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2020/06/01 (19:29) from 211.197.6.114' of 211.197.6.114' Article Number :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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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연의 투쟁은 인권과 정의를 위한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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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연의 투쟁은 인권과 정의를 위한 투쟁이다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민중신학과 사회윤리)

지난 5월 초 이래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의 회계부정 의혹 등에 관해 ‘흑색 저널리즘’이 기사들을 쏟아내는 와중에 일본군‘위안부’ 혹은 ‘일본군 성노예’에 관한 정의연의 담론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정의연을 둘러싼 일종의 담론 투쟁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담론 투쟁은 일본군‘위안부’ 혹은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제국과 식민지, 군국주의, 성폭력, 가부장주의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역사적 문제인 동시에 그 실효적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할 현안 문제에 관련된 것이어서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담론 투쟁은 필연적이다. 일단 생산된 담론은 복잡한 정세 속에서 미세하게 작동하는 여러 힘들에 의해 끊임없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면서 새로운 담론에 길을 내어 준다. 그 과정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미세하게 진행될 수도 있고, 격렬한 논쟁과 투쟁의 양상을 띨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패러다임 전환에 비견할 만큼 획기적인 새 담론이 생성되기도 한다. 정의연의 일본군‘위안부’ 혹은 ‘일본군 성노예’ 담론에 관한 논쟁은 어느 정도의 강도와 심도를 갖고 있을까? 담론 투쟁을 이끌어가는 새로운 담론 구성체가 등장하고 있는 것일까?

이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서 필자는 먼저 독일에서 홀로코스트 담론 지형에 큰 변화를 촉발한 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싶다.

홀로코스트 담론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한 권의 책

1996년 다니엘 요나 골드하겐(Daniel Jonah Goldhagen)의 『히틀러의 자발적인 집행자』(The Holocaust: Hitler's Willing Executioners)가 출판되었을 때, 독일의 지식인 사회와 독서계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책에서 골드하겐은 독일의 ‘평범한’ 시민들이 나치의 유대인 멸절 범죄에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가담하여 이를 자발적으로 집행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주장했다. 그 주장은 독일 사람들의 나치 범죄 가담에 대해 그 동안 제시된 백 가지 이상의 해석 모델들을 뒤흔들었다.

여기서 백 가지가 넘는 해석 모델들을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독일 사람들이 은근히 선호하는 통속적인 해석들은 독일인들이 나치 범죄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거나, 권위주의 국가 체제에서 그 범죄를 속절없이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의 영향을 그 이유로 들기도 했다. 독일 사람들이 종교개혁 이래로 국가의 권위에 순응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히틀러 국가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한 채 그 명령을 수동적으로 집행하였다는 식이다. 정신분석학적 설명도 큰 흐름을 이루었다. 이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쌓은 테오도르 비젠그룬트 아도르노, 에리히 프롬 등은 정신분석에 바탕을 둔 문화비판의 관점에서 개인의 독립과 자유가 가져다주는 불안을 견디지 못한 독일 사람들이 권위주의적 멘탈리티에 사로잡혀서 히틀러를 추종하고, 나치 범죄에 가담했다고 해석했다. 우리 시대에 실천철학의 빛나는 버전을 선사한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나치 범죄에 가담한 독일 사람들의 한 전형으로 분석하면서 비판적 성찰 능력을 상실한 ‘진부한’ 사람들이 전체주의의 도구로 동원되었다고 지적했다.

골드하겐은 이 모든 해석 모델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뒤에 상점주인, 가계 점원, 회사 직원, 농민, 노동자, 대학생 등 독일의 평범한 시민들이 군대에 편성되어 폴란드 등지에서 유대인들을 잔인하게 가학적으로 학살하는 데 자발적으로 가담한 이유를 물었다. 골드하겐에 따르면, 평범한 독일 사람들이 ‘히틀러의 자발적 집행자’가 된 것은 중세기 이래로 독일 문화에 깊이 뿌리를 박은 ‘멸절주의적인 반유대인주의’를 빼어놓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그 주장은 독일 지식인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독일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독일 사람들이 어떤 이유에서든 나치 범죄에 동조하거나 가담한 것은 부정할 수 없고, 따라서 나치 독일의 국가 범죄를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그 범죄를 기억하여 다시는 이를 반복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를 이루었어도, 평범한 독일 사람들이 나서서 나치 범죄를 자발적으로 집행할 정도로 반유대주의가 독일 문화의 독특성을 이룬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골드하겐의 저서는 독일 통일 이후 외국인 혐오와 신나치주의가 새롭게 준동하는 독일 사회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고,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홀로코스트를 불러일으킨 반유대주의에 대한 독일의 책임과 과제에 대해서도 새롭게 논의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의연의 ‘일본군 성노예제’ 담론의 발전

정의연이 그 동안 생산하고 유통시킨 일본군‘위안부’ 또는 ‘일본군 성노예제’ 담론이 논란이 된 것은 골드하겐의 책처럼 담론을 재편성하는 획기적인 주장이 나왔기 때문은 아니다. 그 논란은 정의연의 틀에서 함께 활동하던 이용수 씨가 그 단체의 모금 처리 방식과 운동 방식 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정의연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시절부터 정신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본군‘위안부’를 동원해 왔다는 주장을 펼쳤다. 일본군‘위안부’였던 자신은 정의연에 이용만 당했고, 일본군‘위안부’를 앞세워 모금한 돈을 정작 그 자신들에게는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제기한 모금 용도와 사용 내역 등에 관한 의혹은 정의연과 전(前) 이사장 윤미향 씨의 꼼꼼한 해명이 있었고, 검찰 수사를 통해 마무리될 것이기에 여기서 더 말할 것은 없다. 문제는 정의연이 일본군‘위안부’를 내세워 정신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단체인가 하는 것인데, 정의연의 활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어째서 정의연과 30년 동안 함께 활동한 당사자가 이와 같은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그래서 그 내력을 조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제2차세계대전 말기에 ‘제국’ 총동원령에 따라 조선인 여성들이 근로정신대에 동원되었고, 그 가운데 일부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갔다는 것은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군‘위안부’의 존재는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고, 공론화되지 못했다. 그것은 강제 징용에 해당하는 근로정신대가 한일국교정상화를 시도했던 이승만 정권 때부터 공식적으로 거론되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간 사람들은 많은 경우 귀향하지 못했고, 귀향을 했더라도 반일감정과 순결주의가 강했던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차마 말하지 못하고 ‘침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군‘위안부’로 고난을 당했던 여성들의 문제는 먼저 일본에서 1970년대부터 거론되기 시작했고, 1980년대에 우리 사회에도 알려졌다.

정대협이 1990년대 초에 다루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일본군‘위안부’ 문제였다. 여성의 정조를 중시하고 기지촌 ‘위안부’를 멸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그 당시 정대협은 일본군‘위안부’와 ‘정신대’를 구별하지 않고 통칭하는 상황을 고려하여 일본군‘위안부’ 대신 ‘정신대’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뿐, 초창기부터 정의연으로 개편하여 활동하고 있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게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루어왔다. 정대협은 일본군‘위안부’가 일본정부에 그 최종적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일본군 전시 위안소 제도의 피해자들임을 부각시켰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피해 배상 등을 요구했다. 정대협의 활동은 “일제하일본군위안부에대한생활안정지원법”(1993년)을 제정하는 데 이바지했고, 일본 정부의 사과와 일본 정부의 지원 하에 일본 시민들이 주도한 ‘아시아여성기금’ 조성 등을 촉진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이 과정에서 정대협은 일본군‘위안부’가 일본이 저지른 전쟁 범죄의 피해자이기에 일본이 그 범죄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지고, 피해 배상을 하고, 역사 교육을 철저히 시행하여 같은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담론을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그 담론은 일본 제국과 식민지 조선이라는 정치적 상황을 매개로 하여 식민지 조선 여성들이 일본군 전시 위안소에서 당한 치욕과 피해에 대한 서사를 그 중심으로 하였고, 그 때문에 피해자 민족주의 담론이라고 일컬어지곤 했다.

일본군‘위안부’ 개념이 ‘일본군 성노예’라는 개념으로 바뀐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였다. 정대협의 활동에 의해 수많은 여성들이 일본군‘위안부’임을 드러내고 증언을 하는 데 자극을 받아 다른 나라 여성들도 그들이 겪은 일들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전시에 일본군의 관리 아래 있던 위안소에서 체계적으로 성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이 조선 여성들만이 아니라, 중국, 대만, 필리핀, 버마, 태국,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끌려온 여성들이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들은 예외 없이 전시 일본군 위안소에서 철저하게 인권을 유린당한 채 일본군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들을 처음 ‘전시 성노예’라는 개념으로 지칭한 문서는 1996년 라디카 쿠마라스와미(Radhika Coomaraswamy)가 작성한 보고서였다. 그 보고서는 유엔인권위원회가 채택한 결의안의 바탕이 되었다. 그 뒤를 이어 1998년 유엔인권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채택한 게이 맥두걸(Gay J. McDougall) 보고서에서도 ‘전시 성노예’라는 개념이 사용되었다. 마침내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 법정’에서는 ‘전시 성노예’를 공식용어로 채택하였다.

정대협은 오랜 내부 논의 끝에 일본군‘위안부’를 지칭하는 ‘일본군 성노예’라는 개념을 공식적으로 채택하기로 결정했고, 2016년에 출범한 정의연의 공식 명칭에 이 개념을 명기했다. ‘성 노예’라는 개념은 그 어감 때문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 가운데 일부의 반발을 산 것으로 알려졌고, 지난 5월 25일 제2차 기자회견에서 이용수 씨도 그 용어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나타낸 바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정의연이 ‘일본군 성노예제’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기존의 피해자 민족주의 담론이 피해자 연대 담론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본군 성노예제를 위시하여 세계 여러 곳에서 국가가 방조하거나 조장한 성노예제로 인해 인권을 유린당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연대하자는 담론의 한 축이 설정된 것이다. 실제로 정의연은 이러한 정신에 따라 베트남, 우간다, 콩고 등지의 전시 강간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다양한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한 바 있다.

이렇게 보면, 정의연은 일본이 전쟁 때 일본군 위안소를 운영하면서 저지른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헌신하면서 여러 가지 담론들을 생산해 왔고, 각각의 담론은 조성된 정세에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진화하여 왔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이 일본군‘위안부’ 혹은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책임을 인정하고, 이를 사과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인 배상을 하지 않는 한, 정의연은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기본 방침을 변경하지 않을 것이다. 그 방침이 정의연의 존립 이유이기 때문이다.

‘피해자중심주의’ 담론의 함정

정의연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최근 목청을 높이는 것은 정의연이 ‘피해자’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의연이 ‘피해자중심주의’를 표방하면서 2015년 한일 양국 정부가 체결한 ‘위안부’ 합의를 거부했으면서도, 정작 피해자의 요구에 따르지 않고 단체의 논리를 앞세웠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일리가 있지만, 피해자중심주의는 피해자가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예의 이용수 씨 요구대로 한다면, 정의연은 ‘피해자’를 위해 모금을 해서 이를 피해자에게 가져다주어야 하는데, 그것은 정의연의 핵심적인 사업 목표가 아니다. 그 일은 이미 오래 전에 정대협이 애를 써서 입법에 성공한 “일제하일본군위안부에대한생활안정지원법”과 그 후속 법률들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 다 알다시피, 그 지원액수와 의료 혜택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피해자중심주의는 그 어떤 경우에도 피해자를 성역화하고 그의 ‘기억’을 절대화하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증언은 매우 중요하고, 그 증언의 바탕이 되는 ‘기억’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기억의 주체들은 그들이 겪은 피해와 트라우마로 인해 몸과 마음이 상한 상태이고, 피해의 기억은 오랫동안 억압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피해를 당한 사람이 피해에 대해 말을 하지 못하도록 강제되는 한스러운 상황이 수십 년이나 지속되었다. 게다가 기억은 그 주체의 상태와 욕망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속성을 가졌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기억의 단편들이 삭제되거나 새로 만들어지고 재배치된다. 이러한 기억의 특성 때문에 기억하는 주체의 증언은 여러 차례 채록되고 다각적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기억의 서사가 정형화되는 낭패에 빠질 수도 있다. 그 때문에 기억의 신빙성을 확보하는 일은 지난한 과정이다. 기억의 주체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절대화될 수 없고, 성역화될 수는 더더욱 없다.*

* 정대협이 초창기부터 공을 들인 일은 일본군‘위안부’의 증언을 듣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었다. 그 증언 기록들은 여러 권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거기에는 이용수 씨의 증언도 들어 있다. 일본군‘위안부’의 증언을 듣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에 입각하여 얼마나 주의 깊고 정교한 방법에 따라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는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양현아 교수가 잘 정리한 바 있다. 양현아, “피해자를 대변한다는 것 : 그 많던 ‘할머니’는 다 어디로 가셨을까,”
http://www.hani.co.kr/arti/society/obituary/946634.html, 2020년 5월 28일 다운로드.

피해자중심주의는 피해자의 관점에서 피해에 관한 증언을 수집하고 검증하고, 그 피해의 구조적인 측면들을 분석하고, 가해자에게 피해에 대한 사과와 법적인 책임을 요구하고, 피해자에 대한 법적인 배상을 이끌어내고, 피해자의 희생을 기억하게 하고, 피해 재발을 막기 위한 교육을 시행하게 하는 일련의 절차를 통하여 구현되는 것이지. 피해자가 자기중심적으로 이러저러한 것을 요구한다고 그것을 따르는 것일 수 없다. 가해자가 국가일 경우, 그것도 식민 경영자 지위에 있었던 과거의 제국일 경우, 피해자중심주의 원칙에 따라 위의 절차를 실효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이 예컨대 일본군 ‘성노예’라는 규정을 배척하고 일본군‘위안부’라는 자기의식을 고집하면서 그들 나름대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강구하기 위하여 단체 활동을 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정의연만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정해 놓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생각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 모임들이 많아지고, 그 모임들이 생산하는 담론이 시민사회의 지지를 받고 문제 해결에 나름대로 기여한다면, 그 누가 그것을 말리겠는가? 그 담론이 정의연의 ‘일본군 성노예제’ 담론과 경쟁하고, 경우에 따라 그것을 대체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마땅하지 않은 일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먼저 새 담론이 제시되어야 한다.  

‘제국의 위안부’ 담론

사실 그 동안 정의연이 생산하고 유통시킨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담론이나 일본군 성노예제 담론에 대해서는 강력한 반론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박유하 씨는 논의의 초점을 ‘일본군 위안부’에서 ‘제국의 위안부’로 옮기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담론과 일본군 ‘성노예제’ 담론을 치밀하게 분석했다. 그는 자본의 축적과 팽창에 의해 추동되는 ‘제국’의 차원에서 ‘위안부’ 제도를 볼 것을 주장했다. 그는 일본인들과 조선인들이 모두 제국의 시민이었고, 일제 관헌이 식민지 조선에서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 동원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고, 위안소에서 만난 일본군과 ‘조선인 위안부’ 사이에는 제국의 황폐한 변방에 내던져진 사람들로서 다양한 감정의 결이 형성되었고, 심지어 그들 사이에는 동지적 결속의 감정도 싹틀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 담론의 핵심은 일본 기모노를 반쯤 걸쳐 입은 조선 여성이 ‘제국의 위안부’로 그려진 삽화에 명징하게 압축되어 있다. 박유하 씨에게 전시 일본군 위안소에서 강제적인 분위기에서 벌어진 성착취는 정대협의 담론적 구성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이 담긴 박유하 씨의 『제국의 위안부: 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2013년)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고발되어 법정에서 34곳의 삭제 명령 처분을 받았고, 2015년 34곳을 삭제한 채 제2판이 발간된 바 있다.

박유하 씨의 뒤를 이어 이영훈 씨도 일본군 ‘성노예제’를 부정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일본군 위안소에서 벌어진 성착취가 일본군 위안소의 특수한 현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군 위안소에서 여성 성착취가 강제로 일어났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았다. 남성의 여성 성착취는 다른 시기에도 나타나는 일이었고, 심지어 일본군 위안부의 원류는 조선 시대의 기생제도였다고까지 주장했다. 해방 이후 민간 위안부 제도, 한국군 위안부 제도, 미군 위안부 제도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보다 더 참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영훈 씨의 주장은 일본군 성노예제 담론을 체계적으로 부정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영훈 씨나 박유하 씨의 주장은 민족주의의 과잉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갖는 것 같다. 민족이 ‘상상된 공동체’(베네딕트 앤더슨)라고 주장하는 포스트모던적 사유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한국 사회에서 민족 담론은 더 이상 두터운 토양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서 이영훈 씨는 한국 사람들이 식민지 경험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여 강한 ‘종족주의’ 편향을 갖고 있다고 비난하고 이를 버려야 한다고 짐짓 훈계까지 하고 나서고 있는 판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부정하거나 애써 희석시키고 있는 일본군 ‘성노예제’가 일본의 국가 기구의 관리 아래서 실제로 운영되었음을 뒷받침하는 전시 일본군 부대의 진중일기, 위안소 운영 기록, 피해자 증언 등이 확보되어 있다는 것은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자료들을 맥락에 따라 해석함으로써 ‘전쟁 성노예제’ 문제의 실체를 확인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따라서 정의연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담론이나 ‘일본군 성노예제’ 담론이 이영훈 씨나 박유하 씨의 주장으로부터 본질적인 도전을 받았다고 볼 여지는 없어 보인다.  

일본의 국가 기구인 육군 군부대의 관리 아래서 위안부의 강제적인 성매매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1993년 “위안부 관계 조사결과 발표에 관한 고노 내각관방장관 담화”(고노 담화)의 핵심적인 테제였다. 천황의 나라 일본에 대한 긍지를 앞세우는 아베도, 비록 조선인 여성을 강제 연행하여 일본군 위안부로 끌고 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고노담화의 취지를 계승하여 일본군 위안소 운영에서 나타난 강제성과 폭력성을 인정하고 있다.

과연 정의연의 ‘피해자 민족주의’가 ‘판결자’의 위상을 갖고 있는가?

최근에 조민아 씨가 정의연이 고수하는 ‘피해자 민족주의’ 담론에 대해 가한 비판은 이영훈 씨와 박유하 씨의 주장과는 결이 다르지만, 주의해서 살펴볼 대목이 있다. 정의개혁연대가 고수하는 ‘피해자 민족주의’가 시나브로 ‘판결자’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어 회색지대를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선명하게 취하도록 강제한다는 지적은 정의연으로서는 반드시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조민아 씨의 지적은 토론하는 스타일이나 논증하는 방식에서 흔히 나타나는 축소주의적인 조급성을 나무라고 운동 방식의 유연성을 요구하는 말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 조민아, “이용수 선생의 발언과 정의연 : 넘어서야 할 것과 거리를 두어야 할 것,” https://minjungtheology.tistory.com/1249, 2020년 5월 30일 다운로드.

그러나 조민아 씨의 지적에서 한 축을 이루는 ‘피해자 민족주의’에 관해서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정대협 시절부터 정의연은 냉전의 해체기에 동북아시아에 새롭게 조성되기 시작한 권력의 배치에 최적화된 담론을 형성해 왔고, 그 이후 상황의 변화와 문제의식의 발전에 따라 담론을 재구성해 왔다고 말하는 것이 공정할 것이다. 정의연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민족주의의 틀에서 다루던 기존의 관점과 방법에서 벗어나 일본 국가의 전쟁 범죄를 피해자 인권 유린의 차원에서 보편적으로 제기하고 그 범죄에 대한 일본의 국가적 책임을 묻고 있다. 그것은 정의연의 담론이 더 이상 ‘피해자 민족주의’에 매몰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지 않는가?

그 다음, 조민아 씨의 지적에서 또 하나의 축은 정의연이 ‘피해자 민족주의’를 내세워 ‘판결자’의 위상을 갖고자 한다는 주장이다. 조민아 씨는 홀로코스트를 겪은 사람들의 피해자 민족주의가 성역화되어 팔레스타인에서 아랍 사람들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스위스 사회문화학자 울리히 슈미트의 이론을 끌어들였다. 슈미트의 분석은 유럽에서 이스라엘 극우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공감할 만한 내용을 갖고 있다. 그러나 슈미트의 이론을 정의연의 ‘피해자 민족주의’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한 마디로 넌센스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정의연은 ‘피해자 민족주의’ 담론에서 벗어나 ‘일본군 성노예제’ 담론으로 이행하고 있다. 둘째, 정대협 활동 초기에 확립된 ‘피해자 민족주의’ 담론은 일본군으로 구현된 일본 국가 폭력에 의해 옴쭉달쭉 못하는 상태에서 성적 착취에 내던졌던 피해자들의 인권과 생존에 초점을 맞춘 저항 담론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공정하다. 그 담론이 지배와 배제의 효과를 냈다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정의연은 일본이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할 것을 줄곧 요구하고 있다. 일본이 ‘일본군 성노예제’의 실체를 인정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의연이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일본 국가에 일본군‘위안부’ 문제 혹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요구하는 담론을 국수주의적이고 팽창주의적인 이스라엘 국민주의의 바탕을 이루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피해자 서사와 동격을 이룬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

정의연의 담론을 공연히 비난하지 말라

최근 정의연에 대한 ‘흑색 저널리즘’의 터무니없는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 정의연의 주요 담론에 대한 공격이 가해지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정의연의 담론을 둘러싼 비난과 논란은 담론 투쟁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정의연의 담론은 계보학적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언정 공연한 비난의 대상이 될 까닭이 없다.

화해와 평화는 진실과 정의의 열매이다. 필자는 이것이 정의연 담론의 핵심 태제라고 본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혹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확인에 근거하여 사과와 법적 책임과 배상을 하지 않고, 어떻게 화해와 평화를 말할 수 있겠는가? 정의연은 이미 ‘피해자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인권과 정의의 이름으로 전시에 일본의 국가 폭력에 의해 자행된 성착취와 인권유린의 문제를 해결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그 요구를 실현하는 최적의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앞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정의연의 담론은 풍부해질 것이다.

정의연의 담론을 공격하기 전에 윤미향 씨가 남긴 한 마디의 말을 경청해 보자.

“수요집회에 태극기를 들고 오는 분이 있으면, 내려달라고 정중히 부탁한다. 이 투쟁은 반일이 아니고, 국가 대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이다. 우리 중에 누구도 한국 국가의 책임과 가부장제의 문제를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거대한 강간제도를 만든 일본정부의 책임을 비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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