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2019/09/07 (10:03) from 221.158.115.135' of 221.158.115.135' Article Number :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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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후보자 인사검증 과정을 지켜보고서
조국 후보자 인사검증 과정을 지켜보고서

강원돈 (한신대 신학부 교수/사회윤리와 민중신학)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검증을 둘러싸고 언론보도와 댓글들, SNS 메시지들과 댓글들, 서울대, 고려대, 부산대 일부 학생들의 성명, 한겨레신문사 소장 기자들의 성명, 국회 법사위원회 인사청문회의 질의·응답 과정 등을 때때로 살펴보면서 한 마디로 피곤했고, 속이 상했다.

법무부장관 후보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신상 털기와 갖가지 형태의 의혹 제기, ‘의혹 규명’을 빙자한 억측과 단정 등 말들과 글들이 가히 살인적이고 ‘광기’에 가득 차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사 검증의 초점은 조국 후보자 자신보다는 그 딸에 집중되어 있다는 느낌이었고, 그 딸에 대한 논란도 논문 제1저자 등록, 코이카 관련 봉사 인증서, 모 대학교 총장 표창장 등 이른바 대학 입시에 관련된 이른바 ‘스펙‘ 쌓기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러한 ’스펙‘이 불법적으로 입수되었는가는 엄정하게 가리면 될 일이지만, 그것은 일단 장관 후보자의 자격과 능력을 가리는 일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후보자의 딸이 영향력과 재력을 갖춘 부모를 둔 덕에 온갖 혜택을 받았고, 그러한 혜택을 받는 것은 공정하지도 않고 공평하지도 않다는 비난은 또 다른 함의를 갖는다. 대학 입시를 둘러싸고 ‘스펙’을 쌓는 과정에서 영향력과 재력을 가진 부모들을 둔 학생들이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은 교육을 통한 계급 세습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크게 경계해야 할 일이다.

한 학생이 사교육을 통해 수능 성적을 높이는 기술을 연마하고 좋은 ‘스펙’을 쌓기 위해서는 그 부모가 엄청난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세칭 일류대학을 나와야 남보다 더 수월하게 법률가나 의사의 길을 걷거나 대기업과 공공부문 등 높은 보수가 보장되는 안정된 직업을 얻는다. 그러한 길을 걷도록 물질적 지원을 할 수 없는 부모를 두었거나 제아무리 애써도 직업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직장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좌절과 절망을 느낀다.

그러한 젊은이들이 조국 후보자의 딸이 좋은 ‘스펙’을 얻고 세칭 일류대를 졸업하고 의학전문대학원에 재학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성토하고 비난하는 목소리를 쏟아낸 것이다. 어찌 보면, 일부 야당들이나 대부분의 언론, 국회의원들이 장관 후보자의 딸에 초점을 맞추어 온갖 의혹과 비난의 말들과 글들을 쏟아낸 것은 이러한 젊은이들의 생각과 감정에 편승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번 장관후보자 인사검증 과정에서도 다시 한 번 뚜렷하게 드러났듯이, 우리 사회의 많은 젊은이들은 공정과 공평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그 두 가치가 실현되어야 우리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일리가 있다. 그러나 공정과 공평이 정의의 전부는 아니다. 공정과 공평은 본래 개인중심의 자유주의적 가치였고,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우리 시대에 유독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가치가 되었다. 공정과 공평이 보장된다면 마치 누구나 삶의 기회를 제대로 누릴 수 있기나 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는 승자독식의 사회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자가 모든 것을 다 가져가고 패자에게는 그 어떤 기회도 다시 부여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는 교육체제에 깊이 자리를 잡았고, 학생들을 성적경쟁에 몰아넣었으며, 그들을 ‘성적기계’로 만들었다. 그 기계의 성능이 나쁘면 폐기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교실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무시당하고 버림받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은 신자유주의 교육체제에서 훈육되었고,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이 시나브로 그들의 몸에 새겨져 힘을 발휘한다.

 그들은 경쟁의 룰이 공정하게 마련되기만 한다면 누구나 공평하게 직업의 기회와 삶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적 교육체제에서 학생들 간의 치열한 경쟁은 설사 경쟁의 룰이 공정하게 마련된다고 해도 승자와 패자를 가를 것이고, 패자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격하된다. 공평이 단지 기회의 평등을 뜻하는 것만이 아니라면, 어떻게 공정한 경쟁이 공평한 결과를 빚어낼 수 있는가? 신자유주의적 교육체제의 틀을 만들어내는 신자유주의적 시장체제는 승자독식의 경쟁체제를 당연시하지 않는가? 그 경쟁체제는 모든 것과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르고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간주되는 무수한 사람들을 멸시하고 배제하고 차별하지 않는가? 그것이 어떻게 공평한 일인가?

 시장경제를 사회적으로 규율하지 않고서 공정과 공평을 말하는 것은 공허하다. 사회적으로 규율되지 않는 시장경제는 자본의 지배 아래서 노동자들을 수탈하는 체제이다. 그러한 체제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노동하는 사람들이 연대하고 단결하여 자본의 힘에 맞서지 않고서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러니 공정과 공평을 말하기 이전에 먼저 연대와 단결을 말해야 한다. 그리고 공감하고 연대하고 서로 협력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체제와 시장체제를 요구하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추구하여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대, 고려대, 부산대의 일부 학생들이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딸을 비난하는 성명을 채택하고 촛불을 드는 모습을 보면서 혹시 저 학생들은 자신들이 쌓은 성적과 ‘스펙’이 흠결이 없음을 당당하게 주장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들이 얻은 성적과 ‘스펙’이 공정하고 공평하게 얻은 것이라고 주장하려는 마음이 혹시라도 있었다면, 그러한 마음은 옹졸하고, 그들의 주장은 우리나라의 교육체제와 시장체제에 대한 구조적인 인식을 결여한 맹목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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