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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적 역사관과 기독교 신학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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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적 역사관과 기독교 신학의 대화

강원돈(한신대 신학부 교수/사회윤리)

I. 머리말: 잊힌 대화의 복원과 과제의 설정

 유물론적 역사관과 기독교 신학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갈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질문이 아예 성립될 수 없다고 여겨질 것이다. 유물론적 역사관과 기독교 신학이 서로 대척점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둘 사이에서 대화는 불가능하고 단지 상호 정죄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유물론적 역사관이 종교를 아예 부정하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기독교 신학은 유물론적 관점을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단정 짓는다. 유물론적 역사관이 성립했을 때부터 기독교인들의 대다수는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 동안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 사이에는 많은 대화가 있었고, 그 대화는 사회와 역사에 대한 견해를 놓고 진행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러시아와 동구 여러 나라들에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서고 교회가 그 체제 안에 현존하면서 기독교 신학은 사회주의 사회의 역사적 발전에 관한 유물론적 견해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 가운데 동독에서 정식화된 ‘사회주의 속의 교회’(Kirche im Sozialismus)는 주목할 만하다. 동독에서 교회는 사회주의 사회의 역사적 발전에 나름대로 이바지하면서도 기독교 신앙의 고유성을 지킨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동독의 정치 엘리트들도 교회를 사회주의 사회의 필수불가결한 일부로 통합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회주의 속의 교회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 수준에서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대화가 진행된 사례로 꼽을 수 있다.(1)
 사회주의 속의 교회의 경험과는 별개로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의 대화를 촉진시킨 계기들은 다양하게 주어졌다. 그 가운데 중요한 계기로 꼽을 만한 것은 마르크스의 고전에 대한 새로운 독해를 통하여 마르크스의 휴머니즘이 재발견된 일이다. 이로써 마르크스주의자들 가운데 일부가 소련에서 발전한 이른바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반기를 들고,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를 추구하였고, 기독교 신학과도 개방적인 자세로 대화를 시도했다. 이러한 시도는 1960년대 말에 촉진되기 시작하여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의 대화’로 자리를 잡았다.(2)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의 대화에 자극받은 일부 기독교인들은 종교가 지배계급의 이익에 이바지하는 반동적 성격을 띠는 경향이 있다고 보는 유물론자들의 비판을 신중하게 받아들여 기독교 개혁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했다. 그 가운데 급진화된 기독교인들은 이보다 훨씬 더 대담하고 적극적으로 유물론적 역사관을 수용하고자 했다. 그들은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관점이 아래로부터 역사를 바라보는 민중적 관점과 통한다고 생각하여 역사 발전을 주도하는 기독교인들의 운동을 유물론적 관점에서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자 했다. 이것이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에서 나타났던 마르크스주의 수용의 특징이다.(3)  
 그러나 1990년을 전후로 해서 현실 사회주의 사회가 몰락한 뒤에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 혹은 기독교 신학과 유물론적 역사관 사이의 대화는 더 이상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되었다.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은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로 간주되었고, 역사가 대립과 모순을 계기로 해서 발전한다는 관념이 더 이상 통용되지 못하리라는 ‘역사의 종말’(4) 담론이 힘을 얻게 되었다. 개개인이 자본주의에 포섭되어 개인의 욕망을 충족하는 데 만족하는 데 그치고, 개개인의 고립과 분산이 두드러지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계급 주체의 해방실천을 강조하는 유물론적 역사관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물론적 역사관과 기독교 신학의 대화를 화두로 던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만약 이 화두가 유물론적 역사관과 기독교 신학의 대화를 단순히 회상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 화제 거리는 큰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다. 회상을 넘어서서 미래를 전망하면서 유물론적 역사관과 기독교 신학의 대화를 모색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둘 사이에서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한다면, 그 판단은 분명히 신자유주의 형태로 발현되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서 ‘다른 세상’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대안은 없다!”는 선언을 담아내고 있는 견고한 ‘역사의 종말’ 프레임을 깨뜨리고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비전을 강화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사회체제 내부의 모순과 대립을 매개로 하여 결집된 세력들 사이의 투쟁을 통하여 사회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관점을 가다듬는 데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역사발전의 동학을 해명하고자 했던 유물론적 역사관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그 관점이 오늘의 상황을 살피고 대안을 사유하는 데 여전히 이바지할 수 있는가를 규명하고자 할 것이다. 대안을 추구하고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데 관심을 갖는 기독교인들도 유물론적 역사관이 현실과 역사를 설명하는 역량을 갖고 있는가를 따지고 싶어 할 것이다.
 유물론적 역사관과 기독교 신학의 대화는 그 초점이 역사를 보는 관점과 방법에 맞추어진다. 그렇게 초점을 잡고 나면, 둘 사이의 대화에서 결정적인 질문은 기독교 신학의 관점에서 유물론적 역사관을 용인할 수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기독교 신학의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할 때 유물론적 역사관으로부터 취할 것이 무엇인가일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 필자는 우선 역사를 바라보는 기독교 신학의 관점을 가다듬고자 한다. 그것은 종말과 역사를 서로 매개하는 적절한 신학적 관점을 설정하는 일이다. 그 다음, 현실의 변화와 역사의 발전에 관한 이론으로 구상되었던 유물론적 역사관이 역사 연구에 미친 공과를 검토하고자 한다. 이에 관련해서 역사 연구의 방법론으로서 채택되었던 유물론적 역사관과 현실 사회주의 사회에서 공식적 이데올로기로 정립되었던 역사적 유물론(HISTOMAT = Historischer Materialismus)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의 것이 방법에 해당한다면, 뒤의 것은 역사 형이상학 같은 것으로 간주된다. 신학적 관점에서 둘에 대한 접근과 평가는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이 둘에 대해 비판적인 검토를 끝내고 나면, 마지막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기독교 신학이 역사와 현실을 바라보는 유물론적 관점과 방법을 수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그리고 만일 그럴 수 있다면,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분명한 답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II. 종말과 역사를 어떻게 매개하는 것이 적절한가?

 기독교의 역사관은 구원사관이다. 구원사관은 세상의 창조와 타락과 구원의 역사적 드라마이다. 타락한 세상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선취되었다. 하지만 그리스도 바깥에 있는 세상은 여전히 죄의 지배 아래 있으니 아직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세상의 구원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것이다.
 세상은 구원을 향한 도정에 있다. 세상의 역사는 종말을 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종말은 역사 너머인가? 종말의 빛에서 역사는 어떻게 이해되고 해석되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결국 역사와 종말을 어떻게 서로 매개할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귀착된다.

1. 종말의 빛에서 역사를 바라보기

 종말의 빛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않다. 신학의 역사에서 그 관점들은 매우 다양하게 제시되어 왔고, 어떤 관점들은 서로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충돌하기까지 했다. 아래서는 역사와 종말에 관한 몇 가지 관점들을 살피고, 본회퍼에게서 역사와 종말이 어떻게 매개되고 있는가를 규명한다.

 1) 전(前)천년설이나 세대주의적 말세론자들은 역사와 종말의 관계를 놓고서 후(後)천년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그 어떤 점에서도 의견을 공유하지 않을 것이다. 전(前)천년설이나 세대주의적 말세론자들은 종말 이전에 세상과 그 역사가 타락의 극한에까지 치달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기에 세상을 형성하려는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역사 허무주의가 지배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서 후(後)천년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교육이나 윤리나 소명에 따르는 직업생활을 통하여 사회를 개혁하고 역사를 발전시켜 가다보면 시나브로 하나님 나라의 문턱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은 연속선상에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세상과 역사의 진보는 긍정될 수밖에 없다.
 
 2) 종말의 빛에서 세상을 부정하는가, 긍정하는가의 문제는 20세기에 들어와서 변증법적 신학과 질서신학을 서로 갈라놓았다. 변증법적 신학을 정식화한 칼 바르트(Karl Barth)는 역사와 종말의 연속성을 부각시킨 자유주의 신학을 거부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적 타자성을 내세우고 하나님의 세상의 현실에 대한 총체적인 심판을 강조했다. 하나님의 심판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긍정하기 위한 변증법적 계기로 이해되어야 하겠지만, 세상의 심판과 부정을 전면에 부각시킨 초기 바르트의 신학에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세상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본격적인 주제로 설정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세상을 형성하고자 하는 프로그램들에서 “하나님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는 머리카락 하나 들어갈 만큼도 서로 관련되거나 서로 조응하지 않을 것”(5)이라고 냉정하게 잘라 말할 정도였다.
 바르트와 거의 대척점에 서 있었던 파울 알트하우스(Paul Althaus), 베르너 엘러트(Werner Elert) 같은 신루터파 신학자들은 질서신학을 구축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현존질서를 부여하였다고 본 아돌프 폰 하알레쓰(Adolf von Harless), 빌헬름 슈타펠(Wilhelm Stapel), 에마누엘 히르쉬(Emanuel Hirsch) 등의 보수주의를 받아들였다. 그들은 창조질서와 보존질서를 동일시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들은 죄의 공격으로부터 세상을 보존하는 질서들이며, 그 질서들은 마지막 때까지 유지된다는 것이다. 질서신학자들은 종말의 빛에서 세상의 질서들을 바라볼 필요가 없었다. 세상의 질서들은 종말이 임할 때까지 그 나름의 법(Eigengesetz)에 따라 유지되도록 하나님이 정해 놓았기 때문에 그 질서들을 훼파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렇게 주장하는 질서신학은 세상의 질서를 그대로 옹호하는 보수주의의 아성으로 전락했다. 알트하우스와 엘러트의 질서 관념은 나치 국가를 옹호하는 어용신학의 핵심을 이루었다.(6)
 
 3)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변증법적 신학과 질서신학이 종말의 빛에서 세상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한편으로 칼 바르트의 변증법적 사유에 맞서서 마지막 때가 올 때까지 세상이 보존된다는 점을 확실하게 주장하고, 다른 한편으로 질서신학자들에 대항해서 세상의 현실이 하나님의 현실에 의해 심판되고 갱신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르트에게서 약화된 세상의 보존과 긍정을 제대로 살리고, 질서신학자들이 외면한 세상의 심판과 부정을 활성화하는 신학만이 파시즘과 볼셰비즘의 공격 아래서 질서를 잃은 당대 세계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계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본회퍼는 생각했다.
 이러한 신학을 정립하기 위하여 본회퍼는 궁극적인 것과 궁극 이전의 것을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구분하면서도 이 둘을 서로 연결시키는 창조적인 사유를 전개했다. 그는 철저하게 기독론적으로 사유했고, 자신의 사유를 종말론적으로 관철시켰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은 죄가 세상에 대해 마지막 말을 하는 주권자가 아니고, 죄의 권세가 종말론적으로 무효화되었다는 것(7)을 깨닫게 하고, 세상이 죄의 지배로부터 해방되는 궁극적인 현실을 내다보게 한다. 이러한 본회퍼의 통찰은 “궁극 이전의 것은 궁극적인 것에 의해 완전히 지양되고 무효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속한다.”(8)는 명제에 담겼다. 그는 이 명제를 가다듬은 다음에 곧바로 궁극 이전의 것이 언제까지 존속하는가를 물었다. 그에게 궁극 이전의 것은 그 기한이 정해져 있고, 그 기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정해졌다는 것만큼 분명한 것은 없었다. “오직 하나님이요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만이 존재한다. 그 분만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그 분을 통해 세상은 그 종말을 향해 성숙해질 때까지 존속한다.”(9) 본회퍼는 종말이 이르기까지 존속하도록 허락된 세상에서 피조물의 생명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것을 ‘자연적인 것’이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성격화했다. “자연적인 것은 타락한 세계에서 하나님에 의해 보존되고 그리스도를 통한 인의와 구원과 갱신을 고대하는 생명의 모습이다.”(10)
 ‘자연적인 것’은 본회퍼에게서 역사와 종말을 매개하는 개념적 장치이다. ‘자연적인 것’은 단지 죄에 물든 것으로 간주되어 철저하게 부정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또 ‘자연적인 것’은 이미 완성된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고, 있는 그대로 정당화되어서도 안 된다. ‘자연적인 것’은 세상과 종말, 궁극 이전의 것과 궁극적인 것이 긴장 속에 있음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자연적인 것’은 궁극 이전의 것이 궁극적인 것을 향해 투명해지도록 세계를 형성할 책임을 명확하게 인식하여야 할 지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본회퍼의 형성신학과 책임윤리가 그 윤곽을 드러낸다. ‘자연적인 것’을 보존하고 끊임없이 갱신하면서 세상을 형성하여야 할 인간의 책임은 궁극적인 것을 내세워 궁극 이전의 것을 단순히 부정할 수 없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또한 그 책임은 궁극적인 것을 지향하지 않고서 궁극 이전의 것에 타협할 수 없다는 것도 전제한다.(11) 궁극적인 것의 현실성에 비추어 보면, 궁극 이전의 것을 항구적으로 작동시키는 고유한 법칙 같은 것은 없다. 그러한 법칙을 핑계로 내세워 하나님이 세상에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12) 하나님이 마지막 때까지 존속하도록 허락하신 ‘자연적인 것’을 제대로 다루지 않고서는 세계를 형성하는 그 어떤 책임도 제대로 질 수 없다.
 요컨대, 본회퍼에게서 역사와 종말은 형성신학적으로 매개되어, 세계를 형성하는 윤리적 실천의 지평을 이루고 있다.

2. 궁극 이전의 것을 궁극적인 것에 투명하도록 만드는 다양한 실험들

 본회퍼는 궁극 이전의 것이 궁극적인 것에 투명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으나, 마지막 때가 오기 전까지 존속하도록 허락된 궁극 이전의 것을 궁극적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을 경계하였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통치가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간구하지만, 사람들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할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13)
 이처럼 궁극적인 것과 궁극 이전의 것 사이의 질적인 차이와 긴장을 유지하면서 세상을 책임 있게 형성하고자 할 때, 사람들이 기획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은 참으로 다양할 것이다. 아래서는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구상할 때 유념할 점들을 몇 가지 생각해 본다.

 1)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땅 위에 임하기를 간구하지만, 하나님의 통치가 땅 위에 임하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주권적 결단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것을 고대하고, 도래하는 그 나라에 참여하기 위해 세상의 통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통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마가 1:15; 10:43)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본회퍼는 궁극적인 것과 궁극 이전의 것 사이의 질적인 차이를 적절하게 강조했다. 그 차이는 흔히 하나님 나라의 절대성과 세상의 상대성 사이의 간격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에 대한 죄의 지배가 하나님의 지배로 교체됨으로써 그 윤곽이 이미 드러났고,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영광 가운데 나타나시는 마지막 때에 완성될 것이다. 묵시록은 그 나라가 세상 너머를 가리킨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이전의 하늘과 땅과 바다’는 물러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한다고 표현했다.(계시 21:1)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과 그 위의 삼라만상에 대한 죄의 지배가 종식되고, 만물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바른 관계를 맺고 그 관계들 안에서 충만한 생명을 누리는 평화의 나라이다. 그 나라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기까지 할 정도로 강성해진 죄의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무력화된 사건을 통하여 이미 선취되었기에, 기독교인들은 죄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죽음이, 그리고 마침내 죄도, 그리스도의 발아래 놓여서 만물에 대한 그리스도의 주권이 회복되고 성자가 아버지께 그 주권을 되돌려드려서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이 구현되는 나라가 약속되었음을 ‘회상’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14)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경험되고 대망된다.
 그 나라는 죄의 지배 너머에 있는 나라이지만,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죄가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아직 벗어나 있지 않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고대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할 일은 죄의 권세들과 세력들을 발아래 두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투쟁과 영적인 현존에 동참하여 죄의 현상 형태를 인식하고 그것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죄의 전면적인 지배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종말론적으로 무력화되고 무효화되었기에 이 세상에서 죄의 현상 형태들에 맞서는 기독교인들의 투쟁은 죄의 잔여세력들을 정리하는 소탕전의 성격을 띤다. 그러한 임무에 종사하는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도정에서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다.

 2) 하나님 나라를 향한 도정에서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인간의 기획과 하나님 나라를 서로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도정에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세우는 일이다. 이 두 가지 유념사항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지만, 따로따로 고찰하는 것이 알기 쉽다.
 먼저 인간의 기획을 갖고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다고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신학적 상식으로 여겨지지만, 이 둘을 서로 혼동하는 심각한 사태가 종종 벌어지곤 한다. 예컨대, 성서에서 간헐적으로 증언되는 메시아주의적 운동들이나 역사에서 자주 관찰되는 종교적 혹은 세속적 메시아주의적 운동들에서 그런 혼동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메시아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당대 현실을 급진적으로 변혁하거나 넘어서기 위해 펼친 운동들은 그 성공 여부를 떠나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 운동들의 목표가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으로 정해지면, 한정된 수단들과 자원들에 제약된 전략들과 전술들에 의존하는 운동 그 자체의 상대적 성격이 불식되고 절대적 성격이 전면에 부각된다. 그 운동에 참여하지 않거나 저항하는 사람들은 절대적인 의미의 적으로 규정되고, 그 적들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이 정당화되고, 심지어 신성화된다. 상대적인 성격을 갖는 운동을 통하여 절대적인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무모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맹목적이다.
 세속적인 메시아주의는 세속적인 이데올로기를 절대화하고 그것을 권력과 결합하여 관철하고자 할 때 피할 수 없이 나타난다. 세속적인 메시아주의의 광기는 히틀러를 ‘구원자’(Heiland)로 숭배하고, 인종차별과 유대인 멸절을 국시(raison d'État)로 설정한 나치 독일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났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틀에서 계급의 적들을 가차 없이 제거하고 강제수용소(gulag)에 억류했던 스탈린주의, 미국의 세계사적 사명을 신성시하면서 특정 국가들을 선악의 기준에 따라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미국의 신보수주의(네오콘) 등도 세속적 이데올로기의 절대화에 동반되는 메시아주의적 광기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데올로기는 흔히들 ‘허위의식’이라고 지칭될 만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이러한 허위의식을 깨뜨리고 사물과 현실의 실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 비판이 필요하다. 이뎅올로기 비판의 관점에서 보면 이데올로기의 허위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도, 이데올로기가 절대화되어 광기를 부추기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데올로기는 무엇보다도 특수한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유한한 것을 무한한 것으로 위장시키는 사유 과정을 통하여 발생하는데, 문제는 그러한 사유 과정이 사유의 주체에 의해 제대로 의식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데올로기에 오염된 사람들은 그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서 거기서 벗어나기가 매우 힘들다. 이 심각한 문제에 대해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가 오래 전에 날카롭게 지적한 내용은 여전히 참고할 만하다. 니버에 따르면, 자기 자신을 초월하여 무한한 것을 표상하고 그것을 갖고자 하는 인간은 그 자신의 유한성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무한자인 양 행세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한 사람은 자신의 의지를 타인에게 강제하고, 자신의 생각을 절대화하고, 자신이 내세우는 규범이 선과 악을 가르는 척도라고 주장하고, 자신을 구원의 매체로 설정하는 교만에 사로잡힌다.(15) 따라서 인간이 욕구하는 무한성과 인간 현존재의 유한성이 가져다주는 좌절과 불안을 회피하고자 하는 강박에 이끌려 인간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 드는 이 교만을 경계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그 무엇을 기획한다고 해도, 그것은 이데올로기로 경직화되고 쉽게 절대화되어 절대주의적이고 메시아주의적인 편향을 보이기 쉽다.
 
 3) 그 다음에,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도정에서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이정표를 세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이정표가 하나님 나라를 가리킬 뿐이지 결코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그 이정표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전망을 갖고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중간 목표들이 적히기 마련이다. 그 중간 목표들은 역사의 조건들 아래서 한정된 지식들과 정보들, 한정된 역량들과 자원들을 고려하여 세상이 하나님 나라에 투명하도록 세상을 형성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제안된 잠정적인 목표들에 불과하기 때문에, 개방적인 토론과 성찰을 통하여 그 적절성이 검토되고 언제든 수정되고 보완될 수 있어야 한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첫 이정표를 세우고자 했던 사람들은 그 이정표가 세상과 하나님 나라 사이에 설치된 ‘중간공리’(middle axiom)라고 생각했다. ‘중간공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면서 세상을 책임 있게 형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견지하여야 할 판단의 규범이고 행위의 지침이다. 이 개념을 제시한 조셉 우스워스 올드햄(J. W. Oldham)은 절대적인 하나님 나라와 상대적인 세상의 간격을 의식했고, 하나님 나라의 절대적 요구는 세상에 적합한 방법을 통하여 근사치적으로 충족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16)
 이러한 생각은 1948년 WCC 창립총회에서 채택되었던 첫 이정표인 ‘책임사회’ 구상에 표현되었고,(17) 1975년 제5차 나이로비 총회에서는 ‘정의롭고 참여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1983년 제6차 뱅쿠버 총회에서는 ‘정의, 평화, 피조물의 보전’으로 정식화되었다. 이 이정표들은 당대의 상황과 문제들에 대한 분석에 근거하여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갖고 추진하여야 할 에큐메니칼 운동의 방향과 목표들을 제시한다. 이러한 운동 방향과 목표들은 에큐메니칼 협의회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개방적인 토론과 성찰을 통하여 정교하게 가다듬어져 왔고, 그 적절성에 대한 끊임없는 검증을 거쳐 수정되고 보완되어 왔다.(18)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형성된 에큐메니칼 사회윤리는 매우 뛰어난 담론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갖고 현실의 문제들을 풀어가기 위해 설정하는 판단의 규범들과 행위의 지침들은 오직 개방적인 담론 과정을 통해서만 이데올로기적 절대화의 함정을 피해갈 수 있다.

 4)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갖고 세상을 형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들과 실험들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형성은 개혁의 길을 따를 수도 있고, 혁명의 길을 따를 수도 있다. 공론과 입법을 통한 길도 있고, 기존 체제에 대한 부분적 혹은 전면적인 저항이나 폭력 투쟁의 길을 택할 수도 있다.
 긍극 이전의 것이 궁극적인 것에 투명해지도록 세상을 형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선택하는 노선은 현실주의이거나 전망을 갖는 개혁주의일 것이다. 이러한 노선을 명료하게 가다듬어 정식화한 신학자들은 라인홀드 니버나 칼-하인츠 벤들란트(Karl-Heinz Wendland), 아루투르 리히(Arthue Rich) 등 많이 있지만, 귄터 브라켈만(Günter Brakelmann)의 정식화는 매우 돋보인다. 그는 ‘이미 지금’과 ‘아직 아니’의 종말론적 긴장관계에 주목하면서 세계를 형성하는 기독교인들의 기본 입장을 ‘지속적 개혁주의’라는 말로 성격화했다. 지속적 개혁주의는 이미 주어져 있는 세상의 질서에 대해서 ‘비판적 거리’나 ‘비판적 태도’를 취하되, 이를 ‘최선을 다해 가장 좋게 형성하기 위한 책임’을 인수하는 입장이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가다듬었다.

 모든 질서들에 대한 이 역동적인 관점은 “기독교인들에게 그 질서들을 개혁하고 변혁할 필요가 있는 곳에서 그렇게 하고자 책임 있게 결단할 수 있는 내적인 자유를 준다. 기독교인들은 이미 있는 구조를 유일하게 가능한 것과 동일시하지 않으며, 그것을 하나님이 원하는 것과 동일시할 수는 더더욱 없다. 기독교인들은 결혼, 가정, 국가, 경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만큼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어떻게 존재하여야 하는가는 기독교인들의 책임에 맡겨져 있다.”(19)

 브라켈만의 입장에서 주목되는 것은 세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개혁과 변혁이 함께 고려되고 있다는 점이다. 개혁은 사회 세력들과 정치 세력들 사이에서 양보와 타협이 가능할 때 시도될 수 있지만, 기득권 세력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개혁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곳에서는 기득권 바깥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요구가 급진화되어 심지어 혁명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교회가 작은 사람들 편에 서서 사회구조의 혁명적 변화를 촉진하고 작은 사람들이 자유와 사회적 연대 속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이 그리스도를 주(主)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작은 사람들을 편드는 당파성을 마다하지 않고, 급진적 전략과 전술을 선택하여 작은 사람들의 해방을 실천하는 과정을 성찰하고 이를 지원하고자 했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 II장에서 펼쳐진 논의에서 필자는 역사와 종말을 적절하게 매개하는 신학적 관점을 가다듬고, 종말의 빛에서 세상을 책임 있게 형성하고 역사를 발전시켜야 할 기독교인들의 책임을 명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다. 필자는 하나님 나라를 전망하면서 세상을 형성하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이 이데올로기적 절대화의 함정을 피하되, 궁극 이전의 것이 궁극적인 것에 투명해 지도록 세계를 형성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실험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을 갖고서 다음 III장에서는 유물론적 역사관과 역사적 유물론의 문제를 살피고자 한다.

III. 유물론적 역사관과 유물론적 역사 형이상학

 유물론적 역사관과 역사적 유물론(HISTOMAT)은 서로 엄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유물론적 역사관은 유물론적 관점에서 역사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방법론적 지침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에 반해 소련에서 정립된 역사적 유물론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사회와 역사에 적용하여 사회발전과 역사발전의 법칙을 규명하고자 하고, 일종의 역사 형이상학의 성격을 띤다. 유물론적 역사관이 역사적 유물론으로 교리화되는 과정에는 많은 요인들이 작용했다. 마르크스주의의 범속화, 러시아 혁명 이후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형성 등이 그것이다.
 이 짧은 글에서 이 모든 내용들을 상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개요만이라도 제시하여 기독교 신학이 유물론적 역사관과 역사적 유물론에 대해 각각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것이 적절한가를 밝힐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면 유물론적 역사관을 살피는 것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하기로 한다.

1. 역사와 현실을 바라보는 유물론적 관점과 방법

 유물론적 역사관을 제시한 이론가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칼 마르크스이다. 그는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현실과 그 변화에 대한 이론들의 맹점을 분석해서 이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출중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일평생 ‘분석’과 ‘비판’에 집중했고, 자신의 생각을 어떤 체계나 프레임에 넣으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그는 서로 얽혀 있는 현실의 여러 측면들과 그것들의 변화 과정을 꼼꼼하게 분석하면서 얻은 통찰을 현실 분석과 역사 연구의 지침으로 정리해 두었을 뿐이다. 마르크스가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함께 쓴 것으로 알려진 『독일 이데올로기』에 등장하는 방법 지침이나 『정치경제학 비판에 대하여』의 서문에 나오는 유명한 방법 지침이 그것이다. 아래서 집중적으로 분석하겠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지침에 불과하다. 그 지침을 역사적 유물론의 역사 법칙들처럼 불멸의 교리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고, 지나친 판단이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의 유물론이 보여주는 특징을 살펴야 한다. 아주 오래 전부터 필자는 그 특징이 ‘실천’과 ‘법칙’에 대한 마르크스의 독특한 이해에서 드러난다고 보아왔다.(20)

 1) 마르크스는 1841년 박사학위 논문(21)을 쓴 이후 1848년 프루동의 철학을 비판한 『철학의 빈곤』을 쓸 때까지 유물론을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그는 한편으로는 의식이 존재에 앞서고 존재를 구성한다고 보는 데카르트 이래의 의식철학에 대해 단호하게 반기를 들었다. 그는 1844년의 『경제학·철학 초고』에서 의식철학의 정점에 서 있는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을 비판하고 뿌리로부터 전복함으로써 의식철학의 전통과 단절했다.(22) 또 다른 한편으로 그는 존재가 의식에 선행하고 의식이 존재의 반영이라고 보는 단순하고 소박한 전통적인 유물론을 비판적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마르크스는 의식과 존재, 의식과 대상이 서로 마주보는 것으로 설정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인간의 ‘실천’을 통하여 서로 매개된다는 점을 포착하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통찰을 유물론의 핵심으로 설정했다.(23) 전통적인 유물론자들처럼 존재를 단지 직관이나 감각의 대상으로 설정하기만 하면, 존재와 의식을 매개하는 인간의 ‘주체적’ 실천이 망각되어, 유물론이 사회와 역사에 관한 이론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판단이었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실천은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 대상을 향한 활동이다. 그는 대상을 향한 활동을 노동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헤겔은 대상을 정립하는 정신의 노동을 이야기하고, 정신이 낮은 단계로부터 높은 단계로 발전하면서 세계를 구성하는 노동을 수행하는 과정을 서술하였지만, 마르크스는 노동의 주체가 정신이 아니라 몸과 마음, 감성과 지성, 욕망과 의지를 가진 인간이라고 보았고, 인간이 자연의 일부분으로서 자신에게 속한 고유한 역량을 갖고서 자기 앞에 주어져 있는 대상들에 대해 활동하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대상을 생산하며 살아간다는 점을 중시하였다.(24) 마르크스는 실천을 통하여 의식과 존재가 서로 매개되는 과정을 중시하였고, 이런 점에서 그의 유물론은 실천적 유물론이라고 성격화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홀로 고립되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이 점에서도 의식철학과 전통적 유물론으로부터 확연하게 구별되는 입장을 취했다. 의식철학은 오직 의식을 갖고 있는 주체(res cogitans)를 설정하는 것으로 끝났다. 의식철학의 전통에서 발전한 인식론은, 칸트에게서 잘 드러나듯이, 대상이 의식에 의해 구성되었음을 확인하는 선험적 통각의 주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 이외에 더 필요한 것이 없었다. 의식과 인식의 주체는 추상적 존재이고, 그것은 논리적으로 단수이다. 전통적인 유물론도 자기 앞에 있는 대상을 직관하거나 감각하는 주체를 설정한다는 점에서 직관과 감각의 주체를 추상적 존재로 파악한다. 마르크스는 달랐다. 그는 사람을 관계들 속에 있는 사회적 존재로 파악했다. 이러한 생각은 “인간 존재는 개별적 개인성에 안주하는 추상물이 아니라, 그 현실을 놓고 보면 사회적 관계들의 응결체”(25)라고 한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 6에서 명확하게 표현되었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노동을 하면서 자연적 대상들을 접하고 변형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일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하나는, 마르크스 자신이 다소 난해하게 표현한 대로 옮긴다면, 인간이 자연에 감응하고 자연이 인간으로 생성된다는 것이고,(26)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이 노동을 통하여 역사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우선, 마르크스의 난해한 어구는 인간이 자기 앞에 있는 대상을 향해 활동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스스로 자연에 적응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의 힘을 활용하고 자연 대상들을 변형하여 문화를 형성한다는 뜻이다.(27) 따라서 마르크스가 실천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노동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대상을 향한 활동은 자연을 파악하고 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지식을 창출하는 과정이고, 자연이 그 모습을 변형하여 문화의 필요불가결한 일부로 편입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다음에, 인간이 노동을 통하여 문화를 형성하는 과정은 그 자체가 역사의 과정이다. 인간은 그 전대에 이룩한 문화적 성과를 딛고서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적 활동을 펼쳐나가며, 바로 이러한 과정이 누적되면서 역사가 발전되어 간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생각이었다.(28)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위에서 간추린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상식에 가깝다. 마르크스 당대에 독일 관념론의 영향이 워낙 컸고, 독일 관념론의 정점이었던 헤겔 철학과 대결하였던 헤겔 좌파 철학자들과 포이에르바하의 대응이 불철저했기 때문에 마르크스의 헤겔 비판과 헤겔 좌파 철학자에 대한 비판이 철학사에서 신기원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2) 마르크스는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펼쳐나가는 노동과 그것을 매개로 해서 형성되는 교류관계들이 인간 사회와 역사의 근본을 이룬다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교류관계를 중심으로 해서 제도들과 사상들을 살피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마르크스가 유물론적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 기본 입장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그런데 그 입장은 마르크스가 책상에서 궁리해낸 역사 도식이 아니라, 마르크스가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에 신문 기자와 편집인으로서 모젤강 유역의 농민들과 산림 채취인들이 처한 상황과 문제들을 분석하고, 그가 일상적으로 접했던 프로이쎈 관헌국가의 적폐들과 수많은 사람들을 억압하고 수탈하고 비인간화하는 제도들을 분석하고, 현실의 모순들을 은폐하거나 그것들을 바로 보지 못하는 철학들과 경제학 이론들을 분석하면서 얻은 통찰이었고, 현실과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관점과 방법에 관하여 정리해 둔 지침이었다. 그 지침은 『독일 이데올로기』에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다.

“요컨대, 이 역사관은 현실적인 생산과정을, 그것도 직접적인 생활의 물질적인 생산으로부터, 설명하고, 이 생산양식과 결합되어 있고 그것에 의해 산출된 교류형태, 곧 다양한 단계의 부르주아 사회를 전체 역사의 토대로서 파악하고, 부르주아 사회의 활동을 국가로서 파악할 뿐만 아니라, 의식의 모든 다양한 이론적 산물들과 형태들, 곧 종교, 철학, 도덕 등등을 부르주아 사회로부터 설명하고, 그 의식의 산물들과 형태들로부터 그 탄생과정을 추적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게 하면, 당연히 사태를 그 총체성에서 (따라서 이 다양한 측면들의 상호작용까지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각각의 시대를 고찰할 때, 이 역사관은 부르주아 역사관처럼 어떤 범주를 추구할 필요가 없다. 그 역사관은 계속해서 현실적인 역사의 밑바닥에 발을 딛고 서 있으며, 이념으로부터 현실을 설명하지 않고, 물질적 실천으로부터 이념의 구성체들을 설명한다. 따라서 이 역사관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의식의 모든 형태들과 산물들은 정신적 비판을 통해서가 아니라, 다시 말하면 ‘자기의식’ 으로 해체하거나 ‘유령,’ ‘도깨비,’ ‘정신병자’ 등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해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관념론적인 허깨비들이 생성된 실제의 사회관계들을 실천적으로 뒤집어엎음으로써 해체할 수 있다는 것이고, 종교, 철학, 그 밖의 이론 등의 역사를 추동하는 힘은 비판이 아니라, 혁명이라는 것이다.”(29)

 위의 인용문은 유물론적 역사관의 최초의 정식이라고 받들어지기도 하는데, 그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역사의 연구에서 바탕이 되는 것은 경제적 관계들이고, 이를 중심으로 해서 한 사회의 정치관계, 사회관계, 사상 및 종교의 여러 표현 형태 등등을 상호 연관 관계 속에서 총체적으로 파악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의식의 여러 가지 형태들은 삶의 물질적 생산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의식의 표현 형태들을 바꾸려면 그 바탕을 이루는 사회적 관계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내용의 단순성을 고려하여, 뒤의 것부터 검토한다면, 이 부분은 마르크스의 유물론의 기본 입장을 재정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의 삶이 의식을 규정하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의식의 표현 형태들을 비판한다고 해서 그것들이 바뀌는 것이 아니고, 그것들을 산출한 현실 관계들을 혁명적으로 바꾸어야 비로소 의식의 표현 형태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수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토대가 정치적 상부구조와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도식적인 주장의 근거로 수용되기도 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마르크스는 역사에 관한 도식이나 체계를 구성하는 것을 경계하고 도리어 구체적인 현실관계들을 분석하는 데 치중하였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위 인용문의 앞부분은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을 잘 정리하고 있다. 이 글에서 마르크스가 말하는 ‘총체성’은 헤겔적 의미의 총체성이 아니라, 위의 인용문에서 그 낱말 바로 뒤에 나오는 괄호 속의 문구가 강력하게 시사하듯이, 사태의 다양한 측면들을 서로 연관시켜 일관성 있는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이 역사 발전에 관한 총체적인 도식을 제시하는 일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위의 본문에서 부르주아 역사관이 추상적인 ‘범주’로써 역사를 도식적으로 설명하는 병폐를 보인다고 지적한 데서도 재차 확인된다.
 마르크스가 현실 분석과 역사 연구의 ‘실마리’(30)로 제시하고 있는 유물론적 역사관은 사회사나 사회사상사에서는 거의 의문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인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발전시키는 경제과정과 그 변화에 유념하면서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회조직들의 발전, 권력 배치의 변동, 과학과 기술의 발전, 문화적 전통의 형성과 그 변용 등을 서로 연관시켜 살피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관점은 개념과 사상의 역사를 추상적으로 다루는 철학사에서도 도외시하기 어렵다. 무엇이 개념과 사상의 변화를 추동하였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개념과 사상을 발전시킨 사람들의 현실적인 삶의 과정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경제사 연구를 치밀하게 한 학자였다. 그는 오랫동안 생산력의 발전이 생산관계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구체적으로, 실증적으로 분석하였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자리를 잡게 된 다양한 역사적 경로들을 치밀하게 분석했다. 그는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생산관계가 변화되는 과정이 격렬한 계급투쟁의 양상을 보인다는 것을 관찰하였고, 그러한 역사적 변화가 정치제도와 사상형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그 때문에 그의 연구 방법과 관점을 정리한 두 가지 지침들은 현실과 그 운동을 역사적으로 형성된 구체적인 맥락에서 파악하고자 노력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마르크스는 역사를 지배하는 일반법칙이 있다거나 경제를 지배하는 보편적인 법칙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 법칙들을 발견하거나 정식화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3) 물론 마르크스가 ‘법칙’이라는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31)이나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절대법칙’(32) 같은 용어를 쓴 적이 있다.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은 노동력의 교환가치가 끊임없이 낮아지는 것을 가리키고,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절대법칙’은 잉여가치를 기계장치처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특성을 가리킨다. 이러한 어법은 마르크스가 자본의 본원적 축적으로부터 자본주의 사회의 자본 축적에 이르기까지 자본의 축적과정을 역사적으로 면밀하게 고찰한 뒤에 내린 결론을 그 당대 정치경제학자들의 스타일을 빌어 강력하게 표현한 경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축적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끝내는 대목에서 ‘법칙’이라는 표현을 거두어들이고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적 경향’(33)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마르크스가 ‘법칙’이라는 용어를 쓰는 경우는 주로 ‘가치법칙,’ ‘공급과 수요의 법칙’ 등과 같은 용어를 즐겨 쓰는 정치경제학자들의 이론을 내재적으로 비판할 때이다.
 마르크스의 이름과 흔히 결부되어 사용되는 ‘이윤율 저하의 법칙’도 마르크스의 용어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신랄하게 비판한 데이비드 리카아도의 어구였다. 마르크스가 면밀한 분석을 통하여 얻은 결론은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생산수단의 혁신과 확장을 위해 자본투입이 늘어나 불변자본이 총 생산 자본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늘어나고, 노동력 구입에 투입되는 가변자본이 상대적으로 적어지기 때문에 가변자본에서 발생하는 잉여가치를 분자로 하고 생산 총 자본을 분모로 해서 계산하는 이윤율이 경향적으로 낮아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그러한 경향이 지속되는 과정에서도 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가 다양한 편차를 나타내며 발생한다는 것, 임금을 삭감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 기술 독점이나 해외 상품 수입, 화폐 수급 변동 등에 따라 가치실현의 조건들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윤율의 추이를 실증적으로 분석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에서 이윤율을 저하시키는 법칙이 작용하여 끊임없는 자본의 투입을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무너지고 만다고 ‘예언’하는 것이 마르크스가 하려는 일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4) 마르크스는 사회와 역사를 연구하는 유물론적 방법을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그는 사회적 관계들을 추상하여 그것을 이론적으로 표현하는 개념들이나 범주들이나 원리들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지만, 그것들을 갖고서 불변의 법칙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 관계들이 역사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그 관계들을 추상하여 얻은 개념들이나 범주들이나 원리들도 변화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봉건적 사회관계들에서 만들어진 범주들이나 원리들을 갖고서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들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들을 설명하려면 거기에 맞는 범주들이나 원리들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이 점을 놓친다면, 사회와 역사에 관한 연구는 역사를 초월하는 개념들과 범주들과 원리들을 상정하는 형이상학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마르크스는 프루동이 『빈곤의 철학』(1846)에서 불멸의 경제법칙들을 앞세우는 정치경제학자들의 이론을 받아들여 사회와 역사에 관한 형이상학을 구축한 것을 신랄하게 비판하기 위하여 『철학의 빈곤』(1847)을 썼고, 거기서 자신이 취하고 있는 유물론적인 현실 분석과 역사 연구의 방법론적 특징을 다음과 같이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경제학의 범주들은 사회적 생산관계들의 이론적인 표현들이요 그 추상들에 불과하다. 프루동 씨는 진정한 철학자로서 사물을 거꾸로 서게 만들고, 현실적인 관계들에서, 다시금 철학자 프루동 씨가 우리에게 말한바 그대로 표현한다면, ‘인류의 냉정한 이성’의 태중에 잠들어있는 저 원리들, 저 범주들의 육화(肉化)만을 볼 뿐이다. 경제학자 프루동 씨는 사람들이 특정한 생산관계들 아래서 천, 아마포, 비단 등을 만든다는 것을 잘 파악했다. 그러나 그가 파악하지 않았던 것은 이 특정한 사회적 관계들이 천, 아마포 등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만든 생산물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들은 생산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새로운 생산력을 얻음으로써 사람들은 생산방식을 변화시키고, 생산방식, 곧 생계를 꾸리는 방식의 변화와 더불어 그들은 그들의 모든 사회적 관계들을 변화시킨다. 손맷돌은 봉건영주들의 사회를 만들어내었고, 증기제분기는 공업자본가들의 사회를 산출했다. 그런데 물질적 생산력에 맞게 사회적 관계들을 형성하는 바로 이 사람들이 그들의 사회적 관계들에 맞게 원리들과 이념들과 범주들을 형성한다. 따라서 이 이념들, 이 범주들은 그것들이 나타내는 관계들만큼이나 영원하지 않다. 그것들은 역사적이고, 지나가버리고, 잠정적인 생산물들이다. 우리는 생산력의 성장, 사회적 관계들의 파괴, 이념들의 형성의 끊임없는 운동 한가운데서 살아간다. 운동하지 않는 것은 오직 운동의 추상, 불멸의 죽음(mors immortalis)뿐이다.”(34)  

 청년 마르크스가 확립한 유물론적 방법은 마르크스가 일평생 동안 현실 분석과 역사 연구를 하면서 관철시켰던 방법이었다. 그는 흔히 오해되듯이 ‘가치법칙’을 정립하여 그 법칙에 따라 자본주의 사회가 필연적으로 붕괴되는 과정을 서술한 ‘철학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가치법칙’ 같은 것을 내세우는 정치경제학자들의 이론을 ‘분석’하고 그 내적 모순을 ‘비판’하였다. 그가 자신의 이론을 ‘정치경제학 비판’이라고 지칭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독일 사회철학 영역에서 이 점을 가장 정확하게 포착한 슈미트-코바르치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가지고 비판적 경제의 근거를 설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와는 정반대로 그는 가치법칙에 근거한 일체의 정치경제학을 철저하게 비판하고자 한다. 따라서 그는 노동가치론을 가지고서 경제학의 근거를 긍정적으로, 존재론적으로 설정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는 사회적 생산이 가치법칙을 지향하도록 하려고 가치법칙을 긍정적으로 끌어들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의 모든 작업은 자본주의적 정치경제학의 기초들을 뒤따라가며 표기하여 그것의 뿌리에 놓여 있는 내적인 모순을 증명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35)

 마르크스는 데이비드 리카아도가 구축한 노동가치론을 ‘분석’해서 그가 노동과 노동력을 구분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리카아도의 노동가치론을 수정하여 완벽하게 가다듬었고, 노동시장에서 교환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노동력이고, 노동력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그는 노동력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차이, 곧 잉여가치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자본가들에게 독차지되는 것을 폭로했고, 바로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문제라고 파악했다.(36)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유지되는 한 잉여가치를 둘러싼 계급들 사이의 대립과 투쟁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이것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사회 문제의 핵심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마르크스가 구사하는 방법의 철저성을 제대로 인식하려면, 여기서 조금 더 깊이 마르크스의 이론으로 들어가야 한다. 마르크스의 현실 인식은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추상적인 것으로 하강하였다가 다시 추상적인 것으로부터 구체적인 것으로 상승하는 절차로 진행된다.(37)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추상적인 것으로의 하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관계들의 내적인 연관을 분석하여 그 모든 관계들을 관통하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포괄적인 개념을 추상해 내는 작업이고, 추상적인 것으로부터 구체적인 것으로의 상승은 바로 이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해서 현실 관계들의 여러 측면들이 맺고 있는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일관성 있게 서술하는 작업이다.(38) 이러한 방법론에 따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맺고 있는 관계들을 추상함으로써 그 모든 관계들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으로서 ‘상품’ 개념을 가다듬고 상품의 ‘가치’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시회의 작동방식을 설명했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상품의 생산과 교환을 떠나서는 자본주의 사회를 설명할 수 없고, 따라서 상품의 가치가 생산되고 실현되는 과정을 분석하지 않고서는 자본주의 사회를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상품이라는 추상물만 보고, 상품으로 추상된 사회적 관계들을 놓치고, 가치라는 추상물만 보고 가치로 추상된 사회적 관계들을 보지 못한다면, 상품의 ‘물신성’(39)에 홀리게 되어 자본주의 사회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통찰이었다. 노동력 ‘상품’의 교환이 노동의 자본 포섭, 곧 노동자들이 자본가의 지배 아래서 수탈당하는 관계에 들어선다는 것을 뜻함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떻게 자본주의 사회를 설명할 수 있겠는가? 노동력 상품의 ‘가치’가 교환가치일 뿐, 그것의 사용가치가 아니고, 오직 노동력의 교환가치만이 노동의 ‘가치’로 인정되는 사회적 관계들을 들여다보지 않고 어떻게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겠는가?
 마르크스가 수행하고자 한 것이 정치경제학 ‘비판’아고 그 핵심을 이루는 노동가치론 ‘비판’이었다는 점을 인식하는 사람은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잉여가치가 전유되는 사회를 미래 사회로 꿈꾸었다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넘어선 미래를 전망하였다. 그는 그 사회가 노동가치론에 입각하여 구축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노동가치론은 오직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추상해서 얻은 상품의 ‘가치’에 관한 이론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폐지되거나 더 이상 존속하지 않는 사회를 구성하는 이론일 수 없다.

 위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구체적인 현실관계들을 분석하는 방법론이고, 생산력의 발전과 생산관계의 변화에 유념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철학 등에서 나타나는 변화들을 서로 연관시켜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그 이론은 대학 강단에서 가다듬어진 이론이 아니라, 19세기의 부르주아 지배체제에서 비롯되는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실천적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재야 학자의 이론이었다. 그 이론은 부르주아 사회에서 서로 적대적인 계급들이 투쟁하는 현실의 한복판에서 프롤레타리아트 편에 서서 그 계급의 혁명 운동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매우 급진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이론과 방법은 구체적인 관계들에서 출발하여 추상적인 개념 작업을 거쳐 다시 구체적인 관계들로 돌아오는 실사구시의 정신에 투철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은 후대에 이르러 역사적 유물론으로 변질하여 마르크스가 그토록 경계하고 기피하였던 형이상학적 도식주의로 치달았다. 아래서는 이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2. 역사적 유물론의 형이상학적 성격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관점과 방법은 정교한 것이었지만, 모든 사상과 방법이 그렇듯이 범속화의 길을 피해가지 못했고, 결국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상이 그렇듯이 후대 사람들에 의한 교조화를 피하지 못했다.

 1) 1848년의 “공산주의자들의 선언”을 통하여 엄청난 명성과 권위를 갖게 된 마르크스의 생각은 ‘마르크스주의’로 통칭되기 시작하였다. 마르크스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현실과 역사의 발전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쉽게 설명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여러 버전들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마르크스가 이 버전들을 보고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40)고 말했을 정도로, 마르크스주의의 버전들은 마르크스의 생각과 관점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고, 이를 범속화시켰다. 그러나 범속화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마르크스 사상의 교조화였다.

 2) 마르크스의 관점과 방법, 그리고 그의 견해들은 그의 오랜 동료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의해 단순화되고 도식화되었다. 엥겔스의 저작들에는 마르크스의 저작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법칙’이라는 낱말이 빈번하게 사용된다. 인류사의 발전법칙,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발전법칙, 이윤율 저하의 법칙, 운동법칙 등등의 용어는 엥겔스가 즐겨 사용한 표현이었다. 이 점에서 그는 마르크스와 달랐다. 그는 마르크스처럼 구체적인 관계들과 사태의 발전과정을 꼼꼼하게 분석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을 일반화하는 경향이 강했다. 엥겔스의 어법은 역사가 발전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원시 공산사회로부터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 근대 자본주의 사회 등을 거쳐 사회주의 사회로 발전한다는 인상을 자아내었고, 이윤율 저하의 법칙에 따라 자본주의 사회가 필연적으로 붕괴한다는 통념을 굳어지게 만들었다.  
 엥겔스의 도식화 경향은 1870년대에 독일 사회주의 운동의 이념 노선을 명확히 하려는 목적에 따라 유물론적 변증법을 정식화하는 과정에서 두드러졌다. 그는 그 당시에 독일 사회주의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오위겐 뒤링(Eugen Dühring)의 기계적 유물론에 대항해서 유물론적 변증법을 주장했고, ‘세계의 통일성’이라는 개념과 ‘물질의 선차성’이라는 개념을 유물론적 변증법의 핵심으로 삼고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 ‘양질전환의 법칙,’ ‘부정의 부정의 법칙’ 등 무수한 법칙들을 정리해 냈다. 이것은 유물론적 변증법의 존재론적 근거를 탐구하려는 시도인 동시에 유물론적 변증법의 사유 프레임을 짜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41) 그것은 실천을 매개로 해서 의식과 존재를 서로 연관시킨 마르크스의 실천적 유물론과는 사뭇 다른 입장이다. 엥겔스의 유물론적 변증법은 러시아 사상가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3) 마르크스주의가 러시아로 건너간 뒤에 마르크스주의에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사람은 플레하노프(Georgij Valentinovič Plechanov)였다. 그는 엥겔스의 유물론적 변증법을 더 단순화시켜서 이를 변증법적 유물론의 몇 가지 공식으로 정리했고, 러시아 사회주의 운동에 세계관적 통일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그는 세계의 통일성을 굳게 믿었고, 물질의 선차성을 견지하는 것이 모든 유물론의 전제라고 확신했다. 세계의 통일성에서 출발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은 자연의 연구뿐만 아니라 사회의 연구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역사적 유물론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법칙들을 역사에 적용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역사가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전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42)
 플레하노프가 러시아 사회주의 운동에 미친 가장 결정적인 영향은 사회주의 당파의 헤게모니 투쟁에서 세계관을 철학의 근본 문제로 설정하도록 한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레닌은 사회주의 당파의 헤게모니를 둘러싼 격렬한 투쟁에서 멘셰비키가 에른스크 마하(Ernst Mach)의 경험비판론을 끌어들여 유물론을 흐트러뜨리는 관념론적 경향을 보인다고 공격하면서 오직 물질의 선차성에서 출발하는 유물론자들만이 관념론자들이 조장하는 허위의식을 분쇄하고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이익과 대의에 충실한 혁명적 당파성을 견지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43) 레닌 이후에도 기계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 사이에서는 논쟁이 끊이지 않았고, 기계적 유물론을 대변한 부하린(Nikolaj Ivanovič Bucharin)과 변증법적 유물론을 옹호한 데보린(Abram Moiseevič Deborin)의 논쟁은 결국 데보린의 승리로 끝났다.(44) 이 승리의 연장선상에서 스탈린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러시아 공산당의 공식적인 세계관으로 선언했고, 변증법적 유물론을 역사에 적용하여 역사 발전의 법칙을 규명하는 역사적 유물론을 소비에트 러시아의 공식적인 역사관으로 선포했다.(45) 이로써 유물론적 세계관은 러시아 혁명 이후 당과 국가를 장악한 스탈린 세력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인민대중이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와 공산주의의 종국적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고서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 헌신하도록 사회주의 사회를 사상적으로 통일시키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4) 역사적 유물론은 세 가지 큰 주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역사 발전의 법칙적 필연성에 관한 주장이고, 또 다른 하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주체성과 독재에 관한 주장이고, 마지막 하나는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무오성에 관한 주장이다. 이 세 가지 주장을 서로 긴밀하게 통합시키는 역사적 유물론은 사회와 역사에 대한 실사구시적인 연구의 관점과 방법을 제시한다기보다는 사회와 역사에 대한 관념의 형이상학적 체계에 가깝다. 아래서는 이 점을 조금 더 들여다본다.
 우선, 역사적 유물론은 역사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의해 촉발되는 계급투쟁에 의해 발전하며, 역사 발전 법칙에 따라 원시 공산제로부터 시작하여 고대 노예제와 중세 봉건제를 거쳐 근대 자본주의로 단계적으로 발전하였고,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통하여 사회주의 사회로 전환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소유의 사적 성격이 서로 모순을 일으켜 계급투쟁이 벌어지게 되고,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는 계급투쟁을 통하여 사회주의 사회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과도기를 거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에 이르러 계급 없는 사회인 공산주의 사회로 넘어갈 것이다.(46)
 그 다음,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는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이며,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영도 아래서 농민 계급과 지식인 계급 등등이 동맹세력을 이루어 부르주아 계급을 타도하고 자본주의 사회를 혁파한다.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은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일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서도 주체이다.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공적인 소유 혹은 협동조합적 소유로 전환시키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사회주의적 생산관계로 전환시키는 과정이며,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유지하려고 하거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 되돌아가려는 세력을 계급의 적으로 돌려서 무자비하게 억압하여 사회주의 사회 건설의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프롤레타티리아트 계급의 독재는 사회주의 혁명으로부터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가 실현될 때까지의 과도기에 일관성 있게 관철되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공산주의의 종국적 승리를 향한 역사에서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은 혁명과 투쟁의 주체이다.
 마지막으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혁명과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과 공산주의의 종국적 승리를 이끌어가는 프롤레타리아트 당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으로 무장하여 자연과 사회와 역사를 꿰뚫는 법칙들을 인식하고 있기에 그 법칙들에 따라 사회와 국가와 세계의 발전을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오류를 범할 리가 없으며, 또 오류를 범해서도 안 된다. 사회주의 사회의 인민은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무오류성을 인정하고, 당과 다른 견해들을 갖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비판하고, 상호간에 비판하여 사회주의 사회를 사상적으로 통일시키는 데 기여하여야 한다.

 이러한 주장들을 놓고 볼 때, 역사적 유물론은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을 갖고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법칙’ 개념을 갖고서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 따라서 그 어떤 구체적 현실성도 갖지 않는 미래를 예측하고, 그 미래를 현재에 끌어들여 현재에 대한 자유로운 기획을 질식시킨다. 역사적 유물론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름으로 소수 엘리트 당의 독재를 정당화하고, 그 이론의 타당성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 이론으로 무장한 세력의 정치적 실천에 대해서도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극히 폐쇄적인 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역사적 유물론은 세속적인 종말론의 특징을 보이고 있고, 계급 없는 사회를 향한 역사의 도정에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이 특별한 사명과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는 세속적 메시아주의를 조장한다.

IV. 맺음말 : 기독교 신학은 마르크스주의와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

 기독교 신학은 마르크스주의와 대화를 나누어 왔고, 앞으로도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 그 대화는 분별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 글을 마무리 지으면서 필자는 기독교 신학과 마르크스주의의 대화에서 유념할 점들을 몇 가지 정리하고자 한다.

1.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주(主)로 고백하는 기독교인들은 세상이 하나님 나라에 투명해지도록 세상을 형성할 책임을 지고 있고, 비록 잠정적이나마 역사 발전의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고 세상의 변화를 추동하는 운동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 나라를 전망하면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역사를 발전시키는 기독교인들의 운동은 현실과 그 운동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도구를 찾아야 하고,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과 그것이 전제하는 현실 분석 방법을 그러한 도구들 가운데 하나로 선택할 수 있는가를 놓고 숙고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는 현실에 대한 역사적이고 분석적인 접근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관점과 방법을 제시하였고, 이 점은 오늘의 학계에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앞에서 마르크스의 현실 분석 방법과 그것의 유물론적 기초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시사한 바와 같이, 역사적으로 형성된 구체적인 현실들을 분석하고, 현실의 여러 측면들이 맺고 있는 내적인 연관을 파악하고, 현실의 변화를 일관성 있는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마르크스의 현실 분석 방법에서 많은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추상적인 것으로 하강하였다가 추상적인 것으로부터 구체적인 것으로 상승하는 인식의 과정은 사람들이 맺고 있는 현실관계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이론을 만들고자 하는 실사구시의 정신을 잘 보여준다. 오직 그러한 이론을 갖고서 현실관계들에 담겨 있는 문제들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그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과 그것에 바탕을 둔 현실 분석 방법은 현실의 문제들을 제대로 인식하여 그 문제들을 풀어가면서 하나님 나라에 투명하게 세상을 형성하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수용되지 못할 까닭이 없다.
 
2.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은 생활과 의식, 토대와 상부구조의 관계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고, 경제 활동의 전개, 사회관계들의 조직, 정치적인 권력 배치, 철학, 종교, 문학, 예술 등의 표현들이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파악하도록 도와준다. 사람들의 철학적, 종교적, 문학적, 예술적 표현들은 이를 생산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관계들과 연관시켜 해석할 때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들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유물론적 해석학의 전범(Paradigma)으로 간주한다.(47) 이러한 관점은 사회사 연구에 널리 받아들여졌고, 신학계에서는 ‘사회사적 성서주석’에 수용되어 많은 연구 성과가 이미 축적되었다.(48)
 ‘사회사적 성서주석’과는 조금 다른 각도이긴 하지만, 유물론적 관점에서 성서를 읽고 신학을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준 마르크스주의자는 루이 알튀세르(Louis Pierre Althusser) 였다. 그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을 구조주의적인 관점에서 독특하게 변형시켰다. 그 핵심은 유물론적 역사관에서 노동소외 등을 운위하는 인간주의적인 요소들과 분석 방법에 관련된 과학적인 요소들을 분리하여 오직 과학적인 방법만을 취한다는 것이었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가 『자본』 제1권 13장의 각주 89에 남긴 “유일하게 유물론적이고, 따라서 과학적인 방법”(49)이라는 어구에 주목하여 마르크스가 발전시킨 현실 분석 방법은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곧 현실적인 관계들에 초점을 맞추어서 고안된 과학적인 방법이라고 정의했다.(50) 페르난도 벨로(Fernando Belo)는 알튀세르의 방법론을 성서학 분야에 받아들여 마가복음에 대한 ‘유물론적 성서 읽기’를 시도하였고, 팔레스타인에 수립된 사회구성체에서 전개된 예수 운동을 입체적으로 규명하는 성과를 거두었다.(51) 해방신학자들도 알튀세르가 가다듬은 마르크스주의적인 현실 분석 방법을 받아들여 라틴아메리카 사회를 분석하였다. 그들이 알튀세르의 독특한 마르크스주의를 선호한 것은 거기서 라틴아메리카 사회구성체를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얻을 수 있으면서도, 마르크스주의와 결부되어 있었던 반교회적이고 반기독교적인 세계과에 오염되었다는 혐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52)

3.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과 많은 점에서 구별되는 역사적 유물론에 대해서 기독교 신학은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기독교 신학자들은 역사적 유물론을 한 색깔의 페인트로 칠하고 한 마디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 유물론이 탄생하고 발전되어 간 과정을 추적하고, 그것이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를 일단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적 유물론은 결국에 가서는 역사 형이상학에 가까운 교리 체계로 굳어지고 말았지만, 역사적 유물론과 그 토대인 변증법적 유물론은 사회주의 운동의 정세들과 국면들에서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 기초하여 사회주의 운동의 노선을 정하고,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주체성과 당파성을 확실하게 다지고,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과 공산주의의 종국적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고 사회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 헌신하도록 이끄는 이데올로기였다. 아마도 그 이데올로기가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에 얼마큼 기여하였는가를 평가할 때, 현실 사회주의 사회가 자본주의 세력들에 포위되어 군사·정치적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고, 그 때문에 안보 강박으로 인한 체제 통제와 사상 통제를 강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도 감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에, 기독교 신학은 역사적 유물론의 경직성과 교조성이 사회주의 운동의 상황적 요인들에서 비롯되었음을 십분 고려하면서도 역사적 유물론에서 비롯되고 있는 몇 가지 문제들을 반드시 지적하여야 한다. 첫째,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당이 유물론적 변증법과 역사적 유물론의 법칙들에 입각하여 세계와 역사에 대한 진리를 파악하고 그 진리에 따라 행동한다는 주장은, 라인홀드 니버의 어법으로 말한다면, 전형적인 지적인 교만이다. 미래는 말할 것도 없고, 지나간 일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서조차 지식들과 정보들이 부족한 데 어떻게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고 무오류의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자처할 수 있겠는가?
 둘째, 역사적 유물론이 역사가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학문이론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역사의 ‘법칙’ 같은 것은 없다. 역사에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것이 있고, 다양한 흐름들과 경향들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긴 안목을 갖고서 역사가 전개해 온 과정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난 뒤에 내릴 수 있는 일종의 요약적 진술이다. 여사의 ‘법칙’ 같은 것을 정해 놓고 역사를 서술하고 미래의 역사를 예측하는 것은 전형적인 도식주의이다.
 셋째, 역사적 유물론은 역사의 전개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이 맡는 사명을 절대화하고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에 역사의 구원자라는 지위를 부여한다. 역사가 법칙적 필연성에 따라 발전하는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은 혁명의 주체이고, 사회주의 사회 건설의 주역이고,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와 공산주의의 종국적 승리를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일관성 있는 계급 독재의 주체이다. 역사 발전의 법칙적 필연성에 대한 맹신이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구원자적 역할에 대한 기대와 결합되면, 세속적 메시아주의가 발현된다. 세속적 메시아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이익과 대의에 맞선다고 간주되는 모든 세력들을 적으로 단정하고, 그들에 대해 가하는 무자비한 공격을 정당화한다. 소련에서 벌어진 당내 헤게모니 투쟁과 패배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 주민들에 대한 사상 통제와 대규모 숙청, 강제수용소(gulag), 자본주의 세력의 봉쇄를 풀고 전세계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어간다는 명분을 앞세운 제국주의적 개입과 전쟁 등등은 세속적 메시아주의가 발현된 많은 예들 가운데 일부이다.
 
4. 끝으로, 필자는 기독교 신학이 역사적 유물론과 결부되어 있는 어두운 역사를 기억한다고 하더라도, 유물론적 관점에서 사회와 역사를 분석하는 유물론적 역사관을 역사적 유물론과 함께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유물론적 역사관과 그것에 바탕을 둔 현실 분석 방법은 여전히 유효하고 더 벼려서 쓸 만한 학문적 도구이기 때문이다.
 다만, 유물론적 역사관과 기독교 신학의 대화가 미래를 향해 더 발전하려면, 훨씬 더 개방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 마르크스가 제시한 유물론적 역사관과 그것에 바탕을 둔 현실 분석 방법은 19세기 유럽의 현실과 학문의 발전을 전제하고 있다. 19세기 유럽 사람이었던 마르크스가 경험하지 못했거나 알지 못했거나 접근하지 못했기에 다루지 못한 현실의 문제들을 끌어안고 유물론적 관점과 방법에 충실한 연구를 하려면, 유물론적 사유의 확장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유물론을 정신분석학, 기호학, 사이버네텍스 등과 연결시켜 유물론적 사유의 평면을 넓히는 작업이 이미 오래 전부터 막스 호르크하이머, 테오도르 아도르노, 위르겐 하버마스,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슬라보예 지젝 등등과 같은 뛰어난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작업들이 얼마나 유물론적인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맺고 있는 다차원적인 관계들을 그 내적 연관에 따라 분석하고 설명하고자 하는 탐구 방식과 그 관계들을 생동감 있게 펼쳐 보이는 서술 방식이 놀라운 상상력을 통하여 계속해서 날카롭게 가다듬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주>

(1) 일민주공화국(구 동독)에서 ‘사회주의 속의 교회’는 1978년 독일사회주의통일당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와 동독개신교연맬 지도부 사이의 대화가 성사되면서 정식화되었다. 동독 수립 이후 동독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지만, 교회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를 강력하게 취했다. 1970년대 초에 서독과 동독이 서로 접근하면서 동독 정권은 이데올로기적 통제를 완화하였고, 사회주의 사회의 틀에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새롭게 형성하기 위한 대화가 싹텄다. ‘사회주의 속의 교회’의 형성과정에 대해서는 조용석, “독일민주공화국(동독) 개신교회의 ‘Kirche im Sozialismus’ 전략 연구 : 동독 사회주의 체제와의 비판적 협력관계 구축,” 『신학과 사회』 27/3(2013), 특히 94-106을 보라.

(2) 이 대화에서 주목을 끈 인물들은 마코비취, 로호만, 가르다브스키, 콜라코브스키, 블로호 등이었다. M. 마코비취, 『無神論者가 본 예수』(1972)(서울 : 한국신학연구소, 1988); Jan Milič Lochman, Christus oder Prometheus? : die Kernfrage des christlich-marxistischen Dialogs und die Christologie(Hamburg, Furche-Verl., 1972);  Vítězslav Gardavský, Gott ist nicht ganz tot : Betrachtungen eines Marxisten über Religion und Atheismus; Mit einer Einleitung von Jürgen Moltmann(München : Kaiser Verlag, 1969); Leszek Kołakowski, Geist und Ungeist christlicher Traditionen(Stuttgart [u.a] : Kohlhammer, 1971); E. Bloch, Atheismus im Christentum : zur Religion des Exodus und des Reichs(Frankfurt am Main : Suhrkamp, 1970).

(3) 이에 관련된 책들과 논문들, 팜플렛들은 넘치도록 많다. 여기서는 그 가운데 단 몇 권의 책들만을 선별해서 예를 드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관계가 대화로부터 전략적 동맹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글들은 Dorothee Sölle/Klaus Schmidt (hg.), Christentum und Sozialismus : Vom Dialog zum Bündnis(Stuttgart u. a.: Kohlhammer, 1974)에 수록되어 있다.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기독교인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Dorothee Sölle/Klaus Schmidt (hg.), Christen für den Sozialismus I(Stuttgart u. a.: Kohlhammer, 1975); Walter Dirke/Klaus Schmidt/Martin Stankowski, Christen für den Sozialismus II(Stuttgart u. a.: Kohlhammer, 1975)에 실린 글들을 보라.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에 마르크스주의가 수용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개관한 책으로는 Bruno Kern, Theologie im Horizont des Marxismus : zur Geschichte der Marxismusrezeption in der lateinamerikanischen Theologie der Befreiung(Mainz : Matthias-Grünewald-Verl., 1992)을 보라. 현대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신학에서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가 혼융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글들은 Rupert Hofmann (hg.), Gottesreich und Revolution : zur Vermengung von Christentum und Marxismus in politischen Theologien der Gegenwart(Münster : Regensberger Verlag, 1987)에서 찾아 볼 수 있다. - 한국 민중신학에서 마르크스의 현실 분석 방법과 신학적 성찰을 결합하여 해석학을 구축하고자 하는 노력으로는 강원돈, 『物의 神學 : 實踐과 唯物論에 굳게 선 神學의 摸索』(서울 : 한울, 1992)을 보라.

(4) 알렉상드르 코제에브(Alexandre Kojève)가 헤겔 철학을 해석하면서 사용하였던 ‘역사의 종말’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이면서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그 어떤 정치체제도 더 이상 욕망하지 않는 현대에 이르러 역사가 끝나게 되었다고 진단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역사의 종말』(서울 : 한마음사, 1992), 455f. 489.

(5) Karl Barth, Der Römerbrief, 2. Auflage in neuer Bearbeitung(München: Kaiser, 1922), 419f.

(6) 이에 관해서는 Christofer Frey, Die Ethik des Protestantismus : Von der Reformation bis zur Gegenwart(Gütersloh: Gütersloher Verlagshaus, 1994), 202-206을 보라.

(7) 훗날 케제만은 이를 ‘지배의 전환’이라는 유명한 어구로 정식화했다. 이에 대해서는 E. Käsemann, “Kritische Analyse von Phil 2, 5-11,” Exegetische Versuche und Besinnung II, 2. Aufl.(Göttingen : Vandenhoeck & Ruprecht, 1965), 94를 보라.

(8) D. Bonhoeffer, Ethik(München : Kaiser, 1981, 133.

(9) D. Bonhoeffer, 앞의 책, 137.

(10) D. Bonhoeffer, 앞의 책, 154. ‘자연적인 것’에 대한 크리스챤 링크의 해석은 경청할 만하다. 그는 디트리히 본회퍼가 ‘자연 개념의 그리스도론적 근거’를 설정하였다고 본다. 그는 자연에 대해 말을 할 때 “피조물을 새 피조물로 이끌어가는 계속적인 길(‘과정’)을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본회퍼는 ‘타락의 사실을 포함하기 위해서’ 자연적인 것을 피조물적인 것과 구별해서 말한다. 그러나 그는 또한 ‘피조물적인 것을 포괄하기 위하여’ 자연적인 것을 죄에 속한 것과 구별해서 말한다.” Chr. Link, Schöpfung : Schöpfungstheologie angesichts der Herausforderungen des 20. Jahrhunderts: Handbuch Systematischer Theologie Bd. 7/2(Gütersloh : Gütersloher Verl., 1991), 523 각주 70; 524.

(11) D. Bonhoeffer, 앞의 책, 136f.

(12) 이에 대해서는 Bonhoeffer, 앞의 책, 245. 250f. 253을 보라.

(13) D. Bonhoeffer, 앞의 책, 247.

(14) 부활의 빛에서 하나님의 미래를 내다본다는 신학적 착상은 일찍이 몰트만에 의해 명료하게 제시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J. Moltmann, Theologie der Hoffnung : Untersuchungen zur Begründung und zu den Konsequenzen einer christlichen Eschatologie, 3.Aufl.(München : Kaiser, 1965), 77을 보라. 나중에 몰트만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을 발전시켜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양식들이 서로 침투되어 동시화(同時化)되는 경지를 논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J. Moltmann, Gott in der Schöpfung. Ökologische Schöpfungslehre, 3. Aufl.(München : Kaiser, 1987), 137-140. 146f.를 보라. 만물에 대한 주권을 회복하는 하나님의 미래에 대해서는 J. Moltmann, 앞의 책, 289를 보라.

(15) 니버는 인간의 교만을 정치적 교만, 지적 교만, 도덕적 교만, 종교적 교만으로 구별해서 설명했다. 이에 대해서는 라인홀드 니버, 『인간의 본성과 운명 I』, 오희천 옮김(서울 : 종문화사, 2013), 297-314를 보라.

(16) 올드햄의 ‘중간공리’ 방법에 대해서는 H.-J. Kosmahl, Ethik in Ökumene und Mission : Das Problem der "Mittleren Axiome" bei J. H. Oldham und der christlchen Sozialethik(Göttingen : Vandenhoeck & Ruprecht, 1970), 55-58을 보라. 니버는 사랑과 정의의 관계를 ‘근사치적 윤리’의 틀에서 논리적으로 명석하게 설명한 바 있다. 니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자기희생적 사랑이 기독교적 삶의 이상이지만, 그 이상은 유한한 인간이 세상에서 성취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넘어선다고 보았다. 자기희생의 일방적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세상의 수단은 없다. 세상에서 가능한 것은 상호성에 입각한 형제애이겠지만, 세상에서 상호성을 구현하는 것은 정의이다. 정의는 형제애를 잃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서 사랑을 구현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정의를 최대한 구현한다고 해도 그것은 사랑을 온전히 성취할 수 없다. 정의는 사랑의 ‘근사치적’ 실현일 뿐이고, 그 실현마저도 사랑에 의해 심판받는다. 이에 대해서는 라인홀드 니버, 『기독교 윤리의 해석』, 곽인철 옮김(서울 : 종문화사, 2019), 194; 라인홀드 니버, 『인간의 운명과 본성 II』, 오희천 옮김(서울 : 종문화사, 2015), 352를 보라.

(17) WCC가 제시한 책임사회 개념에 대해서는 Die Unordnung der Welt und Gottes Heilsplan : Ökumenische Studien, hg. von W. A. Wisser't Hooft(Zollikon-Zürich : Evang. Verl., 1948), 100: “책임사회란 자유가 정의와 공공질서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인간의 자유가 되고, 정치적 권위나 경제적 권력을 소유한 자들이 하나님과 … 사람들 앞에서 그 권력 행사에 대해 책임을 지는 그러한 사회이다.” 책임사회의 구체적 내용은 자유를 존중하는 법치질서, 사회적 목표 아래 경제행위를 종속시키는 경제 정의,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동등한 자기실현의 보장, 사회구성원들이 사회를 형성하는 데 참여하는 일 등이다. 위의 책, 99-102.

(18) 이에 관한 상세한 분석으로는 강원돈,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의 전통에서 본 노동 이해 : 1937년 옥스퍼드로부터 1991년 캔버라까지,” 『믿고 알고 알고 믿고』, 정양모교수은퇴기념논총간행위원회편(서울 : 분도출판사, 2001), 443-476을 보라.

(19) G. Brakelmann, Abschied vom Unverbindlichen : Gedanken eines Christen zum Demokratischen Sozialismus(Gütersloh :  Gütersloher Verlagshaus, 1976), 20f.

(20) 강원돈, “물의 신학 : 물질적 세계관과 신학의 한 종합,” 『物의 神學 : 實踐과 唯物論에 굳게 선 神學의 摸索』, 132ff., 140ff.

(21) 마르크스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데모크리투스와 에피쿠로스의 자연철학의 차이를 다루었다. 그의 박사학위는 Differenz der demokritischen und epikureischen Naturphilosophie, Marx-Engels Werke(이하, MEW) 40: Ergänzungsband I(Berlin :Dietz Verlag, 1968), 257–373에 수록되어 있다. MEW의 각 권의 출판년도는 아래 각주에서는 생략한다.

(22) 마르크스는 헤겔의 관념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중요한 것은 의식의 대상이 자기의식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 달리 말하면 대상이 단지 대상화된 자기의식, 곧 대상으로서의 자기의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정립 = 자기의식)” K. Marx,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aus dem Jahre 1844, MEW 40, 575.

(23) 마르크스는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 1에서 이 점을 명확하게 밝혔다. “(포이에르바하의 유뮬론을 위시해서) 이제까지 모든 유물론이 보여 주었던 주요 결점은 대상, 현실, 감각이 오직 객체나 직관의 형식 아래서 파악되었을 뿐이고, 인간의 감성적 활동, 곧 실천으로서 주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활동의 측면은 유물론과 대립하는 관념론, 곧 현실적고 감성적인 활동 그 자체를 당연히 알지 못하는 관념론에 의해 추상적으로 설명되었다.” K. Marx. “Thesen über Feuerbach,” MEW 3, 5.

(24) 마르크스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표현했다. “인간이 몸을 가지고 있고, 자연력을 가지고 있고, 생명을 가지고 있고, 현실적이고 감성적이고 대상적인 존재라는 것은 인간이 현실적이고 감성적인 대상들을 자신의 존재, 곧 자신의 생활 표현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 달리 말하면, 인간이 현실적이고 감성적인 대상들에 접할 때에만 자신의 생활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K. Marx,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aus dem Jahre 1844, MEW 40, 578.

(25) K. Marx. “Thesen über Feuerbach,” MEW 3, 6. 마르크스는 1843년 헤겔의 법철학을 비판할 때 이미 이러한 인간 이해를 명료하게 정리해 두고 있었다. K. Marx, “Zur Kritik der Hegeischen Rechtsphilosophie : Einleitung,” MEW 1, 378: “인간은 세계 바깥에 웅크리고 있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인간의 세계, 국가, 사회이다.”

(26) K. Marx,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aus dem Jahre 1844, MEW 40, 544.

(27) K. Marx,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aus dem Jahre 1844, MEW 40, 578.

(28) 마르크스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함께 쓴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이러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활동하는 인간들로부터 출발하며, 그들의 현실적인 생활과정으로부터 이 생활과정의 이데올로기적 반사체들과 메아리들을 서술한다. 사람들의 뇌수에 있는 안개 같은 형상들은 그들의 물질적이고, 경험적으로 확인되고, 물질적인 전제들에 묶여 있는 생활과정의 불가피한 승화물이다. 도덕, 종교, 형이상학, 그 밖의 이데올로기들과 그것들에 대응하는 의식형태들은 더 이상 독립성이라는 가상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것들은 역사도 없고, 발전도 없다. 물질적 생산과 물질적 교류를 발전시키는 사람들이 이와 같은 그들의 현실과 더불어 그들의 사유와 그 사유의 산물들을 변화시킨다. 의식이 삶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의식을 규정한다.” K. Marx/F. Engels, Die deutsche Ideologie : Kritik der neuesten deutschen Philosophie in ihren Repräsentanten Feuerbach, B. Bauer und Stirner, und des deutschen Sozialismus in seinen verschiedenen Propheten, MEW 3, 26f. 이하 이 문서는 Die deutsche Ideologie로 약칭.

(29) K. Marx/F. Engels, Die deutsche Ideologie, MEW 3, 37f.

(30) 마르크스는 1859년 『정치경제학 비판에 대하여』의 서론에서 자신의 유물론적 역사관이 현실 분석과 역사 연구의 ‘실마리’ 역할을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K. Marx,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MEW 13, 8. 그는 이 머리말에서 유물론적 역사관을 훨씬 더 정교하고 명료한 언어로 정리하였는데, 이 머리말에서 주목되는 것은 그가 유물론적 역사관에 도달한 경위를 밝히고 있는 대목이다. 그는 헤겔 법철학 비판을 시도하면서 법률관계들과 국가형태들을 인간정신의 보편적 발전으로부터 설명하지 않고 현실의 물질적 관계들로부터 설명하여야 한다는 통찰을 주었고, 헤겔의 법철학비판이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나아가게 하였다고 회상하고 있다.

(31)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은 K. Marx, Das Kapital Bd. 1, MEW 23, 641.

(32) K. Marx, Das Kapital Bd. 1, MEW 23, 647.

(33) K. Marx, Das Kapital Bd. 1, MEW 23, 789.

(34) K. Marx, Das Elend der Philosophie, MEW 4, 130.

(35) W. Schmied-Kowarzik, “Weder Arbeit noch Natur sind wertbildend, aber sie sind die Quellen allen Reichtums,” H. Immler/W. Schmied-Kowarzik, Marx und die Naturfrage(Hamburg :  VSA-Verl., 1984), 49f.

(36)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잉여가치의 발견’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명징하게 분석할 수 있게 하였다고 찬양했다. Friedrich Engels, “Das Begräbnis von Karl Marx,” MEW 19, 337.

(37)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추상적인 것으로의 하강과 추상적인 것으로부터 구체적인 것으로의 상승에 관해서는 K. Marx, “Einleitung [zu den ”Grundrissen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MEW 42, 35ff.를 보라.

(38) 마르크스는 『자본』 제2판에 부친 후기(1893)에서 러시아 학자 카우프만(I. I. Kaufman)이 자신의 방법론에 대해 쓴 논평문을 길게 인용한 뒤에 자신의 방법론을 아래와 같이 간략하게 요약한 바 있다. “그러나 서술 방식은 탐구 방식과 형식상 구별되어야 한다. 탐구는 그 대상을 꼼꼼하게 수집하고, 그것의 다양한 발전 형태들을 분석하고, 그것들의 내적인 결합을 간취하여야 한다. 이러한 작업이 완료된 뒤라야 비로소 실제의 운동이 상응하게 서술될 수 있다. 이것이 성공을 거두고 저 대상의 생애가 관념에 반영된다면, 사람들은 마치 선험적 구성물을 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는지 모른다.” K. Marx, Das Kapital Bd. 1, MEW 23, 27. 위의 인용문에서 ‘그 대상’으로 옮긴 독일어 낱말은 Stoff이다. 독일어 Stoff는 물질, 자료, 대상 등 폭넓은 뜻으로 쓰인다. 인용문에서 이 낱말은 탐구의 대상이 되는 것을 통칭하고 있다.

(39) K. Marx, Das Kapital Bd. 1, MEW 23, 87.

(40) 이 말은 엥겔스가 1890년 8월 5일에 콘라드 슈미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르크스가 1870년대에 했다고 전한 내용이다. F. Engels, “Engels an Conrad Schmidt,” MEW 39, 436. 원문은 “Tout ce que je sais, c'est que je ne suis pas Marxiste.”이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내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41) 엥겔스가 발전시킨 유물론적 변증법의 핵심 개념들과 법칙들에 관련해서 여기서 그 전거들을 일일이 들고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뮬론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오위겐 뒤링 씨의 과학 혁명』,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전철학의 퇴출』 등을 정독할 필요가 있다는 것만 언급해 둔다. F. Engels, Herrn Eugen Dührings Umwälzung der Wissenschaft (Anti-Dühring) (1878), MEW 20, 1-303; Ludwig Feuerbach und der Ausgang der klassischen deutschen Philosophie (1888), MEW 21, 259-307, 특히 291-307. 아마도 이 문헌들 외에 『자연의 변증법』도 참고할 만하겠지만, 이 문헌은 엥겔스가 1873년으로부터 1883년에 이르기까지 집필한 원고들을 모은 것으로 1925년 레닌그라드에서 독일어판과 러시아판으로 동시에 출판되었다. Dialektik der Natur, MEW 20, 305-568.  

(42) G. V. 플레하노프, 『맑스주의의 근본문제』(서울 : 거름, 1987), 48f.

(43) V. 레닌,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서울 : 아침, 1988), 145.

(44) 이 논쟁에 관련된 문헌들은 Abram Deborin/Nikolaj Bucharin,  Kontroversen über dialektischen und mechanistischen Materialismus mit Einleitung von Oskar Negt(Frankfurt am Main : Suhrkamp, 1969)에 수록되어 있다.

(45) I. V. Stalin, Fragen des Leninismus(Berlin : SWA-Verl. 1951), 647.

(46) 사회주의적 과도기를 어느 단계까지 설정한 것인가를 놓고서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엘리트들 사이에서 통일된 견해가 없고, 각기 다른 의견들이 노출된 바 있지만, 이 글에서는 더 이상 들여다보지 않겠다.

(47) Hans Jörg Sandkühler, Praxis und Geschichtsbewußtsein(Frankfurt : Suhrkamp, 1973), 82ff., 398ff.

(48) 김창락 편, 『새로운 聖書解釋, 무엇이 새로운가?』(서울 : 한국신학연구소, 1987)에 실린 톤 페어캄프, 프란츠 크뤼제만, 빌리 소트로츠, 루이제 쇼트로프, 볼프강 슈테게만 등의 성서 주석들은 ‘사회사적 성서주석’의 성과를 잘 보여준다. 또한 이 책에 실린 헬무트 골비처의 “역사적 유물론과 신학 : 유물론적 주석의 문제에 대하여”라는 논문은 기독교 신학자들이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성서 본문을 분석하고 해석할 때 얻을 수 있는 강점을 설명하고 있고, 신학자들이 ‘역사적 방법에 의해 처리되지 않는 역사’(앞의 책, 415)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를 취해야 하는 까닭을 잘 설명하고 있다.

(49) K. Marx, Das Kapital Bd. 1, MEW 23, 393.

(50) L. Althusser, For Marx(London : Verso, 1969), 33ff.

(51) Fernando Belo, A Materialist Reading of the Gospel of Mark(New York : Orbis Book, 1981), Part : The Concept of ‘Mode of Production” (An Essay in Formal Theory).

(52) 끌로도비스 보프는 해방신학의 현실 분석에서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가 활용되는 방식을 인식론적 수준에서 명석하게 밝히고 있다. 그는 마르크스의 방법론에 대한 알튀세르의 비판과 수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Clodovis Boff, Theologie und Praxis : Die erkenntnistheoretischen Grundlagen der Theologie der Befreiung mit einem Vorwort von Hans Waldenfels(München Kaiser; Mainz : Grünewald, 1984), 65 각주 4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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