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논단
Kang Won-Don's Column

2014/08/19 (08:45) from 175.197.8.106' of 175.197.8.106' Article Number :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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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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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의 교회

강원돈

 최근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 5일간 우리나라를 방문하였다. 그는 지극히 낮은 자세로 우리 사회의 작은 사람들을 품에 안고 위로하고 격려하였다. 사람들의 돌봄이 꼭 필요한 어린이들과 장애인들에 대한 교황의 각별한 배려는 그의 방한 기간 내내 돋보였고,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가족들, 밀양과 제주 강정마을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고통과 고난에 연대하는 교황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고난의 상징인 십자가를 지고 안산을 떠나 진도 팽목항에 갔다가 성모승천대축일 미사가 열리는 대전까지 800 킬로미터를 걸었던 세월호 희생 학생의 아버지가 교황에게 예기치 않게 세례를 청했을 때 교황이 세례에 필요한 교리 공부를 하지 않은 그에게 아무런 전제 없이 세례성사를 베푼 것은 아마 그가 보여준 가장 빛나는 행보중 하나일 것이다. 세례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동참한다는 결심과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갖고서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는 것을 보이는 의식일진대, 교황은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고통 속에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과 안전이 존중되는 새 나라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십자가를 지고 행진한 그 아버지가 세례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를 통하여 세례는 전통적인 입문의식의 성격을 넘어서서 오늘 여기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사건이 된 것이다.
 교황이 우리에게 몸으로 보여준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이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가 오늘 우리의 세계에서 말과 행동으로 어떻게 현존하여야 하는가를 생동감 있게 보여주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세상에서 하나님밖에 의지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그들의 보호자가 되지 않고서는 가난과 비참과 굴욕과 배제와 차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먼저 택하시고 그들의 편에 서신다. 하나님이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택하시니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도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교회가 바로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이다.
 교황은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를 이끄는 목자로서 분단된 한반도 사람들에게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평화가 단순히 전쟁의 부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열매라는 것을 강조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바르게 서지 않으면 사람들 사이에 평화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교황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참을성 있게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을 권했다. 교황이 구체적인 언급을 삼가기는 하였지만, 아마도 교황의 마음에는 군사, 정치, 경제, 문화, 생태계 관리 등 모든 분야에서 남과 북의 관계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 참을성 있게 노력해야만 한반도 평화가 실현되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평화가 정의의 열매라는 가르침은 성서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익숙한 가르침이다. 우리는 그 가르침에 기대어 오직 사회정의가 실현되어 만인의 복지가 보장되는 곳에 사회적 평화가 깃들고, 생태학적 정의가 실현되는 곳에서 만물이 바른 관계들 속에서 충만한 생명을 누리는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진다는 전망을 갖는다.
 교황은 그의 앞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사람들을 경시하고 사람들을 가난과 비참으로 몰아넣는 경제체제를 거부하라고 촉구했다. 사람이 중심에 있지 않고 돈과 권력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교회는 사람들의 행복과 발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자원이 소수의 손에 독점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미취업과 실업의 고통에 몸부림치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배제와 차별의 연쇄고리에 묶여 있고, 국가가 공공성의 구현자 노릇을 하지 못하고 단지 자본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 세상에 대해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황은 고난 속에 있는 사람들이 연대하여 공공선을 이루자고 제안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배제와 차별에서 벗어나서 자신과 공동체의 발전과 성숙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건강한 인간으로서 존엄성과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는 말과 행동으로 그 일을 함께 하여야 할 것이다.
 며칠 동안 교황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서 나는 민중의 교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1980년대에 이 땅에 탄생하여 민중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를 이룩하기 위해 애썼던 민중의 교회들은, 그 동안 많이 위축된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다양한 모습으로 현존하고 있다. 나는 우리 개신교에서 민중의 교회가 새롭게 활성화되고 이에 대한 논의가 치열하게 전개되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신자유주의 질서가 깊이 뿌리를 내리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20 대 80의 사회’를 말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요즈음에는 ‘1대 99의 사회’를 말할 만큼 사회적 양극화가 극도로 심화되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비참과 절망 속에서 살아간다. 교회는 바로 그러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편드는 교회가 오늘 여기서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개신교의 지형에서 싹텄던 민중교회는 바로 그러한 교회의 원형을 보여주었다. 지금은 민중교회의 기억을 되새기면서 우리 시대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하여 교회의 이론과 실천을 새롭게 모색하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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