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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체제”의 청산과 민중정치 - 2016 총선에 접한 한 민중신학자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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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체제”의 청산과 민중정치
- 2016 총선에 접한 한 민중신학자의 단상

강원돈 (한신대/민중신학과 사회윤리)

머리말

 2016년 4월 13일에 실시한 국회의원 총선거(이하 2016 총선)는 한국 정치에 몇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그 동안 존속해 오던 양당체제를 3당체제로 전환시키고, 여소야대의 권력 배치를 이루어냈다. 정치적 보수세력의 이념적 분화의 조짐이 포착되기 시작했고, 지역주의의 틀에서 완강하게 유지되었던 정파적 기득권 구조가 다소 흔들렸고, 청년 세대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기술적으로는 지역대표와 비례대표에 대한 투표를 분산시키는 전략적 투표가 효과를 발휘했다. 그런데 2016 총선은 민중의 욕망과 이해관계를 표현하고 실현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하였는가? 민중이 유권자로서 총선에 참여하였지만, 그 결과 정치적 기득권의 배열이 다소 바뀌었을 뿐 기득권 구조를 합법화하는 데 그치고 만 것일까? 우리나라 총선의 틀에서 이루어지는 권력 형성 과정은 민중을 주변화하고 무력화하여 민중정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민중신학적 관점에서 2016 총선과 그 결과를 조금 더 깊이 분석하면서 이 문제들을 다루고, 우리 사회에서 민중 정치의 가능성 조건들을 탐색해 보고 싶다.

민중신학자로서 민중의 현실을 보는 관점

 민중신학은 민중을 신학의 초점으로 삼고 있다. 민중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역사를 살피고 생각의 얼개를 음미하고 성서를 읽는다고 자처한다. 그런데 민중신학의 전제인 민중은 자명하지 않고, 제대로 포착되지 않고, 개념적 안정성도 갖고 있지 않다. 억압, 수탈, 차별, 배제, 주변화 등 민중의 현실을 서술하거나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는 개념들은 판에 박힌 상투어이기 쉽기 때문에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힘들이 배치되고 결합되는 장에서 민중이 어떻게 구성되고 그들의 현실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민중을 개념적으로 규정하거나 민중 현실에 대한 설명을 도식화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민중이 그러한 개념 규정의 틀과 설명 도식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신을 표현하고 전개하는 움직임에 주목한다. 민중은 그러한 움직임에서 가장 잘 파악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민중은 피억압이라는 개념에 의해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억압하는 틀의 안에서 그 밖을 향한 운동의 주체로서 파악된다. 착취, 차별, 배제, 주변화 등등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민중이 운동의 주체라면, 민중의 주체성은 운동을 가로막는 틀과 도식, 법과 제도, 고정시키고 정상화하고 안정시키는 권력의 장치들을 깨뜨리는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민중의 운동은 민중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언제든 불안정하게 만든다. 민중의 개념은 어느 한 순간에 나타나는 민중 현실의 특이한 국면을 제대로 포착할 경우에만 진리일 것이다. 만일 민중신학이 그러한 진리를 추구하여야 한다면, 민중신학자들은 부지런하고 생산적이어야 한다. 민중 개념의 불안정성은 민중신학적 사유의 생산성을 촉발한다.
 민중에 대한 담론이 다양하게 형성되는 것은 무척 바람직한 일이다. 발랄하고 도발적인 민중 담론이 새롭게 등장하는 것은 기왕에 제출되었던 민중에 대한 설명 도식들로써는 민중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민중’이 없다는 주장이나 ‘민중’을 ‘유령’으로 지칭하는 논의로부터 민중을 ‘비시민’으로, ‘희생자’로, ‘잔여’로, ‘다중’으로, ‘하위주체’로, 담론의 ‘외부’로 규정하는 입장이나 ‘민중-되기’에 관한 논의에 이르기까지 민중 담론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이러한 담론들은 민중 현실의 특정한 측면에 주목함으로써 다른 담론들과 차별화되는 것이겠지만, 문제는 그때그때 전개되는 운동으로서의 민중 현실을 일관성 있게 설명하는 담론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이다.
 나는 민중이 있다, 없다 하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는 민중담론을 고립시키거나 민중담론의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데올로기적 공세라고 본다. 민중을 보아도 보지 못하고, 민중의 함성을 들어도 듣지 못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민중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우리 시대에는 민중의 규모가 엄청나게 팽창했고 그 분포가 광범위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민중을 생각하면, 미취업 청년들, 불완전 고용 상태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는 프레카리아트, 대다수 자영업자들, 노인들, 외국인 노동자들, 성 소수자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누가 민중인가를 묻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민중의 계급적 구성을 사회학적으로 설명한다고 해서 민중의 현실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민중신학자들이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생각하였을 때, 그들이 날카롭게 포착한 것은 민중이 그들을 주인의 자리에서 밀어낸 권력의 배치를 의문시하고, 그것을 해체함으로써 주인의 자리로 돌아오는 운동의 주체라는 것이었다. 그러한 인식은 “우리 역사에서 민족은 있어도 민중은 없었다.”는 명제에 응축되어 있다. 민중신학자들은 나락의 극한을 뒤집어 하늘을 보는 민중의 능력을 주목하고 그 능력을 발현하는 민중의 탄생에 논의를 집중했다. “한과 단의 변증법”이나 “민중의 자기초월 능력” 같은 낱말들은 민중신학자들의 민중 현실에 대한 인식이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동태적인 것임을 잘 보여준다. 그러한 능력이 있기에 민중은 억압하고 착취하고 차별하고 배제하고 주변화하는 구조들에 맞서고 그 구조들을 비판적으로 넘어서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그러한 민중이 탄생하는 곳은 현실의 가장자리가 아니라 현실의 한복판이다. 민중은 억압과 착취, 차별과 배제, 주변화가 작동하는 현실을 구성하는 일부분이기에 그 현실을 안으로부터 파괴하고 그 현실을 넘어서서 새로운 현실을 형성하는 주체인 것이다. ‘집합적 노동자’(K. Marx)나 ‘사회적 노동자’(Antonio Negri/Michael Hardt)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그 체제에 저항하는 주체인 한, 그들은 민중의 중핵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민중의 관점에서 20대 총선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20대 총선 분석

 2016년 4월 13일에 실시된 20대 총선은 박근혜 정부가 실정을 거듭하여 이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이 극대화된 시점에서 진행되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은 신자유주의 체제는 이명박 정부의 뒤를 이어 들어선 박근혜 정권에서 치명적인 문제들을 드러냈고, 한국 민주주의는 근본적인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아래서는 박근혜 정권의 치명적인 실정을 몇 가지 지적한다.

- 박근혜 정권의 가장 큰 실정은 대통령이 정당정치와 입법 권력을 초월하고 또 그것을 무력화하는 위치에 스스로를 배치한 데서 비롯된다. 대통령과 다른 정책적 판단을 했다는 이유로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를 찍어낼 정도로 대통령의 독선과 독재가 극에 달했다. 민주주의가 사실상 껍질만 남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극적인 사건은 대테러방지법 제정이었다. 대테러방지법은 인간과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들이 국가에 의해 상시적으로 침해되도록 만들고 민주주의를 안보우선의 국가주의에 종속시켰다.
- 대통령은 입법권력에서 진보정당을 축출하는 파시스트적 행태를 서슴없이 보이기까지 했다. 법무부 장관은 민중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당의 위헌성을 가려달라고 헌법소원을 냈고,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을 “종북” 정당으로 몰아 해산하는 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정권의 파시스트적 행태는 국가가 역사 해석을 독점하겠다고 나선 역사교과서 국정화 조치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 박근혜 정권은 경제민주화와 맞춤식 복지의 확대 등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하였지만, 경제민주화는 경제위기를 빌미로 삼은 경제성장 지상주의로 대체되었고, 복지 정책은 복지 포퓰리즘 비판과 증세 반대 정책의 벽에 부딪쳐 퇴행 양상을 보였다.
- 박근혜 정권은 자본소득자의 소유권 주장을 옹호하여 노동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기본권을  무력화하고, 서비스산업법, 노동개혁법 등 규제완화의 이름으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독재에 훨씬 더 넓은 길을 터주고, 노동자들과 농민들과 서민들의 생존권을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청년 미취업률과 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중이다.
-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어린 학생들의 한이 맺혀 있고, 그들의 죽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데도, 박근혜 정권은 이 심각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여 맺힌 한을 풀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치유 과정을 국가 차원에서 작동시키는 데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군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풀지 않고 한일 정상간 합의로써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선언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 북핵 문제에 대한 대응과 개성공단 폐쇄 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박근혜 정권은 북한을 고립시켜 내부 붕괴로 몰아가겠다고 고집함으로써 한반도 상황을 최악의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 아마도 이보다 더 정권의 총체적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제도권 정치는 이러한 박근혜 정권의 실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집권여당은 대통령의 독재 아래 종속되어 있었고, 야당은 130명의 국회의원들을 갖고서도 대통령의 독재를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했다. 거기 더하여 야당은 총선이 다가오면서 분당으로 치달았다. 분당의 계기는 표면적으로는 공천 갈등이었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차기 대통령 후보 선출을 둘러싼 당내 분파들 사이의 헤게모니 갈등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당내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못한 호남 출신 의원들은 지역구 물갈이론을 빌미로 당내 주류파가 그들을 공천에서 배제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바로 그 당내 헤게모니 세력에 의해 비토를 당해 대통령 후보의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계산한 안철수 의원이 탈당하자 그의 뒤를 이어 연쇄적으로 탈당하였다. 이로써 총선을 앞두고 야당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립되었다.
 이러한 야당의 분열은 집권여당에게는 호기로 여겨졌다. 집권여당은 대통령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할 수 있는 180석 이상의 의석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심지어 개헌을 밀어붙일 수 있는 200석 이상의 의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한 오만이 공천과정에서 ‘박심’을 앞세운 온갖 퇴행적이고 독선적인 정치행태를 빚어내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서 치루어진 20대 총선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지역구에서 최대의석을 차지한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으로서 110석을 얻었고, 그 뒤를 이어 새누리당이 105석을 차지했다. 국민의당은 제3당으로서 25석, 진보정당으로 꼽히는 정의당은 2석을 확보했다. 정당별 지역구 의석 분포율만을 놓고 본다면, 20대 총선은 지역주의의 한계를 거의 넘어서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새누리당은 영남 지역을 거의 독차지했고, 국민의당은 호남 지역을 석권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영남과 호남을 제외한 지역에서 정부의 실정과 집권여당에 반발한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 모아 82명의 의원들을 당선시켰다. 지역주의의 완강한 벽을 넘어서서 당선된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극소수였다. 더불어민주당이 영남에서 8명의 당선자를 낸 것은 더불어민주당이 호남의 완강한 지역주의에 의해 버림을 받은 데서 오는 반사이익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각 정당의 전국적 지지율이다. 새누리당은 33.5%로 가장 높은 득표율을 보였고, 17석의 비례대표를 가져갔다. 그 뒤를 이은 것은 더불어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의당이었다.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율은 26.7%였고, 더불어민주당의 그것은 25.5%였다. 두 정당은 각각 비례대표 13석를 차지했다. 정의당은 7.2%로 4위였고, 4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했다. 이로써 20대 국회의 의석은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 123석, 제2당인 새누리당 122석, 제3당인 국민의당 38석, 제4당인 정의당 6석, 무소속 11석으로 배분되었다.

 20대 총선의 결과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지만, 총선이 끝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 그러한 결과가 빚어졌는가를 설명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먼저 20대 총선은 야당이 분열하면 집권여당이 어부지리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할 것이라는 통념을 깨뜨렸고, 이로써 선거를 앞두고 야당 세력들이 무조건 연합하고 후보를 단일화해야 한다는 공식도 깨졌다. 분열한 두 야당들이 얻은 의석수와 전국적인 득표율의 합계는 대통령과 정부의 실정, 그리고 집권여당의 무능력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반발이 얼마나 컸는가를 잘 보여준다. 만일 정권의 실정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선거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평범한 이치를 고려한다면, 20대 총선의 결과는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20대 총선은 지역주의의 벽을 다소 낮추었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혹자는 더불어민주당이 영남에서 8석을 차지하고 새누리당이 전북과 전남에서 각각 1석을 차지한 것을 내세워 지역주의가 동요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하지만,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총 25석 가운데 23석을 차지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선거를 통해 집권 기회를 얻겠다는 호남 사람들의 열망은 국민의당을 배타적인 지역당으로 만드는 전략적 투표로 귀결되었다. 호남 지역에서 나타난 지역주의 투표 성향은 호남 지역에서 정당들 간의 경쟁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탈당하여 국민의당으로 옮겨간 의원들이 거의 예외 없이 당선된 선거결과는 지역주의의 퇴행성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호남에서 나타난 강력한 지역주의 투표 성향은 20대 총선에서 지역주의 장벽을 낮춘 영남 유권자들이 다음 해의 대통령 선거에서 지역주의로 회귀하도록 학습효과를 유발할 공산이 크다.
 셋째, 집권여당이 유권자 33% 정도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갖고 있다는 통념은 일종의 착각이었음이 드러났다. 반공분단체제와 개발국가 체제,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 있는 신자유주의적 승자독식 체제에서 집권여당은 기득권을 향유하는 세력과 노령 인구층의 다수를 흡수하여 안정적인 지지기반을 확보하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20대 총선은 그 세력이 콘크리트 같은 응집력을 지닌 것이 아니고, 도리어 권위주의적인 수구 세력과 건전한 보수 세력으로 분화되기 시작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넷째, 20대 총선에서 각 당이 차지한 전국적 득표율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정당별 득표율의 분포는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지역구 의원 선출 투표와 비례대표 의원 선출 투표를 분리하는 전략적 투표를 하였음을 입증한다. 앞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이러한 전략적 분리투표의 최대 수혜자는 국민의당이었다. 국민의당은 정당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선거에서 636만 여 표를 얻어 27%의 정당 지지율을 차지했고, 그 지리적 분포는 전국을 망라하였다. 서울대 정치커뮤니케이션 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한 약 30%가, 그리고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한 약 27%가 이번 국민의당 정당 비례대표 선거에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고, “새누리당 지역구 후보를 찍은 사람의 약 24%가,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후보를 선택한 유권자의 약 22%가 정당 선택에서는 국민의당으로 분할 투표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분할 투표를 통해 국민의당을 지지한 유권자들은 국정교과서에 반대하고 복지를 위한 증세에 반대하는 성향을 보였다는 점에서 국가주의에 반대하는 자유주의, 혹은 자유지상주의적 성향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섯째, 20대 총선에서 주목되는 또 한 가지는 청년들의 투표율이 의미 있게 상승하였다는 것이다. 20대의 투표율은 49.4%에 달했고, 19대 총선에서 보인 36.2%의 투표율보다 13% 정도가 늘어났다. ‘삼포세대,’ ‘오포세대,’ ‘칠포세대,’ 그리고 ‘흙수저 vs. 금수저’로 상징되는 청년들의 좌절과 분노가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음이 분명하다.
 여섯째, 20대 총선에서 진보정당들은 크게 위축되었고 주변화되었다. 지역구 의원을 배출한 정당은 정의당뿐이었고, 의석은 2석에 지나지 않는다. 울산 동구와 북구에서 구 민주노동당 계열의 무소속 후보 2인이 진보진영 후보단일화에 성공하여 당선된 것도 기록해 둘 만하다. 진보세력들이 지역구를 통해 의회에 진출하는 것은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 나타나는 국지적인 현상이거나 스타급 정치인들의 개인 역량이 빛을 발한 경우이다. 그것은 진보정당들에 대한 지지율에서도 확인된다. 정의당은 7.23%의 지지율을 얻었고, 여기에다가 노동당 0.38%, 녹색당 0.76%, 민중연합당 0.61%의 지지율을 모두 합쳐도 진보세력들이 거둔 정당지지율은 8.95%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17대 총선부터 19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진보정당들의 지지율이 12-13%를 차지했던 것에 비추어보면,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은 모두 13.2%의 지지율을 기록했고, 18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창조한국당의 지지율 총계는 12.6%였다.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 녹색당이 차지한 지지율을 합치면 12%에 달했다.
20대 총선에서 진보세력들에 대한 지지율은 큰 폭으로 떨어졌다.  
 끝으로, 이번 총선이 민중의 욕망과 이해관계를 정치적으로 반영하는 데 기여한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새누리당은 민중의 이해관계를 실현하는 데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고, 국민의당은 공정경제 담론에 묶여서 시장주의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지구화 과정에 깊숙이 편입되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 시장을 통해 소득과 기회가 좀 더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것은 민중배제적인 신자유주의 체제의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경제민주화와 소득분배중심의 성장론을 들고 나섰지만, 노동의 권력과 자본의 권력이 제도적 균형을 이루는 방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진보당은 국민월급 300만원 시대, 최저시급 1만 원 등의 공약을 제시하였으나 노동자, 농민, 도시서민, 프레카리아트 등 민중의 이해관계를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정책들을 정교하게 제시하지는 못했다.
 더욱이 민중의 욕망과 이해관계에 관련된 각 정당의 정책들은 언론의 관심 바깥에 있었다. 주류 언론은 총선이 ‘87년 체제’의 틀에서 보수세력들이 정치권력을 분배하는 절차라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주류언론이 보수세력들 사이에서 권력을 분배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어떻게 선거 판도를 움직이는가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주요언론이 야당들 사이의 선거연합 가능성과 지역구 차원의 후보단일화 가능성을 선거 종반까지 이슈화하고,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일으킨 돌풍이 수도권까지 몰려온다는 스펙터클한 보도를 하는 데 열중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총선 과정에서 진보적인 정당들마저도 민중의 욕망과 이해관계를 어떻게 보장하고 실현할 것인가를 놓고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없었고, 그럴 정치적 환경에 있지도 않았다. ‘87년 체제’의 틀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 제3당의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던 진보정당들은 지역주의에 발판을 두고 집권 기회를 노리는 제3당이 강력하게 등장하자 그 존재감과 영향력을 크게 상실하였다.
 이처럼 선거가 정치세력들의 지역 분할 구도에 묶이고, 보수적인 정치세력들 사이에서 권력을 배분하는 게임으로 전락하여 민중의 욕망과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길이 봉쇄되는 것은 ‘87년 체제’의 효과라고 해석되고 있다. ‘87년 체제’의 문제는 10여 년 전에도 정치학자들에 의해 폭넓게 논의되었지만, ‘87년 체제’를 해체하고 청산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87년 체제”의 문제

 1987년 한국 사회에서 분출되었던 민주화 운동 에너지는 권위주의 군부독재 체제를 무너뜨렸지만, 냉전체제와 분단체제에 바탕을 두었던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정당체제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이것이 ‘87년 체제’라 일컬어지는 6공화국 헌정질서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이러한 ‘87년 체제’는 민주화 운동 세력과 제도권 정치세력의 분할을 전제로 해서 탄생했다.
 ‘87년 체제’는 한편으로는 한국 민주화 운동의 결실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민주화 운동의 대의에 대한 배반이다. ‘87년 체제’의 직접적인 계기는 1987년 6월 항쟁이었다. 항쟁 기간에 민주화 운동 세력과 보수적인 야당 세력은 서로 연대해서 권위주의적인 군부세력에 맞섰다. 6월 29일 집권당 대표가 대통령 직선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을 수용하겠다고 선언하여 개헌국면이 조성되자 야당 세력은 곧바로 제도권 정치로 돌아갔다. 개헌 협상은 군부독재 체제를 뒷받침해 왔던 권위주의적인 집권여당과 보수적인 두 야당 사이에서 철저하게 비공개적으로 진행되었고, 민주화 운동세력은 이 협상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6월29일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 직선제 수용 선언을 하자, 곧바로 ‘여야 8인 정치회담’이 진행되었다. 이 회담의 최대 쟁점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3인의 정치적 경쟁의 룰을 정하는 것이었고, 정파들의 타협으로 대통령 5년 단임제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안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권력구조를 중심으로 한 헌법안이 10월12일 국회에서 의결되었고, 10월27일 헌법 개정안이 국민투표에 회부되었다. 국민투표에는 78.2%의 유권자가 참여했고, 유권자의 94.5%의 찬성으로 헌법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개헌 협상의 결과,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지방자치제를 골간으로 하는 6공화국의 헌정질서가 마련되었다. 이로써 한국형 버전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헌정체제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6공화국 헌정질서는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을 놓고 정치세력들이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했다. ‘체육관’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대의원들’이 대통령을 뽑고 그 대통령이 ‘유정회’나 ‘전국구’ 의원들을 일방적으로 지명하다시피해서 입법권력을 과도하게 차지하는 경쟁배제적인 질서는 철거되었다. 이러한 인위적인 권력 독과점 체제가 무너진 뒤에 정당들은 대통령직과 의원직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였다. 그 경쟁의 결과는 보수적인 정치세력들의 권력독점이었다. 보수적인 정치세력들과 그들의 정당들 사이에는 이념과 계층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 군부독재에 뿌리를 두고 있는 집권세력이나 ‘유신 잔당’이라는 모욕적인 호칭마저 아랑곳하지 않았던 자민련조차 민주화를 지지한다고 표방하고 나서자, 이 세력들은,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 전두환 독재에 맞서 싸움으로써 민주주의의 교두보라는 이미지를 가졌던 두 보수 야당들과 비교해 볼 때, 이념적 지향이나 계층적 대표성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보수 야당들은 그 뿌리가 식민지 지주세력이었고, 해방 이후 냉전반공주의 체제의 틀에 갇혀 있었던 세력이었다.
 ‘87년 체제’의 핵심 장치인 대통령 직선제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는 결선투표 없이 종다수원칙에 따라 당선자를 가리는 승자독식 체제였기에 정치세력들의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을 둘러싼 전국적인 경쟁은 지역 유권자들로 하여금 지역패권 정당 후보에게 몰표를 쏟아 붓게 만드는 괴력을 발휘했다. 이와 같은 정치세력간 지역분할 구도는 분명히 ‘87년 체제’의 결과이지만, 이 구도가 한국 정치에 용이하게 자리를 잡게 된 것은 몇 가지 요인들 때문이었다. 하나는 박정희 정권 때 강력하게 추진된 지역간 불균등 발전전략으로 인하여 산업화의 결실을 독차지한 영남 지역과 그 결실의 분배에서 크게 배제되어 있었던 호남 지역 사이의 지역 균열이다. 이러한 지역 균열은 호남 사람들에 대한 뿌리 깊은 문화적 편견과 홀대로 인해 증폭되는 경향이 있었다. 충청도 ‘합바지론’은 이러한 지역 균열의 틈바구니를 파고든 전형적인 지역주의적 선동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1979년의 부마항쟁과 1980년의 광주 항쟁 이후에 보수 야당의 엘리뜨 정치인들과 지역 민주화 운동 세력 사이의 유대가 공고하게 구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권위주의적인 집권여당은 산업화 과정에서 차지한 지대수익을 계속 독점하고자 한 대구·경북 세력의 지지를 쉽게 동원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87년 체제’가 구축되고 작동하기 시작하였던 국면에서 이념과 계급의 문제는 어떻게 처리되었는가? 다 알다시피, 1980년대는 이념과 계급의 문제가 대두되고 급진적 해결책이 모색되었던 시기이다. 80년대 민중운동을 선도한 지식인들은 급진적인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고, 미국의 군사정치적 패권 아래 편입되어 있는 한반도 분단체제를 청산하고 민중이 주인되는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6월 항쟁 이후 폭발적으로 등장하였던 노동자 대투쟁은 노동자 결사권의 전면적 보장, 노조의 교섭권 강화, 병영적 노무관리의 폐지, 분배구조의 혁신, 재벌체제의 해체 등을 내걸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념적 요구들과 계급적 요구들은 ‘87년 체제’에 수용되지 못했다. 민족통일과 자주화,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의 폐지 등과 같은 급진화된 이념세력들의 요구는 제도권에 진입한 모든 정치세력들에 의해 타부시되었다. 노동자들의 계급적 요구는 사업장 중심의 노조결성을 허용하고 임금 상승을 용인하는 수준만큼만 받아들여졌고, 산별노사교섭제도의 도입이나 노동악법 철폐 등과 같이 사회정치적 수준에서 노동자 계급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강력하게 요구되었던 방안들은 제도화 장벽을 넘지 못했다. 6월 항쟁 이후 노동자 대투쟁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엄청난 역량을 과시하였지만, 그들의 변혁 에너지는 급속히 잦아들었다. 그것은 사업장 단위에서 노조결성의 자유가 보장되고, 거대기업 노동자들로부터 시작해서 점차적으로 대다수 노동자들이 1980년대 후반의 3저호황 국면에서 마련된 엄청난 부를 나누어 갖도록 하는 분배 프로그램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념과 계급의 문제를 제도권 안에서 충분히 소화할 수 없었던 ‘87년 체제’는 제도권 안의 보수적인 정치와 제도권 바깥의 운동을 분열시켰다. 이러한 분열은 근본적으로 한국 정치를 불안정한 것으로 만들었다. 제도권 정치는 특권화되었다. 특권화된 제도권 정치가 제도권 바깥의 운동 세력들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지 못할 때 제도권 정치와 제도권 바깥 운동 세력들 사이의 긴장과 대립이 격화되었다. 그 결과, 정치판을 뒤흔드는 시위가 폭발적이고 위력적으로 벌어졌고, 그 빈도는 잦았다.

 제도권 정치가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정치세력들 사이에서 권력과 집권 기회를 배분하는 게임의 성격을 띠게 되자 제도권에 진입한 정치세력들은 이합집산과 야합을 서슴지 않았다. 지지자들의 지역적 분포를 제외하고는 이념과 지지계층에서 본질적 차이를 갖고 있지 않는 정치세력들이 원칙에 대한 고민을 할 이유가 딱히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전형적인 예는 1990년의 ‘3당합당’이다. 1997년의 평민당과 자민련의 선거연합,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 등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대통령 선거 국면과 총선 국면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후보단일화 시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반공분단체제와 신자유주의 체제가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극우 보수세력과 건전한 보수세력들을 구별하고, 극우 보수세력에 맞서서 건전한 보수세력들 상호간에, 그리고 건전한 보수세력들과 진보적인 정치세력들이 선거 연합을 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후보단일화 프레임은 보수적인 정치세력들의 권력독점이라는 ‘87년 체제’의 근본적인 한계를 깨뜨리지 못한다.
보수적인 정치세력들의 원칙 없는 타협과 정치적 흥정은 정치에 대한 염증을 불러일으켰다. 시민들은 투표를 포기하기 일쑤였고, 투표참여율은 곤두박질쳤다. 시민들은 선거 때가 되기만 하면 기성 정치에 때 묻지 않은 정치신인들이나 대통령 후보를 찾았다. 정치적 역량과 리더십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정치 신데렐라들이 양산되었고, 메시아적 후광을 뒤집어 쓴 초보 정치인들이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만용을 부릴 수 있었다. 경제대통령 신화로 무장한 이명박 현상, 새 정치 비전의 화신으로 포장된 안철수 현상 등등은 이를 보여주는 좋은 실례이다. 이러한 경향은 제도권 정치 바깥의 운동세력들이 제도권 정치에 대한 규범적 비판을 강화하면 강화할수록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제도권 정치 바깥의 운동세력도 ‘87년 체제’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1980년대의 민중운동에서 급진화된 이념세력들은 1987년의 대통령 선거와 1988년의 총선에서 독자적인 정당을 결성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1990년을 전후해서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면서 그 세력들의 영향력은 빠른 속도로 약화되었고, 그 공백을 메운 것은 시민사회 운동이었다. 시민사회 세력은 과거의 급진적인 이념세력들을 ‘운동권’으로 낙인찍어 고립시켰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적 요구들을 특수한 계급적 이해관계로 간주하여 그것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었다. ‘87년 체제’에서 시민단체들이 활성화되고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87년 체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 때문이었다. ‘87년 체제’는 보수적인 정치세력들이 과잉대표하게 만들고 정치세력들 간의 보수적인 타협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의제 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 이러한 대의제 민주주의의 기능장애를 메우기 위해 시민운동은 시민사회 영역의 다양한 요구들을 대안 정책의 이름으로 정치권에 제시하고, 국가와 시민사회가 여러 수준들에서 다양한 협치를 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시민운동의 전략은 국가와 시장을 넘어선 자리에서 두 가지 제도적 장치들을 감시하고 견제하면서 인권, 평화, 환경, 젠더, 인종, 문화 등 시민들의 공통적인 관심사와 보편적인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운동하는 시민단체의 본령을 초과하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협치는 국가적 어젠다에 시민운동을 묶어두고 국가의 제한적이고 국지적인 개혁정책에 동조하는 개량주의적 시민운동을 활성화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처럼 집권세력이 개혁적인 시민단체들에 대해 거리를 두거나 국가주의적 전략에 따라 보수적인 시민단체들을 동원하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일 경우, 국가와 시민사회의 협치는 더 이상 작동할 수 없게 된다. 오늘 한국 사회에서 개혁적인 시민단체들이 크게 위축되고 활동력을 상실하게 된 것은 국가가 더 이상 시민단체들을 협치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중정치의 모색

 20대 총선은 ‘87년 체제’의 틀에서 민중의 욕망과 이해관계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종다수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제도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는 정치세력들의 지역 분할 구도를 매개로 해서 보수적인 정치세력들이 권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파시스트 독재를 방불하게 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독선과 독재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체제를 만들어낸다. 이 정치체제는 분단체제에 안착되어 있고, 지구 경제에 깊이 편입되어 있는 한국 경제체제에 맞물려 있다. 이러한 ‘87년 체제’에서 민중은 그 어떤 정당에 의해서도 실효적으로 대변될 수 없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 서로 대립하는 이해관계들을 조정하는 장치가 정치이고, 정치를 수행하는 주요 행위자가 정당인데, 민중을 대변하는 정당이 선거를 통해 의회에 제대로 진출하여 민중의 욕망과 이해관계를 정치적으로 관철할 수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혹자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폐지하고 직접 민주주의를 창설하는 것이 해결책이 아닐까 주장하기도 한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를 확인하는 일이 용이해졌고 다중적 지성이 빠른 속도로 형성되어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그 주장의 논거로 꼽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구조가 복잡해지고 이해관계들이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대립의 양상을 보이는 현대 사회에서 그 어떤 정치적 결정도 의제에 대한 심의 없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시민들이 선거를 통해 대표들을 선출하고 그 대표들이 심의하여 의결한다는 공화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대의제도는 포기될 수 없다. 문제는 민중참여적인 대의제도를 창설하고 민중이 대의제도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관철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권력구조와 권력 형성 절차를 규정하는 헌법과 공직선거법을 개정하여야 한다. 이미 앞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87년 체제’는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주축으로 하고 국회의원 소선거구제의 틀에 갇힌 지역주의 정당체제이다. ‘87년 체제’는 매우 견고하다. 왜냐하면 ‘87년 체제’가 만들어낸 지역주의 정당이 확실한 기득권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정당들이 지역주의의 혜택을 보고 있는데 지역주의를 가능하게 만드는 헌정질서를 변경하겠다고 나설 까닭이 없다.
 그러나 ‘87년 체제’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은 극심하다. 대통령 5년 단임제와 국회의원 4년 임기제의 불일치는 한국 정치를 제왕적 대통령의 독선적인 지배와 조기 레임덕이라는 양극단 사이에서 불안정하게 움직이게 만들었다. 대통령의 임기중에 실시되는 총선은, 이번 총선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띠면서 여소야대의 권력배치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 임기와 단임 규정을 변경하거나 권력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헌법 개정은 많은 국민의 요구일 뿐만 아니라, 집권당과 야당들을 구성하는 정치 분파들의 대부분이 고려하는 사항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슈에 초점을 맞추어 개헌 논의가 시작된다면,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보수적인 정당체제를 혁파하는 선거법 개정 논의도 활성화될 것이다.
 만일 개헌 정국이 조성된다면, 민중은 1987년 여름의 개헌정국에서처럼 헌법 개정 논의과정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정당들과 사회단체들과 시민단체들이 모두 참여하는 포럼을 열어서 헌법 개정의 방향을 함께 정해야 한다. 민중은 아래로부터 힘을 모아서 헌법 개정과 선거법 개정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민중참여에 기반을 둔 공화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대의제도의 설계도를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이에 관한 논의를 지금부터 시작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87년 체제’의 극복은 헌법과 공직선거법 개정만이 아니라 시민과 민중의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제도들의 창설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시민과 민중의 참여는 민주주의적이고 공화주의적인 헌정질서를 구성하고, 그 틀 안에서 인간과 시민의 자유권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본권들을 구현하기 위해 반드시 보장되고 활성화되어야 한다.
 오늘의 정치 환경으로 자리를 잡은 대중 민주주의 체제에서 시민과 민중의 참여는 정당과 사회단체들과 시민단체들의 세력균형에 의해 간접적으로 실현된다. 대중 민주주의 체제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개인들의 느슨한 네트워크인 공중이 아니라, 정당이나 사회단체나 시민단체의 형태로 ‘조직된 개인들의 공론’이다. 따라서 대중 민주주의의 틀에서 시민의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면, ‘조직된 개인들의 공중’ 내부에 민주주의가 자리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시민들의 참여는 체계적으로 배제될 것이고, 선출되지 않고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관료들과 전문가들의 지배가 대중 민주주의 체제에 깊은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민중의 정치는 정당과 시민단체와 사회단체를 민주화하는 일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통해 활성화되고 강화된다.

 셋째, ‘87년 체제’는 결국 민중운동에 의해 실질적으로 청산될 것이다.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민중운동은 미약한 것처럼 보인다. 1980년대에 나타난 것 같은 민중운동이나 노동자 대투쟁은 오랜 옛날의 기억으로 남은 것 같다. 그러나 지구적으로 조직되어 있는 금융, 생산, 소비, 분배 네트워크에 깊이 편입된 한국 사회에서 오늘처럼 민중의 탄식과 절규가 크게 울려오고 저항의 잠재력이 강화되고 민중이 집요하게 저항한 적은 없다.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민중은 다양한 계급과 계층, 그리고 정체성 집단들로 구성되어 있다. 민중의 정치는 이러한 여러 계급과 계층과 정체성 집단들이 한국 사회의 균열선들에 따라 일상적인 생활상의 요구들을 제기하고 그 요구들의 실현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을 정치적인 과정으로 경험하는 데서 시작한다. 성, 젠더, 결혼, 임신, 양육, 교육, 먹거리, 건강, 위생, 환경, 안전, 교통, 주택, 노령화, 연금, 보험 등등 그 어떤 문제도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집단들의 다양한 운동들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 일자리, 임금, 노동조건, 기업 지배구조, 재벌체제, 금융체제 등등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세력들의 결집과 운동이 필요하다.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시민과 민중이 움직이고 있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맥락들과 서로 다른 수준들에서 등장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집단들의 운동이 끊임없이 형성되고 전개되고 있다. 그 운동들은 분산적이고 고립적인 운동들에 머물지 않고,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수평적이고 수직적이고 다면적인 관계망을 이루며 촘촘하게 밀집한다. 그것이 민중의 정치가 가능한 까닭이다. 민중의 정치는 민중이라는 단일 집합의 총체화하는 운동이 아니라, 민중을 구성하는 다양한 집단들의 다양하고 분산적인 운동들을 일관성 있는 구도 아래 결합하고 확산하는 운동, 곧 민중운동의 한 이름이다.
 민중의 운동은 네트워크의 형태를 취하지만, 그 네트워크에 중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적인 판단이 아니다. 인간은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관계들 속에서 살아가고, 그 관계들은 인간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시공간의 한계, 그리고 개인과 집단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의 한계 안에서 구성된다.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에서 경험되는 사소한 듯한 대립과 갈등조차도 지구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자본의 노동 포섭을 매개하여 중층적으로 결정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다. 민중의 운동은 지구화 과정을 꿰뚫고 있는 노동과 자본의 모순, 그리고 그 모순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표현형태들을 인식하고, 그 모순을 해결하는 가운데 정치, 경제, 문화 등을 새롭게 형성할 수 있는 정교하고 일관성 있는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민중의 운동이 구성하는 네트워크에 중심이 있다면, 그 중심은 일관성 있는 전망이 세워지는 지점일 것이다. 나는 그 지점에 그람시적 의미의 ‘유기적 지식인들’이 배치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현실에서 일관성 있는 전망을 갖는 민중의 운동은 성차별, 인종차별, 세대차별, 생태계 위기 등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운동들을, 자본의 포섭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근본적인 투쟁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다는 관점을 배격하여야 한다. 그 민중의 운동은 젠더적이고, 문화적이고, 인류학적이고, 생태학적인 문제들의 독특한 차원을 식별하지 않고 모든 것을 납작하게 눌러서 계급의 평면 위에 올려놓을 수 있기나 한 것처럼 생각하는 환원주의적인 관점 역시 단호하게 거부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계급적 배치를 중시하는 ‘집합적 노동자’나 자본주의적 재생산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사회적 노동자’ 같은 개념들이 일관성 있는 전망을 갖는 다원주의적인 민중의 운동을 설계하는 데 놓쳐서는 안 될 것을 시사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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