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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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라이문트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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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라이문트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강원돈(한신대 신학과 교수/사회윤리)

 칼 라이문트 포퍼(Karl Raimund Popper)는 20세기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철학자였고, 바로 그러한 인물로서 1970년대 한국 지식인 사회에 소개되었다. 그는 이미 1930년대부터 한편으로 파시즘을 예리하게 비판하였고, 또 다른 한편으로 볼세비즘을 철저하게 비판하였다. 한 마디로, 그는 자기 안에 폐쇄되어 있는 전체주의적인 사고방식과 정치체제를 뿌리로부터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다원주의적 세계를 옹호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포퍼의 정치철학은 1945년에 출판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유신독재 시절에 금서로 낙인찍혔다. 유신독재 체제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반공과 안보를 국시로 삼아 다른 의견을 용인하지 않는 전체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었기에 포퍼의 책은 체제를 보위하는 세력에게는 불온한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반공을 국시로 하는 나라에서 마르크스주의와 볼세비즘을 나름대로 비판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던 포퍼의 책을 금서로 정했다는 것이 얼른 납득되지 않지만, 유신 독재 체제는 그러한 포퍼의 자유주의마저도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반동적이고 퇴행적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일단 금서목록에 올라간 책은 반드시 읽고야 만다고 생각했던 저항적인 학생들은 아직 한글로 번역되지도 않은 포퍼의 책을 복사본으로 돌려 읽고 토론을 하곤 했다. 금서에는 세상의 독선과 편견을 뒤집어엎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을 깨뜨리는 불온한 사상이 담겼으리라는 기대가 그렇게 이끌었을 것이고, 또 유신체제가 금서로 규정한 책을 일부러 찾아 읽음으로써 그 체제를 거역하며 살아간다는 지사연(志士然)하는 태도가 포퍼의 책을 탐독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포퍼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포퍼는 1902년 빈에서 변호사였던 아버지 지몬 지그문트 칼 포퍼와 어머니 예니 포퍼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모두 개신교로 개종한 유대인이었고, 특히 어머니의 가문은 예술가들과 학자들을 배출한 명문 가문이었다. 포퍼가 대학에서 공부할 때 빈은 정치적 좌파의 지배 아래 있었고, 그 자신도 사회주의 청년운동에 참여하고 심지어 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공산주의 혁명을 재촉하기 위하여 당원들을 해방투쟁에 몰아넣고 무모하게 희생시키는 공산당의 경직된 노선에 실망하고 등을 돌렸다.     
 포퍼는 1928년 「사유심리학의 방법 문제」라는 논문을 제출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1930년대에는 모리츠 슐리크(Moritz Schlick), 루돌프 카르납(Rudolf Carnap), 오토 노위라트(Otto Neurath) 등을 중심으로 실증주의를 논리적으로 첨예하게 발전시킨 빈 학파에 참여하여 과학적 탐구의 방법론을 천착했다. 그 연구 성과는 1934년에 발간된 『탐구의 논리』에 담겼다. 이러한 과학적 사유의 논리에 근거하여 포퍼는 1936년에 역사의 진보와 예측 가능성을 주장하는 역사주의를 비판하는 일련의 원고들을 발표했다. 이 원고들 가운데 보존된 일부가 1944년과 1945년에 『역사주의의 빈곤』이라는 팜플렛으로 발간되었고 1957년에 책자로 발행되었다.
 히틀러가 집권을 하고 유대인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서자 1935년과 1936년에 포퍼는 잉글랜드를 거쳐 덴마크로 피신하였고, 1937년 마침내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로 망명하였다. 그는 아내만을 대동하고 떠났을 뿐, 가족과 병든 어머니, 누이, 삼촌, 조카들을 빈에 남겨 둘 수밖에 없었다. 빈에 남은 가족들은 강제수용소에 끌려가 참혹하게 학살당했다.
 1946년 포퍼는 프리드리히 폰 하이예크(Friedrich von Hayek)의 주선으로 런던 정경대학 교수직을 제안받고 런던으로 와서 객원교수로 일하기 시작했고, 1949년에는 ‘논리학과 과학방법론’ 정교수직에 취임했다. 그는 한스 알버트(Hans Albert)와 더불어 비판적 합리주의를 발전시켰으며, 1961년 독일사회학대회에서 변증법에 입각한 비판이론을 비판하는 「사회과학의 논리」라는 유명한 주제 강연을 발표하여 실증주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1965년 포퍼는 브리튼연합왕국의 엘리자벳 2세에게서 기사 작위를 하사받았고, 1969년 대학교수직에서 은퇴하였다. 그는 은퇴 이후에도 정치와 종교 등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며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쳤고, 1994년 런던에서 사망하였다.
 포퍼가 쓴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포퍼가 발전시킨 과학적 탐구의 논리를 어느 정도 파악할 필요가 있다. 포퍼는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의 논리적 실증주의의 문제의식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비판적으로 넘어서고자 했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적이고 실증적으로 검증될 수 없는 것은 진리가 아니고 따라서 언술될 수 없다는 엄격한 입장을 취했다. “언술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여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명제는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형이상학으로부터 과학을 분리시켜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포퍼는 형이상학과 구분되는 과학의 탐구 논리를 더욱 더 치밀하게 가다듬고자 했다. 과학적 탐구는 실험과 귀납의 방법에 따라 전개되는데, 실험과 귀납의 방법을 이끌어가는 논리는 비트겐슈타인의 검증원리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과학적 탐구는 반증가능성의 원리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포퍼의 새로운 착상이었다. “모든 백조는 희다.”는 보편명제의 진리는 검증될 수 없다. 그러나 한 마리 한 마리의 백조를 살피다가 희지 않은 백조를 발견한다면, 그 사례는 “모든 백조는 희다.”는 보편명제의 진리를 허위로 간주하게 만들 것이다. 이것이 반증원리의 가장 단순한 예이다. 실험의 경우는 어떤가? 실험의 결과를 기록한 명제의 진리는 같은 실험을 반복하여 얻은 결과에 의해 뒤집어지지 않을 때까지만 진리로 인정될 뿐, 그 이후에 계속된 실험의 결과에 배치될 때에는 그 진리가 반증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반중원리이다. 반증원리는 두 가지를 전제한다. 하나는 인간의 지식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이 언제든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지식은 어디까지나 가설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 가설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고, 무너지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이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은 독단이다. 진리는 오직 실험과 논증을 통하여 오류의 가능성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오류가 나타날 때에는 이를 수정함으로써 비로소 접근가능하다. 인간은 절대적으로 확실한 진리를 소유할 수 없고,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비판을 통해 독단으로부터 벗어나 진리를 지향할 수 있을 뿐이다. 포퍼는 이렇게 진리를 추구하는 입장을 비판적 합리주의라고 지칭했다.
 과학적 탐구의 논리로 무장한 포퍼는 서구 지성계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전체주의적인 독단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바로 이것이 『역사주의의 빈곤』에서 포퍼가 하고자 한 작업이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전체주의적 독단에 사로잡힌 파시즘과 볼세비즘이 다원주의적인 자유주의 사회를 파괴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러한 전체주의적 독단의 밑바닥에 역사주의가 도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포퍼가 말하는 역사주의는 “역사적 예측을 주된 목적으로 하고, 역사진보의 밑바닥에 있는 규칙적인 흐름, 패턴, 법칙이나 경향을 발견함으로써 그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사회과학의 한 접근법”이다. 그는 이러한 방법론이 ‘사회적 유기체의 전체’ 혹은 ‘한 시대의 모든 사회적, 역사적 사건’을 나타내는 사회의 상태가 존재한다는 독단에서 출발한다고 분석하고, 그러한 총체로서의 사회 개념은 파악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런 안목에서 본다면, 사회와 역사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성립될 수 없다. 인간이 사회와 역사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시행착오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사회와 역사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시행착오를 통해 인간 사회에 자생적 질서가 형성되도록 하고, 미시적인 조정을 통해 사회개혁을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사회공학이 사회과학자들에게 맡겨진 과제가 된다는 것이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역사주의의 빈곤』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그 논리도 동일하다.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열린 사회’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열린 사회’는 ‘닫힌 사회’와 정반대되는 사회이다. ‘닫힌 사회’는 전체주의적 체제이며, 그 특징은 한 사회의 총체적 구상을 고정된 개념의 틀이나 사상의 틀 위에 세우는 것이다. 포퍼는 이러한 총체적 구상의 가능성을 일축하고, 끊임없이 개선을 시도하고 오류를 수정하는 과정을 통하여 다원적으로 진화하는 사회의 가능성을 옹호했다. 바로 그러한 사회가 ‘열린 사회’이다. 포퍼는 플라톤과 헤겔과 마르크스를 이와 같은 ‘열린 사회’의 적들로 지목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체주의적 체제들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2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 포퍼는 플라톤의 방법론적 전체주의를 비판하고, 2부에서는 헤겔과 마르크스를 비판한다. 포퍼에 따르면, 플라톤은 “모든 철학자들 가운데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심오하고 가장 독창적인 철학자”로 칭송받고 있지만, 그는 독단을 경계하고 비판과 계몽을 중시한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배반하고 아테네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철인왕의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옹호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플라톤은 전체주의 국가의 기본모델을 제시하고, 엘리트 독재가 지배하고 비폭력적인 변화의 가능성이 사라진 ‘닫힌 사회’의 첫 옹호자가 되었다. 플라톤은 계급과 인종을 차별하고 강제수용소의 설치를 제안한 최초의 정치 이데올로그였다.
 2부에서 포퍼는 헤겔이 프로이쎈의 국가권력을 옹호한 반동적인 변증가로서 프로이쎈 전체주의 체제를 철학적으로 옹호하였다고 비난했다. 헤겔은 변증법적 사유에 따라 권위주의적인 프로이쎈이 자유의 최고 실현자라고 간주하고 이를 찬양하였는데, 포퍼는 이러한 헤겔을 가리켜 철학적 야바위꾼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마르크스도 포퍼의 비판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물론 포퍼는 마르크스를 후대의 통속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구별하고, 그가 중요한 경제학자와 사회학자였음을 인정했다. 또한 마르크스가 혁명만이 공산주의에 이르는 길이라는 통념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다는 것도 평가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헤겔에게서 차용한 변증법을 무기로 삼고, 토대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는 결정론적인 역사관에 고착됨으로써 ‘닫힌’ 세계상에 이르게 되었다고 포퍼는 보았다. 마르크스가 역사주의의 환상에 사로잡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자본주의 붕괴와 사회주의 도래의 필연성을 주장한 것은 오류라는 것이다.
포퍼는 과학적 탐구의 논리에 기대어 비판적 합리주의를 발전시키고 점진적 사회개혁을 옹호하는 사회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다원주의적인 자유주의 사회의 옹호자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의 학문이론과 사회이론은 비판의 표적이 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Adorno),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같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가들은 변증법적 관점에서 포퍼의 실증주의적 이론을 비판하고, 과학적 탐구의 논리를 역사와 사회에 적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를 학문이론적으로 물었다.
포퍼의 과학적 탐구의 논리와 자유주의는 루드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등에게 깊은 영향을 주어 신자유주의 이론을 체계화하는 데 이바지했다.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인간의 지식이 한계가 있어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논리에 근거하여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시장경제를 강력하게 옹호하였다. 루드비히 폰 미제스의 이론을 수용한 프리드리히 폰 하이예크는 시장주체들의 시행착오를 통해 시장질서가 저절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국가의 시장 개입은 원칙적으로 불필요하다는 신자유주의 이론을 첨예하게 가다듬었다. 포퍼의 탁월한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조지 소로스(George Soros)는 지구적 금융시장에서 헤지펀드를 운영하여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다. 포퍼의 업적을 검토할 때에는 이런 점들을 감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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