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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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국가의 헌정질서와 교회의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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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국가의 헌정질서와 교회의 공공성

강원돈

 서양사에서 세속국가는 교회의 영적 지배나 후견으로부터 국가가 해방하는 과정을 통하여 탄생되었고, 그 과정은 많은 경우 기존체제의 혁명적 변화를 동반하였다. 정치의 종교화와 종교의 정치화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근대세계에서 세속국가는 세계관적 중립성을 표방하였고, 세속국가의 헌정질서에 바탕을 둔 공론의 장은 세계관적 중립성의 계명 아래서 토론과 동의의 원칙에 따라 작동하게 되었다.
 아래서는 이러한 과정을 역사적으로 간략하게 살피고 세속국가의 헌정질서에서 교회가 공론의 장에 참여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본다.

I. 세속국가의 형성과정

 서양의 역사에서 세속국가는 종교와 정치의 동맹관계를 해체하고 종교로부터 정치가 해방되는 오랜 과정의 산물이었다.

 1. 로마제국에서 종교와 정치는 강고한 동맹관계를 맺고 있었다. 기독교인들의 종교는 오랜 시절 간헐적인 박해의 대상이었지만, 313년에 기독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로마의 한 종교로 공인되었고, 마침내 380년에는 데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로마의 국교가 되었다. 기독교는 하나의 제국, 하나의 황제, 하나의 종교로 이루어지는 권력 삼위일체의 필요 불가결한 구성 부분이 되었으며, 로마 제국에서 정치적 종교로 자리를 잡았다.
 기독교가 하나의 제국과 하나의 황제를 뒷받침하는 하나의 종교여야 한다면, 기독교의 교리적 통일과 교회적 일치는 기독교가 제국 종교의 위상과 성격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콘스탄티누스가 삼위일체 논쟁과 도나티스트 논쟁에 직접 개입하여 교리의 제정과 교회 치리에 주도권을 행사한 데서 잘 드러난다. 종교 내부의 일에 개입하여 종교의 정치화를 가속화시키는 데 대한 대가로서 콘스탄티누스와 그 후계자들이 교회에 제공한 특전은 실로 엄청났다. 일요일의 주일(主日) 제정, 성직자들의 공공의무 면제, 교회를 위한 재산 증여 제도의 확립, 교회의 안전 보장, 황제의 하사금 등은 그러한 특권들 가운데 일부였다.
 이렇게 해서 성립된 콘스탄틴적 기독교는 서양 기독교의 역사에서 교회와 국가의 헤게모니 동맹을 대표했다. 중세 가톨릭교회는 교황권과 황제권이 수위권을 서로 다투기는 하였지만, 콘스탄틴적 기독교의 한 전형적인 형태였다. 콘스탄틴적 기독교는 프랑스 혁명 이후에 벌어진 국가의 세속화로 인해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고, 1917년 러시아 차르 체제가 붕괴되고 1918년 독일 황제제국이 궤멸하면서 종식되었다.

 2. 마르틴 루터의 두 정부론은 황제권에 대한 교황권의 수위를 확립한 중세 가톨릭교회의 쌍검론(雙劍論)을 비판적으로 극복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세속국가의 주권과 자율성을 옹호하는 것을 그 골자로 하고 있었다. 루터는 하나님이 국가를 다스리는 자에게만 칼을 맡기고 율법에 따라 질서를 지키고 정의와 평화를 수립하기 위해 그 칼을 쓰도록 허락했다고 못을 박음으로써 가톨릭교회의 쌍검론을 무효화하였다. 루터는 통치자가 이성에 따라 율법을 현실에 적용하고 통치영역에 속한 모든 사람들을 칼로써 다스린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로써 그는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는 일에 관한 한 세속국가의 우위성을 인정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루터가 쌍검론을 비판했다고 해서 그가 곧바로 콘스탄틴적 기독교의 잔재로부터 벗어나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신성로마제국에서 종교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영방군주들과 귀족들의 정치적 지원과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신성로마제국과 영방국가에서 갖가지 방법으로 부를 수탈하는 교황청에 대항해서 세속군주가 말하고 싶은 것을 명료한 언어로 정식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세속군주들이 양심과 신앙의 문제에 개입하는 데 대해서는 분명한 선을 그었지만, 가톨릭교회에 맞서서 교회를 개혁하는 데 영주들의 힘을 끌어들이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이것이 만인사제직 주장의 정치적 배경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교회개혁은 사제들에게 맡겨진 일만이 아니다. 사제들과 평신도들이 모두 교회개혁의 주체이다. 이 점에서 모든 신자들은 사제들이다. 만인사제직은 여러 측면에서 해석될 여지가 있으나, 영주의 힘을 빌어 교회개혁을 추진하고자 하는 루터의 전략적 언어였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루터는 농민전쟁이 종식된 뒤에 영주가 교회의 수장(summa episcopa)이 되는 영방교회 제도를 용인하였다. 어떤 점에서 이것은 영주가 영지와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린다는 게르만 관습에 충실한 방식으로 영방 차원의 국교 제도를 확립하는 조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영방교회 제도는 1555년에 체결된 아욱스부르크 종교화의에 명시되었다. 아욱스부르크 종교화의는 영주가 다스리는 곳의 신민은 영주의 종교를 따른다는 원칙(cuius regio, eius religio)에 따라 가톨릭교회와 루터교의 관계를 규율하고자 했고, 이로써 제단과 왕관은 다시 밀접하게 결합되었다.

 3. 국가와 교회의 분리라는 근대사회의 요구가 실현되기 시작한 것은 유럽 사람들이 30년 전쟁(1618-1648) 같은 종교전쟁의 참혹성과 비참을 겪은 이후였다. 30년 전쟁은 종교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수립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영토의 변경이나 현상의 변경을 추구하는 국가들의 전쟁에 종교가 동원된 측면이 강했다.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은 아욱스부르크 종교화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가톨릭교회, 루터교, 개혁교회의 관계를 규율하고, 국가가 종교에 간섭하지 않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삼았다. 근대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체결된 1648년의 평화조약은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교회의 해방이라는 의미의 정교분리를 규정한 최초의 국제법이었다.
 베스트팔렌 조약이 국가로부터 교회의 해방을 목표로 하였다면,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은 왕과 귀족과 성직자의 동맹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구체제를 타도하였고, 국가의 세속화에 박차를 가했다. 교회가 국가의 일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고, 평신도 주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교회의 지배구조를 개혁하고, 교회와 성직자의 토지를 몰수하여 교회의 물적 기반을 파괴하는 등 교회에 부여한 광범위한 특권을 박탈한 것 등이 그 단적인 예이다.
 국교 금지와 정교분리 원칙은 근대 국가의 헌법에 명기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최초의 사례는 미국 수정헌법이다. 국교 금지와 정교분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르주아 국가들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도 채택되었으며, 근대 국가 구성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헌법 제20조 1항과 2항에 이를 명시하고 있다.

II. 세속국가에서 정교분리 원칙과 공론의 작동방식

 세속국가에서 종교와 정치, 교회와 국가는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고, 세계관이 다원적으로 존재하는 세속국가에서는 세계관적 중립성의 계명 아래서 공론을 형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래서는 이 점을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본다.

 1.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쳐서 국가의 세속화와 종교의 탈국교화를 실현한 근대 세속 국가의 헌법은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의사표현의 자유, 집회와 시위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과 같은 자유권적 기본권들의 목록에 넣어두고 있다. 이러한 자유권적 기본권들은 국가가 성립되기 이전에 부여된 신성불가침한 권리이기에 국가에 의해 침해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국가 권력의 행사가 이 기본권들 앞에서 멈추도록 국가권력 자체를 제한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종교의 자유가 이러한 자유권적 기본권들 가운데 하나로 인정됨으로써 정교분리는 무엇보다도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종교의 자유를 의미하게 되었다.

 2. 세속국가에서 정교분리의 헌정 원리는 국가 권력의 정당성이 교회에 의해 부여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전제한다. 권력신수설은 인민주권론으로 대체되었다. 국가권력이 적법 절차에 따라 인민의 직접 참여나 대리인의 파견에 의해 구성되면, 그것은 정당하게 구성된 것으로 인정된다. 이것이 국가의 세계관적 중립성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기반이다. 다양한 세계관들이 병존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세계관적 중립은 세계관을 달리 하는 집단들 사이의 평화를 유지하고 증진하는 효과적인 전략으로 자리를 잡는다. 세속국가의 형성과 발전 과정에서 국민의식이나 국민감정 등의 요소들이 작용하고, 이해관계들의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서로 대립하는 세력들의 이데올로기들이 충돌하기 마련이지만, 세속국가에서 세계관의 효과는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다. 세속국가에서 헌정질서의 정당성과 그 운영의 적합성에 대한 판단은 궁극적으로 시민적 동의에 기반을 둔다. 이것이 공화주의적 입법과 법치의 기본 원칙이다. 이러한 원칙은 멀리는 그리스와 로마의 공화주의 전통에서도 확인되지만, 근대에 들어와서는 칸트에 의해 명료하게 정식화되었고, 우리 시대에는 롤즈와 하버마스에 의해 대변되고 있다.

III. 세속국가에서 교회의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

 정교분리를 기본적인 헌정질서로 삼고 있는 세속국가에서 교회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어떻게 공론화할 수 있을까?

 1. 정교분리를 헌정질서의 한 축으로 삼고 있는 세속국가는 세계관적 중립성을 표방하고 있지만, 세속국가 안에 있는 교회는 국가에 대한 파수꾼의 역할을 수행하고 세계를 형성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하여야 한다는 공적인 임무를 면제받지 않았다. 정교분리는 정치적 목적으로 종교를 이용하거나 종교에 간섭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세워진 원칙이고, 종교가 정치권력에 기대어 특권적 지위를 향유하는 것을 배척하는 원칙이지, 종교인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세계를 형성하는 데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이 아니다.

 2. 그렇다면, 교회는 세속국가의 틀에서 세상의 일과 정치에 대한 의견을 어떻게 표명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세속국가가 교회의 세계관적 주장에 근거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보장받을 필요가 없는 한, 교회가 국가신학을 제시하거나 정치의 신학화를 모색할 필요는 없다. 그러한 시도는 시대착오적이다. 교회가 세속국가에서 여전히 세상을 향해 공적인 의견을 표명하여야 한다면, 교회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 의사표현의 자유, 집회와 시위의 자유, 결사의 자유 같은 세속국가의 헌정 원칙에 기반을 둔 공론의 장에 참여해서 세상의 문제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혀야 할 것이다. 교회가 공론의 장에서 유념할 것은 네 가지이다.

 첫째, 교회의 공적인 의견 표현과 교회의 세계관적 주장의 추상 수준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둘의 관계는 빙산에 비유할 수 있다. 세상의 수면 위에 떠오르는 것은 빙산의 일각인 교회의 공적인 의견일 뿐이고, 그 의견의 세계관적 근거는 수면 아래의 거대한 빙괴를 이룬다. 교회의 세계관적 주장은 세속적인 공론의 장에서는 낯선 언어이다. 그 낯섬 때문에 교회의 세계관적 주장을 감출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교회의 공적인 의견을 뒷받침하는 교회의 세계관적 주장은 설사 정교한 신학적 언어로 가다듬어진다고 해도 세상이 그 논리적 구성과 전개를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내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교회의 공적인 의견은 어디까지나 세상에서 의사소통이 가능한 담론의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논거들의 뒷받침을 받아야 하고, 오직 논증을 통하여 그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것은 세상의 공론이 공개적인 논증을 통한 정당화를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교회의 공적인 의견을 뒷받침하는 신학적 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도 그 논거들은 의사소통이 가능한 추상 수준에서 생활세계의 언어로 제시되는 것이 마땅하다.

 셋째, 교회는 공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억압과 불평등을 지적할 수 있는 집단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여야 한다. 교회는 주변화되고 배제되어 있는 사회집단의 요구가 무시되거나 망각되지 않도록 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여야 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과 억압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본격적으로 비판하여야 한다.

 넷째, 교회의 공적인 의견은 세상의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을 초과하는 전망을 열어젖힐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궁극적인 것을 바라보지만, 세상은 궁극 이전의 것에 속한다. 세상은 궁극적인 것을 구현할 수 없고, 그것을 지향할 뿐이다. 교회는 궁극적인 것을 향해 가는 도정에서 이정표를 제시하고, 비교급의 윤리를 말하고, 전망을 가진 현실주의를 표방한다. 오직 그렇게 할 경우에만 세상이 궁극적인 것을 향해 투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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