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05/31 (22:48) from 61.75.33.147' of 61.75.33.147' | Article Number : 250 |
강원돈
(kwdth@chollian.net)
|
Access : 18978 , Lines : 125 |
|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기독교윤리학의 전개 |
|---|
 Download : 동향2.hwp
(51 Kbytes)
|
|
기독교윤리학의 동향 (II) 강원돈 II.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기독교윤리학의 전개 본 교단은 태동기부터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세상에 이루고자 하는 관심을 강하게 갖고서 현실 참여의 전통을 일구어 왔고, 본 교단의 신학자들은 이 전통에 부응하여 일찍부터 기독교윤리학을 크게 발전시켜 왔다. 기독교윤리학은 현실관계의 제도적 측면에 유의하면서 사람들의 공동생활을 규율하는 이치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강구한다. 본 교단에서 기독교윤리학의 발전이 다른 교단들보다 두드러진 것도 기독교윤리학의 이같은 성격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 교단 신학자들의 기독교윤리학을 살피는 것은 한국 기독교윤리학의 전개과정을 파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여기서는 김재준, 정하은, 고재식, 손규태의 기독교윤리학을 검토하기로 한다. 1. 김재준의 참여의 윤리 김재준은 구약학자로 많은 업적을 쌓은 분이지만, 기독교윤리학을 대학에서 직접 가르친 경험이 있고, 또 기독교윤리학과 관련된 책을 여러 권 번역하기도 하였기 때문에 한국 기독교윤리학의 태동기에 공헌한 학자로 간주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라는 매우 스케일이 큰 윤리적 구상을 제시하였고, 매우 적극적인 현실참여의 신학과 윤리를 전개한 분이다.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라는 주제는 김재준의 신학과 사상을 꿰뚫는 주조음(cantus firmus)이었고, 사회참여의 신학과 윤리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구체적인 현실 속에 구현하는 방편으로 선택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1945년에 발표된 「기독교의 건국 이념」이라는 글에서 김재준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기독교인의 최고 사상은 하나님 나라가 인간사회에 여실히 건설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초세간적(超世間的)인 내세적인 소위 천당이라는 말로서 그 전부를 의미하는 것인 줄 알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전 생활에 군림하여, 성령의 감화가 생활의 전 부문을 지배하는 때, 그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이며 이것이 전 사회에 삼투되며 사선(死線)을 넘어 내세에까지 생생 발전하여 우주적 대극의 대낙원의 날을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전모일 것이다.” 김재준, 「기독교의 건국이념-국가 구성의 최고 이성과 그 현실성」, 『전집』, 제1권, 159. 이 글은 하나님 나라가 내세천당의 관념으로는 포착할 수 없고, 하나님 나라가 성령의 활동하는 임재를 통해 현 세상에서 구현될 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를 포괄하는 큰 평화로 실현될 것임을 전망하고 있다. 성서가 말하는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실현된 우주적 대극의 대낙원에 참여하는 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인용문은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전 생활에 군림하여 성령의 감화가 생활의 전 부문을 지배하는 때, 그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이미 하나님 나라의 구현 과정에 기독교인들이 참여하여 활동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와 같은 김재준의 생각은 그의 생애를 관철하고 있다 김재준, 「교회는 선교를 위해 있다」, 『귀국 직후』, 서울, 선경출판사, 1985, 280. . 김재준에게서 하나님 나라 운동은 “세속 역사를 하나님 나라 역사로 변질시키는 운동”이요, 바로 이 역사에 대한 관심은 교회가 현실의 문제들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여 하나님 뜻이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도록 현실변혁의 주역으로 등장하도록 촉구한다. 김재준은 이처럼 하나님 나라와 세상의 긴장관계를 고려하면서 현실참여의 신학과 윤리를 제시하고 있다. 김재준은 해방 후 점철된 독재와 부패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밝혀 왔다. 이승만 정권 시절에 쓰여진 「역사참여의 문제와 우리의 실존」이라는 글에서 그는 한국 교회가 “이 시대를 자기의 베개로 삼고 안면하는 수면병”에 빠졌다고 질책한 바 있다 김재준, 「역사참여의 문제와 우리의 실존」, 장공 김재준 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회 편, 『장공 김재준 논문 선집』(이하 『선집』), 서울, 한신대학교출판부 2001, 361. . 박정희 정권의 성립 이후 김재준은 굴욕적인 한일국교정상화 회담 반대, 독재를 합법화하기 위한 삼선 개헌 저지, 유신독재에 대한 항거, 캐나다 망명 이후 한국 민주화 지원과 통일 운동 등에 참여하였고, 이 과정에서 현실참여의 신학과 윤리에 대한 많은 글들을 썼다. 『선집』에 실린 「기독교인의 정치참여」(1967년), 「역사참여의 신학」(1971년), 「한국에서 기독교의 위치와 사명」(1973년), 「제3일의 논리와 역사의 내일」(1974년), 「교회와 세상」(1976년) 등의 글들은 현실참여에 대한 김재준의 관심을 잘 드러낸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한국 민주주의의 죽임을 당했던 어두운 시기에 김재준은 교회의 예언자적 책임을 강조하고, 혁명까지를 고려하면서까지 정치참여에 나서는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1976년에 집필한 「교회와 세상」, 『선집』, 425f.을 보라. . 김재준은 이러한 기독교인들의 현실참여를 뒷받침하는 윤리학 방법론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였다. 1962년에 쓰여진 「한국교회 윤리생활의 재검토」라는 글에서 그는 윤리적 이상주의를 비판하면서 “사회를 위한 어떤 추상적, 원칙적 가치를 내세우고, 그것이 적용될 경우에 산출될 어떤 이상적 사회 형태를 상정한 다음에. 현존 사회상을 이에 맞도록 끌어올리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보다는 정황 분석을 정직하게 하는 일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기독교윤리학의 규준과 준칙의 형성과 관련해서 김재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그 도덕적 행위에 원칙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것은 하나님과 나, 나와 이웃의 상호관계됨에서 보고 그 관계됨에서 진행시키는 것입니다.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사회과학의 데이터에서 그것들의 내적 역사적 의미...를 포착하고 거기서 윤리적 결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내가 ...말한 (1) 기독교적 계시와 신앙 (2) 자아의 분석 (3) 사회적 구조와 과정에 대한 이해를 기독교 윤리 결단의 삼 요소로 지적한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한 것입니다” 김재준, 『선집』, 117. . 이 글에서 김재준의 기독교윤리학의 전모를 상세하게 논의하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김재준이 한국 기독교윤리학의 태동기에 기독교윤리학의 현실참여적 관심을 분명히 하고, 라인홀드 니이버, 하인리히 리처드 니이버, 죤 C. 벤네트 등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그는 1962년 11월에 『사상계』에 「기독교와 정치-라인홀드 니이버의 경우」(『선집』, 262-271)를 발표했고, 1963년 10월에는 『오늘의 고전』이라는 공동저작집에 「리처드 니이버의 신학과 윤리」(『선집』, 272-287)라는 글을 실었다. 앞에서 인용한 「한국교회 윤리생활의 재검토」라는 글에서 그는 죤 C. 벤네트와 하인리히 리처드 니이버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윤리학 방법론을 설명하고 있다. 기독교윤리학의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는 것은 한국 기독교윤리학의 역사에서 평가받을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2. 정하은의 결단의 윤리 정하은은 독일에서 기독교 사회윤리를 전공하고 돌아와 이 분야에서 기독교윤리학의 방법을 명확히 밝히고, 당대의 과제였던 근대화 문제를 기독교윤리학적 시각에서 다루고자 시도하였던 학자이다. 그는 기독교 사회윤리학이 성서학과 사회과학을 매개하는 중간학(interdisciplinary science)이고, 그 목적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윤리적 결단을 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보았다. 기독교윤리학을 신의 의지에 따르는 행위라고들 말하지만, 정하은은 설사 신의 의지를 안다고 해도 그것은 단순히 지식의 문제로 머물 수 있다고 본다. 윤리적 행위를 이끌어 가는 결단은 지식과는 다른 차원에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사회윤리학을 “결단의 학”으로 보는 그의 주목할 만한 견해를 더 들어 보자. “우리가 성서신학이나 사회과학을 통하여 신의 의지를 규명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것은 역시 한갓 지식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결단을 일으켜 주지 않는다. 그러한 지식은 신앙 결단의 자료를 제공해 줄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잘 이용하여 결단하는 데까지 이르게 지도하는 것이 기독교 사회윤리학의 과제요 사명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오늘의 기독교 사회윤리학은 여러 상황 속에서 신의 의지를 찾고 그것에 따라 결단에 이르는 과정을 취급하는, 이른바 ‘결단의 학’인 것이다” 정하은, 『한국근대화와 윤리적 결단』(이하 『결단』),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68, 8f. . 결단의 학으로서의 기독교 사회윤리학은 그 나름의 방법적 절차를 갖는다. 신의 의지를 인식하는 것과 현실관계들 속에서 결단하고 행동하는 것 사이에는 몇 가지 단계의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알베르트 라스무쎈의 사회윤리적 결단의 단계를 참고하고 본훼퍼의 이론을 원용하며 (1) 상황 관찰, (2) 상황 판단, (3) 정책 결정, (4) 행동 : 결단의 네 단계를 설정하였다. 이 네 가지 단계들을 거쳐 윤리적 결단과 행동을 하는 주체는 물론 기독교인들이다. 기독교인들의 사회윤리적 결단의 첫 단계인 상황 관찰은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사회를 보는 눈”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의 상황 관찰이 비기독교인들보다 “더 성실하고 정확한” 상황 관찰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데올로기나 민족 이익 혹은 자기중심성에 사로잡히지 않은 눈을 가질 때, 기독교인들은 사회학적 게토를 넘어서서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정하은은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론 우리가 사회를 진단하는 데 사회학적인 조사를 중요시한다. 그러나 거기서 얻은 데이터들을 사회학자들처럼 하나의 통계학적인 숫자나 현미경으로 보지 않고, 그 데이터를 통하여 ‘신의 행위’, ‘신국의 현재성’을 들여다 보면서 신의 혁명적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결단』, 25. . 정하은이 말하는 사회윤리학의 네 단계를 여기서 상술하지는 않겠지만, 그의 사회윤리학적 특징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은 정책 결정 부분이다. 그는 현실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해법이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엇갈려 있을 경우 어느 원칙을 고집하는 것보다는 “중간 공리”(middle axiom)를 활용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제안한다. “보다 높은 정의는 보다 평등한 정의”라는 라인홀드 니이버의 비교급의 윤리 혹은 기독교 현실주의에 따라 에큐메니칼 사회윤리의 방법론적 지침인 “중간 공리” 개념 에큐메니칼 사회윤리의 “중간 공리” 개념에 대해서는 H.-J. Kosmahl, Ethik in Oekumene und Mission. Das Problem der "Mittleren Axiome" bei J. H. Oldham und in der christlichen Sozialethik, Goettingen 1970을 보라. 을 재해석하는 정하은은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성령의 역사는 오늘도 계속해서 우리에게 한량 없는 은혜를 베풀고 계시다. 그의 사랑은 한량 없다. 그러나 결코 센티멘털하지 않다. 문제를 단순히 센티멘털한 감정이나 값싼 사랑의 눈물로 해결하려 하지는 않는다. 성령께서는 모든 사람이 보다 평등하게 다같이 사랑하고 공존공영하기를 원하신다. 결코 정의 없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사랑-정의’의 긴장 관계를 내용으로 한 중간 공리를 가지고 정책을 수립할 때 보다 신의 의지에 접근해 나아갈 것으로 생각한다. (...) 특히 크리스천의 정책 결정은 이상론이 아니고 성령의 말씀을 현실화하는 일이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있어야만 한다. 여기에 기독교 현실주의의 성립 근거가 있다” 정하은, 『결단』, 31f. 위의 인용문이 잘 말해 주고 있듯이, 정하은은 기독교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신의 의지를 현실에 구현하는 기독교 실천 이론으로서 기독교 사회윤리학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밝히고자 했다. 그리고 자신의 사회윤리학적 관점과 방법을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에 적용하여 기독교인들의 결단과 행위의 내용을 밝히고자 했다. 물론 이 분야에 관한 그의 깊이 있는 분석과 정책 제시가 별로 없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이와 직접 관련된 정하은의 저작은 『결단』에 실린 「이데올로기와 한국의 근대화」라는 짧은 글이며, 이 가운데 한국 근대화와 관련된 부분은 “한국 경제 발전의 전제조건”(『결단』, 136-138)을 다룬 세 쪽에 달하는 아주 간략한 언급에 지나지 않는다. . 아마도 서구에서 발전된 현대 기독교윤리학을 소개하고, 에큐메니칼 운동 차원에서 제기되는 사회윤리적 문제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에 정하은은 『결단』에서 라인홀드 니이버, 디트리히 본훼퍼, 에큐메니칼 사회윤리학, 요셉 플렛처의 상황윤리 등을 소개하고 있고, 공산주의와 대결한 에밀 브룬너, 핵 전쟁 문제를 둘러싼 라인홀드 니이버와 죤 C. 벤네트의 대결, 이 주제에 대한 헬무트 골비처의 견해를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방대한 서구 기독교윤리학과 신학의 정리는 정하은, 『현대신학자와의 대화』,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3; 정하은, 『혁명기의 기독교』,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5에서도 시도되고 있으나, 여기서는 소개를 생략한다. 이 중요한 주제에 대한 사회윤리학적 연구가 미완의 과제로 남게 되었는지 모른다. 3. 고재식의 해방의 윤리 고재식은 아마도 기독교윤리학의 방법론을 가장 짜임새 있게 제시한 학자로 평가받을 만할 것이다. 그는 에큐메니칼 사회윤리의 중간공리론과 남미의 해방윤리를 비교하여 자신의 윤리학적 방법론을 정립하고자 하였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작업을 규범 윤리와 구별되는 “메타 윤리” 차원의 작업으로 규정하였는데 고재식, 『사회문제와 기독교 윤리』,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4, 64. , 한국 기독교윤리학의 역사에서 메타 윤리 수준에서 방법론의 문제를 의식적으로 다룬 학자는 고재식이 처음이다. 고재식은 “기독교인들의 행위에 대한 윤리적 판단기준을 이끌어내는 방법 문제“를 다루면서 이 판단기준의 보편성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켰다. 그는 이 방법 문제가 윤리적 숙고의 핵심 문제임을 의식하고, 이 숙고의 핵심을 역사의 현실적 실재의 특수성과 기독교적 가치의 보편성을 서로 매개시키는 방법을 만들어내는 일로 성격화한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이상은 사랑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려고 노력한다.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서는 역사 현실에 대한 분석적, 객관적 연구가 수반되어야 하고 따라서 법, 질서, 권력과 같은 제요소들과의 상호 관계에서 그 실현가능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의 현실적 실재와 기독교 가치 개념을 상호 연결시켜 그리스도인의 행위를 유발시킬 때에는 어떤 성찰이 따라야 한다. 이 성찰을 우리는 윤리적 숙고라고 부른다. 윤리적 숙고는 역사 현실과 그리스도인의 가치의 상호 교호작용에서 행위의 판단기준을 창출해 내는 일이다” 고재식, 앞의 책, 68. . 고재식은 윤리적 판단기준을 만들어내는 작업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보편적 도덕법의 체계를 전제하고서 이를 윤리적 판단의 지침으로 활용하는 입장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윤리적 판단기준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적 결단에 따른 행위를 성찰하는 과정에서 추후적으로 만들어지는 진다고 보는 입장이다. 고재식에 따르면, 전자를 대표하는 것은 에큐메니칼 사회윤리의 중간 공리인 책임사회 이념을 계승한 월터 뮐더이고, 후자는 "실천이 먼저이고 성찰은 그 뒤를 따른다“고 주장하는 구스타보 구티에레즈의 실천과 성찰의 순환 방법(praxis-reflexion methode)에 입각하여 윤리를 하는 일(doing ethics)에 관심을 기울인 호세 미구에즈 보니노이다. 고재식은 이 두 상반되는 윤리학자들의 윤리 방법론을 꼼꼼하게 비교하면서 뮐더의 윤리학이 이상주의적이고 당위적인 가치 개념에 입각하여 있기 때문에 연역적인 절차에 따라 행위의 지침을 강구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책임사회의 틀이 만들어지는 일이나 그 사회를 이루기 위한 행위의 지침원리는 역사 현실의 구체성과는 거리가 먼” 고재식, 앞의 책, 84. 것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책임사회는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공동체적 책임의식을 전제하기 때문에, 이처럼 규범적으로 주어져 있는 책임사회의 유기체적 틀에서는 설사 혁명적 행위가 필요한 경우라 해도 혁명적 행위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보니노의 해방윤리는 혁명적인 현실에서 사회변혁을 위한 어떤 행위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개방해 주기는 하지만, “행위의 윤리적 판단기준을 창출해 내는 윤리 이론적 측면에서는 논리의 혼돈을 야기시킬 위험성이 내포” 같은 곳. 되어 있다고 본다. 이러한 분석과 평가 끝에 고재식은 윤리학 방법론과 관련되는 주목할 만한 결론을 내린다. “잠정적인 보편성을 이루는 과정에서 우리는 규범적인 측면에 관심을 갖는 일에 소홀해서는 안 되고 규범적인 사고에는 역사적 특수성이 항상 전제되어야 한다” 고재식, 같은 책, 85. . 이 인용문에서 고재식은 윤리적 규범의 선험적 완결성을 부정하고 역사적 특수성을 매개하여 윤리적 규범의 보편성이 생성되어 가는 과정에 주목하고 있으며, 상황이 요구하는 직접적인 행위가 정당한 행위에 대한 규범적 판단을 대체할 수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점도 명확히 하고 있다. 기독교윤리학의 방법에 대한 고재식의 연구는 이데올로기와 신앙의 관계를 규명하는 작업을 통해 훨씬 진전된 모양으로 나타났다. 그는 후안 루이스 세군도의 “해석학적 순환” 이론 Juan Luis Segundo, The Liberation of Theology, New York, Orbis Books, 1975, 8. 을 나름대로 소화하는 가운데 신앙의 절대성 요구를 해석학적으로 제한하고 고재식, 같은 책, 106f. , 그 신앙이 현실을 변혁하는 힘을 갖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의 형태로 상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군도는 “우리의 신앙에서 얻은 하나님 사상”과 “변화무쌍한 역사에서 우리에게 밀려드는 문제들” 사이에 가로 놓여진 “거리”를 예리하게 의식하고 이 둘을 연결하는 다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세군도는 이 다리를 “목적과 수단의 체계”로 규정했고, 바로 이 체계를 이데올로기로 명명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필요한 것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인간의 능력과 자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J. L. Segundo, 같은 책, 116. . 고재식은 하나님의 통치를 역사 현실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의 실천에는 바로 이러한 신앙이 이데올로기적 선택을 피할 수 없고, 따라서 “신앙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의 필연성”을 말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고재식, 같은 책, 108. . 고재식은 청년 시기에 산업선교 활동을 통해 기독교인들의 정당한 행위에 대한 관심을 첨예하게 가졌던 사람이고, 바로 이 실천적 관심이 정당한 행위에 대한 윤리적 판단기준에 대한 학문적 작업을 촉진시켰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유학을 끝내고 돌아온 1970년대 말 이후 그는 현상 유지를 타파하고 현상의 근본적인 변경을 요구하는 한국 민중운동의 현장에서 그 나름의 독특한 기독교윤리학의 관점과 방법을 가지고 매우 생산적인 학문 활동을 하였다. 그는 기독교인들의 사회참여 고재식, 같은 책, 133-141. , 압제와 착취에 저항하는 세력이 취하는 대항폭력의 신학적, 윤리적 정당성 문제 고재식, 같은 책, 142-159. , 교회와 국가의 관계 고재식, 같은 책, 160-178. , 다국적 기업 문제 고재식, 같은 책, 179-208. , 한국 경제 개발 과정에 대한 기독교윤리적 평가 문제 고재식, 「한국 경제개발계획의 기독교 윤리적 평가―분배정의의 문제를 중심으로」, 『신학사상』, 제72 집,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1년 봄. 등 매우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그는 해방신학을 한국 기독교윤리학과 접목시킨 중요한 업적을 쌓았으며,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을 기독교윤리학의 관점에서 비교·분석하는 작업 고재식, 「민중신학과 해방신학」, 한국신학연구소 편,『1980년대 한국민중신학의 전개』,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0, 132-154. 을 진행한 바 있다. 4. 손규태의 사회윤리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전개된 기독교윤리학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손규태는 역사적 사고와 윤리적 사고를 성공적으로 통합한 학자로 기억될 것이다. 이 짧은 글에서 그의 다양한 업적을 세밀하게 분석할 수는 없으므로 손규태의 사회윤리에 관한 세밀한 연구로는 拙稿 “사회윤리학자로서의 손규태”, 손규태 교수 정년퇴임 기념논문집 발간위원회 엮음 『공공성의 윤리와 평화』,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5, 21-46을 보라. , 그가 제시한 사회윤리학의 윤곽을 그리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손규태는 사회윤리학의 과제와 방법에 대해 매우 명확한 입장을 취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절대성과 세상의 상대성을 매개하는 기독교 윤리의 가능성을 기독론과 종말론의 틀에서 확립하였고, 세상이 하나님 나라에 투명해지도록 세상과 역사를 형성하는 것을 사회윤리학의 과제로 설정하였고, 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역사적 분석과 사회과학적 분석을 사회윤리학적 성찰 과정에 매개하는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손규태, 『사회윤리학의 탐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2, 9. 그는 너무나도 평범해서 흔히 간과하고 마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범주를 사회윤리학의 인식론적 틀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 사건에 동참하는 결단으로서의 “참여”를 사회윤리학의 실천적 틀로 삼았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사회윤리학의 관점과 방법에 따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삶의 다양한 영역들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포착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윤리적 제안을 제시하였다. 교회 개혁, 인권, 민주주의, 민족주의, 민중 해방, 사회정의, 평화, 민족통일, 생태계 보전, 토지 분배, 과학기술문명, 스포츠 등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그의 글쓰기는 그가 자신의 관점과 방법에 일관성을 보였음을 증명한다. 손규태가 다룬 주제들의 폭넓은 스펙트럼은 그의 책 『사회윤리학의 탐구』에 잘 나타난다. 그는 매우 뚜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해외 신학 전통과 국내 신학 전통에 속한 수많은 신학자들을 연구했다. 그는 그 신학자들의 연구가 오늘의 교회와 역사에 전환점을 준비하는 일에 기여하기를 바랐고, 복음에 충실한 신앙인을 훈련시키는 기회가 되기를 바랐다. 그는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교회와 역사에 전환점을 가져왔거나 그 전환점에서 새로운 언어를 제시한 신학자들을 선별하여 연구하였다. 손규태, 『개신교 윤리사상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8, 7. 그는 이러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전기와 사상”의 연관성을 밝히는 방법을 실험하고 그 실험이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 전기와 사상의 연관성을 추구하는 방법은 이미 “시간과 공간” 및 “참여”를 씨줄과 날줄로 엮은 그의 사회윤리학 방법론이 준비해 둔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오늘의 한국 상황에서 신학을 한다는 뚜렷한 주체 의식을 갖고서 신학 전통들과 그 유산들을 섭렵하고 그것들에 대해 자신의 독특한 해석을 가했다. 그가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는 마르틴 루터, 디트리히 본회퍼, 칼 바르트, 김재준, 서남동, 변선환의 신학사상과 윤리는 그의 주체적 신학하기를 통하여 독특한 언어로 걸러져 나왔다. 그는 『개신교 윤리사상사』에서 이 신학자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였고, 루터와 김재준에 대해서는 별도의 책을 쓰기도 했다. 손규태, 『장공 김재준의 정치신학과 윤리사상』,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손규태, 『마르틴 루터의 신학사상과 윤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그는 에버하르트 베트게가 편집한 본회퍼의 『기독교 윤리』 디트리히 본회퍼(손규태 역), 『기독교 윤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4. 를 번역할 정도로 본회퍼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졌으며, 그에 대해서는 여러 편의 소논문들을 집필했다. 손규태, 『사회윤리학의 탐구』에 실린 “한국의 민중신학과 본회퍼”, “본회퍼 신학에 있어서 영성과 해방”, “본회퍼의 평화신학” 등이 대표적이다. 바르트에 대해서는 한편의 논문을 저술하는 데 그쳤으나 손규태, “Karl Barth의 윤리사상”, 『성공회대학논총』 9호, 서울: 성공회대학교 출판부 1996, 3-24. 이 논문의 핵심 내용은 손규태, 『개신교 윤리사상사』, 196-206에 재수록되어 있다. , 에두아르트 부에스, 마르쿠스 마트뮐러의 『예언자적 사회주의』 E. 부에스/ M. 마트뮐러(손규태 역), 『예언자적 사회주의 : 블룸하르트-라카츠-바르트』,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7. 를 번역해서 종교사회주의자로서의 바르트를 소개한 바 있다. 그는 민족과 평화의 문제에 관해서 매우 독특한 언어를 가졌던 사회윤리학자였다. 민족 문제에 대한 그의 발언은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의 한국 신학계에서 특이한 목소리였다. 민족모순, 계급모순, 분단모순의 중첩된 모순구조 속에서 그는 민족 문제를 민중 문제로 단순히 해소시킬 수 없음을 역설했다. 민중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서 사회정의와 참여가 실현되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외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자주성을 확립하고 민족분단을 극복하여야 하는데, 민족 문제를 마치 실체가 없는 것처럼 여길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손규태, 『사회윤리학의 탐구』, 172. 그는 평화를 공동체의 목표로 설정하였고, 이 목표를 달성하는 방편으로서 통일을 생각하여야 한다는 대담한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그는 민족 통일이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1980년대에도 통일 자체가 목표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통일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통일은 민족의 ‘자주’와 ‘평화’를 가져다주는 방편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손규태, 『사회윤리학의 탐구』, 371. 이러한 주장은 손규태가 정의와 평화의 관계에 대한 에큐메니칼 인식에 터를 잡고 평화 문제를 매우 포괄적인 틀에서 고찰했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손규태, 『사회윤리학의 탐구』, 442. 손규태는 21세기를 내다보면서 네 가지 과제들에 집중할 것을 제안하고 스스로 이와 관련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1) 에큐메니칼 사회윤리의 천착 손규태, 『개신교 윤리사상사』, 448-486. , (2)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체제에 대한 비판으로서의 경제윤리 손규태, 『개신교 윤리사상사』, 487-517. 그는 경제윤리와 관련해서 여러 편의 글을 썼다. “JPIC와 경제윤리”, 『사회윤리학의 탐구』, 457-478; “우르과이 라운드와 새로운 국제경제질서”, 『사회윤리학의 탐구』, 479-488; “토지 공개념에 대한 신학적 고찰”, 『사회윤리학의 탐구』, 489-500; “교회사에 나타난 경제사상”, 『기독교와 경제』, 호남신학대학교 편, 서울: 한들출판사 1999, 169-198; “오늘날의 경제윤리 -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체제에 대한 비판”, 손규태 외, 『지구화와 사회윤리 - 변화된 노동관계』, 서울: 다산글방 2003, 9-40; 아담 스미스 사상의 신학적, 철학적 기원에 대한 연구“, 『성공회대학논총』, 서울: 성공회대학교출판부 2003, 307-337. , (3) 탈근대주의와 탈식민주의 논리를 추구하는 문화윤리 손규태, 『개신교 윤리사상사』, 518-554. , (4) 한국 교회의 사회선교를 뒷받침하는 사회윤리의 정립 손규태, 『개신교 윤리사상사』, 555-585. 이 그것이다. 손규태가 이룩한 업적은 사회윤리학과 관련된 많은 도서들을 독어에서 한글로 번역한 데서도 찾을 수 있다. 그는 사회윤리학과 관련된 도서로만 『그리스도냐 프로메테우스냐』 J. M. 로호만, 『그리스도냐 프로메테우스냐』,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5. , 『새로운 세계를 향한 용기』 게오르크 피히트, 『새로운 세계를 향한 용기』,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6. , 『개신교 사회론 입문』 H.-H. 슈라이, 『개신교 사회론 입문』,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5. , 『그리스도교와 미래를 책임지는 경제활동』 독일개신교교회협의회, 『그리스도교와 미래를 책임지는 경제활동』, 천안군: 한국신학연구소, 1994. , 『그리스도인과 국가: 로마서 13장 연구』 루츠 폴레, 『그리스도인과 국가: 로마서 13장 연구』,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7. , 『해방신학을 말한다』 페터 아이허, 『해방신학을 말한다』,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8. , 『샬롬』 울리히 두크로 외, 『샬롬: 피조물에게 해방을, 사람들에게 정의를, 민족들에게 평화를』,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9. , 『평화윤리』 볼프강 후버, 『평화윤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7. ,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대안』 울리히 두크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대안: 생명을 위협하는 자본주의적 경제를 극복하기 위한 성서의 정치경제학』, 서울: 도서출판 한울 1997. 등을 번역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