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2020/05/04 (19:20) from 211.199.155.108' of 211.199.155.108' Article Number :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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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적 정책 혼조에서 벗어나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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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정책 혼조에서 벗어나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민중신학과 사회윤리)

‘선한 대통령’의 이미지가 가리고 있는 것들

문재인 대통령은 ‘선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자유와 기본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주의자로서 안정된 리더십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의 위기를 적절하게 관리하고 통제하면서 강력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 4·15 총선에서 여당과 그 위성정당이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대통령의 덕택이 컸다.

‘선한 대통령’ 담론은 대통령이 이 나라에서 최고의 막강한 권력을 지닌 공직자이고, 그 권력이 군대, 검찰, 경찰, 정보기관, 구치소 등의 권력기관들뿐만 아니라, 행정부서들과 각종 국가 기구들, 심지어 공기업 등을 통하여 관철되고 있다는 것을 깜빡 놓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대통령의 참모들과 장관들의 정책적 실패와 행정 실패를 질책할 때에도 ‘선한 대통령’이 침모들과 장관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허락했을 리 만무하다고 생각하곤 한다. 대통령으로부터 그의 참모들과 장관들을 분리시키는 것은 ‘선한 대통령’ 이미지를 유지하는 전략 코드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참모들과 장관들은 집행권력의 구성체이다. 대통령이 선출권력으로서 중앙정부의 행정권력을 국민으로부터 일임받고, 그 권력을 참모들과 장관들에게 위임하여 대통령의 몸을 받고 일하게 한 이상 정책 실패와 행정 실패의 책임은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 국가 안보와 치안 질서에 대한 막중한 책임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대통령은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에 직결된 사회정책과 경제정책,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재정정책에 대해서도 응당 그 권력의 크기에 따르는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사회경제 분야에서 정책 실패가 나타날 경우, 이에 대한 국민의 책임 추궁과 비판은 대통령에게 가장 따갑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경제 분야와 재정 분야에서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그 동안 문재인 정부의 사회경제 정책과 재정정책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정부 출범 초기에 내건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혁신경제의 정책 트리오는 거의 실패했다. 이 정책 트리오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금융자본의 약탈, 큰 자본(대기업)의 작은 자본(중소기업) 수탈,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서 이중, 삼중으로 나뉜 노동시장 분단, 부동산 투기 등을 극복하는 실질적인 경제민주화와 사회민주화 조치가 취해져야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정작 이러한 전제조건들을 마련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트리오를 구성하는 세 가지 정책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지도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재벌의 시장지배와 중소기업 수탈을 방기하다 시피 하는데, 중소기업이 어떻게 자본을 축적하여 기술혁신에 나설 수 있겠는가? 재벌에 속한 대기업이 정점에 서서 하청 중소기업들을 지배하면서 부품을 외주화하고 부품 단가를 후려치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어떻게 기술개발과 노동임금 상승 여력을 확보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소득주도성장의 주요 정책이었던 최저임금 인상은 소규모 자영업자들과 그들에게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의 격렬한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불안정 취업자들을 실업자로 전락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연출했다. 문재인 정부는 결국 최저임금 상승 정책을 포기하고 말았다.

중기에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초기의 정책 트리오를 폐기하고,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으로 회귀하여 혁신성장을 추진했다. 초기의 청와대 경제 참모진과 기획경제부 장관을 위시한 경제 부처 장관들이 교체되고, 김상조 정책실장과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을 중심으로 하는 현재의 경제 분야 참모진과 장관들이 자리를 잡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삼성 그룹 대표역을 위시한 재벌 총수들과 자주 접촉하면서 재벌의 투자 촉진과 사업 진출에 넓은 길을 깔아주는 데 공을 들였지만, 경제 민주화와 사회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은 외면했다. 그 단적인 예는 문재인 정부가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결사의 자유라는 기본권으로 인정하는 국제노동협약 제87조와 산별 노사교섭에 문을 열어주는 단체교섭권에 관한 국제노동협약 제98조의 인준을 추진하지 않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두 가지 협약의 인준은 노동자들의 권력을 강화하여 자본가들의 권력에 맞서게 하는 경제 민주화와 사회 민주화의 첫 걸음을 떼는 일인데, 문재인 정부는 역대 극우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이처럼 자본친화적이고 노동배제적인 노선을 취하고 있기에 노동자들의 굴뚝 농성이 끊이지 않고,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산업재해가 꼬리를 물고, 가혹하기 짝이 없는 고용조정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삼성재벌의 산하 기업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려고 시도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해고당한 김용희 씨가 수십 년 동안 이에 항의하다가 마침내 삼성전자 본사 앞의 송수신 철탑 위에 올라가 330일에 가깝게 수차례 단식을 감행하며 농성을 벌이고, 노동탄압을 일삼는 삼성재벌 대표역 이재용의 구속, 신분 회복과 밀린 급여 지급, 피해 보상 등을 요구하는 일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낡은 신자유주의 교리에 포획되어 있다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이 가져온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운영 기조를 ‘재난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하고 비상경제회의를 꾸렸다. 이미 4차에 걸쳐 모인 비상경제회의는 한국은행의 대폭적인 금리 인하와 사실상의 양적 완화 조치, 미국 중앙은행과의 통화 스와프 체결 등을 전제로 해서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 기업 긴급자금 지원 및 신용보증 대책, 소상공인 지원대책, 고용유지 대책, 전국민 재난보조금 지급 대책, 기간산업 지원대책, 고용유지보조금 확대 지원 대책 등이 결정되었고,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두 차례 추경안이 마련되어 국회의 승인을 받았다. 제5차 회의에서는 ‘한국판 뉴딜’의 기본 계획이 논의될 예정으로 있다.

이러한 일련의 대책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예기치 못한 보건위기가 촉발한 경제위기와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재난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대책들로 여겨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매우 빠른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마련된 대책들이기 때문에 일관성이 없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띈다. 위에서 말한 정부의 대책들은 엄청난 공적 자금 조성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공적 자금의 투입과 회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하는 일관성 있는 정책 결정 기준에 따라야 한다. 1970년대의 중화학 공업 육성을 위한 공적 자금 투입이나 1990년대 말의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공적 자금 투입은 그 나름대로 일관성 있는 정책 방향과 정책 결정 기준에 따른 것이었다. 국가주도적 경제성장 정책과 신자유주의적 전환정책이 그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문재인 정부는 ‘재난 자본주의’에 대처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기본 정책 방향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채 이미 시효가 지난 신자유주의 정책 교리에 걸려 넘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재난 자본주의’를 운영하면서 문재인 정부는 신자유주의적인 재정건전성 교리에 포획되어 진퇴양난의 곤경을 치렀다. 코로나19 감염병 재난의 보편성에 비추어 재난 지원금을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라는 국민의 강력한 요구에 직면한 문재인 정부는 재난 지원급 지급 정책을 일관성 있게 수립하지 못했다. 청와대와 집권 여당과 총리가 국민의 압력에 밀려 전국민 재난 지원금 지급 방침을 정한 뒤에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에 반발했고, 재난 보상금 지급을 위한 추경안을 심의하는 국회 상임위 회의에서조차 신자유주의적인 재정건전성 교리를 앞세워 재난 보상금의 보편적 지급에 대한 원칙적인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한 재정기획부 장관을 그대로 유임시키는 한, 그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신자유주의적인 재정 운영 교리를 원칙적으로 고수한다는 뜻으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 문 대통령이 소득 상위 30%에 이르는 가구에 호소해서 국가가 국민에게 지급하는 재난 지원금을 포기하거나 기부하게 하자는 타협안을 내서 전국민 재난 지원금 지급을 성사시켰다는 것은 결코 미담일 수 없다.    

신자유주의 교리에 사로잡힌 문재인 정부는 정책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재난 자본주의’ 운영에 관련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먼저 천명한 방침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무너지는 기업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재난시 기업도산 방지에 큰 방점을 찍고난 뒤에 그는 기업도산을 막아야 고용을 유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용유지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오직 기업도산을 방지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인식의 일단을 내비친 것이다. ‘사람’이 먼저가 아니고, 노동력을 기업의 생산요소로 간주하는 이 기업 우선의 사고방식은 자유주의에 그 깊은 뿌리가 닿아 있고, 공급 중심의 경제를 최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자들에게서 강력한 교리로 자리를 잡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물론 돌발적인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서 도산하는 기업을 막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국가가 재난을 극복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재난 자본주의’ 운영 맥락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 발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발언은 재난을 핑계로 삼아서 기업을 무차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통로를 활짝 열어놓는 효과를 자아낸다.

재난의 시기에 공적 자금이 무차별적으로 투입되는 극단적인 예는 두산중공업 지원일 것이다. 두산중공업은 석탄발전과 가스복합 발전 등 화석연료 발전에 특화된 기술을 갖고 있는 거대기업이다. 탄소배출량을 실효적으로 감축하는 국제적인 조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두산중공업은 미래 전망이 극히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산중공업의 위기는 코로나19 재난 사태 이전에 발생하였기에 ‘재난 자본주의’ 운영 맥락에서 공적 자금을 투입할 사안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재난을 빌미로 삼아 두산중공업에 1조 원에 달하는 공적 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어이없는 결정이 두산중공업의 생존 로비가 통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보는 것은 아직 충분한 설명을 다 한 것이 아니다. 재정당국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산업정책을 세우지 못한 채 거대기업 최우선 지원이라는 시대에 한참 뒤떨어지는 정책 교리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식화한 재난시 무차별적 기업 도산 방지 지침은 재정당국의 어처구니없는 정책 결정에 큰 힘을 보태주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재난 자본주의’를 운영하면서 기업도산 회피와 고용유지를 서로 긴밀하게 연계시키는 것을 전제로 해서 공적 자금을 투입한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그 원칙은 신자유주의자들의 반발에 부딪쳐서 크게 흔들렸고 사실상 좌초된 것으로 보인다. 항공·해운·자동차·조선·기계 등 기간산업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기 위해 산업은행법을 개정하면서 공적 자금을 투입한 기업에게 고용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도록 요구하되, 그 구체적 실행을 노사 협약에 맡겨 놓은 것이다. 그러한 법률 조항은 자본의 노동 포섭이 제도화되어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용유지를 사실상 자본의 처분에 맡기는 효과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40조 원에 달하는 공적 자금과 그에 상응하는 민간 매칭 펀드를 운영하는 산업은행법 개정에서 주목할 것은 공적 자금 투입으로 획득한 지분이 있더라도 그 지분에 따르는 의결권 행사를 하지 않도록 법률 조항이 기입되었다는 것이고, 그렇게 입법을 하도록 조언한 당사자들이 기획재정부 관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업의 사적 자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교리가 기획재정부 관료들에 의해 관철된 또 하나의 중요한 실례일 것이다. 공적 자금의 투입과 회수에서 지켜져야 할 공공성 계명이 사적 자치와 충돌할 때 재정당국의 관료들이 공공성의 계명 대신에 사적 자치를 옹호하는 믿기 어려운 일이 문재인 정부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신자유주의의 포로상태에서 밧아날 때에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할 수 있다

위에서 제시한 몇 가지 실례들에 근거해서 문재인 정부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사회경제 정책과 재정 정책을 구사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말한다면, 다소 성급하다는 인상을 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수해 왔던 시대에 뒤떨어진 신자유주의 교리들을 버리지 않는 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한국판 뉴딜’을 구상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장관이 앞장서서 ‘한국판 뉴딜’을 설계하고 있는데, 그 기조는 규제 철폐이다.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마인드를 갖고서 ‘한국판 뉴딜’ 계획을 짜겠다고 나서는 모양새이다. 기획재정부가 설계하는 ‘한국판 뉴딜’은 인터넷과 첨단 전자 장비 등을 매개로 해서 비대면 사업을 대대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전방위적인 규제 철폐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획재정부 장관은 비대면 사업의 핵심 아이템으로서 원격의료 사업을 들고 나왔다. 지난 10년 동안 의료계와 현 집권여당의 반대로 여러 차례 제동이 걸렸던 원격의료 사업을 ‘한국판 빅딜’의 주요 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획재정부 장관을 위시한 부서 관료들은 코로나19 감염 사태 시에 전화를 통한 비대면 진단과 처방이 15만 건이나 있었다는 사례를 들고 있다. 그런데 전화를 통한 진단과 처방은 초진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진료 기록이 있는 내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전화를 통한 진단과 처방은 기획재정부가 추진하는 원격의료 사업과는 그 내용과 본질을 전혀 달리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기획재정부는 사실 왜곡을 불사하면서까지 비대면 원격진료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대면 진료를 의무화하고 있는 규제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정밀한 원격 전자 진단 장비는 매우 비싸기 때문에 이를 갖출 수 있는 병원은 자본집약적인 거대 병원일 것이다. 그 병원들이 전자 장비를 활용하여 원격진료에 나서게 되면 동네 의원들은 문을 닫기 십상이다. 주치의 역할을 하는 의사들이 동네 곳곳에 현존하는 것은 공공 의료전달 체계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기획재정부 관료들은 그러한 의사가 없는 도서 지역이나 벽오지 주민들을 위해 원격진료가 필요하다고 강변하지만, 그러한 지역에 의사가 들어가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만드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을 겪으면서 우리나라 시민들은 선별진료소와 안심병원이 곳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선별진료소가 천막의 형태가 아니라 제대로 시설을 갖춘 별도의 보건 시설이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아마도 그러한 보건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원격진료를 위해 규제를 철폐하는 것보다 더 급선무라고 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원격진료를 ‘한국판 뉴딜’ 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비대면 사업을 대대적으로 발전시키겠다고 하는 문재인 정부의 구상을 폄하할 마음은 없다. 앞으로 비대면 사업의 확장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줄기차게 추진한 ‘삽질’ 중심의 국책 사업 추진은 시대에 뒤떨어진 모델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비대면 사업을 ‘한국판 뉴딜’의 핵심 사업으로 삼겠다는 그 안목과 발상, 그리고 그 정책의 기조가 문제이다. ‘한국판 뉴딜’에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재생에너지 개발 사업이나 에너지 효율 고도화 사업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4차산업혁명과 인공지능 활용 확대로 인해 노동세계와 사회공동체가 크게 변화된다는 것을 누구나 뻔히 예상하고 있는 시기에 보편적 기본소득의 도입과 같이 사회적 재화를 획기적으로 새롭게 분배하는 구상을 ‘한국판 뉴딜’의 핵심으로 설정하지 않고, 고작 비대면 사업과 같은 기술주의적 접근에 매몰되어 있는 정책 당국의 청맹과니 같은 안목이 언제까지 용인될 수 있겠는가?

문재인 정부는 오직 신자유주의 교리들을 버리고 사회적 연대와 생태학적 정의를 중시하는 새로운 뉴딜을 구상하고 그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시민들의 참여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발상을 전환할 때에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책임 있게 대응하는 성공적인 정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교리들에 젖어있는 기획재정부를 혁파하고 재구성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한국 교회는 창세기 1장 28절에서 하나님이 인류에게 분부하신 ‘생명의 대헌장’에 따라 사회적 연대와 생태학적 정의에 입각한 경제 운영의 원칙에 입각하여 문재인 정부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사회경제 정책과 재정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도록 살피고 견인하는 수고를 기을여야 한다. 그것이 교회가 국가의 ‘파수꾼’으로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수행해야 고귀한 사명들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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