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1999/12/24 (11:51) from 164.124.80.105' of 164.124.80.105' Article Number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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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논리와 경제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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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논리와 경제논리

강원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

외환위기와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주도적인 역할은 매우 두드러졌습니다.
정부는 금융개혁, 재벌개혁, 노동시장 개혁, 정부개혁 등 네 가지 개혁 목표를 내걸고 매우
강력한 시책을 시행해 왔습니다. 이 개혁 목표와 시책들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
전"이라는 비전에 의해 뒷받침되어 왔습니다.
 그 동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라는 비전의 성격을 둘러싸고 여러 해석들
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국가의 은행지배를 통해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이 강력하게
관철되고 있기 때문에 이 비전은 다만 구호로만 존재할 뿐, 새로운 관치경제가 도래했다고
비판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오늘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의 기능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장차 경쟁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시장경제가 자리잡게 되면 국가의 시장개입이
최소화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업의 급격한 증가와
중산층의 몰락, 소득 불균형의 확대를 주목하여 이 비전이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모든 해석들은 물론 서로 다른 사회적 이해관계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새로
운 관치경제 운운하는 목소리가 금융계와 재벌기업 쪽에서 흘러나오고 있고, 신자유주의라
는 비난이 임금생활자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정부는 경제위기를 극
복하기 위하여 강력하게 추진되는 개혁이 결코 관치경제로 되돌아가기 위한 것도, 이해관계
의 민주적 조정이라는 국가 본연의 임무를 포기하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경
제운영의 기본 틀은 국가의 규제일변도식 경제개입을 줄이고 시장경제의 질서를 재확립하고
생산적 복지를 확대하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경제개혁의 목표는 시장경제에서 경쟁을 왜곡
하고 효율성 추구를 방해하는 관행들을 철거하고 경제운영을 시장원리에 맡긴다는 것입니
다. 이로 인해 시장을 통한 소득분배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고용불안으로 인해 실업자가 늘
어나더라도, 저소득층과 실업자를 위한 국가의 보호는 최소한의 수준에 머물러야 하고, 도리
어 이들이 노동시장에 새롭게 참여하여 스스로 사회적 삶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도록 뒷받
침해 주는 데 국가의 역할을 한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국과 한국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밑그림으로 하여 추진되는 경제개혁은
언뜻 보면 "제3의 길"을 표방한 영국을 모델로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자본이 수
익을 좇아 영토국가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세계시장에서 경쟁이 날로 격화되는 조건
아래서 시장원리에 공연히 거스를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두 나라가 다
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두 나라의 상황과 역사적 발전 경험이 매우 다르다는 점을 잊어
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영국은 오랜 국가복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삶의 처지를 개인이 주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우리 나라는 많은 점에서 국가복지를 확대해야 할 처지
에 있습니다. 오래 동안 국가가 사회정책과 복지정책을 위해 기업이윤을 너무 많이 퍼내고
그것을 관료주의 행정에 의해 비효율적으로 탕진한 것이 영국의 문제였다면, 우리 나라에서
는 국가가 총자본가로서 자본의 축적과 배분에 너무 깊이 관여하고 경제력 집중을 유도한
것이 만병의 근원이었습니다. 영국은 대처 수상 이래로 투자위축과 복지국가병을 극복하기
위해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추구하여 작은 정부, 약한 노동조합, 강한 기업을 만들어 내었고,
새로운 노동당 정부도 이 노선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우리 나라에서는 경제
력 집중을 해체하고 국민소득을 보다 사회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강력한 국가가 필요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강력한 국가는 군대와 경찰, 정보기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강력
한 노동조합과 활발한 시민단체들에 의해 만들어질 것입니다.

시장과 국가

시장경제가 존속하는 한, 시장과 국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 하는 문제는 끝나지 않
을 것입니다. 요즈음 "최소한의 국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고, 신자유주의에 동조하지 않
으면 지식인 축에 들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최소한의 국
가"를 말하는 사람들도 시장경제에서 국가가 맡아야 할 역할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
습니다. 그들은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국가가 틀을 정하고 시장경제가 원활히 운영
되지 않을 경우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으로 국가의 역할이 끝난다고 역설합니다. 따라서 그
들에게 국가는 시장경제의 수단이지, 그 반대는 아닙니다. 그들은 국가가 자본축적 과정에
개입해서 이윤의 상당부분을 법인세 형태로 퍼내어 사회정책이나 복지정책의 재원으로 사용
하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혀합니다.
 요즈음에는 국가가 그런 일을 하려고 해도 제대로 할 수조차 없습니다. 기업들은 법인세
를 많이 거두는 영토국가를 버리고 "세금천국"으로 알려진 나라로 옮아갈 수도 있고, 법인
세 감면을 내세우는 국가에 직접투자 형식으로 생산기지를 옮길 수도 있습니다. 생산공정별
국제분업(완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생산공정을 잘게 쪼개어 세계에서 가장 유리한 입지
에 생산공정을 설치하여 부품을 생산하는 일의 총칭)을 통해 전세계적인 "외부조달"에 나서
는 초국적 기업들은 내부거래나 다름없는 부품 및 반제품 수출입에 아예 관세조차 매기지
말자고 떼를 쓰고 있는 실정입니다.
 자본시장이 자유화되어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이 크게 약화된 데다가 실물자
본을 운영하는 기업가들이 국가의 규율을 실질적으로 무력화하고 있으니, 이제 시장은 무정
부 상태로 치닫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시장을 시장원리에 맡기라는 말은 이
제 더 이상 경제학 교과서의 주장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현실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그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실패를 너무나도 쉽게 망각하고 있습니
다.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의 실패는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치열한 경쟁에
서 이긴 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시장을 지배하는 경제권력이 등장
하여 수요나 공급 차원에서 혹은 두 차원 모두에서 독과점이 형성되고 시장경쟁은 크게 왜
곡됩니다. 신생기업의 시장진입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소비자들의 피해도 늘어갑니
다. 또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에서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의 불균형이 크게 심화되
어 결국 국민경제 차원에서 생산과 소비의 균형이 깨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투자는 늘어나
는데 소비가 늘지 않게 되면, 결국 식민지 지배나 전쟁, 공황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식민
지 지배를 통한 시장개척에 한계가 오면, 과잉투자와 과잉생산능력을 파괴하는 강력한 지각
변동이 일어납니다. 전쟁이나 공황이 그것입니다. 20세기에 들어와 인류가 경험한 잔인한 세
계대전들과 대공황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실패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시장경제에서 국가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의 실
패를 경험하고 나서 선진사회들이 터득한 지혜입니다. 이 지혜에 바탕을 두고 국가와 시장
경제의 관계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선, 국가는 경쟁질서를 유지하고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는 법제를 제정하게 되었습니다. 시장 규율의 책임을 국가가 떠맡아 강력한
"규율정책"을 시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 국가는 시장을 통한 소득분배가 국민경제 전
체에 미치는 부정적인 결과를 제거하고자 했습니다. 자본소득 가운데 상당부분을 퍼내어 사
회적 약자의 삶의 처지를 향상시키는 정책 자원으로 활용하여, 국민경제 차원에서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유지하는 소득재분배를 시도한 것입니다.
 국가의 시장개입은 근본적으로 이 두 가지 정책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무역규모가 늘어나
고 세계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격화되어 유리한 생산입지를 건설하기 위해 국가의 산업정책
과 구조정책이 시행되는 경우라 해도 "규율정책"과 "소득재분배원칙"이 망각되지는 않았습
니다. 구조조정으로 인해 고용조정이 불가피할 경우에는 해고자들이 재취업할 때까지 국가
가 해고자들의 소득을 보전해 주기 위해 실업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발상도 소득재분배의
중요성이 널리 인식되어 있었기에 더 큰 힘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국가개입주의는 경제를 경제원리에만 맡겨서는 안 되고 정치가 경제를 규율해야 한다는
원칙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는 물론 시장경제에서 경제주체들의 이해관
계들이 첨예하게 대립한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이 이해관계들을 조정하는 기술을 가리킵니
다. 그리고 우리의 시대사는 이 이해관계들의 조정이 오직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에서 최대화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경제의 지구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오늘의 상황에서 국가개입주의는 모든 면에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국가개입주의의 수단이 사라져 버린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제가 정치의 규율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마저 무시될 수는 없습니다. 경제
가 지구적 차원으로 확산되어 작동한다면, 지구화된 경제 시스템을 규율할 수 있는 지구화
된 정치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고, 지구경제 차원에서 경쟁질서를 확립하고 소득분배를 추
구하는 지구정치가 선보여야 할 것입니다. 지구화된 경제를 경제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맡
기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발상입니다.

지구경제와 지구정치

요즈음처럼 지구정치가 절실하게 요구된 적은 없었습니다. 정보혁명을 한번 생각해 보기만
해도 이 점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정보혁명은 모든 지역 경제들을 거대한 지구경제의
네트워크로 묶어냈습니다. 생산과 무역과 금융자본은 지구적 차원의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
는 구성요소들입니다.
 이 네트워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너무나도 엄청나서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듭니다. 세
계시장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초일류 기업들과 은행들의 인수 합병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구경제 차원에서 시장권력을 구축하기 위한 각축입니다. 자동차 산
업 분야를 예로 들면, 이제 지구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자동차 기업은 인수합병을 통해
세 개 정도가 남고, 그나마 이 기업 인수합병에서 살아남는 자동차 회사는 3대 메가기업이
남겨둔 틈새시장을 차지할 뿐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시장권력의 형성이 지구적 차원에 미치
는 영향은 절망적입니다. 자동차 산업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 보면, 3대 자동
차 메가기업이 생산입지로 선정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기술격차와 소득격차는 엄청
나게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메가 기업들의 기술지배력과 시장지배력을 이길 수 없는 지역
기업들은 결국 시장에서 퇴출되거나 종속될 것입니다.
 생산공정별 국제분업을 통해 지구적인 생산 네트워크를 이루게 될 초국적 기업들은 오직
이윤극대화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게 될 것이고, 따라서 유리한 생산입지에 부품공장을 세운
다 하더라도 지역 차원의 소득증가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생산공정별로 이윤
을 극대화하지 않고서는 세계적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강박 때문에 노동생산성을 끊임없
이 높여서 결국 노동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생산공정을 조직하게 될 것입니다. 초국적
기업들의 왕성한 활동으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무역 규모가 크게 증가하지만, 무역에 참여하
는 지역경제의 소득은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실업이 증가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정은 선진 경제들이라고 해서 별로 다를 바 없습니다. 경영진이 유리한 입지를 찾아 생산기지를 이전하기로 결정하면 근로자들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맙니다. 내수시장을 위한 생산기지가 운영된다 하더라도 비용절감을 위한 경쟁이 워낙 치열하기 때문에 노동력은 끊임없이 퇴출됩니다. 고용안정법이 아직까지(?) 제대로 시행되는 나라들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비어진 자리를 다시 충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노동력을 줄여 나갑니다.
 자본시장에서 벌어지는 "큰손들"의 횡포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기업 인수 합
병의 물주로 나서서 이익을 챙기거나 투기자본에 밑돈을 대서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습니다.
무역이나 생산으로부터 완전히 이탈해서 고수익을 좇아 메뚜기 떼처럼 움직이는 화폐자본의
규모는 이로 인해 천문학적으로 증가합니다. 화폐자본의 수익이 늘어난다는 것은 결국 소비
지출로 돌려져야 할 자원이 강탈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금융자유화의 탈을
쓰고 전세계적으로 확장된 고리대업의 정체입니다.
 여러 가지 더 말할 것이 있지만, 지면 관계로 줄이기로 합니다. 문제는 경제의 지구화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어서는 지구경제가 결국 파탄을 맞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이자소득과
기업이윤이 늘어나지만, 인구의 대다수는 극도의 소득감소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
계 인구가 대부분 구매력을 상실하면 전세계적으로 시장권력을 구축한 기업들에 축적된 자
본도 결국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이자소득자들은 마이다스의 손을 휘두르며 다른 이자소득
자들의 돈을 빼앗기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지구정치는 오늘의 지구경제가 필연적으로 가져올 자기파괴 행진에 제동을 걸기 위해 필
요합니다. 지구적 차원에서 뉴딜 정책이 추구되어야 하고, 생산과 무역과 금융 차원에서 나
타나는 파행에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지구적 차원에서 경쟁질서를 수립하고 소득재분배
정책을 시행하는 지구정치만이 지역경제와 국민경제 그리고 세계경제를 이성적으로 규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한 국가의 힘을 가지고서는 지구정치를 꿈도 꾸지 못하겠지만, 지구상의 모든 국가
들이 경제주권을 일부 양도하여 지구정치기구를 민주적으로 구성한다면 그 일을 할 수 있습
니다. 그리고 지구정치기구가 작동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시장경제를 민주주의적으로 규율
하는 국민국가가 제 자리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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