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2020/03/15 (19:17) from 211.197.6.114' of 211.197.6.114' Article Number :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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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기본소득’ 도입 논의가 갖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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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기본소득’ 도입 논의가 갖는 의미

강원돈(한신대 교수/민중신학과 사회윤리)

불과 10년 전만 해도 기본소득은 낯선 개념이었다

필자가 2010년 가을에 「기본소득 구상의 기독교윤리적 평가」(『신학사상』 150(2010), 178-215)라는 논문을 썼을 때만 해도, 기본소득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 낯선 개념이었다. 기본소득은 급부 주체, 자격 심사, 수급자, 지급수단, 반대급부 등에 관련해서 독특한 원칙을 충족시킬 때 성립되는 개념이다. 기본소득은 1) 중앙정부 혹은 지방자치단체 같은 정치공동체가, 2) 연령, 성별, 소득, 재산 등에 관한 심사 없이, 3)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인 각 개인에게, 4) 반대급부 없이, 5) 현금으로 지급되어야 한다.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키는 기본소득은 ‘무조건적 기본소득’ 혹은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불리기도 한다. 기본소득이 제도화된다면, 그 제도는 당연히 지속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기본소득 지급을 위한 재원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필자는 임노동이 본위가 된 노동사회의 근본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기본소득을 도입하여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기술 발전에 의해 일자리가 빠른 속도로 체계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에 노동사회는 지탱하기 어렵게 되었고, 노동의무와 복지수급을 연계하는 오늘의 사회복지 체제를 갖고서는 이러한 사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가 강연이나 세미나에서 무조건적 기본소득에 대해 말하면, 많은 사람들은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냐고 하면서 황당한 표정을 짓곤 했다. 필자는 2013년 부산에서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라는 주제로 열리는 WCC 총회를 준비하는 여러 모임들에서 기본소득을 한국 교회의 의제로 제안할 것을 주장한 적이 있었는데, 그 제안은 NCCK 차원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 제안을 접한 사람들은 대부분 기본소득과 기초생활보장을 제대로 구별하지도 못했다.

기본소득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구상이다

오랫동안 필자는 기본소득 구상을 제도화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합의를 도출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구상은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소득을 보장하자는 주장을 그 핵심으로 하고 있고, 소득을 급진적으로 재분배하자는 요구를 그 바탕에 깔고 있다.

업적에 따른 보상을 당연시하고, 업적을 크게 인정받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어렸을 적부터 죽기 살기로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던 사람들에게 업적과 소득을 분리시켜 업적과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소득을 보장하자는 이야기가 어떻게 쉽게 먹히겠는가?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하는 일과 관련해서는 사회적 처지에 따라 사람들의 의견이 크게 갈릴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의 재원은 소득세율 인상, 소비세율 인상, 부유세 징세, 금융거래세 신설, 토지나 플랫폼 같은 공유재에서 발생하는 소득의 균분 등의 수단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거나 몇 가지를 조합해서 마련할 수 있지만, 어떤 방안을 선택하든지 간에 기본소득 도입은 국민소득의 분배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본소득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고, 넘어서야 할 난관들은 매우 많다.

거기에 더하여 기본소득 도입이 노동시장이나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회단체들과 정당들이 기본소득에 대해 입장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기본소득이 대부분 소규모 인구집단이나 특정 지역에서 실험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알래스카는 천연자원 채굴권 로열티 수입의 일부를 균분하여 보편적 기본소득을 제도화하였지만, 그것은 기본소득 도입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이 적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지 않은 경우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

최근에 상황은 크게 변했다. 기본소득은 인기 있는 주제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취업 전망도, 소득 전망도, 생활 전망도 세우기 어려운 ‘헬 조선’에서 기본소득 구상은 호소력을 갖게 되었다. 요즈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서서 기본소득을 도입하자고 목청을 높인다. 청년들은 ‘청년기본소득’을 주장하고, 농민들은 ‘농민기본소득’을 주장한다. 예술가들과 문필가들, 장애인들, 노인들, 종교인들도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지방자치단체장들 가운데 서울시장, 성남시장, 경기도도지사 등은 청년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데 앞장을 섰다. 최근에는 기본소득 도입을 정강 정책의 핵심으로 삼는 정당이 출현했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기본소득에 관한 포럼을 마련하여 정기적으로 모이고 있다.

최근에 기본소득을 전국민적인 관심사로 끌어올린 계기는 코로나 19 감염병 확산이 가져온 사회적 재난이다. 기본소득당이 코로나 19 감염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국민에게 10일간의 휴식과 30만 원의 기본소득을 보장할 것을 주장하자, 경기도지사, 경상남도 지사, 서울시장, 정의당 대표 등이 각기 다른 내용의 ‘재난기본소득’을 제안하고 나섰다. 코로나 19 감염병 사태가 몰고 온 사회적 재난과 심각한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중앙정부가 추가경정 예산안을 짤 때 ‘재난기본소득’ 예산을 반영하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 13일 전주시 의회는 4월부터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조례를 제정하고 그 예산을 따로 책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중앙정부가 코로나 19가 초래한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추경 예산안을 마련하고 국회 심의와 의결을 하는 과정에서 ‘재난기본소득’ 도입은 뜨거운 이슈가 된 것이다.

‘재난기본소득’은 반드시 도입되어야 한다

‘재난기본소득’ 개념이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살펴보아야 할 점들이 많이 있지만, 필자는 ‘재난기본소득을 과감하게 도입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19는 세계적인 유행병이 되었고, 코로나 19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거나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재난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코로나 19가 가져온 사회적 재난에 노출된 모든 국민에게 국가가 예외 없이 재난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당연하다. 재난이 크게 덮친 지역과 재난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선별해서 재난극복 지원금을 주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코로나 19가 가져온 피해는 감염이 집중된 대구, 경북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에 걸쳐서 나타났고, 모든 국민의 일상을 마비시키다시피 했으며, 내수 경제의 전 영역과 전 부문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침체시켰다. 이런 점에서 모든 국민이 코로나 19 재난으로 인한 피해자로서 재난수당을 받을 자격이 있다.

필자가 ‘재난기본소득’을 과감하게 도입할 것을 주장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재난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을 급부의 대상으로 삼기에 국가의 사회적 급부를 옹색하게 해 왔던 선별적 급부 프레임을 깨뜨리는 효과를 갖는다. 국가의 급부가 사회적 연대를 강화시키고 내수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국가의 급부는 보편적 급부를 원칙으로 대담하게 설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재난기본소득’의 도입이 시민사회와 정계에서 논의되거나 실제로 이 제도가 도입된다면,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사회적 토론과 정치적 토론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이제까지 기본소득은 여러 사람들과 단체들에 의해 논의되어 왔지만, 기본소득 도입이라는 이슈를 놓고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합의를 밟는 과정이 제대로 마련된 적이 없었다. 이 두 가지 점에서, ‘재난기본소득’은 우리 사회에 기본소득 논의를 끌어 들이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재난기본소득’이나 ‘청년기본소득’이나 ‘농민기본소득’은 과연 기본소득인가?

‘재난기본소득’을 계기로 해서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 정치적 토론이 활성화된다면, 이제까지 ‘기본소득’이라는 낱말과 결합되었던 다양한 제안들을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기본소득을 제도화하는 경로들을 유연하게 탐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토론 과정에서는 기본소득 개념과 그 원칙들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재난기본소득,’ ‘청년기본소득,’ ‘농민기본소득’ 등이 기본소득 구상에 얼마큼 부합하는가를 살필 필요가 있다.

‘재난기본소득’은 모든 국민들에게 예외 없이 재난수당을 지급하자는 점에서 보편성의 요구와 무조건성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어서 기본소득의 성격을 띠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재난기본소득’은 재난에 대응하는 한시적 성격을 띠고 있고, 그 소요재원은 국가 재난대처 예산이나 국채를 통해 임시로 마련된다. 이 점에서 ‘재난기본소득’은 기본소득 구상이 중시하는 지속성과 안정적인 재원 확보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없다.

전주시 의회가 결의한 ‘재난기본소득’은 코로나 19의 피해를 받은 사회적 약자들 가운데 기초생활보장 급부나 실업급여 등 기타 급부를 받지 않는 사람들을 따로 추려내어 재난수당을 1회에 한하여 지급하는 것으로 설계되어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한정된 재원의 지출을 조정하여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한 것은 빛나는 결정이지만, 전주시의 ‘재난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의 요건들을 거의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몇 몇 지방자치단체들이 시도했던 ‘청년기본소득’은 특정 연령의 청년들에게 1회에 한하여 소정의 현금이나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방식을 취했다. ‘청년기본소득’은 청년들의 사회 참여를 진작시키자는 좋은 취지의 조건 없는 급부이고, 바로 이 무조건성이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실험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청년기본소득’은 보편성, 지속성 등과 같은 기본소득의 요건들을 충족시켰다고 볼 수 없다.

‘농민기본소득’은 오늘의 농촌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절박한 처지를 감안할 때 소득보전 효과와 귀농 유인 효과를 갖는 매우 좋은 취지의 제안이고, 국가는 이를 대담하게 수용하여 시행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농민에 한정된 기본소득은 보편적 기본소득의 요건에는 맞지 않는다. 농민이 국민 생활에 꼭 필요한 농산물을 생산하고 생태학적 경관을 유지하는 데 참여하여 공헌하고 있으니, 국가가 이를 인정하여 모든 농민들에게 일종의 참여수당을 충분히 지급하여 소득보전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 정치적 토론을 철저하게 할 때가 왔다

필자가 ‘재난기본소득,’ ‘청년기본소득,’ ‘농민기본소득’ 등의 제안을 존중하면서도 그 제안들에 대해 비판적인 언급을 하는 것은 기본소득에 관한 사회적 논쟁과 정치적 논쟁을 철저하게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구상과 그 도입에 관련해서 시민단체들과 사회단체들과 정당들은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할 수 있고 그 의견들은 큰 편차를 보일 수 있다. 편차가 너무 커서 아예 사회적 합의조차 이루지 못할 수도 있고, 기본소득의 규모나 단계적 실현에 관련된 다양한 의견들을 조정하여 타협안을 마련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본소득 개념과 기본원칙들을 가다듬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기본소득 구상을 교조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사회의 대안을 마련하는 길에서 방향을 잃지 않으면서 현실의 조건들 아래서 그 실현 방안을 유연하게 모색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점에서 청년이나 농민이나 노령인구에게 기본소득을 시범적으로 지급하고, 단계적으로 전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을 강구할 수도 있다.

우리보다 앞서서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정치적 논의를 활발하게 전개했던 독일에서는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한 실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독일노동조합총연맹과 독일사민당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노동의 의미를 놓치게 하고 현금지급에 만족하게 한다는 이유를 들어 기본소득 개념을 거부했다. 기독교민주당과 기독교사회당은 초기에 기본소득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으나 최근에는 기본소득 개념이 사회국가의 보충성 원칙을 초과한다고 판단해서 이를 배격했다. 자민당은 기본소득을 거부하고 마이너스 소득세에 근거한 시민수당을 옹호했다. 녹색당은 기본소득을 반대하고 녹색 기본보장을 제안했다. 좌파당은 기본소득 대신에 노동의무와 연계되지 않는 기본보장과 노령자 기본보장을 요구했다. 독일개신교협의회의 사회과학연구소는 기본소득을 갖고서 사회국가의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소박한 생각이라고 비판했고, 독일가톨릭주교회의는 기본소득이 노동을 통해 공동체에 기여해야 할 각 사람의 책임을 저버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독일에서 기본소득을 통하여 노동사회 너머의 대안적인 사회를 형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처럼 다양한 이견들을 제시하는 사회세력들과 정치세력들, 심지어 종교세력들을 상대로 기본소득 구상의 타당성과 제도적 실현 가능성을 설득해야 한다. 기본소득에 관한 사회세력들과 정치세력들의 의견들은 서로 날카롭게 대립하는 이해관계들을 반영하고 있기에, 기본소득 구상을 실현하려는 사람들은 실로 어려운 길을 걷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기본소득 개념이 제시됨으로써 독일의 모든 사회세력들과 정치단체들이 모든 독일 사람들의 기본 생활을 보장하는 것과 관련하여 강령적 수준의 입장을 정리하도록 자극을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구상을 갖고 사람들을 쉽게 설득해서 기본소득 제도를 큰 어려움 없이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한 생각은 소박하고 감상적이다. 노동사회가 해체될 수밖에 없기에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기본소득이 이치에 맞고 인구의 대다수에게 유리하게 제도화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계급, 계층, 젠더 상의 지위와 처지에 따라 사회적 이해관계들이 첨예하게 갈려 있는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 구상은 엄청난 반대와 이견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원칙과 전망을 갖는 현실주의자의 안목이다.

이러한 현실주의적인 안목을 갖고서 기본소득을 통해 대안적인 사회를 형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일관성 있는 원칙을 견지하되, 기본소득에 관한 의견들의 편차와 유사 제안들을 검토해서 접점을 찾고, 기본소득을 단계적으로 제도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 구상의 헤게모니를 구축하고 강화하는 길이다. 그것은 당연히 긴 호흡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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