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2000/04/06 (08:50) from 210.120.133.75' of 210.120.133.75' Article Number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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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고속도로를 타며 떠오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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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고속도로를 타며 떠오른 생각

강원돈

섬진강 가에서

며칠 전 구례 화엄사 밑에서 모였던 민중신학회에 참가하였다가 지리산과 섬진강을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지리산록은 소나무와 활엽수들이 울창하게 우거졌고, 섬진강 물은 맑고 깨끗
했습니다. 공장시설이 거의 없어서인지 아직 녹색 환경이 잘 보전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
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전라도 지방을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견지에서 잘 개발하여
"녹색 전라"를 구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지리산과 섬진강 풍경은 저의 그런
생각을 더 강화시켜 주었습니다.
 섬진강 가에서 김용복 박사의 호의로 은어 회와 은어 튀김을 맛보았습니다. 깨끗한 물에
서만 자란다는 이 물고기는 독특한 향기를 내는데, 그 향기가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지리산
에서 흘러내리는 물에서 살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향기를 내는가 보다 하고 생각해 보았습
니다. 같이 식사를 한 친구가 해남에서도 은어를 먹어본 적이 있다고 해서 은어가 섬진강에
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아직 환경이 깨끗하게 보전되어 있는 곳에서 은어를
먹을 수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노고단을 넘어서

모임이 끝난 후 왜관에 들릴 일이 있어서 노고단 아래를 지나는 도로를 이용하여 88고속도
로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남쪽에 내려오는 길에 여러 벗들을 만날 생각으로 승용차를 가져
왔기에 한번 노고단 길을 이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천은사를 지나 꾸불꾸불 가파르게 이어
진 산길을 타고 한참 올라갔다가 달궁을 지나 산내로 나가면 88고속도로와 만나게 됩니다.
 노고단 길은 지리산을 길게 관통하는 관광도로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남원을 거치지 않
고 지리산 동북부 지방으로 바로 나갈 수 있기 때문에 편리한 점도 있습니다. 구례에서 왜
관으로 가면서 지리산도 구경하고 시간도 절약하자는 계산을 하였기 때문에 저도 노고단 길
을 낸 사람들의 의도에 따라 그 길을 이용한 셈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이용하면서 저는 지
리산에 못할 짓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가파른 능선에 이
차선 포장도로를 만들기 위해서 산을 심하게 깍은 데다가 산길을 오르기 위해 자동차들이
많은 배기가스를 뿜을 수밖에 없으니 지리산과 그곳의 동식물들에 큰 부담이 가해질 것은
뻔한데, 그 일을 제가 거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88고속도로에서

88고속도로를 타고 가면서 새삼스럽게 느낀 것은 우리 나라 강토가 참 아름답다는 것입니
다. 독일 북부 지방에 살 때 저는 우리 나라의 산들을 그리워하곤 했습니다. 그곳에는 산이
없고 넓게 펼쳐진 농경지와 숲들이 단조롭게 차창을 지나가곤 했습니다. 잘 가꾸어진 시골
마을들이 여행자들을 기쁘게 만들기는 하지만, 우리 나라처럼 산과 골짜기, 그리고 좁게 이
어진 농경지들이 주는 자연미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을 지나며 산의
모습과 풍광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경이로운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강토가 아름답고 그 안에 깃든 식생이 다양하다 보니 이를 잘 보전하여 후손에게 제대로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아름다운 강토를 가로지
르며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것은 환경에 큰 부담을 주는 일입니다. 환경을 보
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노고단 길을 거쳐 88고속도로를 달리는 저는 환경을 파괴하
는 데 가담하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자동차는 편리한 도구이고, 잘 설계된 도로는 기동성을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자동
차가 많이 보급되기 이전만 해도 사람들은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회수가 적
었고, 그 이동속도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느렸습니다. 요즈음에는 전국을 하루
생활권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졌고 기동성이 늘어났습니다. 현대 한
국사회는 분명 기동성 사회입니다. 만일 기동성을 제거하고 사람들의 왕래속도를 옛날로 돌
린다면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어 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전국을 바둑판 모양으로 연결하는
고속도로망을 건설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대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동차가 기동성을 높이는 편리한 물건이기 때문에 형편이 닿는 사람들은 그 동안 너나할
것 없이 자동차를 마련했습니다. 전국적으로는 1천만 대 이상의 자동차가 등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산골짜기 마을에도, 시골 마을의 골목에도 자동차가 늘어서 있는 것은 이미 오래된
풍경입니다. 그러다 보니 길은 자동차로 메워지고 도로혼잡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1996
년 현재 16조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1970년이래 여객과 화물 수송 증가율이 각각 6.9 퍼센트
와 8.2 퍼센트에 달했지만 도로증가율은 2.9 퍼센트에 그쳤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
다. 여러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여기저기 논밭을 메우고 산을 깎아 도로를 뚫느라고 여념이
없는데, 도로면적이 증가하더라도 차량증가율이 그것을 넘어서면 도로혼잡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좁은 국토에 1천만대의 자동차가 달리며 온갖 혼잡을 빚고 그 와중에서 엄청난 배기가스
를 뿜어내어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을 염두에 두면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시골의 교통 문제

저 또한 자동차의 편리함을 누리고 기동성의 혜택을 보는 사람이긴 합니다마는,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독일에서 돌아올 때 저는 자건거를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시골집에서 병천 시내까지는 2.5 킬로 메타밖에 떨어져 있지 않
기 때문에 자건거로 7분 정도면 갈 수 있습니다. 걸어간다고 해도 25분이면 충분합니다. 병
천 시내에서 천안까지는 15분 간격으로 버스가 운행하고 45분 정도면 버스로 그곳에 갈 수
있습니다. 10년 전에 처음 병천에 옮겨와 살 때보다 버스 연결이 잘 되는 편입니다.
 그러나 저는 자건거로 생활하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차를 마련하지 않을 수 없
었습니다. 그것은 저녁 9시가 넘으면 천안에서 병천으로 연결되는 버스가 없기 때문입니다.
할 수 없이 몇 번 택시를 타고 들어왔지만 그 비용이 너무 컸습니다. 병천에서 일상생활을
하지 않고 여러 곳을 다니다가 늦은 시각에 집에 올 때가 많은 저로서는 다른 방법을 찾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대개 천안역 뒤 둔치에 차를 세워두고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기차를 이용합니다
만, 어떤 경우에는 이것도 여의치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한번은 전주에서 고속버스를 이용해
서 대전으로 온 다음, 대전에서 기차로 천안으로 갈 생각이었습니다. 막차로 대전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 30분 경이었습니다. 서둘러 대전역에 갔더니 그 시간에는 서울 방면으로 가
는 기차가 한 대도 없고, 자정을 한참 넘긴 뒤에야 천안으로 연결되는 기차를 이용할 수 있
었습니다. 실제로 오후 9시부터 오전 0시 30분 사이에 대전역을 발차하여 서울 방면으로 가
는 기차는 9시 45분에 떠나는 새마을호 한 대가 있을 뿐입니다. 그 새마을호는 천안역에 서
지도 않습니다. 저녁 9시가 넘으면 대전에서 다른 도시로 연결되는 교통편은 사실상 없는
셈입니다. 시외버스나 고속버스 막차가 떠난 다음 대전과 천안을 연결하는 차편은 비싼 요
금을 물어야 하는 심야 합승 택시 뿐입니다.
 이런 교통상황을 꼬치꼬치 말하는 것은 환경보전을 말하면서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까닭
을 변명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에너지 소비와 배기가스 방출을 줄여서 쾌적한 환경을 유
지하려면 승용차 사용을 줄이고 대중교통망을 활용하도록 유도하여야 할텐데 지금 우리 나
라 실정으로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이상적인 교통정책

에너지 생산이 극히 빈약하고 에너지 소비가 너무 많은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우리 나라
에서 이상적인 교통정책은 도로 이용을 최소화하고 궤도 이용을 최대화하는 것입니다. 궤도
열차는 한번에 많은 여객과 화물을 신속하게 이동시킬 수 있고, 그 운행에 들어가는 에너지
를 전기로 할 수 있기 때문에 환경에 대한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전기 생
산이 대개 화석연료나 핵에너지에 의존하고 있어서 전기가 환경친화적이라고 말할 수 없지
만, 전기를 이용한 대중교통망의 구축은 승용차와 화물차의 배기통에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
난 배기가스를 감수하는 것보다는 훨씬 환경친화적입니다.
 앞에서 말한 정부의 고속도로 연결망 구축 계획을 접하면서 저는 그것을 차라리 철도망
연결 계획으로 바꾸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제천에 갔다가 서
울로 오는 길에 원주-제천 간 고속도로 건설현장을 지나친 적이 있는데, 그 자리에 차라리
철도 복복선을 깔면 훨씬 미래지향적인 교통망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
 "미래지향적"이라는 말을 하는 까닭은 2015년 이후에 석유를 이용한 도로 교통망이 제 구
실을 못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석유가 여전히 값싸게 공급되
고 있지만, 2015년 이후에는 석유가 지금보다 훨씬 희귀한 자원이 될 공산이 큽니다. 전기나
수소를 이용한 자동차가 개발되어 실용화될 것이라고들 합니다만, 저는 지금의 고속도로에
장차 소달구지를 타고 한 고을에서 다른 고을로 여행하는 광경을 더 현실성 있게 머리에 떠
올리는 사람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크게 소용되지 않을 도로 건설에 지금 천문학적인 자
본을 투입하는 것은 재고해야 할 일입니다.
 아무튼 전기를 이용한 광역궤도교통망이 국토를 거미줄처럼 엮게 된다면 우리의 교통 문
화는 획기적으로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궤도를 놓기 어려운 산간
지역이나 도서지방을 위해서는 도로나 선박을 이용하는 대중교통 시스템을 마련하여야 하겠
지만, 지리적으로 가능한 곳에 빠짐없이 광역궤도교통망을 구축하면 물류비용과 환경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궤도선상에 있는 도시들과 읍, 면에 거점역이 세워지고,
이 거점역들을 서로 연결하는 열차들을 투입하고 그 운행회수를 늘리면 사람들이 많이 활용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거점역과 인근 마을들을 연결하는 지역궤도교통망을 구축하고 늦
은 시간에도 그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우리 나라의 교통사정은 획기적으
로 개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전주에서 천안까지 열차를 타고 오후 11시에 천안역에 내린 사람이 약 15분
가량 기다렸다가 천안역에서 병천 방면으로 가는 전차를 타고 병천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갈
수 있다면, 이 계획은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시골 거점역을 중심으로 마을순
환버스를 운영한다면 도로와 자동차 이용을 최소화하면서 궤도 중심의 교통망을 보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철도수송분담률을 2020년에 30 퍼센트대로 하는 것은 너무 적다

88고속도로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왜관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와 며칠 묵은
신문들을 읽다보니 철도청이 마련한 "21세기 한국 간선철도망" 계획에 관한 보도가 눈에 띠
었습니다. 국가 간선철도망을 구축하여 동서간, 남북간, 주요도시간 미연결구간을 신설하고,
지선 철도는 간선과 연결해서 기존의 광역 철도망을 정비, 확충한다는 야심찬 계획입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철도청이 참 좋은 계획을 수립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만 저는 정부가 기왕 철도청이 마련한 21세기 궤도교통망 확충 계획을 훨씬 확대하여 새 천
년을 내다보는 획기적인 교통정책을 수립하기를 바랍니다. 2020년에 철도의 수송분담률을
30 퍼센트대로 한다는 것은 너무 적습니다. 60 퍼센트 이상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
머지 30 퍼센트를 운하나 해운이 맡고 나머지 10 퍼센트를 도로가 맡는다면 우리 후손들에
게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는 데 더 큰 공헌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살림" 지 1999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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