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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 Won-Don's Social Ethics Article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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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 사회사상의 전통에서 본 노동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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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 사회사상의 전통에서 본 노동 이해
- 1937년 옥스퍼드로부터 1991년 캔버라까지


강원돈

I. 머리말

노동 문제는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에서 독립적인 주제로 다루어진 경우가 많지 않지만, 이
주제는 에큐메니칼 운동 초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맥에서 다양하게 논의되어 왔
다. 노동 문제에 대한 에큐메니칼 논의에는 20세기 초 이래 각 시대의 과제들에 대한 교회
의 인식이 반영되어 있고, 따라서 서로 다른 논의의 패러다임을 구별해 볼 수 있다. 흔히 에
큐메니칼 사회사상은 책임사회론으로부터 "정의롭고 참여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JPSS)에
관한 논의를 거쳐 "정의, 평화, 피조물의 보전"(JPIC)에 관한 논의로 발전되어 갔다고 말하
는데,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에큐메니칼 노동 이해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은 것으로 생
각된다.
 이 글에서 나는 우선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사에서 노동 문제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발전되
어 왔는가를 살필 것이다. 이 논의에서는 1937년 옥스퍼드 대회, 1948년 암스테르담 제1차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1966년 제네바에서 열린 교회와 사회 세계협의회, 1970년대 말  
이래 개발참여교회위원회(CCPD)의 틀에서 전개된 정치경제학 연구, "신앙, 과학, 미래"에
관한 1979년 보스톤 세계협의회, 1983년 뱅쿠버 WCC 총회에 의해 소집된 JPIC 공의회 과
정과 이로부터 촉진된 생태학적 경제윤리 정립을 위한 노력 등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작업은 오늘의 노동 문제를 풀어가는 데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의 노동 이해가 무엇을
시사하는가를 말해 줄 것이다.
 
II. 1937년 옥스퍼드: 노동과 예배의 결합

1925년 스톡홀름에서 시작된 "실천적 기독교"(="생활과 노동") 운동은 1937년 옥스퍼드에
서 "교회, 공동체, 국가"라는 주제 아래 열린 세계협의회에서 절정에 달했다. 세계협의회는
1. 파시스트 국가들의 탄생, 2.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증가하고 있는 불의, 3. 실업 문제의
절박성, 4. 공산주의의 도전 등을 사회윤리적, 경제윤리적 관점에서 다르었다. 그 당시 교회
는 부르주아적인 신앙 이해와 신앙 실천으로부터 벗어나 이 도전들에 응답하도록 요구받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서 옥스퍼드 세계협의회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일상생활
에서, 곧 "노동과 삶"에서 구현하여야 하기 때문에 경제질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테제
를 내걸었다. 이 테제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선구자들 사이에서 이미 공유되어 있었던 것이
지만, 국제적 차원에서는 옥스퍼드에서 처음으로 논의되었다. 협의회에 참가한 지도자들은
사랑의 계명이 정치 체제와 경제 체제에서의 정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졌
고, 당대의 경제질서에서 나타나는 노동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은 그 당시
의 경제질서가 이윤추구욕과 불의의 증가, 무책임하게 소유권을 행사하는 경제권력 등으로
파탄을 맞고 있으며, "기독교적 직업의식"을 파괴하고 "지속적인 실업의 위협"을 가져왔다고
진단했다..
 이 도전들을 염두에 두고서 협의회는 노동의 존엄성에 중점을 두고 노동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에 걸맞는 삶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삶을 위해서는 노동의 의
무와 노동의 권리를 인정해야 하고, 노동을 단순히 상품으로 보는 통념을 직업윤리적 관점
에서 거부해야 하며, 직장에서 결정을 내릴 때 노동자들이 참여하여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
다고 협의회는 강조했다. 이에 관한 협의회 문건을 인용해 보자.

"하나님이 인간의 존립을 위해 명령하신 노동은 내적인 가치와 존엄성을 가진다. 인간의 노동 의무와
권리는 똑같이 강조되어야 한다. 따라서 경제과정에서 노동은 결코 한갓 상품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
다. 인간은 매일 매일의 노동을 통해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직업 생활을 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직
업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들판에서도 공장에서도 노동자는 소득과 건강한 환경을 요구해야 하고,
노동자의 복지와 관련되는 결정들이 내려질 때 자신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요구하여야 한다."

협의회는 하나님의 활동이 인간의 "삶 전체"를 포괄한다는 인식을 명확히 밝혔다. 이 인식
은 "노동과 예배의 통일성을 회복하여 사람들이 이를 체험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인식의 바탕에는 직업윤리 전통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인격주의적
노동이해가 깔려 있다. 인간은 노동할 때나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휴식할 때나 하나님 앞에
서 인격으로 존재하며,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존재이다. 전인적 주체로서의 인간에게 "기
도와 노동"(ora et labora)은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이해는 기독교의 직업윤리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
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노동력이 상품으로서 시장에서 교환되고, 자본의 임의적인 요구에 따
라 생산과정에 투입되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직업윤리적인 노동이해가 노동세계를 인간화하
는 데 어느 만큼 공헌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협의회에서 철저하게 검토되지는 않았다.

III. 1948년 암스테르담: 책임사회와 노동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회집한 WCC 창립총회의 중심 주제는 책임사회 구상이었다. 총회
분과보고서 III은 이 구상을 다음과 같이 강령적으로 밝히고 있다.

"책임사회란 자유가 정의와 공공질서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인간의 자유가 되고, 정치적 권위나 경제적
권력을 소유한 자들이 하나님과 … 사람들 앞에서 그 권력 행사에 대해 책임을 지는 그러한 사회이
다."

책임사회의 구체적 내용은 자유를 존중하는 법치질서, 사회적 목표 아래 경제행위를 종속시
키는 경제 정의,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동등한 자기실현의 보장, 사획성원들이 사회를 형성하
는 데 참여하는 일로 표현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날로 첨예해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대립에 직면한 에큐메니
칼 운동은 이 개념을 가지고 사회 형성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고, 그것을 제3의 길로 인식
했다. 교회들은 지난 날 사회질서가 해체되고 국제적 무질서가 조장된 데 공동책임을 wu
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자기반성이 제3의 길을 추구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책임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인식해야 하고 이 인
식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어떻게? 이것은 에큐메니칼 사회윤리가 대답해야
할 핵심적인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총회는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시대적 제약을 갖는 이 세
계의 상황을 서로 매개시키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했다.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을 서로
매개시키려는 이 사회윤리적 구상은 상대적인 것이 절대적인 것에 대해 투명할 것을 요구하
되 상대적인 것을 단순히 부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책임 있게 변혁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올드햄이라는 이름과 결부되어 있는 이 매개의 논리는 "중간 공리" 방법
으로 일컬어진다.
 책임사회의 구상은 구체적인 사회형태 안에서 사람들의 인격적 관계를 존중하여야 한다는
확신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이 확신은 마르틴 부버의 인간학이 에큐메니칼 운동의 선구자
들의 사회사상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음을 사시한다. 책임사회 구상의 중점사항들은
1. 양심의 자유, 2. 진리 추구의 자유, 3.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존중, 4. 사람들 사이의 직접
적 관계가 집단적 관계들에 대해 우위를 갖는다는 생각, 5. 무책임한 권력의 제한과 권력분
배, 6. 인격의 독립성, 7.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책임 분담 등인데, 여기서도 위의 확신이
잘 드러난다.
 책임사회의 구상에는 옥스퍼드 세계협의회의 노동 개념이 대체로 수용되었다. 책임사회 r
상에서도 "기도와 노동"의 통일은 에큐메니칼 노동윤리의 핵심을 이루었다. 암스테르담에
모인 교회 지도자들은 이 개념을 가지고 창조적 기쁨과 예배 행위로서의 노동이 대량생산의
조건 아래 놓여 있는 노동과 대립되며, 이 둘 사이에 깊은 골이 있다고 인식했다. 그들은
"현대의 기계적 생산공정"이 노동을 "인간의 생활 맥락으로부터" 분리시켰다는 데서 출발하
였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인격의 근본적인 요구들과 현대 공업의 전체 구조 사이의 모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암스테르담 총회 참가자들
은 옥스퍼드 세계협의회에서 제시된 "기도와 노동의 통일"이라는 근본명제의 중요성을 재인
식하고, 이 개념에 근거하여 "노동의 의미"를 제시하고자 했다.

"인간의 노동을 기술적 과정과 대량생산의 조건들에 따라 파악하지 않고, 인간의 용익에 따라, 곧 생
산을 위한 투입 과정에서 서로 결합되는 사람들 사이의 인간관계에 따라, 그들이 섬겨야 할 인간적인
목적에 따라,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 섬김에서 엿볼 수 있는 노동과정의 궁극적 목표와 의미에 따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생각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암스테르담 창립 총회에서 WCC는 제3분과 보고서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일
련의 에큐메니칼 연구작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그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틀에서 "노동
의 의미"는 계속해서 연구되었다. 이 연구의 여러 단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올드
햄의 저서 "현대 사회에서의 노동"이었다(이에 관해서는 아래의 보론을 보라). 이 책은 국
제 에큐메니칼 운동의 노동 이해에 관한 최초의 철저한 연구서였다. 연구과정에서는 직접
노동세계에서 살아가는 "평신도들"의 역할에 관심이 기울여졌다. 1954년 에반스톤에서 열린
WCC 제2차 총회의 제7분과는 "기독교인의 직업"을 주제로 삼았으며, 직업생활을 하는 사
람들의 구체적인 경험을 고려하면서 노동을 이해하고자 노력하였다. 여기서도 그 당시 에
큐메니칼 노동 이해가 직업윤리의 틀에 머물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보론 I: J. H. 올드햄의 노동 개념

"현대 사회에서의 노동"이라는 저서에서 올드햄은 "공업주의와 결합된 악"을 명확히 밝히고
자 했다. 그 악은 "기능적 합리성의 전면적 지배"에서 나타나며, 생산과정에서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요인들을 무시하는 결과를 빚어낸다. 이 조건들 아래서 노동은 의미의 위기에
빠지고 만다. 올드햄은 현대 공업사회에서 노동의 의미상실을 극복하기 위하여 노동에 관한
기독교의 가르침으로 되돌아갔다. 기독교의 노동 이해는 인간을 하나의 인격으로, 공동체 속
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보는 기독교적 관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는 기독교의 인간관을 아래의 다섯 가지로 성격화했다. 첫째, 인간의 삶은 하나님과 나
누는 대화이다. 둘째,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간다. 셋째, 세계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인간은 하나님의 동역자이다. 인간은 세계를 창조하고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데 참여하도록 초청을 받았다. 넷째, 인간의 삶은 세속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 사이의 긴장
속에 있다. 이 긴장은 결코 이원론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세계를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의
대상으로서 인식하도록 만든다. 다섯째, 인간은 세계 안으로 침입하는 하나님의 미래를 바라
보며 살아간다. 교회는 바로 이것을 증언해야 한다.
 올드햄은 이 인간관으로부터 기독교적 노동 이해를 이끌어냈다. 우선, 인간은 하나님의 동
역자로서 그 분의 창조 활동을 계속 수행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 노동은 인간이 땅
에서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하나님이 규정한 것인데, 이 점은 타락 이후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둘째, 노동은 이웃을 위한 봉사이다.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은 그것이 봉사의 성격을 갖는다
는 점에서는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생산과정에서 노동자의 인격은 존중되어야 한다. 왜냐하
면 그는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셋째, 노동은 세계를 개조하는 활동이며, 그런 점에서 창조적인 활동이다. 인간은 노동을
하면서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 응답할 수 있는 천부의 능력을 발휘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노
동을 하면서 자기자신을 맴돌기만 하는 탐욕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넷째, 노동은 동시에 기도이다. "기도와 노동"(ora et labora)이라는 옛 명제에는 여러 가
지 위선과 환상이 동반되었고, 또 위험하기까지 했지만, 노동은 기도와 같은 본질을 가지는
바로 그 만큼 더 깊은 의미를 얻는다.
 다섯째, 인간은 노동의 의무를 갖고 있지만, 노동을 삶의 목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신을 가장 고귀하게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최상의 성취는 공
동체를 이루고 안식의 기쁨을 누릴 때 이루어진다.
여섯째, 노동은 소명인 동시에 기능이다. 노동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인격적으로 지는 책
임이고, 삶의 특수한 요구들을 이행하는 기능적 활동이다. 그러나 물질적 욕망 충족을 위해
공업적으로 조직된 노동세계에서 노동을 직업으로 받아들이는 풍토(Ethos)가 사라져서는 안
된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올드햄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인격으로 존재하고 노동은 하나님
이 인간에게 준 명령이라는 신앙으로부터, 노동에 관한 중요한 관념들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가 안식 개념을 특별히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이 주제는 오늘날
노동 개념을 생태학적으로 재설정하는 데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올드햄의 노동
이해가 직업윤리의 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약간의 비판적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왜냐
하면 시장경제에 뿌리박고 있는 것은 추상적 노동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전통
적인 개념을 가지고 직업으로서의 노동 개념을 유지하려는 시도는 시장경제적으로 조직된
노동세계의 현실을 감안할 때 문제가 없지 않다. 노동의 소외나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노
동세계로부터 배제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각자 서 있는 자리에서 수행하는 노동과 하나님
의 소명을 직결시키는 전통적인 직업윤리는 시장경제에 깊이 도사려 있는 모순을 덮어 버릴
수 있다.

IV. 1966년 제네바: 기술 진보의 조건 아래 있는 노동

1966년 제네바에서 개최된 교회와 사회 세계협의회에서는 "우리 시대의 기술적, 사회적 혁
명에 대한 기독교의 응답"이라는 주제 아래서 많은 문제들이 다루어졌다. 그 가운데에는 사
회적 생활세계에 미치는 기술 진보의 영향이나 북과 남의 "세계적 상호의존관계" 같은 주제
도 들어 있다. 1961년 뉴델리 WCC 총회와 1968년 웁쌀라 WCC 총회 사이의 중간시점에
개최된 이 세계협의회는 위에서 말한 문제들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대체로 "낙관주의적인
사태진단"에 기울어져 있었다. 과학기술의 진보는 통제할 수 있고 사회국가는 확대될 수
있다는 낙관과 자신감이 세계협의회의 분위기를 지배하였고, 이러한 분위기는 세속화신학의
역사해석과 긴밀한 관계가 있었다. 낙관주의는 자연에 대한 이해에서 특별히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비록 생태학적 위기가 시민들에 의해 깊이 의식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할지라도,
세계협의회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에 근거한 낙관주의를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협의회 보고서에 명확하게 나타난다. 보고서에 따르면, 하나님
의 섭리뿐만 아니라 인간의 지배 아래 있는 자연은 "인식의 역사적 발전을 뜻하는 인간의
지각을 통하여" 역사 안으로 들어온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탈신격화, 혹은 탈신성화"를 동
반하는 세속화 과정이며, 이로써 진정한 과학과 그것의 기술적 성과들이 나타날 수 있는 중
요한 출발점들 가운데 하나가 마련되었다. 세속화신학의 관점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
배자적 지위"를 주장하는 데서 절정에 달했다. 인간의 이 지위는 "자연의 인지가능성"에 근
거를 두고 있다. 보고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피조물인 자연에 대한 "관리자 직분"을 갖고 있
음을 지적하고는 있지만, 기본적인 논조는 다음과 같은 주장에 놓여 있음이 분명하다. "하나
님은 이 세계를 인간의 처분에 맡기고 인간으로 하여금 이 세계에 대해 권력과 지배권을 행
사하도록 부르고 계신가? 그렇다." 인간은 "인류의 삶을 보다 더 인간적으로 만들기 위하
여"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도록 허락되었다는 것이다.
 기술 진보와 관련시켜 노동의 문제들을 다루는 데서도 세계협의회는 낙관주의적인 입장을
줄곧 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소한 공업국가들에서는 노동과 자본의 전통적인 대립이 눈
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노동조건들이나 노동자들의 복지 수준에서 이루어진 진보는
인상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를 단 다음, 보고서는 노동 문제들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 중 하나는 이렇다. "기계화"는 노동을 용이하게 했지만 "단조로움과 지루함을 가져 왔으
며, 노동자들에게 책임의식이나 노동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거의 부여하지 않는 노동과정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보고서는 몇 가지 유보조건을 달면서 노동과정에 자동화를
도입하는 것을 환영할 만한 일로 간주했다. 또 다른 하나는 기업조직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
다. 보고서는 관리직원과 노동자들이 서로 다른 대우를 받는 데서 비롯되는 문제점을 지적
하고,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와 관련되는 사안들에 대한 결정 과정에 노동자들이 참여해야 한
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기업의 경제정책과 관련된 사안들(예컨대 공장의 폐쇄, 이전, 확대
혹은 측소 등)의 결정 과정에 노동자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점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그
것이야말로 "본질적 의미의 공동결정"으로 간주되는 데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보고서는 국
가가 실업을 제거하는 조치들을 취할 것을 촉구했다.
 1966년 제네바에서 열린 교회와 사회 세계협의회에서 두드러진 것은 노동 문제에 대한 기
능주의적인 접근이다. 이 기능주의적인 접근은 인간이 기술 진보를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와 결합되어 있다. 자연에 대한 효율적 통제를 목표로 삼는 기술이 인간의
노동과 생태계에 가져오는 문제들은 일단 뒷전에 놓였다. 옥스퍼드로부터 암스테르담을 거
쳐 에반스톤에 이르렀던 올드햄의 인격주의적인 노동 이해는 더 이상 발언권을 갖지 못했
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1966년 제네바 회의가 제1세계의 노동 문제를 부수적
으로 다루고 있을 뿐, 가난한 나라들에서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전혀 의제화하지 못했다
는 것이다.

V. JPSS 논의의 틀에서 다루어진 노동 문제

1. JPSS 구상

1966년 제네바 회의에서 나타난 과학 기술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적 접근은 1968년 웁쌀라에
서 열린 제4차 WCC 총회 이후 일련의 "인간 계발" 연구에 깊은 흔적을 남겼지만, 이 연구
들에서는 인류의 고난에 주의가 환기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분위기는
1974년 베를린에서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획기적으로 변화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에큐메니
칼 운동사에서 처음으로 인류의 생존능력이 절박한 의제로 떠올랐으며, "정의롭고 참여적이
고 지속가능한 사회"(JPSS)를 추구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JPSS에 관한 논의에 참여한 사람들은 남북갈등과 생태학적 위기를 다루는 새로운 틀을
만들려고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책임사회 개념과 이와 밀접하게 연관된 중간공리 방법의
타당성이 논란의 초점이 되었다. 이와 더불어 이제까지 당연시되었던 그리스도 중심의 보편
주의도 의문시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해방신학의 행동-성찰-방법 및
해방과 정의에 대한 관심이 JPSS 논의에 도입되었다는 점이다. 해방신학자들에 따르면,
교회와 세계에 그리스도의 지배는 오직 하나님이 "가난한 사람들"을 접촉점을 삼고 활동한
다는 점을 고려할 때에만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JPSS 논의는 1975년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5차 WCC 총회의 프로그램 지침들에 의해
촉진되었다. 그러나 JPSS 논의의 초점은 1979년 JPSS를 추구하기 위한 자문위원회 제2차
보고서에 이르러서야 명확하게 표명되었다.
 자문위원회 보고서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역사와 하나님을 어떻게 매개하느냐 하는 물
음이었다. 보고서는 이와 관련하여 정의와 참여와 지속가능성이 서로 연관되어야 하고, "중
간공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매개 형식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정의
와 참여는 서로 분리되어서는 안 되고,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결합되어야 한다. 이 인
식은 정의가 "메시아적 범주"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였다. 이 메시아적 범주는 하나님의 정의
와 신실성 뿐만 아니라 인간공동체의 올바른 질서를 세우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지를 포함한
다. 보고서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정의는 자기중심적인 무관심이나 소외된 예속에 빠지지 않고 자기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은사이다.
정의는 사람들에게 맡겨진 역사적 과제이며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성취이다."

 따라서 정의는 모든 사람들에게 능동적으로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 이것이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참여이다.

"메시아적 관점에서 볼 때, 참여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더 이상 없고 각자가 다른 사람들에 대
해 책임감을 느끼는 진정한 코이노니아의 본질적 표현형태이다."

 이와 같은 정의와 참여는 생태학적 문제에 대해서도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정의와 참여의 물음은 오늘날 온 땅과 각 개체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지는 문제들로 인해 특별히 전면
에 부각되고 있다."

 보고서는 이와 같은 통찰이 하나님의 메시아적 활동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
다. "하나님은 피조물을 끊임없이 축복하고, 파괴로부터 보호하고, 삶의 충만함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보고서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피조물과 가난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약파트너로 해석되고
정의를 위한 투쟁과 피조물에 대한 책임이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무엇보다
도 가난한 민중의 참여와 주체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서는 권력의 현
실을 인식하고 이에 맞서 대항권력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난한 사람들과 권력을 분배
하고 그들과 연대를 맺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과학-기술적 차
원에서 권력이 지구화되고 있는 시대에는 참여적인 구조들의 모든 영역에서, 곧 지역적, 국
가적, 역내적, 국제적 영역에서 발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제2차 자문위원회
보고서는 세계가 부와 가난, 권력을 가진 자들과 권력이 없는 자들로 양극적으로 분열되어
있다고 보는 해방신학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보고서는 생태학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다소 혼란된 인식을 보여 주고 있다. 강령적으로는
정의와 참여의 문제가 생태계 보전의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보고서
는 생태학적 위기가 과학과 기술의 활용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과학과 기술은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일종의 도구주의적 관점을 대변한
보고서에 의하면, 생태계 위기는 자연 자원의 착취를 위해 기술을 투입하였기 때문에 발생
한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활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권력이다. 세계 권력 구조와
기술이 서로 결합됨으로써,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높은 수준의 기술이 없는 국가들
과 풍부한 자원은 없지만 높은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는 강대국들 사이의 괴리가 더 커지고
있다.
 보고서는 그러나 자연에 대한 인식이 근원적으로 자연에 대한 기술적 통제의 이해관계에
의해 유도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았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제시할 수 없었다. 또한 생태계 위기가 자본의 축적논리와 팽
창논리에 의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았다. 가난과 생태계 위기가 동전
의 양면처럼 결합되어 있고, 이 위기 복합체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위기의 근원에 도사려 있
는 경제논리를 수정하여야 한다는 점을 밝히지 못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생태계 위기에 대
한 보고서의 인식은 매우 피상적이고, 이것은 그 당시 에큐메니칼 운동의 큰 맹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JPSS에 관한 자문위원회의 보고서는 정의와 참여와 지속가능성을 하나의 좌표에 통합하
려고 시도했지만 이 시도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사회·정치적 문제와 생태학적 문제
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서로 다른 특질을 갖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생태학적 문제를
사회·정치적 문제로 해소시키는 경향을 갖고 있었다. 생태계 위기의 문제가 그 자체의 독
특성에서 충분하게 인식되지 못한 것이다. 생태계 위기의 문제는 보고서에서 제대로 건드려
지지 않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것은 세계상황에 대한 그 당시 에큐메니칼 운
동의 인식이 커다란 딜렘마에 빠져 있음을 보여 준다. 콘라드 라이저는 그 당시 에큐메니칼
운동은 이 딜렘마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각을 갖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해결되지 않는 딜렘마로 인해 JPSS에 관한 논의의 틀 안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 연구
프로그램들이 병렬적으로 전개되었다. 하나는 정치윤리에 관한 연구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
술과 경제의 발전이 미치는 사회적, 윤리적 영향에 관한 연구이다. 여기서는 이 두 연구 프
로그램들에서 노동 문제가 어떻게 인식되었는가를 살피고, 그 다음 이 두 연구와 전혀 무관
하게 "교회와 사회"가 1984년 글래스고우에서 연 "노동과 고용" 워크숍에서 노동 문제가 어
떻게 다루어졌는가를 보론의 형식으로 소개한다.

2. JPSS를 위한 정치경제학 논의의 틀에서 다루어진 노동 문제

정치경제학의 패러다임에 관한 논의는 JPSS를 규명하려는 작업에 의해 촉진되었다. 이를
위한 최초의 자극은 1978년 취리히에서 모인 "정치경제학, 윤리, 신학" 협의회였다. 취리히
협의회에 모인 사람들은 정치윤리를 형성한 데 공헌할 수 있는 정치경제학의 기본구상을 제
시하였다.

2.1 JPSS를 위한 정치경제학 논의의 기본구상

1978년 취리히에서 열린 "정치경제학, 윤리, 신학" 협의회에서 다루어진 주제는 생태학적 위
기의 절박성, 고용위기, 경제의 초국화 경향과 그것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개발
에 대한 축소주의적 관점 등이었다. 협의회에 모인 사람들은 자본주의 체제든, 사회주의
체제든, 경제적 합리성만을 체계적으로 수미일관하게 적용하는 정치경제학의 낡은 패러다임
에 회의를 품고, 현실 자본주의와 현실 사회주의에서 제시된 경제 개발의 구상들을 철저
하게 극복하고자 했다. 협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적 합리성의 무자비한 적용에 맞서는
새로운 구상은 인간의 복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정의롭고 참여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형성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어야 한다. 인간을 중심에 놓는 것이야말로 규범적 경제이론의
근거이고, 가치관에 입각하여 구체적인 삶의 관계들을 분석할 수 있게 하는 관점이다.
 협의회에 모인 사람들은 불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이 질문을 던지자마
자 그들은 정의를 엄밀하게 규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물리적인 지속가능성과 불의의
최소화"를 정의로 규정하는 관점은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협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이와 같은 정의를 촉진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참여이
다. 참여는 물론 생산된 가치와 상품을 분배하고 소비하는 일과 관련되지만, 민중은 무엇을,
어떻게, 어느 만큼 생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부터 참여하여야 한다. 오늘의 생산과
정은 고도로 발전된 현대 기술을 매개하기 때문에 매우 복잡하고 거대한 조직을 필요로 하
지만, 그것을 이유로 해서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 거대 자본과 기술의 권
력에 맞서는 대항권력이 형성되어 사회정치적 제도들에서 권력균형이 수립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오늘 인류가 경제생활의 모든 차원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경제민주주의이다.
그리고 경제민주주의의 열쇠는 공동결정이다.
 협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지속가능성은 경제와 무관한 부차적인 요인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장기적인 경제생활의 본질을 이루는 요인이기에 경제학적 사유에 통합되어
야 한다. 지속가능성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경제주의의 축소주의적 관점을 극복해야 한다. 왜
냐하면 이 관점은 인식의 지평을 순전히 경제적으로 객관적인 것에 한정시키고 인류를 점점
더 소외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정의와 참여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와 같은 인식을 가지고 협의회는 정치경제학의 새로
운 패러다임을 정립할 것을 요구했다. 협의회에 모인 사람들은 정치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
임이 세 가지 전제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첫째, 그것은 삶의 역사적이고 공간적
인 차원을 경제 분석에 포함시켜야 한다. 둘째, 이제까지 경제과학들을 지배해 온 축소주
의적 관점을 버리고, 통합적이고 통전적이고 협동과학적인 연구 방법을 모색하여야 한다.
셋째, 경제과학은 다시금 정치경제학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경제학 연구에서는
권력관계들과 권력구조들과 권력기구들과 관련하여 정치체제와 경제체제와 사회체제의 상호
작용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며, 어떤 가치 규범들에 입각하여 분서이 일어지는가를 명확하
게 밝힐 필요가 있다. 따라서 가치중립성이라는 신화는 떨쳐버려야 한다.
 이러한 전제 아래서 협의회는 어떤 경제체제가 정의롭고 참여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에
이바지하는가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규준들을 논의하고 이를 규명하였다. 후에 캐서린 뮬홀
랜드는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정치경제학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를 되돌아보면서 이
규준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1. 인간의 기본 욕구의 충족: 체제가 인간의 근본적인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킬 것을 실제로 약속하고
있는가?
2. 정의와 참여: 이 욕구들이 평등하게 충족되고 있는가? 한 사회의 자원들에 접근하는 데 평등이 합
당하게 보장되고 있는가?
3. 지속가능성: 경제체제가 수 세대에 걸쳐 생태학적으로 지속가능한가?
4. 自助: 경제체제가 민중으로 하여금 자존심을 느끼고 자유와 능력을 계발하도록 하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결정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만드는가?
5. 보편성: 경제체제와 경제정책들이 국가와 역내의 정치적 울타리를 넘어서서 지구의 인간 가족을 위
해 위에서 말한 요소들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가?
6. 평화: 경제체제가 정의에 근거한 평화의 전망을 촉진하고 있는가?"

1978년 취리히 협의회 이후 WCC의 정치경제학 논의는 1979년 CCPD가 설립한 경제 문제
에 관한 자문위원회(Advisoy Group on Economic Matters, 이하 AGEM)의 틀에서 계속되
었다. AGEM의 목적은 JPSS의 세 가지 중점 개념들과 위에서 말한 규준들을 구체적인 문
제 영역들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AGEM은 세계경제질서(1980년 제네바에서 열린 제2차 회
의), 초국적기업(1980년 로마에서 열린 제3차 회의), 국제금융체제(1981년 워싱턴에서
열린 제4차 회의), 실업 문제(1985년 제네바에서 열린 제5차 회의) 등을 다루었다.
 실업 문제에 관한 AGEM의 연구는 아래에서 절을 바꾸어 소개하기로 하고, 이 문맥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초국적 기업에 대한 AGEM의 연구는 오늘의 상황에서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AGEM은 초국적 기업에 윤리적 강령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불의의 구
조들을 극복할 수 없다고 인식하고, 초국적 기업의 문제를 세계시장체제와 연관지어 분석하
여야 한다고 보았다. 국제적인 경제구조들이 구축됨으로써 개발도상국들의 국민경제는 해체
되고, 이러한 발전 추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초국
적 기업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영역은 국민국가에 의해 통제되지 않으며, 힘과 재원을 제대
로 갖추지 못한 국제기구들도 이를 규율하지 못한다. 초국적 기업들이 주도하는 수출지향적
인 경제구조는 개발도상국들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대다수 민중이 삶의 기
반을 송두리째 상실하는 가운데 소수만이 이익을 독차지하는 구조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초국적 기업들이 주도하는 지구화된 경제 체제는 중심국들에는 발전을, 주변부에는 저발전
을 가져오고, 전세계 민중에게 가난과 기아를 가져온다. 따라서 초국적 기업들의 권력을
제한하고, 이들이 사회적 책임을 지도록 강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윤리는 정치윤리와 통
합되어야 하고, 이 둘을 분리하면 지구 경제의 심층부에 도사리고 있는 부와 가난, 권력을
지닌 세력과 권력을 박탈당한 사람들 사이의 대립이 은폐될 수 있다.
 1988년 WCC 중앙위원회는 AGEM과 더불어 경제문제에 대한 에큐메니칼 선언을 작성하
도록 CCPD에 위임하였다. 이 계획은 다소 수정되어 결국 경제 문제에 대한 연구 문서가 발
간되는데 그쳤지만, 1992년 "기독교 신앙과 오늘의 세계경제"라는 제목으로 발행된 이 문
서는 그 동안 CCPD의 틀에서 이루어진 정치경제학 논의를 정리하면서 에큐메니칼 운동이
현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세계경제에 어떻게 대응하고자 하는가를 시사하였다.

2.2 정치경제학 논의의 틀에서 이루어진 노동 이해

노동 문제는 AGEM 제5차 회의의 주제였다. 회의는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실업 문제를 다
루기 위해 1985년 제네바에 소집되었다.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은 정의를 위한 투쟁들과 관
련하여 적정 고용 개념을 양적인 관점과 질적인 관점에서 검토하였으며, 지역적, 국가적, 국
제적 차원에서 완전고용과 보다 더 적정한 고용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을 논의하였다.
 실업을 정치경제학적 주제로 삼은 AGEM 제5차 회의는 노동이 하나님의 위임이며, 노동
을 통해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관계, 이웃에 대한 관계, 피조물에 대한 관계를 이룬다는 신
학적 확신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 노동 이해에서 중심을 이룬 것은 관계 개념이었다. 하나
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동역자"로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이 일을 먼저 시작하셨
고, 인간은 하나님이 시작한 그 일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이 처음부터 피조물의
완성을 위한 행위의 일부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관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노동은 본래 예배(=하나님을 섬김)이며, 이 예배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땅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여기서 노동은 "해방적 경험"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의 표지 아
래 있다.
 하나님에 대한 관계가 파괴되는 과정, 곧 타락의 과정에서 노동은 고역이 된다. 노동은 인
간이 생산요소로, 수단으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지위로 축소되는 바로 그만큼 비인간화된다.
이런 조건들 아래 있는 노동은 저주이다. 이러한 노동은 생명에 거스르고, 죄의 지배 아래
있다. 노동과 고용과 실업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은 극복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투쟁은, 그
성격을 놓고 보면, 죽음에 항거하는 생명의 투쟁이다.
 그러나 제5차 AGEM 회의는 노동에 대한 이분법적 시각에 빠져 있었다.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삶 전체를 긍정하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특정한 사회경제체제에서 나타나는
노동관계들과 노동조건들, 그리고 고용 추세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대안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제5차 AGEM회의는 이 점을 강조하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러한 주장이 의미가 있는 것은 인간이 노동을 통해 삶을 꾸리고 형성하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은 인간의 타락 이후에도 결코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린 저주가 아니었다. AGEM 회의
는 이 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노동은, 비록 그것이 엄혹한 조건들 아래서 수행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선물로 주고 축복한 인간 실존을 긍정하는 활동으로 계속된다. 생명을
보존하고 양육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지에 뿌리를 박고 있는 노동의 본래적 의미는 노동세
계에서 나타나는 비인간적인 현상들 때문에 가려져서는 안 된다.

2.3 1979년 보스톤 세계협의회에서 다루어진 노동 문제

1979년 보스톤에서는 "신앙, 과학, 미래"라는 주제를 내건 에큐메니칼 세계협의회가 개최되
었다. 이 세계협의회는 JPSS에 이르는 길을 모색하면서 그 길을 기술 비판에서 찾으려는
노력이었다. 이런 점에서 협의회는 정치경제학 논의와는 전혀 다른 관심사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1979년 보스톤 세계협의회는 1966년 제네바 세계협의회의 낙관주의와는 달리 기술
발전이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는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보스톤 협의회는 노동 문제를 부차적이고 간접적으로 논의하였을 뿐이지만, 거기에는 에
큐메니칼 사회사상에서 노동을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주목할 만한 진전이 있었다. 협의회는
노동을 창조신학적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보스톤 세계협의회의 보고서를 분석해 보면, 우선 하나님의 초월성으로부터 하나님과 세
계의 분리를 도출하는 특정한 창조신학적 관점이 비판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피
조물에 내재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성서가 "하나님의 형상"과 "도미니움 떼레"(dominium
terrae)라는 말로 의미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보고서에 따르면, "하나님의 형상"
개념으로부터 땅에 대한 인간의 일방적 지배를 이끌어낼 수는 없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
이라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피조물을 돌볼 책임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보고서
는 자연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재인식하고, 인간이 지구 체제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해야
할 책임을 갖고 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인간을 제작인(homo faber)으로 보는 견해는 인
간이 땅에 사는 모든 생명들을 보존하고 돌보는 자라는 관점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제작인
의 활동성을 나타내는 "만드는 능력"은 제한되어야 하고, 상대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주장
을 내걸고서 보고서는 자연에 대한 기술적 통제를 목표로 삼는 근대 이래의 거대 담론에 제
동을 걸고자 했다.
 보스톤 협의회는 이처럼 주목할 만한 노동 이해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 발전에
의해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 구체적인 노동과정과 생산과정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을 계속 논
의할 여지를 마련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보스톤 협의회가 설정한 주제가 과학과 기술 분야
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보스톤 협의회가 시도한 창조신학적 노동 이해
는 앞으로 계속 논의되어야 할 중요한 주제이다.

보론 II: 1984년 글래스고우에서 열린 "교회와 사회"의 "노동과 고용" 워크숍

에큐메니칼 운동 차원에서 이루어진 노동 연구 가운데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위에
서 말한 두 연구 이외에 "노동과 고용" 워크숍이다. 이 워크숍은 "교회와 사회"가 1984년 9
월 10일부터 14일까지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우에서 개최하였다. 워크숍 참석자들은 기술의
발전과 거기서 비롯된 합리화 과정이 대량실업을 일으키고 킨다고 보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
고자 했다. 워크숍은 이 주제와 관련해서 단 한 차례밖에 모이지 못했지만, 대량실업 시대에
노동윤리를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워크숍은 일자리 나누기
와 대안적인 생산정책에 중점을 두고 새로운 노동 문화를 형성하자고 제안하였던 것이다.
 이 워크숍에서 발제 강연을 맡은 데이비드 브레클리는 개인을 신성시하고, 노동을 삶의
목표인 양 추켜세우고, 경쟁지향적인 경제활동을 정상화하는 업적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
였다.

VI. JPIC 공의회 과정에서 촉진된 생태학적 경제윤리와 그 틀에서 논의된 노동 문제

생태학적 경제윤리는 JPIC 공의회 과정에서 시사되고, 1990년 서울 JPIC 대회에서 그 윤곽
이 어느 정도 드러났으나, 이를 모색하자는 요청은 1991년 캔버라에서 개최된 제7차 WCC
총회의 부문보고서 I에서 읽을 수 있다. 부문보고서 I은 "정의, 평화, 피조물의 보전을 위한
공의회 과정(JPIC)이 명료하게 밝힌 바와 같이" "경제학과 생태학의 불가분리적인 밀접한
결합"을 강조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보고서는 생태학적 경제윤리의 모색이 JPIC에 관한
논의과정을 계속 진행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자 한 것이다.
 오늘날 WCC가 모색하고 있는 생태학적 경제윤리는 노동 이해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
지고 있다. 왜냐하면 노동 문제는 이 논의의 틀에서 새로운 특질을 갖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먼저 JPIC의 기본구상을 밝혀서 생태학적 경제윤리의 기본범주들을 분석하고자
한다.

1. JPIC의 기본구상

JPSS 논의가 메시아적 정의 개념을 중심으로 했다면, JPIC의 기본구상은 생명이 관계의 현
실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이것은 두 구상이 서로 다른 출발점을 갖고 있다는 것
을 의미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JPIC 구상이 JPSS 구상과 비연속선상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두 구상은 본질적인 면에서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JPIC 공의회 과정은 1983년 제6차 WCC 총회에 의해 촉구되었다. 총회는 "회원 교회들
을 정의, 평화, 피조물의 보전을 위한 상호 책임(계약)을 향한 공의회 과정으로 초청"하였으
며, 이를 WCC의 포괄적인 중점사업으로 명시하였다. 그 당시 WCC는 인류의 생존이 불
의하고 모순적인 질서들과 환경파괴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고 인식하였다. 생태계 파괴, 대량
살상 무기의 확산, 군사주의, 계급차별과 가난, 인종차별, 성차별 등에 의해 세계는 죽음의
세력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WCC는 이러한 절박한 세계상황에 직면하여 죽음
의 악마적인 세력에 맞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생명으로" 고백하였다.
 1987년 제네바에서 모인 WCC 중앙위원회는 "정의, 평화, 피조물의 보전의 세 영역에서
각각 나타나는 문제들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천명하고, "이 상호관계의 본질을 인
식하고, 평화, 정의, 피조물의 보전에 관한 교회들의 범세계적인 공동 입장을 천명하되, 이를
교회의 신앙고백 및 교회의 행동과 연계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JPIC 논의과정은 생명이 내적 연관을 갖는 관계의 현실이라는 신학적 관점에 의해 뒷받
침되었다. 이 신학적 관점은 생명의 신학으로 발전되는데, 생명의 신학을 위한 시도는 "생동
적이고 연관성 있는 신학"의 개발을 WCC 강령들 가운데 하나로 정한 뱅쿠버 총회의 결의
에 근거한 것이다. 당시 강령위원회 위원장이었던 호세 미구에즈 보니노는 1986년의 한
비망록에서 "연관성"과 "생동성"이라는 개념에 관한 자신의 신학적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
힌 바 있다.

"나는 서로 결합되어 있고 내적인 관계를 맺고 있고 어떤 특정한 점에서 서로 화합하는 사물들을 볼
때 연관성이라는 말을 쓴다. 서로 다르지만 서로 의존하고 있는 사물들만이 연관을 맺을 수 있다. 그
러나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연관성은 체계적 서술의 논리적 연관성이나 한
결같이 움직이는 기계 등의 기계적 연관성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WCC에서
하나의 목표로 희망하고 다룰 수 있는 연관성은 생동적이고 성장하는 유기체의 연관성이다. … 그러나
연관성에 대한 이 유기적 이해에서 꼭 필요한 것은 생동성이다. … 살아있는 유기체들은 서로 연관을
맺지 않으면 죽고 만다."

이 비망록에서 생명은 살아 움직이고 성장하는 사물들이 서로 의존하며 내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상태로 이해되고 있다.
 JPIC 구상은 관계의 현실을 이루고 있는 전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관심은 특히
정의에 대한 이해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정의의 개념은 JPIC 구상에서 관계의 한 범주이
다. 정의란 한 마디로 관계에 합치하는 행동이다. 이것은 JPIC 세계대회를 위한 첫째 초안
과 둘째 초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정의는 동료 피조물들 사이의 신실하고 공감을 나누며 동등한 관계에 근거한다. 이 관계에서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이 우리의 주요 관심사이다. 이러한 관계는, 노예로 전락하고 주변화되고 고난받는
백성을 억압으로부터 해방함으로써 그 백성과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하나님의 정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표징 가운데서 인류와 땅, 그리고 땅의 사물들 사이의 관계는 정의를 통해 올바르게
세워진다."

 이러한 관계 개념은 평화 개념에 관한 논의에서도 강조되었다. 생명이 통전적인 관계의
현실을 이루고 있다는 인식은 특히 "피조물의 보전"이라는 개념을 둘러싼 논의에서 명료
하게 표현되었다. "피조물의 보전"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 "Integrity of the Creation"은 매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였기 때문에, 이 개념을 창조신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공의회 과정에
서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 개념에 대한 집중적인 해명과 논의는 노르웨이의 그랜볼렌에
서 열린 "Integrity of the Creation" 협의회에서 이루어졌다. 협의회에서는 "Integrity of the
Creation"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 우리가 창조주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 모든 피조물들은 보다 큰 존재의 공동체와 사귐 속에서 서로 연관되어 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으며,
이 속에서 인간은 전체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는 것
- 인간은 피조물의 관리자로서 역할을 하며, 관리의 책임을 지는 모든 것과 연대를 맺는다는 것
- 피조물이 완성될 때까지 피조물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은 피조물들 사이의 연대에서 표현된다
는 것

 이러한 신학적 진술들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은 역시 관계의 범주이다. 그랜볼렌 회의에서
는 정의와 평화와 피조물의 보전 사이의 내적 연관을 인식하려는 시도도 있었는데, 이 인식
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시각에서 주어졌다.

"모든 피조물을 위해 신학은 창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진정한 평화가 정의의 수립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고, 평화는 정의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정의와 평화가 모든 피조물에 대한 깊은 존중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는 것을 배우기 시작
해야 한다."

2. 1990년 서울: JPIC 세계대회

JPIC를 위한 공의회 과정은 1990년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대회에서 일단 그 정점에 달했다.
세계대회는 JPIC의 세 핵심개념들의 상호연관을 명료하게 정식화시키고자 하였지만, 유감스
럽게도 그 작업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이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세계상황
에 대한 일치된 공동인식을 갖지 못했다.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의 역사와 패러다임의 전환을
연구한 마르틴 로브라는 서울 세계대회를 놓고 "난파"라는 표현을 쓰기까지 했다. 어떤
사람들은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이 서울 대회에서 충분한 합의능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고 비
판하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JPIC를 위한 토론이 여전히 해방신학적인 시각에서 벗어
나지 못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러한 비판에는 물론 경청할 만한 점이 있지만, 극단적
으로 상이한 상황들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세계상황을 공통된 시각에서 분석한다는 것은 애
초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정의와 평화와 피조물의 보전 사이의 내적
연관을 찾는 일도 곤란한 일이었으며, 이 내적 연관의 신학적 근거를 명료하게 제시하는 일
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이와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세계대회는 하나의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계약은 네 가
지 구체적 책무들을 포함하였고, 각 책무에는 여러 확언들이 배열되었다. 이 책무들은 아래
와 같다.

- 정의로운 세계질서와 외채 부담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행동해야 할 구체적 책무
- 모든 국가들과 사람들의 안전과 폭력없는 문화를 위해 행동해야 할 구체적 책무
- 모든 생명을 주의 깊게 보호하며 교통을 나누고 지구의 대기권을 보존하기 위해 행동해야 할 행동
해야 할 구체적 책무
- 모든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국가적 차원과 국제적 차원에서 인종주의와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행
동해야 할 구체적 책무

 교회가 세계상황을 인식하면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제안하는 이 구체적 책무들은 서
로 다른 관심사항들을 느슨하게 연결시키고 있는 데 불과하지만, 그러나 그 속에는 새로운
경제윤리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관점들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첫째 책무와
셋째 책무에는 생태학과 경제학을 서로 결합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표현되어 있다. 서울 세
계대회 최종문서는, 비록 매우 추상적으로 표현되어 있기는 하지만, 생태학적 지향을 갖는
경제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성장을 제한하고, 모든 사람의 기본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경제의 목적으로 설정하고(첫째 책무 1.4), 정의, 평화, 피조물 보전을 위한 새로운 가치관을
개발할 것(첫째 책무 1.15) 등을 제안하고 있다. 또한 최종문서는 생태학적 관심을 갖고서
피조물의 성사성(聖事性)을 인정하고, 오늘의 소비행태를 비판하고(셋째 책무 1.2), 환경친화
적인 생산형식들을 개발하고(셋째 책무 1.3), 대기권을 안정시킬 것(셋째 책무 2.3)을 요구하
고 있다(셋째 책무 2.3).
 이 다양한 관점들을 받아들여 생태학적 경제윤리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생명
이 관계의 현실을 이루고 있다는 점과 만물이 상호 의존하는 가운데 전체의 연관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표현하는 창조신학의 원칙들을 포괄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관점들을 더 이상 산발적으로 논의하지 않고 이
관점들의 내적인 연관을 현실성 있게 규명하는 경제윤리의 틀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3. 생태학적 경제윤리의 틀에서 전망되는 노동의 미래

JPIC를 향한 공의회 과정에서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한 생태학적 경제윤리 구상은 캔버라
WCC 총회의 분과작업 I을 준비하도록 되어 있었던 1990년 쿠알라 룸푸르 협의회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협의회에서는 새로운 창조신학적 관점에서 "생존을 위한 정의
윤리"가 논의되었다. 이 윤리는 캔버라 총회에서 "생태학적 경제윤리"를 모색하는 분과작
업 I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다.

"우리는 만인을 위한 사회 정의와 모든 피조물을 위한 생태학적 정의가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을 강조
하고자 한다. 사회 정의는 건강한 환경과 무관하게 성립되지 않으며, 생명능력이 있고 안정된 환경은
보다 큰 사회 정의를 전제로 한다. … 성서적인 정의 개념은 전체로서의 피조물에 건강한 관계들이 있
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생태학적 경제윤리는 성서의 안식일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며, "온 피조물의 근본적인 가
치를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이 비전에 따라, 분과작업 I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제시하였
다:

- 온 피조물의 근본적인 가치를 인정한다면, 경제정책적인 결정들은 "온 피조물의 요구"와 "보다 충만
한 생명"의 실현을 고려하고, 기술과 과학과 경제분석은 "온 피조물에 봉사"하고, "생명의 모든 형식들
이 보여주는 통전성"을 존중하여야 할 것이다.
- 성서의 안식일 전통에서 볼 때, 경제적 효율성은 "환경에 대한 청지기적 관리"와 결합되어야 하고,
그 한계가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 생태학적 경제윤리를 향한 도정에서 주체와 객체, 정신과 물질, 자연과 문화를 분리시키는 이데올로
기들을 극복하고, 남북갈등, 생명공학의 오용, 가난, 사회적 안전망의 결여, 인구폭발 등의 문제들을 해
결하여야 할 것이다.

 분과작업 I은 생태학적 경제윤리의 틀에서 지역적, 국가적, 역내적, 국제적 차원에서 대안
경제를 추구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전략들을 제시하였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을 인용한다면,
다음과 같다.

- 지역적 차원에서는 바닥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자력갱생 과정을 모색하고 전혀 다른 삶의 스타일을
추구할 것.
- 세계경제체제를 개혁하기 위하여 세계공동체로 하여금 피조물 전체에 대해 책임을 지고 세계무역체
제가 내린 경제적 결정들과 생태학적 결정들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할 것.
- 경제 원칙과 관련해서는 화폐가치와 교환가치에 근거하지 않고 지속가능성과 사용가치에 근거를 둔
새로운 가치 개념을 제안할 것.
 분과작업 I은 종래의 경제가 "성장을 위한 성장" 모델을 충분한 성찰 없이, 무비판적으로 추구하여
왔다고 보았다. 이 모델은 "암세포의 전략"에 따라 "경제의 기반을 이루는 체제를 고려하지 않고 무제
약적이고 통제 없는 팽창"을 추구하였다. 그 결과는 자기파괴요 죽음이다. 이 전략은 배아(胚芽)의 생
성과 유사한 성장의 논리로 대체되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체제의 구성부분들 사이의 균형"을
고려하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라 경제를 운영한다면, 예컨대 환경과 자원 활용에 따르는 비용을 외부
로 전가하지 않고, 경제활동 주체들의 비용계산에 포함해야 할 것이다. 곧 외부비용을 내부화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류를 위해 자연이 수행하는 생태학적 기능들"을 제대로 보존할 수 있을 것이
다.
- 생태학과 경제학을 결합할 수 있는 정치적 틀을 형성하기 위해 "정치적, 경제적 의사결정 과정에 공
동결정 제도를 구축하고 책임적인 정치를 형성할 것."
 이 전략들의 밑바탕에는 민주주의 실현에 대한 깊은 관심이 깔려 있다. 분과보고서 I은 이 관심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정치와 경제의 민주화를 이루지 못하고서는 피조물을 존중할 수 없을 것이다.
땅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사회의 권력구조들을 함께 결정할 수 없다면, 어떻게 생태학적으로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오늘날 생태학적 경제윤리는 겨우 걸음마 단계에 있다. WCC 제7차 총회의 분과보고서 I
이 제시한 생태학적 경제윤리의 관점들은 좀 더 명확하게 규정되고 세분화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보고서는 "화폐가치와 교환가치에 근거하지 않고 지속가능성과 사용가치에 근거
를 둔 새로운 가치 개념"을 모색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 중대한 개념을 어떻게 논리적
으로 구성하고 현실에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한다. 또한
현행 시장경제 제도의 복잡성을 고려하면서 시장경제의 생태학적 운영을 위해 규율정책을
제시하고 행위준칙들을 밝히기 위해서는 대단히 치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1996년 보쎄이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개발"에 관한 협의회는 생태학적 경제윤리를 구체화하
기 위한 첫 발을 내디딘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협의회에서는 생태계 안정
과 고용 안정을 생태학적 경제윤리의 지향점으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경제를 민주주의적으
로 규율하는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캔버라 총회의 분과보고서 I은 생태학적 경제윤리의 관점에서 노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는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몇
가지 단초를 제공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피조물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정치와 경제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여 정치적 결정과 경제적 결정에 이
해당사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여야 한다는 것이 또 다른 하나이다. 이러한 관점들은 경제를
사회적이고 생태학적 친화성을 갖도록 규율하는 과정에서 노동이 특별한 지위를 갖고 있음
을 시사한다고 하겠다.

VII. 맺는말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에서 노동 문제는 한 가지 관점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다. 에큐메니칼 사
회사상의 패러다임이 변화함에 따라 노동 문제에 대한 접근은 각기 다른 강조점을 갖게 되
었다. 책임사회론의 패러다임에서 노동 문제는 노동하는 사람의 인격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다루어졌으며, 그 핵심은 기도와 노동의 통일성이었다. JPSS 패러다임에서 부각된 것은 경
제민주주의였으며, 노동 문제는 참여를 통한 정의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다루어졌다. JPIC
패러다임에서는 생태학적 경제윤리가 극적으로 부각되었으며, 경제를 사회적이고 생태학적
인 친화성을 갖도록 규율하는 가운데 노동에 새로운 특질을 부여하는 문제의식이 표명되었
다.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의 역사에서 노동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가를 살핌으로써 우리
는 과거의 유산을 정리하면서 앞으로 노동을 어떻게 형성해야 할 것인가를 전망하게 된다.
노동이 갖는 인간학적, 사회학적, 생태학적 차원을 명료하게 인식하면서 노동을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생태학적으로 바르게 형성하는 문제는 경제를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친화성을
갖도록 규율하는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본원적 가
치를 평가하는 문제, 자연과의 관계를 생태학적으로 바르게 형성하기 위해 부르주아적 소유
권 개념을 수정하는 문제, 기업과 국민경제를 경제민주주의적 원리에 따라 운영하면서 자연
의 권리를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하는 문제, 국제무역구조와 국제금융구조를 친환경적이고,
친노동적으로 규율하는 문제 등등을 심도 있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은
바로 이 과제들을 해결하도록 도전받고 있다.

* 각주는 첨부한 아래아 한글 파일을 다운로드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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