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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복의 경제신학 구상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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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복의 경제신학 구상의 의의


강원돈(신학박사/경제윤리)


I. 머리말

김용복은 민중신학자로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민중신학이 태동할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중신학의 형성과 발전에 공헌해 왔을 뿐만 아니라,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과 신학의 발전에 호흡을 맞추어 가며 민중신학의 지평을 끊임 없이
확대시켜 왔다. 그는 민중의 사회전기라는 관점과 방법을 가지고 성서의 이야기와 민
중의 이야기를 독특하게 엮으며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민중과 더불어
느끼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길을 모색해 왔다.
 1990년을 전후로 하여 그는 여러 편의 논문들을 통하여 민중신학적 시각에서 그가
추구하는 경제신학의 구상을 발표해 왔다. 여기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하느님의 정치
경제"로 압축되는 새로운 사회경제적 디아코니아와 코이노니아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그는 민중신학과 에큐메니칼 신학이 앞으로 큰 관심을 갖고 다루어야 할 주제에 나름
대로 접근하고 있다. 이 구상은 아직 세부적인 부분까지 구체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할 기본시각들을 함축하고 있다.
 이 글에서 나는 김용복의 경제신학 구상이 갖는 의의를 밝혀 보려고 한다. 이 글 제
2장에서는 김용복의 경제신학 구상이 민중신학과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의 발전에서 갖
는 의의를 간단히 살펴 보고, 제3장에서는 세계화가 민중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김용
복의 인식을 다룬다. 4장에서는 김용복의 경제신학 구상에서 핵심을 이루는 성서의 경
제원리에 대한 인식과 이에 바탕을 둔 대안들의 모색을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제5장에
서 김용복의 경제신학 구상이 갖는 의의를 평가한다.

II. 김용복의 경제신학 구상의 민중신학적,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적 배경

김용복의 경제신학 구상은 그가 민중신학자로서 기왕에 제시하였던 여러가지 관점들
과 명제들에 연결되어 있고, 또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의 발전과정과 긴밀하게 결합되
어 있다. 먼저 그의 경제신학적 구상의 민중신학적 배경을 살피기로 한다.

1. 김용복의 경제신학 구상의 민중신학적 배경

1. 1990년 이전까지 김용복의 신학에서 핵심적인 주제를 이루었던 것은 민중의 사회전
기를 관통하는 "메시아 정치"였다. 그는 이 주제를 서로 불가분의 관련을 갖는 정치신
학과 문화신학의 영역에서 다루어 왔다. 그에게서 민중의 사회전기의 신학적 입지점은
하느님과 그 백성의 계약이고, 따라서 그것은 하느님의 계시의 역사적 틀이다. 그
게서 성서의 이야기와 민중의 사회전기는 둘이 아니라 하나다. 이 둘을 분리시키면 창
조로부터 종말에 이르는 하느님의 구원사는 초점을 잃는다. 성서의 이야기와 민중의
사회전기는 구체적인 상황과 그 안에서의 민중의 삶을 매개로 해서 서로 엮어져 구원
사의 구체적인 핵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 핵이 곧 메시아 정치다.
 그는 메시아 정치와 메시아주의를 구별하고, 메시아주의의 권력정치적 성격을 예리
하게 비판하면서 메시아 정치의 해방적 성격을 부각시켰다. 메시아 정치가 해방적 성
격을 갖는 것은 그것이 권력의 자기중심성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메시아는 고난의
종의 모습으로 왔고 (이사 53장), 자신을 비웠다 (필립 2,5-11). 권력의 행사와 폭력을
포기하였다는 뜻이다. 그  세상을 지배하는 죄의 권세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러
나 이 십자가상의 죽임에서 종말론적인 역전이 일어난다. 그는 죄의 가장 큰 권세인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여 그것을 무력화시켰다.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연 것이다. 죽
임의 권세가 지배하는 현실을 넘어서서 만물을 새롭게 형성하고 갱신하는 메시아 정
치의 현실성과 그 미래를 보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김용복은 역사 속에서 고난당하고 그 고난 속에서 새로운 현실을
갈망하는 민중의 모습을 본다. 역 적으로 보면 민중은 삶의 모든 영역과 틀에서 권
력을 박탈당했다. 민중은 그들을 누르고 그들에게서 삶의 기회를 빼앗고 그들의 생각
과 감정마저도 조작하려는 엄청난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그 폭력은 민중을 영
원히 죽이지는 못한다. 민중은 모든 것이 왜곡되고 굴절되어 있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갈망과 희망을 잃지 않고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살아감으로써 폭력의 지배를 무력화
한다. 폭력을 넘어서 있는 곳에 민중의 미래가 있기에 권력의 형성과 그 행사를 포기
하고 종의 모습으로 서로 봉사하며 서로 친교를 나누는 공동체가 민중이 지금 살아가
고자 하는 현실이고 또 앞으로 살아가며 형성하여야 할 미래의 현실이다.
 성서를 관통하는 메시아의 이야기와 역사 속에서 엮어져 가는 민중의 이야기를 이
렇게 서로 연결하면서 김용복은 민중신학의 형성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매
우 중요한 통찰에 이른다. 그의 기본명제는 메시아는 민중적이고 민중은 메시아적이라
는 말로 요약된다. 이렇게 보면 보잘 것 없어 보이고 아무런 권력도 갖지 않은 민중이
역사의 주체이다. 민중의 주체성은 민중의 메시아적 성격의 본질이다.

2. 만일 민중신학이 이 명제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그 관점과 방법은 민중의 주체성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민중신학은 어떤 고정된 사고의 틀을 고집함으로써
민중의 삶의 총체성을 가리거나 민중이 역사를 통해 표현하는 삶의 구체적 성격을 놓
쳐서는 안 된다. 민중의 삶에서 경험과 느낌과 생각과 기대는 서로 분절되어 있지 않
다. 이를 서로 떼어 놓고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서구의 지성주
의 신학은 끊임 없이 이 잘못을 범해 왔다. 거기에는 신학적 명제들이 이성을 통하여
체계 있게 조직되어 있지만, 인간의 구체적인 경험이 생생하게 전달되지도 않고 구체
적인 인간의 느낌이나 기대는 너무 서투르게 다루어지고 있다. 서구의 지성주의 신학
은 감성과 이성의 이원론과 감성에 대한 이성의 지배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이데올로기적이다. 이데올로기는, 그것이 신학적인 성격의 것이든, 철학적인 성격의 것
이든, 사회과학적인 성격의 것이든, 현상을 유지하려고 하든 그것을 혁명적으로 타파
하려고 하든, 민중의 삶의 포괄성과 구체성을 보지 못하게 하는 닫힌 사고의 체계이기
때문에, 민중과 더불어 있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에 매이지 않는 시각이 필요하다. 김
용복이 민중의 사회전기에 주목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민중의 사회전기는 민중의 삶의 이야기이다. 민중의 삶이 구체적인 현실관계들 속에
서 전개되기 때문에 그들의 고난과 갈망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물론 역사적 맥락에 대
한 분석과 관계들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역사적이고 사회과학적
인 분석은 민중의 사회전기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것이 목적은 아니다. 역사적
이고 사회과학적인 분석을 수행할 때에도 그 분석에 전제되어 있는 관점이 이데올로
기에 물들어 있지 않은가를 늘 비판적으로 자기반성적으로 살펴야 한다. 민중의 사회
전기를 통해 민중의 삶에 접근하고자 할 때, 그들이 표현하고 있는 언어가 이데올로기
적으로 조작된 언어인가를 판별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심리학적이고
이데올로기비판적인 언어분석이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민중의 고난과 갈망을
표현하는 언어는 이데올로기적 조작의 언어와는 판이한 성격을 갖는다. 왜냐하면 민중
의 언어는 몸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 몸의 언어를 담고 있는 틀이 이야기다. 이야기
를 꾸려 나가는 일은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이야기는 삶
과 불가분의 통일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민중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로소 민중의 경
험과 느낌과 생각과 기대를 유기적 연관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 신학은 성서와 역사
속의 민중의 이야기를 출발점으로 삼음으로써 하느님의 구원사가 펼쳐지는 구체적인
통로를 꿰뚫어 보게 된다.

3. 민중의 주체성에 대한 통찰은 신학적 관점과 방법의 변화만을 가져 오는 것은 아니
다. 민중의 주체성에 대한 인식은 정치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고, 실천론의 구
성과 관련해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정치적으로 보면, 민중의 주체성은 생활세계
의 전영역으로부터 민중의 정치적 배제가 강요되었던 시대에 선언되었다. 독재권력이
너무나도 강해서 민중의 자리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때에 이 선언은 독재를
근본적으로 부정했을 뿐만 아니라, 생활세계의 전영역에 민중이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새 역사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도 제시하였다. 참여는 민중의 주체성을 정치적으로 표
현하는 형식이다. 참여가 가능하려면 참여를 가로막는 배제의 논리와 그 틀이 깨지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이 민중을 배제하는가? 기득권 세력이다. 그들은 기득권을 유지
하고 확대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 기득권을 온갖 논리로 정당화하고 폭력으로 지켜내
려고 한다. 거기서는 폭력 자체가 질서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정상화된다.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논리의 핵심인 소유권도 사실은 정당화된 폭력의 또 다른 표현이다. 왜냐
하면 거기서 소유권은 물건에 대한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지배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중의 참여는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논리의 타당성 요구를 거부하고, 그 논리
의 실천적 기반인 폭력을 지양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김용복의 실천론 구상에서 핵심을 이루는 종의 도(Doularchie)는 바로 이 대목에서
깊이 음미될 필요가 있다. 종의 도는 폭력과 그 행사에 대한 굴종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이 겨냥하는 것은 권력현상 그 자체의 극복이다. 권 현상이 나타나는 곳에서는
권력을 행사하는 세력과 권력의 지배를 받는 세력이 서로 갈라진다. 권력은 왜 필요한
가? 자기주장 때문이다. 자기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 주장에 맞서는 것을 누르지 않
으면 안 된다. 그리고 자기주장을 하는 까닭은 그렇게 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고 믿기 때문이다. 종의 도는 스스로를 주장하기에 앞서서 남을 일으켜 세워 주인의
역할을 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남  섬기고 남과 더불어 나누고 사귀고자 하는 데
지배와 권력이 개입될 여지는 없다. 지배와 권력이 지양되는 곳에서는 사귐의 공동체
가 이루어진다. 사귐은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고 의존하고 있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종의 도를 실천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것이 참여공동체의 진면목이다. 참여공동
체는 섬김의 공동체요, 나눔의 공동체요, 사귐의 공동체다.
 이러한 기본구상이 경제를 매개로 하여 전개될 때 어떤 구체적인 모습을 띠게 될
까?

2. 김용복의 경제신학 구상의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적 배경

경제문제와 관련된 김용복의 글들은 1990년을 전후로 하여 발표되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의 작업이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1988년 WCC 중앙위원회가 "발전을 위한 교회참여 위원회"
(Commission on the Churches' Participation in Development - CCPD)로 하여금 경
제문제에 대한 에큐메니칼한 입장을 정리하도록 위임하였고, 이 위임에 따라 정리된
문서가 1992년 "기독교 신앙과 오늘의 세계경제"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다는 것이
다. 이 문서가 WCC의 이름으로 발표되기 전에 각 나라 교회협의회 차원에서 논의되
는 과정에서 김용복은 이 문서의 한국 독회과정을 조직한 적이 있다.

1. CCPD가 주도적으로 작성한 이 문서는 "정의롭고 참여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
(Just, paticipatorz and sustainable Society - JPSS)에 관한 WCC의 논의과정으로 소
급된다. 1978년 취리히에서 "정치경제와 윤리와 신학"이라는 주제로 열린 협의회에서
는 정치윤리에 이바지할 정치경제의 기본개념이 제시되었고, 1 79년 CCPD는 경제
문제에 대한 자문단(Advisory Group on Economic Matters - AGEM)을 설치하여 정
치경제에 관한 연구를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시켰다. 1979년 4월 멕시코에서 개최된
AGEM의 첫 회의에서는 JPSS의 논의를 위한 에큐메니칼한 관점들을 논의하였으며,
이 관점들은 1988년 캐서린 뮬홀랜드(Catherin Mulholland)가 정리한 바에 따르면 다
음과 같은 여섯가지 규준들로 요약된다.

"1. 인간의 기본욕구의 충족: 경제체제가 인류의 기본적인 심리적, 생리적 욕구들을 충
족시킨다고 약속하고 있는가?
2. 정의와 참여: 이 욕구들은 균등하게 충족되고 있는가? 사람들이 한 사회의 자원에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가?
3. 지속가능성: 경제체제가 수세대에 걸쳐서 생태학적으로 지속가능한가?
4. 자립: 경제체제가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의 결정에 완전히 굴복하지 않고 자
존심과 자유를 지키고 능력을 계발하도록 만들고 있는가?
5. 보편성: 경제체제와 경제정책들이 민족국가나 지역의 정치적 경계를 넘어서서 지구
의 인간 가족 전체를 위해 위에서 말한 요인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6. 평화: 경제체제가 정의에 바탕을 둔 평화의 전망을 촉진하고 있는가?"

 AGEM은 이 규준들에 입각하여 1980년 제네바에서 두번째 회의를 열어 세계경제질
서에 대한 연구를 하였고, 1 80년 로마에서 열린 세번째 회의에서는 초국적기업의
문제를 다루었다. 1 81년 워싱턴에서 열린 네번째 회의에서는 세계기아 문제를 다
루었고, 1 84년 제네바에서 열린 다섯번째 회의에서는 국제금융체제를 비판적으로
분석하여 그 대안을 제시하였다. 끝 로 1985년 제네바에서 열린 여섯번째 회의에서
는 실업 문제가 다각도로 연구되었다. 이 문서들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은 아직 우
리 신학계에서는 이루어져 있지 않다. 이 작업은 이 논문의 한계를 훨씬 뛰어 넘는 것
이기 때문에 다른 기회로 미룬다. 중요한 것은 이 문서들이 위에서 말한 1992년의 에
큐메니칼 경제문서의 바탕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2. 나는 여기서 경제문제를 기독교 신앙의 과제로서 인식한 1992년의 에큐메니칼 문서
의 의의를 좀더 자세히 밝히기 위해 AGEM의 정치경제 연구의 바탕이 된 JPSS의 논
의구조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 보려고 한다. JPSS의 논의구조는 그 이전까지 에큐메
니칼 사회사상의 파라다임을 이루어 왔던 "책임사회" 개념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1937
년 옥스포드 회의에서 틀을 잡기 시작하다가 1948년 WCC 암스테르담 창립총회에서
채택된 "책임사회" 개념은 파시스트 국가들의 독재와 무서운 세계대전, 동서갈등의 대
두 등을 배경으로 하여 세계를 형성하는 기독교인들의 책임을 강조했다. "책임사회"는
하느님의 주권과 현실을 서로 매개하는 기독교인들의 책임을 유도하는 중간공리의 성
격을 띠고 있다. 책임사회의 파라다임에서 강조된 것은 자유로운 법치국가, 경제정의
개념에 입각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통합, 기회균등, 참여의 확대 등이었다. 추
하는 중간목표들에서 암시되듯이, 이 파라다임은 제1세계의 현실을 전제로 하여 구상
되었다.
 이 파라다임은 제3세계 여러 나라들의 기독교인들의 경험과 신학적 성찰이 목소리
를 내기 시작한 1966년 제네바의 "교회와 사회" 세계대회에서 도전을 받기 시작하였
다. 인간적인 개발 문제가 주요의제로 다루어진 1968년 웁쌀라 WCC 총회 이후 새로
설립된 CCPD는 정의와 개발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해
방신학의 관점이 WCC 차원의 논의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었고, 책 사회 파라다임의
신학적 골격을 이루었던 그리스도 지배권도 메시아적 관점에서 재해석되었다. 세계와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지배권은 하느님의 구원사가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함께 고려할 때에만 신학적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1975년 나이로비 총회는 강령선언을 통해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끊임 없이
추구하되 우리 모두는 새로운 세계경제질서를 필요로 한다는 것과 제3세계 여러 민족
들의 발전을 위해서는 그들의 자립과 공동결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고 밝혔다. 남북문제의 심각성, 개발과정에 대한 민중 참여의 중요성, 정의실현의 긴박
성이 강조된 것이다. 이 강령선언에 입각하여 이미 언급한 1978년 취리히 회의에서
JPSS의 논의를 위한 이정표가 새워졌고, 호세 미구에스 보니노가 의장으로 활동하였
던 자문위원회의 제2차 보고서(1979년)에서 JPSS 개념의 골격이 세워졌다. 이 보고서
에서 중요한 것은 정의와 참여를 상호의존하는 개념으로 파악하였다는 점이다.
 이 보고서에서 정의는 "메시아적 범주"로 인식되고 있다. 하느님의 정의와 신실, 인
류공동체의 올바른 규율을 위한 하느님의 의지는 "메시아적 범주"로서 인식된다는 것
이다. 이것은 정의에 대한 보고서의 규정에서 잘 드러난다. "정의는 자기중심적인 무
관심이나 소외된 예속 없이 자기자신을 실현시킬 수 있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정의는
사람들에게 맡겨져 있는 역사적인 과제이며, 하느님이 역사를 통해 이루시는 종말적
성취이다." 메 아적 범주로서의 정의는 모든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필요로 한
다.  자문위원회의 제2차 보고서는 이렇게 계속된다. "메시아적 관점에서 볼 때, 참여
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없고 각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함께 책임을 지는
참된 코이노니아의 본질적 표현이다." 만일 지구 전체와 각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임
과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할 때 정의와 참여의 문제를 돌아서 가는 길은 없
다.

3. JPSS에 대한 논의는 생태학적 문제의 심각성을 의식하기는 하였지만, 정의와 참여
가 유기적 연관 속에서 파악되었던 것에 비하면 부수적인 주제로 다루어졌다는 인상
이 짙다. 정의와 참여와 지속가능성이라는 세 주제들을 하나의 유기적 통일성 속에서
인식하는 과제는 1983년 뱅쿠버 총회를 통해 시작된 "정의와 평화와 피조물의 보전"
(Justice, Peace and the Integrity of Creation - JPIC)을 위한 공의회 과정에 맡겨지게
되었다.
 전세계 교회들이 초대된 이 공의회 과정은 1990년 서울 JPIC 대회에서 정점에 도달
하였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세 가지 주제들의 유기적 연관에 대한 에큐메니칼한 합의
가 도출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게 된 까닭은 세계상황에 대한 인식이 각 나라의
기독교인들에게 각각 달랐고, 따라서 JPIC를 이루는 각각의 주제, 곧 정의, 평화, 피조
물의 보전이 각 나라의 기독교인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각기 달랐기 때문이다. 정
와 평화의 연관관계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정의는 평화의 필요조건이고,
평화는 정의의 충분조건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3세계의 기독교인들은
가난의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였고, 그 때문에 정의를 전면에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생태학적 위기 문제는 따라서 가난의 해결보다 더 시급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이
에 반해 제1세계의 기독교인들은 생태계의 보전 문제에 주의를 집중시키고자 하였다.
 JPIC 서울 대회의 최종문서는 하느님과 인간의 계약에 입각한 구체적인 행동의 의
무들을 명시하기는 하였다. "올바른 세계경제질서를 수립하고 채무국들의 부담을 제거
하기 위한 행동, 모든 국가들과 인간들의 안전을 실제적으로 보장하고 비폭력 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행동, 모든 생명을 주의깊게 보존하고 대기권을 지키기 위한 행동, 사
람에 관심을 갖고 국민국가적 차원과 국제적 차원에서 인종주의와 차별을 폐지하기
위한 행동"이 그것이다. 1 83년의 뱅쿠버 총회에서 채택된 강령은 이 행동들을 통
일된 하나의 신학적 전망 아래서 유기적으로 파악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1990년의 서
울 JPIC 대회는 이 신학적 관점을 명료하게 밝히지 못한 것이다. 이를 제시하는 것은
향후의 과제로 남겨지게 되었다.

4. JPIC 대회 이후 캔버러 제7차 총회를 준비하기 위해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1부
문 준비 모임에서 "생존을 위한 정의의 윤리"가 집중적으로 논의되었고, 캔 러 총
회 제1부문 보고서에는 정의와 생태계 보전의 상호관계에 대한 관점이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사회정의와 모든 피조물을 위한 생태학적 정
의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힘주어 강조한다. 사회정의는 건강한 환경과 따로 떼
어 놓을 수 없다. 생명능력이 있고 온전한 환경은 보다 큰 사회정의의 전제이다. (...)
정의에 대한 성서의 이해는 통일된 전체로서의 피조물 안에 건전한 관계들이 수립되
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 명제는 사실상 JPIC 공의회 과정에서 제안되었던 정의에 대한 성서적 해석과 맥
을 같이 하고 있다. 거기서 정의는 관계 개념이다. JPIC 선언 제1차 초안에는 다음과
같은 테제가 제시되어 있다. "정의는 이웃 피조물들 사이의 신실한 관계, 공감을 나누
는 관계, 동등한 관계와 관련되어 있다. 이 관계에서 관심의 초점은 '자기자신'이 아
니라 '남'이다. 이러한 발상은 하느님의 정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느님은 노예화되
고 주변화되고 고난당하는 백성을 억압에서 해방함으로써 그 백성에 대한 관계를 구
체화한다." 제 차 초안은 인간계와 생태계의 관계를 정의 개념에 입각하여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하느님 나라의 표징 속에서 인류와 땅과 땅의 모든 사물들 사이의 관
계는 정의를 통해 제대로 수립된다."
 JPIC 공의회 과정에서 시도되고 캔버러 총회에서 제안된 사회정의와 생태학적 정의
의 통합은 생태학적 경제윤리의 구상으로 구체화된다. 이 구상은 매우 추상적인 수준
에 머물러 있기는 하지만 그 방향은 분명하다:

- 지역 차원에서는 바닥 민주주의에 입각한 자립 과정과 전혀 다른 삶의 스타일을 추
구할 것.
- 세계경제질서의 개혁과 관련해서 세계공동체는 그것이 피조물 전체에 미치는 결과
를 예의 주시하면서 세계무역체제를 탄생시키는 경제적, 생태학적 결정들을 책임 있게
내릴 것.
- 화폐가치와 교환가치에 근거하지 않고 생존가능성과 사용가치에 입각한 새로운 가
치이론을 정립할 것.
- 생태계와 경제계의 연관시키는 정치적 틀을 만들기 위해 정치적, 경제적 의사결정과
정에 공동결정권을 구축하고 책임 있는 정책을 개발할 것.

캔버러 총회에서 제안된 생태학적 경제윤리의 구상은 JPIC 공의회 과정이 서울 대회
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할 과정으로 보자는 움직임과 맞물려
여러 경로로 계속 논의되고 있다.

5. JPSS로부터 JPIC를 거쳐 캔버러 총회 이후에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에큐메니칼 사
회사상은 김용복에 의해 독특하게 수용되었다. 김용복은 CCPD 차원의 논의과정에 관
여해 왔고, 또 여러 편의 글을 통해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에서 정치경제 문제가 어떻게
논의되어 왔는가를 추적하기도 하였다. 그는 1970년대 이래의 JPSS 논의와 1980년대
의 AGEM 차원의 정치경제 연구를 의식하면서도 정치신학 내지는 정치윤리 구상에
보다 큰 강조점을 두었다.

5.1 이러한 경향은 JPSS 논의에 대한 김용복의 기본입장에 잘 정리되어 있다. "정의롭
고 참여적이며 존속가능한 사회를 논함에 있어서 주된 관점은 민중이 정의와 코이노
니아(Koinonia: 참여)와 평화(Shalom)의 메시아적 지배에 모두 참여하는 메시아적 왕
국에 대한 신학적 조망이 되어야 할 것이며, 존속가능성은 이러한 신학적 비젼과 유기
적으로 관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 입장은 JPSS의 논의를 위한 자문위원회의 제2
차 보고서에서 강조된 메시아적 관점에 매우 가깝다. 김용복은 메시아 정치의 관점을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정의와 참여, 존속가능성의 우선순위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존속가능성은 정의와 참여에 종속
되어야 하며,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생태계의 위기에 대한 기독교적 관심과 대응을 약화시키지 않는가
하는 제1세계적 우려에 대해 그는 기술지배의 정치적 성격을 재인식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기술지배로 인한 정치적 압제와 생태계 위기가 가장 큰 고난을 가져다 준 것
이 제3세계 민중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존속가능성의 이슈가 갖는 역사적, 정치적
함의를 먼저 파악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한 입장은 김용복의 다음과 같은 항변
으로 구체화되어 있다. "우리는 빈곤과 고난의 문제를 인간과 자연 사이의 모순으로
규정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정의와 백성의 고난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
인 모순으로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개발문제 역시 GNP 증대나 사회발전 혹은 자연에 대한 효과적인 기술적 지배
의 문제로만 보는 관점에 반대하고 이를 고난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민중의 투쟁이
라는 메시아적 관점에서 해석할 것을 제안한다. "경제성장, 보건향상이나 문화창달과
같은 일군의 사회적 목표의 실현, 나아가서 개발의 빠뜨릴 수 없는 차원인 정치제도의
발전은 역사에 있어 고난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라는 그 가운데서 파악되어
야 한다." 그 고 이를 위한 전제조건은 민중의 참여가 보장되는 새로운 정치공동체
의 실현이다. 김용복은 이와 관련하여 민중의 주체성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그것을 실
현하기 위한 필요불가결한 전제조건은 민주적 권리의 확립과 민중의 역사적 자기결정
권의 실현이다. 특히 민중의 역사적 자기결정권은 김용복의 정치윤리에서 참여 민주주
의를 위한 토대이다. "민중의 권리는 역동적인 역사의 전망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민중은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민중의 운명은 열려 있으며 그리고 민
중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다. 민중의 미래는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
나 또는 종교적 철학적 체계에 따라 미리 날조될 수도 없으며, 배제될 수도 없는 것이
다. 민중이 자기자신의 인간화를 이룩하는 과정에서도 주인이어야만 한다." 나  이
관점이 앞으로도 더 발전되어 경제민주주의의 프로그램들로 구체화되기를 바란다.
 JPSS 논의의 전체적 성격을 밝히는 일과 관련해서 김용복은 "이것은 세계경제의 남
북 불균형을 중심문제로 삼으면서 민중의 참여 없는 경제개발은 의미가 없고 인간 공
동체의 항구적 존속이 주요문제라는 차원에서 정치경제 체제의 파라다임을 구상하게
된 것"이라  평가하였다. 이 평가에서 돋보이는 것은 그가 JPSS의 논의에 대한 아
시아 교회의 공헌을 참여의 확대를 위한 노력으로 본 점이다. 당시 한국사회 전체가
독재의 그늘 아래 있었음을 감안할 때 그의 중점 선택은 설득력이 있다.
 그는 JPIC 공의회 과정에 한국교회가 어떤 점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도 분명한 입장을 정리한 바 있다. "한국에 있어서 평화나 창조질서의 보전의 문제는
민중을 위한 정의수립에 달려 있다. 민중의 권리가 옹호되지 않는 사회에 사회적 평화
와 안정이 있을 수 없다. 사회적 샬롬이 없이 국제적인 차원에서 전쟁을 극복하고 항
구적 평화를 이룬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또 평화를 열매로 낳지 않는 정의도
진정한 정의일 수 없다. 정의와 평화의 조건 아래에서 생명과 생명의 보금자리인 자연
환경이 보전될 것이다." 인 문에서 보듯이 그는 정의의 문제를 평화 수립과 피조물
보전의 선결조건으로 인식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의 정세 속에서 그는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을 통하여 JPIC 공의회 과정에 공헌할 수 있다고 믿은
셈이다. 그는 JPIC 주제들에 대한 정치신학적 접근을 통해 하느님의 계약과 민주적 참
여의 불가분리성을 강조하는 데 치중하였다. 그는 하느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세속
권력의 절대성 요구를 부정하는 "하느님의 종의 정체"(政體)가 정의와 평화와 피조물
의 보전을 총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느님의 종의 정체는 하나님의 정
의, 곧 약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정의, '정글'의 질서를 극복하는 평화의 통치, 창조질
서의 정원을 보전하는 정체요, 정치질서이다."

5.2 1990년대에 들어와 본격화된 김용복의 경제신학의 구상은 경제를 신앙의 과제로
보아야 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JPIC 공의회 과정을 제안한 1983년 뱅쿠버 총회 강령선
언과 관련하여 그는 경제문제에 대한 기독교의 접근에 일대변화가 일어났다고 본다.
"따라서 경제적인 불의에 의한 생명의 위협, 전쟁에 의한 생명의 위협, 생태계의 파괴
에 의한 생명의 위협은 상호연관된 것으로서 인류 역사 이래 세계는 최대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인식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이와 같은 인식은 기독교 신앙고백이라는 가
장 강력한 대응을 요청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설명을 한 바로 직후 그는 "정의,
평화, 창조보전이 고백적 신앙의 문제(status confessiones)라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충
성이냐 배반이냐 하는 문제가 정의와 평화와 창조질서를 위한 운동에 달려 있다는 뜻
이다"고 그 의의를 평가하였다. 그  JPIC 서울 대회의 최종문서가 "우리는 하느님
이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 계신다고 믿는다"고 선언한 의의를 매우 중시하였다. 왜냐
하면 바로 이와 같은 신앙고백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억누르는 세력들을
비판하는 입지점이 명확해지고, 고의적인 정책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빈곤을 "스캔달과
범죄"로 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1992년도의 에큐메니칼 경제문서에 대해서는 이 문서가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
괴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경제체제의 위기 심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 주목하
여 그 의의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앙고백의 문제로서의
경제에 대한 인식은 성서적 뿌리를 추구함과 동시에 사회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닌 새로운 정치경제의 파라다임을 추구하고 있다. 그 출발점을 마련하려는 것이 금
번 세계교회협의회가 마련하려는 '신앙고백의 문제로서의 경제'(Economy as a
Matter of Faith)라는 경제선언문이다".

5.3 이와 같은 일련의 발언은 김용복이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의 전개과정을 예의 주시
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는 1980년대에는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참여의 확대를 주요테마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경제신학 구상을 본격적으로
밝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그가 경제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가
1990년대에 들어와서 관심의 초점을 정치로부터 경제로 급선회하였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정의와 참여에 대한 강조에서 드러나듯이, 그의 경제신학 구상은 에큐메니칼 사
회사상의 발전과 교감을 이루며 진작부터 가다듬어져 왔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합당
하다. 그는 뒤의 다른 맥락에서 보게 되듯이 민중의 사회전기에 바탕을 둔 독특한 시
각에서 매우 독창적인 경제신학 구상으로 나아간다.
 그러면 이제 김용복의 경제신학 구상이 어떤 현실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는가를 더
듬어 보기로 하자.

III. 김용복의 경제신학 구상의 출발점 - 세계화가 민중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김용복의 경제신학 구상이 90년대에 들어와서 본격화되었다는 것은 많은 점에서 시사
적이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에는 동구의 현실사회주의 체제가 붕
괴되었고,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일방적 승리가 찬양되었다. 세계경제는 자본주
의 경제의 "지구화"를 통해 급속히 재편되기 시작하였다. 자본이 사상 유례 없는 규모
로 기존의 민족국가의 경계를 넘어서서 자유롭게 운동하게 되었고, 우르과이 라운드를
통해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대체하게 된 "세계무역기구"(WTO)가
세계경제질서를 새롭게 조율하게 되었다. 거대한 독점자본들이 생산기지를 해외에 구
축하거나 글로볼 소싱을 통해 수직적인 국제분업을 이루고자 하는 움직임이 유례 없
는 규모로 나타났다. 일본과 유럽의 금융자본들이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유입되면서
이 지역에는 엄청난 경제 붐이 일어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세계화"에 들뜬 분위기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거대기업들은 해외자본을 끌어들여 엄청난 규모의 신규투자를
하였다. 국민소득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이와 더불어 노동임금도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단군 이래의 최고호황을 기록한 1990년대의 전반기에 민중은 사라지고 없
는 것처럼 보였다. 민중을 말하는 사람들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거나 아예 있지도
않은 민중을 마치 있는 것처럼 조작하는 이데올로그들로 치부되었다.
 이러한 상황의 발전을 보면서 김용복은 세계화가 민중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예의 주시하였다. 그는 세계화의 결과로 빈부의 격차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심화될
것이고, 세계경제가 초국적 기업들의 지배 아래 들어갈 것이라고 본다. 세계화가 전지
구적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도 예의 주시한다. 국민국가의 역할도 크게 약화
되어 사회국가는 그 기반을 잃게 되리라고 분석한다. 이러한 상황의 도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세계화를 밀고 나가는 기본논리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먼저 빈부격차의 심화에 대하여 김용복은 신자유주의의 경제논리 아래서 투자의 발
전와 소비의 발전이 심각한 불균형을 보임으로써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삶의 처지가
급속히 악화되리라고 내다 보았다. "우선 모든 나라나 기업이 경쟁력을 확대하고 강화
하는 시책을 강행할 것이므로 사회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문제를 소홀히
다룰 것이다." 이 명제는 거시경제이론적 분석에 의해 충분히 뒷받침되어 있지는
않지만, 상황의 발전에 대한 거시적 관찰으로서는 매우 정확하다. 세계시장에서 경쟁
력을 강화하여야 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과 설비의 현대화 등 고
정자본의 비율을 높이는 것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자본이 축적되
어야 한다. 이 말은 임금 부분으로 지출되는 비용을 줄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자본의 투자는 노동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것이고, 이에 따라 점점 더 많은 노
동력이 시장에서 퇴출된다. 투자가 늘어나면 새로운 일자리가 더 많이 창출된다는 고
전적인 등식은 사라지고, 세계화가 강요하는 노동절약적 구조조정의 결과로 오히려 실
업이 늘어난다. 실업자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세금
이 거두어져야 하는데, 자본은 이에 거세게 저항한다. 사회적 안전망이 그나마 구축되
어 있는 선진국들은 궁여지책으로 노동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도록 조세정책을 개
편하고, 사회안전망을 축소시키고, 적자재정을 편성하여 결국 자본수익을 높여주는 채
권시장 정책을 쓸 수밖에 없다. 선진국에서 빈부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새로운 가난"
이 의제화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나
라들에서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삶의 처지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세계는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 극빈국가들을 가릴 것 없이 매우 빠른 속도로 양극화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의 조건들 아래서 맑스의 "궁핍화" 이론의 타당성을 다시 한번
재검토하자고 제안하는 것도 일리가 있는 셈이다.
 초국적 기업들의 범세계적인 운동과 관련해서 김용복은 이 기업들의 수익증대가 국
민경제 운영의 틀과 거의 연관이 없어지는 현상에 주목한다. "세계의 거대기업들은 그
들의 법적인 소속이 어느 나라든지 지구적으로 경쟁하고 확장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 국적을 두고 있는 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의 경쟁력이
강화되는 것과 우리 국민의 세계적 경쟁력이 강화되는 것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사
이 이렇게 되는 것은 초국적 기업들이 독립된 체제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용복은
이를 "세계 자본의 기술구조"라는 말로 요약하였다. 이 구조는 세계 자본의 효율성을
무한대로 극대화할 뿐 아니라 "통제 불능의 세력 조직"으로 존재하게 한다는 것이
다. 초 적 기업들은 자본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경영전략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움직일 뿐, 한 나라의 국민경제 차원에서 일반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경제정책, 사회
정책, 구조정책을 어떻게 서로 연관시켜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초국적
기업들은 그러나 세계적인 차원에서 생산과 교역의 조건들을 결정할 수 있는 거대한
경제권력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세계시장에 편입되어 있는 각 나라 시장들
에 생존의 기회를 내걸다시피 하는 사람들과 사회집단들과 민족들의 사회경제적 삶을
지구적 차원에서 결정한다. 세 화가 가져온 잉여수취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 때문에
민중의 삶에 접근하는 확대된 시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김용복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는 민중의 삶에 부정적 결과를 미칠 뿐만 아니라 생태계에도 치명적인 영향
을 미칠 것이다. 경제계와 생태계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은 지난 20
여년 동안 경제학과 경제윤리의 주요 테마가 되어 왔지만, 세 화의 조건 아래서 생
태계의 위기가 가속화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김용복은 이 점에 대해 깊은 주의를 하
고 있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개편됨에 따라 지구의 생명은 더 커다란 희생을 당
하게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생태계의 위기는 서구형 산업 경제 체제와 산업 발전의
모순, 즉 자연과 인간의 대립이라는 관계에서 인식되어 왔다. 이제 시장의 세력들은
상대적으로 시만의 정치적 압력을 초월하여 군림함으로써 그 사회정책적으로나 생명
계에 대한 정책에 있어 더욱 파괴적인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생 계의 파괴와
민중의 사회경제적 희생이 같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시각은 앞으로 경제신학 내지 경
제윤리의 구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세계화의 진전과 더불어 국민국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김용복의 평
가는 양가적이다. 1990년대 초반에 그는 한편으로 세계화와 더불어 거의 모든 나라들
에서 "민주적 개혁의 흐름"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하면서도, 또 다
른 한편으로는 자유주의 정부를 수립한 국가들조차도 "국민의 자유와 정의와 평화를
보장하는 역할의 한계를 점점 더 드러내리라"고 예상한다. 이렇게 되는 까닭을 그는
국민국가 주권행사의 영토적 한계와 경제의 지구화 사이의 비대칭성에서 찾는다. 그
 1990년대 후반에 들어와 국민국가의 미래를 매우 어둡게 보기 시작한다. 국가가 세
계화된 시장을 규율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도리어 시장에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지만 정확하게 정리하였다. "국민이
나 시민이나 민중은 국가체제나 정부에 그들의 사회적 안정보장을 위한 역할을 기대
하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민족국가체제는 약화되고 정부는 국민에게 봉사하기보다
는 시장에게 봉사하는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각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위
정체개혁이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과정의 일환으로 간주된다." 사 이 이렇기 때문
에 민중의 사회적 삶의 안정을 위한 정책은, 앞에서도 암시하였지만, 크게 후퇴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화의 진전이 정보통신 혁명을 통해 전개되면서 민중의 삶에 끼치는 부정적 영
향에 대해서도 그는 매우 예리한 분석을 하고 있다. 강한 문화의 지배와 소비주의의
범람으로 인해 "문화적 정체성과 창조성"이 근본적인 도전을 받고 "인간의 가치, 인간
의 삶의 양식, 인간의 창조적 자유"가 근본적으로 침해될 것으로 본다. 이  대한
자세한 분석은 이 논문의 범위를 넘어서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김용복은 세계화가 민중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들을 매우 거시적으로 예상하고 서
술하였다. 그의 글은 대체로 서술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치밀한 분석은 결여되
어 있다. 분석 범주들과 분석 개념들도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1980년대 초 이래
로 실물경제로부터 이탈하여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한 금융자본에 대한 분석이
없고 초국적 기업에 대한 묘사만이 두드러진다. 지구화된 시장경제에서 금융자본이 맡
고 있는 역할과 그것이 각 국민경제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그는 아직
이렇다 할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주식소유자들의 자본소득을 중심으로 짜여지는 경
제(Shareholder-Value- konomie)가 인간의 노동과 생태계를 어떻게 먹어치우는가에
대한 분석은 미래의 경제질서를 짜는 데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주제일 것이다. 그
러나 그의 서술은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찌르고 있다. 세계화가 인간과 자연, 삶과
생명을 희생시키고, 민중의 사회경제적 삶과 생태학적 생명공동체를 파괴한다는 것이
다.
 그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기존의 파라다임들이 실패하
였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더 나아가 그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 어느 것도
'기독교적 경제질서'로 간주할 수 없다"고  언하였다. 세계화의 조건들 아래서 세
계가 지정학적으로 재구성되고 또한 모든 차원이 상호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도 힘주어 강조한다. 그  하
느님의 정치경제를 새로운 파라다임으로 제시하고, 지역적, 국민국가적, 국제적 차원의
대안을 모색하자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IV. 경제신학의 한 파라다임: "하느님의 정치경제"

1. "하느님의 정치경제"의 규준들

김용복의 경제신학 구상은 하느님과 그의 백성이 맺은 계약의 현실성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나는 앞에서 이 테제가 그의 정치신학의 핵이고, 민중신학적 관점과 방법
을 규정하는 핵심임을 말했다. 그는 경제신학을 구상하면서 경제에 대한 성서의 기본
원칙을 밝히고자 노력하였는데, 이 기본원칙도 하느님과 그 백성 사이의 계약의 현실
성에서 비롯된다. 이 계약의 핵심은 하느님의 주권이고, 이 주권이 관철되는 정치경제
가 곧 하느님의 정치경제이다. 그  기독교 메시지의 시금석은 가난한 자들과 억압
받는 자들과의 관련성이라고 전제하고, "만약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와 하나님의 백성
의 정치경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복음이 일차적으로 빈곤에 의해
규정받는 삶을 사는 가난한 자들에게 복된 소식이 될 수 있는가?"고 날카롭게 묻는
다.
 경제생활에 대한 성서의 기본원칙을 밝히기 위해 그는 하느님과 가난한 자들이 맺
은 계약을, 성서의 민중전기를 통해 추적한다. 나는 여기서 그의 방대한 성서 연구를
요약할 생각은 없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민중의 계약은 하느님과 민중의 해방적 관
계에 입각하였다는 그의 지적이다. 민중은 하느님의 계약의 파트너이다. 그 은 민
중이 억압과 착취를 일삼는 이 세상의 권세들에 영원히 종노릇하지 않고 하느님의 주
권 아래서 해방된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느님과 민중
의 계약에서는 지배의 일대전환이 일어난다. 이 세상 권력의 억압하고 노예화하고 죽
음을 가져오는 지배로부터 자유와 형제적 결속과 생명이 보장되는 하느님의 지배로
해방되는 것이다. 김용복은 이 하느님과 민중의 해방적 관계가 실현되는 정치경제의
기본원칙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으로 정리한다. 1.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안
정; 2. 소유권의 절대성 요구의 지양; 3. 살림을 위한 청지기직으로서의 경제의 이해;
4. 참여의 경제.
 김용복에게서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안정은 모든 경제활동의 성과를 평가하
는 규준이다. 그는 이 규준을 제시함으로써, 비록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경
제활동의 업적을 평가하는 규준으로서 널리 인정되고 있는 효율성이나 수익성이 그
자체만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민중의 사회경제적 안정
을 해치는 경제적 효율성과 수익성의 추구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뜻이
다. 시장경제의 지구화 과정에서 이 규준이 갖는 의미는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소유권의 절대성 요구에 대한 김용복의 강한 비판은 일차적으로는 민중의 사회경제
적 안정의 요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는 부와 재산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다
음과 같은 포괄적인 명제로 정리하였다. "만약 부와 재산이 민중의 삶을 보장하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정당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민중의 삶이 보장되지 않는
한, 그 어떤 사람도 재산과 부를 향유할 권리가 없다." 중 한 것은 김용복이 물건
에 대한 절대적, 배타적 지배권을 의미하는 소유권 주장에 제동을 걸고 "잠정적 소유
권"을 대안으로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잠정적 소유권"이라는 개념으로 김용복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그의 성서 연구 전체의 문맥으로부터 간접적으로 밝혀진다. 그는
원시 이스라엘에서 성립된 토지의 용익권이 하느님의 정치경제에서 인정될 수 있는
점유형태임을 암시한다. 이 점유형태에서는 절대적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고 점유된
토지의 온전성을 보전하여 차세대가 용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만이 인정된다.
이렇게 보면, 부와 재산에 대한 기독교적 규준은 부와 재산에 대한 로마법적 이해와는
충돌한다. 그리고 로마법의 소유권 개념에 입각한 근대 이래의 사유재산제도도 이 규
준 아래서는 근본적인 비판의 대상이 된다. 소유권의 절대성 주장을 제한하고 이에 하
느님의 주권을 대비하는 신학적 전략은 앞으로 경제질서의 골격을 짜는 데 결정적인
의미를 가질 것이다. 생산수단에 대한 배타적 지배권에 근거하여 노동의 경영 통제나
경영 참여를 한사코 거부하는 논리도 사실 따지고 보면 현대의 자유주의 법치국가가
전제하는 로마법적 소유권 이해에서 비롯되고 있다.
 청지기직을 경제활동의 기본규준으로 삼자는 김용복의 제안 역시 앞으로 경제신학
내지는 경제윤리를 구상하는 데 중시되어야 할 점이다. 김용복은 이 규준을 제시하면
서 두 가지 점에 유의하였다. 하나는 하느님의 정치경제에서 인간은 하느님의 살림살
이를 맡은 관리인이라는 점이다. 하느님의 청지기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의지가 무엇인
가를 살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느님이 살림살이의 주인이기 때문에 이 살림살이
를 꾸려 나가는 과정에서 비롯된 경제주체들의 기능분화와 분업은 어디까지나 부차적
이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 전체의 살림살이를 정의와 평화와 생명보전의 기틀 속에서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김용복이 청지기직을 강조하면서 유의하고 있는 또 한 가
지 점은, 이미 앞의 인용문에서 암시되듯이, 경제계와 생태계의 관계를 하느님의 정치
경제에서 어떻게 규율할 것인가 이다. 그는 이제까지의 경제체제가 자연을 지배와 이
용의 대상으로만 보았지, "자연을 보다 존중하고 자연을 돌봄의 대상으로 여기는 호혜
적 자연관"과는 동떨어져 있었다고 비판한다. 그  창세기 1장과 2장의 이야기를 엮
어 읽으며 인간과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정원을 이루는 동등한 참여자이고 인간은
이웃 피조물과 더불어 이 정원을 가꾸며 "충만하고 온전한 정의와 샬롬의 삶" 가꾸는
정원사로 부름받았음을 환기시킨다. 이 점에서 인간의 청지기직은 피조물공동체를 정
의와 평화가 숨쉬는 생명공동체로 형성하고 가꾸는 일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김용
복은 이 통찰을 통하여 경제와 생태학을 서로 결합시킬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확보
한 셈이고, JPSS 논의를 지배하였던 파라다임을 비로소 넘어서고 있다.
 끝으로 김용복은 참여를 경제활동의 규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 중요한
주제는 김용복의 정치신학에서도 끊임 없이 강조되어 왔는데, 그의 경제신학 구상에서
는 자본의 지배와 노동의 종속, 소비자의 객체화를 극복할 때, 참여경제의 주요조건들
이 충족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이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입장을 본격적으
로 밝히고 있지 않다. 노동과 자본의 동등권에 입각한 공동결정권을 이론적으로 규명
하는 일이나 생산과 소비의 관계를 거시경제적 차원과 미시경제적 차원에서 유기적으
로 결합시키기 위한 이론을 제시하는 일은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 신학과
윤리 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과학계에서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2. "하느님의 정치경제"의 실천론

김용복은 "하느님의 정치경제"의 규준들을 밝히는 일과 병행해서 이를 현실에 적용하
는 대 필요한 기독교적 실천론의 골격도 나름대로 제시하였다. 그는 디아코니아와 코
이노니아의 경제윤리적 의의에 주목하고 있다.
 디아코니아는 하느님의 주권 아래 있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다. 하느님과 민중의
계약이 세계에 대한 하느님의 절대적 주권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이 계약의
파트너는 하느님의 종이다. 하느님의 종은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길 뿐만 아니라 하느
님의 백성을 주인으로 섬긴다. 여 서 두 가지 준칙들이 도출된다. 하나는 하느님
앞에서 어떤 권력도 절대성을 주장할 수 없고, 권력의 위계질서를 당연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디아코니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자기중심성을 극복하고 권력의 추구
를 포기하는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남을 주인으로 세움으로써만 참된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김용복은 이를 가리켜 종의 도(Doulologie)라고 이름하였
다. 종의 도는 "상대방을 영적으로 사회경제적으로 노예된 상태에서 일으켜 세워 주인
으로 삼고 주인이 되게 하는 관계를 설정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자신의 권력추구
를 포기하고 남의 주체성을 세우는 디아코니아는 바로 이러한 종의 도를 실천하는 길
이다.
 경제문제와 관련하여 김용복은 디아코니아 실천이 경제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전제임을 밝힌다. 시장경제의 세계화가 추구되는 현실에서 민중의 살림살이 공동체는
지역적, 민족적, 세계적 차원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확보하여야 하는데, 이것은 오직 민
중이 살림살이를 경영하는 주체로 등장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이 경제 민주주의
가 어떤 구체적인 모습을 가지며 지역적, 민족적, 세계적 차원에서 어떤 제도적 형태
들로 구현될 수 있는가에 대해 김용복은 아직 구체적인 언급을 한 바 없다. 오직 두
가지 점만큼은 분명하다. 첫째, 지역적, 국민국가적, 국제적 차원에서 경제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민중이 주체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정치적 조건들이 구축되어야 하
고 각급 차원의 경제운영에 대한 민중의 통제력이 조직되지 않으면 안 된다. 둘째, 이
러한 경제제도는 민중이 살림의 문화를 가꾸고 사회적 안전망을 주체적으로 구축하는
일을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독교인들은 민중이 경제적 살림살이의 주인이 되도
록 디아코니아의 실천에 나서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종의 도의 실천, 곧 디아코니아는 모든 것을 나누는 일과 분리될 수 없다. 나눔
(koinonia)은 종의 도를 수평적으로 실천하는 일이다. 거기서는 나누는 자와 나눔을 받
는 자 사이에 "호혜적 연대의 원칙"이 수립된다. 이에 대해 김용복은 다음과 같은 명
제를 제시한다. "일방적인 섬김은 진정한 정의와 참여의 실천일 수 없다. 서로가 서로
를 일으켜 세우는 쌍방적 섬김이 진정한 참여의 주체를 세운다. 쌍방이 서로 주고 받
는 관계를 통하여 진정한 사랑과 정의의 연대를 이룩할 수 있다." 그 고 바로 이
연대는 물질의 나눔, 삶의 경험의 나눔, 감정의 나눔, 생명의 나눔을 포함한다.
 김용복은 섬김과 나눔의 통전적 성격을 강조한다. 섬김과 나눔은 하느님의 종의 도
를 실천하고자 하는 선교적 실천의 내용이지만, 이 선교적 실천은 섬김과 나눔의 공동
체 안에만 머무를 수 없다. 이 세상이 그 실천의 영역이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
"재물을 가진 자는 재물로, 정치적인 역할을 부여 받은 사람은 정치적 영향력으로, 지
식을 가진 자는 지식으로, 경험과 지혜를 가진 자는 경험과 지혜로, 능력과 기술을 가
진 자는 능력과 기술로, 농민과 노동자는 생산활동으로, 종교인은 종교적 진리로 이웃
을 섬겨 일으켜 세워 주인이 되게 하고 이러한 섬김은 공동체 안팎에서 상호적으로
이루어지며 이것이 곧 나눔이 된다."

3. 민중의 힘과 민중의 지혜

김용복은 민중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중이 하느님의 정치경제의
실천주체로서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민중은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신의 언어를 간직하고 그 언어를 통해 그들의 좌절과 갈망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김용복은 누누히 강조한다. 민 은 섬김과 나눔을 통해 동참동활체(同參同活
體)로서 살아갈 수 있는 힘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민중은 권력의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용복에게서 돋보이는 것은 민중의 힘을 북돋아 주는 민중의 지혜에 대한 존중이
다. 경제신학을 구상하는 데 있어서도 그는 아시아 종교들을 통해 면면히 이어져 오는
민중의 슬기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도교에서 말하는 인간과 자연과 초자연의
"완벽한 조화"라든지, 불교의 승가, 유교의 태평성대, 그리고 정약용의 토지개혁안의
골자인 "여전제"(閭田制)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제안하였다.
 세계화의 진전과 더불어 서구적인 기준이 세계적인 스탠더드로 자리잡고 있는 흐름
을 거스르면서 그가 구축하고자 하는 경제의 기본개념은 민중의 지혜에 깊이 뿌리박
고자 한다. 민중의 지혜와 더불어 강화되는 민중의 힘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아마도
이런 작업은 엄두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V. 김용복의 경제신학 구상에 대한 평가

이제까지 나는 김용복의 경제신학 구상의 골격을 살펴 보았다. 나는 그가 민중의 주체
성에 대한 신학적 확신에 근거하여 세계화의 조건들 아래서 민중의 생명과 삶을 보장
하는 경제신학의 원칙들과 기독교적 실천론을 작성한 것을 평가한다. 그의 경제신학
구상이 민중신학의 지평을 넓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에큐메니칼 차원의 논의를
새로운 차원으로 높이고 있다는 점도 나는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종의 도에 대한
해석은 에큐메니칼 신학을 위한 김용복의 매우 중요한 공헌이다.
 나는 하느님과 민중 사이의 계약의 현실성에 입각하여 경제신학의 규준들을 도출한
것이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서술방식이 성서의 이야기로부터 주요 모티프
들을 끌어내어 현실에 직접 적용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러한 소박
한 관점과 방법은 그 자신에 의해 엄격하게 거부되었다. "이러한 작업을 하는 목적은
성서적 성찰에서 나오는 결론을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경제에 번역하려는 것이 아니
라 민중의 사회-경제적 삶에 대해 그것이 갖는 의미들을 해석하기 위한 것이다." 앞
 말한 인상은 사회전기를 하느님 계시의 역사적 틀로 보고 성서와 역사에서 펼쳐진
민중의 사회전기들이 서로 엮어져 새 역사를 일구어낸다는 그의 신학적 관점과 방법
에 대한 오해에서 왕왕 빚어져 왔다. 그러나 나는 두 이야기가 서로 엮어져 새로운 역
사를 일구어 낸다는 그의 신학적 확신은 실천적 해석학의 본질에 맞닿아 있다고 생각
한다. 그는 오늘 여기의 민중해방의 실천 현장에서 성서의 이야기를 읽고 민중이 경험
한 하느님의 해방사를 현재화하려고 한다. 그것은 결코 이야기의 문자적 반복일 수 없
다. 왜냐하면 현재화는 상황에 대한 인식과 그 상황에서 구상되는 실천적 의도와 분리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김용복의 경제신학 구상이 하느님과 민중 사이의 계약의 현실성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상황의 변화에 대해 언제나 열린 자세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
고 있다. 그는 경제문제에 대한 신학적 판단의 규준들을 크게 넷으로 정리하였다. 가
난한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안정, 소유권의 절대성 요구의 지양, 살림을 위한 청지기직
으로서의 경제의 이해, 참여의 경제가 그것이다. 나의 관찰로는 이 네 가지 규준들은
결코 어떤 완성된 체계를 지향하지 않는다. 하느님과 민중 사이의 계약의 현실성이 그
때그때의 상황에서 언제나 새롭게 해석되듯이 이 규준들도 끊임 없이 재해석되고 보
완될 것이다.
 나는 김용복의 현실묘사가 큰 틀에서 보아 매우 적절하고 정확하다는 것을 인정하
지만, 경제신학의 구상으로부터 경제윤리적 대안 제시로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황
에 대한 서술을 넘어서서 상황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상
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없이는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하기 어렵다. 김용복은 "하느님
의 정치경제"의 실천론으로서 사회경제적 디아코니아와 코이노니아를 제시하고, 민중
이 주체성을 발휘하는 경제 민주주의를 지향점으로 밝히기는 하였지만, 세계화의 조건
들 아래서 어떤 변수들을 조직하여 이를 구체화할 것인가는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지역경제 차원에서 세계화의 충격을 이겨내고 민중의 살림살이를 인간친화적으로, 사
회친화적으로, 환경친화적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대안의 토론을 하는 것도 매우 시급
하고 중요하다. 세계화의 조건들 아래서 국가와 시민사회와 시장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지역적 차원과 국민경제적 차원에서 시장경제의 민주주의적 규율을 달성할
것인가는 국민국가의 주권의 부분적 양도와 결합으로 세계적인 차원에서 세계경제질
서를 어떻게 이성적으로 규율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뗄레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
다. 이 모든 일들은 국가의 경제정책, 금융정책, 조세정책, 사회정책, 구조정책, 환경정
책 등의 수단들을 적절하게 조합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이 문제들에 대한 정
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데까지 기독교윤리가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문제들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이 기독교 경제신학과 기독교 경제윤리의 영역에서
가능해져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지적에도 불구하고 나는 김용복의 경제신학 구상이 민중의 지혜에
깊이 뿌리 박고자 하는 것을 평가한다. 민중의 지혜 속에서 민중의 힘이 강해진다는
그의 확신은 세계화의 거센 흐름 속에서 민중의 정체와 주체성에 대한 강력한 옹호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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