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1999/12/20 (13:06) from 164.124.80.97' of 164.124.80.97' Article Number : 13
Delete Modify 강원돈 (kwdth@chollian.net) Access : 11262 , Lines : 70
청지기직 신앙의 재해석
청지기직 신앙의 재해석

강원돈 목사(서울고등학교 26회/아시아 경제와윤리 연구소장)

지난 1년여 동안 우리 국민 대다수는 IMF 경제관리 아래서 큰 고통을 겪었다. 지난 1/4 분
기에 GDP 성장률이 4.8 %에 이르러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춘래불
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나 할까, 우리 주변에는 실업의 고통과 소득 감소, 불안정한 미래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중산층이 몰락하고
사회가 양극화되어 가는 현상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경제원리가 강조되다 보니 사회적 가
치나 생태학적 가치가 뒷전에 밀리는 듯하여 매우 걱정스럽다.
 오늘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의 새 틀을 짜는 데 기독교인들은 각별한 책임감을 느껴
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이 맡긴 재물을 잘 관리해서 살림살이를 잘 꾸
려야 한다는 청지기직의 신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청지기직 신앙은 결코 성서 시대의 낡
은 사상이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결합하여 모든 사람들이 물
질과 영혼 양면에 걸쳐 건강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려면 모든 경제주체들이 청지기직의 사명
에 투철해야 한다.
 청지기 사상을 갖는 사람은 경제를 생각할 때 결코 돈벌이를 먼저 생각할 수 없다. 경제
에는 돈벌이 이상의 깊은 뜻이 있다. 경제에 해당하는 희랍어 오이코노미아는 집을 뜻하는
오이코스와 관리나 규율을 뜻하는 노모스가 결합된 합성어로서 말 그대로 살림살이를 뜻한
다. 이 오이코노미아라는 말은 하느님의 경륜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되었다. 하느님의 경륜,
곧 하느님의 오이코노미아는 이 세상 만물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펼치시는
세계 경영, 이 세상 살림살이이다. 우리들이 하느님의 청지기로 세워졌다는 것은 바로 하느
님의 이 세상 살림살이를 염두에 두고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이 세상 경영을 책임 있게 수행
하라는 뜻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경제에 참여하는 우리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우리들의 경제활동이 하느님이 지으신 이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것인 만큼 우리들의 생산활
동과 소비활동이 하느님의 집(오이코스)인 생태계를 파괴하여 우리와 더불어 지음받은 피조
물들이 더 이상 살 수 없고 더 나아가 우리 후손들조차 생존의 기반을 잃게끔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경제활동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임에는 틀림없지만, 우리들의 욕망 충족은
생태계의 안정과 피조물들의 공생이 보장되는 한도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생산
력이 고도로 발전된 우리들의 세계에서 적정한 욕망충족에 만족하는 삶을 꾸려나가고자 한
다면, 우리들의 노동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고 자기자신과 이웃, 피조물과의 공생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경제의 확대재생산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러한 살림의 경제를 받아들이는데 주저하고, 양
적인 성장 없이는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소득증가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하겠지만, 그
런 문제는 노동시간정책이나 소득정책을 통해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 다음, 청지기직 신앙은 기업활동에 참여하는 우리들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 준다. 청
지기직은 자기에게 맡겨진 것을 자기의 소유로 고집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재물은 하느
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이고 우리는 그 재물을 잠시 맡아 관리한다는 성서의 가르침은
로마의 물권법에 뿌리를 둔 근대적 소유권 사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근대적 소유권은 재
물에 대한 소유자의 절대적 지배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기업의 자산규모가 커지
고 국민경제와 세계경제에서 기업의 역할이 커지는 상황에서는 근대적 소유권 사상만 가지
고서는 기업활동의 공적인 책임을 뒷받침할 수 없다.
 영미식의 주주자본주의가 점점 더 큰 힘을 얻고 있는 요즈음에는 기업의 공적인 책임을
운위하는 것조차 이단시되곤 하지만, 이른바 기업의 소유자라고 불리는 주주의 이익을 극대
화하기 위해서 수많은 종업원들의 일자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생산기지의 해외이전을 서슴
지 않고, 국민경제나 세계경제 차원에서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서슴지 않는 일이 장기
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는가? 이른바 "20 대 80"의 사회가 도래함으로써 나타날 사회
적 재앙을 내다본다면, 자본소득자의 수익성을 제1원리로 삼는 경제는 결코 장기적으로 지
탱될 수 없다.
 21세기는 분명 기업의 시대가 될 것이다. 21세기의 기업은 결코 생산요소들을 효율적으로
할당하여 수익을 극대화하는 조작적 합리성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기업에 참여하는 이해당
사자들의 참여를 근본으로 해서 기업체제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있어
야 하고, 생활세계의 가치관 변화에 대응하여 기업활동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열린 경영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무엇보다도 기업에 투자된 자본의 성격이 바뀌어야
한다.
 청지기직 신앙은 기업자산이 "중립화"되어야 할 것을 요구한다. 기업자산이 중립화될 때,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완성되고, 생산자산을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고려 아래서 민주적으
로 통제할 수 있다. 청지기직 신앙은 중립화된 기업자산을 잘 관리하고 사용하여 기업의 발
전을 이루고, 기업의 여러 이해당사자들의 이익에 기여하고, 생활세계에 공헌할 것을 요구한
다.  
 새로운 경제질서를 세워나가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것은 너무나도 많다. 경제가 사회적
친화성과 생태학적 친화성을 띠고 인간의 얼굴을 가지려면, 개별국가뿐만 아니라 세계경제
를 규율할 수 있는 국제기구가 그러한 방향으로 경제질서를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세계 어
느 곳을 보아도 이와 같은 시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거나 설사 이루어지고 있다 하더라도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해야 할 일이 참으
로 많다. 개별적인 경제주체들과 국가, 세계기구들이 해야 할 일을 의제화하고 실천방안을
찾는 일에 기독교인들은 적극 참여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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