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돈의 에세이
Kang Won-Don's Essay

2020/06/08 (19:13) from 211.197.6.114' of 211.197.6.114' Article Number :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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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기본소득 제안서를 조속히 마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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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기본소득 제안서를 조속히 마련하자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민중신학과 사회윤리)

기본소득이 정치의 화두가 되다

기본소득이 우리 시대 정치의 화두로 떠올랐다. 대한민국 국회에는, 비록 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기본소득당 비례대표 의원이 진출했다. 세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1986년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 논의가 시작된 벨기에나 2016년 12월 세계 최초의 기본소득 정당인 ‘기본소득 동맹’(Bündnis Grundeinkommen)이 창설된 독일에서도 아직 단 한 사람의 기본소득당 의원이 연방의회에 선출된 적이 없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지난 7일 기본소득 도입을 국회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할 것을 요구하면서 ‘원내 7당 연석회의’를 제안했다.

놀라운 것은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취임한 김종인 씨가 적극적으로 기본소득 도입을 의제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6월 3일 초선의원 모임에서 “보수가 지향하는 가치인 자유는 말로만 하는 형식적 자유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전혀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 뒤에 민주통합당이 “실질적인 자유를 어떻게 구현해내느냐?” 하는 과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다음날 그는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하여 당 차원에서 기본소득 도입 논의를 공식화했다.

김종인 씨의 발언 이후 국민의 당과 정의당도 당 대표의 발언을 통해 기본소득 도입 논의를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기본소득 도입 논의에 대해 가타부타 없이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집권 여당으로서는 천문학적 재정을 필요로 하는 기본소득 도입에 관한 논의를 섣불리 꺼내들기 어려울 것이다.

기본소득 도입 논의가 정계의 화두가 된 것은 코로나 19 감염병 확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재난기본소득’ 논의가 확산된 탓도 있다. 지난 3월 16일에 게재한 제11회 연재 “‘재난기본소득’을 과감하게 도입하자”에서 필자는 “‘재난기본소득’은 우리 사회에 기본소득 논의를 끌어 들이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는데, 실제로 사정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지급된 재난 지원금은, 비록 일회성이기는 하지만, 국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재난기본소득’의 형태로 처음 맛보게 만들었기에, 기본소득 도입 논의에 대한 저항감을 크게 떨어뜨리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지난 5월 6일과 7일에 실시한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 결과, ‘잘한 일’이라는 긍정 평가가 73%, ‘잘 못한 일’이라는 평가는 18%에 그쳤다고 한다. 특히 중도층의 경우, 잘한 일이라는 긍정 평가가 70%, 부정 평가는 20%에 머물렀다. 이 조사는 전국에서 1004명을 표본으로, 휴대전화 RDD 조사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응답률 14%이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이 급속히 진행되어 “일자리를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는 시대, 생존과 존엄을 위한 최소한의 소득조차 갖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설계도를 짜는 일에 시민사회와 정치사회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한국 교회의 반응

필자가 10년 전에 기본소득에 관한 논문을 쓰고 강연을 하기 시작했을 때, 한국 개신교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의 반응은 냉담했고, 심지어 적대적이기까지 했다. 필자의 강연을 들었던 극우 성향의 한 목사는 기본소득 주장이 공산주의와 다를 바 없다고 펄쩍 뛰면서 “도시락을 싸고 다니며 기본소득 주장을 물리치는 데 앞장서겠다.”고 호언하기도 했다. 기본소득 구상이 ‘능력에 따라 일하고 수요에 따라 분배받는’ 공산주의와 유사하다고 오해를 했기에 나타난 반응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나서서 기본소득이 공산주의적 주장이라고 선동한다면, 극우 개신교인들 가운데 그 선동에 넘어갈 사람들이 적지는 않을 것 같다.  

한국 개신교인들이 기본소득 도입에 얼마만큼 찬성하는가를 조사한 자료는 아직 없다. 개신교인들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진행된 ‘재난기본소득’에 관한 사회적 토론과 정치적 논의를 인지하였을 것이고, 그들도 예외 없이 재난지원금의 형태로 ‘재난기본소득’을 경험하였기에, 기본소득에 대한 개신교인들의 반응이 개선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일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인들이 자본주의적 성취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생각하는 성향이 유독 강하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창세기 3장 19절의 가르침이나 “일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는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의 가르침에 문자적으로 매이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는 문자주의적 확신을 어떻게 깨뜨릴 것인가는 앞으로 한국 교회가 고민해야 할 성서학적 과제요, 신학적 과제이다. 업적과 보상을 결합시키고, 노동의 의무와 소득의 권리를 직결시키는 사고방식이 기본소득 도입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그것이 개신교 교회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최근에 개혁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한 목사들 가운데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관심은 뚜렷하게 강해졌다. 기본소득을 주제로 설교를 하거나 에세이를 쓰는 목사들이 크게 늘었고, 개신교 계통의 신문들에서 기본소득에 관한 기사나 칼럼을 싣는 횟수도 많이 늘었다. 그 글들을 읽어보면, 개혁 성향의 개신교 목사들은 기본소득이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극심하게 나타난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디지털 혁명으로 일자리가 크게 줄어드는 시대에 사회적 재화를 분배하는 대안적인 모델이라고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만일 기본소득이 개교회 단위의 재정으로 커버하기 어려운 교역자 생활 문제를 해결하여 목사들이 소신을 갖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목회자들의 수효는 크게 늘어날 것이다.

NCCK와 교단 총회 차원의 기본소득 논의가 갖는 중요성

기본소득에 대한 개혁 성향 목사들의 관심이 크게 증가하는 것과 보조를 맞추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지난 2019년 6월부터 ‘기본소득 토론 마당’을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지난 해 6월 20일 첫째 마당에서는 “기본소득이 신앙이다”는 파격적인 주제를 내걸고 신학, 사회과학, 시민사회, 지방자치단체 연구자 등이 참여하여 토론을 벌였고, 최근에 이르기까지 기본소득의 제도화에 관련된 전문적인 토론을 이어나가고 있다. 개별 교단 차원에서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가 지난 2월 4일 통합선교협의회를 개최하고 목회자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 논의가 기장총회의 교회와사회위원회에서 공식적인 의제로 다루어져서 성과를 내고 있는가는 분명하지 않지만, 첫 삽을 뗐다는 것이 중요하다.

NCCK와 기장 총회 차원의 논의에서 주목되는 것은 기본소득을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는 종교개혁의 기본 원리이고, 개신교 신학의 중심축이다. 인간은 업적이 있든 없든 그것과 무관하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지고 하느님 앞에 설 수 있게 된 존재이다. 바로 이 인의의 사건을 통해 하느님의 정의가 드러나고, 인간의 존엄성이 확립된다. 인간의 존엄성은 그가 하느님 앞에 서 있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에 의해 받아들여졌다는 것에 근거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바른 관계를 맺도록 해방된 인간은 자신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형성할 권리를 갖는다. 이러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유지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적 재화는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 보장되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기본소득은 ‘인의의 핵심적 메시지’에 의해 신학적으로 정당화된다.

NCCK와 개별 교단 총회 차원에서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가 심화되고 확대되면, 그 논의의 성과에 바탕을 두고 NCCK 차원과 개별 교단 차원에서 기본소득에 관한 제안서를 공식적으로 발간할 수 있을 것이다. 에큐메니칼 대화와 협력이 높은 수준에서 실현된다면, 개별 교단들의 의견을 모아 NCCK의 이름으로 공동 제안서를 발간할 수도 있다. 그러한 공동 제안서 혹은 개별 교단 차원의 제안서들은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에서 담론을 형성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개신교인들이 기본소득을 제대로 이해하도록 이바지할 것이다.

기본소득이 정치의 화두로 등장한 이상, 개신교는 이에 대응하여 ‘적절한 때에 바른 말을 한다는 원칙’에 따라 기본소득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정리하여 공론의 장에 올리는 것을 한시도 늦춰서는 안 된다. 이러한 책임 있는 행동을 통하여 교회의 공공성이 구현되고, 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인성이 크게 향상될 수 있다.

교회의 기본소득 제안서를 제대로 마련해 보자

교회의 기본소득에 관한 제안서는 현실의 문제와 해법을 제대로 분석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시민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 논거들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작성되어야 한다. 앞의 것은 현실부합성의 원칙이고, 뒤의 것은 설득력 있는 논증의 원칙이다. 교회가 공론의 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때에는 이 두 가지 원칙들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이 두 가지는 에큐메니칼 운동과 독일개신교협의회(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 EKD)에서 오랜 역사를 거쳐 확립한 교회의 공론 작업을 위한 원칙들이다. 이 원칙들에 충실한 교회는 공론의 장에서 권위주의적인 자세로 청중을 대할 수 있기나 한 것처럼 행세하는 오만과 특권의식을 내려놓고서 사리에 맞게 겸손하게 의견을 펼친다.

교회의 기본소득 제안서는 크게 보아 세 부분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기본소득의 성서적·신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부분이고, 둘째는 기본소득의 제도화를 다루는 부분이고, 셋째는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교회의 실천 과제를 밝히는 부분이다. 첫째 부분에서는 신학자들이 크게 기여할 수 있겠지만, 둘째 부분과 셋째 부분에서는 신학자들, 인문과학자들, 사회과학자들의 학제간 대화와 협력이 필요하다. 교회의 기본소득에 관한 제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가져야 하므로, 각 부분 작업의 초안이 작성된 뒤에는 반드시 전체가 모여 부분 작업의 성과를 공유하고, 부분 작업들을 일관성 있는 구도 아래서 조율하는 작업을 거쳐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학제간 대화와 협력은 아직 우리나라 교단 총회 산하 위원회들이나 NCCK 차원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러한 학제간 대화와 협력에 바탕을 위원회가 조직되어 긴 호흡을 갖고서 운영되고 있다는 말을 들은 바 없다. 그런 위원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위원으로 위촉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전문가들을 초청하더라도 일회성에 그치는 발제나 패널을 맡기는 것이 고작이다. 기본소득은 경제정책, 사회정책, 복지정책, 재정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는 주제이고, 이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학문들을 가로지르며 토론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교회가 기본소득을 전문적으로 다루어 공론의 장에 교회의 의견을 제안서의 형태로 내어놓기 위해서는 반드시 학제간 대화와 협력의 모델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에큐메니칼 사회운동과 EKD에서 오랜 역사를 거쳐 정교하게 발전시킨 교회의 공론 작업에서 학제간 대화와 협력은 표준적인 연구 모델이다. 이미 1924년에 버밍햄에서 요크 주교 윌리엄 템플은 “기독교 정치학과 경제학과 시민권에 관한 협의회”(Conference on Christian Politics, Economics and Citizenship)를 열어 에큐메니칼 사회윤리의 획기적인 모델을 제시한 바 있다. 이 협의회에서는 신학, 경제학, 역사학, 의학, 법학, 저널리즘 등 서로 다른 전공분야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협력하는 방법론을 마련하고, 서로 다른 계급, 종교, 정치적 세계관, 교육배경 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토론을 벌였다. 이 협의회의 보고서는 12권에 달했으며, 일관성 있는 분명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사회윤리적으로 중요한 주제들을 세밀하게 다룬 것으로 유명하다. 이 협의회 이후 에큐메니칼 사회운동을 이끌어간 학제간 대화와 협력의 사례들을 셀 수도 없이 많다. 교회의 기본소득 제안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에큐메니칼 사회윤리와 교회의 공론 작업의 역사에서 이룩한 성취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필자는 교회의 기본소득 제안서를 논의하는 장을 마련할 때 여성과 남성의 성비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여성의 비율을 그 어느 회의구성체보다 더 높이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왜냐하면 기본소득은 노동사회를 깨뜨리는 구상이고, 노동사회에서 사회적 인정과 보상을 받지 못했던 가계 노동을 공동체 형성과 유지에 꼭 필요한 활동으로 복권시키고자 하는 기획이기 때문이다. 가계 노동을 여성에게 부과하는 것을 당연시해 왔던 가부장적인 성별 노동 분업 체계를 해체하는 일에 여성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더 활발하게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성들은 노동사회 이후의 노동세계를 여는 제도적인 장치인 기본소득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참신하고 창조적인 제안을 풍부하게 내어 놓을 가능성이 많다. 기본소득에 관하여 여성들이 더 많이 말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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