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2000/04/06 (08:47) from 210.120.133.75' of 210.120.133.75' Article Number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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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에서 일하며 떠오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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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에서 일하며 떠오른 생각

강원돈

아름다웠던 서울의 기억

서울 생활을 접고 천안 근처 아우내 마을에 살기 시작한 지 10년 가까이 되어 갑니다만, 저
는 어렸을 적에 보았던 서울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광화문 거리나 종로
거리에서 바라보았던 북악산과 남산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서울 도심의 가로수 아래로 사람
들이 한가하게 걸어가고, 놋쇠 징으로 구분된 차도에는 전차와 자동차가 천천히 지나가곤
했습니다. 쇠줄로 보도와 구분된 도로로 기마 경찰이 순찰하는 모습도 가끔 볼 수 있었습니
다.
 제가 어렸을 적에 살았던 서강은 국민주택들이 몇 채 들어서기는 했지만 여전히 농촌 마
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서강 감리교회 아래쪽에는 아름드리 회나무 숲이 있었고, 그 회나
무 숲 옆에 고가가 서 있었습니다. 고가 아래로 농가들 사이로 난 골목을 걸어내려오면 신
촌에서 이어지는 신작로가 있었습니다. 신작로 주변에는 배추밭과 무밭이 펼쳐져 있었고, 농
부들은 봄이 오면 와우산 아래의 밭에다 거름을 내다 호박밭을 만들고 종이고깔을 씌우곤
했습니다. 서강 국민학교를 지나 당인리 발전소 쪽으로 난 길로 내려가면 하수동이 나오는
데 그곳으로 가는 길가에는 파꽃과 장다리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곤 했습니다. 거기서 조금
더 걸어가면 한강이 나옵니다. 한강 물은 아직 맑았고, 물 속 모래밭에서 송사리 떼가 헤엄
치는 모습이 재미있었습니다. 강변에는 버드나무들이 길게 이어져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름이 되면 밤섬 너머 백사장으로 건너가 수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곳은 여름철 서울 시
민들의 피서지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1980년대 말입니다. 어느 날 연구소 일로 시내에 나갔
다가 청계천 근처에서 교통체증에 걸려 혼이 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차에 꼼짝없이 갇혀
콩크리트 건물들로 가득찬 혼잡한 거리를 보면서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느낌은 제가 다니던 중학교 신관에서 바라보이던 남산이 정동 입구에 세워진 문화
방송 건물로 가려진 70년대 초부터 들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는 또한 멀리 도심
도 바라다 보이곤 했는데, 조선일보 사옥 옆에 건립된 거대한 코리아나 호텔이 무엇인가를
꽉 막아놓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골에서

작년 2월 저는 독일 유학을 마치고 아우내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5년이 조금 못되는 동안
떠나 있었던 아우내 마을 주변은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에는 저자 거리에 네온사인이 딱 하나 있었고, 거기에는 두 글자의
상호가 적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제 집이 아우내 마을에서 한 2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
어서 어쩌다 저녁에 마을로 나가면, 마을 중심까지 걸어가는 길은 칠흑처럼 어둡고 아우내
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자욱하곤 했습니다. 저녁의 아우내 마을은 조용했고, 사람들은 일
찍 잠자리에 들었는지 오가는 사람도 드물었습니다. 요즈음 멀리서 아우내 마을을 바라보면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 동안 유명해진 "병천순대" 집들마다 네온사인을
켜고, 거의 한 집 걸러 들어선 밥집들과 술집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천안에서 병천으로 이어지는 2차선 국도 주변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줄을 지어 들어서 있
습니다. 아우내 마을 근처 논 한가운데나 밭에는 15층 짜리 맘모스 아파트들이 세워져 있습
니다. 그 건물들을 처음 보았을 때 저는 기가 딱 막혔습니다. 우리 나라 국토 면적이 좁아서
건물들이 위로 치솟아 오를 수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볼품없이 지어진 거대한 상자건물들은
농촌정서에도 주변풍광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원하게 트인 농경지와 구릉
지대를 불었던 바람을 더 느낄 수 없게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고국에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우내 마을 주변에 나타난 변화가 이곳만
의 현상이 아니고, 전국적인 현상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산골 마을에도 고층 아파트
가 들어서고, 지방도시 변두리에 거대한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선 풍경이 어느 곳이라
할 것 없이 한결 같았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어디 아파트 건설 붐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도로 건설로 산들이
무수히 잘려 나가고 무모한 벌채로 산꼭대기까지 민둥산으로 변하고, 골프장이나 위락지 개
발로 인해 거대한 임야지역이 훼손되는 일이 여기저기서 눈에 띕니다. 전국토를 바둑판처럼
서로 연결짓겠다는 국토개발 계획에 따라 고속도로들이 건설되면 자동차 여행은 좀더 빠르
고 편해질 수 있겠지만, 산들과 농경지들이 훼손되고 배기가스는 엄청나게 증가하게 될 것
입니다. 생태계에 미치는 나쁜 영향을 평가하지 않고 간척사업이나 댐 건설 혹은 수로 정리
사업이 진행되고, 폐기가스나 폐기물의 처리를 도외시한 채 대규모 공장지대가 설치되는 일
도 많습니다.

뜰에서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저는 "뜰아래방"에 앉아 뜰을 오랫동안 바라보곤 합니
다. 그 동안 가꾼 뜰이 저에게 큰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9년 전에 심은 나무들이 크게 자
라서 늠름합니다. 여기저기 옮겨 심거나 새로 심은 나무들과 작년부터 가꾸기 시작한 잔디
가 희미한 전등 아래 보여주는 색깔이 저에게는 많은 위안이 됩니다. 주말이 되어서 조금
틈이 나면 뜰에서 일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떨어진 나뭇잎이 썩은 곳이나 풀을 베어 깐 곳
의 흙은 부드럽고 또 향긋한 냄새가 납니다. 잔디밭이나 텃밭에서 잡초를 일일이 손이나 호
미로 뽑고 낫으로 베는 일은 굉장히 번거롭고 비가 온 다음에는 또 다시 잡초가 무성해지지
만, 저에게는 잡초를 다루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잡초를 다룰 때 제가 정한 원칙은 두 가지
입니다. 다른 화초나 잔디, 작물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는 곳의 잡초는 자라게 두고 무성할
때에만 낫으로 벤다는 것이 그 하나고, 잡초를 제거할 경우에는 제초제를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 또 다른 하나입니다. 그렇게 되면 땅이 숨을 쉬고 여러 곤충들이 땅을 의지해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곤충이 많으면 새들도 많이 날아와서 마당에서 놀다 갑니다.
 얼마 전에 제 집 마당 철망 너머 쑥대밭에 이웃집 사람이 제초제를 뿌렸는데, 사나흘 정
도 지나니까 그곳의 풀들이 전멸을 하고 말았습니다. 제초 작업에 손이 많이 드니까 농사
짓는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제초제를 많이 쓰는데, 제초제는 정말 무서운 농약입니다. 제초
제의 독성은 땅에 10년 이상 잔류하고 농작물에 축적되어 결국 동물과 인체에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월남전에서 네이팜 탄에 쓰인 고엽제가 참전 장병들에게 엄청난 후유증을
남긴 사례가 제초제의 무서움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뜰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겁기는 하지만 제 집의 우물을 생각하면 금방 우울해집니다. 우
물물은 마실 수 없을 만큼 오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농사일을 위해 엄청나게 투입하는 비
료와 농약이 땅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를 오염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집 근처
유관순 사당에서 약수를 받아다 식용으로 쓰고 있습니다.

환경문제 해결의 어려움

뜰에서 일하면서 저는 환경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합니다. 환경문제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것보다 더욱 심각합니다. 에너지와 물질을 엄청나게 투입하게끔 되어 있는 우리 나라
의 산업구조를 생각해 보면, 생산과 소비의 결과로 방출되는 폐기물과 폐기가스로 인해 환
경이 급속하게 파괴되고 오염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활동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도외
시한 채 경제성장과 국토개발을 급속도로 추진하였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환경문제는 매우
악화되어 있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나 기업, 소비자들의 환경의식은 아직 낮습니다.
 설사 환경의식이 높다 하더라도 개별경제나 국민경제 차원에서 환경보전을 실천하기는 좀
처럼 쉽지 않습니다. 독일 고속도로에서 최고주행속도를 제한하자는 논의가 20년 이상 계속
되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독일이 자랑하는 울창한 산림이 절반
이상 죽어 가는 이유가 과도한 자동차 배기가스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사람들은 자
동차 배기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길이 속도제한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자동차가
적정속도 이상 빨리 달리게 되면 연료소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배기가스량도 따라서
크게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행속도를 줄이기 위한 입법은 자동차기업들의 로비로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고속으로 달리면서도 안전성을 유지하는 자동차를 개발하기
위해서 엄청난 연구개발비를 투자했고 또 이 분야에서 독일자동차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
하고 있는데 이 프리미엄을 포기할 자동차회사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고속도로
주행속도를 시속 130 킬로미터 이하로 제한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굳이 비싼 값을 들여 독일
자동차를 구입하지 않고 싼 외국자동차를 살 것입니다.
 독일의 고속도로 주행속도 제한의 실패는 시장논리가 환경논리를 이기고 있음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자동차들이 길을 메워서 물류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
고 환경과 삶의 질이 급속하게 악화되어 가는데도 자동차를 더 많이 보급하기 위해 기업들
은 안간힘을 쓰고 정부 역시 자동차 소비 촉진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물류비용을 줄이려면
자동차 보급과 운행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국토가 좁고 에너지를 수입해야 하는
우리 나라의 여건에 맞을텐데, 정부는 정반대 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경제에서
자동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보니 자동차 공급과 소비를 촉진해야 경제성장이 이루
어진다는 논리에 환경과 삶의 질을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는 뒷전에 밀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시장의 논리에는 환경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시장의 논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
은 교환가치인데, 교환가치를 가지고서는 환경의 본래적인 가치를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입
니다. 시장의 논리에서 환경이 갖는 가치는 환경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을 표현하지 않고, 다
만 경제활동을 위해 환경을 이용하거나 환경으로부터 원료를 얻는 데 투입되는 자본비용과
노동비용 뿐입니다. 여기서 교환가치로 표현되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감가상각비용과
시장이자, 그리고 노동력 구입비 뿐이지 환경 자체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그리고 시장의 논
리는 교환을 통해 얻는 수익에 관심을 가질 뿐이지 교환경제를 위해 환경이 얼마나 망가지
는지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시장경제에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교환가치의 속성 때문만이 아니고, 시장
경제를 조절하는 가격기제의 불완전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시장에 참여하는 주체들은 가격
에 굉장히 민감하고 가격은 시장에서 교환되는 상품의 희귀성을 반영한다고 하지만, 이 희
귀성은 오직 현재의 공급량과 수요량에 의해 평가될 뿐입니다. 시장가격은 미래의 희귀성을
반영할 길이 없습니다. 장차 환경으로부터 채취할 원료들이 절대적인 희귀재가 된다 하더라
도 시장은 그런 상황에 전혀 반응할 수 없습니다. 2015년이면 원유채굴량이 급속도로 감소
해서 원유값이 폭등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면서도 현재 전세계적으로 원유소비량은 줄어들
기는커녕 증가일로에 있습니다.
 환경의 경제적 활용으로 인해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서 이를 제거하는 데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해도 이 문제 역시 시장의 논리만 가지고서는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환경
은 어느 누구에게 특별히 속해 있지 않고 모두에게 속해 있는 일반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
니 시장의 논리는 깨끗한 환경을 보전할 책임과 그 비용을 개별적인 경제주체들이 받아들이
도록 할 수 없습니다. 환경오염을 일으킨 당사자를 색출해서 책임을 묻거나 환경의 용익을
누리는 사람들에게 그 용익을 위한 부담을 지도록 하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
게 하는 입법과 국가의 강제력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적 의지
가 없으면, 환경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제거하기 위한 비용조차도 염출할 수 없는 것이 시
장경제인 셈입니다.
 이런 몇 가지 점들을 생각해 보면, 환경문제의 심각성이 인식되고 환경보전을 위한 캠페
인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나라들에서조차 환경문제가 왜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가 하는 의문
이 풀립니다. 시장의 논리를 압도하는 정치의 논리가 힘을 얻지 않고서는 환경친화적인 시
장경제의 형성은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출발점은 환경의식을 높이는 데서

시장경제의 생태학적 규율이 시장논리만으로 불가능하고 시장논리를 압도하는 정치논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은 환경문제에 대한 계몽이 여전히 매우 중요한 과제임을 시사합니
다. 환경문제에 대해 국민들의 의식이 깨이고 환경을 보전하려는 사람들이 더 큰 정치력을
가질 때에만 환경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환경문제에
대한 계몽을 위해 교회가 짊어져야 할 책임은 적지 않습니다. 교회는 하느님이 이 세상을
좋은 것으로 지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고,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던 피조물이 신음하며
멸망의 종살이로부터 해방될 날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음을 증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
님 보시기에 좋았던 피조물공동체의 원리를 밝히고 그 원리를 파괴하는 죄의 세력을 폭로하
고 이 세력에 대항하는 논리를 제시하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 "살림" 1999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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