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2020/03/02 (13:54) from 211.197.6.114' of 211.197.6.114' Article Number : 401
Delete Modify 강원돈 (kwdth55@daum.net) Access : 184 , Lines : 57
의사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Download : 민중신학자의 눈으로 세상 읽기 (9) 의사표현의 자유에 대하여.hwp (32 Kbytes)
의사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강원돈(한신대 교수/민중신학과 사회윤리)

언로의 왜곡과 혼탁

신문 지면이나 공중파 방송, SNS 등을 훑다보면, 우리 사회의 언로가 극도로 오염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언론 매체들과 SNS를 통하여 집중적으로 전달되는 정치단체들의 막말은 정치에 대한 혐오와 불신을 끝 갈 데 없이 부추긴다. 특히 대통령 탄핵과 해임으로 인해 집행 권력을 상실한 정치세력이 지난 몇 년 동안 쏟아낸 독기서린 막말들은 정권 교체를 ‘당한’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절망과 분노와 증오와 공격성과 인지장애가 공론의 장을 얼마큼 더럽힐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과거의 집권세력과 기득권 카르텔을 구성해 왔던 보수 언론은 툭 하면 색깔 공세를 꺼내들어 공론의 장을 주름잡고, 진상을 교묘하게 왜곡하는 가짜뉴스 프레임을 설정한다. 기사의 선택, 배치, 수사학적 코드의 설정, 표제 혹은 카피 작성 등이 이미 고도의 정치적 판단과 가치 판단을 전제하는 일이지만, 보수 언론이 언젠가부터 무분별하게 갖다 붙이는 ‘좌파’나 ‘사회주의’라는 딱지는 기득권 세력의 이익에 눈곱만큼의 흠집을 내는 그 어떤 정치적 결정이나 사회적 합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보수 언론 지배세력의 원초적인 결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언론 매체들과 SNS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댓글들과 메시지들은 어떤가? 진실하고 진지한 글들을 접할 때가 물론 많다. 그러나 그곳에는 홀딱 벗은 혐오와 증오, 검토되지 않은 선입견과 편견, 근거 없는 비방과 선동이 차고도 넘친다. 사적인 것으로 존중되고 감추어져야 할 것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 공개되어 혐오와 비방의 대상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조금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극우 세력들과 개신교 일부 세력들이 광화문 일대에서 시위를 벌이며 내거는 구호들은 언론 매체들과 SNS에 유통되면서 현실을 극도로 오도하고 극우 파시즘을 호출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최근에 확산 일로에 있는 코로나-19 질병을 가리켜 ‘문재인 폐렴’이라고 말하고, 현 정권이 ‘문재인 폐렴’을 확산시키고 있으니 타도해야 한다는 구호가 SNS에 버젓이 올라오고, 거기에 ‘좋아요’라는 표시가 붙기까지 한다.

말의 힘과 취약성

어린아이들은 같이 잘 놀다가도 금방 싸우고 서로 주먹다짐을 하곤 한다. 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서로 주먹을 들이대다가도 “야, 말로 하자!”고 하면서 주먹다짐을 피하기도 한다. 같이 놀면서 서로 상처를 주었거나, 감정이 대립하였거나, 의견이 갈라져서 분쟁이 일어났을 때, 말로 자초자종을 따져서 잘잘못을 가리고, 분쟁과 대립의 요인들을 제거하고 난 뒤에 같이 또 놀자는 뜻이 “야, 말로 하자!”는 구호에 깃들어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들도 조리를 세워 화합의 길을 여는 말의 힘을 신뢰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의 가장 뛰어난 점은 확실히 말을 하는 데 있다. 사람의 말은 고도로 발전되었다. 인간의 사유와 감정과 영성과 상상력은 말을 매개로 해서 형성된다. 말로써 포착되지 않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존재하는 것의 영역 바깥으로 구축된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말로써 구성되는 세계는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형성하고 존재의 의미를 이해하는 플랫폼이다. 아마 이러한 통찰은 누구나 공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언어의 힘과 그 한계에 대해 생각하려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존재하는 것의 바깥으로 구축된 것이 되돌아와서 존재하는 것을 건드리며 성가시게 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언어로 구성된 존재의 영역 바깥에 있는 것이 찾아와서 존재하는 것을 뒤흔든다면, 그 뒤흔듦의 순간은 존재하는 것으로 설정된 것 전체를 총체적으로 의문시하는 위기의 순간이고 갱신의 순간이 되지 않을까? 이처럼 언어가 구성하는 세계와 그 세계 바깥에 관하여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한편으로는 언어가 갖는 힘이 참으로 엄청나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언어의 힘을 절대화하는 맹목적인 사고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언어는 아주 손쉽게 왜곡되기도 하고 타락하기도 한다. 일찍이 프란시스 베이컨은 사람이 참된 지식을 얻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네 가지 우상들을 지적한 적이 있다. 그는 말과 관련된 우상을 ‘시장의 우상’(idola fori)이라고 지칭했다. 시장의 우상은 사람들이 말로써 의사소통을 하면서 진실을 고의로 왜곡하거나 사실을 날조하여 공연한 다툼에 휘말려 들어가는 현상을 가리킨다. 아마 사람들은 스스로 진실을 왜곡하거나 날조한다는 의식조차 갖지 못한 채 그런 짓을 버젓이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시장의 우상에 사로 잡혔다고 말하는 것이다.

베이컨이 말한 우상들은 후대의 이론가들에 의해 이데올로기라는 말로 가다듬어졌다.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이 사물과 사태의 진상을 체계적으로 왜곡하고 이를 언어화하는 과정을 거쳐 나타나는 허위의식이다. 보통은 계급, 인종, 젠더 등의 특수한 이해관계를 은폐시키고 이를 보편적인 이해관계의 구현자인 것처럼 둔갑시킬 때 허위의식이 나타난다. 그런 허위의식의 예는 우리 주변에 차고도 넘쳤다. 자유주의 사회가 성립되면서 모든 인간이 자유로워졌다는 주장은 허위의식의 한 예가 되지 않을까? 시장이 정한 가격이 공정한 가격이라는 주장이 과연 진실일까? 경제성장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허리띠를 조금만 더 졸라매면, 경제성장의 성과를 온 국민이 돌려받을 것이라는 구호는 또 어떤가?
 
의사표현의 자유는 국가에 의해 확인되고 보장되는 자연적 권리이다

언로의 왜곡과 혼탁이 극심하고 언어와 의사소통 과정이 체계적으로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람들이 제 멋대로 지껄이게 내버려두는 것이 능사인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의사표현의 자유의 본질에 관한 질문이기 때문에 깊이 헤아려서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련해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그 권리가 임의로 제한되거나 침탈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점을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서는 현행 헌법이 의사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21조 1항은 언론과 출판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선언함으로써 이를 보호하는 것을 국가의 책무로 정하고 있다. 사람은 개인의 자격으로든 집단의 이름으로든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고, 이 권리는 국가에 의해 침탈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대한민국 헌법은 의사표현의 자유가 국가가 성립되기 이전에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져 있는 자연적 권리로 보고 이를 확인한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의 권리장전에서 주관적 권리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자유와 권리의 주체라는 뜻이다. 자유와 권리의 주체는 국가가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때 그것에 대항하여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보장하겠다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적 결단이다. 따라서 아무리 하잘것없이 보이는 개인이라도, 그가 자유와 권리의 주체인 이상, 그는 국가가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공적인 권리의 주체로 인정된다. 각 사람이 ‘주관적 공권’의 주체임을 인정하고 있는 헌법의 권리장전은 이처럼 엄청난 의미를 갖고 있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면, 헌법의 권리장전은 대한민국 사회가 지켜야 할 기본가치질서를 창설하는 효과를 갖는다. 흔히들 우리나라의 권리장전은 외국 헌법을 번역해서 제헌헌법에 기재한 것에 불과하기에 우리 사회의 기본질서에서 유리되어 있다고 평가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헌정질서가 해방 이후 독재에 맞서 싸우며 민중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일구어낸 헌정사의 결과라는 점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현행 헌법의 권리장전은 1987년까지 이어져 온 민주화·인권 운동과 민중운동의 역사적 성취이다. 현행 헌법에 근거하여 탄생한 헌법재판소가 헌법의 권리장전이 우리 사회를 규율하는 기본가치질서로 자리를 잡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도 지적해야 한다. 오늘 우리나라 사람들의 권리의식과 헌정질서에 대한 도전들을 감안할 때, 현행 헌법의 권리장전은 더 보완되어야 하고 일부는 새롭게 정식화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권리장전은 시대의 요구에 대응해서 기본가치질서를 제대로 수립하고자 하는 시민들과 민중들의 요구에 따라 확대되고 심화되어야 한다. 헌법의 권리장전이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질서를 창설하는 효과를 갖는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헌법이 규정하는 기본권은 국가에 의해 침탈되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개인이나 단체에 의해서도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 따라서 기본권은 대사인적(對私人的) 효과를 갖는다. 예를 들면, 결사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한, 노동조합을 결성하지 못하게 하는 회사의 정관은 무효이다.

의사표현의 자유가 기본권의 하나로 헌법의 권리장전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따라서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의사표현의 자유는 국가나 그 어떤 타인이나 단체에 의해 침해되거나 침탈되어서는 안 된다.

의사표현의 자유는 무제약적인 권리가 아니다

의사표현의 자유는 국가에 의해 확인되고 보장되는 자연적 권리이기는 하지만, 무제약적인 권리인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4항은 의사표현의 자유가 타인의 명예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 등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고,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할 때에는 피해 배상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헌법 제37조 2항은 의사표현의 자유를 포함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도록 하였고, 이 경우 그 제한은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단서를 달았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 헌법 제77조 3항은 비상계엄 시에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 기본권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의사표현의 자유는 특별한 조건들을 충족시킬 때 실현되는 권리이고, 따라서 무제약적인 권리일 수 없다. 이 점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한 가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국가주의적 경향을 완전히 불식하지 못한 현행 헌법의 체계에서 보면, 의사표현의 자유는 자칫 국가주의적 사유에 의해 위축될 여지가 크다는 것이 그것이다. 비상계엄 상황에서 신문과 방송에 대한 계엄당국의 검열은 용인될 수 있는가 하는 민감한 질문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국가주의의 그늘 아래 있는가의 여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일 것이다.

의사표현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확인하면서도 그 행사에 제한을 가하는 것은 국가 공동체를 운영할 때 나타나는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고육지책이다. 독일의 경우, 기본법 제5조 1항은 말, 글, 형상 등을 통하여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만인의 권리로 천명하고, 언론의 자유와 방송 및 필름을 통한 보도의 자유를 보장하고, 검열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그 다음에 곧바로 이어지는 제5조 2항은 의사표현의 자유가 일반법률, 청소년 보호 특례법, 명예 보호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허락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특별히 독일 형법 제130조는 특정한 이슈에 관한 의사표현을 형벌의 대상으로 다루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유대인 집단학살을 부정·왜곡하고 찬양·미화할 경우 국민선동죄로 5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홀로코스트가 독일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거나 유대인 학살 규모가 과장되었다고 공공연하게 발언한 사람들은 독일형법 130조에 의거하여 실제로 처벌을 받았다. 독일연방의회와 여러 주(州) 의회들에 진출한 독일대안당(Alternative für Deutschland)은 나치 찬양 집회를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혐의를 받아 연방헌법수호청의 조사와 독일연방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었다. 이것은 독일의 헌정질서를 극우 인종주의나 극우 극단주의로부터 수호하기 위한 법률이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최근 독일 연방의회는 SNS를 통해 확산되는 인종 혐오나 젠더 혐오를 조장하는 의사표현을 처벌하는 법률을 제정하기까지 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혐오와 증오를 조장하는 의사표현과 선동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기에, 이러한 의사표현에 제동을 가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숙명여자대학교 홍성수 교수는  “소수자에 대한 편견 또는 차별을 확산시키거나 조장하는 행위 또는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해 그들이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멸시, 모욕, 위협하거나 그들에 대한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을 혐오표현으로 간주하고 이를 법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자고 제안한다.

의사표현의 자유는 공론의 장이 활성화될 때 비로소 확장된다

오늘의 언론매체와 SNS에서 관찰되는 혼탁과 심각한 왜곡을 염두에 둔다면, 의사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신장시키면서도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법제를 정비하자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4항이 규정하는 바에 따라 의사표현의 자유를 행사함으로써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하거나 공중도덕, 사회윤리 등을 침해하는 경우를 훨씬 더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악성 댓글로 인해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는데, 이를 규율하지 못하는 사회가 문명사회일 수는 없지 않는가? 성별, 성정체성, 장애(신체조건), 병력, 외모,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지역, 혼인 여부, 성적 지향성,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종교, 사상, 정치적 의견, 범죄 전력, 보호 처분, 학력, 사회적 신분 등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암시하거나 선동하는 일체의 언동은 의사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되어서는 안 된다. 혐오와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언동도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7조 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의사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자 할 때에는 국가주의적 편향을 불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안보를 앞세운 탄압과 인권유린, 질서유지의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광범위한 사찰과 감시, 공공복리를 앞세운 사적 자치의 억압 등등이 역사의 그늘이기에, 국가안보, 질서유지, 공공복리 등을 앞세운 국가 차원의 기본권 제한은 국민적 동의 없이는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국가 차원의 적 규정이 국가 시민의 정치적 견해나 사상적 입장을 재단하고 그 의견의 표명을 억압하는 구실이 되어서도 안 된다. 국가보안법에서 의사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조항들을 전면 폐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표현의 일탈을 막는 장치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건강한 공론의 장을 형성하는 것이다. 의사표현의 자유는 건강한 공론의 장에서 비로소 꽃피울 수 있고, 공론의 장은 의사표현의 자유에 의해 강력해진다. 공론의 장이 제 기능을 수행한다면, 사람들이 말과 글과 형상을 통하여 표현하는 의견들은 공개적인 검토에 회부되고, 그 의견의 타당성과 진실성은 공개적으로 검증될 것이다. 공론의 장이 살아 움직이는 사회는 ‘이성의 공적인 사용’이 보장되는 사회이다. 칸트는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이 생각한 것을 큰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 이성의 공적인 사용에 근거한 공화주의적 헌정질서가 수립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얼마 전에 임 아무개가 「민주당만 빼고」라는 괴상한 글을 써서 잠시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지만, 우리 사회의 공론의 장은 어떤 의견이든 그 의견은 진실에 근거하여야 하고, 그 의견을 뒷받침하는 논거들은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하였을 뿐, 임 아무개가 의사표현의 자유와 권리를 갖는 주체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언론 매체들과 SNS가 건강하지 못한 모습을 자주 보이는 것이 매우 안타깝지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공론의 장은 우리 사회의 현안 문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검증하는 기능을 상실하지는 않았다.

공론의 장이 살아 움직이는 건강한 사회는 언어로 구성된 존재의 영역을 뒤흔드는 낯선 것이 도래한다고 해도 이에 의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로 구성된 존재의 세계 바깥으로 배설된 것이 되돌아와서 존재하는 것을 성가시게 하고 존재하는 것 전체에 균열을 내어 불안정한 것으로 만들어버릴 때, 그 성가심과 균열과 불안정을 함께 겪고 나누는 장이 새롭게 구성되지 않겠는가?

Backward Forward Post Reply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