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논단
Kang Won-Don's Column

1999/12/11 (12:47) from 203.252.22.54' of 203.252.22.54' Article Number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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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98.7.29] 독일석학 졸름스에게 듣는 새 세기의 전쟁
독일석학 졸름스에게 듣는 새 세기의 전쟁

한겨레신문 [ 문화생활 ] 1998. 7. 29. 水


    




강원돈=세기는 `전쟁의 세기'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크고 작은 전쟁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들 전쟁은 어떤 특징을 보였습니까?

프리트헬름 졸름스=민족국가의 헤게모니를 군사적으로 이웃 나라에 관철하려 했다는 특징을 추출해 낼 수 있습니다. 강대국들 사이에 군사적 균형을 이루려는 국제적 노력이 있었지만, 대부분 물거품으로 끝났지요. 2차 세계대전은 독일이 1차 세계대전 때 잃어버린 헤게모니를 재구축하고 이를 확대하려던 히틀러의 야욕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러나 군사력으로 반인간적인 권위주의 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그런 체제를 계속 유지하지는 못한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강=냉전체제가 종식된 오늘날에도 곳곳에서 군사분쟁과 내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왜 그렇다고 보십니까?

졸름스=냉전체제는 `공포의 균형'이었습니다. 적대적인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은 각각 헤게모니를 세계에 관철하려 했고, 이를 위해 핵무기, 화학무기, 생물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현대화했습니다. 두 나라는 사사건건 대립하는 헤게모니를, 불안한 균형상태에서 유지했어요. 그러나 이런 균형이 전쟁을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핵무기의 위협 아래서도 대리전들은 끊임없이 일어났고, 냉전이 끝난 뒤에는 `공포의 균형' 아래 숨어있던 인종분규, 종교전쟁, 사회갈등이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강=세계에서 유일하게 한반도는 냉전이 종식되지 않은 지역으로 남아있습니다.

졸름스=남·북한 사이의 이데올로기·군사적인 대결은 유지될 수 없습니다. 북한의 외교적 고립은 점점 더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하지만, 북한은 이를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기아문제 등 처절한 상황을 지렛대로 이용해 압력을 통한 양보를 얻어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강=미국의 미래학자 토플러 박사는 정보기술에 입각한 미래의 전쟁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의 주장대로 21세기의 전쟁은 20세기와 전혀 다른 형태가 될까요?

졸름스=토플러 박사는 오늘날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실현된 하나의 유토피아를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강대국들의 군사전략은 고도로 복잡한 전산시스템을 통해 관련 정보들을 처리하는 수준에서 수립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실제 긴장은 줄어드는 데도 정보처리 수준을 높이기 위한 엄청난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요.

강=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실험 이후 핵무기 확산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핵위기가 도래하는 것일까요?

졸름스=서방의 경제제재 위협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는 핵실험을 강행했습니다. 파키스탄은 인도에 대한 재래식 무기의 열세를 핵폭탄 개발로 만회하려 했고, 인도는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이이사국들이 예외없이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사실도 인도를 자극했지요. 89년 이전까지만 해도 핵무기 보유는 국제적으로 배타적인 특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핵무기를 무조건 축소하려는 노력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배타적인 핵보유 특권을 제거하자는 뜻이지요.

강=세기의 전쟁은 어떤 요인들에 의해 일어날 것으로 보십니까?

졸름스=새뮤얼 헌팅턴이 말한 `문명의 충돌'이 전쟁의 원인이 될 가능성은 작습니다. 이보다는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 사이의 괴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점이 위협적입니다. 가난을 피해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당사국간 분쟁요인이 될 수 있고, 석유, 천연가스, 점점 더 희귀해지는 물 때문에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대국들이 세계적인 규모로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다고 봅니다. 대량살상 무기의 가공할 위협을 서로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강=유엔이 전쟁 예방기능을 계속 해나갈 수 있겠습니까?

졸름스=동서대결이 종식된 오늘의 세계에서 유엔은 분쟁조정자로서 보다 큰 역할을 하게될 것입니다. 유엔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긴 하지만,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도 유엔의 동의 없이 자신의 군사정치적 우위를 과시하거나 지역분쟁에 제 마음대로 뛰어들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추세를 강화해 `세계를 전쟁의 인질상태에서 해방시키자'는 유엔의 목표에 단계적으로 다가서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강=경제적 차원의 문제를 조정하는 데는 유엔도 무력하지 않습니까? 21세기는 `경제전쟁의 시대'라는 말도 있는데요.

졸름스=그렇습니다. 강대국들이 경제적 헤게모니를 유지 또는 확산시키기 위해 경제제재 조처를 가혹하게 행사함으로써 민족적, 정치적, 경제적 독립을 유지하려는 나라들을 압박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강=세기에 전쟁의 위협을 제거하고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졸름스=인류가 20세기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 21세기에는 폭력의 행사나 무기의 투입 없이 분쟁을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비관적인 전망을 내세워 유감스럽긴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전쟁과 테러의 원인들, 즉 기아, 가난, 억압, 불의 등을 끊임없이 제거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래야 21세기가 지난 세기들보다 더 이성적으로 전개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강=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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