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2011/01/26 (14:40) from 220.66.47.11' of 220.66.47.11'	Article Number : 283
강원돈 (kwdth@chollian.net)	Access : 13207 , Lines : 41

나의 삶, 나의 신학 이야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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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신학 4

강원돈 (한신대학교 신학과 교수)

한국신학대학에서의 신학 수업

내가 한국신학대학에서 받은 신학교육은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였다. 한국신학대학 신학과의 커리큘럼은 1970년 이 학교에 부임한 뒤에 교무과장을 역임했던 고 안병무(安炳茂) 박사의 주도로 짜여졌다. 그분은 전통적인 독일 신학부의 커리큘럼을 참고하여 교과목을 편성하였다. 그 당시 한국신학대학의 학생들은 약 50학점의 교양과목 이외에 구약학, 신약학, 조직신학과 윤리학, 교회사, 실천신학 분야에서 약 110학점의 전공과목을 이수하여야 하였다.
구약학의 경우에는 구약입문, 이스라엘 역사, 히브리어 문법, 구약개론 1과 2, 구약신학 1과 2, 구약주석 1과 2를 필수로 들어야 했고, 신약학의 경우에는 신약입문, 예수 시대사, 희랍어 문법 1과 2, 신약개론 1과 2, 신약신학 1과 2, 신약주석 1과 2를 필수로 이수해야 했다. 구약학과 신약학 분야에서 이수해야 할 전공필수 교과목만 해도 40학점에 달했고, 전공선택 교과목들도 많이 개설되었다. 구약학과 신약학 연구는 엄격한 역사적-비평적 방법에 근거하였다. 그 당시 학문적인 성서학 연구와 교육을 체계적으로 진행한 곳은 한국신학대학밖에 없었다. 그것은 김재준(金在俊) 목사의 역사적-비평적 성서연구를 둘러싸고 일어난 장로교회의 신학 논쟁과 장로교회의 분열 과정에서 교권으로부터 신학의 자유를 강력하게 주장하며 학문적인 성서학 연구를 옹호하였던 한국신학대학의 전통 때문이었다.
교회사 분야에서는 서양기독교교회사 1과 2, 서양기독교사상사, 한국교회사, 에큐메니칼 운동과 신학 같은 교과목이 필수과목으로 설치되어 있었고, 조직신학 분야에서는 교의학 방법론, 신론, 그리스도론, 성령론과 교회론이 필수과목으로, 철학과 신학의 관계를 다루는 학문이론과 신학이 선택과목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기독교윤리학 교과목들은 필수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매 학기 두 과목 이상 개설되어 선택과목으로 이수할 수 있었다.
실천신학 분야에서는 예배학, 설교학, 목회학, 상담이론, 기독교교육, 예배실연, 목회실연 등이 필수과목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이렇게 설치된 전공필수 교과목의 총 이수학점은 80학점 이상이었다. 당시 한국신학대학 학생들은 전공필수 교과목들 이외에 다양하게 개설되는 전공선택 교과목들 가운데 최소한 30학점 이상을 이수해야 했다.
학부를 다니는 동안에 나는 전공필수 교과목이 너무 많아서 전공선택 교과목을 많이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은근히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훗날 독일 유학을 하면서 독일대학교 신학부에서 더 배울 것이 없을 만큼 한국신학대학의 신학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내용도 매우 알찼다는 것을 알고서는 한국신학대학에서 신학교육을 받은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한국신학대학 교수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 당시 세계 최첨단의 신학 이론을 소화해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신학 교과서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교과서를 저술하거나 교과서로 쓸 만한 책들을 골라 번역하는 데 큰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고 박봉랑(朴鳳琅) 교수

한국신학대학에서 수학할 때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교수들이 많았지만, 박봉랑 교수는 특히 더 그랬다. 그분은 조선신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한국전쟁 직후에 미국에 유학하여 하버드대학교 신학부에서 석사학위 과정과 박사학위 과정을 이수했다. 칼 바르트의 성서론을 주제로 논문을 제출하여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 건국대학교에서 가르치다가 1970년에 한국신학대학에 부임하였다.
그분은 한국신학대학 교수로서 중등교육 교사보다 적은 박봉으로 청빈한 생활을 하면서 훌륭한 인품과 학문적 성실성으로 학생들을 사로잡았다. 신학생들은 3학년 과정에 진학한 뒤에야 비로소 박봉랑 교수의 교의학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그분의 강의는 성서의 말씀이 일점일획도 거짓이 없다고 굳게 믿었던 대다수 신학생들의 소박하지만 뜨거운 신앙이 역사적-비평적 성서 연구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질 무렵 신앙을 재정립하고 신학적 사유를 철저하게 훈련하도록 이끌었다. 그분은 교의학 방법론을 “프로레고메나”(Prolegomena)라는 라틴어로 표현하곤 하였는데, 프로레고메나의 처음 몇 시간 동안 그분은 교의학을 교회의 학문으로 규정하는 까닭을 설명하고, 교의학적 사유를 하는 사람은 교회를 비판적으로 섬기고 세상의 물결을 거슬러 배를 저으며 가는 사람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분은 이성과 계시의 관계를 규명하고, 계시의 책으로서 성서의 권위를 옹호하고, 성서 해석의 다양한 관점들과 방법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신학생들을 교의학의 세계로 능숙하게 이끌어갔다.
그분의 교의학은 칼 바르트의 신학을 기본적인 틀로 하였지만, 교리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칼빈, 슐라이에르마헤르, 바르트, 몰트만으로 이어지는 개혁교회 신학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분은 예의 칼 바르트를 위시하여 폴 틸리히, 에밀 브룬너, 디트리히 본회퍼 등 20세기 전반기의 탁월한 신학자들과 하비 콕스, 토마스 알타이저, 반 뷰렌 등의 세속화 신학자들, 판넨베르크, 몰트만, 구티에레스 등 현대의 최첨단 신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의 신학사상을 명료하게 설명하며 신학연구를 위한 훌륭한 지도를 학생들에게 쥐어 주었다. 나는 그분의 교의학 강의에 매료되었다.
나는 학부에서 박봉랑 교수의 강의를 네 과목 들었고, 대학원 과정에서는 4개의 세미나에 참여하였다. 대학원에서 박봉랑 교수는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관한 세미나를 한 번 열었고, 나머지 세 번은 모두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II의 선택론, III의 창조론, IV의 화해론을 주제로 세미나를 이끌었다.
박봉랑 교수는 논문 지도를 받는 학생들에게 칼빈이나 바르트의 텍스트를 중심으로 석사학위 논문을 쓰도록 권유하곤 하였는데, 나에게도 그런 조언을 하였다. 당시 나는 대학원장으로 봉직하던 박봉랑 교수의 조교였다. 박 교수는 나에게 두 차례나 자장면 곱빼기를 사 주면서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에 관한 논문을 쓰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그것을 끝내 거절했다. 그 당시 나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비판이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박봉랑 교수에게서는 학부와 대학원 과정에서 언제나 최고의 평점을 받았고, 나 또한 학문적 신학으로서 교의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사회철학에 관한 논문을 쓰겠다는 나의 의지가 더 강했던 것이다.

한신대 종합화 논쟁

1980년 늦가을에 나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자기반성 개념」이라는 제목의 신학석사학위 청구 논문을 제출하고 이듬해 2월에 한국신학대학 대학원 신학과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원을 졸업하자 장일조 교수는 오산에 종합대학의 형태로 설립되는 한신대학 역사철학부 조교로 일할 수 있도록 주선하였다.
한국신학대학 교수진은 1970년대 초반부터 종합대학교의 틀에서 신학을 연구하고 교육하여야 한다는 뜻을 세우고 이를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신학과와 기독교교육학과로 구성된 신학교의 틀을 갖고서는 목사후보생을 위한 전통적인 신학교육을 펼칠 수는 있겠지만, 현대의 복잡하고 다원적인 문제들에 대응하면서 기독교 진리를 탐구하여 이를 증언하고 교회의 실천을 이론적, 전문적으로 뒷받침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종합대학교 안에 신학부가 설치되어 높은 수준의 신학 연구와 신학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았다고 한다.
한국신학대학을 종합대학교로 발전시키는 종합화 계획은 고 조향록(趙香祿) 목사가 한국신학대학 학장으로 부임한 뒤에 급물살을 타고 진행되었다. 한신대 종합화 계획에 대해 교계 인사들 가운데 일부는 신학교의 정체성이 약화되지나 않을까 하고 우려하였고, 기장과 한신의 정신이 어린 수유리 캠퍼스를 포기할 수 없다는 강력한 의견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나는 한신대 종합화를 둘러싼 논쟁이 진행될 때 대학원생의 신분으로 『한국신학대학 학보』에 소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소논문에서 나는 종합대학교의 틀에서 신학을 전개한다면 성서와 전통의 해석을 통해 신학의 정체성을 확립하면서도 신학과 인접학문의 학제간 대화와 협력을 통해 우리 시대의 과제들에 투철한 생동적인 신학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학문이론적 관점에서 나는 이것이 학문적 신학을 전개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한신학원 이사회는 수유리 캠퍼스에 신학대학원을 유지하고 오산 양산리에 종합대학을 설립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1980년 말에는 박근원(朴根遠) 교수가 학장으로 선임되어 종합대학교 발전 계획을 구현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았다. 1981년 봄 학기에 한신대학은 철학과, 국사학과 등으로 구성된 역사철학부와 영문학과, 독문학과 등으로 구성된 어문학부 학생들을 받기 시작했다. 오산 양산리 캠퍼스에는 교사가 신축중이어서 1981년 봄 학기에는 현재의 오산대학 근처에 있었던 한 메리야스 공장 건물을 임시교사로 빌려서 강의를 진행하였다.
나는 이렇게 출발한 한신대학 역사철학부 조교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 내력은 이렇다. 군부독재에 강력하게 저항했던 한국신학대학을 눈엣가시로 여겼던 교육부는 몇 가지 문제를 빌미로 삼아 한국신학대학 학생 모집을 1981년부터 2년 동안 금지하는 강경한 조치를 취했다. 이로 인해 목사후보생 교육에 중대한 차질을 빚게 되자 학교 당국은 목사후보생을 일단 역사철학부로 받아들여 교양교육을 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침 신학석사 학위를 받은 내가 역사철학부 조교로 배치된 것이다.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일하기 시작하다

1981년 여름이 끝날 무렵에 나는 당시 한국신학연구소의 소장으로 일하고 있었던 고 안병무(安炳茂) 박사의 부름을 받았다. 그분은 서울의 봄이 끝난 뒤에 제2차 해직을 당하여 한국신학대학 교수직을 잃고 한국신학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한국신학연구소는 독일교회의 도움으로 안 박사가 1973년에 설립하여 운영해 온 연구소로서 1970년 중반 이래로 민중신학의 산실 역할을 하였다.
안 박사가 나를 부른 것은 한국신학연구소가 한국 신학계와 교회에 학문적 주석을 정착시키기 위해 야심차게 추진하였던 국제성서주석 시리즈의 번역 작업에 참여하도록 권고하기 위해서였다. 신학전공자로서 독일어 서적을 한글로 번역할 만한 일꾼이 희소했기 때문에 안 박사는 나의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였다. 누가 나를 그분에게 추천하였는지 모르지만, 그분은 나를 만나자마자 “아, 너구나!” 하고 반겼다.
내가 그분의 수업에 참석한 것은 1980년 봄 학기에 개설된 <예수와 오클로스> 세미나가 유일했다. 그 세미나도 1980년 5월 17일 신군부가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시키는 조치를 취하면서 끝이 났다. 계엄령 아래서 안병무 박사는 다시 해직되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 박사의 “아, 너구나!” 하는 탄성은 나를 기쁘게 했다. 왜냐하면 그 탄성은 아주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안 박사가 세미나에서 스승과 학생 사이에서 오간 학문적 대화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나는 안 박사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놓고 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시 나는 한신대학 역사철학부 조교로 일하고 있었고, 1982년 4월에는 군종장교 후보생으로 소집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교 업무와 주석 번역 가운데 어떤 일이 나를 더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가를 놓고서 깊은 생각을 한 끝에 안 박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인연을 맺기 시작한 한국신학연구소에서 나는 군종장교로 복무한 3년을 제외하고는 안병무 박사를 모시고 1992년까지 일했다.
1981년 9월 1일자로 부임한 한국신학연구소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많았다. 간사로는 김명수(현 경성대학교 신학과 교수)가 일했고, 번역실에는 이선희(현 목원대학교 신학과 조직신학 교수), 김판임(현 세종대학교 교목), 고 최미영(이화여자대학교 독문학과 출신) 등이 일했다. 그 당시 한국신학연구소는 유신독재와 신군부독재로 인해 해직되었던 학자들과 재야 학자들이 모여 학제간 대화를 통하여 민중 담론을 형성하고 민중신학을 태동시키는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한국신학연구소가 발간하는 계간지 『신학사상』은 그 당시 학문적 신학을 전개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신학전문잡지였다. 연구소에서는 신학석사 학위를 받은 미래의 학자들이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나는 한국신학연구소의 이와 같은 역할과 활동에 큰 자부심을 느꼈고, 에두아르트 슈바이처(Eduard Schweizer)의 『골로사이서』(Der Brief an die Kolosser)를 독일어에서 한국어로 옮기는 일에 집중하였다. 해군 군종장교 후보생으로 소집되기 전에 나는 이 번역 작업을 완료할 수 있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