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2016/03/19 (23:18) from 211.106.190.92' of 211.106.190.92' Article Number :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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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그라스, 『양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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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돈(한신대 교수/사회윤리)

 나는 한때 문학청년이었다. 중학교 때에는 학교 백일장에서 “만추”라는 수필을 써서 장원을 하였고, 고등학교 때에는 문예반장으로 활동하면서 1학년 때에는 “침묵과 위선”이라는 소설로 학교에서 제정한 문학상을 받았다. 그러니 문학작품을 읽고 친구들과 토론을 하고, 특히 여러 고등학교 문예반 학생들로 꾸려진 ‘서우회’(書友會)에 가서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그 당시 나에게는 삶의 일부분이었다. 『현대문학』, 『문학사상』, 『시문학』,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등의 문예지들을 정기적으로 사서 읽었고,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뿐만 아니라 한글로 번역된 외국 작가들의 작품들도 꽤나 읽었다. 괴테, 쉴러, 횔데를린, 하인리히 하이네, 마리아 라이너 릴케, 토마스 만, 한스 카로싸, 헤르만 헤쎄, 베르톨트 브레히트, 루이제 린저, 하인리히 뵐 등 독일 작가들의 작품들도 접했는데, 하이네, 헤쎄, 린저 등의 글을 제외하면 독일 시와 소설, 희곡은 딱딱한 느낌이 많이 들었고, 그 내용이 생경해서 읽기가 쉽지 않았다. 아마 그것은 그 당시 내가 독일 역사와 문화, 독일 사회와 정치, 그리고 특히 독일적 사고방식에 아직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귄터 글라스의 『양철북』은 기상천외한 발상과 그로테스크한 상황 설정과 묘사로 가득 차 있어서 그 소설을 읽는 것 자체가 충격의 연속이었고,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는 내가 읽은 책의 내용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래서 『양철북』은 오랫동안 나의 배에 묵직하게 불편을 주는 작품으로 남아 있었다.
 이러한 소화 불량 증세는 폴커 슐뢴도르프(Volker Schlöndorff)가 감독하여 제작한 영화 「양철북」(1979년 작)을 보면서 다소 풀렸다. 단 한 장의 사진이나 삽화조차 없이 오직 문장들로 이어진 소설을 읽을 때 그려내기 힘들었던 단치히와 그 주변 지역의 풍광, 독일 소시민들의 생활상, 나치 독일의 흥분과 파괴 등을 시각적 이미지들로 접하니 소설의 내용을 더 실감나게 음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감독이 의도적으로 선택한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이 소설 『양철북』에 대한 기억을 다시 편집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양철북』은 어떤 줄거리의 소설인가? 소설을 읽고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 각 사람은 그 내용과 줄거리를 제각기 다르게 재구성할 것이다. 나는 세 살 때 성장을 멈추기로 결심하였지만 날카로운 지성을 갖춘 94cm 키의 오스카가 낮은 자리에서 나치 광기에 휩쓸려 들어간 독일 소시민들의 속물성을 폭로하는 것이 이 작품의 한 코드이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다시 성장하기 시작하여 121cm의 난쟁이 꼽추가 된 오스카의 모습을 통해 나치 범죄와 그것에 동조한 독일인들이 과거를 철저하게 청산하지 못한 것을 고발하는 것이 이 소설의 또 다른 코드라고 생각한다.    
 『양철북』에서 오스카는 1인칭 화자로서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회상하고 있다. 그 회상은 독일 현대사의 소용돌이와 겹친다. 소설은 오스카의 회상 순서에 따라 3부로 구성된다. 제1부는 나치의 등장과정에서 오스카가 겪은 것에 대한 회상이고, 제2부는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의 몰락 과정에서 오스카가 겪은 끔찍한 일들에 대한 기억이고, 제3부는 전후 사회에서 오스카가 경험한 것에 대한 회고이다.
 소설의 첫 시작은 정신병원에 수용된 30세의 오스카가 자신의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회상록을 쓰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인 1899년 외할머니가 겪은 일을 이야기하는 것으로부터 회상록을 써내려간다. 그 때 외할머니는 감자밭에서 일하던 중에 한 도망자를 네 겹의 치마 속에 숨겨 주는데, 기괴하게도 그 도망자와 외할머니 사이에서 오스카의 어머니 아녜스가 태어난다.
 그 아녜스와 한 사내 사이에서 오스카가 태어나는데, 그 사내가 오스카의 법률상의 아버지인 알프레드 마첼라트인지 어머니의 사촌이요 정부인 얀 브론스키인지는 알 수 없다. 오스카는 태내에서 두 사내가 어머니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인지했고, 얀 브론스키가 자신의 친부임을 확신한다. 『양철북』의 작가 귄터 그라스는 이처럼 장차 태어날 아이 오스카에게 특별한 인지능력을 부여함으로써 소설의 전개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문학적 장치를 해 놓았다. 심지어 오스카는 태어날 때 이미 완전한 성인의 인식능력을 갖춘 것으로 작가는 설정한다.
 오스카가 태어난 곳은 단치히이고, 오스카의 아버지 알프레드는 단치히 교외에서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오스카가 세 살이 되었을 때 그는 성장을 멈추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렇게 결심한 까닭은 한편으로는 자신이 성장해 보았자 아버지 알프레드처럼 장사꾼이 될 수밖에 없는 데 대해 저항하고자 했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어머니 아녜스와 얀 브론스키의 추잡한 불륜 행위를 보고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일부러 지하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서 그가 마음먹은 대로 성장을 멈추고 세 살배기 아이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러한 오스카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부여된다. 날카로운 고성으로 소리를 지르면 먼 곳에 떨어진 유리창까지도 산산조각을 낼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이다. 오스카는 세 살 생일 선물로 받은 양철북을 북채로 두드리면서 거리를 돌아다니고 때때로 고성을 질러 사람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든다. 그에게서 양철북을 뺏으려는 어른들에게 오스카는 고성을 무기로 삼아 저항한다. 이쯤 되면 귄터 그라스가 소설의 주인공 오스카에게 부여한 특별한 신체 조건과 능력들이 무엇을 겨냥한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스카는 세 살배기 아이의 낮은 키 높이에서 성인의 날카로운 눈초리와 인지능력을 갖고서 속물근성에 물들어 있는 소시민들의 삶을 관찰하고 그들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이기주의와 순응주의, 그리고 성적 퇴폐와 집착을 비판하고 거기에 저항한다. 오스카의 고성에 유리창이 산산조각으로 깨지는 괴기한 장면은 단단하게 굳어 있는 듯이 보이는 틀 속에서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일상이 파열되고 붕괴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알레고리일 것이다.
 나치가 집권한 뒤에 독일 사회는 폭력과 선동으로 구축된 전체주의적 체제로 변모한다. 그 체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점차 폭력적으로 변하고, 소시민들의 삶은 점점 더 천박해지고 야비해진다. 그러한 나치 독일 사회에서 오스카는 그로테스크한 일들을 연속적으로 경험한다. 그 그로테스크한 일들의 압권은 뱀장어 사건일 것이다. 1937년 수난절 금요일 오후에 오스카는 부모와 함께 바닷가에서 뱀장어를 잡는 광경을 구경한다. 뱀장어 잡이들은 뱀장어를 잡기 위해 죽은 말의 머리를 바다에 던져두었다. 그들이 건져 올린 말머리에서는 뱀장어들이 우글거리며 기어 나온다. 아버지 알프레드는 그 뱀장어들을 감자자루에 담는데, 그것을 본 어머니 아녜스는 먹은 것을 몽땅 토하고 만다. 집으로 돌아온 알프레드는 그 뱀장어를 요리해서 그것에 질색하는 아녜스에게 억지로 먹인다. 그녀는 알프레드를 피해 방으로 들어가 피아노를 미친 듯이 치다가 그 방에 들어온 얀 브론스키와 성애를 나눈다. 그런 뒤에 그녀는 뱀장어 요리를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한다. 뱀장어가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아녜스가 뱀장어 요리에 대해 취했던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분명하다. 그녀는 알프레드의 성적 폭력에 저항하고 얀 브론스키와 나누는 불륜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생선을 너무 많이 먹은 나머지 황달에 걸려 죽는데, 아마도 그것은 전체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사회에서 불륜이 주는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아녜스가 자살을 선택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 알프레드는 오스카가 사랑하는 마리아를 점원으로 고용했다가 그녀와 재혼한다. 아버지는 오스카에게서 사랑의 상대를 빼앗아가는 폭군으로 등장한다. 그 폭군은 나치당원이 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더 명확하게 드러낸다.
 어머니가 얀 브론스키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죽은 뒤에 오스카는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연속적으로 겪는다. 얀 브론스키는 폴란드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나치에 죽임을 당했고, 나치당원이었던 아버지 알프레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소련군 병사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것은 오스카가 고의로 땅에 떨어뜨린 나치 흉장을 소련군 병사가 발견하고 그 흉장의 소유자가 알프레드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오스카는 소련군 병사를 이용하여 부친살해를 감행했고, 아버지의 죽음은 나치의 패망을 상징한다. 그렇게 살해당한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오스카는 자신의 양철북과 북채를 아버지의 관 속에 집어넣고 다시 성장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그는 단치히를 떠나 뒤쎌도르프로 와서 암거래가 판을 치는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그는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하고 싶지만 더 이상 고성을 질러 유리를 깨는 기이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그가 마지막으로 붙잡은 도구는 양철북인데, 양철북을 치며 돌아다니기도 전에 그는 어처구니없는 일로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고 마침내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그가 회고록을 집필하고 있는 곳이 바로 그 정신병원이다. 그의 키는 121cm에서 성장이 멈추었고, 그의 등은 굽어서 꼽추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귄터 그라스는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의 시선을 빌려 자신이 겪은 나치 시대의 소시민 세계를 묘사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그는 오스카처럼 양철북을 치며 나치 시대에 권위주의에 순응하는 소시민들을 조롱하고, 날카로운 괴성으로 그 소시민들의 세계를 깨뜨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오스카가 겪은 그로테스크한 일들을 상세하게 묘사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구역질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자신이 겪은 나치 시대를 고발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리고 121cm의 키에서 성장이 멈춘 채 꼽추가 된 오스카의 형상을 통하여 전후 독일 사회가 나치 시대의 잔재를 철저하게 청산하지 못한 채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날카롭게 고발하고자 했을 것이다.
 1927년 단치히에서 태어난 귄터 그라스는 나치 독일의 범죄와 그것에 순응한 독일 사회를 직시하면서 독일이 나아가야 할 길을 찾기 위해 고뇌한 위대한 지성인이었고, 그 고뇌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여 일가를 이룬 대문호였다. 귄터 그라스가 전후에 새로운 문학 운동을 표방한 47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집필한 『양철북』은 독일 문제의 핵심을 명료하게 드러낸 걸작이다. 그는 2015년 죽을 때까지 바로 이 독일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 들어갔다. 그는 독일 문제를 언제나 염두에 두면서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인간의 권리들과 특히 양심의 자유, 인종차별, 제국주의, 전쟁과 평화, 이스라엘 문제, 대량살상 무기의 배치 등 전후 독일 사회가 직면한 첨예한 이슈들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밝히고 행동하는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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