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2000/04/06 (08:52) from 210.120.133.75' of 210.120.133.75' Article Number :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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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그룹의 경영실패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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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그룹의 경영실패를 보면서

강원돈

무덥고 힘들었던 지난 여름

올 여름은 지내기가 참 쉽지 않았습니다. 마른 장마가 계속되어 중부 지역의 가뭄을 걱정하
던 차에 비가 퍼붓기 시작하더니 태풍과 겹쳐 큰 물난리가 일어났습니다. 2주일 이상 계속
된 늦장마가 끝나자 이번에는 열대야가 시작되어 한 주일 내내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습니
다. 낮 최고 기온이 35도를 오르내리고 불쾌지수가 85 퍼센트를 넘어서니까 몸을 조금만 움
직여도 땀으로 멱을 감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뜰의 잔디가 무성하고 여기저기 풀이 자라
도 더위 때문에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물난리와 날씨만이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에서 자산 규모가
둘째로 큰 대우 그룹이 엄청난 부채와 운영자금 부족으로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사태의 추이와 수습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었습니다. 올 연말까지 갚아야 할 해외차
입금만해도 약 53억 달러이고 총 부채규모도 약 57조라는 말에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데다가 10일 만기도 채 안 되는 초단기여신의 규모가 약 7조원에 달한다는 말을 듣고는 어
떻게 그 지경까지 갔는지 혀를 찰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우 사태로 인해 제2의 환란이 일어
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하는 말도 들렸습니다. 물론 외환보유고가 6백 5십억 달러에 달
하고 환율이 적정수준에서 비교적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대우 사태가 곧바로 외환위기로 치
닫지는 않겠지만, 내국총생산(GDP)의 17 퍼센트를 담당해 온 거대 기업집단이 무너질 경우
국민경제와 국민생활에 미칠 파장은 엄청나게 클 것입니다.
 
대우사태와 정부개입

이와 같은 긴박한 상황에서 정부가 대우사태에 신속하고 과감하게 개입하고 나선 것은 적절
한 일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개입은 크게 보면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은행권과 제2금융권이 유동성 위기에 몰린 대우에 약 7조원의 협조융자를 할 수 있도록 분
위기를 조성하고 금융시장의 혼란을 제압하기 위해 구체적인 조치를 취한 일입니다. 또 다
른 하나는 앞으로 6개월 안에 채권단이 대우 그룹의 구조조정을 주도하여 대우 그룹의 선단
식 기업구조를 해체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8월 20일께까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채권단은 대우 그룹 계열사에 대한 워
크 아웃(기업개선작업)까지도 불사할 태세입니다. 자체적인 구조조정 능력과 자금동원능력이
있다고 해서 5대 그룹에 적용하지 않기로 하였던 이 방법마저 사용하게 되면, 대우의 구조
조정은 사실상 대우의 손을 완전히 떠나게 됩니다. 대우전자처럼 해외매각이 진행되는 몇
개 기업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워크 아웃이라는 말을 굳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대우에 남겨
진 기회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대우는 자동차 부문과 무역 부문의 6개 기업만을 남겨 놓고 나머지 28개 기업을
매각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과연 대우가 자산매각과 증자, 채권단의 부채출자전환 등을
통해 자동차 전문기업과 무역기업으로 재생하여 부채비율 200 퍼센트 내외의 소규모 기업집
단으로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인가가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정부의 신속하고 과감한 개입이 대우사태를 크게 진정시키는 데 이바지한 것은 틀림없지
만, 정부개입은 결코 공짜가 아닙니다. 정부개입은 궁극적으로 대우 사태로 인해 재무구조가
악화될 것이 뻔한 은행권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고, 이는 고스란히 국
민의 부담으로 전가될 것입니다. 만일 대우 계열사의 매각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거나
헐값으로 팔리게 되면 대우에 천문학적인 신용을 제공하였던 은행들은 더욱더 부실해질 것
이고, 국민의 부담은 더 커질 것입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일입니다.
거대재벌의 경영실패에 따른 책임과 부담이 경영진, 주주, 은행권, 대우회사채 구입자 등 이
해당사자들 사이에서 완전히 배분되지 않고, 그 부담의 일부를 결국 국민이 떠 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대우 그룹은 왜 경영에서 실패했나?

대우 그룹의 경영실패는 앞으로 여러 분야의 학문들에서 깊이있게 연구되어야 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대우 사태가 너무 엄청나서 분노로 가득찬 비난과 비판이 클 수밖에 없지만, 대
우 그룹의 경영실패를 냉정하게 다각도로 분석해서 앞으로 우리 사회가 추구하여야 할 기업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더 깊이 연구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있지만, 저는 여기서 대우 그룹의 경영실패를 보며 느낀 점을 몇 가지 말해
보고 싶습니다.
 저는 대우 그룹이 지구화된 경제의 조건들에 적응하기 위해 세계경영에 뛰어든 것을 잘못
되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대우 그룹이 초국적 기업으로서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문자
그대로 글로벌 소싱에 나서고자 한 것은 지구화 시대에 한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입니
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김우중 씨의 말은 몇 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에게 매
우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인상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습니까? 제 주변에는 초국적 기업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이 많고, 저 역시 오늘날의 국제경제질서에서 막강한 경제권력을 형성하고
있는 초국적 기업의 폐해를 극도로 경계하지만, 경제의 조건이 크게 변화된 오늘날 세계시
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업을 구축하고자 한 경영자의 야심과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고 생
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대우 그룹의 문제는 세계경영을 위해 세운 장기적인 투자계획을 과도한 차입
에 의존하여 실현하고자 한 무모함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이미 1995년경부터 유럽
의 금융분석가들에 의해 간헐적으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세계금융자본이 아직 동아시아 경
제권으로 흘러들어 올 때에는 이 문제의 심각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 지역에서 금
융자본이 급속도로 빠져나가기 시작한 1997년 이후에는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한 대우의 차
입구조는 더 악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1999년 6월 말 현재 전체 외화차입금 99억
8천만 달러 가운데 올해 안에 갚아야 할 차입금 규모가 52억8천300만 달러(53.1 %)에 달하
는 데서도 시사됩니다.
 대우 그룹이 세계시장에 내놓는 상품의 수익능력이 떨어진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넓은 세
계에는 거대 초국적 기업들의 독과점 시장을 대체하는 매우 다양한 틈새시장들이 있어서 대
우의 시장 기회가 있었고, 또한 대우는 주로 동유럽, 아프리카, 중남미 등지에 생산기지를
건설하여 효과적인 시장개척에 나섰지만, 치열한 시장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장기적
인 투자자원을 마련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것은 해외법인에서의 규모적인 차입증가
(45억 4천만 달러)와 국내 본사의 유동성 위기에서 시사됩니다.
 한 기업의 수익계획과 투자계획에서 엿보이는 이와 같은 문제점들은 경영진에 의해 정확
하게 분석되고 이 분석에 따라 의사결정이 내려져야 할 텐데, 대우 그룹에서는 이와 같은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총수의 그릇된 경영판단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가 없었
다는 뜻입니다. 한국 재벌 총수의 황제적 기업지배는 잘 알려져 있지만, 대우 그룹의 경우에
는 총수 자신이 세계경영의 일선에서 뛰어다니며 누구보다도 많은 정보를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총수의 경영판단을 평가할 입장에 있지 않았다는 말도 들립니다. 그러
나 이것은 경영진의 책임을 면제하거나 경영진을 감독할 위치에 있는 주주들의 책임을 면제
해 주는 구실일 수 없습니다.
 대우 그룹의 가장 큰 불행은 지난 날 고도성장기에 국가로부터 받았던 온갖 금융지원과
독과점 혜택을 세계경영 차원에서는 더 이상 향유할 수 없었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사기업
인 대우가 국내도 아닌 해외에서 차입을 통해 사업을 확장하는 것을 영토국가의 정부가 규
율하거나 지급보증을 해 줄 수는 없습니다. 한 거대기업의 몰락으로 인해 영토국가의 금융
질서가 무너질 때에는 정부가 어쩔 수 없이 나설 수밖에 없겠지만, 한 초국적 기업의 해외
자회사의 신용 문제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대우 그룹이 지급보증을 해서 떠안는 해외
법인의 채무 문제가 대우 사태 해결의 발목을 잡는다는 말은 이래서 나옵니다.

기업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향하여

오늘 우리 사회에서 재벌개혁은 매우 중요한 사회적 의제입니다. 지난 광복절에는 대통령이
나서서 이제까지의 재벌체제는 시장이 용인하지 않는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재벌개혁의 강력
한 의지를 분명히 밝힌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는 외환위기 직후에 합의된 재벌개혁 5개항에
더하여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재벌 계열사 사이의 순환출자 억제, 변칙 상속 및 증여
방지 등 3개항을 추가하였습니다. 이 조치들은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재벌
의 특징인 이른바 "선단식 경영체제"를 해체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총수의 기업지배
를 제도적으로 철거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조치가 나온 배경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선단식 경영체제를 해체하자면 계열사 분
리나 매각이 필요한데, 재벌은 산하 투신사를 통해 회사채를 발행해서 막대한 시중자금을
끌어 모아 도리어 계열사 통합을 공고히 해 왔습니다. 자산매각을 통해 부채를 축소시키지
않으면 기업의 수익계획과 투자계획을 달성할 수 없는데도, 기업의 핵심사업도 아니고 수익
능력도 없는 계열사를 끝끝내 끌어안으려 한 것입니다. 순환출자는 허구적인 증자를 꾀하면
서 총수의 계열사 지배수단으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주로 주식의 소유권 변경으로 나타나는
변칙 상속과 증여는 이제까지 총수 가문의 기업지배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습니
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재벌개혁을 위해 추가한 3대원칙은 완벽한 것은 아니라 해도 시의
적절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외국자본과 초국적 기업에 대항해서 싸우는 데에는 여전히 재벌체제가 필요하다고 강변하
는 사람들이 있지만, 선단식 기업연합체제를 해체시키고 총수의 경영독재를 철거하려는 정
부의 기업정책은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입니다. 선단식 기업연합체제는 이제까지 갖가지 내
부거래를 통해 공정경쟁을 문란시켜 왔고, 그것이 안고 있는 독과점 효과 때문에 신흥기업
의 시장진출을 봉쇄해 왔습니다. 규율정책의 관점에서 볼 때, 이와 같은 폐해는 더 이상 묵
과되어서는 안 되고, 해외기업의 공세를 핑계로 합리화되어서는 더더욱 안 될 것입니다.
 대우 사태의 핵심에는 기업지배구조의 기능마비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상호출자와 순환출
자로 교묘하게 위장된 총수의 소유지분에 따른 기업지배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현대경
영의 기본원리로부터 너무나도 먼 거리에 있습니다. 재벌의 소유구조 자체가 허구적인데, 바
로 이 허구적인 대주주권에 근거하여 절대적인 기업지배를 해 온 것이 온갖 병폐의 근원입
니다. 대우의 경영실패와 삼성자동차의 경영실패, 그리고 거의 모든 재벌기업들에서 나타나
는 중복 과잉투자는 재벌의 지배구조가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국민경제에 어느 만큼 악영향
을 끼치고 있는가를 생생하게 말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는 경영과 소유가 반드시 분리되고, 생산자산의 책임 있는 관
리와 운영을 위탁받는 전문경영진이 제 구실을 다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전문경
영진이 경영성과의 투명한 평가에 따라 통제되는 감독기능이 명확하게 제도화되어야 할 것
입니다.
 이와 같은 경영체제와 감독체제는 기업활동에 관련된 이해당사자들의 민주적인 참여와 견
제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조직되어야 합니다. 정부는 미래의 기업집단의 경영 및 감독체제
와 관련된 기업 지배구조 모범을 제정하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분명히 의미 있는 시도입니
다. 저는 이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데 정부의 가이드라인 제시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믿고 있
습니다. 기업지배구조는 폭넓은 사회적 논의를 거쳐 입법절차를 밟아 법제화하는 것이 바람
직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저는 앞으로 사회적 논의에 회부되어야 할 두 가지 의제를 제시하
고 싶습니다.
 하나는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주주자본주의 모델과 참여자본주의 모델을 놓고 사회적 합의
를 도출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업지배구조를 논의하는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는 사외
이사제도를 폭넓게 활용하는 변형된 주주자본주의 모델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
만, 영미식의 사외이사제도도 엄밀하게 말하면 순수 주주자본주의와 독일식 참여자본주의
모델을 절충한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모호한 절충보다는 자본소득자, 노동자, 공익
대표자 등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참여와 견제에 바탕을 둔 독일식 경영체제와 감독체제가 기
업활동의 경제적, 사회적, 공익적 본분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자본주의 모델을
배제하고 영미식 기업지배구조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 실정에 꼭 적
합한가 하는 문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지주회사 설립과 관련된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게 마련될 필요가 있습니
다. 지주회사 개념과 그 운영방식과 관련해서는 매우 다양한 견해들이 있습니다. 이제까지
지주회사에 대한 논의는 재벌의 독재를 제도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혹은 외국자본의 국
내기업 지배에 길을 열어 놓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 금기시되어 왔지만, 이 문제를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에 회부해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벌체제를 개별기
업들의 느슨한 결속체로 전환시킨다고 했을 때, 이 결속의 제도적 틀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
가 하는 문제는 기업정책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주제와 관련된 사회적 토
론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우리 실정에 맞는 기업정책이 수립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살림" 지 1999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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