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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2/13 (16:09) from 164.124.80.106' of 164.124.80.106' Article Number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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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자본의 공동결정 제도에 대한 교회의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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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자본의 공동결정 제도에 대한 교회의 관심
- 독일의 사회적 개신교의 논의를 중심으로

강원돈(경제윤리/아시아 경제와윤리 연구소장)

I. 머리말

지난 1년 동안 IMF 경제관리를 극복하고 그 이후의 한국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논의가 다양하게 펼쳐쳐 왔다. 이 논의들은 한국경제를 위기로 몰아 넣은 요인들을 분석하고 이 요인들을 제거하는 방안을 찾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과 같은 외적 요인은 한 나라 정부의 힘만으로는 다스릴 수 없는 것이지만, 지난 1년 동안 정부는 관치금융, 전근대적인 "오너" 중심의 기업 소유구조와 지배구조, 비늉률적인 공공부문, 대립적인 노사관계 등 내적 요인들을 제거하여 새로운 경제질서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이 개혁조치는 극도의 외환위기를 진정시키고 마비상태의 금융제도를 정상화시키는 가시적 성과를 거두었지만, 다른 부문들의 개혁은 이제부터라고 할만큼 갈 길이 멀다.
 그 동안 한국의 경제개혁 과정은 자본과 노동의 첨예한 이해대립을 가져왔고, 개혁의 고통과 성과를 어떻게 분배하는가를 둘러싸고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여 왔다. 경제회생을 위해서는 건전한 자본시장의 육성과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시장주의 원칙이 강조되면서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서로 정면으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금융 정상화를 위해 투입된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 전체의 짊으로 남게 되었고,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타나는 고용조정은 극심한 실업사태를 불러 일으켰다. 사회경제적으로 미분화된 국민부담의 폭발적인 증가와 극도의 고용불안은 경제적 가치가 사회적
가치를 구축한 데서 나타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반해 기업의 소유구조와 지배구조의 혁신을 통해 책임경영을 실현하려는 기업가들의 노력은 미미한 편이다. 앵글로-색슨식 주주자본주의에 따른 기업 구조의 혁신이 부분적으로 논의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해당사자 참여 자본주의에 입각해서 독일에서 실천되고 있는 노동과 자본의 공동결정 제도는 아예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의 주요대상인 거대기업집단(이른바 "재벌")들에서 이른바 "오너들"이 보이는 미온적인 태도는 국민과 노동 측의 저항을 일으키고 있다. 왜냐하면 그 동안 관행화된 "오너" 중심의 전제적인 의사결정은 무분별한 과잉투자와 이로 인한 기업 수익의 급격한 악화를 가져와 경제위기를 불러오는 데 결정적인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고, 기업에 참여하는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손실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내일의 경제질서를 건전하게 수립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지배구조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지배구조 개혁은 거시경제와 미시경제 차원에서 시장경제를 규율하는 여러 수단들과 더불어 경제질서를 건전하게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하나의 지렛대이다. 시장경제에서 자본과 노동이 첨예한 이해대립을 보이면서도 서로 협조하지 않을 수 없는 현장이 기업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기업의 지배구조 개혁은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새롭게 형성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기업의 지배구조 개혁이 갖는 중요성이 이처럼 큰 데도 불구하고, 이 주제에 대한 한국 교회의 관심은 지극히 미약하다. 몇몇 단편적인 논의를 제외하면 최근에 들어와서야 이 주제에 대한 주의가 환기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서 이 글에서 나는 기업의 지배구조, 더 좁혀 말하면 노동과 자본의 공동결정 제도에 대한 독일 교회의 논의를 역사적으로 소개하여 한국 교회에서 이 주제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하는 한 계기로 삼고자 한다. 나는 시장경제에서 기업의 지배구조가 갖는 의미를 간략히 설명하는 데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II. 시장경제에서 기업의 지배구조가 갖는 의미

1. 시장경제에서 기업에 부여된 역사적 조건들

시장경제에서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논의가 갖는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장경제에서 기업에 부여된 역사적 조건들을 살필 필요가 있다. 근대적인 시장경제는 가계와 영리가 역사적으로 분리되고 이 둘이 생산물시장과 요소시장을 통해 서로 결합됨으로써 성립되었다. 시장경제에서 가계는 소비와 노동력 제공을 맡고 영리활동은 재화와 용역의 생산과 판매, 이를 위한 자본과 노동력 투입을 맡게 되었다. 이 단순하게 보이는 역사적 사실에는 기업과 관련된 많은 문제들이 도사려 있다.
 우선, 영리활동으로서의 기업은 시장경제에서 외부와의 교환관계 뿐만 아니라 영리활동을 함께 하는 사람들 사이의 교환관계를 포함하고, 이 교환관계에서 보다 많은 수익을 얻는 것이 영리활동의 성공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수익성은 기업 차원에서 자원할당의 효율성을 통해 달성되기 때문에 효율성은 영리행위의 경제적 합리성으로 자리잡게 된다. 경제적 합리성은 수익성이라는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도구적 합리성이다. 그리고 시장경제의 경쟁조건 아래서 강제되는 경제적 합리성은 영리활동을 생활세계로부터 독립시켜 독자적인 체계로 발전하게 하고, 생활세계를 규율하는 규범적 합리성과 질적으로 구별되기에 이른다.
 둘째, 발전된 시장경제에서 기업은 자본시장으로부터 자본을 조달하여 생산수단을 확보하고, 노동시장으로부터 노동력을 구입하여 생산과정에 투입한다. 기업가는 조달된 자본의 실체를 보존할 뿐만 아니라 자본소득자에게 시장이자를 지불하여야 한다. 감가상각의 보전과 이자지불은 자본의 조달 비용이다. 기업가는 노동시장에서 구입한 노동력에 대해서는 임금을 지불한다. 임금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생활조건들 아래서 노동력을 재생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다. 영리활동을 통해 이룩한 총매출에서 자본비용과 노동비용, 그리고 원료구입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몫이 기업의 수익, 곧 이윤이다. 생산수단의 마모를 통해 파괴된 가치와 원료소비를 통해 파괴된 가치는 생산과정에서 생산물의 가치로 이전되기 때문에 기업의 소득분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이자와 임금이다. 이 두 항목은 본질적으로는 기업이 의존하는 자본시장과 노동시장에서 결정되며, 이 두 요소시장들에서 교환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분석의 최종수준에서 볼 때 자본과 노동의 권력관계이다.
 셋째, 기업가는 이자지불을 대가로 조달한 자본을 투입하여 생산수단을 확보하고 이를 배치하고 조직한다. 사기업에서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권은 기업가의 고유한 권한으로 인정되고 있다. 기업가는 생산수단에 대한 직접적 소유자로서 이 권한을 행사하거나 자본소득자들로부터 이 권한을 위임받아 행사한다.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권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로마법으로부터 발전한 부르주아적 소유권 제도에 역사적인 근거를 두고 있다. 이 법제에서 소유권은 소유관계 아래 있는 물건에 대한 절대적 지배권을 뜻한다. 부르주아적 소유권 제도의 뒷받침을 받는 사기업에서 자본소득자들은 기업가를 통해 생산수단에 대한 이 지배권을 행사한다. 만일 기업가의 경영이 부실하여 자본소득자들의 이익을 실현하지 못할 경우, 그들은 생산수단을 기업가로부터 분리시키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주식시장이 발전된 시장경제에서 이 통제권을 갖는 것은 주주들이다.
 넷째, 기업가와 노동자의 관계는 시장경제의 역사적인 조건 아래서 결코 대등한 관계였다고 말할 수 없다. 노동시장에서 기업가와 노동자는 자유로운 인격으로서 노동력의 판매와 구입에 대한 계약을 맺는다. 기업가는 노동계약에 따라 노동력 제공자에게 임금을 지불하고 노동력을 구입하여 자신의 지배 아래 둔다. 계약된 노동시간 동안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기업가의 통제 아래 두어야 한다는 것은 노동시간 동안 노동력이 그 주인의 인격적인 자유로부터 분리된다는 뜻이다. 이제 기업가는 이처럼 노동자의 인격으로부터 분리된 노동력으로부터 노동이 이루어지도록 노동과정을 조직하고 이 노동과정을 통해 상품을 생산한다. 시장경제에서 노동통제권과 작업지시권은 경영권의 핵심으로 인정되고 있고, 이 경영권을 통하여 노동과정을 지배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자본이다.
 노동과정에 대한 자본의 지배는 벌써 노동의 기능과 자본의 기능이 분리되었음을 전제한다. 정신노동이 기획, 관리, 통제를 맡는다면, 육체노동은 정신노동에 의해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는 데 그친다. 노동력으로부터 최대의 노동을 지출하도록 조직되는 노동과정은 분업의 원칙에 의해 세분화된 생산공정으로 파편화된다. 이 생산공정의 세분화와 파편화는 과학적 경영을 표방한 테일러주의에서 정점에 달했고, 이를 실현한 것이 곧 컨베이어 벨트 작업으로 상징되는 포드주의이다. 포드주의에서 노동은 "기계적 노동"으로 성격화되고, 이에 대한 노동자들의 심각한 불만은 설사 노동의 대가로 더 많은 임금이 지불된다고 해도 끊임 없이 증가한다. 그것은 "높은 결근률, 일자리를 떠나 빈둥거리기, 규정된 노동속도에 대한 저항, 무관심, 태만성, 집단적인 태업, 경영진에 대한 공공연한 적개심"으로 표출된다. 테일러 식으로 조직된 노동과정에서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고 경영의 효율성이 달성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오늘날 린 생산방식, 부분적으로 자율적인 팀 작업 등이 도입되면서 포드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노동과정이 구상되고 실천되지만, 노동과정에 대한 자본의 지배관계를 극복하고 노동과정의 인간화와 노동자의 주체적 지위를 달성하는 것은 여전히 미래의 과제로 남겨져 있다.
 
2. 기업 지배구조의 두 전형과 그 함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시장경제에서 기업은 경제적 합리성에 따라 자본과 노동을 결합시켜 상품을 생산하는 기구이다. 자본과 노동은 우선 기업소득의 분배를 둘러싸고 첨예한 이해대립을 보일 수밖에 없다.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자본과 노동의 결합이 강제되고, 기술화된 생산공정에서 자본과 노동의 상호의존성은 점점 더 커지지만, 이 결합 배후에 치열한 이해갈등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 이해갈등은 소득분배뿐만 아니라 노동조건과 노사관계와 관련된 기업의 사회정책을 둘러싸고 나타난다. 그 다음, 자본과 노동의 이해갈등은 생산수단의 축소 혹은 증대, 배치전환, 이전 등과 관련된 기업의 경제정책과 노동력 투입의 증감과 배치에 관한 인사정책에서도 나타난다. 시장경제의 역사적 조건들 아래서는 노동자가 노동력을 기업에 팔지 않고서는 생계를 꾸릴 수 없기 때문에 기업가의 고유한 권한으로 인정돼 왔던 경제정책과 인사정책의 수립은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끝으로, 일터에서 나타나는 작업지시권과 노동과정 통제권은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가장 첨예하게 드러내고 자본과 노동의 투쟁을 가장 직접적으로 격렬하게 촉발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는 기업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차원의 의사결정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노동의 이해관계와 자본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일과 별개일 수 없다.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모든 의사결정체에 노동과 자본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이해당사자 참여 자본주의는 시장경제에서 기업이 처해 있는 역사적 조건들에 대한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해당사자 참여에 근거한 기업의 지배구조를 구축하려는 노력은, 뒤에서 다시 살피겠지만, 경제민주주의의 이상과 그 실천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 전통은 주주 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앵글로-색슨식의 주주 자본주의와 큰 대조를 보이고 있다.
 앵글로-색슨식 주주 자본주의는 주주들의 이익(shareholder value)을 극대화할 수 있을 때에만 경영권 유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경영자들은 주주들로부터 기업의 경제정책과 인사정책에 관한 전권을 요구하는 대신 이 전권의 행사에 따르는 무거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주주 자본주의에서는 경영권을 행사하는 이사회를 자본소득자들의 총회, 곧 주주총회가 직접 통제하며, 이 때문에 주식시장에서 기업가치를 표시하는 지표들이 중시된다. 따라서 주주 자본주의가 확립되어 있는 시장경제에서는 회계의 투명성이 노사타협 관행보다 우선시되고, 유연한 정리해고가 고용안정이나 사회계획보다 선호될 수밖에 없다. 앵글로-색슨식 주주 자본주의는 부르주아적 소유권 제도와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에 충실한 기업의 지배구조를 실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이해당사자들의 이익(stakeholder value)을 조절하고자 하는 기업의 지배구조는 소유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전통에 서 있고, 기업이 노동과 자본의 대립 속의 협력을 조직하지 않고서는 장기적으로 경제적 합리성을 실현할 수 없다는 역사적 경험에 보다 충실하다. 독일 기업의 예를 들어 보면, 이 지배구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은 감독위원회이다. 감독위원회는 기업에서 자본의 집행기구의 역할을 수행하는 이사회를 통제하며, 이 감독위원회에 자본과 노동 측의 대표가 법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참여한다. 감독위원회
는 이사회의 선출과 퇴출에 대한 권한, 이사회의 주요결정 사항들에 대한 청문권, 회사재무 구조에 대한 조사권 등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경영자들은 자본과 노동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절하지 않고서는 감독위원회의 지지를 받는 기업의 경제정책, 인사정책, 사회정책을 수립할 수 없다. 이해당사자 참여에 근거한 기업의 지배구조는 독일에서 노동과 자본의 공동결정 제도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해당사자 참여 자본주의 전통에서 소유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다고 해서 소유권의 기본규정, 곧 소유관계에 있는 물건에 대한 소유자의 절대적 처분권이 지양된 것도 아니고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가 실질적으로 지양된 것도 아니다. 이 두 문제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산자본의 중립화가 실현되어야 하지만, 이것은 아직도 요원한 역사적 과제로 남아 있다. 그것은 비록 사회계획을 전제하지 않는 기업의 일방적인 경제정책이 타부시되고 최대한의 고용보호가 법제화되어 있는 독일 사회에서 경제정책과 인사정책에 대한 결정권이 여전히 기업가의 고유한 권한으로 남아 있다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이해당사자 참여 자본주의는 노동의 경영참여를 위한 문을 열어 놓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본의 기능과 노동의 기능을 서로 혼합하는 것까지 허용하지 않는다. 시장경제의 역사적 조건들 아래서는 설사 생산자본의 중립화가 이루어진 상태라 할지라도 이 두 기능들의 융합을 말할 수는 없다. 시장경제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어떤 기업도 효율성 향상이라는 생존조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효율성 향상을 위해서는 생산공정의 자본화를 포기할 수 없다. 이것은 기업소득이 가치생산에 참여한 사람들에 의해 모두 먹어치워져서는 안 되고, 그 일부는 끊임없이 저축되어 투자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자본의 기능은 설사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논지에 충실히 따른다 할지라도 경제의 기본요구로 인정될 수밖에 없다. 최근의 경영학적 논의에서는 경영의 중요성이 여러 측면에서 강조되고 있다. 교환경제의 치열한 경쟁상황에서 기업은 자원할당의 조작적 효율성과 기업체제의 효과적 통제를 위한 전략적 합리성에 충실하여야 하고, 여기에 더하여 시민사회의 가치관 변화에 따라 기업활동의 정당성을 추구하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실현하여야 하는데, 이 세 가지 합리성의 실현이 바로 전문화된 경영의 몫이라는 것이다. 자본의 기능과 경영의 기능이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전제하였다는 것은 기업의 역사적 발전단계에서 나타났던 현상이고, 이것은 앞으로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겠지만, 이 역사적 과제의 실현이 자본의 기능과 경영의 기능을 지양한다고 말할 까닭이 없다.

III. 독일의 공동결정 제도와 이에 대한 사회적 개신교의 공헌

이해당사자 참여 민주주의에 근거한 기업의 지배구조는 독일의 석탄과 철강산업 분야(Montanindustrie)의 공동결정 제도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진보적인 형태로 실현되었다. 독일에는 이 공동결정 제도 이외에도 각기 다른 공동결정 제도가 법제화되어 있지만, 공동결정 제도는 경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한 독일 노동운동이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거치며 이룩한 역사적 성과이며, 이를 이룩하는 데 독일의 사회적 개신교가 많은 공헌을 하였다.

1. 독일에서의 경제 민주주의와 공동결정 제도 - 간략한 역사적 개요

공동결정 개념은 노동과 자본이 시장경제의 역사적 조건들 아래서 첨예한 이해갈등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서로 불가분리의 연관을 맺고 있으며, 노동과 자본은 대등한 사회적 파트너로서 경제생활의 모든 차원들에서 나타나는 의제들에 대해 공동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 인식은 경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독일 노동운동에서 경제 민주주의적 공동결정 개념은 1848년 국민의회의 소수파가 제안한 공장법 초안에 최초로 나타난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결사권이 아직 완벽하게 실현되어 있지 않았던 시대에 민주주의적 공동결정 제도를 실현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제1차세계대전 기간에 주요산업부문의 노동조합들은 1916년 12월 5일에 제정된 "조국봉사단 법"에 의해 기업내부와 초기업 차원에서 고용자들과 밀접한 협력을 하도록 요구되었다. 특수산업부문에서의 노사정위원회를 규정한 이 법은 해당 노동조합들을 국가질서 속에 통합하고자 시도하고 고용자들과 피고용자들의 동등한 공동결정을 도입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18년 11월 15일 독일혁명이 발발한 직후 노동조합들과 사용자대표기구들은 "중앙노동공동체"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였다. 고용자들과 피고용자들 대표는 상대방을 인정하는 가운데 노사정위원회의 역할을 새로 맡게 된 중앙노동위원회를 동수로 구성하고 "독일 산업과 공장에 관련되는 모든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을 공동으로 해결하고 관련 법률의 제정과 행정문제들을 공동으로 다루기"로 하였다. 공동노동위원회의 의제들에는 사회정책, 노사협약, 공장평의회법안, 분쟁조정, 노동시간정책 등이 포함되었다. 이 협약은 1924년까지 유지되었으며 초기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노사정위원회 정책과 공장평의회법을 둘러싼 격렬한 논
쟁을 불러 일으켰다.
 노사정위원회 정책에 대한 논의가 노동조합의 주요관심사였다고 한다면, 공장평의회 운동의 대표자들은 공장평의회법 제정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노동자들은 이 두 의제를 둘러싸고 서로 분열하였다. 그 당시 노동자들은 기업 내부의 공동결정과 초기업 공동결정을 서로 통합할 수 있는 개념을 강구할 수 없었다. 1919년 8월 11일의 제국헌법 제156조와 165조는 공동경제의 규율 문제를 미결의 과제로 남겨 두었고, 1920년 2월 4일의 공장평의회법은 사회정책과 인사정책에 관한 기업 내부의 공동결정을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 입법은 공동결정이 내려지는 기구에서 노동 측이 3분지 1의 대표권을 갖도록 규정하는 데 그쳤고, 기업
차원의 경제정책에 대한 노사쌍방의 공동결정은 아예 배제되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논쟁과 입법과정을 뒤로하고 경제 민주주의와 공동결정 개념을 서로 결합시킨 사람이 바로 프리츠 납탈리(Fritz Naphtali)이다. 그는 1928년의 "경제 민주주의"라는 저술에서 1849년의 경제 민주주의 개념을 되살리고 독일노동조합총연맹의 경제민주주의적 개혁강령 초안을 제시하였다. 그는 이 초안에서 노동조합을 통해 초기업 차원에서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집단적으로 대변하고, 공장평의회를 통해 기업 차원에서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집단적으로 대변할 것을 제안하고 이 둘을 서로 밀접하게 결합시킬 것을 촉구하였다.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독점 기업조직들을 공익 아래 종속시킬 것, 곧 사회화를 강력하게 촉구하였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대부분의 노동조합들은 강령을 통해 핵심산업의 사회화, 국민경제의 기본계획, 기업과 공장 차원에서의 공동결정을 요구하였고, 1949년 10월 뮌헨에서 설립된 독일노동조합연맹은 이 세 가지 요구를 노동조합 운동의 경제정책 핵심노선으로 선언하였다.
 이에 앞서 1946-1947년에는 영국 점령지역에서 이른바 석탄 및 철강산업 부문의 공동결정 제도의 원초적인 모형이 논의되기 시작하였고, 1947-1948년에는 영국 점령군의 북독 철강 감독위원회와 노동조합들 사이에서 기업 내부의 공동결정에 관한 협약이 체결되었다. 이 협약에 근거한 석탄 및 철강 산업 분야의 공동결정 제도(Montanmitbestimmung, 이하 몬탄 공동결정 제도로 약칭)가 법제화된 것은 독일연방공화국이 창설된 직후인 1951년 3월 23일의 일이었다. 이 법은 공동결정이 이루어지는 감독위원회를 노사동수로 구성하도록 규정하는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기업 차원의 공동결정 제도를 확립하는 대가로 핵심산업의 사회화와 초기업 차원의 공동결정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몬탄 공동결정 제도는 여러 차례 개정되었으나(1956년, 1957년, 1981년, 1987년), 노사동수참여권 조항은 변경되지 않았다.
 1952년 10월 14일에는 다른 산업 분야의 기업과 공장 차원에서 공동결정 제도를 규정하는 공장조직법도 발효되었으나, 이 법은 몬탄 공동결정 제도와는 달리 주식회사나 합자회사의 감독위원회에서 노동 측이 3분지 1의 대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1960년대 초 이후 독일에서는 경제 민주주의의 과제들이 새롭게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1963년 11월 뒤쎌도르프에서 개최된 독일노동조합연맹 연방회의에서 채택된 기본강령은 이 과제들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노동조합들은 노동자들의 공동결정을 확대하기 위하여 투쟁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조합들은 경제와 사회를 개조하고자 한다. 이 개조는 모든 시민들이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의사결정에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독일노동조합연맹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국민경제적인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자유로운 공동경제를 위해 경제권력을 공적으로 통제하고, 모든 경제적, 사회적, 인사정책적 결정들이 내려지는 곳에 노동자들이 동등하게 참여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천 명 이상의 피고용자들을 가진 거대 기업들에 몬탄 공동결정 제도를 적용하자는 독일노동조합의 뒤쎌도르프 강령이 채택되면서 독일 사회에서는 공동결정 제도의 개혁을 논의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여러 사회집단들과 학자들은 매우 다양한 개혁안을 제시하였고, 이에 관한 논의는 독일 연방의회가 1972년 공장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하고 1976년 "공동결정법"을 제정할 때까지 매우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2. 공동결정 제도에 관한 독일의 사회적 개신교의 논의

독일 개신교(EKD)는 1960년대 초 이후 또다시 활발해지기 시작한 공동결정 제도에 대한 논의에 부응하여 1968년 공동결정 제도에 대한 연구를 백서(Denkschrift)의 형태로 발표하였다. 이 연구서에 포함된 내용들은 당시의 정치계와 사회단체들, 그리고 학자들의 주목을 불러 일으켰고, 매우 다양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중요한 것은 이 연구서가 독일의 사회적 개신교에서 이루어진 장구한 논의의 결실이라는 것이다. 그 논의는 빅톨 아이메 후버(Viktor Aime Huber)가 1865년에 제시한 기업 차원의 공동결정 제도에 관한 최초의 구상에
까지 그 맥이 닿아 있다. 아래서는 이 논의를 역사적으로 간략하게 정리해 보기로 한다.

2.1 빅톨 아이메 후버

사회적 개신교의 역사에서 공동결정 제도에 관한 최초의 연구 업적을 쌓은 후버(1800-1869)는 개신교 측에서 "새로운 산업체제의 의미와 자기의식을 지닌 노동자들의 장차 지니게 될 중요성"을 최초로 인식한 인물로도 꼽힌다. 그는 확신에 찬 군주제 옹호론자였지만, 노동자들이 동직자 조직을 통해 자조에 나섬으로써 자주적인 사회세력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기업가에 의한 노동자들의 가부장적 보호에 반대하였다.
 1865년 그는 "노동자 결사에 관하여"라는 팜플릿을 작성하여 개신교 측에서는 최초로 노동자들의 결사의 자유와 파업권을 옹호하였다. 그는 공장조직을 분석하면서 생산에서 노동과 자본이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두 가지 요인들, 곧 경영과 지시의 총괄개념으로서의 자본과 노동은 공동의 생산을 위해 서로 결합된다. 공동생산에서 둘은 필수불가결하다." 이러한 전제를 가지고 그는 이익배분에서 노동자들의 참여를 배제하는 그 당시의 관행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그가 생각한 것은 이자와 임금을 지불하고 남은 이윤의 배분이었다. 이 점에서 그는 감가상각의 보전 이외에 자본의 몫을 인정하지 않았던 마르
크스와는 다른 가치이론을 출발점으로 삼은 셈이다.
 그는 생산에서 노동과 자본이 갖는 동등한 지위로부터 공동결정에 관한 원칙을 도출해 내었다. 그는 비록 노사 동등권에 입각한 공동결정을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임금결정과 공장조직과 관련해서 노동자들이 책임 있게 의견을 말할 권리"를 옹호하였다.

2.2 후리드리히 나우만

빌헬름 시대에 후리드리히 나우만(Friedrich Naumann 1860-1919)은 경제적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를 모두 극복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걷고자 하였다. 그는 경제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을 자신의 기독교 사회주의에 받아들여 기업 내부의 공동결정과 초기업 차원의 공동결정에 관한 명확한 개념을 다듬었다. 그는 이 두 차원의 공동결정을 실현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노동자들의 결사권이라고 인식하였다. 그는 빅톨 아이메 후버와 마찬가지로 기업가들의 가부장적인 노동자 보호에 반기를 들었다. 나우만은 개신교의 기본신념에 따라 개인의 인격 존중과 개개인의 존귀함을 옹호하였고,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결사를 통해 개개인이 자유로운 인격으로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기본사상은 그의 후기 저작인 "산업신민(産業臣民)으로부터 산업시민(産業市民)으로"(1907)에 다시 한번 명확히 밝혀져 있다.
 1895-1996년에 기독교적 입장에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입장에서 민족적 입장에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입장으로 방향을 전환한 나우만은 자유로운 국법질서 안에서 사회주의적 개혁을 점차적으로 실현하는 방도를 찾기 시작하였고, 1905년 포괄적인 경제정책을 제시하였다. 이 문서에서 그는 "지구 표면을 철저히 자본화"하려는 사적 자본주의의 역할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전제하고, "조직된 노동공동체의 수중으로 소유권이 이행하는 것"은 먼 장래에 일어날 일이라고 예견하였다. 그는 현 상황이 이 두 극단 사이에 자리잡은 중간단계라고 인식하였다. 그리고 이 중간단계에서는 "사회주의의 목표를 지속적인 전진을 통
해" 달성하는 것, 다시 말하자면 소유와 노동의 자본주의적 조직을 "점차적으로" 민주화하는 것이 현실주의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자본주의 안에서 나타나는 개혁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이 잠재력을 강화함으로써 인격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소유의 지배를 극복하고 물질소유자와 노동수행자가 각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공동의 문화운동을 전진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여기에 나우만의 공동결정 제도에 관한 구상이 근거한다. 그가 공동결정 제도의 모델로 제시한 것은 "기업의회주의"이다. 그것은 공장의회에서의 연습을 통해 점진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그는 관료주의적 경영을 단호히 반대하고 기업의 인사정책, 경제정책, 사회정책에 노동자들이 포괄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노동조합들과 공장의회들이 밀접하게 협력하여야 한다는 것도 선구적으로 주창하였다.
 초기업 차원의 공동결정 제도와 관련해서 그는 "노동위원회"의 설립을 주장하였는데, 이 위원회는 조직된 노동자들과 사용자 단체들이 "산업의회주의"의 원칙에 따라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3 에두아르트 하이만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사회적 개신교의 여러 분파들은 공장평의회 입법과 중앙노동위원회 정책에 관해 활발한 논의를 펼쳤다. 이 분파들의 논의는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여기서 자세하게 다루기는 어렵다. 이 시기에 가장 돋보이는 활동을 한 학자는 폴 틸리히를 중심으로 한 베를린 써클의 에두아르트 하이만(Eduard Heimann)이다. 국민경제학자였던 하이만은 노동으로부터 비롯되는 권리를 인간학적으로 정당화하면서 공동결정 제도의 논리적 근거를 제사하고자 노력하였다.
 후리드리히 나우만과 마찬가지로 하이만 역시 극단적인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다같이 극복하는 제3의 길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는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면서 자본주의의 업적능력을 긍정하였지만 자본주의에서 경제권력이 집중되고 기업 차원의 이윤극대화를 통해 인간의 지배가 나타날 위험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는 독점형성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독점의 발전이 사회화를 촉진시킨다는 당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 특히 힐퍼딩의 이론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하였다. 사회운동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그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이 정당하다는 것을 옹호하였으나 그 자체를 이상화하거나 자
유로운 법치질서에 관한 자유주의적 이상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하이만에 따르면. 사회운동은 노동자들의 존엄성을 경제생활과 사회생활의 모든 차원에서 실현하는 사회적이고 자유로운 경제질서를 향한 추진력이다. 그는 이 경제질서를 "사회적인 자유질서"라고 이름하였고, 이 질서의 핵심은 "연대와 자유"의 상호의존성이다.
 하이만은 사회적인 자유질서가 인간을 중심에 놓는 사회주의의 목표이고, 이 목표는 사회정책을 통해 점진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믿었다. 사회정책의 의미는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 잘 정리되어 있다:

"사회정책은 재화의 질서에 의해 여러 사물들 가운데 하나로 취급되는 노동자들의 보호와 육성을 위한 조치들의 총괄이다. (...) 사회정책은 피지배자들을 위해 지배를 폐지하고자 한다. 사회정책은 따라서 자본의 지배와 재화의 질서 속에 반대원칙을 구축하려는 작업이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에 반대하면서 자본주의 안에 사회적 이념들을 실현하는 일이다."

 이 인용문은 경제가 업적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노동세계의 인간화에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경제는 노동자들의 자유와 존엄성, 공동체 형성 등 사회적 이념들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들을 마련하여야 하고 이 사회적 이념들에서 비롯되는 요구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업적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의 업적능력과 사회적 이념들의 실현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하여야 한다면, 그것은 단연코 사회적 이념들의 실현이어야 하고, 이 때문에 경제의 업적능력이 손상되는 것까지도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이만은 강조한다.
 공동결정 제도를 옹호하는 하이만의 논거는 노동권(Arbeitsrecht)이다. 노동권은 노동관계들의 법적인 규율에 그치지 않는다. 노동권은 "노동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노동 안에서 그리고 노동에 접할 때 노동자가 누려야 할 권리"(eine Berechtigung des Arbeiters nicht nur aus seiner Arbeit, sondern in und an seiner Arbeit)이다. 이 노동권 규정을 가지고서 그는 노동과 관련된 모든 영역들에서 인간과 인격으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옹호한다. 이것은 노동세계에서 노동자들이 지배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을 지양하고 주체적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이 원칙은 결사의 자유와 공장평의회 구성에 이르기까지 관철될 수 있어야 한다.
 하이만은 인격과 결합된 노동에 대한 경영자의 지배권을 부정한다. 자본주의적으로 조직된 노동세계에서 노동자는 설사 임금을 수령하는 대가로 자신의 노동력을 가치생산 과정에 들여놓는다 하더라도 노동권을 여전히 유지할 수 있고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결정과 공동책임의 근거는 노동으로부터 비롯되는 바로 이 권리에 있다. 그리고 노동으로부터 비롯되는 이 권리를 실현하려면 반드시 "집단적인 권리"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노동권의 실현은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 초기업 차원에서 중앙집중화된 노동조합들은 사용자단체들에 마주 서서 사회적, 인간적, 정신적 관점에 입각하여 "경제의 사회적 형성"을 이루어 내야 한다. 이 맥락에서 하이만은 노동과 자본의 동수참여의 원칙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노동과 자본의 권력균형이 경제의 사회적 형성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임을 명료하게 부각시킨다. 그는 자본주의에서 노동과 자본이 조화로운 관계에 있을 수 있음을 한번도 가정한 적이 없다. 노동과 자본 사이에는 시장원칙과 인간성원칙의 대립이 있고, 이 대립은 세계관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 하이만의 지론이다.
 둘째, 기업 차원에서 공장평의회는 노동조합의 과제를 수행하는데, 그 방향은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특수한 것으로" 진행한다. 노동조합과 공장평의회는 실천 영역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 과제는 동일하다. 공장평의회의 목표는 "노동자에게 노동생활의 형성을 위한 자유와 책임을 보장하는 사회적인 공장제도"를 이룩하는 것이다. 공장평의회는 기업 내부에서 사회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삶에 가까이 자리잡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탈중앙적 속성을 가져야 한다.

2.4 호르스트 쉬마노브스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독일 개신교가 재건되면서 사회적 개신교의 전통은 독일 교회대회(Kirchentag)로 계승되었다. 1950년 에쎈에서 개최된 교회대회는 1920년의 공장평의회 법을 확대하는 것이 사회관계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노동자들의 "자주관리"를 강화하고 초기업 단위의 공동결정을 도입할 것을 권고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1955년 에스펠캄프에서 회집한 독일 개신교 총회는 기계노동의 확산에 따라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예속상태에 빠져드는 노동세계의 문제에 주목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개혁의 과제를 논의하였다. 독일 개신교 총회는 1952년의 공장조직법이 노동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미흡한 "부분적 해결책"에 불과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이 총회에서 릴리히(H. Lillich)는 초기업 차원의 공동결정이 필요함을 역설하였고, 호르스트 쉬마노브스키(Horst Symanowski)는 노동세계의 인간화를 위한 획기적인 제도개혁의 중요성을 주장하였다.
 쉬마노브스키는 1956년부터 마인츠의 고쎈 선교부에서 목사들과 목사후보생들이 노동세계를 스스로 경험하고 이 경험을 정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이 프로그램의 성과를 모아 프리츠 휠마(Fritz Villmar)와 함께 1963년 "노동자의 세계 - 젊은 목회자들이 공장으로부터 보내는 보고서"라는 책자를 발간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노동세계를 인간화하기 위해서는 일터에서 공동결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의 말을 인용하기로 한다:

"인간은 대상으로 취급되지 않고 동등한 가치를 지닌 인격으로 행위하는 주체로 있을 수 있는 노동세계에서만 자신의 인간됨을 실현할 수 있다. 인간적 실존의 핵심에는 노동세계에서 책임 있게 함께 일하는 것이 포함된다. 책임 있게 함께 일하는 것은 의무의식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을 형성하고 조직하고 평가하는 데 참여할 때, 그가 함께 말하고 함께 영향을 미치고 함께 결정할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 공장과 기업 차원에서 오늘날 시행되는 공동결정은 매우 불충분하다. (...) 대의원에 의해 간접적으로 행사되는 이 공동결정 방식은 (...) 노동자가 대상화된 존재로 남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 여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노동자가 가장 큰 책임을 지고 가장 훌륭한 능력을 발휘하는 곳, 곧 자신의 일터에서, 자기가 속한 집단이나 부서에서 공동결정권을 갖는 것이다."

 쉬마노브스키의 이 호소는 독일 개신교가 작성한 1968년의 연구서에 큰 영향을 미쳤다.

3. 공동결정 제도에 대한 독일 개신교의 연구서(1968)의 내용과 그 영향

3.1 내용

공동결정에 관한 사회적 개신교의 오랜 논의는 1968년 공동결정 제도에 대한 독일 개신교의 연구서에 수렴되었다. 이 연구서는 초기업 차원의 공동결정 제도를 일단 도외시한 채, "각 개인과 집단, 혹은 그 대변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공동결정과 공동책임을 허용하여 회사와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는가"라는 문제에만 집중하였다.
 연구서는 공동결정의 근거를 "인종, 출생, 신분 혹은 사회적 지위의 차이 없이 이 세상을 형성하는 자유와 공동책임으로 모든 사람들을 불러내신 하느님의 소명"에서 찾는다. 연구서는 사회적 개신교의 전통에 충실하게 기업가들에 의한 노동자들의 가부장적 보호를 배격하고, 노동과 자본의 사회적 파트너관계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힌다.
 연구서는 공동결정의 객관적 근거를 현대의 생산과정에서 "자본의 권리들과 노동의 권리들이 서로 뒤얽혀 있다"는 데서 찾는다. 이 역사적 사실은 소유권, 곧 생산수단에 대한 처분권을 앞세워 공동결정의 법적인 가능성을 배제하려는 자본의 전략을 무력화시킨다. 소유권이 인간에 대한 지배권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게 지적된다. 이러한 전제 아래서 공동결정은 노동과 자본이 불가분리적으로 서로 결합되어 있는 생산기구들에서 둘의 동등한 권리를 확보하는 문제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당사자들의 상호의존 관계와 권리들은 각자가 공동책임을 짐으로써 성공적인 공동활동이 이루어지도록 조절되어야 한다. 이 원칙으로부터 두 가지 결론이 도출된다. 첫째, 공동결정에 대한 사회윤리적 고려는 소유권 문제로부터 분리될 수 있고, 둘째, 공장과 기업 차원에서 노동과 자본의 동등권에 입각한 공동결정이 회사법적 근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서는 시장경제의 역사적 조건들 아래서 노동과 자본이 협력뿐만 아니라 대립하기도 한다는 점을 적절히 고려한다. 이 때문에 노동과 자본이 스스로를 대변하는 경우에는 둘 사이의 권력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연구서는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집단들이 그들의 관심사와 권리들을 각각 영향력 있게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단지 각 집단의 "선의"에 의지해서는 경제적 이성과 사회정의를 보장할 수 없다고 그 이유를 밝힌다. 이 논거를 가지고서 연구서는 노동과 자본의 이해관계가 서로 교착될 때 둘이 동등한 권력관계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동수참여 원칙을 옹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연구서는 대기업의 감독위원회에 노동과 자본이 동수로 참여해야 한다는 일치된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연구서를 작성한 독일 개신교 사회질서위원회의 다수는 감독위원회에서 노동자들이 자본소득자들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참여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연구서는 몬탄 공동결정 제도에서 노동조합이 감독위원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으나, 대기업의 감독위원회에 동수권 원칙을 도입할 경우 국민경제에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아울러 컸다. 몬탄 공동결정 제도를 모든 대기업에 적용하자는 주장은 소수파 의견으로서 연구서에 기록되는 데 그쳤다.
 연구서는 공장과 기업 차원에서 공동자문, 공동활동, 공동결정의 책임을 진 공장평의회의 집단적 대표권 이외에도 일터를 형성하는 데 각각의 노동자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리를 강력하게 옹호하였다. 현대 공장제도의 위계구조에서 관리자의 작업지시권은 결코 명령-복종-관계로 귀착되어서는 안 되고, 각 노동자가 "자신의 일터에서 사리에 맞게 그리고 책임 있게 함께 생각하고 그 견해가 받아들여지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명제를 통해 연구서는 노동세계의 인간화를 옹호하고자 한다.

3.2 영향

독일 개신교의 공동결정 제도 연구서는 공동결정을 법제화하려는 독일 연방의회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다. 1972년 1월 15일 개정된 공장조직법은 일터를 형성하는 데 각 노동자가 보다 큰 작용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공동자문, 공동활동, 공동결정의 분야에서 공장조직법 개정안은 별 다른 진전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1976년에 입법화된 공동결정법은 석탄 및 철강 산업 바깥의 대기업 감독위원회에서 노동 측이 자본 측과 동수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데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독일 개신교의 공동결정 제도 연구서는 소유권 개념에 입각하여 공동결정권을 무력화시키려는 자본 측의 공세에 강력하게 저항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소유권 규정을 넘어선 미래의 공동결정권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이것은 1979년 3월 1일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공동결정법의 합헌성을 판결하면서 내세운 논거에 대한 개신교 측의 날카로운 비판에서도 엿볼 수 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공동결정법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9개 주식회사들과 29개 사용자단체들의 헌법소원에 대해 공동결정법이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소득자들의 고유한 처분권을 부정한 것이 아닌 이상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는 논거를 밝힌 바 있다. 생산수단의 처분권을 행사할 때 나타나는 사회적 영향을 고려하도록 규정한 공동결정법은 소유의 사회적 책임을 규정한 독일기본법 제14조 2항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 판결은 얼핏 보기에 매우 사리에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경제정책에 관한 노동과 자본의 공동결정을 실질적으로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그것은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소유
권 규정의 좁은 잣대를 가지고 공동결정의 가장 본질적인 측면을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공동결정에 대한 요구가 현대 생산기구에서 노동의 권리들과 자본의 권리들이 불가분리적으로 뒤얽혀 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을 도외시한 셈이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이 공표되자 귄터 브라켈만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헌법재판소의 "사고모델은 소유자들의 권리들이 본래적 권리들이고 이 권리들은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해 추후적으로 제한될 수 있다는 데서 츨발하고 있다". 따라서 이 판결은 "동등한 결정권의 원칙에 근거한 모든 형태의 동수참여 공동결정에 대한 분명한 거부"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개신교 사회윤리의 원칙에 따라 공동결정법의 전면적인 개정을 요구하면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러나 인간다운 노동에 대한 권리로서의 노동권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노동에서 비롯되는 권리', 곧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노동수행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권리도 노동자에게는 똑같이 중요하다. 만일 노동이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존재에 높은 가치를 갖고 있고 노동의 실천을 통하여 인격이 개발되는 것이라면, 노동을 수행하는 과정과 노동조건들을 구조화하는 과정에서 노동의 질을 단호하게 함께 결정하는 개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공동자문권, 공동활동권, 공동결정권이 속하며, 이 권리들은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성격을 띤 참여가능성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1982년 베를린에서 개최된 독일 개신교 총회는 공동결정권이 노동의 다른 여러 주제들과 더불어 계속 논의되어야 하며, 이제까지 교회에서 제시된 지침들을 넘어서서 노동과 자본의 동수참여권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공동결정은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자들의 처분권 주장에 의해 좌초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다시 한번 강력하게 표명되었다.
 1987년 라인란트 개신교의 사회윤리위원회는 몬탄 공동결정 모델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그보다 더 나은 모델도 강구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몬탄 모델은 기업 차원의 공동결정에서 '노동'이라는 요소에 본질적으로 더 중요한 비중을 부여하였고, 또한 그것이 '사리에 부합한 것으로' 입증되어 왔기 때문에, 사회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 1976년의 공동결정법보다 훨씬 더 낫다. 이 말은 몬탄 모델이 사회윤리적으로 유일한 모델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인간부합적인 것과 사리부합적인 것의 규준들을 훨씬 더 최적하게 실현시키는 모델들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문제들에 대한 토론은 계속 되어야 한다."

IV. 마치는 글

이 글에서 나는 시장경제의 역사적 조건들 아래서 기업의 지배구조가 갖는 의미를 간략하게 살피고, 기업의 지배구조 개혁을 위한 독일의 사회적 개신교의 논의를 역사적으로 개관하였다. 나는 이 역사적 개관이 한국 개신교가 새로운 경제질서를 구상하는 데 참여하여 좋은 대안을 활발하게 제시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비록 한국 개신교는 경제문제에 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참고할 수 있는 전통을 많이 갖고 있지는 않지만, 사회문제를 다루어 본 적이 많은 다른 교회들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나름대로의 견해를 형성하면서 전통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공동결정 제도는 린 생산방식, 호봉제의 확대 등 포스트 포드주의가 시행되기 이전에 시행되었던 제도들이기 때문에 변화된 상황 속에서 어떻게 계속 진화할 것인가를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독일에서 공동결정 제도는 주로 사회문제의 틀에서 다루어져 왔고, 따라서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해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독일의 사회적 개신교의 전통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기업활동과 경제활동으로 인해 생태계의 안정이 큰 영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는 자연문제도 공동결정 제도의 틀에서 활발하게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이 중요한 문제를 다루지 못했다.
 한국 개신교가 사회문제와 자연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차원에서 공동결정 제도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이 주제에 관한 매우 중요한 공헌이 될 것이다. 이 과제를 수행하려면 노동에 대한 인간학적 규정뿐만 아니라 생태학적 규정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나는 한국 개신교가 노동의 인간학적, 생태학적 규정을 신학적으로 뒷받침하는 데에도 진전이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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