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2020/04/27 (08:55) from 211.197.6.114' of 211.197.6.114' Article Number :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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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뉴딜의 구상을 공론화위원회에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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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뉴딜의 구상을 공론화위원회에 맡기자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민중신학과 사회윤리)

‘한국판 뉴딜’ 논의가 공식화되다

지난 4월 22일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크게 위협받는 고용안정과 혁신성장을 위해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겠다고 공식화했다. ‘한국판 뉴딜’ 추진은 엄청난 함의를 지니는 주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주목을 크게 끌지 못했다. 아마도 그것은 그날 동시에 발표한 40조 원 규모의 기간산업 안정기금 조성과 10조 원에 달하는 고용안정기금 조성 계획 등 현안에 직결된 뜨거운 이슈들에 의해 ‘한국판 뉴딜’ 이슈가 가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한국경제가 직면한 위기의 폭과 깊이를 생각해 보면, 주요 언론이 그렇게 이슈를 다루는 태도를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가치생산사슬이 세계 도처에서 끊기고 인적 교류와 물적 교류가 급속히 둔화되고 판로가 막혀 붕괴 위기에 직면한 항공·해운·자동차·조선·기계 등 기간산업을 지키는 것은 경제 기반과 고용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당장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조치이다. 이러한 기간산업 지원 조치는, 오직 재벌과 자본가들에게 지대 추구 행위의 빌미를 주지 않고 그 부담이 국민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지 않도록 정부가 확실한 장치를 마련하여 시행할 때에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IMF 경제관리 시기에 공적 자금 투입에 따르는 도덕적 해이를 충분히 겪은 바 있는 정부도 그렇게 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고용유지기금 확대 조성은 그 사회적 성격이나 시의 적절성을 놓고 볼 때 환영할 만한 조치이다. 이미 많은 시민들과 전문가들이 기업과 공장이 폐업 수순을 밟는 대신에 조업단축을 하더라도 고용을 유지하도록 고용유지금 지원을 최대화하고,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영세사업자 등 고용안정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챙기기 위해 고용안정기금을 확충할 것을 요구해 왔다. 아마 고용 위기가 더 심화될 경우, 고용유지기금은 더 많이 조성되어야 할는지 모른다.

엄청난 재정계획을 동반하는 기간산업 지원과 고용안정 지원 등과는 달리, ‘한국판 뉴딜’은 대통령이 추진 의사를 표명하고 관계부처에 기획단을 구성하여 준비할 것을 지시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아직 구체적인 겻이 잡히지 않기 때문에 언론도 ‘한국판 뉴딜’을 크게 보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는 크게 주목할 내용이 두 가지 담겨 있다. 그는 ‘한국판 뉴딜’이 “범국가적 차원에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규모 사업을 대담하게 추진할 필요”에서 구상되어야 하고, 그 구상이 일자리 창출뿐만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혁신성장을 준비”하는 것과 맞물려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한국판 뉴딜’ 추진의 절박성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을 보아,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온 경제위기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 운영이 엄청난 도전에 직면했음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뉴딜’은 1929년 대공황 이후 지속되었던 경제침체와 실업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에서 루즈벨트가 추진한 사회·경제정책이다. 루즈벨트는 기존의 자유주의 정책 프레임을 깨뜨리고 케인즈주의적 국가개입주의 프레임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함으로써 미국 사회와 경제 운영을 크게 변화시켰다. ‘뉴딜’은 노동자 권력을 강화시키고,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고, 국가의 강력한 경제 개입을 서로 긴밀하게 통합하는 방식으로 시장경제 체제의 운영을 혁신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굳이 ‘뉴딜’이라는 표현을 끌어들이면서까지 ‘한국판 뉴딜’ 추진을 공식화한 것은 현재의 위기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도전에 대응하려면 “과거의 대책이나 방식을 넘어 새로운 비상한 대책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로써 그는 발상의 전환과 프레임의 재설정 없이는 한국 사회와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을 가감 없이 표명했다. 그러한 절박성 때문에 그는 ‘신속하게’ 기획단을 구성해서 ‘한국판 뉴딜’ 정책을 준비할 것을 지시하였을 것이다.
 
오늘의 기획재정부가 ‘한국판 뉴딜’을 구상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한국판 뉴딜’ 구상은 범국가적 차원에서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혁신성장을 추구한다는 것 이외에 밝혀진 것이 없다. ‘한국판 뉴딜’의 방향, 이행계획과 추진계획, 재정수단의 확보 등은 앞으로 구성될 기획단에 위임되어 있다. 정부 조직을 감안한다면, 기획단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우두머리로 하고 관계부처 장관들을 주요 구성원으로 하는 위원회 형태가 될 것이다. 아마 정책자문을 하는 전문가위원회가 별도로 구성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기획재정부 중심으로 ‘한국판 뉴딜’이 제대로 설계될 수 있을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획재정부는 그 전신이었던 경제기획원 시절에는 1960년대 초부터 군사정부가 추진했던 경제개발계획의 담당부서로서 국가자본주의 프레임에 갇혀 있었고, 1994년 경제기획원 해체 이후에는 지구화를 앞세운 신자유주의 프레임에 포획되어 있었다. 1990년대 말의 IMF 경제신탁 이후에 신자유주의는 기획재정부의 교리가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획재정부는 비용 대 효과의 계산에 따라 경제성장을 위해 값싼 에너지를 대량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프레임에 갇혀서 대한민국을 1인당 탄소배출 세계 1위, 탄소 총량 배출 세계 7위 국가의 반열에 올려놓는 데 이바지했다.

‘한국판 뉴딜’은 수출입국과 재벌육성을 중심으로 한 개발연대의 국가자본주의 프레임으로 되돌아가는 것일 수도 없고, 금융과 경제의 지구화에 최대한 적응하면서 극단적인 사회적 양극화를 초래한 현행 신자유주의 프레임을 고수하는 방식일 수도 없을 것이다. 국가가 총자본가로서 자본의 축적과 배분, 경제 기획과 집행 등을 수행했던 국가 주도적 경제성장은 그 정치적 표현이었던 독재와 더불어 낡은 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자본과 시장의 논리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신자유주의적 프레임은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자생력을 잃고 국가의 발권력에 기생하며 연명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뻔히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파탄은 고삐 풀린 금융자본이 가져온 2008년의 지구적 차원의 금융공황에서 분명히 드러났고, 가치생산 사슬을 곳곳에서 끊음으로써 실물경제를 지구적 차원에서 일시에 정지시키다시피한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실로 판명되었다. 국가의 발권력과 신용보증이 없다면 산업 자본은 궤멸하지 않을 수 없고, 이에 맞물려 금융자본도 무너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생생하게 경험되고 있는 것이다.

값싼 에너지 공급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방식도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국가별 탄소배출 총량을 급진적으로 감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원자력 발전을 통하여 ‘값싸고 깨끗한’ 에너지를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원자력 발전이 그 건설로부터 폐기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비용이 들고 장기적으로 책임 있는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완전히 무시할 경우에만 가질 수 있는 단견이요 억견일 것이다.

국가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에너지의 값싼 대량공급 - 이 세 가지 프레임은 대한민국 경제에 그 어떤 미래도 약속하지 못한다. ‘한국판 뉴딜’은 이 낡은 프레임들을 깨뜨리고 새 프레임을 구축할 때 비로소 제대로 구상될 것이다. 이제는 사람과 사회와 경제와 생태계를 대하는 관점이 획기적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낡은 프레임들과 교리들에 쪄들어 있는 기획재정부 장관과 관료들의 머리에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기획재정부의 혁파와 재구성은 별도로 논의해야 할 큰 주제이지만, 기획재정부가 ‘한국판 뉴딜’을 구상할 능력을 갖추려면 획기적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기서 일단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다. 기획재정부에서 경력을 쌓아서 기획재정부의 프레임과 교리의 화신이 된 사람이 기획재정부의 수장이 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의 모든 부서들에 예산 지침을 주고 그 지침의 틀에서 부서별로 마련한 예산 계획을 심사하는 기획재정부처럼 막강한 부서의 관료체제는 반드시 시민적 통제 아래 놓여야 하고, 시민적 통제권을 구현하는 장관은 고위 관료들에 대한 인사권을 실효성 있게 행사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피아’라는 음산한 은어가 암시하듯이, 기획재정부 관료들이 똘똘 뭉쳐서 신자유주의적인 프레임과 교리를 앞세워 대통령의 의지를 짓밟고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정치적 의지를 거역하는 참람한 짓을 서슴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100대 공약인 사립대학교의 공영화 정책을 뒷받침하는 예산을 거의 편성하지 않는다든지, 신자유주의적인 재정긴축 교리인 재정안정성을 내세워 전국민에게 재난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에 어깃장을 놓으려 드는 행태가 그 실례이다. 그러한 기획재정부가 어떻게 신자유주의적인 프레임과 교리를 뛰어넘어야 가능한 ‘한국판 뉴딜’의 설계도를 작성할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한국판 뉴딜’은 누가 구상해야 하는가?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겠다고 나서자 기획재정부는 원격의료, 에듀테크, 온라인투오프라인(O2O) 등을 거론하고, 고용 대책 차원에서 사회적 일자리 창출 등을 기획한다는 이야기를 흘리고 있다. 필자는 이와 같은 기획재정부의 논의를 보고 한심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기획재정부가 기획하고 싶어 하는 사업들은 ‘한국판 뉴딜’의 방향이 설정된 이후에 검토될 수 있는 하위 프로그램들의 몇 가지 예에 불과할 뿐이다. ‘한국판 뉴딜’의 큰 그림을 대담하게 그리는 작업에 관련된 이야기는 기획재정부에서 전혀 들려오지 않는다. 기획재정부가 논의하는 디지털 프로그램들이 “범국가적 차원에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규모 사업”을 추진하는 데 적합한가는 별도로 따져보아야 할 사안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디지털 업계에서 논의되었던 사업들을 ‘한국판 뉴딜’의 혁신성장 아이템으로 꼽는 것을 보고 기획재정부의 창의성을 칭찬하고자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장 시절에 추진하려다가 좌절한 원격의료를 ‘한국판 뉴딜’의 여러 프로그램들 가운데 하나로 슬그머니 끼워놓는 것이 좋은 모양새가 아니라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점들을 고려해 보건대, 기획재정부 같은 기존의 정부 부서는 ‘한국판 뉴딜’을 구상하는 적절한 주체가 아니다. ‘한국판 뉴딜’은 국가자본주의 교리, 신자유주의 교리, 값싼 에너지 공급 교리 등에서 자유로운 전문가들과 시민들의 집단지성이 발현되고 의견수렴이 이루어지는 공론화위원회 같은 기구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 사회는 신고리 5호기와 6호기의 건설 여부에 관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론화위원회를 운영한 경험이 있다. 국회가 ‘한국판 뉴딜’에 관한 공론화위원회에 관련된 법을 제정하고 대통령 명령으로 시행령을 제정한다면, 정부의 관련부서에서 그 시행을 맡아서 공론을 모으면 될 것이다. 공론화위원회 입법의 핵심은 위원의 위촉(혹은 선출)과 위원회 구성에 관한 사항, 위원회에서 수렴된 의견이 정부의 결정과 의회의 입법에 대해 갖는 기속성(羈束性)에 관한 사항일 것이다.

우리나라 시민사회와 사회단체의 역량을 감안해 볼 때, ‘한국판 뉴딜’의 방향과 성격에 관한 의견 수렴은 공론화위원회에서 충분히 성사될 수 있다고 본다. 시민들과 사회단체들이 골고루 참여하여 숙의민주주의의 틀에서 ‘한국판 뉴딜’에 대한 토론을 통하여 의견을 수렴해 가는 것은 실로 스펙터클한 광경일 것이다. 필자는 공론화위원회의 숙의 과정을 통하여 사회적 연대, 생태학적 정의, 민주주의와 참여를 핵심으로 하는 ‘한국판 뉴딜’의 큰 그림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도출될 수 있다고 낙관한다.

한국 교회를 향한 제언

‘한국판 뉴딜’은 향후 우리나라 사회와 경제를 운영하는 큰 지침이 될 것이다. 이러한 지침을 정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합의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한국 교회는 제 때에 바른 목소리를 전달하여야 한다. 상황에 대한 적절한 인식과 설득력 있는 논거를 갖고서 ‘한국판 뉴딜’에 관한 교회의 의견을 제시한다면, 그 의견은 시민사회와 사회단체들과 정치단체들에서 진행되는 논의 과정에 반영되어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합의를 이룩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공론화 작업이다. 교회의 공론화 작업은 국민적 관심사들과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교회의 입장과 의견을 표명하는 독일개신교협의회의 ‘건의서’(Denkschrift)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필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공적인 절차를 거쳐 전문가위원회를 꾸려서 ‘한국판 뉴딜’에 관한 의견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이를 한 권의 작은 단행본으로 정리하여 한국 교회와 시민사회와 국가에 제출하기를 바란다. NCCK는 1998년 IMF 경제신탁이 진행되던 때에 「통일시대의 지속가능한 균형성장 경제」라는 소책자 형태의 토론제안서를 한국 교회와 시민사회와 국가 앞에 내놓은 적이 있다. 그 경험을 살려서 NCCK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한국 사회와 경제의 운영에 관한 한국 교회의 의견을 수렴하고, 시민사회와 국가를 상대로 해서 ‘한국판 뉴딜’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하는 것은 현 시점에서 교회의 사회적 신인도를 높이는 최선의 선택들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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