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2014/10/01 (23:14) from 211.106.190.92' of 211.106.190.92' Article Number :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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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소송·가압류 조치의 어처구니없음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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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소송·가압류 조치의 어처구니없음에 관하여

강원돈 (사회윤리/한신대교수)

지난 9월 26일 한국노동법학회와 서울시립대 법학연구소는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쟁의행위와 책임’을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항해서 국가가 업무방해의 죄를 묻고 기업이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하고 가압류 절차를 밟는 일을 쟁점으로 다루었다고 한다. 국제회의에 참석한 영국, 프랑스, 독일의 학자들은 서유럽에서 파업을 업무방해로 규정하여 파업참여자들을 처벌하는 일이 없고, 기업이 나서서 파업에 따르는 손해를 배상하라고 나서는 경우 또한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나라들에서 통용되는 상식이 한국에서는 신문에 보도될 만한 가치가 있는 새로운 소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나는 노동자들의 파업을 업무방해의 죄로 다스리는 것이 정상적인 국가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지난 칼럼에서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파업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되고 이를 용인하는 판결을 내리고 그에 앞서서 채권 확보를 위해 파업참여자들의 재산, 임대보증금, 임금채권 등에 대해 가압류 조치를 취하는 것이 어처구니없는 일이고, 문명국가에서 결코 용인될 수 없는 일임을 말하고 싶다.

왜 ‘불법’ 파업이 양산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우리나라에서 모든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소송의 대상은 ‘불법’으로 규정된 파업에 뒤따르는 손해배상에 국한된다. 그러나,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노동자들의 파업의 적법성은 노동쟁의를 규율하는 법률들과 대법원 판례들이 정한 기준들에 의해 엄격하게 판단되고 있고, 이로 인해서 ‘불법’ 파업들이 양산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2001년 판례(대법원 2001. 6. 12, 2001도1012)에서 파업의 주체, 파업의 목적, 파업의 절차, 파업의 방법 등에 관한 네 가지 기준들을 세운 뒤에 줄곧 이 기준들에 따라서 파업의 정당성을 판단해 왔다. 이 네 가지 기준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는 파업은 ‘불법’이다. 다시 말하면 이 네 가지 기준들을 모두 충족시키는 파업만이 정당한 파업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이 기준들을 한번 꼼꼼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파업의 주체가 노동조합이어야 한다는 기준은 별 이의 없이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그 기준은 결사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고 조합원 자격이 노동조합에 의해 자율적으로 규정된다는 조건 아래서만 인정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두 가지 조건들이 아직 제대로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둘째, 노동자들이 합법적인 노동조합의 틀에서 파업을 결정하고 결행하기까지 지켜야 할 절차들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매우 까다롭게 규정되어 있고, 특별공익사업장의 경우에는 절차 규정으로 인하여 쟁의행위가 극도로 제한되기까지 한다. 최근에 대법원은 파업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대규모 손실을 유발하지 않을 경우 그 파업을 불법화하지 않는다는 기존 판례를 임의로 변경하여 파업의 전격성에 대한 자의적 해석에 의해 파업을 불법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기까지 했다.
 셋째, 파업의 목적을 판단하는 기준은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그 동안 대법원은 파업의 목적을 판단하는 데 매우 좁은 잣대를 들이대어 왔고, 판단의 논거들을 임의적으로 제시해 왔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대법원은 구조조정에 맞서는 파업을 ‘불법’으로 일관성 있게 판결해 왔다. 구조조정은 경영전권에서 비롯된 고도의 경영판단에 해당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파업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파업의 방법에 관련해서도 파업 지도부의 계획이나 의도와는 상관없이 파업참여자가 파업 과정 중에 범한 폭력행위 등의 하자를 빌미로 삼아 법원은 파업 전체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이런 점들을 놓고 볼 때, 노동자들의 파업이 ‘불법’으로 규정되는 것은 파업 그 자체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파업 과정을 규율하는 절차법과 대법원 판례의 옹색함, 그리고 그 절차법과 판례를 적용하는 데서 나타나는 임의성과 편파성 때문인 경우가 많다고 볼 수 있다.

파업을 노동자들의 권리 행사로 인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파업은 대한민국 헌법 제33조 1항에 의해 보장된 노동3권 가운데 하나이다. 쟁의행위는 자본측이 노사교섭에 성실하게 임하도록 강제하고 노동측의 권익을 실현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마지막으로 택하는 수단이다. 노사교섭의 자율성 원칙을 존중하는 국가라면 쟁의행위를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행사로 인정하고 그 권리행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절차 규정들을 가다듬고 그 규정들을 운용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판단하게 만드는 법률규정들과 판례들에 대해서는 그 정당성을 검토하여 수정과 변경이 필요하면 수정하거나 변경하면 될 것이다. 그것은 국가가 당연히 하여야 할 일이다. 따라서 그렇게 하지 않는 국가를 가리켜 노동자 적대적이고 자본 친화적인 계급국가로 낙인을 찍는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의 파업은 자본측에 상당한 손실을 불러일으킨다. 노사교섭에 성실하게 응하지 않고 노동자들의 권익을 부당하게 억누르면, 노동자들이 최후의 선택으로 쟁의행위에 나설 것이고, 그럴 경우 자본측은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 비용을 치루지 않으려면, 노동측과 성실하게 협의하여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에 관한 합의에 이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노사교섭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사회에서 자본측이 취하는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다. 따라서 자본측이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응해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생각을 할 까닭이 아예 없다.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전략의 계급독재적 의도

 사정이 이러한데도, 우리나라에서는 노동3권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헌법의 규범을 무력화하는 하위법들과 대법원 판례들이 별 수정이나 변경 없이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그 법률들과 판례들에 따라 무수히 많은 노동자들의 파업이 ‘불법’으로 규정된다. 자본측은 그렇게 ‘불법’으로 규정되는 파업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에 나서고 법원은 일관성 있게 자본측의 팔을 들어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법과 법의 운용과 판결을 통하여 자본이 일방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탄식이 커지는 것이다. 그 탄식에는 노동자들의 ‘불법’ 파업에 대한 자본측의 손해배상 소송이 전략적 선택이고, 그 선택에는 계급독재의 의도가 깔려 있다는 짙은 의구심이 깔려 있다.
 1994년 대구 동산의료원노조의 파업에 대하여 대법원이 노동조합과 노동조합 간부들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이래로 자본측은 주로 ‘불법’ 파업에 대응하여 손해배상청구를 하면서 채권 확보를 명분으로 노동조합비를 가압류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것은 노동조합과 간부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효과를 노린 조치였다. 그렇게 노동측을 압박하면서 자본측에 유리하도록 노사합의가 체결되면 손해배상청구를 취하하고 가압류 조치를 푸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곤 했다. 이런 점에서 손해배상소송과 가압류조치가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 전략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러나 IMF 경제관리 이후에 자본측은 많은 경우 손해배상소송을 끝까지 밀어붙여서 노동조합과 그 간부들에게 천문학적인 배상 책임을 짊어지게 하고, 그 배상을 위해 노동조합과 그 간부들의 재산, 임대보증금, 임금채권 등을 가압류하여 심리적, 경제적, 사회정치적으로 막다른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불법’ 파업에 연루된 노동조합과 그 구성원들을 완전히 파멸시키고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가입이나 쟁의행위를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게 만드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의 계급독재가 이보다 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예가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 씨의 분신 이후에 많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이에 저항해 왔다.
 이러한 계급독재의 본질은 노동권의 행사로 인한 재산권의 침해를 추호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자본측의 결의이고, 재산권 행사를 통하여 노동권 행사를 근본적으로 억압하겠다는 자본측의 전략적 선택이다. 그런데 바로 이와 같은 자본측의 결의와 전략적 선택은 대한민국 헌법의 규범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위헌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고, 바로 그 때문에 민주공화국의 정신에 반하는 태세이다.

재산권 행사는 노동권 행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23조 1항에서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여 소유권을 기본권들 가운데 하나로 인정하고, 그 내용과 한계에 대한 법률적 규정의 여지를 남겨 놓음으로써 소유권의 절대성 주장을 제한하고 있다. 또한 헌법 제23조 2항은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여 재산권 행사의 사회적 책임과 공공성을 선언하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 헌법 제23조의 두 조항은 고대 로마법의 물권 개념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소유권 유보에 관한 입법자의 의지를 인정하여 재산권 행사가 공공복리에 폭넓게 기여하도록 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의 재산권 규정은 나폴레옹 헌법의 소유권 규정을 모범으로 하고 있고, 나폴레옹 법전의 해당 규정은 프랑스 혁명 이후 채택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에 관한 선언」에서 기본권 목록에 올라간 소유의 신성불가침성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선언」에서 소유는 인간과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물질적 토대이기에 국가의 간섭과 침탈에서 벗어난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인정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소유의 신성불가침성을 생산수단에 대해서도 똑같이 인정하여야 하는가? 나는 개인의 독립과 자유를 위한 소유와 기업 활동을 위한 생산수단의 소유를 구별하고, 국가가 둘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규율하는 소유권 정책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산수단 소유의 신성불가침성을 주장하면서 그 주장에 기대어 경영전권을 정당화하려고 하는 것은 현대 경제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논리이다.
 그러면 노동권은 대한민국 헌법에서 어떻게 규정되고 있는가? 대한민국 헌법 제33조 1항은 노동자들이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선언하고 있다. 헌법 제33조의 2항과 3항이 ‘공무원’과 ‘법률이 정하는 주요방위산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노동권을 법률에 의해 따로 규율한다고 명시한 것을 보면, 헌법 제33조 1항은 이 두 범주에 속하지 않는 노동자들에게 어떤 전제조건이나 법률적 제한 없이 노동3권을 보장한 것으로 새길 수 있다. 따라서 노동3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제정되는 법률은 헌법 규범에 어긋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여러 법률 조항들이나 노동권에 관련된 대법원의 판례들의 정당성을 검토할 때에도 바로 이 헌법 규범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쟁의행위가 노사 쌍방의 이해관계의 실현을 뒤흔드는 예민한 문제이고 그 사회경제적, 정치적 파장이 크다고 할지라도, 단체행동권의 법률적 제한은 원칙적으로 용인되지 않아야 하고,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용인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의 사회권 규정의 모태가 되고 있는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 이래로 노동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포섭에 대항해서 노동을 보호하고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인정한 권리로 여겨져 왔다는 것도 기억하여야 한다. 자본측이 내세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재산권 행사를 보장하라는 요구이겠지만, 재산권 행사를 위하여 노동권 행사가 제약되거나 노동권의 헌법적 가치가 훼손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노동과 자본이 첨예한 이해관계를 보이면서도 사회적 생산을 위하여 서로 협력하도록 강제되는 시장경제에서 노동권 행사와 재산권 행사는 둘 다 존중되어야 할 권리들이다. 이 두 권리들의 본질을 제대로 해석하여 두 권리들의 상호 무질서한 침해를 배제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노동측과 자본측이 수행하여야 할 계급정치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이 계급정치와 관련해서 나는 대한민국 헌법으로부터 노동권 행사가 재산권 행사에 의해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는 계명을 도출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고발하고 저항한다

 자본은 노동의 산물이다. 자본은 노동을 통하여 삶을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인간의 도구이다. 그러나 세상은 정반대로 움직여 왔다. 자본은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하여 노동을 지배하고 인간과 자연을 무덤에 묻는 일조차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인간이 노동을 통해 삶을 꾸려가게 하셨다. 그 노동은 하나님의 축복 아래 있다. 하나님의 축복 아래 있는 노동은 보호되어야 하고, 노동하는 사람은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주체로서 존중되어야 한다. 노동의 산물은 착취와 탈취로부터 보호되어야 하고, 노동자와 그 가족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노동은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조직되어 왔지만, 시장경제에서 조직된 사회적 노동조차도 하나님의 축복 아래 있는 노동의 본래적인 규정에 어긋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노동과 자본이 서로 결합하여 사회적 생산을 하고 있는 시장경제가 자본의 노동 포섭에 근거해서 움직여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치공동체의 최고규범인 헌법은 노동3권을 자본의 지배로부터 노동을 보호하고 노동자들의 주체적 지위를 보장하고 노동자들의 권익을 실현하기 위한 장치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하면서 오늘 우리는 자본의 노동 포섭의 가장 반인간적이고 야만적인 형태를 고발하고 그것에 저항하여야 한다. 그것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정당한 이유 없이 ‘불법’ 파업으로 몰고, 그렇게 규정된 ‘불법’ 파업에 대해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고 가압류 조치를 밟는 자본측의 계급독재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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