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1999/12/20 (10:46) from 164.124.80.119' of 164.124.80.119' Article Number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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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길"을 둘러싼 논의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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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길"을 둘러싼 논의를 보며

강원돈

토니 블레어의 등장

제가 토니 블레어를 텔레비전에서 처음 접한 것은 그가 영국의 노동당 당수로 당선되어 당
개혁에 박차를 가했을 때였습니다. 그는 노동조합과 전통적으로 긴밀하게 결합하였던 좌파
성향의 당료들이 포진해 있었던 노동당의 인적 구조를 매우 빠른 기간에 시장친화적인 실
용주의적인 인사들로 채웠습니다. 전통적인 노동당의 국가중심주의와 경직된 복지정책을
버리고 시장의 활력과 시민의 책임에 강조점을 두는 방향으로 당의 노선도 수정하였습니
다. 이 두 가지 작업을 통해 그는 당내 리더십을 확실하게 장악하였습니다. 젊은 사람이 너
무 독재적이고,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당내 불만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불거져 나왔지만,
보궐선거 때마다 노동당 후보들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면서 오랜 보수당 집권을 무너뜨
릴 가능성이 분명해지자 그러한 불만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지난 해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은 영국 총선에서 유권자의 3분지 2를 넘어서는 전례 없이
높은 지지를 받고 승리했습니다. 지난 80년대 초 이래의 보수당 집권에 종지부를 찍은 것
입니다. 영국 총선의 이 결과는 영국에서 마가렛 대처와 존 메이저가 대변하였던 신자유주
의가 근본적인 수정에 직면했음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이 신호는 영국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국 총선 이후 프랑스에서도 네오닐
조스팽의 좌파연합이 지난 해 프랑스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올해에는 독일에서도 오
랜 헬무트 콜 정권을 붕괴시키고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사회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지난 해 토니 블레어가 독일을 방문하였을 때, 독일 사민당 당수로서 그를 만났던 오스카
라퐁텐이 독일에도 토니 블레어와 같은 정치가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매우 큰 반향을 불
러 일으켰습니다. 독일 총리 후보로 나섰던 슈뢰더는 공공연히 독일의 토니 블레어를 자처
할 정도였습니다. 이 얼굴 가꾸기 작전은 혁신과 정의실현을 당 강령으로 들고 나온 독일
사민당의 지지율을 높이는 데 이바지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토니 블레어의 등장은 영국만
의 현상이 아니고, 이미 유럽적 의미를 갖는 중요한 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논리

제가 독일에서 살던 90년대 중반은 유럽에서 어느 곳이라 할 것도 없이 신자유주의가 마지
막 말을 하던 때였습니다. 유럽에서 비교적 가난한 나라로 취급되었던 영국은 특히 더했습
니다. 영국은 로날드 레이건의 미국과 더불어 80년대 초 이래로 앵글로색슨식 자본주의의
백미라 할 신자유주의를 실천한 나라였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케인즈주의에 바탕을 둔 복지국가 모델을 대체하였습니다. 오래 동안 통용
되었던 이 모델은 적정 수준의 유효수요를 유지해야 국민경제의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진다
는 가정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국민소득 가운데 투자와 소비의 균형이 깨져서 투자과잉이
지속되면 결국 공황이 나타나 과잉투자된 가치를 파괴하고 만다는 것이 케인즈주의의 출발
점입니다. 1920년대 말 이래 나타났던 공황은 이 이론의 설득력을 높여 주었습니다. 투자과
잉을 피하기 위해서는 자본소득 가운데 일부를 퍼내어 소비로 전환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데, 이 일은 두 가지 통로를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노사협약을 통해 임금수준을 높여 나
가는 것이 그 하나이고, 국가의 조세정책과 사회정책을 통해 소득을 재분배하는 것이 또
다른 하나입니다. 이러다 보니 노동조합의 권력이 비대해지고, 국가기구도 나날이 확대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70년대 초에 거의 완전고용을 실현하였던 시기에 케인즈주의에 바탕
을 둔 복지국가 모델은 한계에 이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투자가 위축되고 수
요인플레가 커진다는 데 있었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 곧 정체 속의 인플레이션이 나타난
것입니다. 투자여력이 없는 기업에서 고용수준을 제대로 유지할 길은 없습니다. 실업이 늘
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기업활동이 위축되고 실업이 늘면서 세금도 제대로 걷
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는 국채발행을 통해 사회적 안전망의 유지에 필
요한 비용을 메워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공황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투자와 소
비의 악순환, 곧 스태그플레이션이 악화일로를 거듭했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압력 아래서 신자유주의는 케인즈주의와는 정반대의 가정에서 출발하
였습니다. 투자를 늘리면 기업활동이 활성화되고, 기업활동이 활성화되면 실업자들이 다시
고용에 흡수되고, 고용이 확대되면 유효수요가 다시 늘어나 국민경제의 순환이 제대로 이
루어진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국민소득 가운데 자본소득이 커져야
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은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임금소득을 줄이고, 자본소
득에 대한 세금부담을 줄이는 것입니다. 임금소득을 줄이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권력을
약화시켜야 하고,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부담을 줄이려면 사회적 안전망의 유지에 지출되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기에 더하여 비대해진 국가기구를 줄이면
국민소득 가운데 소비부문으로 빠져나가는 가치총량을 더 줄일 수 있고, 자유로운 기업활
동을 억압하는 국가의 시장규제도 가급적 철폐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신자유주
의는 노동권력의 약화, 복지축소, 규제철폐로 무장한 시장만능주의의 복합체로 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신자유주의의 그늘 아래 있었던 영국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면서 영국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 대처 수상은 노동조합에 대한
공공연한 전쟁을 선포하였고, 집권 초기에 거의 일년 가까이 진행된 탄광노조의 파업에 대
처하여 이를 무력화시켰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그녀는 신자유주의를 관철시키는 매우 중
요한 발판을 마련하였습니다. 임금삭감이 원활히 이루어지고 정리해고가 도입된 것입니다.
그녀가 "고비용 저효율"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영국병"을 치유하였다는 말을 듣는 것은 바
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물이 양면을 갖고 있듯이 "고비용 저효율"의 문제를 노
동 쪽에 전가하는 것은 제대로 균형이 잡힌 시각이 아닙니다. 기술발전을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낙후된 생산과정을 혁신하지 못한 채 그대로 놓아둔 경영의 책임도 "고비용 저효
율"을 초래한 장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는 공급측면에 유리한 정책들을 실시하여 국민경제의 순환을 제대로 이루겠다
고 약속하였지만, 이 약속은 유감스럽게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과거에는 투자가
늘어나면 일자리도 늘어난다는 공식이 통했는지 모르지만, 시장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엄청난 기술투자와 설비투자를 해야 하는 요즈음에는 투자를 하면 할수록 일자리는 더 준
다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진경제에서는 총생산비용에서 고정비용이 차지
하는 비중이 85 퍼센트 이상이 되고 이 비중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반면에 임금비
중은 5 퍼센트 미만이고 이 비중은 감소추세에 있습니다.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기술능력
의 유지는 기업의 시장경쟁력을 가늠하는 척도이기 때문에 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을 수 없
습니다. 기업이 투자를 많이 하면 노동생산성은 급격히 향상됩니다. 노동생산성이 높아지면
유휴노동력이 발생하고, 이 노동력은 퇴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노동합리화 정책입니
다. 신자유주의 아래 실업문제가 악화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설사 실업률이 떨어지는
추세가 고용통계에 잡히는 경우라 해도, 그것은 파트타임 직업의 증가에서 비롯되는 현상
이지 임금소득자들의 전체적인 고용상황이 좋아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상황 아래서 임금소득자들과 실업자들과 연금생활자들의 생활은 눈에 띄게 나빠졌
습니다. 사회적 가난이 빠른 속도로 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이 줄어들
면서 신흥부유층이 등장하고 이 사람들은 다시 늘어난 소득을 재테크를 통해 빠른 속도로
부풀려 나갔습니다. 오래 전에 극복하였다고 믿고 싶어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영국 사회
에 다시 나타난 것입니다.
 저는 독일에 체류하고 있는 동안에 영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주제로 한 영화를 한 편 본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기술자가 실업을 당해 놀고 있었습니다. 간혹 일을 할 기회가 있지
만 그것은 오물을 퍼내는 일 따위였습니다. 그나마도 우연히 얻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는
부인과의 사이에 한 딸을 두었는데, 이 아이가 견신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견신례는 아이
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큰 행사여서 그는 급전을 빌어 아이의 예복을 사 주고 조그만 파
티를 준비하였습니다. 조그맣고 보잘 것 없는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파티는 아이와 그 부모
를 기쁘게 했습니다. 며칠 후 빚쟁이들이 들이 닥쳤습니다. 그들은 부인을 마구 다그치고
소란을 핀 다음, 견신례를 위해 준비했던 아이의 예복을 빼앗아 가 버렸습니다. 영화는 아
이의 엄마가 창자로부터 터져 나오는 울음을 우는 것으로 끝납니다.

제3의 길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은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 모델과 신자유주의적 시장만능주의를
다같이 넘어서서 국가와 시민사회와 개인이 혼연일체가 된 새로운 사회 모델을 실현하자는
제안입니다. 이 제안이 시민사회를 활성화하여 케인주주의적 국가지상주의와 신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개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
를 보장하는 가운데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기반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의지도 이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복지국가에 대한 개인의 의존을 줄이고 삶의 처지를 향상시키
기 위한 개개인의 이니시어티브와 책임을 강조하는 것도 한 특색입니다. 사회적 통합을 위
해 사회정의를 전면에 부각시키고 출신성분, 인종, 연령, 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모
든 사람의 평등한 가치를 강조하는 것도 중요한 점입니다.
 저는 시민사회의 공동체적 성격을 부각시키고 이 공동체 형성을 중심으로 개인의 권리와
의무를 통합시키고자 한 "제3의 길"이 시장만능주의로 피폐해진 오늘의 세계에 필요한, 의
미 있는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에서 퇴출되거나 구매력이 없어 시장에서 스스로를
관철시킬 능력이 없으면 곧바로 사회적 단절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시장만능주의 상황에서
건전한 공동체가 형성될 수는 없습니다. 실업자들과 은퇴자들,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들을 어떻게 사회에 재통합할 것
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논리를 넘어서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
요합니다. 물론 사회가 제대로 꾸려지려면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각자 능력에 따라
업적을 발휘하여야 합니다. 일할 능력이 있고 일할 의사가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자리가
마련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국가와 시민사회와 개개인이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실업의
퇴치를 위해 모든 경제주체들이 할 일을 다하여야 한다는 데 이론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
다. 그러나 업적주의 때문에 시장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업신여김을 받지 않도록 공동체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일 또한 중요합니다. 시장능력을
갖고 있든 갖지 못하든 모든 인간을 동등하게 대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조직원리가 업적
이데올로기를 넘어설 때라야만 가능합니다.
 저는 또한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시장의 규제를 위한 정부의 책임을 인식한 토니 블레어의 입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케인즈주의적 국가개입주의가 안고 있었던 문제들을 충분히 의식하고 극복하면서 복지와 성장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시민사회와 개개인이 새로운 동맹을 맺어 시장만능주의에 대처하여야 한다는 토니 블레어의 주장은 경청할 점이 있습니다. 사회적 부의 불균등한 분배나 독과점의 폐해, 생태계의 교란과 파괴 등 시장의 실패가 거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만능주의를 주장하는 것처럼 무모한 일은 없습니다. 시장이 효율적으로 운영되어 시장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희귀재에 대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장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것도 시장주체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참여하여 시장을 민주적으로 통제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아직 만족할 만한 사회적 합의가 없습니다. 경제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오래 전부터 있기는 하였지만, 경제민주주의의 구상들은 몇몇 선진경제들에서 부분적으로 제도화되었을 뿐, 시장의 민주주의적 통제를 향해 갈 길은 아직도 멀고도 험난합니다.  
 또한 저는 토니 블레어 수상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자본의 운동을 적절하게 규제할 수
있는 국제기구를 창설하자고 최근에 제안한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
청나게 부풀어 오른 화폐자본이 "마이다스의 손"을 제 마음대로 휘둘러 황금종이를 찍어내
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일을 그냥 내버려둔 채 인류의 미래를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오늘날 일찍이 겪지 못했던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자본과 노동과 환경
의 관계를 지역적, 국민국가적, 세계적 차원에서 새롭게 정립하여 새로운 문명의 모델을 만
들고 실현할 때가 온 것입니다. 이 문제를 토론하는 데 기독교인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야 할 줄로 압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느님을 대신해서 세상을
섬기고 관리하도록 위임받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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