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2014/10/19 (07:07) from 211.106.190.92' of 211.106.190.92' Article Number :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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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독교 지성인의 시대사적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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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독교 지성인의 시대사적 증언
- 손규태 선생의 『한국 개신교의 신학적-교회적 실존』을 읽고서

강원돈 (사회윤리/한신대 교수)

손규태 선생은 우리 시대의 과제들과 치열하게 대결하며 사상을 가다듬고 대안을 제시해 온 몇 분 안 되는 지성인들 가운데 한 분이다. 그분은 학문적으로는 사회윤리, 교회사, 선교학 분야에서 빛나는 업적을 쌓은 신학자이지만, 그분의 사상과 제안은 교회와 신학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우리 사회 전반을 아우르고 있기에 ‘기독교 지성인’보다는 그냥 ‘사상가’나 ‘지성인’이라는 칭호가 더 잘 어울린다. 이번에 발간된 『한국 개신교의 신학적-교회적 실존』은 그러한 손 선생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제목만 보면, 이 책은 한국 개신교의 문제들을 짚고 그 해법을 제시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손 선생은 언제나 한국 현대 사회의 문제 상황을 염두에 두고서 개신교의 문제를 제기하고 개신교 개혁과 개신교 선교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왔다. 그분은 한국 개신교의 문제와 한국 사회의 문제를 서로 떼어놓지 않고 서로 밀접한 연관 속에서 파악한다. 그것은 손 선생이 사회선교 ‘운동’과 한반도 평화·통일 ‘운동’처럼 ‘운동’에 초점을 맞추어 한국 사회와 한국 개신교를 역동적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여기서 도출되는 논리적 귀결은 문제의 해법을 모색할 때에도 사회 변혁과 교회 개혁을 연관시키는 운동적 사고를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일과 한반도 평화·통일을 이루는 일과 교회를 갱신하는 일은 그리스도인들의 운동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된다는 것이다.(233쪽 이하) 그렇기에 손 선생은 한국 개신교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 민주화와 인권, 공공성, 시민운동, 민중운동, 경제정의, 차별과 배제, 여성해방, 생태계 보전, 종교간 대화, 근대성의 문제 등 우리 사회의 첨예한 문제들을 놓고 고민하면서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신학적 능력과 선교적 능력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바로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론적 연구와 참여적 실천을 선구적으로 수행하였기에 손규태 선생은 우리 시대에 한국 사회와 한국 개신교를 이끌어가는 ‘사상가’와 ‘지성인’으로 존경을 받는 것이다.

 『한국 개신교의 신학적-교회적 실존』은 손 선생이 1980년대 말부터 올 해 상반기에 이르기까지 발표한 글들을 엄선해서 편집한 책이다. 그 글들을 읽어보면, 1980년대 후반기에 민중운동권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NL-PD 논쟁과 그 배후를 이루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론 대 주변부자본주의론 혹은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의 논쟁에서 손 선생이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를 파악할 수 있고, 한반도 분단구조의 인식과 평화·통일 방안을 둘러싼 논쟁들 가운데서 손 선생이 어떤 입장을 견지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1987년 체제’와 시민운동의 태동, 신보수주의의 확산, 경제의 지구화 과정, 지구화의 맥락에서 이루어진 IMF 경제신탁과 신자유주의 체제의 확립, 사회적 양극화와 해체, 경제정의와 공공성 확립 등 한국 사회의 시대적 현안 문제들에 대하여 손 선생이 그때그때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의견을 제시하였는가를 인식할 수 있다. 손 선생은 이와 같은 현대 한국 사회의 도전들 앞에서 한국 교회가 어떻게 대응을 할 것인가를 밝히고 있다. 따라서 『한국 개신교의 신학적-교회적 실존』은 한국 사회와 교회의 문제들을 끌어안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사유하는 한 지성인의 시대사적 증언을 담은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주 : 이 책이 갖는 시대사적 증언의 성격을 감안한다면, 이 책에 실린 두 편의 글을 제외한 나머지 글들의 발표 시점과 발표 매체가 전혀 표기되어 있지 않은 것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발표 시점과 매체에 대한 정보를 알면, 독자들이 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래 전에 쓰인 글들을 최근에 수정, 보완, 가필한 경우도 눈에 뜨인다. 그러한 글들에서는 발표 시점에 저자가 표명하였던 견해와 최근에 저자가 갖고 있는 견해의 차이가 분명히 나타나기도 한다. 그 차이가 설명되지 않고 서로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견해들이 잇대어지면, 논리가 매끄럽게 전개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시대사적 증언의 성격이 뚜렷한 글들에서 수정, 보완, 가필 부분은 각주로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손 선생은 교회사에 정통한 사회윤리학자이기에 문제가 되는 사안에 대한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접근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분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사변을 즐기지 않고, 철두철미하게 문제지향적으로 사유하고 실현가능한 대안을 모색하는 데 집중한다. 그분은 문제가 되는 현실의 역사적 맥락을 짚는 동시에 그 현실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하는 데서 논의를 시작한다. 이와 같은 역사적-체계적인 현실분석을 통해 문제가 되는 현실의 구조들과 그 배후에서 작동하는 체제논리와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면, 그 체제논리와 이데올로기를 대신하는 새로운 현실 형성의 논리와 이념을 제시하고, 그 논리와 이념을 구체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전략적으로 제안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손 선생에게서 대안적 논리와 이념의 근거는 하나님의 해방의 실천에 대한 성서적 회상과 역사적·신학적인 성찰이다. 이러한 회상과 성찰을 주축으로 해서 그는 실로 동서고금의 광범위한 신학사상들과 비판적으로 대결하면서 독자적인 신학적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나는 이 책에 실린 “오늘날 한국에서 신학함이란 무엇인가?”라는 짤막한 글이 손규태 선생의 신학적 안목과 사회윤리적 방법을 강령적으로 잘 표현하였다고 생각하지만, 그 어느 글을 읽든지 간에 독자들은 문제지향적이고 대안모색적인 손 선생의 치밀한 방법론과 신학적 담론 능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손 선생은 ‘역사적 회상규율’과 ‘미래의 전망규율’을 충실하게 따르면서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참여’하고 ‘성찰’하는 신학자의 실존을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226쪽)

(* 주 : 손규태 선생의 신학과 사회윤리학의 방법에 대해서는 졸고, “사회윤리학자로서의 손규태,” 『공공성의 윤리와 평화』, 손규태 교수 정년퇴임 기념논문집 발간위원회 편(서울 : 한국신학연구소, 2005)를 보라.)

 『한국 개신교의 신학적-교회적 실존』은 크게 4부로 이루어져 있고, 각 부는 여섯 편의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한국 개신교의 신학적-교회적 현실”에 대한 분석이고, 제2부는 “한국 개신교의 사회변혁운동”에 대한 역사적, 신학적 성찰이다. 제3부는 “한국 개신교와 세계교회 사이에서”라는 표제어가 시사하듯이 한국 개신교의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손 선생이 특별한 관심을 갖고서 타산지석으로 삼은 해외 신학의 몇 가지 담론들을 검토한 내용이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나타난 종교의 권력화 모델들에 대한 분석, 본회퍼의 신학과 윤리, 에큐메니칼 사회윤리의 ‘정의’ 담론, 포스터모더니즘과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한국적 수용 문제, 신자유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거점으로서의 마르틴 루터의 ‘자유’ 이해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제4부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개신교 운동들”을 분석하고 성찰한 글들을 망라하고 있다. 손 선생이 한국 사회의 문제 상황에서 한국 개신교의 문제들에 대하여 그 동안 집필한 스물 네 편의 글들을 따로 모아서 크게 네 가지 범주들로 분류한 것은 다방면에 걸친 손 선생의 관심사를 나름대로 잘 정리한 것 같다.

 『한국 개신교의 신학적-교회적 실존』에 실린 글들의 내용은 매우 방대하기 때문에 여기서 상세하게 소개할 겨를은 없다. 나는 단지 손 선생이 이 책에서 우리 앞에 제시하고 있는 신학적 도전들과 제안들을 몇 가지 추려보는 것으로 그칠까 한다.

 첫째, 손 선생은 한국 개신교의 신뢰성 위기를 분석하고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신학적-선교적 방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분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난 개신교인들의 이탈과 교세 위축이 개신교의 신뢰성 위기에서 비롯되었고, 그러한 신뢰성 위기가 개신교 선교의 위기와 개신교 미래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이 모든 위기들의 핵심은 한국 개신교의 신뢰성 위기이다. 이 신뢰성 위기의 심각성은 성직자들에게서 돈과 성을 둘러싸고 불거지는 추문들, 담임목사직 세습, 세상에 대해 폐쇄적인 개교회주의, 군사주의, 열광주의 등 수많은 행태들의 목록을 보면 생생하게 감지된다. 그러나 손 선생은 그 목록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신교가 신뢰성 위기를 위기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잃은 것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분석했다.(88쪽) 개신교가 그렇게 된 것은 성서와 복음, 개신교 신학으로부터 벗어나 자본주의, 경쟁주의, 승리주의 등, 한 마디로, 맘몬주의에 포섭되고 그것을 신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신학적 변절은 한국 개신교 일각이 미국 메가처치 운동의 교회성장론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급속하게 진행되었는데, 손 선생은 이 과정에서 한국 개신교가 전통적인 보수주의로부터 신보수주의로 이행하였다는 점을 동시에 강조한다. 그렇게 되면 맘몬주의에 포획된 한국 개신교 일각이 신보수주의적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치세력화를 불사하는 일마저 벌어진다. 그것은 한국 개신교 일각이 맘몬주의와 신보수주의를 매개로 해서 형성되는 거대한 보수 동맹 체제의 굳건한 축으로 나타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니, 이 체제를 극복해야 비로소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한국 개신교를 맘몬주의와 신보수주의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은 교회를 교회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보다 인간적이고 연대적인 사회로 만들어가기 위해 수행하여야 할 가장 중요한 신학적 과제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손 선생은 하나님 나라 운동에 매진하면서 미래 교회를 새롭게 형성함으로써 한국 개신교의 신뢰성 위기를 극복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데,(77쪽) 나는 한국 개신교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구체적인 논의를 펼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손 선생은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이 정체성 위기에 직면하였다고 진단한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구심점 구실을 해 왔던 NCCK는 1990년대 중반 이래로 재정 위기를 탈피하기 위해 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적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신학적 고민 없이 회원교회를 확대하고 정관 개정을 통해 회원 교단의 재정 기여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회장단을 선출하는 조치를 취했다. 손 선생은 이러한 과정이 ‘교회 일치와 협력’의 이름으로 진행되었지만 회원 교회의 확대가 교회들의 진정한 사귐을 이루지 못했고, 본래 의도하였던 재정 문제의 해결에도 기여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체성 위기에 빠져든 NCCK가 한국 사회와 교회의 개혁을 위해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30쪽 이하) 손 선생은 이와 같은 NCCK의 정체성 위기와 역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원칙 없는 타협주의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실천적 그리스도교’에 뿌리를 둔 에큐메니칼 시회선교 전통을 회복할 것을 강력하게 제안한다. 나는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의 재건에 관한 손 선생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제10차 WCC 부산 총회 이후의 에큐메니칼 운동 상황에서 더 전진된 논의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손 선생은 우리 시대에 교회가 시민사회 영역에서 국가와 시장을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을 제안한다. 종교개혁 이래로 교회는 국가와 교회의 관계의 틀에서 공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는데,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 사이에 공론의 장이 형성되어 발전해 온 이래로 교회의 공공성 위임에 대한 이해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분은 ‘1987년 체제’가 들어선 이래로 우리 사회에서도 시민사회 영역이 활성화되어 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서 교회도 시민사회의 영역에서 공적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국가와 시장을 견제하면서 공공성을 구현하고자 하는 시민사회에서 교회가 공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는 것이다.(208쪽 이하) 그분은 교회가 시민사회에서 공적인 입장을 표명할 때 실업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농민들, 노숙자들, 외국인 노동자들, 외국인 창녀들, 한 마디로 우리 시대의 작은 사람들의 처지와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231쪽) 나는 이와 같은 손 선생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교회의 공공성 위임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고 교회가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속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넷째, 손 선생은 한국 개신교의 미래 과제가 하나님 나라의 공공성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천명하고, 한국 개신교가 추구하는 공공성은 모든 사람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보장하는 연대의 원칙과 권력을 갖고서 남을 섬기는 봉사의 원칙에 바탕을 둔다고 강조한다. 그분은 노동의 양과 무관하게 노동자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지급한 포도원 주인의 비유와 세배대오의 두 아들들에게 섬김의 리더십을 제시한 예수의 가르침을 해석하면서 이 두 가지 원칙을 가다듬는다.(77쪽 이하) 이 두 가지 원칙들을 동시에 구현하는 사회는 자유와 사회적 연대가 서로 상충되지 않고 서로 보완하는 사회일 것이다. 손 선생은 권력에 의한 자의적인 지배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시민들이 사회적 연대를 통하여 누구나 생활상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사회에 대한 구상이 한갓 유토피아적인 구상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실천되기 시작한 정치적 기획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민주사회주의, 사회민주의, 사회적 시장경제 등의 이름으로 나타나는 역사적 제도들 속에 그러한 정치적 기획이 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343쪽) 나는 하나님 나라의 공공성을 구현하는 방안에 관련된 손 선생의 구상을 깊이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경제민주주의와 복지의 실현이 절실한 우리 사회에서 이 구상은 큰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다인종, 다민족 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에서는 지구적 시민권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고, 노동생산성이 고도화되는 생산 조건들 아래서는 기본소득과 소유의 공공성 등에 대해 더욱 더 개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공공성을 구현하는 원칙들에 대해서는 더욱 더 치밀한 연구와 토론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손 선생은 민족대단결의 원칙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가장 중시되어야 할 원칙이라고 본다. 한반도의 분단과 민족 분단은 우리 민족이 근대 국가 형성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달성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성취하는 것은 우리 민족이 추구하여야 할 큰 과제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제를 강조하기 때문에 손 선생은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콜로니얼리즘에 대한 논의를 잘 알고 있는 학자이면서도 ‘민족’을 부차화하는 담론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민족은 ‘가장 공고하고 항구적인 생명집단’이라는 것이다.(372쪽) 민중신학자들은 민족이 실체화됨으로써 민중이 오랫동안 망각되었다고 지적하고 민중의 주체성을 신학적 담론의 핵심으로 삼았는데, 손 선생은 이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395쪽 이하) 물론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련해서 남과 북의 민족공조를 강조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남과 북이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성취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서 서로 협력하지 않는 한, 한국전쟁의 뒤처리, 북미간 평화조약과 관계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 남북한 통일 과정 등은 시도조차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적 사유를 할 때에도, 국민국가 형성과 확립 과정에서 ‘민족’ 개념이 계급 문제, 인종 문제, 젠더 문제 등을 억누르는 ‘덮개’의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계급, 인종, 젠더 문제를 개방적으로 다룰 수 있는 민족 담론을 형성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논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과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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