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2020/03/09 (16:43) from 211.197.6.114' of 211.197.6.114' Article Number :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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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퇴행을 어떻게 막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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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퇴행을 어떻게 막아야 하나?

강원돈(한신대 교수/민중신학과 사회윤리)

한국정치의 끝없는 퇴행

한국정치의 퇴행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지만,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의 창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서찰(이하 ‘옥중서찰’)은 정치의 퇴행이 얼마큼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미래한국당의 창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에 따라 의회권력을 구성하도록 한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훼손시키는 폭거이고, ‘옥중서찰’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으로 균열이 간 수구 세력을 복원하여 수구 세력의 집권을 추구하겠다는 뻔뻔한 시도이다. 이러한 한국 정치의 퇴행을 저지하지 않는다면, 한국 정치는 수구 기득권 체제에 휘둘리고 민주주의 정치의 기회와 활력은 크게 위축되거나 자칫 상실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나야 할까?

언뜻 보기에 ‘옥중서찰’은 구치소에 감금되어 있는 전직 대통령이 정무감각을 상실한 상태에서 뜬금없이 던진 말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선거판에서 나타나는 표의 흐름과 표의 형성에 탁월한 감각을 가졌던 노회한 정치인의 발언이라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옥중서찰’에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의 코드가 깔려 있다. ‘옥중서찰’은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대구·경북 지역의 코로나 19 사태에 대한 우려를 간곡하게 표시하여 지역 민심을 끌어들이고 난 뒤에, 이북의 핵무기 위협을 언급하여 안보 콤플렉스를 흔들어 깨우고 한반도 분단 상황에서 안보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애국심에 호소했다. 그 다음에는 ‘무능하고 위선적이며 독선적인 현 집권세력’의 실정과 이로 인한 나라의 위기를 길게 나열하고 나서, 현 집권 세력을 타도하기 위한 수구 세력의 대동단결을 호소했다. 수구 세력들이 탄핵 과정과 탄핵 이후에 서로 분열되어 병존하면서 “서로 간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메우기 힘든 간극도 있겠지만,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기존 거대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주실 것을 호소”한다는 것이다. 탄핵으로 인해 분열한 수구 세력들은 현 집권세력 타도를 위해 무조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수구 세력의 기득권 수호 의지가 정치의 퇴행을 촉진한다

태극기 부대로 지칭되는 극우세력과 미래통합당 세력의 대동단결을 통하여 현 집권세력을 타도하자는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비원(悲願)은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 전술을 통해 비례대표 의석을 쓸어 담아 원내 제1당의 지위를 차지하겠다는 정치적 계략과 맞물려 있다. 이 둘을 서로 결합시키는 고리는 현 집권세력에 의해 위협받는 기득권을 수호하겠다는 이해관계이다. 미래통합당으로 이름을 바꾼 자유한국당이 정치개혁, 사법개혁, 사회개혁, 경제개혁 등등의 이슈들에 대해 보여주었던 수구적인 태도는 무수히 많은 실례들에 의해 끝도 없이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유치원 재정 운영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제안된 ‘유치원 3법’마저 무산시켜 사실상 횡령에 가까운 유치원 원장들의 기득권마저 수호해 주고자 했던 자유한국당이었으니 다른 개혁 과제들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미래통합당의 깃발 아래 모여든 자유한국당 세력과 바른미래당 출신의 다양한 분파 세력들은 의회권력을 장악하고 더 나아가 대통령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다 하겠다는 기세이다. 의회권력을 지배하고 대통령 권력을 차지해야만 현 집권세력에 의해 위협받는 기득권을 복원하고 수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세력들은 우선 ‘탄핵의 강’을 건너 하나가 되었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찬반이 수구 세력의 분열을 지속시켜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같이 한 것이다. 그런 뒤에 통합민주당 세력은 최소한 원내 제1당을 꾸리고, 최대한 의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겠다고 기염을 토하면서 대오를 정비하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의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면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도 불태우고 있다. 통합미래당 세력이 이처럼 강고하게 결속하게 된 것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 위하여 지난 해 12월 27일에 개정된 공직선거법 제189조 1항과 2항 덕분이다.

수구 기득권 세력의 대동단결을 촉진하고 있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맹점

공직선거법 제189조 1항은 정당득표율 3% 이상이거나 지역구 의원 5석 이상을 확보한 정당이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당득표율과 지역구 의원 확보는 별개의 변수이고, 서로 연계되어 있지 않다. 지역구 의원을 전혀 확보하지 않은 정당이라도 3% 이상의 정당득표율을 얻으면, 그 정당은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 참여할 수 있다. 거꾸로, 지역구 의원 5인 이상을 배출한 정당이라도 비례대표 의석을 전혀 분배받지 못할 수도 있고, 애초부터 비례대표 의석 획득을 포기할 수도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개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공직선거법 제189조 2항은 의원 총원에서 지역구 의원 총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정당득표율보다 높은 정당의 경우에는 비례대표 의원 배정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양한 정치적 요구들과 이념들을 내세우는 신생 정당들의 의회 진출을 촉진하기 위해 마련한 이 조항은 거대 정당들에는 불리한 조항이다. 개정된 공직선거법 부칙 제4조는 2020년 4·15 선거에 한하여 이러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적용을 제한하여 비례대표의석 47석 가운데 30석에만 적용하고 나머지 17석은 종전과 같이 정당득표율에 따라 이를 배분하도록 단서를 달아 준연동제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인해 거대 정당들이 받는 충격을 완화하는 장치를 두기는 했다.

수구 세력은 공직선거법 제189조 1항과 2항을 활용하여 지역구 의원 선출에 전념하는 미래통합당과 비례대표의원 확보에 전념하는 미래한국당을 별도로 운영하는 중심당-위성정당 운영 전략을 수립하고,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의원의 최대치를 확보한 뒤에 당을 합치자는 정치적 계략을 꾸몄다. 그 계략이 성공하면, 수구 세력이 엄청난 의회 권력을 장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었기에 수구 세력은 이 계략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게 되었다.

문제는 동일한 정치세력이 지역구 의원용 중심당과 비례대표 의원용 위성정당을 만들어 운영하는 데도 공직선거법 제189조 1항은 이를 저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직선거법 제189조 1항은 본래 지역구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는 신생 정당들의 의회 진출을 열어주자는 취지에서 명문화된 것이지만, 통합미래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의 창당과 비례대표의원 명부 작성과 제출을 합법화하는 수단이 되고 말았다.

위성정당 전략의 파괴력

통합미래당과 그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총선에서 어느 정도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까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 윤곽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국회를바꾸는사람들>의 대표인 곽노현 씨가 최근의 정당지지도 조사 결과에 근거하여 더불어민주당 지지도 40%, 통합미래당+미래한국당 지지도 35%, 여타 정당 지지도 15%를 가정하고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비례대표의원은 더불어민주당 6석, 미래한국당 28석, 기타 정당 13석으로 배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일 미래통합당이 수구 보수 세력을 결집시켜 지역구 253석 가운데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면, 통합미래당과 미래한국당은 국회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다.

공직선거법의 허술한 틈을 이용하여 수구 세력이 총선을 통해 의회 지배 세력이 된다면, 대통령 권력은 관리 권력 정도로 위축되고, 이제까지 어렵사리 이루어진 개혁입법은 물거품이 되고, 수구 세력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입법에 나서게 될 것이고, 수구 세력의 독재가 강화될 것이다. 수구 세력은 재벌, 관료체제, 검찰, 사법부, 대형로펌, 부동산 호족, 정론지의 성격을 상실한 수구적인 거대 언론세력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견고한 카르텔이고, 화폐, 권력, 지위 등 희소한 재화를 배분하는 특권 구조를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다. 수구 세력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고립되고 분산되어 있는 개인들을 방조세력으로 삼고, 그 체제 바깥으로 배설될는지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는 개개인들에게 각자도생의 생존 규칙에 적응하는 것 이외에 달리 길이 없음을 주입시킨다. 그리고 안보와 가난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있는 나이든 사람들에게 안보위기와 경제위기를 가져오는 현 집권세력을 타도해야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애국주의를 주입하여 태극기를 들게 만든다.

법치를 가장한 수구 세력의 독재를 다시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사태 발전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권을 존중하는 법치민주주의와 법치를 가장한 수구 세력의 독재를 구별하는 것이다. 자유주의 세력이 헤게모니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헌법의 권리장전을 존중하고, 법치민주주의를 지키고, 사회적 연대를 촉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수구 세력에 결여된 것은 바로 이러한 헤게모니이다. 혹자는 수구 기득권 세력도 법치민주주의를 지킬 정도로 개명되었기에 자유주의 세력과 본질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수구 기득권 세력이 법치 민주주의에 충실하다면, 그 세력이 집권하고 있을 때 일어난 무수한 국정 농단과 적폐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수구 세력이 법치를 앞세운다고 해도 그것은 법치를 가장한 독재에 지나지 않았다. 이를 보여주는 예를 들자면 한도 없을 것이니, 여기서는 두 가지만 짚고 넘어가겠다. 수구 기득권 세력이 법과 절차에 따라 통합민주당을 해산하고 국정 역사교과서를 도입한 것이 법치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일인가? 법과 절차에 따라 결사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의 본질을 침탈하는 수구 세력의 권력 행사를 법치의 이름으로 승인할 수 있는가?

수구 기득권 세력의 지배는 극우 보수의 독재적 행태를 보여줄 뿐이고, 자유권을 존중하는 법치민주주의와 동떨어져 있다. 자유주의 세력과 수구 보수 세력을 가리켜 초록이 동색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다. 자유를 보장하는 법치 민주주의 없이는 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정치의 실험이 아예 불가능하다. 인권과 자유를 존중하는 법치민주주의는 진보적인 시민세력과 사회세력이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여 자유주의 세력과 다른 방식으로 정치를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조건이다. 따라서 자유권을 보장하는 법치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수구 기득권 세력의 독재에 맞서는 세력들이 여전히 선택하여야 할 기본원칙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 제도가 잘못 설계되었다는 것을 일단 인정하자

수구 기득권 세력의 선거 전술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잘못 설계되었고,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 전술로 인해 형해화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물론 그것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하여 한국 정치의 변화를 추구하고자 했던 많은 사람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판단일 것이다. 개정된 공직선거법은 유권자의 정당지지율을 의회 의석에 비례적으로 반영하는 본래적인 의미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구현하지 못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흉내 내는 데 그쳤다고 해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별칭을 얻었다. 거기다가 부칙 4조가 얹힌 형국이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맛을 보는 것으로 일단 만족해야 할 형편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일단 첫걸음을 떼었으니 준연동제 비례대표제를 개선하여 완벽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나아가면 된다고 스스로 마음을 달랬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제189조 1항의 결정적인 결함은 그러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마저 파탄에 직면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냉정하게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합미래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들만이라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본래 취지를 살리자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통합미래당과 미래한국당 세력이 꼼수를 두었다고 해서 다른 정당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따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원칙주의자의 말도 아니고, 이상주의자의 말도 아니다. 그것은 감상주의자의 허튼 생각에 불과하다. 정치는 시민운동이 아니고, 사회운동도 아니다. 정치는 권력을 배분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주의적인 안목이다.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정당들의 연합을 설계해야 한다

개정 공직선거법의 틀에서 통합미래당 세력에 비례대표의원이 과도하게 배분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는 통합미래당 이외의 정당들도 비례대표의원을 가급적 많이 차지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정당들이 연합하여 비례대표의원 선출에 특화된 정당연합을 만드는 것도 오늘의 상황에서는 마다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자유주의 세력과 진보적인 세력이 비례대표 의석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하여 선거용 정당연합을 성공시키려면, 최소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건들이 충족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정당연합은 더불어민주당의 헤게모니를 최소화할 때 가능할 것이다. 최근에 시민세력들의 일부가 여러 정당들의 ‘정치개혁연합’을 결성하여 총선에 임하자고 제안하였는데, 이 제안은 그럴 듯해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 충분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아마도 그것은 ‘정치개혁연합’을 들고 나온 사람들이 더불어민주당의 헤게모니를 인정하고 들어가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개혁연합’이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해서 비례대표 의석 배분을 위해 정당들 사이의 선거연대를 추구하는 정치 활동에 그친다면,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들과 정파들의 호응이 높을 까닭이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최소한 확보하고자 하는 비례대표의원의 수효를 제시하고 난 뒤에는 가급적 뒤로 물러서서 다른 정당들과 정파들이 비례대표 후보들의 명부를 작성하고 순위를 결정하는 데 주도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다양한 정치적 지향들과 가치들을 표방하는 정당들의 의회 진출을 촉진하고자 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되살리는 효과가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더불어민주당이 수구 기득권 세력의 발호에 맞서 여러 정당들의 힘을 모으자고 말할 때에는 겸손하여야 하고, 자신의 과오에 대해 정직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2016-2017년의 촛불항쟁이 열어젖힌 정치공간에서 대통령 권력을 창출하여 집권세력이 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집권세력으로서 맞닥뜨린 상황은 물론 녹록하지 않았다. 대통령 권력만이 교체되었을 뿐 ‘1987년 체제’에서 기득권을 공고하게 구축하였던 세력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적폐청산과 기득권 체제의 해체를 요구하는 민중 세력과 손을 잡고 수구 기득권 세력을 고립시키고 괴멸시키려는 행보를 결코 보인 적이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줄곧 자유주의 세력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태도를 보였을 뿐이다.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치를 위해 엄청난 노력이 기울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집권 세력 내부에서 검찰 권력을 재배치하는 작업일 뿐 수구 기득권 세력에 의해 공고하게 구축되었던 사회적 재화의 왜곡된 배분 체제를 혁파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재벌체제를 해체하여 민주적인 기업 거버넌스를 구축한다든지, 대기업의 중소기업 수탈을 전면적으로 억제한다든지, 노동의 권력을 강화시켜 자본의 횡포에 맞서게 한다든지 하는 경제 민주화 조치는 집권 초에조차도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계급, 젠더, 생태, 소수자 인권 등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진지한 노력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구 자유한국당은 서로 극한적으로 대립하고 투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적 자원의 배분에 직결되는 이른바 ‘민생 문제’를 다룰 때에는 서로 연합하여 자본 친화적이고 노동 배제적인 법제를 만들어내었고, 줄곧 생태계 위기와 젠더 정의를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일종의 적대적 공존관계라고나 할까? 이러한 더불어민주당의 정치 행태를 바꾸겠다고 다짐하고, 그 다짐을 일관성 있는 정책 공약으로 제시하지 않고서는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수구 기득권 세력을 봉쇄하는 정당들의 연합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큰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셋째, 정당들의 연합은 선거연대를 위한 가설무대에 그쳐서는 안 되고 정책과 가치에 입각한 정책연합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페미니즘, 생태학적 정의, 무조건적 기본소득 등등의 이념적 지향들과 정치적 이해관계들을 아우를 수 있는 최소한의 합의가 있어야, 총선을 통해 의회권력이 구성된 뒤에도, 그 합의에 입각한 정당들 사이의 협치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러한 최소한의 합의를 도출하기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심지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다양한 이념들과 가치들, 각기 다른 이해관계들을 대변하는 정당들의 의회진출을 촉진하는 본래적인 의미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법제화하기 위해 힘을 모은다는 것을 최소한의 기본 합의로 해서 다양한 정당들의 연합을 구축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통합미래당과 미래한국당 세력의 농간에도 불구하고,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라 비례대표의원들을 충분히 확보하고 의회에 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당들은 제 갈 길을 갈 것이다. 그러한 선택은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지금으로서는 오직 한 가지가 중요할 뿐이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요건들을 충족시키는 정당들의 연합이 탄생한다면, 수구 기득권 세력의 의회 지배를 좌절시키고, 자유권을 보장하는 법치 민주주의의 틀에서 자유주의적 헤게모니를 넘어서는 정치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더 크게 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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