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2016/03/01 (12:28) from 211.106.190.92' of 211.106.190.92' Article Number :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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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X의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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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X의 자서전

강원돈(한신대 교수/사회윤리)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70년대 중후반은 유신독재가 극에 치닫고 있던 때였다. 그 당시 유신헌법을 비판하거나 개정을 요구하는 일은 엄금되었고, 이에 관한 의견 표명이나 시위나 집회에 나선 사람들은 체포되어 중형을 선고받았고, 이에 관련된 사건들을 보도하거나 전달하는 행위도 처벌받았다. 한 마디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들은 압살되고, 한국 민주주의는 죽었다. 유신독재 체제에서 가장 큰 희생을 당했던 사람들은 노동자, 농민을 위시한 민중이었다. 1979년의 YH 여공 사건에서 보듯이 민중의 노동권과 생존권은 철저하게 유린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심적인 학생들과 지식인들은 민주화와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 싸웠고, 민중 속으로 들어가 민중과 더불어 유신독재를 극복하고자 했다. 말콤 X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말콤 X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사람들이나 미국의 인권 운동을 관심 있게 살펴본 사람들을 통해 한국 사회에 소개되기 시작했고, 1978년 김종철 씨(현재 『녹색평론』 발행인)와 몇 사람들이 The Autobiography of Malcom X (1965)를 함께 번역하여 『말콤 엑스』라는 제목으로 창작과비평사에서 출판하게 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읽혀지기 시작했다.

 1970년대의 저항적 지식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유독 미국인들이 많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더 철저한 성찰이 필요한 일이었겠으나, 그렇게 된 까닭은 한국의 현대사가 미국의 강력한 영향 아래 있었고, 미국이 민주주의와 인권 선진국이라는 환상이 한국 지식인들에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미국인들 가운데 특기할 만한 인물들은 풀뿌리 민중운동을 조직하고 실천한 알린스키(Saul D. Alinsky, 1909. 1. 30- 1972. 6.12), 1960년대 미국에서 흑인 시민권 운동을 벌였던 마르틴 루터 킹 2세(Martin Luther King Jr., 1929. 1. 15 – 1968. 4. 4), 흑인 회교 운동을 통해 흑인해방과 민중해방을 동시에 추구한 말콤 X(1925. 5.19 – 1965. 2. 21) 등이었다.
 알린스키는 밑바닥 주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운동의 룰(rule)과 운동가의 덕목을 가르쳤고,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밑바닥 민중 속으로 들어가 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에게 빛나는 귀감이 되었다. 마르틴 루터 킹 2세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감동적인 연설과 더불어 민주주의 질서 속에서 흑인과 백인의 통합을 추구한 위대한 인물로 기억되었다. 암살로 끝난 그의 비극적인 죽음도 많은 사람들에게 오랜 울림을 주는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그런데 말콤 X는 마르틴 루터 킹 2세와 같은 대중적 호감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뭔가 이질적이고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공격적인 인상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아마 그것은 말콤 X가 한국 사회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슬람 운동의 지도자인데다가 그가 밑바닥 흑인 슬럼에서 범죄를 일삼으며 성장한 특이한 이력을 가졌고, 흑인해방 운동을 펼치면서 흑인이 하나님의 참 자녀들이고 백인은 하나님에게 대적하는 악마라는 기상천외한 이분법적 구호와 흑인 분리주의를 서슴없이 내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말콤 X의 극적인 삶과 과격한 언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그를 불온하게 보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말콤 X가 왜 그런 주장을 펼쳤고, 그가 이룩하고자 한 새로운 사회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가 성장하면서 흑인 문제의 본질을 어떻게 인식하였는가를 알아야 하고, 언뜻 보기에 극단적이기 짝이 없는 그의 언사가 어떤 담론적 효과를 갖는가를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그가 남긴 연설이나 자서전적인 기록을 꼼꼼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말콤 X는 굉장한 입담을 보이는 연설 이외에 직접 기록으로 남긴 문헌이 없다. 말콤 X는 직접 자서전을 쓰지도 않았다. 우리가 그의 자서전이라고 알고 있는 『말콤 엑스』는 그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알렉스 헤일리(Alex Haley)가 말콤 X와 인터뷰를 해서 얻은 자료들에 근거하여 재구성한 작품이다. 알렉스 헤일리는 말콤 X가 독자들을 향해 스스로 말하게 하는 효과를 발휘하도록 말콤 X의 자서전을 썼다고 주장한다. 많은 학자들은 그 작품이 말콤 X와 알렉스 헤일리의 공동작업(collaboration)이라고 평가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러나 헤일리가 그 자신의 관점과 관심과 의도를 갖고서 말콤 X의 자서전적 진술을 가공하고 편집하고 재구성하였다는 것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알렉스 헤일리가 재구성한 말콤 X의 자서전을 읽음으로써 말콤에게서 삶의 체험과 사상의 형성이 날줄과 씨줄처럼 서로 교차하며 영향력 있는 담론을 이루어가고 있음을 또렷하게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자서전은 말콤이 흑인해방과 인류해방을 동시에 실현하고자 하는 위대한 비전을 갖고서 인종차별과 계급차별의 족쇄를 깨뜨리는 운동을 펼쳐나가기 위해 불굴의 의지를 불태웠음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그 자서전을 읽는 독자는 말콤 X가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 미국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들을 인식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고, 흑인의 자존감 회복이 미국 사회의 총체적인 변혁을 요구한다는 것을 또렷하게 감지할 것이다.
 말콤 X는 침례교 순회 설교자였던 아버지 얼 리틀(Earl Little)과 백인의 피가 섞인 어머니 루이스 노턴(Louise Norton)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얼은 범아프리카주의자였던 마커스 가비(Marcus Garby)의 추종자였고, 그가 세운 만국흑인진보연합(Universal Negro Improvement Association, UNIA)에 가입하여 간부로 활동하였다. 만국흑인진보연합은 흑인들이 자존심을 갖고 스스로 존중할 것을 강조하였는데, 이 가르침은 아버지를 통해 말콤에게 각인되었다. 아버지 얼은 밝은 피부를 갖고 있었던 말콤을 다른 형제들보다 더 좋아하였지만, 어머니 루이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말콤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것은 어머니가 백인에게 강간당한 여인의 딸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말콤은 백인의 흔적이 남아있는 피부 색깔로 인한 갈등 때문에 자신의 몸에 흐르는 백인의 피를 극도로 증오하였다.
 말콤의 가족은 백인인종주의 폭력집단인 쿠 클룩스 클란(Ku Klux Klan)의 박해를 받았고, 그들이 살던 집은 불탔다. 말콤이 네 살이었던 1929년 아버지 얼은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그 충격으로 인해 어머니 루이스는 1937년 법원의 명령에 의해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결국, 말콤의 형제자매들은 자선기관들과 다른 집에 의탁되는 신세로 전락하여 뿔뿔이 흩어졌다. 자선기관의 주선으로 백인가정에 의탁되었던 말콤은 8학년이 될 때까지만 해도 총명하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었고, 학생 대표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흑인으로서는 변호사 같은 사회 지도층의 지위에 오를 수 없고 육체노동자나 하급 서비스직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깊은 좌절감과 절망에 빠져 학교를 중퇴하고 만다. 그는 누이가 살던 보스턴을 거쳐 뉴욕 할렘에 흘러들어가 철도판매원, 가게점원, 구두닦이 등 밑바닥 직업을 전전하였고, 절도, 뚜쟁이, 도박, 마약밀매 등 범죄행각을 벌였다. 1946년 그는 조직범죄 집단의 일원으로 강도짓에 나섰다가 체포되었고, 불과 20세의 초범인데도 징역 10년형에 처해졌다. 말콤이 뉴욕 할렘에서 겪었던 밑바닥 삶과 범죄행각은 인종차별과 가난의 질곡에 매여 살았던 슬럼 지역의 대다수 흑인들의 삶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예였으며, 따라서 그는 흑인들에게 가해지는 인종차별과 가난의 구조적인 모순을 온 몸으로 체험하였다고 볼 수 있다.
 감옥에서 말콤은 ‘사탄’이라고 불릴 만큼 난폭하였으나 동료 죄수의 감화를 받고 독서에 매진하기 시작하였다. 교도소에 수감되고 2년이 지났을 때 말콤은 형제들로부터 ‘이슬람 국민’(Nation of Islam)이라는 회교 운동 단체와 그 가르침을 소개받고 마침내 ‘이슬람 국민’의 지도자 엘리야 무하마드(Elija Mahammad)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엘리야 무하마드는 흑인들이 알라의 참 자녀들이고 백인들은 알라에게 맞서는 악마들인데, 흑인들은 악마의 흉계로 인해 오랫동안 노예생활을 하였다고 가르쳤다. 이 가르침은 어린 말콤에게 각인되어 있었던 흑인의 자의식과 자존감을 일깨워주었고, 흑인들이 스스로 열등한 종족이어서 백인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오랜 세뇌의 결과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이슬람 국민’에 접하기 시작했던 무렵 말콤은 죄수의 교화를 위해 실험적으로 운영되었던 매사추세츠 주의 노포크 교도소로 이감되었고, 많은 장서를 구비한 교도소 도서관에서 엄청난 양의 독서에 몰두하였다. 흑인으로서의 명료한 자기의식을 갖고서 흑인 문제의 본질을 천착하기 시작한 말콤은 역사, 철학, 종교, 인류학, 유전학 등 광범위한 주제들을 섭렵하였다. 그는 동시에 ‘이슬람 국민’의 헌신적인 추종자가 되었고 서신 교환을 통해 엘리야 무하마드와 지속적으로 교제하였다.
 1952년 가석방으로 출소한 말콤은 리틀이라는 성을 버렸다. 그것은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부여한 멸시적인 성을 더 이상 쓰지 않겠다는 결의였다. 그 대신 말콤은 X라는 성을 쓰기 시작했다. X는 자신이 아프리카 선조의 후예이지만, 그 선조의 이름을 알 수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기호였다. 엘리야 무하마드는 수감 생활을 하면서 ‘이슬람 국민’의 가르침을 체화한 말콤을 그 운동조직의 지도자로 인정하고 그에게 교구 사역을 맡겼다. 이렇게 해서 ‘이슬람 국민’의 헌신적인 지도자인 말콤 X가 태어난 것이다. 그는 1952년부터 1964년까지 ‘이슬람 국민’의 지도자요 대변자로서 흑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백인들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흑인들의 국가를 설립하여야 한다는 분리주의 노선을 주장하였으며, 백인들의 지배와 착취와 배제와 차별에 맞서기 위해서는 폭력에 호소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것은 백인들과 흑인들이 함께 공동체를 이룩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마르틴 루터 킹 2세의 통합주의적이고 비폭력주의적인 운동 노선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1964년 말콤 X는 성추문에 휩싸인 엘리야 무하마드와 결별하고, 그의 지도 아래서 교조주의적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이슬람 국민’을 탈퇴하였다. 그는 이슬람 수니파의 한 조직인 무슬림 모스크 인코퍼레이티드(Muslim Mosque Incorporated)와 범(汎) 아프리카주의 운동 단체인 아프로-아메리칸 통일기구(Organization of Afro-American Unity)를 창립하였다. 그는 ‘이슬람 국민’을 탈퇴한 뒤에 메카를 순례하고, 아랍연합공화국, 수단, 나이지리아, 가나 등을 방문하였으며, 이러한 여행을 통해 인종차별과 제국주의가 서로 별개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통찰에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미국에서 흑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 민주주의의 틀에서 시민의 권리들을 쟁취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흑인들이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들을 쟁취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흑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지구적 차원에서 서로 유기적 결합을 맺고 있는 인종차별과 제국주의를 분쇄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 말콤 X가 1965년 2월 암살되기 직전에 도달한 인식이었다. 따라서 미국 흑인해방운동은 제국주의의 맞서 투쟁하는 제3세계 민중해방운동과 연대하여야 한다. 이러한 인식에 도달한 말콤 X는 더 이상 흑인들과 백인들의 분리 장벽을 세워서 흑인들만의 공화국을 수립하여야 한다는 ‘이슬람 국민’의 교조적 분리주의 노선에 머물 수 없었다. 그는 지구적 차원에서 인정차별과 제국주의의 공고한 동맹을 해체함으로써 흑인들과 백인들 모두 인간으로서 권리들을 보장받는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세워야 한다는 위대한 비전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말콤 X의 심오한 통찰과 위대한 비전은 오늘 더욱더 절실하다. 자본의 전면적 지배가 실현되고 있는 지구화 과정에서 인간의 권리들이 철저하게 짓밟히고, 인종차별이 드세 지고 있기 때문이다. 말콤 X의 자서전은 오늘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영감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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