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2015/08/24 (10:35) from 211.106.190.92' of 211.106.190.92' Article Number :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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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대타협기구의 구성은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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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대타협기구의 구성은 왜 필요한가?

강원돈 (민중신학과 사회윤리/한신대교수)

최근 해고요건 완화, 청년 일자리 창출, 임금피크제 도입 등 노동시장 개편을 위해 사회적 대타협을 하자는 목소리가 주로 정부와 경영계를 중심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노동측은 청년 일자리 창출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이에 연동하여 해고요건 완화와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추진하는 것을 경계하거나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 알다시피, 오늘의 노동시장은 위기에 처했다. 청년 실업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청년들의 실질 실업률이 20%에 이르렀다는 비공식적인 통계가 나돌고 있지만, 청년들의 구직 포기나 상급학교 진학을 빌미로 한 구직 연기, ‘알바’로 지칭되는 불안정 고용 상태를 감안한다면, 청년 일자리 문제는 우리 사회를 폭파시킬 수 있는 시한폭탄의 뇌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 더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0%를 넘나들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정과 저소득 문제는 우리 사회의 스캔들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최근에는 은퇴 연령이 상향 조정되면서 취업절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신규 인력의 취업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한다면, 노동시장 정책을 새롭게 수립하기 위해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여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자는 목소리가 설득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정부와 경영계는 기왕 법제화되어 있는 노사정위원회를 가동하여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하면서 노동측의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노총도 노사정위원회 복귀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아주 분명하다. 그것은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부와 경영계가 한 통속이 되어 노동측을 압박하는 구도가 고착되었기 때문이다. 노사정위원회의 판이 노동측에 불리하도록 기울어져 있는 것이다. 요즈음에는 정부가 노사정위원회의 의제와 심의 기간까지 못을 박고, 이에 불만을 품은 노동측이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하지 않자 정부가 입법에 나서서 노동시장을 개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까지 한다. 이것은 노동시장 개편처럼 노동과 자본의 타협이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이슈를 놓고 정부가 취해서는 안 되는 태도이다.
 오늘의 한국 사회처럼 경제성장 동력의 약화와 노동시장의 위기가 겹칠 경우에는 노동과 자본이 타협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과 자본이 타협을 하려면 서로 양보를 해야 하는데, 그 양보가 가져오는 손실을 보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면 타협은 당연히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되면 노동과 자본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무릅쓰면서 갈등과 대립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에 정부는 타협에 나서고자 하는 쌍방의 손실을 보전하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여 타협을 촉진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예를 들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자본측에 세제혜택이나 규제완화 혜택을 제공하고, 임금을 양보하는 노동측에 고용안정성을 강화하고 사회보장 혜택을 향상시키는 조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는 재정운영을 혁신하고 재정을 확대하기 위한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여야 한다. 사회적 타협의 전통이 강한 나라들에서 노사정위원회는 대체로 이런 방식으로 가동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노사정위원회는 정부가 경영계의 편을 들어 노동측을 억압하고 자본의 논리를 관철하는 기구로 정착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 인정될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정부가 중립적 입장에서 노동과 자본의 타협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노사정위원회를 운영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인데,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을 내팽개치고 자본친화적인 정책들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로서는 그렇게 하려는 의지가 눈꼽만큼도 없을 것이다. 노동이 자본에 굴복하여 자본과 타협하지 않으면 국가가 자본 편에 서서 입법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지 않은가? 노사정위원회는 박근혜 정부가 특유의 노동시장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호명하는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나는 사회적 대타협 기구로서 노사정위원회를 부정하고 별도의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이미 분석한 바와 같이, 자본측에 유리하도록 판이 기울어진 노사정위원회에 노동측이 참여하여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노사정위원회가 제도권에 포섭된 사회세력들만을 대변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제활동 포기자들, 청년 실업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자영업자들, 외국인노동자들, 가정주부들, 매매춘 종사자들 같은 불법 노동자들, 열정은 있으되 소득 기회가 거의 없는 예술가들 등등을 대변하는 사회세력들은 거의 조직되어 있지 않고, 설사 조직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조직들을 위해 노사정위원회에 마련된 자리는 없다. 바로 그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모순들과 문제들을 가장 날카롭게 지적할 수 있고, 그 해법들도 가장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제도권에 편입되어 있는 사회세력들만이 아니라 제도권의 경계나 그 외부에 있는 사람들도 참여하여 노동시장 정책을 위시하여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논의하고 해결책을 찾는 사회적 대타협 기구를 구성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작은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편들고 그들을 억압과 수탈과 차별과 배제와 주변화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그분의 정의를 구현시킨다. 교회는 하나님의 정의가 어떤 맥락에서 탄생하고 실현되어 갔는가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정의에서 비롯되는 요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공동체이다. 그러한 교회는 오늘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다. 교회가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작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목소리를 내는 사회적 대타협 기구의 구성에 찬성한다면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일 것이다. 그 기구의 구성이 하나님의 정의를 우리 사회에서 구현하는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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