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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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회의 도래와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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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회의 도래와 인권

강원돈 (한신대 신학과/기독교윤리)

머리말

우리 사회가 다문화·다인종 사회로 접어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에 따르면, 2009년 12월 현재 결혼이민자는 125,087명이라고 한다. 2010년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단순기능인력 외국인 노동자들의 수효는 511,160명이고, 그 수치는 외국인 취업노동자들의 92.6%에 달한다고 한다. 불법체류 외국인들까지 포함한다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인구 가운데 이주민이 차지하는 비율은 겨우 2.2%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가 다문화·다인종 사회에 산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과장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문화·다인종 사회의 도래라는 말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두 가지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하나는 우리 사회에 단일민족이나 순혈주의 의식이 워낙 강해서 사람들이 이주민들의 현존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경제의 지구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의 국경간 이주와 이질적인 문화들의 결합과 혼성이 앞으로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분명히 다문화화 과정에 있다고 보며, 우리 가운데 ‘낯선’ 사람들로서 현존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놓고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학계와 국가는 결혼이주자들이나 이주노동자들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벌이고 법제를 마련해 왔는데, 내가 보기에 다문화 사회의 도래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낯선’ 사람들의 그 ‘낯섬’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와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이주민들의 정체성과 인권에 관한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다문화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와 정부의 대응은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아래서 나는 다문화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본 다음에 다문화주의적 관점에서 이주민들의 인권 보장을 논의해 보려고 한다.

다문화 사회에 대한 정부의 대응

정부는 우리 사회가 다문화·다인종 사회로 발전할 것으로 예측하면서 2000년대 중반부터 선제적으로 법제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2006년 5월에는 “외국인정책 기본방향 및 추진체계”를 발표하여 외국인 정책의 로드맵을 마련했고, 법무부 주도로 2007년에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 2008년에 “다문화가족지원법”을 제정하였다. 이 두 가지 법률에 근거해서 정부는 “외국인정책 기본계획”(2008-2012)과 “다문화가족지원 기본계획”(2010-2014)을 각각 수립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이 두 가지 프로그램은 5년 단위로 기획되게끔 되어 있다.
2006년 이전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이주 노동자를 규율하는 노동법제가 있었을 뿐, 이주민들을 다루는 본격적인 법제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위에서 말한 두 가지 법제는 우리나라의 외국인 정책이 전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두 가지 법제는 우리나라에 이주한 외국인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획기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예컨대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은 외국인에 대한 종래의 온정주의적 접근이나 산업수요에 따른 임시방편적인 대응을 지양하고, 중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안목에서 외국인 인적 자원에 대한 전략적 개방을 통한 국가 경쟁력 강화, 질 높은 사회통합, 질서 있는 이민행정, 외국인 인권 옹호 등을 역점 사업으로 설정하고 있다. “다문화가족지원 기본계획”도 다문화가족 지원정책 추진체계 정비, 국제결혼중개관리와 입국전 검증 시스템 강화, 결혼이민자 정착지원과 자립지원 강화, 다문화가족 자녀의 건강한 성장환경 조성, 다문화에 대한 사회적 이해 향상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하여 다문화가족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입체적, 종합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나 문제는 외국인 문제에 대한 정부의 접근이 지극히 전략적 성격을 띠고 있고, 그 정책의 기조가 외국인의 사회통합에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은 외국인 인적 자원의 활용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와 외국인 사회통합을 첫째와 둘째 목표로 삼고, “다문화가족지원 기본계획”은 “국격” 향상과 사회통합을 주요 목표들로 설정하고 있다. 어찌 보면, 정부로서는 당연한 목표를 세웠다고 볼 수 있다. 기왕 우리 사회에 이주해서 살아가는 외국인들이 우리 사회에 통합되어 우리나라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외국인을 수용하고 다양하게 지원하는 우리나라의 품격을 드높이게 한다는 데 토를 달 이유가 없을 법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외국인 정책 기본계획”을 조금 더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이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외국인 사회통합과 외국인 인권 옹호가 정합적 관계에 있기보다는 길항관계에 있을 공산이 크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외국인 정책 기본계획”이 표방하고 있는 “사회통합”은 자칫 동화주의로 경사하여 이주민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이를 차별하는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일민족의 순혈주의가 강력한 우리 문화에서는 “통합”과 “동화”의 차이를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다문화가족지원 기본계획”은 “다문화가족”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가족을 꾸리지 않고 살아가는 외국인들의 요구를 애초부터 논외로 하는 한계가 있는데다가 “가족”을 매개로 한 “사회통합”이 외국인 배우자가 한국 가족주의 문화에 흡수 통합되는 것을 이상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를 불러일으킨다.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들 가운데 48% 가량이 갖가지 가정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다문화가족지원 기본계획”에 외국인 배우자의 인권 보호를 위한 프로그램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것은 큰 문제이다.
이렇게 보면, 다문화 사회의 도래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은 이주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미흡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주민들은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 동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 문화를 향유할 권리, 사회적 권리 등을 보장받아야 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존중받고 인정받을 권리, 문화간 교류를 통해 새로운 다원적, 복합적 정체성을 형성할 권리 등을 보장받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권리는 정부의 프로그램들에 나타나는 전략적 사고와 동화주의적 사고를 훨씬 뛰어넘는 다문화주의적 발상을 필요로 한다.

다문화주의에 대한 이해

외국인에 대한 한 사회와 국가의 태도는 크게 외국인 박멸, 외국인 혐오와 배척, 동화주의, 통합주의, 다문화주의 등으로 나뉘는데, 우리 역사에서 외국인 박멸을 추구했던 예는 없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 화교가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을 보면, 외국인 혐오와 배척은 매우 강했고, 지금도 그런 경향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동화주의는 공공영역에서 이주민의 정체성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이주민이 기존 사회의 규범과 제도에 순응할 것을 요구하는데, 일제가 적반하장격으로 황국신민화를 추구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강제한 창씨개명이나 일어공용화 정책 등이 동화주의의 야만성을 잘 말해 준다. 통합주의는 이주민이 그들 나름의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이주 사회에 필요불가결한 일부가 될 것을 요구하며, 동화주의 정책 아래서 이주민 폭동이 빈발했던 프랑스가 1980년대 초 이후에 도입한 개념이다. 이 경우, 통합은 각 사람이 자신을 한 그룹의 멤버로서 간주하는 능력을 획득하거나 재발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문화주의는 통합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다문화주의는 한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인종들과 문화들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사회 통합을 추구하려는 전략이다. 다문화주의를 외국인 정책의 기본 개념으로 설정한 최초의 국가는 캐나다인데, 이 나라에서 활동하는 철학자 챨스 테일러는 공동체주의적 관점에서 한 사회를 구성하는 문화적 다수집단이 문화적 소수집단을 동등한 가치 집단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정치에 관한 구상을 제시한 바 있다. 이를 가리켜 인정(認定)의 정치학이라고 하는데, 테일러는 다수 집단이 소수집단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잘못 이해한 채 소수집단을 대할 경우 소수집단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고, 소수집단의 구성원들에게는 심리적 억압과 퇴행 등 심각한 전인적 왜곡 현상이 일어난다고 강력하게 경고하였다.
공동체주의적 다문화주의자인 테일러의 견해대로 문화적 소수집단들의 정체성과 관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서 한 사회를 통합하는 것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러 난제들에 부딪칠 수 있다. 예를 들면, 일부다처제를 유지하고 있는 소수집단이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공공영역에서 보장받을 수 있는 법률적 장치를 마련하라고 요구할 경우,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문화적 소수집단 안에서 심각한 성 차별과 억압이 있는데도, 문화적 정체성의 이름으로 이를 용인해도 무방한가? 인간이 개인과 시민으로서 주장하는 권리들에 바탕을 두고 있는 자유주의적 헌정질서와 법체계는 이처럼 문화적 정체성의 이름으로 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을 유린하는 일을 결코 허락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자들, 특히 킴리카(W. Kymlicka)는 문화적 다수집단과 소수집단이 모두 근대 시민혁명 이후에 형성된 자유주의 헌법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해서 문화적 정체성을 상호간에 최대한 존중하는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유주의들의 견해는 다문화주의의 가면을 쓰고 있을 뿐, 자유주의 규범과 문화에 문화적 소수집단을 동화시켜 그들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고 지적되기도 한다. 게다가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대한 자유주의적 견해가 언제 어디서나 인정되는 보편타당한 규범일 수 없다는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공동체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빠져 들어가는 이와 같은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주의나 자유주의의 도식에서 벗어나서 문화적 다수집단과 소수집단들이 다문화주의 규범을 제정하기 위해 위르겐 하머마스적 의미의 담론공동체를 활성화하든가 샹탈 무페적 의미의 다원적이고 급진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의사소통 모델이든, 정체성의 정치이든, 자기 자신과 상대방의 정체성과 권리를 개방적으로 성찰하고, 상호간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성실하게 투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주의를 활성화하려면

다문화 사회의 도래에 대비하려면, 다문화주의에 바탕을 두고 우리 앞에 마주 서 있는 ‘낯선’ 사람들과 공생하고 상생하는 방법을 마련하여야 할 터인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단일민족의 허구를 깨뜨려야 한다.
나는 최근의 민족 논의에서 민족에 대한 실체론적 사고가 불식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널리 회자되는 단일민족, 백의민족 등의 개념들은 우리 민족이 까마득한 옛날부터 독특한 정체성을 갖고 이 땅에서 살아 왔다는 관념을 조장해서, 민족을 마치 초역사적인 실체처럼 여기게 만드는 경향이 강하지만, 그러한 의미의 민족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것이다. 세계사적으로 보면, 민족은 근대에 탄생한 개념이다. 그것은 국민 형성과 국민국가 형성이라는 근대적 과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이 “상상된” 공동체로서 탄생하였다고 말하는데, “민족은 본래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정치공동체”였다는 것이다. 다시 우리의 역사를 놓고 보면, 식민지 시대와 분단 시대를 거쳐 온 우리는 근대적 국민이나 국민국가를 아직 완성한 바 없기에 민족이나 민족 정체성이라는 개념이 우리에게 여전히 강력한 호소력을 갖고 있는 듯하다.
나는 다문화 사회를 제대로 형성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민족이나 민족주의를 상대화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성찰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대적 개념으로서의 민족이 사실상 부르주아 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국민을 지칭하였기에, 민족주의나 국민통합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세력은 많은 경우 자본과 노동, 남성과 여성, 지배 민족과 피지배 민족체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은폐해 왔다는 것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오직 민족과 민족주의를 상대화하고 그것들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취할 때, 우리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다수집단으로서 개방적으로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다. 우리와 마주 서 있는 문화적 소수집단들과 교류하면서 우리 시대에 적합한 혼종적 정체성을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그것은 문화적 소수집단들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문화들의 차이를 예민하게 인지하면서도 나와 다른 남의 그 다름을 차별의 근거로 삼지 않고 오히려 그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을 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 앞에 서 있는 낯선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들을 더 많이 인정하고 그 실현을 위해 더 많은 투쟁을 벌일 수 있다.

갈리디아서 3장의 교훈

다문화주의 모델을 뒷받침하는 성서적-신학적 모티프들은 매우 많다. 지면의 제약 때문에 이 모티프들을 충분히 살피지 못해서 아쉽다. 여기서는 다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유대인도 없고 이방인도 없고,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고, 주인도 없고 종도 없다는 갈라디아서 3장 22절의 말씀이 다문화주의에 대한 성찰을 촉진한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실현된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는 인종차별과 성차별과 계급차별이 철폐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인종, 젠더, 계급을 매개로 해서 사람들 사이에 억압과 차별과 착취를 일삼게 하는 죄의 구조들은 하나님의 정의로운 통치 아래서 파괴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성취된 하나님의 통치와 정의는 마지막 때가 오면 온 세상을 아우를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온 피조물들은 공생과 상생의 공동체를 이루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 종말론적 대망을 갖고서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땅 위에서 싸운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주로 고백하는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종적 소수자들이 억압과 차별과 배제와 착취와 권리침탈로 인하여 우는 일이 없도록 외국인 정책을 규율하고 운영하는 법제를 정비하여야 하고 교회로부터 시민사회를 거쳐 국가공동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구성원들이 다문화 형성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