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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와 민중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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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와 민중정치  

강원돈 (한신대 교수, 민중신학과 사회윤리)

I. 머리말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촛불집회는 특검 수사와 탄핵 소추와 심판이라는 성과를 거두었고, 정부, 재벌, 언론, 검찰, 교육 등에 만연한 적폐청산을 요구하고 있다. 촛불집회는 광화문과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군중에 의해 4개월 이상 타오르고 있다.
 촛불집회는 2000년대에 들어 우리 사회에서 정형화된 시위의 한 형태이다. 2002년 미선·효순 촛불집회,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집회,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2014년 이래의 세월호 촛불집회 등 우리 사회에서는 중대한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촛불이 타올랐다. 특별히 2008년 촛불집회와 2016년 10월 말 이래의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는 대중 운동의 신기원을 이루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정보통신 기술에 힘입어 다양하고 중층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군중은 촛불집회라는 거대한 퍼포먼스를 수행하면서 직접행동에 나서고, 우리 사회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문제들을 드러내어 해법을 찾고, 고립과 분산과 불안의 일상과 참여와 소통과 희망의 축제 사이의 극명한 대조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촛불집회는 민중정치의 가능성을 얼마큼 열고 있을까? 촛불은 지배적인 대의제도에 의해 대표되지 않고 지배적인 법률장치에 의해 그 이익을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불붙여지지만, 그 사람들이 요구하는 바가 대의기구와 법률장치에 접수되는 순간에 그 요구의 실현은 끝없이 지체되고 결국 그 사람들은 배반당하고 마는 것일까? 촛불집회를 통해 분출되는 군중의 힘이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나는 2008년 촛불집회와 최근의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의 진행과 동학의 특성을 분석하고, 촛불집회가 민중정치로 발전하기 위해 어떤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하는가를 살피고자 한다.

II. 2008년 촛불집회

1. 2008년 촛불집회의 배경과 확산

 2008년 촛불집회는 한국 현대사에서 군부정권을 굴복시키고 절차적 민주주의의 길을 연 1987년의 민주항쟁, 미군 장갑차에 의해 두 명의 여중생이 희생된 사건을 계기로 해서 벌어진 2002년 촛불집회,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를 위한 2004년 촛불집회 등을 잇는 거대한 군중의 저항운동이었다. 이 저항운동은 4월 말의 촛불 전야를 거쳐 5월 2일 촛불이 본격적으로 점화된 이래로 8월 15일 공권력에 의해 진압되기까지 3개월 이상 지속되었고, 6월 10일에는 서울광장과 전국 각지에서 ‘100만’ 군중이 촛불을 밝혔다. 박석삼은 2008년 촛불집회를 촛불항쟁으로 성격화하면서 촛불항쟁의 전개과정을 4월 말의 촛불 전야, 5월 2일부터 6월 10일까지의 확산과 상승기, 6월 11일부터 29일까지의 소강과 대치기, 6월 20일부터 8월 15일까지의 휴지기와 쇠퇴기로 구분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박석삼, 『2008년 촛불항쟁 : 배반당한 개미떼들의 꿈』(서울 : 문화과학사, 2010), 17-44를 보라.

 2008년 촛불집회의 발단은 4월 18일 한미 FTA 협상의 전제조건들 가운데 하나였던 한미 쇠고기 2차 협상이 타결된 데서 찾을 수 있다. 4월 29일 문화방송 「PD수첩」이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방영하자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에 대한 저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5월 2일 최초의 촛불집회를 촉진시킨 사람들은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거세게 몰아붙인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에 항의하던 청소년들, 특히 여고생들이었다. 그들은 “미친 소, 너나 먹어!”라는 구호를 내걸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에 항의하기 시작했고, 그 뒤를 이어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엄마들과 “88만 원 세대”로 일컬어지는 20대 청년들이 나섰다. 쇠고기 협상 과정에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오간 데 없고 검역주권마저 포기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촛불집회에는 연령, 성별, 계층을 넘어서서 광범위한 군중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2008년 촛불집회가 광범위하게 확산된 결정적인 요인은 한편으로는 ‘광우병’ 전파로 상징되는 위험사회에 대한 공포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과정에서 시장과 자본에 굴복한 채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지키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력에 대한 분노였다.
 촛불집회에 모인 군중은 쇠고기 수입 재협상만을 의제로 내걸지 않고, 쇠고기 수입 협상에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아랑곳하지 않고 국가주권마저 내팽개친 정권의 퇴진과 대통령 탄핵 및 하야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그들은 엘리트 교육의 부활, 영어몰입 교육 등을 의미하는 교육자율화, 의료 및 공기업 민영화, 물을 위시한 공공재의 사유화, 한반도 대운하, 정권의 방송 장악 등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 문제들을 의제로 설정하고 반대구호들을 내세웠다. 이 이슈들은 7월 초에 이르러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 ‘대책회의’는 2008년 5월 6일에 1,700여 개의 시민단체, 사회단체, 동아리, 카페 등이 모여 결성하였고, 그 당시 활동하였던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의 정당들도 참여하였다. 참여단체들과 정당들은 많았지만 정작 ‘대책회의’는 주로 참여연대와 환경연합을 중심으로 꾸려졌고, 여성단체들과 한국진보연대도 이에 활발하게 참여하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을 위시한 민중의 이익을 표방하는 단체들의 참여는 저조했다.
에 의해 5+1 이슈로 정리되었는데, 이 이슈들에는 경제의 지구화 과정에 깊숙이 편입된 한국 사회에 신자유주의 체제가 구축되면서 나타난 문제들이 상당부분 반영되어 있다.
 2008년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공권력 투입이 자제되는 시기에 시위 공간을 확보하고 거기서 이명박 정권 초기에 폭발적으로 분출된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성토, 패러디와 해학, 토론과 축제를 벌이고, 소통과 연대를 경험하는 광장의 체험을 하기도 하였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명박산성’을 둘러싼 치열한 가두투쟁을 거쳐 민낯의 공권력 투입이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시점에 이르자 뿔뿔이 흩어지는 군중의 모습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2. 2008년 촛불집회의 동학

 그 이전의 촛불집회들도 그렇지만, 특히 2008년 촛불집회는 그 이전의 시위나 저항운동과는 다른 양상을 띠었다. 집회에서 제기되는 이슈의 성격, 운동 방식, 운동의 주체 등을 살펴보면 이를 뚜렷하게 알 수 있다.

 2.1. 2008년 촛불집회에서 관찰되는 저항의 군중성은 무엇보다도 먼저 광우병에 대한 공포의 편만성과 생명과 건강에 대한 관심의 보편성에 의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슈는 연령, 성별, 계층의 차이를 넘어서서 국민적 관심사 혹은 전시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광우병에 대한 공포는 루머를 타고 급속히 확산되었고, 광우병 같은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국가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절박하게 대두하였다. 촛불집회를 촉발시킨 루머의 동학에 대한 연구로는 박령주, “집합행동의 발생과 확산에 대한 시스템다이내믹스 연구: 복잡계 시스템에 내포한 임계점을 중심으로,”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보』 33/3(2016), 19ff.를 보라.
따라서 2008년의 촛불집회는, 현상적으로 보면, 광우병 공포에 대한 군중의 반응이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에 대한 군중의 요구였다. 이 때문에 2008년 촛불집회에서는 광우병의 정치경제학과 그것이 작동하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맥락보다는 광우병의 병리학적 진단과 예방의학적 처방이 부각되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정상적인 국민국가(‘민주공화국’)에 대한 요구가 고조되고,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애국주의적 배척이 주로 관찰되었던 것이다.

 2.2. 2008년 촛불집회에서 엄청난 규모의 군중이 참여한 것은 민중의 요구를 수렴하지 못하는 제도권 정치의 실패 때문이었다. 제도권 정치의 실패는 제도권 정치와 민중 운동의 분리를 전제로 해서 구축된 ‘87년 체제’에 프로그램화되어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판단은 아니다. 문민정부에서 나타난 노동자 배제 정치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에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린 신자유주의 체제는 사회양극화와 가계 파탄을 가져 왔고, 이것은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치를 통해 극복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었다. 제도권 정치에 대한 냉소와 불신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로 인해 가계의 파탄을 경험한 무수한 사람들에게 만연했다. 이명박이 ‘경제대통령’을 자처하며 경제성장을 통해 가계를 파탄에서 건져내겠다고 약속하자 다수의 시민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지만, ‘강부자’ 내각과 ‘고소영’ 인사로 상징되는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고 난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협상이 타결되자 이명박 정권에 대한 급격한 민심이반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은 이명박이 파탄난 가계를 회복하기는커녕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가정의 건강마저 파탄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고, 이에 분노했다. 2008년 6월 초에 이명박의 지지율은 10% 중반으로 곤두박질쳤다. 이명박 정권은 물론이고 제도 정치권 역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과정에서 기회의 박탈과 생활수준의 하락으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문제제기에 대응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것이 촛불집회에 연령, 성별, 계층을 막론하고 엄청난 군중이 모여든 이유였다.

 2.3.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장할 것을 전면에 내세운 2008년 촛불집회는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을 이루는 노동과 자본의 대립 구도에서 출발하는 사회운동을 초과하는 운동으로 여겨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민들의 보편적인 이익과 권리를 다룬다고 자처해 왔던 다양한 시민단체들에 의해 이끌어진 것도 아니었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1980년대의 민중운동에서는 민주화, 민중해방, 민족통일을 주도하는 운동단체들의 지도력이 저항의 전선을 형성하고 저항의 전략과 전술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1990년을 전후로 활성화된 시민사회 운동은 시장과 국가 영역 너머의 제3부문을 형성하면서 국가와 시장을 감시하고 협치를 추구하는 일종의 전문가 중심의 결사체 운동이었다. 사회주의권이 급속하게 몰락하고 신자유주의 체제가 확립되어 가는 과정에서 민중운동권의 지도력은 급격히 쇠퇴했고,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시민단체들은 군중을 이해하지 못했고, 군중을 지휘할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이 때문에 엄청난 수효의 시민단체들과 사회단체들이 ‘대책회의’에 구성하였어도, ‘대책회의’는 촛불 군중을 이끄는 지도부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2008년 촛불군중은 뚜렷한 주도단체나 전문가 그룹 없이 이슈와 사안에 따라 매우 다양한 연령, 성별, 계층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느슨하게 결속되는 특징을 보였다.

 2.4. 2008년 촛불집회에서 군중의 자발적 참여를 이끈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온라인 공론장이고, 느슨한 연대와 결속을 뒷받침한 것은 다양한 이슈와 관심을 중심으로 꾸려지는 자발적인 회원조직들이었다. 인터넷 공간에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는 토론방, 카페, 미니홈피, 블로그 등이 2008년 촛불집회를 활성화한 네트워크의 절합점들이었다. 쌍방향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인터넷과 특히 실시간 동영상 중계는 촛불집회에 모인 군중의 소통능력과 연대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쌍방향 소통은 문제가 되는 상황의 인식을 신속하고도 광범위하게 공유하게 만들었고, 바로 이와 같은 인식의 공유가 현안 문제들의 해결을 요구하는 직접적인 군중 행동을 촉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촛불집회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네트워크 군중의 현존과 그 힘을 입증하였고, 그 군중을 이끈 것은 ‘집단지성’이었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송경재는 촛불집회를 “네트워크 시민운동 모델 또는 네트워크 군중 모델”로 분석하고, 피에르 레비의 견해에 따라서 “촛불집회 과정에서 확인된 정보네트워크는 참여·개방·공유의 아키텍처를 특징으로 하는 웹 2.0에서는 더욱 중요하게 작동한다. 그것을 일반적으로 인터넷에서의 집단지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송경재, “네트워크 시대의 시민운동 연구- 2008 촛불집회를 중심으로,” 『현대정치연구』 2/1(2009), 65.
인터넷 공간을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는 정보의 선택과 전달, 전달된 정보의 해석, 해석된 정보의 수용과 확산은 가히 분자 운동을 연상시킬 정도로 정보들과 의견들을 복합적으로 연결, 절합(節合), 수렴, 확산시키면서 공론의 물줄기를 형성했기에, 이를 가리켜 네트워크 공론장의 탄생이라고 말할 만도 했다.

 2.5. 그렇다면 2008년 촛불집회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네트워크 군중은 새로운 운동 주체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네트워크 군중은 ‘민중’이나 ‘대중’이나 ‘계급’의 범주로 포착되기 어려운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오늘의 한국 인문사회과학계에서는 민중을 1980년대의 ‘민중’운동에 의해 각인된 계급동맹적 운동 주체로서의 ‘민중’ 개념으로 협소하게 보는 경향이 지배적이기에 네트워크 군중을 ‘민중’ 개념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네트워크 군중을 모래알 같은 개인들의 집합을 뜻하는 ‘대중’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었지만, 촛불군중이 네트워크 공론장을 형성하며 의견을 수렴하는 특성을 보인 데 대해서는 설득력 있는 설명이 제시되지 못했다. 박영균과 백승욱은 네트워크 군중을 ‘대중’으로 파악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이에 대해서는 박영균, “촛불의 정치경제학적 배경과 정치학적 미래,” 『진보평론』 37(2008), 51-52; 백승욱, “경계를 넘어선 연대로 나아가지 못하다 : 촛불의 낙관주의에 대한 어떤 우려,” 당대비평기획위원회 편,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 폭력과 추방의 시대, 촛불의 민주주의를 다시 묻는다』(서울 : 산책자, 2009), 49-50을 보라.
2008년 촛불집회에 모인 군중은 다양한 계층에 속한 사람들의 집합임이 분명하였기에 ‘계급’ 범주를 갖고 분석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되었다. 이러한 이론적 아포리아를 해결하기 위해 갑자기 힘을 얻은 것이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개념화한 ‘다중’으로 니트워크 군중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견해였다. 촛불집회의 주체를 ‘다중’으로 정의하려는 시도에 대한 논쟁의 계보를 잘 정리한 자료로는 이대명, “‘촛불’은 다중(Multitude, 多衆)인가? : 2008년 촛불정국의 주체 논쟁에 대한 한 관전평(觀戰評),” 『한국사회학회 사회학대회 논문집』(2009), 1031-1042를 보라. 여기서는 촛불 군중을 ‘다중’으로 해석하고자 한 조정환과 그를 비판하는 이극재, 박영균, 이택광, 백욱인, 백승욱의 견해가 다루어지고 있다.
‘다중’ 개념에서는 국민이나 시민이나 계급으로 환원될 수 없는 개개인의 특이성이 핵심을 이루고, 특이성을 갖는 개개인들의 차이가 존중되고, 그 개개인들의 상호 접속과 소통을 통해 공통감각(common sense, 공통적인 것에 대한 공동의 견해)이 형성되는 과정이 중시된다.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다중』, 조정환 외 옮김(서울: 세종서적, 2008), 135: “다중은 특이성들의 집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특이성은 그 차이가 동일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사회적 주체, 차이로 남아있는 차이를 뜻한다.” 조정환은 네그리와 하트의 말을 거의 그대로 반복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촛불봉기는 글자 그대로 잡색부대이며 생각, 욕망, 성향, 기질, 경험의 엄청난 다양성을 갖고 있다. 촛불운동이 단일한 목적과 방향을 갖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불가능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촛불들의 이 다양함과 특이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다양성과 특이함을 넘어서 서로를 이어주는 공통지반을 찾아내고 이 잡색부대가 매일매일의 촛불의 삶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연결할 수 있는 공통되기의 물질적 과정을 창출하는 것이 절실한 문제로 제기된다.” 조정환, 『미네르바의 촛불』(서울: 갈무리, 2009), 112f.  
한 마디로, 다중은 자발적인 네트워크 소통을 통해 공통적인 것을 창조하는 유니크한 행위 주체들의 집합이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네그리와 하트는 무정부주의(자율주의)의 포스트모던적 버전을 제시하기 위해 스피노자의 형이상학에 근거하여 ‘다중’ 개념을 제시했다. 그들은 국민국가들의 각축 시대를 지나 지구적 네트워크 주권이 형성되어 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현재의 국면에서 국지적인 투쟁을 할 것이 아니라 자본의 실질적 포섭으로부터 탈주하여 제국을 내파(inplosion)하는 해방 전략이 필요하다고 보고, ‘탈주’하는 유목민적 현존과 실천을 수행하는 주체들을 ‘다중’이라고 지칭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분석으로는 졸고 “‘제국’과 민중,” 『지구화 시대의 사회윤리』(서울: 한울아카데미, 2005)를 보라.

 문제는 2008년 촛불집회에서 네그리와 하트가 말하는 ‘다중’의 현존과 실천이 확인되는가이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네트워크 군중이 출현한 것은 확실하다. 그들 가운데는 시민단체들이나 사회단체들, 특히 노동조합들로 조직된 개인들도 있었지만, 조직과 전혀 무관한 개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개인적 결단에 따라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획기적으로 증가하게 만든 것은 집회에 참여하는 데 따르는 비용이 줄어들고, 경찰 폭력으로부터 해방된 집회 공간이 확보되고, 정보 네트워크와 참여 네트워크가 서로 결합되면서 위력을 발휘하였기 때문이다. 정보 네트워크가 참여 네트워크를 가동시켰고, 참여 네트워크는 정보 네트워크를 다시 활성화시켰던 것이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정보 네트워크와 참여 네트워크의 선순환 구조에 대한 실증적 분석으로는 송경재, 앞의 논문, 61ff.를 보라.
이것은 한국 사회에서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었다. 따라서 서로 분산되어 있었던 개인들이 정보 네트워크를 통해 ‘다중’을 형성한다는 견해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네트워크 군중의 외양을 보고 그들을 ‘다중’으로 규정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었다.
 2008년 촛불집회에 모인 네트워크 군중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요구하고 이명박 정권의 퇴진을 요구했다. 그들은 자유로운 국제교역을 위해 국가 주권을 내어놓은 세력이 쌓아놓은 ‘명박산성’을 무너뜨리고자 했다. 그들은 ‘명박산성’의 이쪽과 저쪽을 갈라놓는 불통과 불의의 정권을 거부하고, 국민이 주인되는 국가, 곧 민주공화국을 수립하자고 외쳤다. 네트워크 군중은 ‘명박산성’ 앞에서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불렀다. 국민주권과 국가주권의 회복이 네트워크 군중이 내건 핵심적인 슬로건이었다. 이것은 도처에서 대항제국을 세우기 위해 제국에서 탈주하는 ‘다중’의 모습일 수 없고 ‘다중’의 슬로건일 수 없다. 이득재, “촛불집회의 주체는 누구인가,” 『문화과학』 55(2008), 101-2: “촛불에 불을 붙인 미국산 쇠고기라는 의제 자체가 (대한민구구의) 국민이라는 초월적 주체를 필연적으로 요청하는 것이었고 촛불문화제에서부터 등장한 태극기, 명박산성에 대응하는 국민토성 또한 촛불들이 국민화의 기획으로부터 전혀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물론, 2008년 촛불집회에서 분출된 다양한 의견들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가 복합적으로 분화된 사회이고,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 세대, 연령, 계층, 정체성에 따라 각기 다른 요구들을 갖고 있다는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요구들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일견 무모하게 여겨졌고, 어떤 한 요구를 달성하면 다른 요구들이 저절로 충족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다. 그 때문에 차이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분위기가 촛불집회 현장에서 나타났고, 촛불집회를 확산시킨 네트워크 군중 사이에서는 개방적이고 생산적인 담론과 토론의 장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네트워크 군중은 여전히 다양한 이해관계들과 관심사들과 가치관들과 정체성들로 분열되어 있는 사람들의 집합이었지, 소통 속에서 차이를 간직하고 다수성을 생산하며 ‘공통적인 것’과 ‘공동체’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집합, 곧 ‘다중’은 아니었다. 연령과 성별과 계층과 정체성 집단의 한계를 넘어서서 군중을 네트워크로 묶을 수 있었던 것은 광우병으로 상징되는 위험사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군중의 격렬한 욕망이었다. 촛불집회가 회를 거듭하면서 의제의 확장이 일어나 매우 다양한 의제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것들은 부수적인 의제들이었고,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전혀 조율되지 않았고 조율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지구적 경제의 조건들 아래서 날로 악화되는 사회적 양극화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는 2008년 촛불집회와 정보 네트워크에서는 전혀 의제로 설정되지 않았다. 네트워크 군중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민주공화국을 네트워크 운동의 공통분모로 내세웠지만, 지구경제에서 중추적인 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양극화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를 우회하고서도 ‘공통적인 것’과 ‘공동체’를 말할 수 있을까? 네그리와 하트의 ‘다중’ 개념이 안고 있는 이론적 문제는 일단 차치하더라도, 2008년 촛불집회에서는 그들이 말하는 ‘다중’ 같은 것은 없었다.

 2.6. 2008년 촛불집회에 모인 네트워크 군중에 대한 해석에서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네트워크 군중을 지휘하거나 네트워크 군중에게 지령을 내리는 중심이 없었지만, 네트워크 군중 그 자체가 그람시적 의미의 ‘유기적 지식인’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견해이다. 이와 같은 견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집단지성’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네트워크 군중을 이끈 것은 ‘유기적 지식인’이었고, 네트워크 군중이 곧 ‘유기적 지식인’이었다고 규정한다. 본래 그람시는 대중이 ‘명료한 이론적 의식’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헤게모니적 지배에 포섭된다고 보았고, 대중이 현상을 근본적으로 변경하여 프롤레타리아 원칙에 입각하여 통합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비판적 자기의식’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비판적 자기의식’을 대중에게 전수하는 것이 ‘유기적 지식인’이고, 그것이 곧 프롤레타리아트 당이다. 그런데 2008년 촛불집회에서 이와 같은 ‘비판적 자기의식’을 형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지식인들이나 전문가 집단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의 공유를 통해 전문성과 신뢰도를 높여나간” 네트워크 군중이었다는 것이다. 박선미, “그람시의 ‘유기적 지식인’과 ‘정당’ 기능의 재해석 : 2008 촛불집회 관련 온라인 미디어 담론 분석,”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보』 26/4(2009), 83.

 이러한 견해는 2008년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네트워크 군중의 중요한 측면을 포착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매우 과장된 견해이다. ‘유기적 지식인’은 장기간에 걸친 헤게모니 투쟁에서 비판적 자기의식을 갖고서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의제들을 일관성 있는 구도 아래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2008년에 활성화된 네트워크 군중은 광우병 확산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와 같은 단일 의제를 놓고서는 정부에 맞선 대항 담론을 형성하고 헤게모니를 행사할 수 있었지만, 촛불집회의 의제가 확장되는 시기에 제출된 이명박 정권 퇴진, 의료 및 공기업 민영화, 물을 위시한 공공재의 사유화, 교육 자율화, 공영방송 사수, 한반도 대운하 반대 등 다양한 의제들에 관한 네트워크 군중의 의견들을 수렴하여 일관성 있는 구도 아래 배치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각 의제에 대한 네트워크 군중의 의견 수렴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서로 조율되지 못한 의제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집회와 시위에 참여하는 군중의 수효는 줄어들기 시작했고, 촛불집회의 동력은 급속하게 꺼지기 시작했다.

 2.7. 2008년 촛불집회에 참여한 군중은 네트워크 군중이라는 특성을 갖지만, 그들이 내세운 슬로건들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은 지구화 과정에 편입되어 있는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 체제에 의해 삶의 기회들과 권리들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있는 사람들, 곧 민중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네트워크 군중은 정보화 시대에 민중의 한 현상형태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87년 체제’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한국 사회에 자리를 잡게 하는 효과적인 권력 배치를 조성했다. 민중은 선거에 참여하여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을 선출하지만, 선거가 끝나자마자 그들은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의 외부로 배제된다. 민중이 뽑은 대표들이 그들을 대리하는 자리에 민중은 없다. 형식적 민주주의가 민중을 정치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현실, 그렇기에 자본과 시장을 민주적으로 통제하여 민중의 이익을 제도적으로 지킬 수 없는 현실, 바로 이것이 무엇보다도 먼저 지적되어야 할 민중현실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이명박 정부와 다르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점이 없지는 않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압력 아래서도 전자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외양을 애써 갖춘 데 반해, 후자는 민낯의 부르주아 독재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에 지구화의 거대한 압력 아래서 신자유주의 체제가 우리 사회에 체계적으로 도입되고 확고한 뿌리를 내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기에는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연계복지(workfare) 개념에 근거하여 사회적 안전망이 넓혀졌고 탈권위주의적인 정치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러한 조치들은 오랫동안 성장지상주의와 권위주의로 점철되어 왔던 한국 사회에서 상대적 진보성을 띤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두 정권의 개혁적 이미지에 가려진 채 재벌체제는 더욱더 강고해지고, 노동절약적이고 임금절약적인 합리화가 노동시장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고서 관철되었다. 지구적 금융자본의 지배 아래 있는 대기업 카르텔이 부품 구입이나 조립 하청 등 다양한 외주를 통하여 중소기업들을 수탈하고, 중소기업들에서는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수탈하는 체제가 자리를 잡았다. 이러한 틀에서 비정규직 노동은 급속하게 증가하고, 노동소득분배율은 극적으로 축소되었다. 한편에서는 기업 저축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적 가난이 만연했다. 관대한 통화정책 아래서 실물자산의 가치가 급속도로 상승하면서 한편에서는 부동산 졸부의 탄성이 터져 나오고, 다른 한편에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부채에 허덕이는 무주택자들의 한숨이 깊어졌다. 승자독식 체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루저들은 고립·분산되었고, 프레카리아트(precariat = precarious proletariat)는 가난과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망이 보이지 않기에 절망했다. 청소년들은 성적 경쟁의 외길로 몰린 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계속 반복해서 읊조렸지만, 성적 경쟁에서 밀린 수많은 청소년들은 철저한 무시의 대상이 되거나 학교 체제 바깥으로 일탈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묘사들은 끝없이 이어질 수 있지만, 이 몇 가지 안 되는 묘사들조차 이명박 정권 시기의 한국 사회가 아니라, 스스로 민주적이고 진보적이라고 자처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기의 한국 사회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거덜이 나다시피 한 민중은 참여정부에 등을 돌리고 747 구호를 앞세우며 기업친화적인 정부를 세우겠다는 ‘경제대통령’ 이명박을 선출했다. 그들은 이명박 정권이 자본과 시장의 독재를 위해 큰 길을 터주는 기업독재 국가를 형성하려고 한다는 것은 아직 충분히 인식되지 못했다. 그 국가가 민중을 아예 안중에 두지 않는 부르주아 독재 국가라는 점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외양을 유지하고자 했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와 다르다는 것도 아직 충분히 인식되지 못했다. 이명박 정권의 성격과 지향에 대해서는 졸고 “'경제 대통령' 신화의 해부 : 국가주도적 개발 독재로부터 국가주도적 기업 독재로,” 『시대와민중신학』 10(2008), 특히 197-202를 보라.
이명박 정권의 기업독재적 성격과 민중배제적 성격은 광우병 위험에 노출된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조치가 취해지면서 서서히, 그러나 여전히 불완전하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물론 민중은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이 지구 경제의 틀에서 축산공업과 사료공업을 지배하는 자본의 이익을 위해 민중의 생명과 건강을 희생시키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정치경제학적 논리에 따른 것임을 아직 또렷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을 엄습한 광우병 공포는 민중의 삶을 원초적으로 규정하면서도 자본이 부추기고 있는 성공주의와 소비주의의 물신적 상징질서에 가려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그 어떤 것의 징후였다. 그 징후를 앓으며 민중이 군중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정보퉁신 기술에 힘입어 네트워크 군중의 모습을 취하게 된 것이다.
 그 군중에 속한 청소년들은 교육자율화에 노출되어 학대받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민중으로 자각하지 못했지만, ‘좀비’를 자처한 그들이 민중이 아니라면 누구를 민중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의료 민영화로 인해 의료혜택으로부터 소외되거나 의료혜택을 받기 위해 더 많이 수탈당하게 될 사람들, 물, 전기, 가스, 철도, 도로 등 공공재를 사유화하는 자본이 활개 치는 세상에서 민중의 삶은 얼마나 더 피폐해지겠는가? “배를 산으로 끌고 가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논리로 추진되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통해 토건자본이 거대한 지대 수익을 챙기는 사이에 민중은 복지의 빈곤으로 인해 고통당하지 않겠는가?
 ‘87년 체제’의 민중배제적 정치질서에 힘입어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박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배제와 억압과 약탈의 대상이 된 민중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다른 세상을 전망하는 ‘유기적 지식인들’이 시민사회에서 헤게모니를 구축하고 촛불집회에 모인 군중을 지도할 수 있었다면, 군중이 제출한 의제들을 일관성 있는 구도 아래서 적절하게 배치하고 군중이 항의와 저항의 여러 국면들에서 미처 제기하지 못한 의제들, 이를테면 사회적 양극화 해소와 비정규직 문제 해결 같은 의제들을 확장적으로 제출할 수 있었을 것이고, 신자유주의 체제를 해체하고 철거하는 본격적인 투쟁을 조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2008년 촛불집회 이전에도, 그리고 촛불집회 과정에서도 그러한 지도력은 충분히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대책회의’가 있기는 하였지만, 대책회의의 헤게모니는 민중적 이해관계보다는 시민적 이해관계라고 일컬어지는 것에 방점을 찍고 있는 세력들에게 있었다. 그들은 수십 만 명의 군중이 법을 준수하면서 비폭력 평화 시위를 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데 최대한의 관심을 기울였고, 촛불문화제와 광장의 축제가 새로운 시위 문화의 전형으로 자리를 잡게 하는 데 큰 관심을 가졌다. 박석삼은 이를 두고 ‘촛불과 대책회의의 불행한 만남’이었다고 말하고, ‘대책회의’가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대중의 운동을 정책반대투쟁에 묶어놓고 존법주의(尊法主義)와 비폭력 평화시위의 질곡에 가두어 두었다고 맹렬하게 비난한다. 이에 대해서는 박석삼, 앞의 책, 71ff., 76ff.를 보라.
그러나 수십 만 명의 군중이 모였는데도 정권을 타도하지 못하고 현상을 근본적으로 변경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이러한 실패를 어떻게 설명하여야 하는가?
 네트워크 군중에 중심이 없었고, 지도부가 없었다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어야 하지, 언제나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촛불집회에 모인 사람들의 자발성은 중시되어야 하지만, 자본의 포섭과 시장의 독재, 그리고 부르주아 독재를 무너뜨려야 비로소 민중의 해방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들은 군중을 일관성 있게 교육하고 민중 투쟁을 조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

3. 2008년 촛불집회의 종언

 아직 촛불이 꺼지기도 전인 7월 30일에 공정택이 서울시 교육감으로 선출된 것은 충격적인 사태였다. 서울특별시 주민들의 투표참여율은 15.4%에 불과했고, 강남 3구 주민들의 극성스러운 계급투표가 진보진영 후보를 누르고 보수적인 후보가 당선되는 데 기여했다. 촛불집회에 모인 군중이 신자유주의적 교육에 항의하는 목소리를 높였지만, 신자유주의 교육 체제는 견고하게 유지되었고, 그것은 촛불집회가 신자유주의 체제를 허물어뜨리기는커녕 그 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역량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시사했다.
 마침내 2008년 8월 15일에 열린 일백 번째 촛불집회는 경찰에 의해 가혹하게 진압되었다. 시위는 문자 그대로 원천 봉쇄되었고, 경찰 저지선을 뚫고 거리에 나섰다가 물대포에 맞아 푸른 물감이 묻은 사람들은 연행되었으며, 시위 주동자로 몰린 여러 사람들은 구속되거나 수배되었다. 촛불집회가 사그라지면서 촛불 군중이 한사코 반대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한반도 대운하, 물, 수도, 전기 등 망산업(網産業)을 위시한 공기업 민영화, 공영방송 지배 등등이 국민을 현혹하는 수사를 동원하며 다시금 거침없이 추진되었다. 무엇보다도 이명박 정권은 무제약적인 쌍방향 소통을 통해 네트워크 공론장을 형성하는 과정을 분쇄하기 위해서 정보와 의견의 흐름에 사전 검열 제도를 설치하고 ‘불법’ 정보 전달과 확산을 처벌하는 장치를 마련하여 정보 생산자와 소비자가 내적 검열을 정상적인 질서로 받아들이도록 시도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이명박 정권은 정보의 흐름을 왜곡하고 파편화하면서 보수 기득권 세력의 견해를 보수 언론과 방송, 인터넷 포털 등을 통하여 확산시켜 보수적 헤게모니를 강화하고자 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종합편성채널을 보수 언론사들에게 넘겨준 것은 그러한 헤게모니 전략의 일환이었다.
 촛불집회가 종언을 고하며 오프라인의 군중이 뿔뿔이 흩어지자 온라인상의 군중도 활력을 잃었다. 지배 세력의 정보 통제와 헤게모니 강화에 대항하여 활동하는 저항세력은 더 이상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 쇠고기 전면 수입을 둘러싼 논란처럼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슈들에 대해 즉각적이고 자발적인 의견과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시켜 공론을 형성하고 시위를 벌이는 것만 갖고서는 지배 세력의 헤게모니를 분쇄하기 어렵다는 것이 차츰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그 이슈들의 배후를 이루는 체제와 그 체제를 운영하는 세력의 헤게모니 전략에 대한 분석은 까다로웠고, 특유의 감성과 경쾌함을 자랑하는 디지털 민주주의 세력은 헤게모니 투쟁의 지루함을 견디기 어려웠다. 지배 세력은 신자유주의적 신념을 정교하고 세련된 언어로 확산시키고, 성공주의와 소비주의에 대중의 욕망을 속절없이 묶어 넣는 마법을 발휘하여, 지구화된 경제의 조건들 아래서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했다. 이에 맞서는 투쟁이 이슈 중심의 단기적인 투쟁일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했다.
 3개월 동안 지속되었던 2008년 촛불집회에서 민중의 여망은 좌절되었다. 촛불집회가 ‘시민들’의 직접 민주주의와 토의 민주주의 역량을 보여주었다는 평가가 있고, 그러한 평가가 의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민중의 관점에서 볼 때 현상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민중정치의 가능성 조건들을 창출하는 것은 여전히 절박한 과제로 남았다. ‘87년 체제’의 틀에서 사회운동을 압도할 정도로 시민운동의 헤게모니가 강화되었지만, 시민의 보편적인 이익과 권리를 앞세워 민중적 이해관계의 추구를 부차화하거나 계급적 이기주의로 낙인찍고, 시민사회 중심의 협치를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민중의 이해관계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 2008년 촛불집회가 남긴 귀중한 교훈이다. 이에 대해 권정기는 “그동안 10여 년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하에서 노동운동 진영을 혼란스럽게 하던 개량에 대한 환상, 의회주의에 대한 환상, 국가기구에 대한 환상은 파시즘의 공세에 의해 점차 힘을 잃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이명박 정권이 주도하는 “반동의 어둠이 깊어지자마자 벌써 노동운동의 정치부위에 대한 침탈이 진행되었다.”고 지적한다. 권정기, “꺼져가는 ‘촛불,’ 그리고 파시즘,” 『정세와노동』 38(2008), 18.
민중의 이해관계들과 권리들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민중배제적인 ‘87년 체제’가 반드시 해체되어야 하고, 민중의 참여와 대표권이 보장되는 새로운 헌정질서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것은 지구화의 맥락에서 우리 사회에 구축된 신자유주의 체제를 일관성 있는 구도 아래서 해체시키는 민중의 운동에 의해 달성될 것이다. 그렇기에 2008년 촛불집회가 종언을 고한 시점에서 민중운동을 이끌어가는 ‘유기적 지식인들’의 지도력을 구축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인식되었다.

III. 2016-2017년 촛불집회

1. 2016-2017년 촛불집회의 촉발과 전개

 2016-2017년 촛불집회는 박근혜 정권의 적폐에 대한 민중의 불만과 저항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촉발되어 폭발적으로 분출한 사건이다. 멀리서 이 거대한 군중운동을 관찰하는 사람들은 촛불집회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인해 헌정질서가 문란해진 데 대해 “이게 나라냐!”를 외치며 공화국 시민들이 나서서 헌정질서를 회복하려는 비폭력 평화 시위로 여겨지겠지만, 2016-2017년 촛불집회는 그렇게 단순한 사태가 아니다. 2016-2017년 촛불집회는 2015년 11월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민중적 의제들을 내세우며 지난 2월 7일까지 일곱 차례나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들을 도외시하고서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2016-2017년 촛불집회의 도화선이 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멀리는 2016년 봄에 일어난 이화여대 사태에서 그 단서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7월 초에 조선일보가 나서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설립과 운영을 둘러싼 의혹을 폭로하면서 정경유착의 추악한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10월 24일에 JTBC가 최순실 ‘태블릿 PC’ 자료들을 공개하면서 마침내 그 실체가 ‘국정농단’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헌정문란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그 다음날 박근혜가 변명과 거짓말로 점철된 제1차 담화를 발표하자 더욱더 분노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근혜 정권의 국정문란에 대항하는 제1차 촛불집회를 연 것은 민중총궐기 투쟁본부였다. 투쟁본부는 10월 29일 제1차 촛불집회로 알려진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1차 범국민행동’을 개최하고 광화문 광장에 시위 공간을 확보한 뒤에 11월 12일 민중총궐기 대회가 개최될 때까지 매일 촛불을 켜겠다고 선언했다. 11월 2일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를 위시하여 전국의 1천개 시민사회단체(연명), 나라를 걱정하고 박근혜 정권에 분노하는 시민들의 모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즈음한 전국 비상시국회의 참가자 일동의 이름으로 발표한 시국선언은 11월 5일 백남기 농민의 영결식과 더불어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을 소집하였고 11월 12일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11월 9일에는 민중총궐기투쟁본부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 1,500여개의 시민단체들과 사회단체들이 참여하는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이 결성되었고, 그 이후 ‘퇴진행동’은 최근의 열아홉째 촛불집회까지 이끌어 왔다.
 2016-2017년 촛불집회는 크게 세 국면을 거쳐 왔다. 첫째는 10월 29일 제1차 촛불집회로부터 11월 5일 제2차 촛불집회에 이르기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사임할 것을 촉구하는 하야론의 국면이고, 둘째는 11월 12일 제3차 촛불집회로부터 11월 19일 제4차 촛불집회에 이르기까지 하야를 거부하는 박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릴 것을 주장하는 퇴진론의 국면이고, 셋째는 11월 26일 제5차 촛불집회에서 헌법적 절차에 따른 대통령 탄핵을 요구한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탄핵 국면이다.
 촛불집회의 거대한 압력 아래서 11월 17일 국회는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하였고, 12월 9일에는 박근혜 대통령 대한 탄핵소추안을 압도적 다수인 234표(총 투표의 78%)로 가결하였다. 같은 날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었고, 지난 2월 27일까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리가 진행되었고, 이제는 탄핵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임박했다.

2. 2016-2017년 촛불집회의 동학

 2016-2017년 촛불집회는 그 규모와 지속기간을 놓고 보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이미 11월 12일 제3차 촛불집회에서 100만 명 이상이 모이더니, 탄핵안 발의를 앞두고 있었던 12월 3일 제6차 촛불집회에서는 190만 명 이상이 운집했다. 12월 31일 촛불집회까지 촛불집회에 참여한 연인원은 1천만 명을 넘어섰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촛불집회가 열릴 때마다 수십만 명의 군중이 모이고 있다. 이러한 대규모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누구이고, 그 집회를 움직이는 동학은 무엇인가?

 2.1. 2016-2017년 ‘촛불집회’에 모인 군중 가운데에는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나 다양한 시민단체들과 사회단체들의 의해 조직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군중의 작은 일부분을 차지했을 뿐, 군중의 대다수는 자발적으로 참여한 개인들이었다. 이 점에서 2016-2017년의 촛불 군중은 2008년의 촛불 군중과 큰 차이가 없었다. 2008년의 촛불 군중이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이 불러일으킨 광우병 루머와 공포, 그리고 검역 주권을 포기한 정권에 대한 분노로 삽시간에 엄청난 규모로 모여들었듯이, 2016-2017년 촛불 군중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과 이를 둘러싼 루머에 경악하고 분노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광화문 광장을 확보하고 촛불을 켜자 그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하여 거대한 촛불집회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촛불집회를 퍼포먼스로 기획하고 전개한 구심체가 있었지만, 그 구심체가 거대한 군중집회를 동원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연발생적으로 모였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할 만큼 남녀노소의 구별 없이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여러 계층에 속하고 각기 다른 정체성을 드러내는 갖가지 처지의 사람들 비록 그 사람들이 계층, 성별, 연령, 심지어 지역의 차이를 넘어선 혼성적 구성이라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연령 지표에 관해서는 조금 더 신중한 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 2016년 12월 말부터 촛불집회에 맞서서 대규모로 벌어지고 있는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 가운데 주로 고령으로 인한 소외와 가난, 전쟁 트라우마와 안보 강박을 겪고 있는 60대 이상의 연령층이 많이 관찰되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 사이에는 연령 장벽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촛불집회에도 60대 이상의 연령층이 많이 참여하기에 연령이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를 가르는 기준일 수는 없다. ‘태극기 시위’를 관찰할 때에는 연령 변수뿐만 아니라 동원 체계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태극기 시위’에는 관변 극우 단체들, 제대군인들과 향우회원들을 필두로 한 우리 사회 저변의 잘 조직된 극우세력들, 박사모 조직들, 극우 개신교 교회들과 기구들, 그밖의 극우 종교 단체들이 조직적으로 동원한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이 군중을 이루어 이미 익숙해진 촛불집회를 수행하고, 박근혜 하야를 저절로 외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현상적으로 보면, 촛불집회에서는 군중의 자발성이 두드러지는 것처럼 보인다.

 2.2. 그러나 2016-2017년의 촛불 군중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하여 자발적으로 모여 들었다고 말하기만 해서는 촛불집회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국정농단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박근혜 정권에서 쌓인 적폐들과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전면적인 삶의 파탄을 겪은 수많은 사람들이 군중을 이루어 적폐청산을 외쳤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박근혜 정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대통령이 정당정치와 입법 권력을 초월하고 그것을 무력화하는 위치에 스스로를 배치한 데서 비롯되는 파시스트적 통치였다. 신진욱은 박근혜 정권의 병폐가 ‘결손 민주주의’의 전형적인 발현이라고 다소 온건하게 진단한다. 박근혜 정권의 병폐는 “첫째 민주적 통제를 결여한 고도집중적 권력구조라는 제도적 특성, 둘째 국가기구와 제도정치 내에 권위주의 세력의 잔존이라는 역사적 현실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산물이다. 거기에 셋째 요인을 추가한다면 그와 같은 민주적 결손을 예방하거나 교정할 수 있는 조직된 시민사회가 두텁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신진욱, “한국에서 결손민주주의의 심화와 ‘촛불’의 시민정치,” 『시민과세계』 29(2016), 17.
진보정당 해체, 대테러방지법 제정, 역사교과서 국정화, 전격적인 사드 배치 결정 등등이 그 증거이다. 이 파시스트 정권에서 가장 악질적인 형태로 나타난 적폐들은 청와대-새누리당-국정원-정치검찰-재벌-보수언론-사법부-군대-정부부처 등이 카르텔을 형성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의 기금 모금 사례에서 나타난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유착과 부패 카르텔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거니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의 국가기구는 공공성을 잃고 특정세력들의 특수한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였다. 세월호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야 할 국가는 없었고, 무고한 희생자들의 죽음과 그 처참한 죽음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는 국가도 없었다. 약탈적인 금융지배체제와 재벌체제,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검찰, 기득권 세력의 ‘유기적 지식인’ 역할에 충실한 보수언론, 노동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착취와 탄압 등등은 기나 긴 적폐 목록의 일부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가뜩이나 황폐화된 민중의 삶은 박근혜 정권 시기에 이르러 더 비참해졌다. 그것은, 2009년 지구경제를 뒤흔들었던 금융공황 이래로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는데도, 자본의 저축을 늘리고 노동의 소비를 줄이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운영의 틀이 강고하게 유지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였다. 가계 부채는 2007년 600조 원에서 2017년 1,300조 원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좋은 일자리’가 빠르게 줄어들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해고가 손쉬워지고, 프레카리아트와 미취업자들과 실업자들이 늘어났다. ‘3포 세대,’ ‘5포 세대,’ ‘7포 세대’라는 말이 회자되고, ‘헬 조선,’ ‘금수저-흙수저,’ ‘개돼지 같은 민중’ 등등의 용어들과 어구들이 널리 퍼졌다. ‘혼밥’과 ‘혼술’이 새로운 생활 패턴으로 자리를 잡았고, 그것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고립되고 분산된 개개인들이 극심한 불안과 불안정 상태에 처해 있음을 가리킨다.
 이러한 박근혜 정권의 적폐들과 신자유주의 체제가 가져 온 파국적인 현실을 파악하고 적폐청산과 현상의 변경을 명료한 언어로 표현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노동자들이었다. 민주노총이 주축이 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2015년 11월에 벌인 제1차 총궐기에서 노동개혁, 재벌의 책임, 농민 문제 해결, 빈곤대책, 사회공공성 등에 관한 12개 요구안 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내건 12개 요구안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일자리노동 : 쉬운 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중단,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모든 서민의 사회안전망 강화; 2. 재벌책임강화 :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 상시지속업무 정규직 전환 등 재벌 사용자 책임, 3. 농업 : 밥쌀 수입 저지, TPP 반대, 쌀 및 농산물 적정 가격 보장; 4. 민생빈곤 : 노점 단속 중단, 순환식 개발 시행,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5. 민주주의 : 공안탄압 중지, 국가보안법 폐지, 국가정보원 해체, 양심수 석방, 역사왜곡 중단, 역사교과서 국정화 계획 폐기; 6. 인권 : 차별금지법 제정, 여성, 남성,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 차별 및 혐오 중단, 국가인권위 독립성 확보, 정부 및 지자체 반인권행보 중단; 7. 자주평화 : 대북 적대정책 폐기, 남북관계 개선, 5.24조치 해제, 민간교류보장, 한반도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반대, 한미일 삼각군사동맹 중단, 일본의 군국주의 무장화 반대; 8. 청년학생 : 청년 좋은 일자리 창출 요구, 대학구조조정 반대; 9. 세월호 : 세월호 온전한 인양,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안전사회건설; 10. 생태환경 : 국립공원 케이블카 건설 계획 폐기, 신규원전 건설 저지, 노후원전 폐기; 11. 사회공공성 : 의료, 철도, 가스, 물 민영화 중단, 제주 영리병원 추진 중단, 공공의료 확충; 12.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화 재협상 추진 : 소녀상 철거 저지, 일본 정부의 군 위안부 강제연행 책임인정과 공식사과, 법적 배상 등.
을 제시하였고, 2016년 11월 12일 제6차 총궐기에서 이들 12개 요구안에 박근혜 퇴진 요구를 열셋째 항목으로 덧붙였다.
 따라서 2016-2017년 촛불집회에 모여든 군중은 겉으로 보기에는 국정농단에 분노하는 군중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신자유주의 체제와 파시스트 정권의 결합에서 비롯된 적폐들과 민생파탄에 저항하는 민중이다. 민중은 2016-2017년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축출을 통해 파시스트 정권을 해체하고, 착취와 억압, 배제와 차별을 정상화한 신자유주의 체제를 넘어서서 더 민주적이고 더 평등하고 더 공정한 사회를 세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08년 촛불집회와 달리 2016-2017년 촛불집회에서 ‘깃발들’이 펄럭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2.3. 2008년 촛불 군중이 네트워크 군중이었다면, 2016-2017년 촛불 군중은 도리어 공중파 대중 매체들과 인터넷 신문 매체들이 전달해 주는 국정농단 정보들과 실시간 집회 중계에 힘입어 활성화된 측면이 더 컸다. 조선, 동아, 중앙, 매일경제 등이 운영하는 종편들이 앞장서서 국정농단의 세세 콜콜한 정보들과 첩보들, 심지어 루머마저도 여과 없이 선정적으로 전했고, 대중의 분노를 자극했다. 사이버 공간을 가로지르는 제도권 언론 보도가 2008년 촛불 군중에게서 나타났던 쌍방향 정보 네트워크를 통한 군중 토론을 대체하는 효과를 나타낸 것이다. 지배블록의 한 축이라고 여겨져 왔던 보수언론은 왜 지배블록의 중핵을 공격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2016-2017년 촛불집회의 전개과정에 미치는 효과는 무엇일까?
 조선일보를 위시한 보수 매체들이 박근혜를 정조준하여 공격하였다는 것은 지배블록 내부에 균열이 발생하였고, 권력을 새롭게 배분하기 위한 투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의 근원은 박근혜가 지배블록 안에서 초월적 지위를 주장하고 절대성 요구를 앞세운 데 있다. 박근혜의 절대군주적 지배 방식 아래서 언론이나 재벌처럼 대통령과 동일한 반열에 있거나 대통령 직책을 도구적으로 활용할 권한을 마땅히 가져야 한다고 여겨왔던 지배 블록 분파들의 이익과 권력은 손상받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괴물들의 중용과 집권당 내부의 ‘진박’ 소동, 개성공단 폐쇄, 위안부 문제 합의, 사드 배치, 조선산업과 해운산업 구조조정 등과 같은 뜬금없는 정책 결정 등등은 오랫동안 지배 블록에서 통용되었던 조정과 타협이라는 게임 규칙이 깨졌다는 것을 뜻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읊조렸듯이, 한국 사회에서 권력의 중심이 재벌로 넘어갔는데도, 대통령은 재벌을 자의적 지배 대상쯤으로 여겼다. 보수언론을 헤게모니 유지와 강화를 위한 최고의 파트너로 삼는 것이 관례였는데, 대통령은 청와대 실세라인의 심기를 거스르는 사소한 일로 눈 밖에 난 보수언론을 압박하고 공격할 정도로 무모했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자 박근혜의 거세가 지배 블록을 구성하는 분파들의 이익과 권력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전제조건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서는 김해인, “2016-17 촛불의 교훈 : 중간 평가와 향후 과제,” 『정세와노동』 129(2017), 39f.를 보라.
이 점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TV조선에 의해 폭로되기 시작하고, 박근혜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최순실의 ‘태블릿 PC’ 자료들이 JTBC에 의해 공개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렇게 해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만천하에 폭로되자 이에 분노한 군중이 촛불을 밝히고 광장에 모여들었다. 박근혜에 대한 군중의 항의와 저항은 기득권 세력에게는 양날의 칼이었다. 군중의 힘을 빌려 박근혜를 거세할 수 있다면, 그것은 기득권 세력에게 비교적 유리한 조건 아래서 권력을 새롭게 배분하는 기회가 되겠지만, 거대한 군중이 모여 촛불집회가 막 시작될 때, 집권여당이 박근혜에게 이선으로 후퇴한 뒤에 적절한 시기에 모양을 갖추어 하야를 하겠다고 선언하라고 제안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군중의 힘은 기득권 세력의 존립을 위협할 수도 있다. 제2차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군중의 수효가 공권력의 통제 범위를 훨씬 넘어서자 지배블록은 그 군중을 관리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11월 12일 제3차 촛불집회에서 군중이 1백만 명 규모로 늘어나고 박근혜 자진하야 구호가 박근혜 강제퇴진 구호로 바뀌자 지배블록은 정교한 헤게모니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헤게모니 전략은 두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하나는 군중의 저항을 헌정질서의 틀 안에 가두어 두는 것이었다. 11월 12일 1백만 명 시위가 끝난 바로 다음날 집권여당의 전 대표 김무성은 ‘국정농단’의 몸통으로 지목받는 박근혜 대통령의 거취에 관련해 “대통령은 국민의 이름으로 탄핵의 길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야당들에게 헌법의 틀에서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압박을 가했다. 김무성, “박 대통령, 탄핵의 길로 가야,” 인터넷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70069.html#csidxfe165da118bd807bcc55336d920bd84
그는 군중의 저항을 탄핵의 헌정질서 안에 배치할 경우에만 ‘87년 체제’의 기득권 정치 분파들이 권력을 유지하고 그 권력을 새롭게 배분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했다.
 또 다른 하나는 군중의 저항을 비폭력 평화 시위의 틀에 묶어두는 것이었다. 제도언론은 해외 언론 보도까지 인용하면서 1백만 명 이상 운집한 군중이 폭력사태 없이 질서정연하게 촛불집회를 마친 것은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일이라고 극찬했다. 분단된 반공국가에서 지배질서를 폭력으로 붕괴시키는 것을 금기시하도록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에 의해 훈련받고 세뇌당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비폭력 평화 시위는 일종의 강박적 행위이기도 했다. 엄청난 규모의 군중이 폭력을 행사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군중 자신도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촛불집회를 주관하는 ‘퇴진행동’도 법과 질서의 틀 안에 군중의 저항을 가두어 두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다. 공권력이 군중을 공격하지 않고 구획 안에 가두어 두자 그곳에서는 일종의 해방구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고 촛불집회의 장엄한 퍼포먼스가 연출되기까지 했다. 고립과 분산과 불안이 강제되는 현실로부터 일시적으로 벗어나 협동과 연대와 소통의 축제를 즐기고, 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며 해방감을 느끼는 군중 이 군중에 대해서는 배성인의 날카롭지만, 따뜻한 배려로 가득 찬 진단을 참조할 만하다. “광장에는 모든 이들의 우애와 연대, 배려와 협동이 있다. 누구를 막론하고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고, 존중받고, 소통하는 열린 공간이다. 광장은 정치적 주체의 장이고 치유의 공간이며, 따뜻한 공동체였다. 하지만 광장을 떠나면 우리는 다시 고립된 개인으로 돌아간다. 광장 안의 우의, 연대, 배려, 협동은 광장 밖의 경쟁과 이기심 그리고 차별과 배제로 대체된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광장 안과 밖이 동일하게 자유롭고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다.” 배성인, “촛불항쟁과 박근혜퇴진의 정치사회학,” 『진보평론』 70(2016), 33.
이 폭력을 강박적으로 기피한다는 것을 지배블록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법원이 나서서 청와대 인접 지역까지 개방하여 촛불 군중이 시위를 벌이도록 허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2016-2017년 촛불집회는 잘 관리된 퍼포먼스라고 볼 수도 있다.
 박근혜가 자진 하야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촛불 군중이 그를 권좌에서 강제로 끌어내리지도 못하는 교착 상황은 11월 말에 탄핵론이 대두되면서 끝났다. 광장에 모인 촛불 군중은 박근혜 탄핵을 외쳤고, 국회는 군중의 요구를 얼른 받아들여 12월 9일 박근혜 탄핵을 가결했다. 이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촛불 군중이 지배블록이 쳐놓은 거대한 그물 안에 포획된 형국이다. 이제 촛불 군중은 국정농단과 적폐로 가득 찬 기존 체제를 철거하는 정치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잃고, 국회의 탄핵소추가 관철되도록 헌법재판소에 압력을 가하는 위치에 배치 되었다. 민중의 운동을 법의 틀 안으로 밀어 넣는 탄핵 국면이 헌법재판소에 압력을 가해서 탄핵을 기각시키려는 극우 세력이 준동하여 기괴한 ‘태극기 집회’가 활성화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국회는 촛불 군중의 두 가지 요구, 곧 박근혜 탄핵의 요구와 적폐청산의 요구 가운데 오직 탄핵 요구만을 받아들였을 뿐, 박근혜 정권 기간에 집중적으로 노출된 적폐들의 청산까지 떠맡지는 않았다. 특검법에 따라 특검이 국정농단의 실체를 규명하고 정경유착의 추악한 모습을 파헤치고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시키는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러한 사법적 처리는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한 국정농단과 정경유착, 그리고 그 둘의 매개고리인 재벌체제를 제도적으로 청산하는 것은 아니다. 민중의 삶을 파탄 내는 적폐들의 청산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해결되지 않은 채 여전히 민중의 몫으로 남겨졌다.
 만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이 인용된다면, 헌법이 정한 바에 따라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가 치루어져야 하는데, 그 선거는 ‘87년 체제’의 틀에서 제도권 정치의 기득권 분파들 사이에서 권력을 새로 나누는 게임이 될 것이다. 탄핵 인용은 대통령 선거를 몇 개월 앞당기는 효과를 발휘하겠지만, 민중의 입장에서는 그 효과가 별로 클 것 같지는 않다. 물론 파시스트 독재를 부르주아 민주주의 질서로 되돌리기만 해도 일단 큰 성과일 수는 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경험한 민중은 ‘87년 체제’의 제도권 정치에서 그 어떤 정치 분파가 대통령 권력을 차지한다 할지라도 민중을 수탈하고 억압하고 배제하고 차별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문제를 해결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송영표는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결국 지금의 사태가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권력을 공유하는 방법을 수정하는 개헌으로 수렴된다면 촛불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처음으로 되돌아가고 말 것이다.” 서영표, “상품화된 일상과 붕괴된 연대, 하지만 희망을 ‘상상’해야 한다,” 『내일을 여는 역사』 65(2016), 98f.


 2.4. 2016-2017년의 촛불집회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퇴진행동’의 지도력이다. 2008년의 촛불집회가 뚜렷한 구심점 없이 네트워크 군중의 회집과 분산의 모습을 보였다면, 2016-2017년의 촛불집회는 ‘퇴진행동’에 의해 기획되고 연출되고 있다. ‘퇴진행동’은 지도부가 없는 2008년의 촛불 군중이 아무런 전리품도 얻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진 경험에서 많은 교훈을 얻은 시민·사회단체들의 협의체이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의 역할을 계승하여 2016년 10월 29일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4개월 동안 촛불집회를 이끌어 온 ‘퇴진행동’은 박근혜를 정점으로 한 파시스트 체제의 국정농단을 심판하고 파시스트 독재와 신자유주의 체제의 결합에서 비롯된 적폐를 청산하는 것을 전략적 과제로 설정하고, 이것은 11월 9일 ‘퇴진행동’을 구성하면서 발표한 성명의 구호들에서 명료하게 드러난다. 박근혜 정권을 몰아내는 일과 적폐를 청산하는 일은 전략적으로 맞물려 있다. 그 구호들은 다음과 같다.
   - 박근혜를 몰아내고, 세월호의 진실을 인양하자!
   - 박근혜를 몰아내고, 백남기 농민에 가해진 국가폭력의 책임자를 처벌하자!
   - 박근혜를 몰아내고, 친재벌 반민중 노동개악, 공공부문 성과퇴출제를 막아내자!
   - 박근혜를 몰아내고, 사드 배치와 위안부야합, 한일군사정보협정 분쇄하자!
   - 박근혜를 몰아내고, 전쟁위기 막아내고, 대화와 협력으로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자!
   - 박근혜를 몰아내고, 친일독재미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막아내자!
   - 박근혜를 몰아내고, 지진지역 원전 가동을 멈추고,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해결하자!
   - 박근혜를 몰아내고, 개방농정, 살농정책을 농업 살리기 정책으로 전환하자!
   - 박근혜를 몰아내고, 노점탄압, 정책,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중지시키자!
   - 박근혜를 몰아내고,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하라!
   - 박근혜 정권 몰아내고, 중소상인 살려내라!
   - 박근혜 정권 몰아내고, 물 전기 가스 교육 의료 민영화, 기업규제완화 저지하자!
   - 박근혜 정권을 몰아내고, 민주, 민생 평화가 숨쉬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자!
그때그때의 국면을 전술적으로 운영하는 역량을 발휘했다. 촛불집회는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대다수를 이루는 군중 운동이었지만, 그 군중이 그때그때 조성된 국면에서 호흡을 맞추며 ‘퇴진행동’이 가다듬은 구호들을 함께 외친 것은 ‘퇴진행동’의 지도력이 촛불 군중 사이에서 인정되고 존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2016-2017년의 촛불집회는 2008년의 촛불집회처럼 네트워크 군중의 오프라인 집회가 아니고, 자발적으로 모여든 미조직 군중이 시민·사회단체들의 협의체인 ‘퇴진행동’의 조율된 지휘를 받아들이며 엄청난 규모의 퍼포먼스를 벌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퇴진행동’은 일관성 있는 지도력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퇴진행동’을 구성하는 사회단체들과 시민단체들은 전략적 목표 설정과 전술적 국면 운영을 놓고 지도부 내부에서 치열한 헤게모니 경쟁을 벌였다. ‘퇴진행동’의 한 축을 이루는 민중총궐기 투쟁본부와 사회단체들의 헤게모니는 촛불집회를 성사시키고 확산시키는 초기 국면에서 강력하게 관철되었지만, 박근혜 퇴진과 적폐청산을 압박하기 위한 2016년 11월 30일의 총파업 투쟁에 불과 23만 명의 노동자들이 참가하고, 광화문 집회에 주최측 추산 6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데 그쳐 판을 흔들지 못하자 뚜렷하게 약화되기 시작했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이날의 총파업에는 22만 명이 참가했고, 집회에는 주최측 추산 6만 명이 참가했다.
12월 3일 제6차 촛불집회에 190만 명의 군중이 모여 박근혜 탄핵을 외친 것은 ‘퇴진운동’의 헤게모니가 시민단체들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근혜 퇴진이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는 탄핵 국면이 조성되자 ‘퇴진행동’의 민중 분파들은 12월 17일 제8차 촛불집회부터 적폐청산을 전면에 다시 부각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민중 분파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퇴진행동’의 지도부는 12월 22일 시급한 적폐청산 과제들의 목록을 작성하기 위해 토론회를 조직했다. 토론 끝에 작성된 목록에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세월호 인양,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살인 특검 도입,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언론 장악과 방송법 개정, 성과퇴출제 저지, 사드배치 중단 등 여섯 가지 항목이 들어갔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2016년 11월 12일까지 내걸었던 적폐청산 과제들의 목록과 비교해 보면, 이 목록은 ‘퇴진행동’의 민중분파들이 보기에는 지극히 빈곤했다. 박근혜의 파스시트 독재와 결합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더욱 더 악화된 사회적 양극화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전혀 반영되어 있지도 않았다. 목록에 들어간 성과퇴출제 저지는 그 사안이 중대하기는 하지만 그나마 ‘좋은’ 일자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민중의 삶을 파탄으로 내모는 파시스트 독재체제의 문제는 전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안ㅎ았다. 이 점에서 이 목록은 ‘퇴진행동’에서 시민단체들의 헤게모니가 사회단체들을 무력화시킬 정도로 강력하게 관철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나마 여섯 가지로 축소된 적폐청산 요구조차 촛불 군중이 탄핵 심판의 그물 안에 포획된 뒤에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가 서로 맞서는 지루한 탄핵 재판 국면에서는 더 이상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배성인은 12월 10일의 제7차 촛불집회를 보고 민중 분파들이 그들의 요구를 일관성 있게 관철시키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감동적으로 묘사했지만, 나는 민중 분파들의 헤게모니에 대한 평가가 과도하다고 본다. “지난 12월 10일 7차 범국민대회에서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간만에 감동이었다. 그것은 1980년 서울의 봄, 1987년 6월 항쟁 그리고 2008년 촛불투쟁의 시행착오를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비장감과 엄숙함 때문이었다. (...) 그런 의미에서 12월 10일의 이전과 이후의 촛불은 그 성격이 다르다. 이전의 촛불은 이른바 촛불로 호명되는 시민들에 의해서 주도되고 노동조합을 비롯한 운동진영은 뒤에서 쫒아가거나 등에 업혀가는 형국이었다면, 이후부터의 촛불은 운동진영이 선도에서 진보적 의제를 확장하고 주도하는 집회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또한 제도권 정당의 일부 지지자들이 빠지면서 사회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진성촛불’이 주체가 된 집회였다.”(배성인, 앞의 글, 27-28)


 촛불집회를 이끌어간 ‘퇴진행동’이 비폭력 평화 시위 노선을 버리고 엄청난 규모로 운집한 군중의 힘을 앞세워 공권력이 설정한 집회 공간을 넘어서서 박근혜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직접적인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 이미 그러한 국면이 지나갔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은 기차가 지나간 뒤에 손들기 같은 부질없는 짓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책임 있는 답변은 일관성 있는 구도를 갖고서 파시스트 독재와 신자유주의 체제가 결합된 한국 사회를 변혁하고자 하는 운동 지도부가 군중을 지휘할 수 있을 경우에만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운동 지도부는 기나긴 헤게모니 투쟁 시기에는 시민사회 안에 참호를 파 놓고 시민사회의 변혁 역량을 형성하여야 하고, 정세가 급격하게 변화되는 시기에는 군중을 조직하고 책임 있게 이끌어가는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2016-2017년의 촛불집회는 한국 사회에 그러한 운동 지도부가 아직 확실한 꼴을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의 제1차 총궐기 선언문에 설정된 과제들의 목록은 평면에 과제들을 나열하고 있을 뿐, 거기에는 과제들의 다이어그램도 없고, 과제들의 우선순위와 상호관계에 관한 일관성 있는 구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도 못했다. 그렇게 해서는 민중 분파들의 헤게모니를 시민 분파들에게 관철하기 어려울 것이고, 민중적 관점에서 일관성 있게 거대한 군중의 집회를 이끌어가기 힘들 것이다.  
 
 3. 2008년의 경험을 반추하는 2016-2017년은 2008년으로부터 연대기적 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2016-2017년은 한국 민중운동의 역사에서 카이로스적 전환을 보여주고 있는 역사적 시공간이다. 현상의 변경을 추구하는 민중의 역량이 강화되고, 민중의 눈으로 역사와 세계를 보고 민중적 당파성에 충실한 ‘유기적 지식인’의 현존이 뚜렷해지고, 민중의 해방을 통해 바른 관계들 속에서 생명의 충만함을 향유할 때가 임박했다는 조짐이 실로 완연하다. 그러나 2016-2017년의 촛불집회는 아직 민중정치의 가능성 조건들을 충족시키고 있지는 못하다.
 
 3.1 민중정치는 민중의 정치적 구심체를 필요로 한다. ‘유기적 지식인’은 그 구심체의 한 은유이다. 민중정치의 본령이 민중을 질곡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관성 있는 운동에 있다면, 민중정치의 구심체는 일관성 있는 구도 아래서 민중운동을 이끌어가는 지도부이고, 그것은 분석의 최종심급에서는 당의 형태를 띤다. 그 당은 ‘우리’를 구성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우리’와 구별되는 ‘그들’을 생성하는 사람들의 운동을 이끌어가는 민주집중제적 지도 기구이다. 이러한 당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앞에서, 무한히 반복되는 차이를 존중하라고 말하면서, 현실 속에서 물질적 대립과 투쟁 속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작은 사람들’로 명명하는 것을, 차이를 생성하지 못하는 화석 덩어리를 그리는 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민중은 작동하는 체제 바깥으로 배설된 찌꺼기일 수 없다. 민중이 그들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권력 장치들의 그늘처럼 보일 때가 있지만, 그들은 그 권력 장치들이 작동하는 체제 안에서 그 체제를 해체하는 역량이다. 그 어느 것도 ‘안’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니, 그 ‘안’의 모순과 대립을 통해 새로운 현실이 생성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모순과 대립의 배치를 명료하게 파악하고 새로운 현실의 생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실천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역량을 가리켜 나는, 그람시의 ‘유기적 지식인’의 개념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민중의 진보적인 이익을 구현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당이라고 부른다.

 3.2. 민중정치는 운동과 정치를 격리하고 있는 ‘87년 체제’의 해체를 요구한다. ‘87년 체제’의 해체는 민중정치의 가능성 조건을 제도적으로 충족시키는 헌정질서로 바뀌어야 한다. 민중의 참여를 통해 민중의 권익을 보장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골간으로 하는 새로운 헌정질서는 민중의 정치적 의지를 관철하고자 하는 일관성 있는 민중 운동의 성취일 수밖에 없다.
 오늘의 정세에서 개헌 논의는 ‘87년 체제’를 구성하는 제도권 정치 분파들이 새로운 헌정질서의 수립에 관해 협상과 야합에 나서겠다는 것을 뜻한다. 1987년 민주화 운동권과 민중을 전적으로 배제한 채 기득권 정치 세력이 합의하여 제정한 제6공화국 헌법이 민중배제적인 불안정한 헌정질서와 정치를 가져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87년 체제’의 극복을 위한 개헌 논의는 민중의 광범위한 참여를 전제해야 한다. 그러한 새로운 헌정질서의 수립에 필요한 것이 민중의 권익을 최대한 구현하기 위하여 일관성 있는 구도 아래서 민중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 모아 펼쳐나가는 민중정치이다. 그러한 민중정치는 ‘유기적 지식인’을 필요로 하고 또 창출할 것이다. ‘유기적 지식인’은 민중적 관점에서 개헌논의를 이끌어나가는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민중운동에 확고한 발판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IV. 맺음말

 이 글에서 나는 2008년의 촛불집회와 2016-2017년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주체와 촛불집회의 동학을 분석하고 서로 비교했다. 나는 2008년의 촛불 군중을 ‘다중’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거부하고 지구 경제에 편입된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수탈당하고 억눌리고 배제되고 차별당하는 사람들을 ‘민중’이라는 전통적인 용어로 명명하고자 했다. 2016-2017년의 민중은 생활의 처지가 더 엄혹해지기는 했지만 2008년의 민중과 다를 리 없다.
 나는 2008년의 촛불 군중이 네트워크 군중의 성격을 띠고 있고 ‘집단지성’ 같은 것이 출현한 것은 맞지만, 그 군중이 ‘유기적 지식인’의 역할을 맡았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2008년의 촛불 군중은 일관성 있는 구도를 갖고서 현상의 변경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지도부를 갖지 못했고, 어느 시점이 되자 동력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다. 싸움다운 싸움이 실제로 있지도 않았기에 전리품도 없었다.
 2016-2017년의 촛불집회는 아직 진행 중이다. 2008년의 경험에서 배운 시민·사회단체들의 협의체는 국정농단의 책임을 묻고 적폐 청산을 요구하는 촛불 군중을 지도하는 역량을 어느 정도 보이고 있다. 이것이 오늘의 시민·사회운동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성취요, 진보이다. 촛불집회의 지도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퇴진운동’은 다양한 분파들로 구성되어 있고 촛불집회의 전략적 운영과 전술적 국면 운영을 놓고서 민중 분파들과 시민 분파들 사이에 헤게모니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촛불 군중의 힘을 의회정치와 사법처리의 틀에 가두어 두려는 지배블록의 헤게모니 전략을 무력화시키고 군중의 힘으로 파시스트 권력과 결합된 신자유주의 체제를 해체시키기 위해서는 민중적 당파성을 갖고 일관성 있는 구도 아래서 군중 운동을 이끌어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는 지도부가 있어야 한다. 그러한 지도부는 아직 확실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 않다. 그러한 지도부는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더 많은 정의,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인권을 구현하고자 하는 민중정치 과정에서 창출되어 그 정치를 지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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