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2020/04/06 (09:28) from 221.158.115.246' of 221.158.115.246' Article Number :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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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에 제동을 걸고 새로운 경제를 형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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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에 제동을 걸고 새로운 경제를 형성하자

강원돈(한신대 교수/민중신학과 사회윤리)

코로나19 팬데믹은 지구화의 동력을 꺼뜨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 곳곳에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사람들의 공적인 생활은 거의 중단되었다. 경제는 마비되다시피 했다. 국가는 방역을 위해 사람들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고, 헝가리와 폴란드 같은 나라들에서는 팬데믹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악용하여 권위주의적인 정부가 들어서고 있다. 자본주의는 국가가 찍어내는 화폐와 국가의 신용보증으로 연명하고 있다. 세계 무역과 인적 교류는 극적으로 축소되고 있다. 세계의 모든 공항들이 텅 빌 정도로 거의 인적이 끊겼고 유수한 항공사들이 파산 직전에 몰려 국유화의 대상이 된 것이 그 단적인 증거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온 변화는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팬데믹의 충격과 영향은 몇 세대에 걸쳐 사람들의 삶의 모든 영역들에 큰 흔적을 남길 것이다. 무엇보다도 팬데믹은 지난 40년 동안 세계 여러 나라들의 경제를 강력하게 엮고 상호의존도를 고도화하는 과정이었던 지구화의 동력을 꺼뜨리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 중국, 일본 등은 팬데믹 확산을 막겠다고 국경과 영역의 경계를 사실상 폐쇄했고, 심지어 유럽연합은 셍겐조약이 보장했던 역내 자유 통행을 제한하여 물자의 수송조차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각국 정부들은 전염병 예방과 퇴치와 같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영토 안에서 안정적으로 생산되고 비축되어야 할 물자들을 확보하지 못해서 허둥지둥 대고 있다. 팬데믹은 지구화가 가져온 가장 치명적인 결과인 사회적 양극화로 인해 무수히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더 큰 고통을 당하고, 생활 기반이 곧바로 붕괴되어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들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 정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엄청난 규모의 채권을 발행하고 있다. 그 부담은 십중팔구 후세대에게 고스란히 떠넘겨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 누가 지구화 과정을 지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금융자본과 거대 산업자본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강력하게 추진된 지구화는 지배적인 자본가들조차 옹호하기가 머쓱하게 되었고, 지구화 과정을 옹호하고 이를 법제화하는 데 앞장 서 왔던 신자유주의 정부들조차 이를 재고의 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세상이 바뀐다고 말들 하지만, 금융자본은 세상이 바뀌는 것을 원치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를 전망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어 지금까지와 다른 세계를 형성할 수 있는가를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금융자본가들과 거대 산업 자본가들이 그런 세상을 만들까? 그들과 한통속이다시피 했던 정부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나설까? 지구화에 대한 입장은 자본의 성격과 활동 방식에 따라 다를 것이고, 각국 정부의 입장은 지구화된 경제에서 각 나라 경제가 처한 형편과 위상에 따라 유동적일 것이다.

금융자본은 지구화를 포기할 마음을 먹지 않을 것이다. 지구화는 금융의 지구화를 통해 촉발되었고, 금융자본가들은 지구화로부터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금융자본가들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난파하는 위기를 기회로 뒤집는 능력을 가진 것 같다. 지난 2008년의 금융위기로 인해 지구 경제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만, 이 위기가 진행되고 극복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은 세력은 단연 지구적 네트워크를 통하여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금융자본가들이었다.

2008년 세계적인 금융공황을 불러일으킨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택을 사라고 부추기면서 발행한 주택담보부채권을 잘게 쪼개 할인하여 현금화하는 기법과 이를 증권에 섞어서 파생상품을 개발하여 판매하는 기법을 개발한 금융자본가들에 의해 촉발되었고, 그들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일이었다. 물론 뉴욕 월스트리트를 주름 잡던 펀드 매니저들이 하루아침에 쪽박을 차고 동전을 구걸하는 장면이 잠시 연출되기는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미국 주도 아래서 G20 중앙은행들이 일제히 엄청난 신용을 공급하여 금융공황으로 발생한 신용함몰을 메우고 난 뒤에도 역사상 유례없는 저금리 정책과 양적완화 정책이 지속되자 금융자본가들은 자산 투자를 통해 엄청난 지대를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월스트리트 금융자본가들은 값싼 돈을 끌어들여 갖가지 투자 기법을 활용하여 천문학적인 이익을 다시 얻었고, 엄청난 규모의 화폐를 들고 증권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을 헤집고 다니며 엄청난 거품을 발생시켰다. 2008년 금융공황 같은 금융위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G20 국가들이 은행 건전성 확립과 금융거래법 강화에 진척을 보기는 했지만, 금융자본가들이 투기적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이 봉쇄된 적은 결코 없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들인 위기도 금융자본가들에게는 호기가 될 것이다. 팬데믹이 몰고 온 경제위기와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하여 미국과 유럽연합 중앙은행들을 위시하여 거의 모든 나라들의 중앙은행들이 전격적인 금리인하 정책내지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추진하는 데 더하여 회사채 매입까지 불사하는 무제한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들고 나섰으니, 금융자본가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왕성한 활동력을 과시할 것이다. 이번에도 엄청난 규모의 화폐를 값싸게 공급하지만, 금융 투기를 막는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한 나라는 단 하나도 없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지구적 금융 네트워크를 통하여 천문학적 수익을 거두는 금융자본가들이 앞장서서 지구화에 제동을 걸겠다고 나설 리는 만무하다.

산업자본도 지구적 차원의 가치생산 사슬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지구 차원에서 활동하는 거대한 산업 자본가들은 어떻게 해서든 가치생산 사슬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싶어 할 것이다. 가치생산 사슬은 지구적 산업 플레이어들이 지구 곳곳에 분산되어 있는 가장 유리한 생산입지의 공장들에 저렴한 가격으로 부품들을 주문하고, 이 외주화된 부품들을 적시에 조달하여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완제품을 조립·생산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어느 곳에서 완제품이 생산되든 그 제품은 가장 잘 팔리는 시장으로 수출된다. 이러한 지구적 생산 네트워크와 판매 네트워크를 구축한 산업자본가들은 저비용·고수익 사업을 보장하는 지구적 개방경제 체제를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지구적 개방경제 체제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이 효과적으로 저지되고, 노동비용과 환경비용이 크게 절약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거대 산업자본가들은 가치생산 사슬을 위협하는 팬데믹 위기나 보호주의 장벽을 우회하는 장치들을 마련하는 선에서 지구화를 계속 추진하려고 들 것이다.

그러나 팬데믹 위기가 두서너 달 지속되지 않고, 몇 년간 계속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코로나19 감염증과 유사한 질병이 계속 발생하여 팬데믹을 일으키고, 그 발생 주기가 점점 더 짧아진다면? 그렇다면, 산업자본가들은 가치생산 사슬을 재편성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압력 아래 놓이게 될 것이고, 국가가 국민경제의 틀에서 산업들 상호간의 연관을 높이는 정책들을 강력하게 추진하도록 요구할 것이다. 이것은 산업자본가들이 금융자본가들과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뜻이고, 바로 이 점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산업자본가들의 요구가 그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제시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고, 이 또한 각별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가치생산 사슬은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

미국처럼 세계통화를 공급하는 나라는 지구적인 개방경제 체제를 유지하려고 들 것이다. 트럼프는 달러 기축통화제도가 미국을 정점으로 한 지구적인 공납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보호주의 장벽을 치겠다는 허세를 취하고 있지만, 그것은 공납체제의 중심부에서 주변화된 백인 노동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선동적인 화법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처럼 경제의 지구화 과정에 가장 개방적인 입장을 취했던 나라들도 자유무역의 교리에 충실한 개방경제 체제를 옹호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국제적인 가치생산 사슬이 교란되어 장기적으로 불안정하게 된다면, 개방경제 체제에 오랫동안 익숙했던 국가들도 어쩔 수 없이 가치생산 사슬을 국민경제의 틀에서 새롭게 구성하고 무역과 내수의 비율을 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는 강력한 경제정책, 산업정책, 기업정책, 재정정책, 지역개발정책 등을 묶는 국민경제의 거시계획을 다시 들고 나올 공산이 크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국가의 거시계획 정책과 구조조정 정책은 산업자본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데 그칠 뿐 사회적 양극화를 넘어서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세상을 여는 데 전혀 이바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역사는 국가와 산업자본의 결합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들에서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부를 강화시켰고, 심지어 전쟁을 부추기기도 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세상이 바뀌기는 바뀔 것인데, 약탈을 일삼는 금융자본이나 노동지배와 환경파괴를 바탕으로 수익을 창출해 왔던 산업자본이나 이를 방조하는 국가가 주도하는 변화가 다른 세상이 될 것 같지 않다.

지금까지와 다른 세상을 형성할 사람들은 이 땅의 작은 사람들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다른 세상을 형성할 세력은 그 팬데믹에 의해 가장 큰 피해와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서 형성될 것이다. 점포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임대료를 걱정하는 자영업자들, 실직자들로 내몰리는 비정규 노동자들, 조업단축으로 인해 임금 삭감을 당하는 노동자들, 노동자도 아니고 사업자도 아닌 특수직 종사자들, 소상공인들,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지식인들, 이 땅 위의 작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을 불러내는 장본인들이 될 것이다. 국가가 천문학적인 채권을 발행하여 마련한 돈으로 펜데믹에 의해 생계 위협과 생활의 파탄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재난수당을 지급하고 긴급 자금을 무상으로 제공하여 숨을 돌릴 수 있게 한다고 해도, 그들은 지구화된 경제의 기반이 흔들거리고 쉽게 무너져 내릴 수 있고 지구화 네트워크에 결속된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국가들의 긴급 연명장치에 의존할 만큼 취약하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다.

물론 텅 빈 거리들과 닫힌 상점들, 폐쇄된 직장들과 공장들, 얼어붙은 물류, 인적과 상품이 끊긴 항구들과 공항들 같은 가시적인 이미지들을 기억한다고 해서 그 기억을 나누는 사람들이 다른 세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저절로 외치지 않을 수도 있다. 영문도 모른 채 우두망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화와 자본주의 경제가 수렁에 빠졌다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들부터 이제까지와는 다른 세상을 만들자고 외치기 시작해야 하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목소리를 높여서 우리 시대의 작은 사람들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지구화 이후의 경제를 형성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시민사회와 사회세력들이 그 힘을 모은다면, 모든 시민의 생명과 건강과 복지를 보장하는 국가를 시민의 이름으로 불러낼 수 있다. 노동의 힘으로 자본의 맹목적인 이익 추구와 횡포를 제어할 수 있다. 시민들과 사회세력들이 모은 힘이 국가를 견인해서 내수에 굳건하게 발을 디딘 개방적인 국민경제를 형성하는 청사진인 거시경제 계획을 수립하도록 만들 수 있다. 그 거시경제 계획은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뉴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로 포장한 자본주의 경제가 그 동안 속속들이 파괴한 사회적 연대와 생태계의 건강과 안정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태계의 건강성과 안정성을 보장하는 조건 아래서 사회적 연대와 통합에 바탕을 둔 가치생산 사슬을 구성할 수 있도록 국가는 강력한 사회정책과 복지정책과 환경정책에 결속된 산업정책과 기업정책, 재정정책, 지역개발정책 등등을 일관성 있는 구도 아래서 추진하고, 시민사회와 사회세력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그 정책들을 관철하는 데 필요한 입법의 길을 가야 한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다른 세상이 와야 한다. 지금까지의 세상이 지속된다면, 존엄성을 지닌 한 사람 한 사람이 생명과 건강과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폭로한 바와 같이, 지구화와 자본주의 경제는 빠른 속도로 생활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세상은 세상이 바뀐다고 말을 하기만 해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외치며 서로 결속해서 힘을 모으고 행동할 때에만 다른 세상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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