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2020/02/24 (15:23) from 211.197.6.114' of 211.197.6.114' Article Number : 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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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성과 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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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성과 주거

강원돈 (한신대교수/민중신학과 사회윤리)

부동산 불로소득을 고취하는 선거준비용 현수막들

지난 2월 20일 이수사거리에서 상도동 방향으로 차를 타고 가던 중에 여기 저기 붙기 시작한 선거준비용 현수막이 눈길을 끌었다. 그 가운데에는 부동산 보유세 인하로 가계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의 현수막도 있었고, 무분별한 공시지가 인상을 법으로 막겠다는 내용의 현수막도 있었다. 둘 다 같은 당이 내건 현수막이었다.

사당동, 동작동 일대는 지역 개발 수요가 많은 곳이다. 보유세와 공시시가는 이곳에 부동산을 갖고 있는 유지들의 이해관계에 결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지역 토호세력을 끌어들여 지지 세력을 묶는 것이 지역구 선거의 관건이니, 위의 현수막에 적힌 글귀들은 그 지역구에서는 안성맞춤식 선거 구호들인 셈이다. 지역 개발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게 되면, 그 지역에 뿌리를 박고 살던 주민들은 결국 쫓겨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를 경고하고 대안적인 마을 만들기를 추구하는 시민단체들이나 풀뿌리 조직들은 그 지역에서 아직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지난 2월 20일은 정부가 부동산 투기 대책을 추가로 발표한 날이기도 했다. 지난 해 12월 16일 정부가 시행한 부동산 투기 대책으로 인해 서울 강남 지역, 마포구, 용산구, 성동구 등 부동산 투기가 극심했던 지역의 부동산 시장이 주춤한 사이에 집값이 많이 오른 수원 영통구, 권선구, 장안구, 안양 만안구, 의왕시 등 다섯 지역이 조정대상지역으로 편입되었다. 정부의 시책으로 한곳이 눌리니 다른 곳이 부풀어 오르는 전형적인 ‘풍선효과’에 대한 정부의 대증요법이 시행된 것이다. 부동산 시장으로 돈이 몰려드는 것이 문제라면,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것인데, 정부의 대응요법에는 딱히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

전세계적인 부동산 투기 열풍

부동산 투기는 세계 곳곳에서 열풍처럼 번지고 있다. 무수히 많은 예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지면 관계로 단지 두 가지 예를 드는 데 그친다. 영국에서는 마가렛 대처가 수상으로 재직하던 1980년대 중반부터 부동산 투기가 극심했다. 실물경제로부터 이탈한 천문학적 규모의 화폐자본이 부동산 투기 자본으로 몸을 바꾸어 부동산 시장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기가 여전히 극성을 부리는 런던에서 정부 중상위 공무원이나 고등학교 교사 정도의 봉급을 받는 사람들은 집세를 낼 수 없을 정도이다.

오랫동안 부동산 시장이 안정적이었던 독일도 지난 10수년 동안 부동산 투기에 휩쓸려 들어갔다. 유럽연합에서 막강한 경제력을 자랑하는 독일은 유럽 곳곳에서 흘러들어오는 천문학적 규모의 무역흑자에 힘입어 화폐자본이 팽창했고, 그 화폐자본의 일부가 부동산 투기를 일삼고 있는 것이다. 집값과 월세가 터무니없이 폭등한 베를린 등지에서 임대사업자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월세에 상한선을 두라는 시민들의 구호가 터져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부동산 투기는 세계 경제의 재앙인 동시에 그 재앙으로 인해 조성된 국면에서 더 번성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가 세계 금융시장을 파국으로 몰아넣은 대표적인 사례는 2008년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이다. ‘소유자 자본주의’를 내세운 부시 2세 정권이 부동산 매매를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환상을 조장한 끝에 너도나도 부동산 투기판에 뛰어들게 해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는 12조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천문학적인 신용 붕괴를 불러일으켰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G20 국가들의 중앙은행들은 끝도 없이 신용을 창출해야 했다. 2008년의 금융 위기 이후에 마이너스 금리 책정, 채권의 무한정 매입 등과 같은 양적 완화 정책이 대세로 자리를 잡으면서 세계 곳곳에는 화폐가 넘치도록 공급되었다. 증권, 채권, 외환, 귀금속, 부동산 등 재테크를 위해 아주 싼 비용으로 풍부한 화폐를 조달할 수 있는 조건들이 마련되었는데, 돈이 들어가기만 하면 값이 오르게끔 되어 있는 유망한 지역의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어 투기를 일삼지 않는다면, 그것보다 더 바보 같은 짓이 어디 있겠는가?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지 않으면 부동산 투기 열풍은 잠재워지지 않는다

2008년의 신용공황의 여파로 화폐의 가격이 엄청나게 저렴한 상황에서 부동산 투기 바람을 막을 수 있을까? 부동산 투기 바람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두 가지 질문들에 대해 답변하기는 쉽지 않다. 화폐자본이 실물경제에서 이탈한 상태에서 천문학적으로 축적되고 있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투기를 근절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화폐 자본가들은 시세 차익을 실현하기 위해 온갖 게임과 규칙을 만들고, 투기적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노린다. 부동산 투기가 극성을 부리는 것은 부동산이 화폐 자본가들이 만들어낸 게임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이 투기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은 부동산 투기 수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을 뜻한다. 설사 투기 수익이 발생한다 할지라도, 그 투기 수익이 환수되어 모든 사람들의 이익으로 전환되고, 투기꾼들에게 정작 돌아가는 것이 없다면, 투기 수익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부동산 투기 수익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그 어떤 화폐 자본도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지 않을 것이다.

부동산의 특성과 규율 원칙

부동산은 몇 가지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부동산은 그 공급이 한정된 재화이다. 재화의 희귀성을 나타내는 표지가 가격이라면, 부동산의 가격은 이론적으로 상한선이 없다. 아마도 그것이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요인일 것이다. 둘째, 부동산은 지대를 발생시키지만, 지대는 부동산 그 자체의 성질이나 상태에서 직접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의 경제적 가치는 그 부동산이 위치한 도시 기반 시설, 교통 기반 시설, 생활 기반 시설 등의 사회문화적 인프라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인프라는 부동산 소유자가 조성한 것이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공적인 손에 의해 마련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공정하다. 따라서 부동산 소유자가 부동산 지대의 발생에 본질적으로 기여한 것은 전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셋째, 부동산은 문자 그대로 움직임이 둔하고, 부동산 소유권의 변경 등은 국가 등기부에 고스란히 기록된다. 국가가 의지를 갖는다면, 국가는 부동산의 취득, 보유, 양도, 증여, 상속 등의 절차와 그 상세 내역을 엄격한 법제의 틀에서 관리할 수 있다. 넷째, 부동산 가운데 사람의 거주에 관련된 주택과 그 부속 토지는 특별한 지위를 갖는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충족해야 할 욕망을 기본욕망이라고 한다면, 주거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들 가운데 하나이다. 거주권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고 사람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하여 무조건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인 권리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와 같은 부동산의 몇 가지 특성들을 생각해 보면, 부동산을 규율하는 데 반드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원칙들을 추릴 수 있다. 첫째, 주거권의 무조건적 보장의 원칙이다. 사람이 거주하는 주택과 그 부속토지는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하고, 그 누구도 자신의 거주공간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모든 사람이 주거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공공 임대주택을 충분히 공급하여야 할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빈은 1920년대와 30년대에,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사회주택 공급에 성공을 거둠으로써 오늘날까지도 유럽에서 가장 안정적인 부동산 시장을 유지하고 있다. 둘째, 지대 공유제의 원칙이다.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지대와 양도 차익은 해당 부동산의 소유에서 직접 발생한 것이 아니고 공적인 손에 의해 조성된 사회문화적 인프라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지대와 양도 차익은 전형적인 불로소득이므로 공적인 손에 환수되어 모두의 이익을 위해 쓰이는 것이 마땅하다. 셋째, 희귀한 부동산은 공유재로 관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경치 좋은 산림이나 강변, 호수가, 바닷가 등과 같이 천혜의 희귀재는 소수에 의해 사치재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희귀재는 언제든 투기를 불러들일 수 있기에 공유재로 관리하는 것이 더 낫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시장 정책 실패

문재인 정부는 국가 등기부 제도를 통하여 부동산의 취득, 보유, 양도, 증여, 상속 등의 절차와 그 상세 내역을 엄격하게 관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부동산 투기를 근절시킬 수 있는 제도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한 동안 필자는 현 정부가 1987년 체제에서 재벌, 관료, 부동산 호족, 보수 언론 등과 이해공동체를 구축하고 있는 거대 야당의 반발로 인해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는 법제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부가 내 놓은 일련의 부동산 대책들을 분석해 본 결과,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제대로 규율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고, 안목도 없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투기지역, 투기과열지역, 조정대상지역 등을 각각 지정하여 각기 다른 강도로 주택담보대출한도(LTV) 제한, 의무 주거 기간 설정, 입주권 전매 금지, 입주 조건부 대출 등등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아파트 매입, 전매, 양도 등에 허들을 설치하겠다는 취지가 분명하기는 하다. 또 화폐 자본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억지하겠다는 의지가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부모나 지인의 주택을 담보로 한 은행 대출을 막지 못하기 때문에 LTV 제한은 앞문을 닫고 뒷문을 열어두는 격이 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갖는 가장 큰 문제는 부동산 투기의 근원인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조치를 거의 취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GDP의 약 23%에 해당하는 엄청난 불로소득이 부동산에서 발생하였다는 실증적인 연구가 있는데도,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보유세의 일종인 종합부동산세제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미세한 조정을 하는 데 그쳤다. 다주택자들이 임대사업자로 등록하기만 하면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면제받고 양도소득세 부담에서도 큰 혜택을 얻게 하였다. 서울 강남 지역에서는 아파트를 팔아 엄청난 양도소득을 거두고 있는데도, 1가구 1주택자의 요건을 충족시켰다고 해서 세금을 단 한 푼도 내지 않고 있다.

작은 사람들은 그들의 이해관계에 충실해야 한다

지금도 이수사거리에서 상도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더 많이 챙겨줄 특정 정당의 지역구 후보를 뽑아달라는 취지의 구호들이 적힌 선거준비용 현수막들이 걸려 있을 것이다. 그 지역에도 전세나 월세를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 현수막들에 적힌 구호들은 그 사람들을 눈곱만큼도 배려하지 않고 있다. 아마 그 사람들이 ‘나 죽었소!’ 하고 널브러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서는 그런 구호를 내다 걸 수는 없을 것이다.

부동산 소유자들이 부동산을 소유했다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거두어들이는 엄청난 불로소득을 환수하여 더 나은 마을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쓰겠다는 주장은 그 지역의 작은 사람들에게 먹히지 않는 걸까? 그러나, 그럴 리가 있겠는가? 자신들에게 무엇이 이롭고, 무엇이 해로운가를 지역의 작은 사람들만큼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어디 또 있겠는가?

2015년 현재 전국주택보급률이 103%이지만, 무주택 가구의 비율은 44%에 달한다. 2014년 현재 상위 1%의 토지소유자가 개인소유 토지의 55.2%를, 상위 10%가 97.6%를 차지하고 있다. 더 많은 통계들을 동원할 수 있지만, 이 정도로 그친다. 위에서 말한 간단한 통계 자료들만 갖고서도 이미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소유가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는 데 부족함이 없다.

이제는 무주택 서민들이, 부동산 약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전세와 월세를 내면서 부동산 부자들의 불로소득을 늘려주는 일을 그만 두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부와 의회권력을 선출하여야 한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남김없이 환수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주거공간을 누구에게나 보장할 수 있는 날은 아래로부터 작은 힘들이 모아지면서 서서히 동터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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