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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국가의 헌정질서와 교회의 공적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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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국가의 헌정질서와 교회의 공적 임무


강원돈 (한신대 교수/사회윤리)

I. 머리말

 교회는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상을 형성하도록 파견되었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있기에 세상의 문제들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고 행동한다. 세상을 향한 교회의 의견 표명은 당연히 세계관적 주장을 전제하고 있다. 문제는 정교분리를 헌정 원칙으로 삼고 있는 세속국가가 세계관적 중립성의 계명을 앞세우고 있고, 종교적 세계관들이 다원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에서 세계관적 주장은 공론의 장에서 금기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세속국가의 헌정질서와 공론의 장에서 세상의 문제들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어떤 문법을 따라야 하는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서 필자는 개신교 정치윤리의 관점에서 세속국가의 헌정원리인 정교분리를 해석하고, 공론의 장에서 교회의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적절한 방식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마르틴 루터의 두 정부론으로부터 민중신학에 이르기까지 교회와 국가, 교회와 세계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윤리적 관점이 어떻게 정립되었는가를 밝힌다. 그 다음, 세속국가의 헌정질서인 정교분리 원칙이 확립되어 간 과정을 살피고 세계관적 중립성의 계명 아래서 공론의 장이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한다. 끝으로, 세속국가의 헌정질서에 바탕을 두고 있는 공론의 장에서 교회가 세상에 대한 공적인 의견을 밝히는 방식을 제시한다.

II. 두 정부론의 빛에서 본 교회와 세계

 교회와 세계의 관계, 혹은 세계형성에 대한 교회의 임무를 밝히기 위해 마르틴 루터의 두 정부론으로 소급되는 개신교 정치윤리의 전통을 해석하는 것은 다분히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의 해를 염두에 둔 작업이지만, 필자는 루터의 두 정부론이 개신교 정치윤리의 기본 얼개를 담고 있다고 본다. 흔히들 개신교 정치윤리는 루터의 두 정부론과 칼빈의 하나님 주권론의 두 유형으로 분류되고, 이 두 유형은 현대신학에서 두 왕국론과 그리스도의 세계주권론으로 나타나난다고 보지만, 그 어떤 유형이든 교회 정부와 세속 정부가 하나님의 세계 통치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실행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을 같이 한다. 이러한 분류는 제도교회와 세계적 수준의 교회협의회 차원에서 관찰된다. 종파 수준에서는 종교적 세계관에 근거하여 세계로부터 은둔하는 세계도피형과 종교적 세계관의 요구에 따라 세계를 철저하게 개조하고자 하는 세계정복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아래서는 이를 조금 자세하게 설명함으로써 교회와 세계의 관계를 보는 개신교 정치윤리의 관점을 명료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1. 마르틴 루터의 두 정부론은 하나님이 세계를 주권적으로 통치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하나님의 통치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침입한 이래로 사탄에 의해 끊임없이 방해를 받고 있다. 하나님은 사탄의 방해를 억제하여 세상을 보존하고 사탄의 지배로부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두 기관을 설립하였다. 교회와 국가가 그것이다. 하나님은 교회와 국가를 통해 세상을 통치하는데,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와 국가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는 서로 다르다. 한편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기 위하여 교회에 맡긴 도구는 복음이다. 교회는 사람들의 양심을 향하여 복음을 선포하여 그들을 구원으로 이끈다.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은 국가에 율법을 맡겨서 제도적 공동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를 지키며 살아가도록 하여 정의와 평화를 실현한다. 국가는 법을 집행하기 위해 칼(국가폭력)을 휘두르도록 허락받았다.
 루터의 두 정부론은 복음과 율법에 대한 루터의 해석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루터는 복음의 신학적 용법(usus theologicus evangelii)만을 인정하였을 뿐, 복음의 정치적 용법(usus politicus evangelii)을 인정하지 않았다. 교회가 복음을 들고 세상을 직접 통치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율법의 용법과 관련해서 루터는 두 가지 용법을 제시하였다. 하나는 복음의 신학적 용법(usus theologicus legis)이다. 율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구원을 갈망하게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율법의 정치적 용법(usus politicus legis)이다. 율법의 정치적 용법은 그때그때의 상황에서 인간의 이성에 의해 율법을 해석하여 현실에 적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국가가 세상에 질서를 수립하여 정의와 평화를 수립하기 위한 율법의 용법이며, 국가의 영역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성직자든, 평신도든, 무신자든, 율법의 정치적 용법에 따르는 국가의 지배에 복종하여야 한다.
 이러한 논리에 바탕을 두고 루터는 하나님의 통치를 위해 세워진 두 기관들이 그 기능상 구별될 뿐만 아니라 서로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국가는 복음 선포와 같은 교회의 일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교회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은 루터가 1523년 「세속적인 공권에 대하여」(Von weltlicher Obrigkeit)를 집필하여 공권력 행사의 한계를 명확하게 밝히고자 한 가장 큰 이유였다. 루터는 국가의 교회 간섭을 허락할 수 없듯이 교회도 국가가 법과 공권력을 갖고 하는 일을 떠맡거나 주관하겠다고 나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교회가 세상의 권력과 교회의 권력을 함께 거머쥐어야 한다는 가톨릭교회의 전통적인 쌍검론(雙劍論)을 거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복음의 정치적 용법의 사례라 할 만한 토마스 뮌처의 천년왕국적 농민전쟁도 거부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결코 교회와 국가를 서로 독립된 두 영역으로 분리하려는 의도를 갖지 않았다. 그는 교회와 국가가 각각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면서 서로 협력할 것을 강조하였다. 국가는 신도들이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질서를 세우고, 교회는 율법설교를 통하여 신도들로 하여금 국법질서를 스스로 따르도록 훈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에게 맡겨진 율법설교는 교회가 국가의 일을 감독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는 이론을 뒷받침하는 논거이다. 만일 국가권력을 장악한 자가 율법을 무시하고 자의적인 폭정을 일삼을 때 교회는 율법을 바르게 해석하여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자를 가르쳐야 한다. Martin Luther, “An die Pfarrherrn wider den Wucher zu predigen, Vermahnung,” D. Martin Luthers Werke(Weimarer Ausgabe), Bd. 51(Weimar: Böhlau, 1914), 353; 367; 422(이하 WA 51, 353 형태로 인용)
율법을 가르치는 교회는 국가의 전횡을 수수방관해서는 안 되고 국가를 비판하는 위치에 서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정치를 바르게 형성하도록 도울 책임이 있다. 바로 이것이 교회의 파수꾼 임무이다. Martin Luther, WA 51, 422, 7ff. 루터의 율법설교로부터 교회의 파수꾼 임무를 이끌어낸 신학자는 파울 알트하우스이다. Paul Althaus, Die Ethik Martin Luthers(Gütersloh: Gütersloher Verl., 1965), 151.

 율법설교 이외에도 루터는 교회와 국가의 협력에 관한 많은 모델들을 제시하였다. 특히 고리대금업과 매점·매석을 규율하라는 권고 고리대금에 대한 루터의 첫 비판은 1519년 11월에 “고리대금업자에 관한 설교”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이 설교는 “고리대금에 관한 소설교”로 알려져 있다.(M. Luther, “Eyn Sermon vom Wucher,” WA 6, 3-8. 1520년 초에 루터는 같은 제목의 설교를 하였는데, 이 설교문은 흔히 “고리대금에 대한 대설교”로 일컬어진다.(M. Luther, “Eyn Sermon vom Wucher,” WA 6, 36-60) 1524년에 루터는 “상업활동과 고리대금에 관하여”(M. Luther, “Von Kauffshandlung und Wucher,” WA 15, 294-322)라는 글을 써서 매점매석 행위를 비판하고, 이자율을 년 4-5%로 제한할 것을 주장하였다. 1539/40년에 루터는 “고리대금업자에 반대하는 설교를 할 것을 목사들에게 권면함”(M. Luther, “An die Pfarrherrn wider den Wucher zu predigen, Vermahnung,” WA 51, 325-330)이라는 권고문에서 그 당시 20-30%에 달하던 이자율에 또다시 경종을 울렸다.
나 지역 차원에서 복지제도를 운영하기 위해 교회와 국가의 협력 모델을 제시한 라이스니히 금고규정 M. Luther, “Ordnung eines gemeinen Kastens. Ratschlag, wie die geistlichen Güter zu handeln sind,” WA 12, 11ff.
등등이 그 실례이다.
 루터가 1524년과 1525년의 농민봉기에 개입하여 농민군과 영주들 사이에서 중재 노력을 기울였지만, 농민군이 약탈과 학살에 나섰다고 판단하고 그러한 폭력행사가 사탄의 일이라고 단정한 뒤에 로마서 13장 4절에 근거하여 영방군주들의 농민군 진압을 촉구한 것도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규율하는 두 정부론에 근거해서 내린 그 나름대로 일관성 있는 판단이었다고 볼 수 있다. Maretin Luther, “Wider die räberischen und mörderischen Rotten der Bauern,” WA 18, 357-358. 루터의 농민전쟁 개입에 관한 상세한 연구로는 장문강, “마르틴 루터의 농민전쟁(1525)에 대한 행동의 일관성,” 『민주주의와 인권』 12/3(2012), 521-570를 보라.


2. 캘빈은 루터의 두 정부론을 수용하였고, 정치를 형성하는 데 루터보다 더 적극적인 입장을 취했다. 마르틴 루터는 국가 형태나 헌법을 주제로 다루지 않았지만, 캘빈은 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것은 루터가 영주의 주권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데 반해 캘빈은 제네바의 시민공화국의 틀에서 사유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캘빈은 모든 형태의 절대적인 지배를 불신하였다. 그는 교황이나 군주의 독재를 거부하였고 대중의 독재에 대해서도 경계하였다. 그 때문에 그는 자격 요건을 갖춘 사람들을 적법 절차에 따라 선출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한 대의제 민주주의를 실천할 것을 옹호하였다. 이에 관한 상세한 연구로는 이은선, 『칼빈의 신학적 정치윤리』(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7), 145ff.를 보라.

 캘빈은 제네바 공화국을 운영하는 일과 관련하여 많은 자문을 아끼지 않았다. 루터와 마찬가지로 그는 상업 자본주의가 발전하던 시기에 핵심적인 경제 문제로 떠올랐던 이자에 관한 정책적 자문을 하였고, 공화국 차원에서 구빈원 제도를 개혁하고 운영하기 위해 교회와 국가의 협력을 조직하는 방안 등등을 제시하였다.

3. 현대세계에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한 신학자는 칼 바르트이다. 이 짧은 글에서 바르트의 정치신학을 따로 다룰 수는 없으므로, 여기서는 그가 집필한 「바르멘 신학선언」(이하 「신학선언」)을 중심으로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관점을 밝히는 데 그친다. 「신학선언」 제3조는 에베소서 4장 15-16절을 근거로 해서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주권을 강조하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는 형제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선포와 직제를 전체주의 국가의 세계관이나 교리에 종속시키고자 했던 히틀러의 시도에 단호하게 반대하였다.  「바르멘 신학 선언」 제3조: “기독교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과 성례전 속에서 성령을 통하여 주로서 현존하며 행동하는 형제들의 공동체이다. 기독교 교회가 용서받은 죄인들의 교회로서 죄 많은 세상의 한복판에서 그 신앙과 순종으로써, 그 메시지와 직제로써 증거하여야 할 것은 그 자신이 오직 그분의 소유이고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오직 그분의 위로와 교훈으로 살고 있고 또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가 마치 그 선포와 직제의 형태를 임의로 정하거나 그때그때의 지배적인 세계관적이고 정치적인 확신들에 맡겨도 좋은 것처럼 여기는 잘못된 가르침을 배격한다.”
「신학선언」 제4조는 마태복음 20장 25-26절에 근거하여 교회에 대한 히틀러의 영도를 승인하고자 했던 그 당시 교회 지도부의 전략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바르멘 신학 선언」 제4조: “교회 안의 다양한 직책들은 어떤 직책들이 다른 직책들을 지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온 공동체에 위탁되고 명령된 봉사를 수행하기 위한 기초이다. 우리는 마치 교회가 이 봉사를 떠나서 통치권을 부여받은 특별한 영도자들을 허용하거나 허용하게끔 할 수 있고 또 해도 되는 것처럼 가르치는 잘못된 가르침을 배격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신학선언」 제5조는 베드로전서 2장 17절을 인용한 뒤에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규정했다. 거기서는 국가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세상에서 정의와 평화를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섭리의 기관임을 인정하고 있다. 국가는 권력을 독점하는 기구이며, 국가의 권력 행사는 인간의 통찰과 능력에 맡겨져 있다. 이 점에서 「신학선언」 제5조는 루터가 말하는 율법의 정치적 용법, 곧 통치를 위해 율법을 이성적으로 해석하고 현실에 적용한다는 용법에 충실한 주장을 펴고 있다. 국가가 인간의 통찰과 능력의 분량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여 정의와 평화를 수립할 임무를 갖고 있는 것이라면, 그러한 국가의 임무 수행에는 책임이 따른다. 「신학선언」 제5조는 교회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정의를 상기시키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한다는 점을 확인하고, 바로 이어서 그 교회는 사람들에게 통치자들과 피통치자들의 책임을 상기시켜야 한다는 점을 확언함으로써 통치자들이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 국가 운영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짚고 있다. 이것이 교회의 국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의 신학적 근거이다. 이와 같은 전제를 명확히 한 뒤에 「신학선언」 제5조는 교회와 국가의 일을 혼동하거나 하나가 다른 하나의 일을 대신하거나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신학적 원칙을 밝히고 있다.  「바르멘 신학 선언」 제5조: “우리는 마치 국가가 그 특별한 임무를 넘어서 인간 생활의 유일하고 전적인 조직이 되고, 그래서 교회의 사명까지 실현해야 하며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치는 잘못된 가르침을 배격한다. 우리는 마치 교회가 그 특별한 임무를 넘어서 국가적인 형태, 국가의 과제와 국가의 위엄을 취하고, 또 그리하여 자신이 유일한 국가의 기관이 되어야 하며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치는 잘못된 가르침을 배격한다.”
이러한 논리의 구성은 교회와 국가를 서로 분리된 두 영역으로 나눔으로써 루터의 두 왕국론을 두 영역론으로 왜곡한 신루터파 신학 신루터파 신학자들 가운데 두 영역론을 이론적으로 발전시킨 붸르너 엘러트(Werner Elert)는 국가의 영역에는 그 나름의 고유한 법칙이 작동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펴서 히틀러의 전체주의 국가를 신학적으로 옹호하였다.
을 경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4. 개신교의 전통적인 두 정부론을 새롭게 가다듬은 「바르멘 신학선언」은 그 당시 에큐메니칼 운동 진영에 세상 만물이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 있다는 그리스도 중심적 보편주의를 구상하도록 자극했다. 그리스도 중심적 보편주의는 기독교인들이 세상을 제대로 형성하기 위한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신학적 주장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1937년 옥스퍼드에서 “교회, 공동체, 국가”를 주제로 열린 ‘생활과 노동’ 세계협의회와 1948년 암스테르담 WCC 창립총회 이래로 에큐메니칼 ‘책임사회’ 패러다임을 신학적으로 뒷받침하였다. 그리스도 중심적 보편주의에 대해서는 K. Raiser, Ökumene im Übergang: Paradigmenwechsel in der ökumenischen Bewegung(München: Kaiser, 1989), 61-82를 보라.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통치 영역이므로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기술, 국제관계 등 삶의 모든 영역을 제대로 형성하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이다.

4.1.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을 촉진하였고, 이 신학들은 교회가 세상에서 해야 할 일에 관련해서 패러다임의 혁명적 전환을 가져왔다. 무엇보다도 해방신학은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을 위한 교회의 실천을 따라가며 성찰하는 하나의 시도라는 자기이해를 가졌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의 우선적 선택이라는 원칙 아래서 구조화된 억압과 가난, 불평등, 주변화와 배제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을 해방하는 일에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볼 때 세계가 유기적 조화를 이루지 않고 해소하기 어려운 모순들로 인하여 극단적으로 분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당파적으로 편드는 일을 무릅쓰지 않으면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을 편들고 그들을 해방시키는 실천이 바른 실천(orthopraxis)이라고 한다면, 바른 신학(orthodoxy)은 그 실천을 성찰하는 데서 탄생할 것이다. Gustavo Gutierrez, A Theology of Liberation: History, Politics, and Salvation, rev. ed.(Maryknoll: Orbis, 1988), 4ff.
해방신학은 보편성이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당파적 실천을 통하여 사이비 보편성의 체계를 깨뜨릴 때 비로소 실현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교회가 세상에서 공적인 임무를 수행할 때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할 관점이라는 것이다.
 
4.2. 민중신학은 해방신학의 관점을 수용한 1970년대 초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자극을 받으며 한국사회의 민주화·인권 운동과 민중운동을 성찰하는 신학으로 탄생하였다. 민중은 하나님의 계약 파트너이며, 바로 그 민중이 역사의 실질적 주체이다. 이러한 ‘민중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것이 민중신학의 출발점이다. 안병무, “새 역사의 주인,” 『현존』 91(1978), 12.
무엇보다도 민중의 관점에서 세계와 역사를 볼 때, 세계의 모순과 구조적 불의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현실의 세계에서 민중은 주체의 자리에서 밀려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민중의 존재 그 자체는 가난과 억압과 주변화와 차별의 구조들을 고발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중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그 구조들을 넘어서고자 하는 갈망이다. 그러나 민중이 갈망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강령을 미리 규범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런 방식으로 민중이 대변(representation)되는 곳에는 민중이 부재(absence)한다. 민중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중이 주체의 지위를 회복하면 그들이 어떤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가도 분명해질 것이다. ‘민중의 주체성’을 성찰하는 민중신학은 교회가 세상을 형성하는 일에 참여하고자 할 때 민중의 자리에서 민중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실천할 것을 촉구한다.
 
5.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마르틴 루터의 두 정부론으로부터 현대 민중신학에 이르기까지 개신교 정치윤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신앙고백에 근거하여 좁게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넓게는 교회와 세계의 관계를 규정하고, 교회가 개개인의 신앙생활 영역만이 아니라 공적인 영역에서도 제 목소리를 내고 국가와 세계를 형성하는 데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문제는 기독교가 국교로 자리를 잡은 로마 제국이나 신성로마제국, 혹은 영주가 교회의 수장이 되는 영방교회 전통이 끝나고 정교분리의 원칙이 헌정질서로 자리를 잡아 국가의 세계관적 중립 계명이 자리를 잡은 세속사회에서 교회가 어떻게 정치적 발언을 하고 세계 형성의 구상을 제시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정교분리가 교회와 국가의 역사적인 관계에 어떤 의의를 갖는가를 살펴보고, 정교분리의 헌정질서에서 공동체를 규율하는 규범을 제정하는 공론 과정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세계관적 중립성의 계명이 어떤 방식으로 요구되는가를 살피기로 한다.

III. 세속국가의 세계관적 중립성 계명과 공론의 작동방식

 서양사에서 세속국가는 교회의 영적 지배나 후견으로부터 국가가 해방하는 과정을 통하여 탄생되었고, 그 과정은 많은 경우 기존체제의 혁명적 변화를 동반하였다. 정치의 종교화와 종교의 정치화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근대세계에서 세속국가는 세계관적 중립성을 표방하였고, 세속국가의 헌정질서에 바탕을 둔 공론의 장은 세계관적 중립성의 계명 아래서 토론과 동의의 원칙에 따라 작동하게 되었다.
 아래서는 이러한 과정을 역사적으로 간략하게 살피고 세속국가의 헌정질서에서 공론의 장이 작동하는 방식을 논리적으로 분석한다.

1. 로마제국에서 기독교인들의 종교는 오랜 시절 간헐적인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가 313년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로마의 한 종교로 공인되었고, 마침내 380년에는 데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로마의 국교가 되었다. 기독교는 하나의 제국, 하나의 황제, 하나의 종교로 이루어지는 권력 삼위일체의 필요 불가결한 구성 부분이 되었으며, 로마 제국에서 정치적 종교로 자리를 잡았다. 본래 로마에서 정치적 종교의 정점에 서 있었던 신은 주피터였다. 로마 제국 곳곳에 세워진 판테온은 주피터를 정점으로 한 신들의 위계질서를 잘 보여 준다. 로마가 속주로 점령하여 지배하는 지역의 신들은 로마의 주신(主神) 주피터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는데, 그 위계관계는 로마와 속주의 지배관계를 반영한다. 판테온의 주피터에게 바친 제물은 지역 주민들에게 분배되고, 그 제물을 나누어 먹는 행위를 통하여 로마 속주의 주민들은 로마 제국의 일원임을 의식한다. 주피터의 화신으로서 로마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를 존숭하고 그에게 복종하게 하는 것은 로마 종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었다.
    로마 제국이 네 명의 분권 황제 시대로 이행하여 내전 상태에 접어들자 모든 분권 황제들의 신이었던 주피터는 더 이상 로마 제국의 통일을 상징할 수 없었다. 콘스탄티누스가 수차례에 걸친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내전 상태를 종식시키고 제국의 통일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강력하게 뒷받침하려고 하자, 그에게는 새로운 종교가 필요했다. 주피터가 더 이상 하나의 제국, 하나의 황제를 신민의 마음에 새기는 종교적 언어가 아니라면, 그 대안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가혹한 박해를 겪으면서도 로마 제국 전역에 퍼져서 제국 주민들에게서 높은 신뢰를 받았던 기독교는 유일신교로서 판테온 종교를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기독교의 공인과 국교화는 바로 이러한 통치자의 헤게모니 전략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알리스테어 키가 이 대목에서 ‘신의 후원의 교체’를 말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에 대해서는 알리스테어 키, 『콘스탄틴 대 그리스도』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8), 24를 보라.

 기독교가 하나의 제국과 하나의 황제를 뒷받침하는 하나의 종교여야 한다면, 기독교의 교리적 통일과 교회적 일치는 기독교가 제국 종교의 위상과 성격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콘스탄티누스가 삼위일체 논쟁과 도나티스트 논쟁에 직접 개입하여 교리의 제정과 교회 치리에 주도권을 행사한 데서 잘 드러난다. 아리스테어 키, 앞의 책, 152: 교회의 “분열은 민사범죄로 취급되어야 한다.”; 앞의 책, 162: “황제는 신학적인 진리나 정통을 고려하여 나아간 것이 아니라, 통일의 토대를 제공할 처방에 이르고 이어 정치적 수단으로 그 통일을 강화시키려는 데 관심했다.”
종교 내부의 일에 개입하여 종교의 정치화를 가속화시키는 데 대한 대가로서 콘스탄티누스와 그 후계자들이 교회에 제공한 특전은 실로 엄청났다. 일요일의 주일(主日) 제정, 성직자들의 공공의무 면제, 교회를 위한 재산 증여 제도의 확립, 교회의 안전 보장, 황제의 하사금 등은 그러한 특권들 가운데 일부였다. 아리스테어 키, 앞의 책, 128-146.

 이렇게 해서 성립된 콘스탄틴적 기독교는 서양 기독교의 역사에서 교회와 국가의 헤게모니 동맹을 대표했다. 그것은 더 이상 약자들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을 구현하는 종교가 아니라 지배자의 종교였다. 이러한 콘스탄틴적 기독교는 프랑스 혁명 이후에 벌어진 국가의 세속화로 인해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지만, 1917년 러시아 차르 체제가 붕괴되고 1918년 독일 황제제국이 궤멸할 때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속하였다.

2. 마르틴 루터의 두 정부론은, 이미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가톨릭교회의 전통적인 쌍검론(雙劍論)을 비판적으로 극복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세속국가의 주권과 자율성을 옹호하는 것을 그 골자로 하고 있었다. 가톨릭교회의 쌍검론은 신성로마제국에서 나타난 교황권과 황제권의 대립에 대한 교회의 한 대응이론이었다. 게르만 전통에 따라 영지와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영주는 황제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웠지만, 교회와 수도원에 소속된 영지는 황제의 보호와 간섭 아래 놓여 있었다. 교회세력은 황제의 보호 아래서 영지의 불수불입권(Immunität)을 보장받는 방식으로 봉건체제에 편입되어 있었기에 황제의 성직자 서임권을 당연시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이흥용, “독일헌법사에서의 교회와 국가,” 『사회과학연구』 6/1(1996), 15를 보라.
    이러한 황제권 우위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에 의해 저지되었고, 세계를 그리스도의 몸(Corpus Christianum)으로 파악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에 근거하여 영적 권위의 완전 지배권을 주장한 교황 보니파시우스 8세의 쌍검론에 의해 종지부를 찍었다. 1302년에 교황 보니파시우스 8세는 교서 「Unam Sanctam」을 선포하고, “하나님은 두 개의 칼을 가졌으니, 하나는 교회에 의해, 다른 하나는 교회를 위해 사용된다.”고 규정했다. 트뢸취는 이 명제가 교황권 지상주의를 지시한다고 해석한다. 이에 대해서는 E. Troeltsch, 『기독교사회윤리』, 현영학 옮김(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3), 406: “여기서 토마스주의가 분명하고도 솔직하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영적 권위의 완전한 지배권이다. 이 지배권 아래서라야 이성의 목적과 구원의 목적이 하나로 모아져서 응집력 있는 통일체가 된다는 것이다.”
루터의 두 정부론은 하나님이 국가를 다스리는 자에게만 칼을 맡기고 율법에 따라 질서를 지키고 정의와 평화를 수립하기 위해 그 칼을 쓰도록 허락했다고 못을 박음으로써 가톨릭교회의 쌍검론을 무효화하였다. 루터는 통치자가 이성에 따라 율법을 현실에 적용하고 통치영역에 속한 모든 사람들을 칼로써 다스린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로써 그는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는 일에 관한 한 세속국가의 우위성을 인정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루터가 쌍검론을 비판했다고 해서 그가 곧바로 콘스탄틴적 기독교의 잔재로부터 벗어나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신성로마제국에서 종교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영방군주들과 귀족들의 정치적 지원과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신성로마제국과 영방국가에서 갖가지 방법으로 부를 수탈하는 교황청에 대항해서 세속군주가 말하고 싶은 것을 명료한 언어로 정식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세속군주들이 양심과 신앙의 문제에 개입하는 데 대해서는 분명한 선을 그었지만, 가톨릭교회에 맞서서 교회를 개혁하는 데 영주들의 힘을 끌어들이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이것이 만인사제직 주장의 정치적 배경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교회개혁은 사제들에게 맡겨진 일만이 아니다. 사제들과 평신도들이 모두 교회개혁의 주체이다. 이 점에서 모든 신자들은 사제들이다. 만인사제직은 여러 측면에서 해석될 여지가 있으나, 영주의 힘을 빌어 교회개혁을 추진하고자 하는 루터의 전략적 언어였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루터는 농민전쟁이 종식된 뒤에 영주가 교회의 수장(summa episcopa)이 되는 영방교회 제도를 용인하였다. 어떤 점에서 이것은 영주가 영지와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린다는 게르만 관습에 충실한 방식으로 영방 차원의 국교 제도를 확립하는 조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영방교회 제도는 1555년에 체결된 아욱스부르크 종교화의 Martin Heckel, “Augsburger Religionsfriede,” Evangelisches Staatslexikon Bd. 1, 3. neubearb. und erw. Auflage(Stuttgart: Kreuz-Verlag, 1987), 111-117.
에 명시되었다. 아욱스부르크 종교화의는 영주가 다스리는 곳의 신민은 영주의 종교를 따른다는 원칙(cuius regio, eius religio)에 따라 가톨릭교회와 루터교의 관계를 규율하고자 했고, 이로써 제단과 왕관은 다시 밀접하게 결합되었다.

3. 국가와 교회의 분리라는 근대사회의 요구가 실현되기 시작한 것은 유럽 사람들이 30년 전쟁(1618-1648) 같은 종교전쟁의 참혹성과 비참을 겪은 이후였다. 30년 전쟁은 종교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수립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영토의 변경이나 현상의 변경을 추구하는 국가들의 전쟁에 종교가 동원된 측면이 강했다.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은 아욱스부르크 종교화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가톨릭교회, 루터교, 개혁교회의 관계를 규율하고, 국가가 종교에 간섭하지 않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삼았다. 근대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체결된 1648년의 평화조약은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교회의 해방이라는 의미의 정교분리를 규정한 최초의 국제법이었다. Klaus Schlaich, “Westfaelischer Frieden,” Evangelisches Staatslexikon Bd. 2, 3. neubearb. und erw. Auflage(Stuttgart: Kreuz-Verlag, 1987), 3970-3974, 특히 3971.

 베스트팔렌 조약이 국가로부터 교회의 해방을 목표로 하였다면,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은 왕과 귀족과 성직자의 동맹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구체제를 타도하였고, 국가의 세속화에 박차를 가했다. 교회가 국가의 일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고, 평신도 주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교회의 지배구조를 개혁하고, 교회와 성직자의 토지를 몰수하여 교회의 물적 기반을 파괴하는 등 교회에 부여한 광범위한 특권을 박탈한 것 등이 그 단적인 예이다. 아마도 프랑스 혁명이 교회에 가한 가장 심대한 타격 가운데 하나는 교회와 성직자가 소유한 토지의 몰수와 국유화 조치였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세희. “프랑스혁명기와 나폴레옹 시대의 토지문제: 국유화 토지 매각을 중심으로”, 『프랑스사 연구』 제9호 (2003년), 35를 보라.

 국교 금지와 정교분리 원칙은 근대 국가의 헌법에 명기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최초의 사례는 미국 수정헌법이다. 미국 헌법에서 국교금지 조항이 함축하는 정교분리 원칙에 대한 설명으로는 이장식, 『기독교와 국가』(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1), 214-221; 김상겸,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원칙에 관한 연구”, 『公法硏究』 第35輯 第2號 (2006년 12월), 146-149를 보라.
국교 금지와 정교분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르주아 국가들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도 채택되었으며, 근대 국가 구성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헌법 제20조 1항과 2항에 이를 명시하고 있다.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쳐서 국가의 세속화와 종교의 탈국교화를 실현한 근대 세속 국가의 헌법은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의사표현의 저유, 집회와 시위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과 같은 자유권적 기본권들의 목록에 넣어두고 있다. 이러한 자유권적 기본권들은 국가가 성립되기 이전에 부여된 신성불가침한 권리이기에 국가에 의해 침해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국가 권력의 행사가 이 기본권들 앞에서 멈추도록 국가권력 자체를 제한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종교의 자유가 이러한 자유권적 기본권들 가운데 하나로 인정됨으로써 정교분리는 무엇보다도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종교의 자유를 의미하게 되었다.

4. 세속국가에서 정교분리의 헌정 원리는 국가 권력의 정당성이 교회에 의해 부여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전제한다. 권력신수설은 인민주권론으로 대체되었다. 국가권력이 적법 절차에 따라 인민의 직접 참여나 대리인의 파견에 의해 구성되면, 그것은 정당하게 구성된 것으로 인정된다. 이것이 국가의 세계관적 중립성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기반이다. 다양한 세계관들이 병존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세계관적 중립은 세계관을 달리 하는 집단들 사이의 평화를 유지하고 증진하는 효과적인 전략으로 자리를 잡는다. 국가의 틀에서 시민사회를 규율하는 일은 더 이상 세계관적 근거를 필요로 하지 않고, 논리적으로는 정치공동체와 시민공동체를 규율하는 규범과 규칙을 제정하기 위해 이성적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작업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생각은 일찍이 칸트에 의해 명료하게 정식화되었고, 우리 시대에는 롤즈와 하버마스에 의해 대변되고 있다.

 4.1. 칸트는 공화주의적 헌정질서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이성의 공적인 사용을 촉진하여야 한다는 것을 역설했다. 그것이 곧 계몽의 과제이다. 인민을 무지와 세계관의 포로상태로부터 해방시키는 계몽의 프로젝트는 각 사람이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일이다. 그러한 용기를 갖게 되면 계몽의 주체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칸트에게서 스스로 생각하기(Selbstdenken)와 그 생각을 소리내어 옮기는 일(Lautdenken)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자립적 사고는 공론의 공간에서 비로소 실현된다. 이러한 공론이 출현하려면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자유를 가져야 한다. I. 칸트,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 『칸트의 역사철학』, 이한구 역, 개정판, 제3쇄(서울: 서광사, 2014), 15: “그렇지만 민중이 스스로를 계몽하는 것은 오히려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민중에게 자유만 허용된다면 계몽은 거의 확실히 이루어질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자유는 이성을 모든 면에서 공적으로 사용하는데 꼭 필요한 자유이다. 진리는 바로 이러한 이성의 공적인 사용에서 드러난다. 그것은 진리가 이성으로부터 저절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성적 토론의 절차를 통하여 진리를 창출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성의 공적인 사용은 사람들이 이성의 능력에 힘입어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합의한다는 의미의 비판적 공개성을 창설한다. 이성의 공적인 사용에 전념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공론장이 펼쳐진다. 공중이 공동체의 관심사에 대해 의사소통을 할 때 정치적 공론장이 형성되며, 바로 이 공론장에서 구현되는 공개성이 공화주의적 헌정의 틀에서 자유로운 법치국가를 조직하는 원리가 된다. 모든 입법 과정은 공개되어 공중의 비판적 검토를 거쳐야 한다. 비판적 검토는 법이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 한다는 보편성의 기준과 법이 진리의 요구에 따라 정의를 확립하여야 한다는 정의의 기준 아래서 이루어진다. 공중의 비판적 검토에 노출되지 않는 법은 보편적이고 정의로운 법임을 주장할 수 없다. 오직 이와 같은 비판적 공개성의 요구 아래서 이루어지는 입법만이 ‘이성으로부터 유래하는 인민의 의지’로 소급된다. 왜냐하면 법률은 심의하는 공중의 ‘공공적 합의’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칸트에게서 인민주권은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하는 시민들의 합의에 근거하여 실현된다. 이것이 칸트가 구상한 사회계약론의 골자이다.
 이성의 공적 사용이 생각하고 말하는 자유를 전제한다는 칸트의 통찰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자유는 프랑스 혁명 이후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1789) 제11조에서 승인된다. 거기서 사상의 자유, 언론과 출판의 자유는 ‘인간의 가장 귀중한 권리의 하나’로 선언된다. 최초의 부르주아 헌법으로 일컬어지는 1793년 프랑스 헌법에서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더하여 집회의 자유가 거부될 수 없는 권리로 명기된다. 집단적 의사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수 없는 기본권으로 인정된 것이다.

 4.2. 칸트의 사회계약 이론을 계승한 존 롤즈는 세속국가의 헌정질서에서 세계관적 중립성의 계명을 매우 중시하였다. 그는 이론적으로 사회적 기본재화들을 분배하는 공정한 원칙들을 미리 제정하고 난 뒤에 그 원칙들에 따라서 정의로운 사회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사회구조를 형성하는 기본 원칙들은 일종의 선험적 성격을 띤다. 이러한 선험적 원칙들은 자연법에 근거한 것도 아니고 신(神)의 의지에 근거한 것도 아니다. 롤즈는 그 원칙들이 일종의 사회계약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구성의 기본 원칙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려면 그 원칙들은 누구에게나 공정하여야 한다. 롤즈는 이러한 공정한 원칙이 제정되는 조건들을 규명하기 위해 초기에는 ‘무지의 베일’이라는 이론적 상황을 설정하였고, John Rawles, A Theory of Justice, Revised Edition(Cambridge: Harvard Univ. Press, 1999), 118.
후기에는 세계관적 중립성의 계명을 부각시켰다. 지면 관계상 ‘무지의 베일’에 관한 설명을 일단 도외시하고, 세계관적 중립성의 계명만을 조금 더 살펴본다면,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사려 깊은 개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원칙들은 가능한 한 서로 상충하고 갈등하는 철학적, 종교적 세계관들로부터 벗어난 것이어야 한다. 존 롤즈, 『정치적 자유주의』, 장동진 옮김(파주: 동명사, 2016), 89.
롤즈는 현대 사회가 세계관적 다원주의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누구나 납득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존 롤즈, 『정치적 자유주의』, 125. 롤즈는 이러한 생각을 ‘the plausible fact of pluralism’이라는 어구에 담았다.
이러한 세계관적 다원주의를 전제하는 세속국가에서 사회적 재화의 분배와 같은 핵심 문제들을 민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계관적 중립의 계명 아래서 시민들이 토론을 통해 합의에 도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롤즈가 세계관적 중립성의 계명을 전면에 부각시킨 것은 마이클 센델의 비판에 대한 응답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센델은 롤즈가 사회구성의 원칙에 대한 합의의 주체로 설정한 합리적이고 타인에게 무관심한 개인을 ‘본질적으로 무연고적인’ 자아로 규정하고, 그러한 자아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가 설정하는 ‘연고적 자아’는 공동체 전통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공동체에 대한 애착을 갖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과 서로 인정하고 인정받는 관계를 맺고, 그들과 자발적인 상호호혜의 관계를 맺는다. Michael J. Sandel, Liberalism and the Limits of Justice(New York: Cambridge Univ. Press, 1982), 172f. 롤즈는 센델이 말하는 전통과 정체성이 세계관을 매개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이를 극도로 경계한다.


 4.3. 위르겐 하버마스는 이성의 공적인 사용이라는 칸트의 모델을 받아들여 담론 이론을 정교하게 전개하였다. 그의 핵심 아이디어는 사람들이 억압과 강박 없는 의사소통공동체에서 진리에 대한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의사소통공동체는 이상적인 것이어서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상적인 의사소통공동체는 실제의 의사소통공동체를 규제하는 효과를 갖는 필수불가결한 가상이다. J. Habermas, "Vorbereitende Bemerkungen zu einer Theorie der kommunikativen Kompetenz," J. Habermas/N. Luhmann, Theorie der Gesellschaft oder Sozialtechnologie: Was leistet die Systemforschung?(Frankfurt am Main: Suhrkamp, 1971), 140f.
정직성, 진실성, 성실성은 현실적인 의사소통공동체에서 실재하지 않을 수 있지만, 진리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의사소통공동체는 그것들을 반드시 요청할 수밖에 없다.
 하버마스는 의사소통 행위 이론에 근거하여 생활세계 구상을 가다듬었다. 생활세계는 일상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공동체를 규율하는 규범들과 규칙들이 신중하게 심의되는 지평이다. 그런데 삶이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생활세계로부터 다양한 하부 체제들이 분화되었는데, 정치체제, 경제체제, 과학-기술체제 등이 그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하부체제들이 생활세계로부터 독립하고 급기야 생활세계를 식민지로 만들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J. Habermas, Theorie des kommunikativen Handelns, Bd. 2: Zur Kritik der funktionalistischen Vernunft(Frankfurt am Main: Suhrkamp, 1981), 182.
하버마스는 이러한 위험이 개입주의 국가에서 점점 더 증가하는 관료적 지배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버마스는 생활세계에서 의사소통 행위를 다시 활성화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시민사회’ 여기서 ‘시민사회’는 더 이상 상품의 교환과 사회적 노동의 영역이라는 전통적인 의미를 벗어난다. 오히려 ‘시민사회’는 국가의 영역과 시장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영역, NGO나 NPO로 조직되는 공중의 영역이다.  
가 생활세계의 기능을 맡아서 권력과 화폐를 중심으로 하는 체제의 논리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공적인 의견을 형성할 것을 기대한다. 이와 같은 공적 의견의 압력 아래서 의회에서 법이 제정된다면, ‘의사소통적 권력’이 민주주의적으로 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위르겐 하버마스, 『사실성과 타당성: 담론적 법이론과 민주적 법치국가 이론』, 한상진/박영도 역(서울: 나남, 2007), 478-511.
바로 이 점에서 하버마스는 이성적 토론과 합의에 근거한 공화주의적 헌정질서에 대한 칸트의 구상을 현대사회에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

5. 제단과 왕관의 동맹 시대로부터 벗어나 정교분리의 원칙이 헌정질서로 자리를 잡은 시대로 접어들면서 국법질서의 정당성은 더 이상 세계관적 기반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세속국가의 형성과 발전에는 국민의식이나 국민감정 등의 요소들이 작용하고, 이해관계들의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서로 대립하는 세력들의 이데올로기들이 충돌하기 마련이지만, 세속국가에서 세계관의 효과는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다. 세속국가에서 헌정질서의 정당성과 그 운영의 적합성에 대한 판단은 궁극적으로 시민적 동의에 기반을 둔다. 그 동의는 사회적 협력이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분별하는 사람들의 판단력에서 비롯된다.

IV. 세속국가에서 교회의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

 정교분리를 헌정질서의 한 축으로 삼고 있는 세속국가는 세계관적 중립성을 표방하고 있지만, 세속국가 안에 있는 교회는 국가에 대한 파수꾼의 역할을 수행하고 세계를 형성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하여야 한다는 공적인 임무를 면제받지 않았다. 정교분리는 본래 정치적 목적으로 종교를 이용하거나 종교에 간섭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이고, 종교가 정치권력에 기대어 특권적 지위를 향유하는 것을 배척하는 원칙이지, 종교인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세계를 형성하는 데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이 아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세속국가에서 어떤 방식으로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여야 할까?

1. 세속국가가 교회의 세계관적 주장에 근거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보장받을 필요가 없는 한, 교회가 국가신학을 제시하거나 정치의 신학화를 모색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의 정치운동들에서 볼 수 있듯이, 세계 곳곳에서 종교의 정치세력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슬람권에서는 종교적 세계관에 근거하여 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하려는 신정국가적 시도가 나타나기까지 한다. 그러한 운동들에서는 종교의 정치화와 정치의 종교화가 뚜렷하다. 그러나 세속국가의 헌정질서가 확고한 틀을 갖추고 있는 사회에서 종교의 정치세력화는, 미국의 티파티 캠페인이나 한국의 태극기-성조기 집회의 경우처럼, 일시적인 국면 효과를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한 시도는 시대착오적이다. 교회가 세속국가에서 여전히 세상을 향해 공적인 의견을 표명하여야 한다면, 교회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 의사표현의 자유, 집회와 시위의 자유, 결사의 자유 같은 세속국가의 헌정 원칙에 기반을 둔 공론의 장에 참여해서 세상의 문제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혀야 할 것이다. 교회가 공론의 장에서 유념할 것은 네 가지이다.
 첫째, 교회의 공적인 의견 표현과 교회의 세계관적 주장의 추상 수준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둘의 관계는 빙산에 비유할 수 있다. 세상의 수면 위에 떠오르는 것은 빙산의 일각인 교회의 공적인 의견일 뿐이고, 그 의견의 세계관적 근거는 수면 아래의 거대한 빙괴를 이룬다. 교회의 세계관적 주장은 세속적인 공론의 장에서는 낯선 언어이다. 그 낯섬 때문에 교회의 세계관적 주장을 감출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교회의 공적인 의견을 뒷받침하는 교회의 세계관적 주장은 설사 정교한 신학적 언어로 가다듬어진다고 해도 세상이 그 논리적 구성과 전개를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내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교회의 공적인 의견은 어디까지나 세상에서 의사소통이 가능한 담론의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논거들의 뒷받침을 받아야 하고, 오직 논증을 통하여 그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것은 세상의 공론이 공개적인 논증을 통한 정당화를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교회의 공적인 의견을 뒷받침하는 신학적 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도 그 논거들은 의사소통이 가능한 추상 수준에서 생활세계의 언어로 제시되는 것이 마땅하다.
 셋째, 교회는 공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억압과 불평등을 지적할 수 있는 집단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여야 한다. 교회는 주변화되고 배제되어 있는 사회집단의 요구가 무시되거나 망각되지 않도록 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여야 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과 억압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본격적으로 비판하여야 한다.
 넷째, 교회의 공적인 의견은 세상의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을 초과하는 전망을 열어젖힐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궁극적인 것을 바라보지만, 세상은 궁극 이전의 것에 속한다. 궁극적인 것과 궁극 이전의 것에 대해서는 D. Bonhoeffer, Ethik, hg. von Eberhard Bethge(München: Kaiser, 1981), 133ff.를 보라.
세상은 궁극적인 것을 구현할 수 없고, 그것을 지향할 뿐이다. 교회는 궁극적인 것을 향해 가는 도정에서 이정표를 제시하고, 비교급의 윤리를 말하고, 전망을 가진 현실주의를 표방한다. 오직 그렇게 할 경우에만 세상이 궁극적인 것을 향해 투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강원돈, “책임윤리의 틀에서 윤리적 판단의 규준을 정할 때 고려할 점,” 『신학연구』 41(2000), 특히 349-353을 보라.


2. 우리나라에서 교회는 반독재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하고, 민중운동에 참여해서 민중의 편에 서서 민중을 해방하는 데서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된다고 증언해 왔다. 민주화가 진척되고 시민사회가 활성화되면서 교회는 공론의 장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였다.
 교회가 공론의 장에 참여하여 공적인 의견을 어떻게 천명할 것인가는 교회의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일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이슈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제까지 교회의 공적인 입장은 성명서의 형태로 발표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앞으로도 급박한 현안 문제에 대해서는 성명서를 채택하는 일이 계속될 것이고, 또 그럴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의 복잡한 연관관계들을 고려해 볼 때 교회의 입장을 간략한 성명서에 제대로 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런 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공적인 입장을 어느 정도 부피가 있는 책자 형태의 의견서에 담아 공론의 장에 제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상에 대한 교회의 공적인 의견서를 제시하는 모범적 사례들 가운데 하나는 독일개신교협의회(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 = EKD)이다. 아래서는 EKD의 공적인 의견 표명 방식을 분석해서 타산지석을 삼아보기로 한다.  

2.1. EKD는 세상의 정치적인 문제들, 사회적인 문제들, 경제적인 문제들, 문화적인 문제들에 대해 교회의 입장을 공적으로 표명하는 전통을 지켜왔다. 이러한 전통은,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당대의 현안 문제들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입장 표명으로 소급된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독일의 개신교 협회들과 단체들은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입장과 견해를 밝혀 왔고 사회적 개신교의 뚜렷한 흐름을 형성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EKD는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는 현안 문제들에 대하여 일관성 있게 백서(Denkschrift)를 발표해 왔다. 이것은 공교회가 공론의 장에 공적인 견해를 밝혀 여론을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매우 주목할 만한 실례이다.
 
2.2. EKD는 두 차례에 걸쳐 교회의 공적 임무를 다루는 문서를 발표하여 백서의 성격, 과제, 규준 등에 관한 견해를 밝혔다. 하나는 1970년에 나온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의견 표명의 과제와 그 한계에 관한 백서」 (이하  「백서 지침서」) Aufgaben und Grenzen kirchlicher Äußerungen zu gesellschaftlichen Fragen: Eine Denkschrift der Kammer für soziale Ordnung der Evangelischen Kirche in Deutschland, hg. vom Rat der Evangelischen Kirche in Deutschland(Gütersloh: Gütersloh er Verlagshaus, 1970).
이고, 또 다른 하나는 2008년에 나온 「제 때에 바른 말을: 교회의 여론 형성 임무에 관한 EKD 평의회의 백서」(이하 「교회의 여론 형성 임무 백서」) Das rechte Wort zur rechten Zeit: Eine Denkschrift des Rates der Evangelischen Kirche in Deutschland zum Öffentlichkeitauftrag der Kirche(Gütersloh: Gütersloher Verlagshaus, 2008).
이다.
 1970년의 「백서 지침서」는 백서를 정치적 문제들과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공적인 의견 천명으로 이해하고 있다.  정치적 문제들과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공적인 입장 표명에 대해 마르틴 호네커는 “공적이고 정치적인 입장 표명이 신앙고백과 신앙적 결단의 과제로 천명될 수 있고 천명되어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M. Honecker, Grundriß der Sozialethik(Berlin/New York: de Gruyter, 1995), 661.
교회의 공적인 입장 표명은 “교회의 주로부터 받은 포괄적인 선포의 위임과 파견의 위임”에 의해 정당화된다.(§ 10) 「백서 지침서」는 한편으로는 ‘두 왕국론’을 왜곡시켜 교회의 영역과 국가의 영역을 분리시키는 입장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19) 다른 한편으로는 ‘내면성’으로 퇴각하는 개인윤리적 입장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20) 「백서 지침서」는 교회의 ‘여론 형성 임무’(§ 27)가 ‘세상을 변혁하는 복음 선포’와 ‘인간의 공동생활 영역에서 수행하는 제자직의 실천’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24)
 2008년의 「교회의 여론 형성 임무 백서」는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의 주권을 전면에 내세운 바르멘 신학 선언의 전통을 계승하여 “교회에 맡겨진 메시지가 포괄적이고도 보편적으로, 다시 말하면 공개적으로 선포되어 그 메시지의 의미가 모든 사람들과 백성들에게,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들에서 분명히 인지될 수 있도록 하는 권한뿐만 아니라 그럴 의무를 부여받았다.” Das rechte Wort zur rechten Zeit, § 41.
고 천명한다.

2.3. 법치국가의 질서와 복잡하고 다원주의적인 사회의 현실을 염두에 두고서 「백서 지침서」는 교회가 ‘파수꾼의 직무’만을 수행한다고 해서 교회의 공적 임무를 더 이상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교회는 ‘사회세력들 사이의 동반자적 대화’(§ 6)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준비를 해야 한다. 교회의 입장 표명은 ‘특정한 문제들에 대한 공적인 토론’을 촉진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것은 “의식의 형성과 의견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망각되었거나 은폐된 사실들을 언어화하고, 무엇보다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자극을 주려는 시도이다.”(§ 46) 상대의 입장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한사코 관철하려는 세력들을 향해서 교회가 제시하는 의견들은 공동체 전체에 관련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49) 교회의 백서가 이처럼 이해당사자들의 대립을 넘어서서 공동체 전체의 관점에서 교회의 공적인 입장을 천명해야 한다는 지침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비판적인 견해가 제시되어 왔다. 독일의 사회적 개신교의 전통에 충실한 트라우고트 예니헨은 이 맥락에서 교회가 선입견 없는 입장을 대변한다고 하면서 과연 ‘자신의 이해관계들’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날카롭게 묻고 있다. 이것은 교회가 자신의 기득권 구조에 묶여서 현상유지를 택하는 정치세력들과 사회세력들 편에 서기 쉽다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지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T. Jähnichen, “Die Konzeption und Bedeutung der Denkschriften der EKD,” Kirche und Gewerkschaften im Dialog I: Mitbestimmungsdiskussion und Ansätze kritischer Solidarität, hg. v. Harry D.Jawlonosky(Bochum: SWI, 1987), 158을 보라.

 2008년의 「교회의 여론 형성 임무 백서」는 공동체 전체의 일반적인 이익을 중시한다는 1970년의 「백서지침서」보다 훨씬 전진된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과 약한 사람들,’ 아직 태어나지 않았기에 자신의 생존가능성을 주장할 수조차 없는 미래 세대들을 우선적으로 편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그들의 변호인이 되고 그들에게 정의로운 참여와 공정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촉구하는 봉사의 본질적인 징표이다.” Das rechte Wort zur rechten Zeit, § 44. 이러한 입장은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의 도전에 대한 EKD의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2.4. 「백서 지침서」는 교회의 공적인 입장 표명이 세 단계를 밟아야 한다고 밝혔다. 첫 단계는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분석이다. 「백서지침서」는 교회가 언제 의견을 표명해야 하는가를 숙고하면서(§ 52-60) 사실에 부합하는 상황분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발전에 관한 정보들을 얻기 위하여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면서 사태의 전모를 파악하면서 언제 어디서 발언을 해야 하는가를 결정하여야 한다.”(§ 57).
둘째 단계는 현안 문제에 대한 사회윤리적 판단의 규준과 이를 위한 신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일이다.(§ 61) 셋째 단계는 구체적인 실천 가능성을 제안하는 일이다.(§ 62) 예니헨은 교회의 백서가 산업사회에서 점점 복잡해지는 사회집단들의 이해 대립을 염두에 두고서 사회적으로 분화된 견해를 표명해야 하지 않는가를 예리하게 묻고 있다. T. Jähnichen, 앞의 글, 160.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신학자들이나 교역자들만으로는 다루기 어려운 전문적인 내용을 포함하기 때문에, 이를 위하여 교역자들과 신학자들, 사회윤리학자들과 인문·사회과학자들, 해당 영역의 전문가들, 정치가들과 공무원들이 참여하는 연구위원회를 조직한다. 교회의 백서를 작성하는 작업은 폭넓은 학제간 대화와 협력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분석-판단-행위의 세 단계로 전개되는 사회윤리학적인 고찰 방식에 따라 교회는 자신의 공적인 의견을 논증적으로 제시하여 공중의 동의를 얻고자 하는데, 이러한 교회의 백서는 성서의 메시지에 부합하고 사실에 부합하기 때문에 그 권위를 인정받는다. 성서부합성과 사실부합성 – 이 두 가지가 교회의 공적인 의견을 판단하는 규준들이다.(§ 19) 마르틴 호네커는 ‘원칙적으로’ 서로 구별되어야 하는 이 두 가지 규준들을 서로 결합시키는 일이 설사 실용적으로 꼭 필요한 작업이라 할지라도 실제로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알고 있다. “이 규준들의 원칙적 상이성 때문에 우리는, 「백서지침서」가 제안하는 바와 같이, 신앙의 진술들과 이성부합적인 경험지식들 사이에서 이리 왔다가 저리 갔다가 할 수만은 없다. 요컨대 개신교 사회윤리의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적인 문제들에 교회의 의견 표명의 과제와 그 한계에 관한 백서」에서도 충분히 해결되지 않았다.” M. Honecker, 앞의 책, 659.


2.5. 정치적인 문제들과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공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경우, 교회의 백서는 교회법에 따라 소집된 백서위원회 구성원들의 의견일치에 따른 합의에 근거하여 채택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백서지침서」는 사회적 이해관계들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에 대한 토론에서 이와 같은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백서지침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의견 일치는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지 않고, 다만 과제로 설정되어 있을 뿐이다. 서로 조언을 하면서 합의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는다면, 과연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 실제로 교회인가 하는 물음이 제기될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말씀을 선포하고 신앙의 가르침을 베풀면서 합의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과 똑같이 모든 사회윤리적 의견 표명도 합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그 특성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34)

2.6. 교회의 백서는 세상을 향한 교회의 공적인 의사 표명이지만, ‘교회 내부의 청중을 설득하고 그들의 의식을 깨우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러한 교회내적인 목표 설정이 소홀히 여겨져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교회의 의견 표명은, 회중이 이를 수용하여 그들 자신의 책임 아래서 그 의견을 구현하거나 정치와 경제를 책임지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교회의 의견이 실현되도록 할 때, 비로소 그 효과를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45).

3. EKD의 사례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지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은 특히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 세속국가의 헌정질서 안에서 세상의 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공적인 의견을 표명하는 책임은 공교회 총회나 공교회들의 협의체인 NCCK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 사안에 따라서는 노회나 지역 NCC 차원에서도 교회의 의견을 공적으로 표명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공교회 총회나 NCCK가 복잡한 현안 문제들에 대한 공적인 의견을 백서의 형태로 표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학제간 대화와 협력에 바탕을 둔 전문가위원회를 꾸려서 상설기구로 운용하여야 한다. 오늘의 세계는 매우 복잡하고 변화의 속도와 그 폭이 매우 빠르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세계 현실과 그 변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전문 지식을 충분히 갖추기 어렵다. 한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들은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고 착잡하게 얽혀 있어서 어떤 현안 문제에 대해 교회가 한결 같은 입장을 취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여 교회의 공적인 의견을 형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방안들 가운데 하나가 전문가위원회의 운영이다. 이에 관련해서 공교회 총회나 NCCK는 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방식, 교회의 공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원칙과 절차 등에 관련된 구속력 있는 지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셋째, 일선 교역자는 교단 총회나 NCCK의 백서를 읽거나 백서를 중심으로 한 지역연찬회 등을 통해 세상의 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정리하여 회중을 설득한다. 일선 교역자가 사회 전체에 관련된 현안 문제들에 대해 교회의 공적인 견해를 제시하거나 이에 관련된 지교회 차원의 토론 과정을 활성화한다면, 회중은 현안 문제에 대해 신학적 근거와 사회윤리적 규준을 갖춘 판단을 내리고 개인적 차원에서, 지교회 차원에서, 노회 차원에서, 총회 차원에서, 교회협의회 차원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를 숙고할 수 있을 것이다.

V. 맺음말

 이 글에서 필자는 먼저 교회가 세상에서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여야 한다는 주장의 신학적 근거를 밝히고, 그 다음에 정교분리가 헌정질서로 자리를 잡고 있는 세속국가에서 세계관적 중립성의 계명 아래서 공론이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하고, 끝으로 세속국가의 헌정질서에서 수립된 공론의 장에서 교회가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을 논했다. 필자는 세속국가의 헌정질서 안에서 교회가 세상의 문제들에 대한 공적인 의견을 제시하고자 할 때 그 의견을 뒷받침하는 세계관적 주장의 층위와 공적 의견의 담론적 구성의 층위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주장했다. 교회의 세계관적 주장을 신학적 언어로 정교하게 가다듬는 경우라 해도 그 주장이 공론의 장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내하되, 세상에 대한 교회의 의견은 공개적 논증을 통해 그 정당성을 확보하는 담론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교회가 세상의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공론의 장에서 표명한다고 해도, 그 의견은 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있을 때에만 비로소 효과적으로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세속사회에서 개신교 교회에 대한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개신교 교회의 사회적 신인도를 높여서 교회의 공적인 의견이 세상을 형성하는 힘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은 한국 개신교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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