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2018/10/27 (23:11) from 221.158.115.144' of 221.158.115.144' Article Number :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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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을 말하기는 아직 너무 이르다
‘촛불혁명’을 말하기는 아직 너무 이르다

강원돈(한신대 교수/사회윤리와 민중신학)

지난 2016년 말과 2017년 3월에 벌어진 촛불 집회를 가리켜 흔히들 ‘촛불혁명’이라고 말하고, 그 뒤에 세워진 문재인 정부를 ‘촛불정부’로 일컫곤 합니다. 국정농단의 화신으로 여겨졌던 박근혜를 대통령직에서 해임하고, 대통령 보궐 선거를 통하여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과정은 극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사태 전개를 두고 ‘혁명’을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촛불집회는 체제를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제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1987년의 헌정체제입니다. 흔히 ‘87년 체제’라고 줄여 말하는 이 체제는 반공분단국가에서 지역주의를 매개로 해서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을 형성하도록 한 기본 틀이었고, 민중운동은 고사하고 시민사회운동이 제도권 정치에 진출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차단해서 제도권 정치와 시민정치를 분리시키는 불안정한 체제였습니다.
 박근혜는 87년 체제의 틀에서 탄핵의 절차를 통하여 대통령직에서 해임되었습니다. 헌법 규정에 따라 질서 있게 해임당한 것입니다. 박근혜 해임 이후에 87년 체제는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고 작동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2016년 말과 2017년 초의 촛불집회는 딱 거기까지 요구한 것 같습니다. 박근혜 하야 요구와 퇴진 압력이 2016년 11월 말에 박근혜 탄핵 요구로 전환하면서 촛불 군중은 87년 헌정 질서의 틀에 포박당했고, 민중생존권 보장을 위시해서 현실의 급진적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촛불집회에서 주변으로 밀려났습니다.
 촛불집회의 영향 아래서 치러진 대통령 보궐 선거에서 사람을 중심에 놓겠다고 하는 문재인 후보가 선출되어 자유주의적 정부가 들어선 것은 물론 우리 헌정사에서 빛나는 성과임이 분명합니다. 남북한 관계의 변화와 한반도 평화 기회의 증진은 박근혜 정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그 일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엄청난 일입니다.
 그러나 87년 체제는 온존하고 있습니다. 87년 체제를 변화시키려는 개헌은 철저하게 실패했습니다. 87년 체제에서 정치적 기득권을 차지한 정파들은 집권 여당을 제외하고는 개헌을 향해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발의한 개헌안은 의회에서 완전히 무시당했습니다. 개헌을 추동하는 시민사회의 동력도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관련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개헌 논의가 시민과 민중의 참여를 전제하지 않고 국회나 청와대를 중심으로 해서 졸속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지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87년 헌정질서에 포박되어 대통령 탄핵에서 멈춘 촛불 군중이 정작 체제의 변화를 절실한 과제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도 짚어야 합니다. 촛불집회가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하고 정권 교체의 기회를 마련하였지만, 촛불집회를 가리켜 ‘촛불 혁명’이라는 수사를 쓰기 어려운 한 가지 이유가 여기 있을 것입니다.
 촛불집회는 87년 체제의 기득권 정치를 흔들지 못했습니다. 촛불집회 이후에도 기득권 정파들은 약간의 이합집산을 거쳤을 뿐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간판을 바꾼 극히 보수적인 정파는 의회권력의 한 축을 형성하면서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당에서 야당으로 역할이 바뀐 데서 오는 극도의 상실감에 사로잡혀서 몽니에 가까운 정치 행태를 보이고 있고,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시도나 사회적 자유주의 노선에 따른 개혁 시도에 어깃장을 놓곤 합니다. 바른미래당은 퇴행적인 극보수의 색깔을 띠고 있지 않을 뿐이지 반공분단국가체제의 해체나 사회적-자유주의적 개혁 앞에서 머뭇거립니다.
 기득권 정치체제가 온존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일과 삶의 기회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가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깊이 뿌리를 내린 이래로 우리 사회에 쌓이고 쌓인 사회경제적 적폐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가난과 차별과 배제와 절망의 질곡에 가두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체제의 운영 방식과 사회적 연대를 조직하는 방식을 급진적으로 변화시켜야 할 것이고, 이를 추동하는 정치세력이 형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정치세력은 민중 부문과 시민사회 세력의 정치적 진출을 통해 탄생하는 것이겠지만, 그 기회가 체계적으로 봉쇄되고 있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저는 ‘촛불혁명’이라는 낱말에 접할 때마다 그것이 과도한 수사학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한 수사는 현실이 변하지 않았는데 마치 본질적으로 변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거나, 변화되지 않은 현실에 직면한 사람들을 혁명 ‘허무주의’에 빠지게 만듭니다. 저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정의에 바탕을 둔 평화 가운데서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민중이 일관된 구도를 갖고서 힘을 모으고 그 힘을 갖고서 우리 사회를 체계적으로 새롭게 조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혁명’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혁명’의 정치적 성과는 새로운 헌정질서에 새겨지게 될 것입니다.
 아직 그러한 ‘혁명’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촛불집회는 그러한 ‘혁명’을 예감하게 하고 준비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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