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2000/04/02 (15:43) from 210.120.173.126' of 210.120.173.126' Article Number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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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지배구조 개혁에 대해서- 현대 그룹의 경영권 분규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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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지배구조 개혁에 대해서
- 현대 그룹의 경영권 분규를 보고

강원돈(아시아 경제와윤리 연구소 소장/www.socialethics.org/kwdth@chollian.net)

얼마 전에 지면에 소개된 현대 그룹의 경영권 분규는 언론 보도의 선정성 덕분에 한 편의
무협지나 사극, 혹은 예배, 아니 이 모든 것을 모두 한 데 모아 놓은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
켰다. 사람들의 손길이나 시선이 닿지 않는 지성소에 앉아서 계시를 내리는 "지존자"의 음
성이 간간이 들리고, 그 음성에 자기 뜻을 담기 위해 "지존자"의 총애를 받는 예배자들의
건곤일척 칼바람 나는 싸움이 참으로 볼 만하였다.
 이 싸움이 휘몰아친 회오리바람이 너무 거세다 보니 언론은 한국 유수 기업의 대외신인도
하락을 걱정하며 경영권 분규의 조기 종식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 동안 기업 지배구조 개혁
을 위해 자기 딴에는 그래도 한 일이 있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던 정부는 족벌경영의 폐
쇄성과 독재성이 아직도 건재한 것을 보고 국민이나 해외 투자가들에게 할 말이 없게 되었
다. 이른바 재벌 오너의 부당한 경영권 행사를 억제하는 제도 개혁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그 결말은 더 두고 볼 일이다.
 현대 경영권 분규를 보는 시민들의 입장은 딱하기만 하다. 족벌 안에서 그룹 지배권을 둘
러싸고 온갖 음모와 암투가 벌어지고 낯뜨거운 골육상쟁이 일어났을 때에는 불구경 하는 듯
한 재미를 느끼고 좋은 안주감을 공짜로 얻은 듯한 느낌이 잠시 들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 제조업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거대 기업집단이 아직도 초법적이고
전제적인 족벌경영에 머물러 있고, 경영권 행사에 따르는 책임의 소재를 명확히 가릴 수 없
는 수준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낙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990년 대 중반 이후 반도체
등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제조업 분야에서 나타난 수익성 하락이 무모한 투자확대 전략을
밀어붙인 족벌경영에서 기인했고, 그 결과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경제위기가 도래하여 대다
수 국민을 나락의 극한으로 몰아갔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분노를 삭이기 힘들 것이
다.

 현대 경영권 분규는 매우 복잡한 현상이다. 전통적인 경영학 지식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
는 구석이 많다. 하기야 전통적인 경영학이 우리나라 기업의 역사를 바탕으로 형성되지 않
고 서구 여러 나라들의 기업사를 배경으로 발전된 것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통적인 경영학이 현대 기업의 경영 시스템을 분석할 때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이다. 그것은 중소기업이 거대기업으로 빠른 속도로 발전하던 서구 기업의 역사
적 발전 단계에서 생산자본을 기업이윤으로부터 조달하지 못하고 주식시장에서 조달할 수밖
에 없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 이 단계에서는 자본소득을 위해 생산자본에 투자한 사람들이
기업의 소유주가 된다. 현실적으로 이들 모두가 기업경영의 책임을 떠맡자니 경영의 효율성
을 기할 수 없고, 또 돈을 댄 사람들이 모두 경영 능력이 있을 리 없으니 이들은 생산자본
을 운영하여 그들의 자본소득을 최대화할 수 있는 대리인을 세우게 된다. 소유와 경영이 분
리되고, 전문 경영인이 새로운 직업으로 등장한다. 기업 경영은 자본소득자의 인격으로부터
일단 분리되고, 경영인이 자본소득자들에게 책임을 지는 제도가 그 이전의 오너 경영 체제
를 대체한다. 생산자본의 집행기구인 경영자 기구(이사회)가 설립되고, 이 기구를 선출하고
책임을 묻는 주주들의 의사결정기구(주주총회)가 세워진다. 이사회와 주주총회의 본질적 관
계, 곧 생산자본의 위탁과 그것의 책임적 운영의 관계를 뒷받침하기 위해 감독위원회가 세
워지기도 한다. 전통적 경영학이 말하는 기업의 지배구조는 이 세 기구들 상호간의 관계와
관련되어 있다. 기업활동에 직접 간접 관련되는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기업의 의사
결정과정에 반영하는가 하는 문제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이번 현대 경영권 분규는 이러한 전통적인 경영학의 상식으로는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
다. 전통적인 경영학은 생산자본의 소유권이 경영권 위탁과 감독, 그리고 경영권 회수의 기
초가 된다고 보지만, 현대 그룹에서 최종적인 경영권 행사를 한 "지존자"는 경영권 행사의
대상이 된 기업에 소유지분이 없거나 "지존자"의 위엄을 뒷받침할 만한 절대적인 지배주주
의 지위에 있지 않다. 그런데도 "지존자"의 말씀 한 마디에 생산자본의 위탁 경영권이 동쪽
으로 가기도 하고 서쪽으로 가기도 했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로 드러났을진대 경영권 행사
가 주주총회의 의결 없이 이루어졌다고 법에 의지해서 이를 바로 잡겠다고 나서는 것은 비
록 아무 쓸 데 없는 짓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손 쳐도, 문제의 핵심을 바로 본 것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그 동안 정부가 상호출자 제한, 책임경영 제도화,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제도
개혁을 해 왔다고 하지만 이 제도개혁이 족벌경영의 전제성과 폐쇄성을 시정하는 데 아무런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고 말해도 대꾸할 말이 없을 것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 기초하여 기업경영 시스템을 설명하는 경영이론이 서구 기업사의
한 산물인 것처럼, 족벌 경영체제를 설명할 수 있는 경영학은 한국 기업의 역사를 되돌아
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오늘날 족벌경영에 의해 운영되는 거대 기업집단들은 우선 국가
가 주도한 자본축적과 극도로 선택적인 자원배분, 그리고 국가가 부여한 시장 및 조세 특권
에 기대어 성장한 기업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벌의 "지존자"는 일차적으로 국가기구의
"지존자"의 총애를 입는 자여야 했다. 그것이 그의 권위의 기초였다. 이러한 상황은 국가에
의한 자원배분의 통제와 기업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 국민경제와 기업의 이익에 이바지하지
못할 때까지 지속될 수 있었다. 재벌의 "지존자"는 그러나 아주 오래 동안 국가의 초법적인
용인 아래서 상호지급 보증이나 상호출자 형식을 통해 재벌 계열사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
는 일을 잊지 않았고, 이 지배권을 계열사 사장들에 대한 인적 지배를 통해 강화하는 것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것이 지난날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이 가능하였던 까닭이다. 재
벌에 의해 설립되었거나 재벌에 인수 합병된 기업들은 따라서 소수 지분을 소유한 재벌총수
에 의해 사실상 지배될 수 있었고, 재벌 총수는 개별 기업의 주주총회나 이해당사자들의 통
제 없이 경영전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관치금융을 통한 재벌의 비호가 지구화 시대에 비효율적인 관행으로 드러나자 재벌체제의
개혁을 위한 제도 개선책이 구상되고 시행되었지만, 재벌총수의 초법적인 계열사 지배는 결
코 종식되지 않았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몇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우선 재벌개혁에 관한 국가의 의지가 사실상 실종되었다는 점을 들어야 한다. 재
발개혁의 압박이 가해진 지 5개월 만에 대통령은 총수의 이른바 오너 경영이 되었든 전문경
영인 체제의 도입이 되었든 기업의 수익성이 향상되기만 하면 된다고 발언하였는데, 이것이
좋은 증거이다. 재벌총수의 이른바 오너 경영이 우리 기업사에서 어떤 조건들 아래서 가능
하였는가를 인식하였다면 이런 발언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그것을 알고도 그렇게
이야기하였다면 그것은 재벌개혁을 감당할 만큼 국가가 강력하지 않았거나 재벌개혁의 의지
를 사실상 거두었다는 뜻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둘째, 재벌총수의 인적 지배를 뒷받침하는 물질적 기반이 그 동안 제도개혁에 의해 붕괴
되지 않았다는 점을 짚어야 한다. 상호지급 보증 금지와 상호출자 제한 등의 조치는 겉으로
는 뭔가 이룰 것 같이 비쳐지기도 했지만, 앞의 것은 금융기술상의 문제에 불과하고, 뒤의
것은 기둥만 세워 놓고 문을 달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조치였다. 그러니 경영자 협의회
나 구조조정위원회 등의 임의기구나 협의기구가 불법적으로 거대기업집단의 최고의사결정기
구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독립기업들의 느슨한 결합체로 재벌체제를 개편한다는
1998년 말의 정부시책은 그것을 강제할 수 있는 조치를 생략하고 이를 기업에 자율적으로
맡기는 식으로 처리하였기 때문에 아무런 실효를 거둘 수 없었다. 독립기업들의 느슨한 결
합체라니 그것이 도대체 어떤 지배구조를 갖는 기업결합체라는 말인가? 지주회사 개념으로
도 설명할 수 없고, 전통적인 경영학이 서술하는 기업 의사결정 구조와도 거리가 먼 이 기
형적인 제도가 정부 문서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재벌총수의 인적 지배구조와 그것의 물질
적 기반을 깨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용인하겠다는 의미밖에 없다.
 셋째는 우리 사회에서 재벌이 하나의 영리단체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관료적, 사회적, 문
화적 이해관계들을 종횡으로 묶으며 우리 사회를 전체적으로 지배하는 세력의 매개고리였기
때문이다. 한정된 자원의 배분에 관여하여 갖가지 이해관계를 실현하는 세력들은 재벌개혁
이나 재벌해체로 인한 기득권의 상실을 두려워하였고,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재벌개혁을 가
로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넷째는 재벌의 시장지배력이 너무나도 커서 재벌의 해체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는 비용을
우리 사회가 감당할 여력이 없었거나 그러한 의지가 적었기 때문이다. 재벌이 망하면 나라
경제가 결딴난다는 공포가 너무 컸다. 재벌의 시장지배로 말미암아 엄청난 폐해가 발생한다
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재벌의 해체나 재벌에 속한 거대기업의 멸망이 가져올
충격을 생각하기조차 싫어했을 것이다. 재벌 해체가 계열사의 독립기업화를 의미한다면, 각
각의 독립기업이 독자적으로 생존하든 멸망하든, 혹은 기업 인수 합병이나 매각에 몸을 던
지든, 모든 것은 그 기업의 시장기회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 내부거
래나 상호지급 보증 등 시장 특권에 의해 목숨을 부지하던 재별 계열사들의 생존능력에 의
심을 품었던 사람들은 그 기업들의 운명에서 비롯되는 사회비용을 연대적으로 감당할 준비
가 되어 있지 않았고, 그러한 사회적 연대가 국가적으로 조직되어 있지도 않았다.

 이렇게 보면 재벌총수와 그 족벌의 인적 지배를 매개로 전개되는 거대기업집단의 경영을
종식시키고 보다 진보적인 방향으로 기업개혁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기업개혁을 법과 제도
의 힘으로 뒷받침해야 할 국가가 강화되어야 하고, 이 국가는 기득권 세력에 의해 희생되는
각계 각층의 역량을 민주적으로 조직하는 선상에서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 진다.
국민의 정부는 이 점에서 실패했다. 아무리 외환위기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서 있었다
고는 하지만 자본의 입장에만 서서 자본의 힘을 견제할 수 있는 사회세력들을 무력화한 것
이 국민의 정부가 재벌과의 힘겨루기에서 패배하고 만 까닭이다.
 재벌해체와 건전한 기업의 육성은 정치민주화와 사회민주화, 그리고 경제민주화를 통해서
만 이루어질 수 있다. 정치민주화가 인권존중과 입헌주의에 입각하여 국민의 정치적 의사결
정을 조직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일이라면, 사회민주화는 사회생활에서 비롯되는
복잡한 이해관계들을 이해당사자들의 자율과 참여에 입각하여 조정하는 작업일 것이다. 경
제민주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경제민주화는 자본과 노동의 권리를 동등하게 인
정하는 가운데 기업경영과 국민경제 차원에서,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경제
차원에서 경제권력을 민주주의적으로 규율하고자 한다. 이 일과 관련해서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도 많다.
 재벌의 해체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단계에까지 왔다. 이제까지는 국가가 재벌을 비호
했다. 요즈음에는 재벌이 기득권 세력을 등에 업고 독점자본이 일시적으로 봉착한 위기를
피해가며 자신의 특수한 의지를 완강하게 관철시키고 있다. 내일 우리는 재벌이 국가를 지
배하고 국가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것을 보게 될런지도 모른다. 그러면 때는 너무
늦다. 그 때 우리는 재벌로 상징되고 대표되는 자본의 지배 아래서 어두운 삶을 한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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