 간략하게 살펴본 에큐메니칼 사회윤리의 세 가지 패러다임들은 나름대로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 중심의 보편주의에 입각한 책임사회 패러다임은 전쟁과 동서 이념 갈등으로 인해 극도의 무질서를 경험했던 시대에 교회의 세계 인식과 세계 형성을 이끌어가는 중간공리의 역할을 하였다. JPSS 패러다임은 책임사회 패러다임이 아우르지 못했던 남북문제와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을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우선적 선택을 감행하는 메시아의 정의에 초점을 맞추었다. JPIC 패러다임은 JPSS 패러다임이 의식을 하고는 있었지만 체계적으로 통합하지 못했던 피조물의 보전과 평화를 포괄하는 통전적인 에큐메니칼 세계관을 제시하고자 했다.
 나는 JPIC 구상이 생명을 살리는 운동을 초점으로 하고 있고, 이를 위해 정의, 평화, 피조물의 보전을 유기적 전체로 통합하고자 하였다는 것을 높이 평가하지만, 이 구상의 토대를 이루는 관계론적 사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JPIC 구상의 관계론적 사고는 삼라만상을 관계의 현실성으로 파악하는 생태학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생태학적 사고의 핵을 이루는 상호의존과 상호연관의 네트워크 개념은 자연계를 이해하고 그 이해에 바탕을 두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면 좋을지 궁리하도록 좋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문제는 이와 같은 생태학적 관계 개념을 역사와 사회에 직접 적용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생태학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은 흔히 인간의 사회를 제대로 규율하여 사람들이 상호의존과 상호연관의 유기적 관계를 이루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여기서는 어느덧 생태학적 관계 개념이 인간의 현실을 규율하는 규범의 위치로 승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현실은 생태학적으로 구상되는 관계의 현실성과는 동떨어져 있다. 인간의 세계에서는 상호의존과 상호연관의 개념이 지시하는 상생과 공생보다는 지배와 착취, 주변화가 지배한다. 인간의 세계는 한 마디로 관계의 단절과 관계로부터의 배제를 기본 논리로 해서 움직이고 있다. 인간의 세계가 이렇게 된 것은 생태학을 갖고서는 잘 설명할 수 없는 인간 세계 특유의 내력과 구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생태학적 관계 개념을 앞세워 이를 규범으로까지 설정하면서 사람들의 현실을 규율하려고 나서는 일은 개념적으로 지극히 참람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 다음,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적대적인 두 당파, 곧 하느님과 세계가 화해하였다고 고백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일일 뿐이지,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는 여전히 하느님과 세계가 화해를 이루고 있지 않다. 세계는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이 세계를 하느님의 주권 아래 놓기 위하여 오늘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투쟁을 벌이고 있음을 직시하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이 오늘 마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상생과 공생의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기나 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아주 부적절하다. 우리는, 위르겐 몰트만의 흥미 있는 말놀이처럼,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상한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것을 회상하고 미리 맛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쓰라린 오늘을 견디고 그것과 싸우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세상에서 모순 아래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의 실존(Existenz des Christen sub contrario in der Welt)이다. 우리는 아직 칭의론과 화해론으로부터 우리의 세계가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했다는 어떤 단서도 얻을 수 없다. 우리의 세계는 그 세계 안에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요인들과 구조들로 인해 분열되어 있고 인간들의 현실은 지배와 착취와 주변화로 인해 고통스럽다.
 JPIC 패러다임은 오늘의 세계에서 생명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요인들과 구조들을 여섯 가지로 인식했다. 생태계 파괴, 대량살상 무기의 확산, 군사주의, 계급차별과 가난, 인종차별, 성차별 등이 그것이다. 이 문제들을 인식하였다는 점에서 JPIC 구상은 옳았다. 그러나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JPIC 구상이 끌고 들어온 관계론적 정의 개념은 그 개념의 타당성을 요구하는 맥락과 추상수준을 놓치고 있거나 그 개념의 현실 연관성과 설명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행복한 개념으로 보기 어렵다.
 나는 임의의 규범을 미리 설정해 놓고 그 규범에 따라 현실을 재단하지 말고 현실로부터 출발할 것을 권하고 싶다. 관계의 단절과 관계로부터의 배제가 인간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지배적인 현실이라고 한다면, 그 현실 속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세계를 보고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것이 옳다. 나는 이러한 관점이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이 표방했던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민중신학자들과 해방신학자들은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신학을 하였기에 가난한 사람들을 편드는 하느님을 믿고, 출애굽 사건과 예수 운동에서 그 하느님이 벌이는 해방 실천의 전형을 보았던 것이다.
 오늘 많은 사람들은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의 통찰이 이미 지나간 시대의 유물인 것처럼 여기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경제 발전이 급속도로 이루어지면서 민중은 사라지고 시민의 시대가 왔다고 외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경제의 지구화가 진행되고 신자유주의가 판을 치는 세계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관계로부터 단절되고 배제되는 고립분산의 삶 속에서 철저하게 감시당하고 통제되면서 겪는 고통과 좌절을 생각해 본다면, 그리고 그들이 자본에 포섭된 채 광범위한 노동빈곤층을 형성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 본다면,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의 합리적 핵심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생명의 하느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라는 에큐메니칼 슬로건은 반드시 정의에 기반을 둔 평화 속에서 삼라만상이 누리는 충만한 생명의 비전으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비전을 향한 첫 걸음은 정의이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계약을 맺고서 그들의 하느님이 되기로 한 그분의 정의이다. 성서에서 하느님의 정의는 어떤 개념이나 어떤 객관적인 척도로 주어져 있지 않다. 하느님의 정의는 오직 하느님의 구원하고 해방하는 행위로부터 인식되고, 그 인식은 하느님의 행위에 부합하는 인간의 응답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무리들 편에 서서 그들을 구원하고 해방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야훼임을 알린 출애굽 사건 이래로 성서를 관통하는 기본 모티프이다.
 하느님의 정의의 요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처절한 삶과 그 종살이로부터 해방시킨 하느님의 위대한 구원 행위를 기억하는 데서 출발한다. 계약법전에서 강조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의 책임은 바로 이와 같은 역사적 회상에 터를 잡고 있다: “너희는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사람을 구박하거나 학대하지 말아라. 너희도 에집트 땅에서 몸붙여 살지 않았느냐?”(출애 22:20) 이와 같은 약자 배려의 정신은 과부와 고아의 보호(출애 22:21f.), 떠돌이의 보호(레위 25:35) 등으로 이어지며, 타작이나 수확을 할 때 이삭을 남겨 두거나 열매를 남겨 두어 “가난한 자와 몸 붙여 사는 외국인이 따 먹도록 남겨 놓으라.”는 분부로 나타난다. 출애굽 전승의 핵을 이루는 약자 배려의 정신은 사회기금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십일조 제도로 발전되었으며,(신명 14:28-29) 예언자들에게도 계승된다. 예언자들에게 하느님의 정의에 대한 지식과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하는 것은 둘이 아니라 같은 동전의 양면이었다.(예레 9:23f.; 예레 22:15; 이사 58:10 등) 이러한 예언자 정신은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는 예수의 선언으로 이어진다.(루가 6: 20-21)
 이처럼 하느님의 정의를 가난한 사람들의 배려와 보호에 직결시키는 성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생존에 필요한 소득에 대한 권리가 있고, 그 권리를 보장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의 책임임을 강조한다. 만나 이야기(출애 16:1-36), 주기도문(마태 6:11; 누가 11:3 병행), 포도원 주인의 비유(마태 20: 1-16), 최후심판의 비유(마태 25:31-46)가 그렇다.

보론: 만나 이야기, 주기도문, 포도원 주인의 비유, 최후심판의 비유로부터 얻는 교훈

 만나는 이집트에서 탈출한 출애굽 공동체가 이집트의 축적 경제에 대항하여 추구하여야 했던 대안적인 삶의 상징으로 새길 수 있을 것이다. 출애굽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기본 욕구를 충족시킬 자원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하느님이 아무런 전제 없이 제공한 ‘일용할 양식’을 받았다. 그들은 ‘일용할 양식’이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배분되어야 하고, ‘일용할 양식’보다 더 많은 것을 챙겨서 축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워야 했고,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정의임을 인식하여야 했다.
 만나 모티프는 주기도문 제2항목 첫째 기원(“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에 다시 등장한다. ‘일용할 양식’에 대한 루터의 해석은 매우 중요하다. 그에 따르면 ‘일용할 양식’은 “삶을 위한 양식과 필수품에 속하는 모든 것, 먹는 것, 마시는 것, 옷, 신발, 집, 정원, 경작지, 가축, 현금, 순수하고 선한 배우자, 순박한 아이들, 착한 고용인, 순수하고 신뢰할 수 있는 통치자, 선한 정부, 좋은 날씨, 평화, 건강, 교육, 명예, 좋은 친구, 신용 있는 이웃 등”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인간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는 모든 것이다. 이 ‘일용할 양식’은 나 혼자 차지해서는 안 되고, ‘우리’ 모두에게 허락되어야 한다. ‘우리’가 모두 “똑같은 기본적 필요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그 필요를 집단적으로 충족시킬 때 우리는 형제자매가 된다.”는 것도 자명할 것이다. 이것은 ‘일용할 양식’의 문제가 사회정의와 직결된 문제임을 뜻한다. 로호만은 하느님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햇빛을 비추고 비를 내리는 것처럼 이 “양식은 수고하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허락된다.”고 주장한다. “하느님의 의는 그 근본에서 효용성이라든가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은혜 충만한 공의이다. 이 점을 주목할 가치가 있다 - 사회적 결과를 지향한다는 점에 이르기까지 그렇다.”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업적에 따른 정확한 분배’를 뒤집어엎는 ‘하느님의 기이한 의’를 묘사한다. 하느님의 정의는 노동의 업적과 무관하게 삶의 필요에 따라 재화를 나누어 주는 행위를 통해 드러난다. 업적과 보상을 서로 분리하고, 보상과 삶의 필요를 직결시키는 것이 하느님의 정의이다. 그것이 기이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업적과 보상을 서로 결합시키는 일이 마치 하늘이 정한 법인 양 생각하는 통념이 그만큼 강력하게 자리를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통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노동할 기회가 전혀 없거나 노동 업적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필요에 따른 분배에 참여할 기회를 얻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분개할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궁핍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최후심판의 비유는, 하느님의 정의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기본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연대하여야 한다는 것을, 전율적으로 증언한다. 최후의 심판자가 의로운 사람들에게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는 것이다.(마태 25: 35-36) 의로운 사람들이 의아한 마음으로 최후의 심판자에게 그들이 언제 그렇게 하였느냐고 묻자 그는 “네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고 대답한다. 의로운 사람들이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은 “양식, 주거, 의복, 건강, 자유(존엄성)”과 같이 “인간의 경제적·정치적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자원을 제공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이웃의 기본 욕구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에 따라 우리와 하느님의 관계가 결정되고 우리의 미래의 삶이 결정된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과 위엄 있는 삶이 보장되는 곳에서 평화가 깃든다고 생각한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다. 정의가 먼저이고 평화는 그 뒤를 따른다. 이 순서는 사전의 순서 같은 것이어서 뒤집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정의와 평화가 실현된 곳에서 삼라만상이 충만한 삶을 누린다고 믿는다.
 나는 메시아적 정의를 강조했던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이 생태학적 정의를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다는 비판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싶다. 이 세상에서 가난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바로 그것이 생태학적 위기도 불러낸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사람은 가난과 생태학적 위기가 같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기에 이 둘을 서로 떼어 놓고 별개의 해법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가난과 생태학적 위기가 모두 악성 종양 같이 끊임없이 축적하고 팽창하는 자본의 운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한, 우리는 인간이 다시 자본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투쟁은 정의에 기반을 둔 평화 속에서 삼라만상이 누리는 충만한 생명의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피해 갈 수 없는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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